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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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저, 장경덕 역 <21세기 자본>을 읽고 / 2014. 11., 820쪽, 글항아리

한동안 ‘피케티 신드롬’ 또는 ‘피케티 현상’이 국내외 언론과 학계를 뒤흔들었다. 미국, 영국,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피케티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피케티는 프랑스의 경제학자로 파리경제대 교수이다. '피케티 현상'은 토마 피케티 교수의 저서 <21세기 자본>을 통해 주장한 자산과 소득불균형의 역사적 구조, 양극화와 불균형의 미래에 대한 독특한 분석과 해석에 열광하는 분위기를 말한다.

피케티는 ‘부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경제학과 경제학자가 인류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학자다. 대다수 사회과학자나 경제학자들이 ‘정치적 중립’이나 ‘경제과학’이라는 핑계를 대며 겉으로는 인류사회의 진보나 개혁에 등을 돌리고, 속으로는 정부부처나 대기업들에게 연구비를 받아 정부정책이나 대기업의 논리를 제공하는 것에 비해 피케티는 ‘인류를 위한 경제학’ 그리고 ‘대다수 민중을 위한 경제학’을 내세운 셈이다.
그는 “우리는 장기적으로 부의 분배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관해 무엇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18세기 이후 부와 소득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관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으며, 그로부터 21세기를 위해 어떤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의 가설은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자의적이고 견딜 수 없는 불평등을 자동적으로 양산하게 된다.”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능력주의의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침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개방성을 유지하고 보호주의적이며 국수주의적인 반발을 피하면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고 공동의 이익이 사적인 이익에 앞서도록 보장할 수 있는 방법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들을 제안하고자 이 책을 출간했음을 서문에서 밝힌다.

책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세하고 확실한 수치와 생동감 넘치는 사례로 자본주의의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오랜만에 사회과학 논쟁의 매뉴얼 같은 책이 등장한 셈이다. 경제학자와 석학들은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기 시작한 증거로 이 책을 들고 있다고 한다. "피케티 덕분에 ‘인권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피케티는 우선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오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그는 자본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6개국(영국,프랑스,독일,스웨덴,일본,미국 등)에서 과거 300년이 넘도록 이어진 소득 불평등의 근본 원인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높(았)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즉,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임대료, 배당, 이자, 이윤,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에서 얻는 소득 등)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임금, 보너스 등)을 웃돌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가 제시하는 통계자료를 들여다보면,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14~1945년에 급격히 떨어진 이후 1980년대부터 다시 증가해 최근에는 19세기 수준의 턱 밑까지 도달했다. 1914~1945년에 잠시 상대적으로 평등이 높게 유지되었던 것은 단지 전후 복구를 위해 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부유층의 상속된 부에 상당한 정도의 과세를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21세기에 부의 분배는 양극화되고, 상속재산으로 자본이 집중되는 ‘세습자본주의’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습 자본주의’가 도래하면 사회와 국가의 파탄과 극심한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대담한 대안을 내놓는다. 극소수의 최고 소득에는 현 수준부터 훨씬 더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과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그것이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불러일으킨 숱한 논쟁의 씨앗은 부의 불균형에 관한 경제학적이고 역사적인 분석보다는 이 파격적이고 이상적이기도 한 대안 제시다.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으로 부가 집중되는 메커니즘은 재능이나 노력보다는 태생에 따라 삶과 사회가 좌우되도록 할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능력주의를 근본적으로 잠식할 것이다. 피케티는 스스로 자본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으며,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이루기 위한 적절한 제도와 정책들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피케티의 분석과 제안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것은 그의 뛰어난 연구 결과 때문이다. 그와 그의 연구팀은 300년에 걸친 20개국 이상의 역사적 데이터를 토대로 불평등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았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치밀한 실증연구라는 점에서 기존의 주류 경제학 저서가 지향하는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고찰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난다. 
저자가 활용하는 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소득의 분배와 그 불평등을 다루는 자료가 첫 번째요, 부의 분배 및 부와 소득의 관계를 다루는 자료가 두 번째다. 이 둘은 부의 분배의 역사적 동학과 사회의 계층구조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책의 핵심 자산이다. 자본수익률이 끊임없이 감소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19세기 마르크스의 <자본>의 예언과, 경제성장 초기단계에서 발생한 경제적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진전된 발전단계에서는 완화되고 안정될 것이라는 쿠즈네츠의 이론까지 논파한 뒤, 새로운 자본주의의 동학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실용적이고 역사적인 접근방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피케티의 문제제기와 제안이 합리적이고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하고 장악한 자본가들과 그들과 유착되어 있는 언론, 정치가, 관료, 학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분배와 불평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합리적이다. 1914~1945년 영국이나 미국이 앞장서서 누진적 과세를 추진한 배경에 전쟁과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20세기 말 사회주의를 표방한 소련이 해체되고 미국의 독점과 독식이 이어지면서 자본가들과 기득권자들을 위협하는 요소가 사라졌다.
피케티 자신도 책 속에서 인정했듯이, ‘누진적 소득세’나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는 상당 기간 동안 실현가능성을 점치기가 매우 어렵다. ‘글로벌 자본세’가 가능하기 위해 부와 소득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투명성을 갖추는 것만도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피케티의 책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결국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제기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가져오는 소유구조’의 문제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이 책은 4부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소득과 자본’(1~2장)은 이 책의 기본 개념들을 소개한다. 국민소득, 자본, 자본/소득 비율의 개념을 제시하고, 세계적으로 소득과 생산의 분배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거시적인 시각에서 돌아본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인구와 생산 성장률이 어떤 변화 양상을 보였는지 상세히 분석한다.
제2부 ‘자본/소득 비율의 동학’(3~6장)은 자본/소득 비율의 장기적인 변화에 대한 전망을 검토하고, 21세기에 세계적으로 국민소득이 노동과 자본 사이에 어떻게 분배될지를 살펴보기 위한 예비적 단계다. 장기간에 걸쳐 가장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에서 시작해 독일과 미국의 사례를 거쳐 전 세계의 역사적 데이터를 간추려 자본주의의 동학을 예측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수행한다.
제3부 ‘불평등의 구조’(7~12장)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에 따른 불평등의 수준을 개관한 뒤 역사적 데이터를 확보한 모든 나라에서 전개된 불평등의 역사적 동학을 분석한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상속재산의 중요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연구하고, 21세기 초 세계적인 부의 분배를 전망한다.
제4부 ‘21세기의 자본 규제’(13~16장)는 규범적이고 정책적인 대안을 도출하기 위한 결론에 해당한다. 지금의 상황에 적합한 ‘사회적 국가’의 모습을 진단한 다음,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제안한다. 그리고 이 대담한 대안을 유럽의 부유세, 중국의 자본 통제, 각국의 보호주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제들과 비교한다. 마지막으로, 공공부채라는 절박한 문제를 다루면서 공공자본 축적의 최적 수준에 대해 생각해본다.
(각 장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요약은 제가 공부하면서 정리한 http://blog.daum.net/hy2oxy/8692233 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피케티의 ‘글로벌 자본세’(부유세와 비슷함) 주장은 특히 영미권에서 패닉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그 이면에는, 강화되는 세습 자본주의는 능력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따라서 이에 대해 최소한 정확히 알권리가 있다는 피케티의 실제적 요구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불평등이라는 주제는 피케티 현상을 거치면서 사회·정치적 자본 담론으로 바뀌었고, 이미 존재하는 관련 통계자료의 투명한 공개 요구는 본격적인 자본 담론을 위한 ‘기본적인 권리’를 의미할 것이다. 

OECD 30여개 국가 중 가장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한 국가는 미국이다. 그런데 한국 역시 미국에 못지 않는 불평등 국가임은 많은 통계수치가 말해준다. 그럼에도 해외만큼 국내에서는 ‘피케티 신드롬’이 불지 않았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대다수 경제학자와 관변 연구소, 언론과 대학들이 기득권자들과 재벌대기업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득권자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진보 성향의 학자들의 경우도 상당수가 피케티의 문제제기를 한국에 끌어들이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장하성의 경우 최근 저서 <한국 자본주의>에서 피케티의 문제제기에 대해 “한국은 선진국과 사정이 다르다.”라며 누진적 소득세와 글로벌 자본세에 부정적이었다.

사실, 이 책이 현재 한국의 지배권력, 즉 극우보수세력과 재벌대기업, 그리고 사이비 전문가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동안 어떤 합리적이고 정당한 경제학 이론이나 논리를 가지고 경제정책을 펼치거나 주문하는 건 아니므로.
다만, 야당과 야당 성향의 언론, 전문가 그리고 보수적이지만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중간지대의 전문관료와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의 언어와 논리를 짜임새 있는 수준으로 갖고 있지 못한 진보진영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 2015년 4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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