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무엇이 문제인가?
김선수 지음, 한상희 좌담 / 도서출판 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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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선수 등 공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무엇이 문제인가?>를 읽고 / 2015. 2, 367쪽, 도서출판 말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기가 되는 날,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고, 그 소속 국회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는 ‘세기적 참사’가 발생했다. 
정당해산에 대한 법정에서의 절차는 종결됐다.(국회의원직 박탈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소송은 진행 중) 하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다원적 시민사회의 가치와 헌법재판의 의미에 대한 법률가들과 시민사회의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정당해산에 대한 헌법재판 심리에 모두 자발적 의사로 변호에 참여했던 통합진보당 소송대리인단 17명의 변호사가 헌재 판결에 대한 공식 비판서를 펴냈다. 이 책에 실린 [평석-대한민국 민주주의 사망 선고한 매카시즘 판결]은 소송대리인단을 대표해서 김선수 변호사가 집필했고,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한상희 교수, 정태호 교수, 이재화 변호사가 좌담을 했다.
저자들은 책의 서문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진 사람, 이 사건 결정에 대해 연구 및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 특히 헌법을 배우고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에게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이라고 소감을 밝힌다.

소송대리인단 대표이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전 회장인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최종 변론에서 정당해산 결정이 대한민국에서 갖는 의미가 중대하다고 강조했다.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의 파괴는 정권을 장악한 다수파의 전횡에 의해 자행되었지, 소수 반대파에 의해 행해진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소수 반대파에 대한 다수파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사회이 민주적 성숙도가 달라졌습니다. 소수 반대파를 포용하고 관용한 나라는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소수 반대파를 포용하지 못하고 탄압으로 대응한 나라는 혁명으로 치달은 것이 역사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 심판의 결과는 우리나라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p.10)

소송대리인단은 또한 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소가 1987년 6월 항쟁에 의해 탄생했음을 지적했다.
“1987년 6월 10일 시민 민주화 투쟁은 이 땅에서 권위주의 시대에 종말을 고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집권 계층이나 제도권 정당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투쟁에 의해 쟁취되었습니다. 그 결과 국민 기본권 보장을 증진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전면적인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그 중요한 성과의 하나로 헌법재판소가 출범하였습니다."(p.11)

소송대리인단이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청구를 기각해야만 하는 이유를 여섯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이다. 국가권력이 소수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는 그런 야만적인 국가가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소위 ‘국격’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둘째, 우리 사회이 민주주의를 위해서이다.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질 경우, 청구인(즉 정부)가 해산의 이유로 주장한 대로 ‘반미 투쟁과 반정부 비판 활동'은 '북한과 연계’되었다며 정부의 탄압을 받게되면서 한국사회는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물론 상상할 자유조차 압살되어 숨 쉴 곳이 한 뼘도 남아 있지 않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셋째, 우리 국민의 자존을 위해서이다. 이 사건은 우리 국민들의 민주적 역량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청구인이 주장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정당’은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청구인 즉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서이다. 정부는 정당해산이라는 극약 처방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형사적, 행정적 대응 수단을 통해 국가의 안전과 사회를 방위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함에도 스스로의 능력을 불신하고 사법부에 청구해버린 것이다.
다섯째, 우리 사회이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서이다. 피청구인인 통합진보당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없고 가난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제시하고 연대하고 같이 투쟁해온 정당임에도, 피청구인이 해산될 경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활동 자체가 불온시되고 위축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여섯째, 헌법재판소를 위해서이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국민들이 쟁취한 민주화의 소산이며, 그렇기에 헌법재판소는 우리 국민의 민주적 역량을 철저하게 신뢰한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다수파의 횡포를 경제하지 않고 동조한다면 그러한 헌법재판소는 존재의의를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모든 권한의 원천은 국민이며, 소수파의 인권과 활동을 옹호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장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중 8명이 정당해산에 찬성하면서 통합진보당을 강제 해산시켰다. 
통상 선고기일 통지는 1주일 정도 전에는 해주는 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2일 전에 선고기일을 통지해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년 전 그 날을 선고기일로 잡았다. 방대한 증거목록은 선고 후 1달 이상이 지난 시점까지 제대로 작성되지 못하여 피청구인 대리인은 이를 복사할 수도 없었다. 증거목록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선고를 했다는 의미다.
또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청구의 직접적이자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던 속칭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최종 심판인 대법원 판결이 1개월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결정을 내렸다. 심판청구의 핵심 원인인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기다린 후에 헌법재판소가 선고를 내려야 하는 것은 아주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헌법과 법률의 취지에 맞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2015년 1월 22일 대법원은 내란음모 사건의 핵심 죄목인 ‘내란음모’와 ‘이적단체(RO) 구성’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하였다.

더군다나 정당 해산 심판청구에 찬성한 다수파 헌법재판관들은 보충의견을 통해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쓸모 있는 바보’들로 희화화(戱畵化)했다. “그들(피청구인 주도세력)의 가면과 참모습을 혼동하고 오도하는 광장의 중우(衆愚), 기회주의 지식인·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영합 정치인 등과 같은, 레닌이 말하는‘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를 하여야 한다.”라고...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쓸모 있는 바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된다. 소수 진보정당을 해산하고 민주주의를 유신 시절로 돌려놓으려는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의 ‘가면과 참모습을 혼동하고 오도’한 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헌법의 이름으로 헌법을 유린한 ‘쓸모있는 바보’는 과연 누구일까?

이 한권의 책 속에는 단순히 정당해산을 둘러싼 법리 논쟁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예민한 이념 문제,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둘러싼 변호사와 헌법학자의 고민이 담겨있다. 
헌재 결정 직후 소송대리인단은 "오늘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이자 헌법재판소 자신에 대한 사망선고“라고 선언했다. 홍윤기 교수는 “8명의 헌재 재판관이 발포한 12월 유신“이라고 격분했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 사건 결정으로 우리 사회는 '빅 브라더(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가 되고 말았다.”며 헌재의 결정을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무엇이 문제인가?> II부에서는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의 약사와 심판절차의 진행 경과, 준용절차에 대한 헌법소원, 재판 진행 중인 기록의 송부촉탁, 증인 채택 및 신문의 문제 등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들은 박현철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 심판절차의 진행에서 ‘피청구인의 주장에 대한 판단 흠결로 인한 실체적 방어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III부에서는 정당해산 심판 청구에 대한 청구인측 주장과 피청구인측 주장을 인용하여 적법성 여부를 비교 검토한다. 피청구인 법률대리인단은 정부가 국무회의 심의절차를 위반했고, 사법의 주요 원칙인 최후수단성 원칙과 형평원칙을 위배했으며, 청구인이 심판청구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한다.
IV부에서는 정당해산 심판제도에 관한 기본 법리에 대해 설명한다. 정당보호가 주된 취지인 정당해산 심판제도의 의의, 정당해산 요건으로서의 '민주적 기본질서’, 비례원칙, 국제기준에 미흡한 견해, 공식 강령과 숨겨진 목적, 정당해산 헌법재판에 대한 국제 기구인 ‘베니스위원회’의 기준인 ‘실질적 해약을 초래할 구체적 위험성’의 적용 타당성, 한국적 특수성과 입헌민주주의의 보편적 원리 등에 대해 다룬다.
V부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하는 ‘주도세력’이라는 애매한 개념의 부당성과 기본적인 사실인정의 오류, ‘숨은 목적’의 헌법상 논리상 결함과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한 임의 해석,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과 집권방법에 대한 퍼즐 맞추기, 국민주권과 민중주권, 북한에 대한 태도에 대한 과도한 임의 해석, 소위 내란 사건과의 연결 문제, 부정경선 논란 등에 대해 비판한다.
VI부에서는 헌법이 규정하는 ‘구체적(명배하고 임박한) 위험성’과 '비례원칙’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적용이 부당하고 부적절했음을 지적한다.
VII부에서는 국회의원 자격 상실이 법률 근거가 없고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됨을, VIII에서는 해산 결정 이후 정치사회 분야에 초래된 영향에 대한 우려를, IX에서는 헌법재판소 재판권 구성의 다양성 문제를 검토한다.

저자들은 맺음말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밝힌다.
“이 사건 결정으로 우리 사회는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가 되고 말았다. 헌재의 백송(白松)은 후세에 매카시즘의 광기 어린 판결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고 전할 것이다. 이 사건 결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이유로 ‘입헌주의의 보편적 원리가 유보’되는 야만적인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극복하는 것이 국민 모두의 행복과 자존을 위해 필요하다.”(p.258)

아래는 정당해산 결정에 대한 좌담회의 주요 발언 내용과 헌재 결정에 대한 헌법학자, 교수, 변호사들의 의견을 요약한 것이다.

“하고 많은 날 중에 왜 12월 19일이냐는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 되는 날이잖아요. 결국은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굉장히 코너에 몰려 있고, 사상 최저의 지지율 37퍼센트 정도로 떨어져 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합진보당 해산이라는 선물을 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이재화 변호사)

“이 결정은 사실은 우리 의문을 해소해 줄 만큼 치밀하게 논증이 되는 가운데 만들어진 결정문이라고 보기가 어렵죠. 더더군다나 누차 이야기하지만 정부가 제출한 증거가 그렇게 많고, 피청구인 측에서도 반박하는 차원에서 제출한 증거가 이렇게 많은데, 그러면 그에 대한 평가가 구체적으로 다 이뤄져야 하잖아요. 결정문의 다수의견이 이렇게 짧다는 것은 공방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죠.”(정태호 교수)

“이 판결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입헌주의의 갈라파고스 섬이 되어버렸어요. 세계적 추세와 상관없이 한국적 특수성만 이야기하면서 입헌주의 민주주의 인권을 무시해버린 것이거든요. 이제는 국가의 명이 절대적인 것으로 군림하는 새로운 형태의 파쇼체제로 바뀌지 않을까, 그게 제일 큰 우려가 되는 것이죠.”(한상희 교수)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왜 내려졌는가? 정당해산 결정은 우리 헌법정신에 맞는 정당한 결정인가? 이 시대 이 땅에서 정당해산 결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뼈저린 반성 및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한택근_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87년 체제의 꽃인 헌법재판소가 자신을 탄생시킨 민주주의에 돌려차기를 한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불안증을 투사하지 말고 헌법을 적용했어야 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꿈틀대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헌법을 열망한다. 이 책은 바로 그에 대한 답을 풀어가는 출발점이다.”(이재승_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정권의 출현을 유신의 부활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해산 결정은 권력이 진보당을 해산하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 조봉암을 법의 이름으로 살해한 이승만 시절로 한국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쳤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 불행한 퇴보의 기록이다.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우리는 그 불행한 기록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피눈물을 흘리며 이 기록을 작성했지만, 우리 손자들은 이 기록을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세상에 이런 일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본으로 읽을 것이다.”(한홍구_성공회대학교 교수)

정당해산 결정과 관련한 국내외 언론, 전문가, 단체 등의 입장과 기사 모음은 http://blog.daum.net/hy2oxy/8692523 를 참조하면 된다.

[ 2015년 5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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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카프카 단편선 세계의 클래식 9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세훈 옮김 / 가지않은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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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단편선, 권세훈 역 <변신 Die Verwandlung >을 읽고 / 2007. 01., 191쪽, 가지않은길

의류회사 영업사원인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자고 일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부모님, 어린 여동생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레고르는 순식간에 집안의 기둥에서 해충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본래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은 그레고르였지만,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어 돈을 벌어오지 못하자 그동안 병에 걸려 쇠약해서 일을 못하던 아버지는 다시금 건강한 모습으로 일자리를 얻고, 어머니와 여동생도 서서히 자신의 앞가림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가정의 골칫거리가 된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하게 된다. 
그러다 음악학교에 가고 싶어 했던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더 듣기 위해 방 밖으로 나갔다가 징그러운 해충 취급을 받으며, 이 때문에 가족들은 하숙을 하고 있던 신사 세 명의 항의를 받게 된다. 
가족들의 공포와 괴로움의 대상이 된 그레고르는 다음날 아침 벌레의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되고, 가족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을 하루 쉬고 바람을 쐬러 나간다.

<변신>은 1912년 작품이다. 당시는 유럽 전역을 초기 자본주의 체제가 장악했으며, 빈부격차와 16시간 노동, 어린이 노동 등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토마 피케티의 연구에 의하면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빈부격차는 역사상 최악이었다. 그런 사회적 조건에서 ‘가족의 붕괴’와 '인간의 소외’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인공이 벌레로 변해서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 버려지는 상황은 21세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슬픈 자화상이 된다. 자신의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방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는 장면은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를 외면하고 결국 감금해버린다. 이 장면은 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면 그저 짐덩이로 전락해 버리는 뼈아픈 현실을 냉정하게 반영한 것이다. 돌아오는 이득이 없으면 소통도 없다는 가혹한 상황을 보여준다.

카프카는 <변신>에서 인간이 동물로 변한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이미 기정사실화함으로써 독자가 제기할지 모르는 개연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독자들은 벌레로의 변신 가능성보다 변신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 것이다. 주인공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지속적이지도 않고 진정으로 맺어지지도 않는 인간관계 등’으로서 20세기 초 대량 생산 체제 하에서 성과와 업적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사회에서의 냉정한 인간관계를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발견한다. ‘식구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돈을 받고 그도 기꺼이 돈을 내놓았지만 특별한 온정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다.’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라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으로서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다.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인식에 이르자, 주인공은 희생 대신 탈출을 꿈꾼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찾는 것, 자살,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 벌레로의 변신은 주인공의 이런 무의식적인 소망이 반영된 셈이다.
주인공은 벌레로 변심함으로써 점차 가족으로부터 외면받고 배제당했으며, 공격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가 꿈 속에서 그리던 ‘자유’는 현실에서 좌절되었고, 그는 결국 ‘죽음’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얻게 된다.

이 책은 이렇듯 극단적인 가상 상황을 통해 현실을 드러내는 대표작 <변신>을 비롯해 결혼을 앞둔 아들과 아버시 사이의 갈등 관계에 초점을 맞춘 <선고>와 두 작품과는 달리 갈등보다는 집단 내부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미해결 상태로 마무리되는 <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다수 작가와 학자들이 물질과 풍요, 신세계 개척을 칭송하 미래를 꿈꾸던 20세게 초에 세상에 내놓은 실존주의 작품이 카프카 문학의 가치라 할 수 있다.

카프카의 작품에 종종 드러나는 아버지와의 갈등 구조의 배경을 그의 삶에서 찾는 평론가들도 많다.

"평생 아버지와의 대립을 겪으며 작가의 길과 생활인의 길에서 방황했던 카프카 자신의 고뇌가 녹아 있다. 결국 그는 독자들에게 태어나자마자 주어진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적응하면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그것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꿈에 도전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숙제로 남겼다.”

"프란츠 카프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작가다. 그리고 자신의 인간적 한계와 그에 따른 고통을 문제작으로 재구성한 작가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 했고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글쓰기에 몰입한 그였지만, 현실은 생계유지를 위해 보험사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책의 대표작 [변신]의 등장인물들도 인간 존엄성보다는 돈을 우선시하며, 벌레로 변해서 일하지 못하게 된 주인공은 결국 버림받고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평생 아버지와의 대립을 겪으며 작가의 길과 생활인의 길에서 방황했던 카프카 자신의 고뇌가 녹아 있다. 결국 그는 독자들에게 태어나자마자 주어진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적응하면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그것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꿈에 도전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숙제로 남겼다."

1883년 7월 3일 태어나 1924년 6월 3일 사망한 카프카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실존주의 대표 작가’라 불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이며, 현재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에서 유대인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 유대인 사회 속에서 성장했다. 1906년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 1907년 프라하의 보험회사에 취업.
그러나 그의 일생의 유일한 의미와 목표는 문학창작에 있었다 한다. 1917년 결핵 진단을 받고 1922년 보험회사에서 퇴직, 1924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결핵요양소 키얼링(Kierling)에서 사망하였다. 카프카는 사후 그의 모든 서류를 소각하기를 유언으로 남겼으나,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가 카프카의 유작, 일기, 편지등을 출판하여 현대 문학사에 카프카의 이름을 남겼다.

[ 2015년 5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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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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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저, 장경덕 역 <21세기 자본>을 읽고 / 2014. 11., 820쪽, 글항아리

한동안 ‘피케티 신드롬’ 또는 ‘피케티 현상’이 국내외 언론과 학계를 뒤흔들었다. 미국, 영국,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피케티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피케티는 프랑스의 경제학자로 파리경제대 교수이다. '피케티 현상'은 토마 피케티 교수의 저서 <21세기 자본>을 통해 주장한 자산과 소득불균형의 역사적 구조, 양극화와 불균형의 미래에 대한 독특한 분석과 해석에 열광하는 분위기를 말한다.

피케티는 ‘부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경제학과 경제학자가 인류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학자다. 대다수 사회과학자나 경제학자들이 ‘정치적 중립’이나 ‘경제과학’이라는 핑계를 대며 겉으로는 인류사회의 진보나 개혁에 등을 돌리고, 속으로는 정부부처나 대기업들에게 연구비를 받아 정부정책이나 대기업의 논리를 제공하는 것에 비해 피케티는 ‘인류를 위한 경제학’ 그리고 ‘대다수 민중을 위한 경제학’을 내세운 셈이다.
그는 “우리는 장기적으로 부의 분배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관해 무엇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18세기 이후 부와 소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관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으며, 그로부터 21세기를 위해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의 가설은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자의적이고 견딜 수 없는 불평등을 자동적으로 양산하게 된다.”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능력주의의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침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개방성을 유지하고 보호주의적이며 국수주의적인 반발을 피하면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고 공동의 이익이 사적인 이익에 앞서도록 보장할 수 있는 방법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들을 제안하고자 이 책을 출간했음을 서문에서 밝힌다.

책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세하고 확실한 수치와 생동감 넘치는 사례로 자본주의의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오랜만에 사회과학 논쟁의 매뉴얼 같은 책이 등장한 셈이다. 경제학자와 석학들은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기 시작한 증거로 이 책을 들고 있다고 한다. "피케티 덕분에 ‘인권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피케티는 우선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오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그는 자본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6개국(영국,프랑스,독일,스웨덴,일본,미국 등)에서 과거 300년이 넘도록 이어진 소득 불평등의 근본 원인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높(았)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즉,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임대료, 배당, 이자, 이윤,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에서 얻는 소득 등)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임금, 보너스 등)을 웃돌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가 제시하는 통계자료를 들여다보면,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14~1945년에 급격히 떨어진 이후 1980년대부터 다시 증가해 최근에는 19세기 수준의 턱 밑까지 도달했다. 1914~1945년에 잠시 상대적으로 평등이 높게 유지되었던 것은 단지 전후 복구를 위해 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부유층의 상속된 부에 상당한 정도의 과세를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21세기에 부의 분배는 양극화되고, 상속재산으로 자본이 집중되는 ‘세습자본주의’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습 자본주의’가 도래하면 사회와 국가의 파탄과 극심한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대담한 대안을 내놓는다. 극소수의 최고 소득에는 현 수준부터 훨씬 더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과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그것이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불러일으킨 숱한 논쟁의 씨앗은 부의 불균형에 관한 경제학적이고 역사적인 분석보다는 이 파격적이고 이상적이기도 한 대안 제시다.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으로 부가 집중되는 메커니즘은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태생에 따라 삶과 사회가 좌우되도록 할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능력주의를 근본적으로 잠식할 것이다. 피케티는 스스로 자본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으며,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이루기 위한 적절한 제도와 정책들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피케티의 분석과 제안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것은 그의 뛰어난 연구 결과 때문이다. 그와 그의 연구팀은 300년에 걸친 20개국 이상의 역사적 데이터를 토대로 불평등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았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치밀한 실증연구라는 점에서 기존의 주류 경제학 저서가 지향하는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고찰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난다. 
저자가 활용하는 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소득의 분배와 그 불평등을 다루는 자료가 첫 번째요, 부의 분배 및 부와 소득의 관계를 다루는 자료가 두 번째다. 이 둘은 부의 분배의 역사적 동학과 사회의 계층구조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책의 핵심 자산이다. 자본수익률이 끊임없이 감소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19세기 마르크스의 <자본>의 예언과, 경제성장 초기단계에서 발생한 경제적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진전된 발전단계에서는 완화되고 안정될 것이라는 쿠즈네츠의 이론까지 논파한 뒤, 새로운 자본주의의 동학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실용적이고 역사적인 접근방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피케티의 문제제기와 제안이 합리적이고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하고 장악한 자본가들과 그들과 유착되어 있는 언론, 정치가, 관료, 학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분배와 불평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합리적이다. 1914~1945년 영국이나 미국이 앞장서서 누진적 과세를 추진한 배경에 전쟁과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20세기 말 사회주의를 표방한 소련이 해체되고 미국의 독점과 독식이 이어지면서 자본가들과 기득권자들을 위협하는 요소가 사라졌다.
피케티 자신도 책 속에서 인정했듯이, ‘누진적 소득세’나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는 상당 기간 동안 실현가능성을 점치기가 매우 어렵다. ‘글로벌 자본세’가 가능하기 위해 부와 소득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투명성을 갖추는 것만도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피케티의 책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결국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제기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가져오는 소유구조’의 문제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이 책은 4부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소득과 자본’(1~2장)은 이 책의 기본 개념들을 소개한다. 국민소득, 자본, 자본/소득 비율의 개념을 제시하고, 세계적으로 소득과 생산의 분배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거시적인 시각에서 돌아본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인구와 생산 성장률이 어떤 변화 양상을 보였는지 상세히 분석한다.
제2부 ‘자본/소득 비율의 동학’(3~6장)은 자본/소득 비율의 장기적인 변화에 대한 전망을 검토하고, 21세기에 세계적으로 국민소득이 노동과 자본 사이에 어떻게 분배될지를 살펴보기 위한 예비적 단계다. 장기간에 걸쳐 가장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에서 시작해 독일과 미국의 사례를 거쳐 전 세계의 역사적 데이터를 간추려 자본주의의 동학을 예측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수행한다.
제3부 ‘불평등의 구조’(7~12장)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에 따른 불평등의 수준을 개관한 뒤 역사적 데이터를 확보한 모든 나라에서 전개된 불평등의 역사적 동학을 분석한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상속재산의 중요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연구하고, 21세기 초 세계적인 부의 분배를 전망한다.
제4부 ‘21세기의 자본 규제’(13~16장)는 규범적이고 정책적인 대안을 도출하기 위한 결론에 해당한다. 지금의 상황에 적합한 ‘사회적 국가’의 모습을 진단한 다음,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 대담한 대안을 유럽의 부유세, 중국의 자본 통제, 각국의 보호주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제들과 비교한다. 마지막으로, 공공부채라는 절박한 문제를 다루면서 공공자본 축적의 최적 수준에 대해 생각해본다.
(각 장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요약은 제가 공부하면서 정리한 http://blog.daum.net/hy2oxy/8692233 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피케티의 ‘글로벌 자본세’(부유세와 비슷함) 주장은 특히 영미권에서 패닉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그 이면에는, 강화되는 세습 자본주의는 능력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따라서 이에 대해 최소한 정확히 알권리가 있다는 피케티의 실제적 요구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불평등이라는 주제는 피케티 현상을 거치면서 사회·정치적 자본 담론으로 바뀌었고, 이미 존재하는 관련 통계자료의 투명한 공개 요구는 본격적인 자본 담론을 위한 ‘기본적인 권리’를 의미할 것이다. 

OECD 30여개 국가 중 가장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한 국가는 미국이다. 그런데 한국 역시 미국에 못지 않는 불평등 국가임은 많은 통계수치가 말해준다. 그럼에도 해외만큼 국내에서는 ‘피케티 신드롬’이 불지 않았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대다수 경제학자와 관변 연구소, 언론과 대학들이 기득권자들과 재벌대기업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득권자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진보 성향의 학자들의 경우도 상당수가 피케티의 문제제기를 한국에 끌어들이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장하성의 경우 최근 저서 <한국 자본주의>에서 피케티의 문제제기에 대해 “한국은 선진국과 사정이 다르다.”라며 누진적 소득세와 글로벌 자본세에 부정적이었다.

사실, 이 책이 현재 한국의 지배권력, 즉 극우보수세력과 재벌대기업, 그리고 사이비 전문가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동안 어떤 합리적이고 정당한 경제학 이론이나 논리를 가지고 경제정책을 펼치거나 주문하는 건 아니므로.
다만, 야당과 야당 성향의 언론, 전문가 그리고 보수적이지만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중간지대의 전문관료와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의 언어와 논리를 짜임새 있는 수준으로 갖고 있지 못한 진보진영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 2015년 4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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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한국 자본주의 1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서평] 장하성 저 <한국 자본주의 :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를 읽고 / 2014. 09., 724쪽, 헤이북스

저자는 한국 경제 전반의 전체적인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장하성은 책의 머리말에 2008년 이후 미국발 경제위기를 통해 그동안 지구촌을 주름잡았던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제기되었으며, 그 원인은 '지난 30년간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시장 근본주의가 세계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주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신자유주의’ 및 ‘시장 근본주의’는 정부개입 축소, 규제완화, 복지축소, 민영화, 세계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시장 근본주의가 지배한 결과 선진국들의 자본주의 체제는 소득 불평등과 계층적 양극화를 악화시켰고,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이 구조화되었으며,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증가하는 등 고용 조건 악화와 불안정 고용 증대라는 노동 구조의 악화도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제1부 ‘한국 자본주의 높아보기’에서 저자는, 한국 자본주의도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3無(고용,임금,분배) 성장이 지속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 더해 한국은 "선진국들에는 없는 문제들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것은 "극도로 불공정한 시장의 경쟁 구조,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기업의 과다한 내부유보금, 그리고 비정규직과 자영업 노동자 비중이 대안히 높은 불안정한 고용구조 등”이라 설명한다. 
또한 "선진국들이 복지로부터 후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제서야 복지를 시작하고 있으며, 선진국들의 전부가 시장을 규제하는 역할을 줄여가기 시작한 1980년대에 한국은 계획경제를 하고 있었고, 선진국에서와 같은 경쟁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도 다른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국의 자본주의 역사는 ‘30년’에 불과하며, 한국경제는 1990년대 중반까지 독재정권이 주도하는 ‘계획경제’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다름 아니었으며, 김영삼 정권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자본주의도, (자유)시장경제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역사가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서구 국가들의 경제 문제와 30년 밖에 안 된 한국경제의 문제는 다를 수밖에 없고 해법도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자로서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에 대해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에 따라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 개념의 핵심을 ‘사적 소유’라고 정의하면 한국 경제는 1948년부터, 아니 일제시대부터 (식민지형)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인정할 수 있고, (자유)시장경제 개념의 핵심을 ‘자유시장’으로만 정의하면 정부가 강제로 시장가격을 통제하지 않는 상품이나 서비스 시장이 존재했기 때문에 박정희 체제도 자유시장경제라 인정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중국을 자본주의로도 사회주의로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부분을 강조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시장경제나 계획경제는 제 1,2차 세계대전 후 서로 일부 장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어떤 체제를 헌법과 같은 제도에 규정하여 추구하느냐와 어떤 체제가 사회경제 전체를 주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 조건에 따라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사회민주주의도 수십 가지의 유형과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 경제와 한국 경제의 차이점’에 근거하여 장하성은 한국 내 보수우파의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비판하고, 동시에 시장경제를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는 일부 진보좌파의 시각을 비판한다. 서구에서 신자유주의가 탄생한 배경은 전후 복지를 늘리고 정부개입을 확대한 선진국 경제의 역사와 구조이었기 때문에 IMF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변화는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가 1940~80년대 한국 경제를 "자본주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한국경제에 자본주의적인 경제 제도나 요소도 많았듯이, 서구 경제체제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역시 한국 경제의 현실에 착안하여 도입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한국경제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이전 김영삼 정부 시절에 제도화된 금융자유화 등의 제도이고, 금융위기 이후 IMF와 미국 정부의 강제로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금융시장 확대 등과 같은 정부개입 축소, 규제완화, 복지축소, 민영화,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가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즉, 한국경제는 저자가 주장하는 ‘한국 고유의 구조적인 문제’와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얽혀버린 최악의 상태라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제2부 ‘한국 자본주의 따져 묻기’에서 저자는 1990년대 이후 사회활동을 펼치면서 국내에서 반대자들에게 부딪히며 비판받았던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자세하게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 몇 가지는 주주 자본주의와 '먹튀 논쟁', 그리고 삼성 지배구조 문제이다.
주주 자본주의의 경우, 주주 자본에 대한 이론과 개념을 설명하면서 주주 자본 이외의 부채 자본,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협동조합, 국가 자본주의 등을 소개하면서 주주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함과 동시에 현실적인 제약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000년대 ‘먹튀 논쟁’의 경우, 외완은행을 사고판 론스타와 소버린의 ‘SK 경영권 분쟁’ 그리고 상하이차의 ‘쌍용차 기술 먹튀 논쟁’을 사례로 제시한다. 그는 외환은행과 상하이차의 경우, 이들 기업이 부도위기에 처했을 때 채권단(정부가 주도하는 은행을 포함하여)과 다른 재벌기업 등이 외면한 상황에서 론스타와 상하이차가 인수하였고, 몇 년간 경영한 뒤에 론스타는 경영을 정상화시켜 이익을 실현시킨 뒤 팔았고 상하이차는 경영에 실패하여 손실을 보고 팔았음을 지적한다. 소버린의 경우, SK의 오너가 분식회계 등으로 기업을 부실하게 경영하여 도덕적인 지탄을 받아 국내 투자자에게 외면당한 상황에서 공개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였고, '경영권 분쟁’ 논란이 된 후 경영이 정상화되자 공개시장에서 주식을 팔아 이익을 보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론스타와 소버린이 주식을 매각할 시점의 외환은행과 SK의 주식가치는 국내 투자자에게도 동일하게 상승된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고, 론스타와 소버린 그리고 상하이차가 국내 기업을 경영하거나 경영권 논란을 벌이는 기간 동안 해당 기업의 임직원과 하청기업이 경제활동을 영위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2004년 삼성 지배구조 문제의 경우, 언론이 보도했던 삼성전자에 대한 적대적 M&A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M&A 논란이 발생한 배경에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감추려는 의도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통제받지 않는 권한을 가지면서도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으며, 누구도 경쟁적으로 도전할 수 없는 재벌 총수들의 경영”이라는 한국 재벌그룹의 경영권 방어 탐욕에 대해 비판한다.
제2부에서 주주 자본주의와 '먹튀 논쟁', 그리고 삼성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정보와 관점을 알게 되었다. 특히 ‘먹튀 논쟁’의 경우 론스타와 상하이차 등이 불법과 부정을 저질렀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이 책임이 더 크다는 것과 언론과 투자자들 역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주주 자본주의와 관련하여 한국의 법과 제도, 역학관계와 문화가 주주 자본주의 이외의 다른 대안에 대해 제대로 다루거나 시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주 자본주의 이외의 대안은 쉽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저자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수십 가지 모습이 있듯이, 회사 형태나 기업 형태, 그리고 소유 형태는 얼마든지 상상력을 발휘해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3부 ‘한국 자본주의 고쳐쓰기’에서 저자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사회민주주는 한국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평가하면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로 고쳐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에서의 소유는 ‘정의로운 소유’가 되어야 하고, 무한경쟁은 자본주의를 몰락시키기 때문에 '정의로운 경쟁'이 필요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분배의 공정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유 지상주의자 로버트 로직의 이론에 근거하여 한국의 자본주의는 ‘정의롭지 못한’ 체제라고 말한다. 한국 현대사와 자본주의의 역사는 정의롭지 못한 소유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재벌대기업은 사업 낚아채기, 일감 몰아주기, 부당 내부 거래 독과점 담합, 원청기업의 ‘갑질' 등 불공정한 경쟁을 일삼았다. 한국 경제는 재벌 편중과 재벌 양극화,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과 미로 같은 순환 출자 등으로 ‘구성의 모순’에 빠져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한국 경제의 미래일 수 있지만,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그리고 재벌 2세, 3세에 매달린 방식은 한국 경제의 미래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첫째는 함께 잘사는 것이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새로운 가치라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해낼 구체적인 정책들을 마련해야 하며, 셋째는 그러한 정책들을 실제로 시행할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는 사회적 합의의 방식을, "가치와 목표를 지닌 정당이 집권하는 것"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 그리고 실천의 문제인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시장과 공공의 경계를 다시 정립하고,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원칙을 정해야”한다. 
"구체적인 정책들 중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주제는 ‘분배’다. "분배 정책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고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경제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인 것이다. 그리고 시장의 구조와 질서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경쟁 정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더불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포용적 성장 정책이 복지 정책, 조세 정책과 연계되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제구조와 분배에 관한 정책의 틀이 만들어지면 이를 뒷받침할 산업구조, 기업구조, 노동구조, 금융구조, 교육구조를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구조에 부합하도록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구체적인 정책들이 필요하다.”

그는 가장 중심적인 과제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정책과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정책은 기업의 이익 중에서 가계로 분배되는 몫을 키우고, 임금격차를 줄이며, 소득분배정책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의 비생산적이고 막대한 내부 유보금에 대해 '초과 내부보유세'를 물리고, 비정규직법을 개정(업무 존속기간을 기준한 정규직 전화제)하며, 소득세와 법인세의 누진성을 강화하고,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는 소유 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이 없는 경영 형태가 바뀌어야”한다. 재벌의 소유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비업무용, 무수익 자산의 순환 출자를 금지시키고 지주회사나 내부회사 제도 또는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무 매수 제도를 도입해야 하고, 경영 형태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이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집중 투표제를 도입하거나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를 제도화한다.
장하성은 토마 피케티의 ‘글로벌 자본세’가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효용성이 지극히 낮다고 주장한다. 그가 반대하는 논거는 피케티 이론의 핵심인 ‘자본수익률(r) > 성장률(g)’ 공식이 한국 경제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소득 불평등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세로 정부 수입을 늘려서 재분배하는 정책보다는 적극적인 노동정책이나 임금정책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즉 앞에서 주장한 ‘초과 내부유보세’와 ‘비정규직법 개정’ 그리고 재벌대기업에 대한 증여세와 상속세를 강화하거나 현행법이라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우선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동의하나 피케티의 글로벌 자본세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저자는 피케티가 자본수익률을 구한 근거와 계산법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은채 자료와 계산을 임의로 선택하여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케티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이미 글로벌 자본세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금융정보와 거래의 투명성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전제를 제시했다. 또한 스위스 비밀금고나 버진아일랜드와 같은 조세피난처에 수백 조원에 달하는 한국인의 탈세금액이 조성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글로벌 자본세는 ‘나중에’ 도입할 게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 동시에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수십 조원에 이르는 자원비리가 저질러졌는데, 이를 명확하게 조사하고 불법거래를 차단하고 세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자본세 도입을 위한 사전 체계와 제도와 필수적일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장하성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은 없다”고 단언한다.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졌던 북유럽 국가의 조건과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조건이 판이하게 다르고(스웨덴은 정부 및 재벌을 상대로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전국적 노동조합이 존재했다. 노조 가입률이 79%나 되는), 한국의 노사교섭 권한은 단위 노조가 가지고 있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괴리가 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자로서 이 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재 정부가 운영하는 ‘노사정위원회’는 아무런 제도적, 정책적 뒷받침도 없이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재벌과 한국노총의 선전도구로만 이용되고 있다. 언론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를 통해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에게 굴복과 좌절을 강요한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인수위에 참여했던 경험을 근거로 하여 “한국 사회가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에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면, 개개인의 이념적 좌표를 넘어서 이를 현실화할 정책을 만들 역량 있는 전문가들은 한국에 많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가 소개하고 설명한 정도로는 " 개개인의 이념적 좌표를 넘어서 이를 현실화할 정책을 만들 역량 있는 전문가들은 한국에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저자가 참여했다는 김대중 정부 인수위원회는 미국 정부와 IMF, 그리고 미국 금융자본의 이익만을 보장해주었고, 한국의 경제 구조를 제대로 개선시키지는 못한채 신자유주의 정책만을 강요했고, 노동자들과 농민들, 그리고 자영업자들의 희생만을 가져왔다. 전반적으로 개선되던 한국의 모든 경제지표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IMF 금융위기 이후였다. 저자 역시 최근 15년 동안의 한국 경제 악화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는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분야가 ‘정치’인데, 지금의 한국 정치 구조와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을 고려하면 희망적이지 않다고 평가한다. 현재 국회와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제적 계층을 대변하고 있지 않으며, 최근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 결과가 기존 정당의 혁신이나 대안 정당의 출현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급 배반 투표’와 ‘기억 상실 투표’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에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될 희망은 민주주의에 달려 있다”면서 “자본이 아닌 노동으로 삶을 꾸려가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계급 배반 투표’와 ‘기억 상실 투표’를 한다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희망은 있다.”는 문장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저자의 결론은 정치인들과 기득권층, 그리고 학자들의 책임을 유권자에게 전가하는 느낌이 들어 조금 불편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조선시대의 무능하고 부패한 양반과 지식인들이 식민지 시대에 대거 일제에 영합하고 친일파로 변절한 모습, 해방 이후 미군정과 친일파와 수구폭력배에 굴복하고 야합하는 모습, 한국전쟁 전후 반공 빨갱이 사냥을 통해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수탈한 과정, 이승만의 폭력과 박정희 군사독재 체제,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체제,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 민간정부 시절 권력과 자본에 대한 야합과 변절의 모습을 겪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권력과 자본에 결탁한 언론과 지식인, 정치인과 관료, 법조인과 문화예술인이 있었다. 최근에는 멀쩡한 소수정당이 강제로 해산당하기까지 했다. 하루종일 식당과 관공서와 은행과 터미널에서는 쓰레기 종편과 어용방송이 공갈과 협박을 일삼고, 기레기 언론은 거짓말과 무한경쟁만을 주입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조롱과 환멸도 다반사다. 
그런 과정과 현실을 보아온 유권자들이 걸핏하면 종북이니 좌파니 매도당하는 진보정당이나 새로운 정치세력을 지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 세끼 먹고 살기도 빠듯한 저소득층이 민주정부라고 등장한 후 오히려 더 먹고살기가 빠듯했던 시절에 남는 것은 ‘투표 포기’ 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가 문제고, 민주주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십분 공감한다. 그러나 어떤 정치, 어떤 정치인, 어떤 민주주의인지 보여주어야 하고 함께 경험해야 한다. 야당부터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대화하고 함께 모색해야 한다. 장하성이라는 학자부터 스스로 과거의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상대방을 포용해야 한다. 새누리당을 포용하기 이전에 다른 야당, 다른 진보정치세력, 시민사회세력, 노동조합, 농민회, 서민들과 대안을 모색하고 협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 책이 정치(국회의원 자리)를 위한 포석이 아니라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한국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의 탄생과 변화, 성숙과 제도 변천에 깊숙히 개입해왔고 지금도 개입하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 구조적인 문제 등을 다루지 않은 것은 크게 유감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절반만 다루었다는 느낌이다. 대외무역이나 대외관계는 이념이나 국적이 없다고 말하려나? 상품이나 서비스는 국적이 없지만, 대외무역과 대외관계는 국적이 있다. 미국 정부도 어떤 정부도 자국의 기업, 자본,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다른 나라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제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중동분쟁이 끊이지 않고, 무역보복이니 무역제재니 하는 갈등이 생기지 않나?

[참고 정보]

-‘고용 없는 성장’ 한국 1위 망신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1
-수출대기업 의존 커져 ‘고용없는 성장’ 심화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35405.html
-실질임금증가율, 경제성장률 밑돌아…'임금없는 성장' 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0/15/0200000000AKR20141015125100002.HTML
-분배 없는 성장은 불가능하다 http://samgukji.net/won/link/?item_no=598199
-상위 10%가 소득 절반 차지…드러난 소득양극화의 민낯 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11/0200000000AKR20141211089100002.HTML?input=1195m
-상위 10%가 전국 토지 '땅값기준' 72% 소유. 토지 편중, 땅값 올리고 분양값도 올려 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243757.html
-IMF 이후 17년, 갈수록 악화되는 비정규직 상황 http://www.kukey.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70
-비정규직 고용의 질 '악화 일로'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431
-기업소득 늘 때 가계소득 줄었다···‘줄어든 일자리, 자영업 몰락’ 원인 @newsvop http://www.vop.co.kr/A00000773270.html
-가계빚 68조 늘 때, 재벌들은 37조 더 쌓았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83560.html
-'유리지갑'의 비명 .. 법인세 2조 늘 때 소득세 11조 증가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id=20150206023106958
-'낙수효과?', 성장 대신 불균형만 키웠다 http://durl.me/8ia4ec
-1,000조원의 사내유보금, 미국·일본·대만처럼 과세하라 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817
-˝한국 기업 생태계, 정글만도 못해… 대기업 CEO는 창조할 능력 없다˝ http://chosun.com/tw/?id=biz*2013032102603
-2014년 대기업 집단 내부거래 현황 정보 공개 www.ftc.go.kr/news/policy/competePrint.jsp?news_div_cd=1&news_no=2283
-"은행서 저축銀까지…금감원 출신 감사직 점령" http://www.dt.co.kr/contents.htm?article_no=2010030102019922601041 @todaydt
-경찰 → 보험, 검찰 → 대기업 '취업커넥션' 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795012&ctg=1200
-[송형근의 비즈N조이] 대기업 담합, 산업 생태계 독과점 폐해크다 news.tf.co.kr/read/economy/1334885.htm
-대기업 문어발식 확장 여전 http://news.kbiz.or.kr/news/articleView.html?idxno=27770
-[TF재계 10대 이슈&사람] '꼴불견' 대기업 ‘갑질’, 올해도 '빈축' news.tf.co.kr/read/economy/1466019.htm
-국감 &quot;삼성전자, 국내투자 미비…창조경제 역행&quot; http://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81960

[ 2015년 4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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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완역 전습록 신선명문동양고전대계 36
왕양명 지음, 김학주 옮김 / 명문당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서평] 왕양명(王陽明) 저, 김학규 역 <신완역 전습록(傳習錄)>을 읽고 / 2005. 02., 752쪽, 명문당

《전습록(傳習錄)》은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중국 명나라의 철학자 왕수인(王守仁 호는 陽明), 즉 왕양명(王陽明)의 제학설과 교계(敎戒) · 서간 등을 그 제자들이 편집한 것이다. 역자는 중국 사부총간(四部叢刊)의 <왕문성공전서 王文成公全書> 38권을 기준으로 주역(註譯) 했다. 양명사상(陽明思想)을 파악하는 데는 《왕문성공전서》 전체를 숙지해야겠지만 《전습록》을 정성껏 읽으면 왕양명의 사상은 대체로 이해된다고 전해진다.
"전습(傳習)"이라는 말은 《논어(論語)》 〈학이(學而)〉 제1(第一)의 "전(傳)한 바를 익혔(習)는가"에서 나온 것이라 하는데, 즉 이 명칭은 스승인 왕양명으로부터 전수받은 학문을 제자들이 잘 체득하여 익히고 있는지 어떤지를 스스로 반성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왕양명의 학문은 주자학(朱子學)에 대한 반성 내지는 육상산(陸象山) 학문의 계승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는 주자학의 역사와 양명학 태동에 대한 주역자의 분석과 평가다.
"남송 시대 주희는 한당(韓當, ? ~ 227년)의 훈고(訓詁)에 힘쓰던 학풍을 바꾸어 공자와 맹자의 전통을 이어받고 그들의 정신을 밝히는 것을 학문으로 목표로 삼아 대성시켰다. 주자학은 육조(六朝, 229년 ~ 589년) 이래로 도교와 불교에 의하여 다듬어진 철학적인 사유를 끌어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주의 근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인생과 사회도덕을 논하는 광대한 규모로 공자사상을 확장시키고 있어서, 그 논리체계는 유가사상의 장관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송으로부터 원나라, 명나라를 통하여 주자학은 관학(官學)으로 학계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규모의 광대함은 오히려 학문의 통일을 잃게 하였고, 정연한 논리는 끝에 가서는 관념의 유희로 전락하여 번잡한 형식주의로 빠지는 경향이 생겼다. 그리하여 이미 주자와 같은 시대에 육상산은 ‘마음이 곧 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여 주자의 형식주의적인 학문을 반대하였다.”
“왕양명은 바로 육상산의 학문을 계승하여 직설적이고도 간단명료한 학문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리하여 그 학문을 ‘육왕(陸王)의 심학(心學)’이라 세상에서 부르게 된 것도 그들이 내면적인 마음의 수양에 학문의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다만 주역자는 왕양명의 학문이 단번에 깨달아 이루어진 게 아니라 일생을 두고 여러 단계로 발전을 거듭하였다고 평가한다.

<전습록> 한 번 읽고 내가 ‘양명학’을 알았다고 어디가서 설명할 수 있는 수준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전습록>을 시작으로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된 셈이다.

주역자는 왕양명의 학문의 요점을 여섯 가지, 즉 심즉리(心卽理), 격물치지(格物致知), 지행합일(知行合一),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사상마련(事上磨鍊), 양지(良知)라고 정리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여섯 가지가 아니라 심즉리, 지행합일, 치양지(致良知), 세 가지로 설명하기도 한다.

심즉리(心卽理) : ‘마음이 곧 이’라는 것은 이미 육상산이 주장한 이론이다. 왕양명은 그것을 “마음이 곧 이이다. 천하에 또 마음 밖의 일이나 마음 밖의 이(理)가 있겠느냐?” “마음 밖에 이가 없고,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로 발전시켰다. 주자는 마음과 이와 물건의 이를 독립시켜 각기 다른 것으로 보았으나 왕양명은 그러한 안팎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가 울지만 마음이 없다면 아름다운 빛깔도 고운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즉 “마음이 있는 곳이 바로 사물이 된다”, “모든 사물의 이치가 다 갖추어져 있는 게 마음의 본성이다”라는 주장이다. 주자는 ‘사물의 본성이 바로 이’라고 했지만 왕양명은 ‘본성이 바로 이’라고 주장한다.
=> 현대적인 상식이나 철학에 비추어보면 인간의 존재와 관계 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이나 현상을 자신(개인)이 보고 듣고 느끼고 겪어야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다만, ‘성즉리’라는 개념으로 주자학 또는 성리학(性理學)이 관벽학문과 고시학문으로 전락해버린 당시 시대상황을 타개해버리기 위해서였다는 취지는 고려할 만 하다. 
당시 주자학은 왕들의 왕권 강화의 재료로써 전락됐다. 그래서 주자학은 도덕적인 측면이 없어져 갔다. 그 도덕윤리를 다시 되살리려는 노력을 한 학자가 바로 왕수인이다. 그는 당초 도덕적인 측면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시도하는 학자였으며. 그래서 왕수인도 주자학을 믿었지만 사회가 변화를 보이지 않자 결국 그는 주자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 : ‘격물’과 ‘치지’는 원래 대학(大學)의 팔조목(八條目) 중 두 조목으로서 주자도 매우 중시한 것이다. 주자는 ‘격(格)’을 ‘이르는 것[至]’이라고 보고 ‘물(物)’을 ‘사물의 이치[理]’라 풀이하였다. ‘치(致)’는 ‘추궁하여 얻는다’는 뜻으로 ‘지(知)’는 ‘지식’으로 보았다. 따라서 주자의 ‘격물치지'란 “만물에 대하여 그 이치를 추구하여 그에 관한 지식을 모두 얻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왕양명은 ‘격’이란 ‘바로잡는다[正]’로, ‘물’이란 ‘일[事]’이라 풀이하고, ‘치’는 ‘이르는 것[至]’이며 ‘지’란 ‘참된 앎’ 곧 ‘양지(良知)’라 풀이하였다. 따라서 왕양명의 ‘격물치지’는 “모든 일을 올바르게 하고, 참된 앎을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는 “내 마음의 양지를 모든 사물에 이르게 하면 모든 사물은 올바른 이(理)를 얻게 된다. 내 마음의 양지를 이르게 하는 것이 치지(致知)이고, 모든 사물이 올바른 이를 얻게 하는 것이 격물(格物)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성의(誠意)’나 ‘정심(正心)’, ‘수신(修身)’도 모두가 ‘격물’과 같은 것이 되며, 이것은 마음의 수양을 통하여 깨닫는 올바를 이치를 실천하여야 하는 적극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게 된다.

지행합일(知行合一) : 따라서 왕양명에 의하면 ‘치지’란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앎을 실현하는 것’이 된다. 그는 “앎이란 행동의 시작이며, 행동이란 앎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였다. 음식을 먹어보아야 참맛을 알고 효도를 행해야만 참 효도를 알며, 아픔도 자기가 경험을 통하여 참된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 지인들과 세미나를 하면서 양명학의 ‘지행합일’이 대해 현대 한국인들이 상식 수준으로 알고 있던 개념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상식으로 ‘지행합일’은 보통 “제대로 알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즉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 학문의 목적은 성인이 되는 데 있고, 성인은 ‘천리를 순수히 보존하고 인욕을 버리는 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송대 이래 중국학자들의 이상이었다. 왕양명이 학문의 실천 원칙으로 내세운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버린다’는 것도 이것을 계승한 것이다. 천리와 인욕의 구별을 처음부터 부정한 육상산과는 다르다고 평가된다. 이런 점에서는 왕양명이 육상산보다는 주자학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보는 게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그러나 ‘마음이 곧 이’라는 왕양명의 전제와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버린다’는 공부방법이 모순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주자는 ‘본성이 곧 이’이기 때문에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버린다’는 방법과 조화가 되지만, 왕양명의 마음에는 감정이나 욕망이 포함되어 ‘마음이 곧 이’가 되기 때문이다.

사상마련(事上磨鍊) : 왕양명은 한때 제자들이 세상의 공리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좌하여 마음의 수양을 하도록 권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자들이 움직이기를 싫어하고 게으름만 피우게 되어 유가의 본시 성격을 벗어나는 경향이 생겼다. 그리하여 만년에는 직접 일을 통하여 올바른 마음가짐과 일처리를 해나가도록 이른바 ‘사상마련’을 주장하게 된다.
‘사상마련’이란 ‘모든 일이나 모든 기회를 수양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환경이나 개인의 욕망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지행합일’과도 통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길을 가거나 앉아 있거나 언제 어느 곳이건 수양의 장소가 아닌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양지(良知) : ‘양지’는 만년에 이르러 왕양명 학설에 중심을 이룬 것이다. 그는 ‘양지’란 두 글자는 "실로 옛부터 성인들이 서로 전하여 온 한 점의 골수이다”고 말하면서 양지를 깨우쳤던 기쁨을 ‘통쾌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발을 움직여 춤을 추었다’고 말한다. ‘양지’란 <맹자(孟子)>의 진심상() 편 등에 보이는 것으로서 사람들이 본시부터 지니고 있던 진실한 지혜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양명에 이르러서는 가장 진실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바로 마음의 본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어느 경우에는 양지란 바로 천리에도 통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왕양명은 학문을 한다는 것은 이 ‘양지를 이루게 하는 것(致良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왕양명의 ‘양지’는 진실한 시비 판단의 기준이 될 뿐만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생성한 본체와도 비슷한 것이다. 그는 ‘양지란 바로 조화이 정령이다’고 하였고, 또 ‘풀 나무나 기왓장 돌 같은 것도 사람의 양지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도 말하였다. 
=> 그래서 왕양명의 ‘양지’는 관념론이나 주관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지’란 바로 ‘도’이며 ‘하늘’이라고도 한 것을 보면 개인을 초월한 자연의 섭리 같은 객관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왕수인의 ‘양명학’ 및 사상과 관련하여 좀 더 공부해야 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왕수인의 삶일 것이다. 이 책이나 인터넷에서는 왕수인이 문무를 겸비한 사상가이자 정치가이자 군인이며, 명나라의 위기를 여러 번 구한 충신이었다고 평가하지만, 다른 평가도 존재한다. 강신주는 그의 책 <철학 VS 철학>에서 왕수인을 체제옹호자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왕수인이 명나라 조정의 명령을 받아 진압한 여러 외적의 침입, 반란이나 ‘도적’은 실제 먹고 살기가 고단했던 명나라 농민들의 난과 봉기도 여러 차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양고전을 공부하겠다며 겁 없이 전습록에 도전한 것을 후회했다. <전습록>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아니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예기》(禮記)나 주자(周子)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기》(禮記)나 《대학》(大學), 《중용》(中庸)이라는 고전이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를 제자들과 후학들이 해석한 것이니 내가 그동안 한두 번 읽은 <논어>와 <맹자>의 기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동양고전에 대한 학습이 부족해서인지 주역이나 한글 해설이 매끄럽지 않고 설명도 분명치 않게 느껴졌다. 물론 전적으로 동양 고전을 직접 읽고 분석하여 주역할 능력도 되지 않는 국내 학자의 일본책 번역서를 읽은 나의 불찰이다.
혹시 양명학을 공부하고 싶거나 <전습록>을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정인재가 번역한 <전습록 1,2>(2007 청계)나 김동휘의 <전습록 : 조선이 거부한 양지의 학문>(2010 신원문화사)를 추천한다. 양명학이나 <전습록>을 개략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독자는 ‘수유너머’ 고미숙씨기 기획한 <낭송전습록>(2014 북드라망)이 적당할 것이다.

[ 왕양명의 생애 ]

왕양명은 여요(餘姚-현재의 저장 성에 속함)에서 태어났다. 1481년 10세 때에 진사에 1등으로 올랐다. 11살 때 아버지를 따라 북경으로 가던 도중 금산사에서 시부를 지었는데, 그 지혜가 타인을 놀라게 했다. 17살 때 부인 제씨(諸氏)를 남창(南昌)에서 맞이했는데, 혼례날 집을 나가 우연히 근처 산중에서 도사(道士)와 양생설을 논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고, 앉은 채로 밤 새우기도 했다. 
21세 때는 향시에 합격했으나 회시에는 낙방하였다. 수도 북경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주자가 남긴 책을 구해서 공부했는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그것 나름의 이치(理)가 있으니 그 이치를 끝까지 캐물어야 한다(格物窮理)"는 주자의 말을 실천하겠다고 관서에 있는 대나무를 7일 동안 바라보았지만 병이 들어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주자학을 불신하고, 환멸감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28세에 회시에 합격하여 비로소 관리가 되었다. 공부(工部)를 거쳐 이듬해에 형부 운남 청리사주사가 되었다. 30세에는 강북에서 형벌을 받은 죄수를 심의, 기록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 사이에도 승방을 방문하기도 하고, 도사에게 도를 묻기도 했다. 31세 때 병을 이유로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해, 양명동에 집을 짓고 도가의 도인술을 수련한다. 도교와 불교의 허망함을 깨닫고 정신이 안정된 양명은 다음해에 항주의 서호에서 요양하였고, 33세에 북경에 돌아왔다. 이듬해에는 동지를 모아놓고 성학(聖學)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정치에 연루되어 35세 때에 귀주(貴州) 용장(龍場)에 유배되었다.

45세부터 3년 동안 강서, 복건의 각지에서 설치던 무장 도적떼를 토벌하고, 영왕(寧王) 신호(宸濠)의 난을 평정하는데도 공을 세웠다. 무종이 죽고 세종이 즉위하자 왕수인은 신건백(新建伯)에 봉해지고, 남경병부상서(南京兵部尙書)를 겸하게 되었다. 이 때 나이 50세였다. 이듬해에 수인의 아버지가 죽어 상을 치르게 되었는데, 3년상을 마친 뒤에도 복직하지 못하고 56세까지 고향에서 아무 임무도 없이 지냈다. 그 사이에 양명은 양지(良知)의 학설을 수립했고 제자들에게 이를 가르쳤다.  
왕수인의 나이 56세가 되던 5월에 광서의 도적을 토벌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7월에는 팔색단등협의 이적을 토벌했는데, 그 소굴을 소탕해서 다년간의 우환을 한방에 제거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타지에서 정무를 행하면서 건강이 악화된 그는 광동성 경계에서 광서로 들어가던 도중에 숙사[宿舍]-숙소-에서 타계했다. 가정 7년(1528년) 10월 29일, 그의 57세의 나이였다. 유언은 "이 마음이 환히 밝은데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였다고 한다.

[ 2015년 3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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