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장정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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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장정일 저 <장정일의 공부>를 읽고 / 2015. 5., 393쪽, RHK


이 책은 서점에 가득한 기존의 인문교양서와는 다르다. 대중이 가지고 있는 무비판적인 사유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도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진짜 독서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불혹의 나이까지 뜻도 내용도 없는 ‘중용’이라는 허상에 빠져 있었으며, 자신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이 빠져 있는 ‘중용’, 그리고 ‘양비론’이라는 태도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는 ‘무지’에 불과하다고 질타한다. 

“나는 언제나 '중용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 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5쪽)


또한 자신이 무지한 이유를 시인을 예로 들면서 전문화된 근현대의 직업군들이 다양하고 진지한 공부를 하지 않은 채 섣불리 다른 사안에 대해 판단하고 나서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사실 그의 고백은 시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문학가, 법조인, 경제학자, 의료인, 교수, 과학자 등 지식인, 지성인을 자처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무지의 근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상급 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는 결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때 내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시인은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없는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蘭)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6쪽)


문학가로 살며 정치나 사회 이슈에 큰 관심이 없던 장정일은 2002년 대선 당시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국 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궁금증을 풀고자 23가지 화두를 정하고 관련 책들을 섭렵하면서 사유의 확장을 시도한 결과가 바로  이 책 <장정일의 공부>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23가지 화두는 모두 우리의 의식과 참신성과 창의력을 짓누르는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상한선을 찾아서]에서 그는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덕일),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 2>(김인호/박훤), <서얼단상>(고종석) 등을 아울러 읽으며 인조반정은 잘못된 쿠데타였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군약신강의 문치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독재자를 갈망하게 된 것은 아닌지 묻는다. 송시열의 북벌론이 허구이듯 우리나라 보수 우익이 국부로 떠받드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도 사기극이라고 말한다. 이승만의 사기극은 박정희-전두환을 거치면서 2016년 현재 ‘북한붕괴’, ‘종북타도’, ‘종북세력’, ‘통일은대박’이라는 사기극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 2>에서 발췌한 '한국 주류의 기원'에 대한 다음 문장으로 글을 끝맺는다.

“오늘까지도 일제와 영합했던 서인 계열의 척족들이 일부 기업의 대주주가 되어 있다는 현실은 권력과 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과 혐오의 근원을 짐작케 한다.”(44쪽) 


그리고 저자는 [교양; 지식의 최전선]에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지적 능력 저하 현상과 대학의 교양 교육 부재 문제를 짚어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다치바나 다카시), <두 문화>(C.P. 스노우), <문학의 사회학>(에스카르피), <통섭: 지식의 대통합>(에드워드 윌슨) 등을 함께 읽고 대학의 교양 교육 강화, 졸업정원제 실시, 과학 공부 장려, 대학의 독립성 확보 등의 방안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에서는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깊이 알기 위해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안인희), <나치 시대의 일상사>(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오인석) 등을 탐독한다. 저자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1차 세계대전의 참여를 놓고 분열된 것이 결국 나치의 암흑시대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는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 한 대목을 읽고서 (이념의 변별 없이 당명만 교체하는) 우리 정당의 계통발생 혹은 자기 복제를 떠올린다. 그는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 봤자 새로운 미래와 희망이 열리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이들 정당이 이념이 아니라 지역적 지지 기반과 지역주의 성향에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시민들이 나치에 투표한 까닭을 레드 콤플렉스(=붉은 공포)에서 찾고서는, 자신에게도 레드 콤플렉스가 내면화돼 있으며 그것이 질서와 안정에 대한 중산층의 끈질긴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과두정이 온다]에서는 <제국의 몰락>(엠마뉘엘 토드)을 통해 21세기 미국이라는 제국을 공부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델로스 동맹’에 참가한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은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에 포로스(조공)을 바치고 군사적 의무를 면제받았다. 아테네는 그것으로 저항적인 동맹국들을 제어하는 데 썼을 뿐 아니라, 아테네를 전 세계인의 뇌리 속에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각인시켜 놓은 아크로폴리스 신전을 건축했다. 20~21세기 미국과 자본주의 동맹(협력)국가들의 관계와 비슷한 셈이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아테네에게 했듯이, 지구라는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 미국에게 세계가 바치는 조공의 내역은 어떤 것일까? 첫째, 미국이 참전하는 각종 전쟁에 군비를 각출하기. 둘째, 미제 무기 구입하기. 셋째, 아랍의 석유 생산 지역을 미국의 통제권에 맡기고 미국의 다국적 석유기업의 지위를 인정하기. 넷째, 달러를 세계의 기축활폐로 인정하기. 이런 것들이 군사 대국인 미국이 전 세계로부터 거둬들이는 조공의 내용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국가의 안전을 확보하기에는 너무 크지만 제국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작다.’” (181쪽)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들]에서는 <나치 시대의 일상사>(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식민지의 회색지대>(윤해동), 한국의 민족주의 담론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고민 끝에 일본의 조선 지배에 협력한 부류(친일파)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에 참여했던 부류(전범)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윤해동의 주장에 결국 공감한다. 우리가 “민족이라는 협소한 잣대에 얽매여 친일파의 행적만을 문제 삼을” 때, 우리가 “만주나 태평양 도시에서 저질렀던 만행은 청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라도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미루고 있는 북한과 연대하여, 천황제 청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일제의 2등 시민이 되고자 부르짖으며 중국과 태평양 전쟁에 여러 형태로 참여했던 우리 손의 피만 씻어 내는 게 아니라, 우리 뇌수 속의 민족주의까지 씻어 낼 비장한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 광범위한 친일 설정에 따른 얕은 처벌보다는, 폭좁은 친일 설정에 따른 깊은 처벌이 훨씬 현실적이다.” (223쪽)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들]은 이 책 중에서 가장 반론이 많은 단락이다. 저자의 결론만 따져보아도 ‘현실적’이라는 취지는 무색하다. 우리에게는 1949년 반민특위가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치하의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반민족행위자로 선정한 668명 마저 이승만과 친일파들에 의해 탄압을 받아 해산되었던 역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중국과 태평양 전쟁에 여러 형태로 참여했던 우리 손의 피’가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필자는 외세에 결탁하여 공동체 집단을 파괴하고 항일운동을 말살한 일제와 적극적 친일파들은 아무리 늦어도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 장정일이 공부한 내용을 주제별로 모으면 봉건성과 국가주의, 양심적 병역 거부, 역사 청산, 마키아벨리즘, 근대와 민족주의, 친일과 문학, 미국 극우파, 타성 앞에서의 법의 무력함, 시오니즘 등이 있다. 인물별로는 리쭝우, 마르크 블로크, 이탁오, 고미숙, 시마자키 도손, 무라카미 하루키, 이광수, 모차르트, 조봉암, 바그너, 촘스키, 오디이푸스, 엘리자베스 1세 등이 있다. 

독자들은 장정일식 인문학 독학 과정을 따라가면서 진보/보수/과두정/친일파/민주주의/전체주의 등 우리 사회에서 늘 논란의 중심이 되는 개념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정확한 용어를 정립함으로써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어떤 못지 않게 독서의 힘을 보여준다. 저자는 하나의 화두를 풀기 위해 수십, 수백 권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간다. 바로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장정일의 공부’는 전진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을 덮고 나면 더 읽고 공부하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맨 아래에 필자가 읽고 싶은 책을 수록해 놓았다)


저자의 말대로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그리고 그런 공부야말로 이 책의 부제처럼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지금, 진정한 공부의 길을 알려주는 <장정일의 공부] 다시 읽기를 권한다.

-인상 깊은 문장-

“이 땅의 극우반공체제는 1949년 6.6 반민특위 습격 테러 사건, 국회 프락치 사건, 6.26 김구 암살, 6.5 국민보도연맹 창설 이후, 강요되어 구축된 것이다. (....)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극우반공 테러가 어용 관제 단체, 깡패 그리고 일부 경찰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박정희의 극우반공 테러는 군부의 정보 장?zㄹ에 의해 훨씬 더 잘 제도화, 조직화되었으며 거기에 더해 피해 대중들의 골수에까지 스며든 ‘레드 콤플렉스’는 박정희 시대의 극우반공체계를 더욱더 잘 작동하게 만들었다.”(308쪽)


“런던탑의 축축한 감방이 없었으며 고통 속에 내지르는 비명 사이로 영리한 취조관이 조용히 취조서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광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엘리자베스의 문예부흥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372쪽)


[ 2016년 6월 14일 ]


----- < 장정일 공부 > 따라잡기 ----

아래 108권 중에서 필자가 읽은 책은 고작 9권 뿐이다...ㅠ


<당신들의 대한민국> 2001 박노자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2002 박노자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1999 김용옥

<대한민국은 군대다> 2005 권인숙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2000 이덕일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이야기 2> 1999 김인호, 박훤

<서얼 단상> 2002 고종석

<사기> 사마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2002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2001 다치바나 다카시

<문학의 사회학> 1983 에스카르피

<역사의 종언> 프란시스 후쿠야마

<두 문화> 1996 C.P. 스노우

<통섭> 2005 에드워드 윌슨

<역사를 위한 변명> 1990 마르크 블로크(호)

<이상한 패배 : 1940년의 증언> 2002 마르크 블로크(호)

<침략이 아직도 가능한가> 쇼비노

<난세를 평정하는 중국 통치학> 이종오 2003

<분서> 이탁오 홍익출판 1998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고미숙 책세상 2001

<심기도설> 최한기

<봄> 시마자키 도손 소화 2000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민음사 1999

<이광수와 그의 시대> 김윤식 솔 1999

<무정> 이광수

<배틀 로열> 타카미 코??/후카사쿠 긴지 대원씨아이 2002

<1984> 조지 오웰

<모차르트> 노베르트 엘리아스 문학동네 1999

<피가로의 결혼> 모차르트

<모차르트: 혁명의 서곡> 폴 맥가 2002 책갈피

<마이너리티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 손영호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김형인

<MD 미사일 방어 체제> 정욱식

<반미> 김민웅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홍은택 창비 2005

<제국의 몰락> 엠마뉘엘 토드 까치 2003

<문명의 충돌> 새무엘 헌팅턴 김영사 1997

<역사의 종언> 프란시스 후쿠야마 1989

<최후의 몰락> 엠마뉘엘 토드 1976 (소련의 해체 예견)

<미국 문화의 몰락> 모리스 버먼 황금가지 2002 

<미국 정신의 종말> 앨런 블룸 범양사 1989

<그레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안인희

<나치 시대의 일상사>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히틀러의 뜻대로 : 히틀러의 조력자들> 귀도 크놉 울력 2003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 오인석 한울 1997

<나치의 자식들> 노르베르트 레버르트 사람과사람 2001

<보수 혁명 : 독일 짓기인들의 허무주의적 이상> 전진성 책세상 2001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전재호 책세상 2000

<미국식 사회 모델> 쥐스탱 바이스

<나치 시대의 일상사>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식민지의 회색지대> 윤해동 역사와비평사 2003

<인텔리겐차> 윤해동 푸른역사 2002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 : 우리 정신의 미국화> 이냐시오 라모네 상형문자 2002

<잔인한 이스라엘> 랄프 쇤만 미세기 2002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키스 휘틀럼 이산, 2003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푸른나무 2002

<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인물과사상사 2003

<중국이 만든 유럽의 근대> 주겸지 청계 2003

<동방견문록> 마르코 폴로

<동양은 어떻게 서양을 계몽했는가> J.J 클라크 우물이있는집 2004

<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존 홉슨 에코리브르 2005

<화려한 군주> 다카시 후지타니 이산 2003

<조봉암 연구> 박태균 창비 1995

<나의 아버지 여운형> 여연구 김영사 2001

<비극의 현대 지도자> 서중석 성균관대 2002

<하이데거와 나치즘> 박찬국 문예출판사 2001

<조봉암과 1950년대> 서중석 역사비평사 1999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안인희 민음사 2003

<히틀러의 정신 분석> 월터 랑거 

<히틀러 평전> 요하힘 페스트 푸른숲 1998

<논쟁 나치즘의 역사화> 구승희 오누리 1993

<독일 제3제국의 선전 정책> 데이비드 웰시 혜안 2001

<나의 투쟁> 히틀러

<독일 국민에게 고함> 피히테

<천재, 천재를 만나다> 한스 노인치히 개마고원 2003

<히틀러의 연인들> 안나 마리아 지그문트 청년정신 2001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안인희 민음사 2003

<권력과 테러: 노엄 촘스키와의 대화> 노엄 촘스키 외 양철북 2003

<독일 제3제국의 선전 정책> 데이비드 웰시 혜안 2001

<불량 국가: 미국의 세계지배와 힘의 논리> 노엄 촘스키 두레 2001

<여론 조작: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 노엄 촘스키 에코리브르 2006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노엄 촘스키 시대의창 2002

<촘스키, 9.11: 뉴욕 테러와 미국의 무력대응에 대한 비판과 분석> 노엄 촘스키 김영사 2001

<남자의 탄생> 전인권 푸른숲 2003

<대통령들의 초상> 이병주 서당 1991

<박정희 정신분석, 신화는 없다> 신용구 2000

<박정희 평전: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관한 전기적 연구> 전인권 2006

<비극의 현대 지도자> 서중석 성균관대 2002

<비주류 역사> 마이클 파렌티 녹두 2003

<히틀러의 정신분석> 월터 랑거 솔 1999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츠바이크 분도 1977

<엘리자베스와 에섹스> 리튼 스트래치 나남 1999

<영원한 제국> 이인화 세계사 1993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종언> 마르크 블로크 까치 2002

<정치가 정조> 박현모 푸른역사 2001

<칼의 노래> 김훈 생각의나무 2001

<한국사로 읽느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김춘추에서 노무현까지> 이덕일 2005

<개빌독재와 박정희 시대: 우리 시대의 전치경제적 기원> 김삼수 창비 2003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르네 지라르 문학과지성 2004

<나치시대의 일상사: 순응, 저항, 인종주의> 테틀레프 포이케르트 개마고원 2003

<대중독재: 강제와 동의 사이에서> 임지현 책세상 2004

<로마 제국의 노예와 주인: 사회적 통제에 관한 연구> 브래들리 신서원 2001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전재호 2000

<전체주의> 샤피로 삼성미술문화 1971

<조봉암 연구> 박태균 1995

<조봉암과 1950년대> 서중석 역사비평 1999

<파시즘> 마크 네오클레우스 이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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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해야 하는가 -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한국 자본주의 2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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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왜 청년에게만 요구하는 것인지.. <왜 분노해야 하는가 : 한국자본주의 II > 장하성, 2015. 12., 헤이북스

<한국 자본주의>(2014)에서 장하성은 한국에서의 자본주의가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맥락에서 형성되었다고 분석했고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희망했다. 그는 이번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 : 한국자본주의 II >에서는 극심화된 불평등을 한국 자본주의의 틀에서 바라보고 그에 맞는 해답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총 3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한국 불평등의 원인, 구조와 인과관계를 규명한다. 2부에서는 누가 불평등을 만들었고, 해소 방안은 있는지 고찰해본다. 그리고 3부에서는 그러한 불평등을 누가 고칠 것인가 묻는다.

논지는 크게 세 가지다. 한국의 불평등은 재산 불평등보다 소득 불평등 탓이 크고, 그 원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고용 불평등과 대기업, 중소기업 사이의 불균형이라는 것이다. 불평등 해결의 방법으로 꾸준히 시도된 재분배는, 성장의 성과를 대기업이 독점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서 제기한 소득 불평등의 원인에 기업 구조 개혁을 더해, 재분배 이전에 원천적 분배의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서, 애써 나서야 할 이들은 다름 아닌 청년 세대다. 그들의 탓은 아니지만, 그들만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경제가 그동안 재산 불평등이 빠른 시간 내에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한국 불평등의 주원인은 아직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축적의 역사가 짧고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천적 분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소득 불평등이 모든 불평등의 발원지이며,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즉 재분배 정책으로는 불평등이 해결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소득 불평등은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 때문이며 이는 기업의 원천적 분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진국과 달리 가계에 노동소득으로 분배되어야 할 몫을 재벌 대기업이 분배하지 않고, 중소기업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재벌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고용구조와 기업 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 분배 구조, 고용구조 그리고 기업 구조를 개혁하는 정책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복지 예산을 늘리는 재분배의 확대만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논증하고자 하는 핵심 중 하나다.

누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 기성세대는 한국을 빈곤에서 탈출시키고 오늘의 풍요를 일구어낸 산업화 세대로서 그리고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민주화 세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을 모르거나 아니면 외면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의 중심에 서서 자신이 만들어낸 ‘과거’의 한국에 계속 갇혀 있다. 그들은 청년세대를 위해서 세상을 바꿀 생각이 없고, 자식 세대에게 세상의 중심에 설 기회를 줄 생각도 없다.
저자는 기성세대들이 청년세대였을 때 한국 사회의 주역으로 세상을 바꾼 것처럼 미래 세대의 주역인 지금의 청년세대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함께 분노해야 한다. 청년세대만이 의로운 사회라는 또 한 번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절반 밖에 동의할 수 없다.

먼저, 임금 분배 구조, 고용구조 그리고 기업 구조를 개혁하는 등 재분배가 아닌 ‘분배(특히 임금과 소득)의 확대’로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저자의 일관성 없는 분석과 대안제시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는 자신의 전작인 <한국자본주의>에서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정책, 그리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정책(소유구조 개선)을 가장 중요하게 제시했다. 세부적으로는 ‘초과 내부유보세’와 ‘비정규직법 개정’ 그리고 재벌대기업에 대한 증여세와 상속세를 강화, 비업무용, 무수익 자산의 순환 출자 금지와 지주회사나 내부회사 제도 또는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무 매수 제도를 도입 등을 주장했다. 즉, 소유 문제와 분배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1년 만에 새로 출간한 책에서는 불평등 구조와 체계의 핵심 중의 한 가지인 소유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재분배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라는 식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이유나 논리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또한 실제 지난 70년간 정경유착과 권언유착, 법조계와 재벌의 유착 등은 한국경제에서 일부 계층의 불법편법 자산 증식과 탈세 등을 통해 ‘소유의 집중’이 가속화되어 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실감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제대로 통계를 제시하고 연구하지 않아서 공개되지 않았을 뿐...

그리고 저자가 소득과 임금의 분배 문제가 한국경제의 불평등 문제에서 핵심이라고 분석한 근거와 결과에 대해서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저자는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주의>의 저자, 자산의 불평등 문제를 강조하며 ‘자본세 도입’을 주장한 경제학자)의 ‘자산 불평등 이론’이 한국에는 적용할 수 없다면서 여러 가지 정부기관의 자료를 제시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여러 가지 자료와 통계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는 통계’만을 제시한가 아닌가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자산 소득보다 임금 소득이 소득불평등에서 차지하는 규모와 비중이 훨씬 크다고 주장하면서 근로소득자의 자산 소득과 임금 소득을 비교했고 근로소득자의 자산 소득을 비교할 때도 주택 자산과 금융자산을 비교했다. 즉, 근로소득자가 아닌 자본가 내지 자산소득가의 사업소득의 통계를 준비하지 않았고 자산 소득에서 비주택(비주거)자산 규모와 그에 따른 자산 소득에 대해서는 통계자료를 조사하지(제시하지) 않았다.

아래의 통계와 관련 기사를 보면 저자의 분석 자료와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비거주용 건물 시가총액 2,669조원으로 주거용의 86% http://m.h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37433
상위 10%가 소득 절반 차지…드러난 소득양극화의 민낯 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11/0200000000AKR20141211089100002.HTML?input=1195m
상위 10%가 전국 토지 '땅값기준' 72% 소유. 토지 편중, 땅값 올리고 분양값도 올려 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243757.html

마지막으로, “청년세대만이 의로운 사회라는 또 한 번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저자의 마지막 주장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다.

21세기 한국의 청년세대는 ‘엔포세대’, ‘헬조선’, ‘흙수저’라는 표현이 있듯이 하루하루 버티기에도 벅찬 세대다. 기득권 세대와 기성세대에 의해 가장 많이 차별과 착취를 당하고 있고,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희망은 커녕 다음 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인 것이다. 탐욕스럽과 삐뚤어진 언론에 포위되어 있고 사회 각 분야의 권력과 의사결정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그런 청년세대에게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묻고 “분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저자 자신도 과도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혁명은 안 된다”고 하면서 생각할 시간, 고민할 여유, 연대한 조건도 무엇 하나 제공하지 않은 채 청년세대에게 분노하고 정치에 참여하고 투표를 잘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기성세대로서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말이다.

청년세대에게 희망을 갖는 것을, 변화와 행동을 요구하려면 그들이 그렇게 변하고 나설 수 있도록 여건과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기성세대 지식인, 학자, 전문가들 집단에서라도 사적인 욕심을 줄이고 서로 양보하고 연대하여 청년세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가?
자신들은 서로 잘났다면서 삼삼오오, 학벌이니 연구소니 집단이니 정파니 하는 패거리를 만들어 이 정당 저 정당 기웃거리면서 정치건달처럼 시간보내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그게 돈이든, 학벌권력이든, 지위든, 명예든, 경력이든, 권위든 간에 청년세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려는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청년세대에게 내놓고 양보하고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 2016년 6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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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힘 -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지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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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항녕 저 <조선의 힘 : 조선, 500년문명의 역동성을 찾다>를 읽고/ 2010. 02, 327쪽, 역사비평사

2015년 가을부터 한국사, 특히 조선사와 고대사에 관심을 갖고 역사책 몇 권을 읽고 페이스북에도 여러 차례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역사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점점 흥미가 더해져 올 한해 꾸준히 읽겠다고 마음 먹은 분야가 되었다.
여러 학자들의 책을 읽고 있는데, 공공기관이나 대학의 주류사학자의 천편일률적인 내용보다는 재야사학자의 책이 훨씬 설득력이 있고 호감이 가는 편이며 재미있게 읽게 된다.

그런데, 간혹 “재야사학자들은 사이비 학자이고 근거가 취약하며, 식민사관에 경도되어 과거 선조들의 역사를 폄하한다”는 의견을 접하게 된다. 그런 의견 중에는 이덕일 등 재약사학자를 비방하거나 ‘식민사학자’로 낙인찍는 문장도 포함되어 불편하다. 그렇지만 ‘자신의 주관이 너무 강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필자가 한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잘 모르는 시기나 분야에 대해서는 제대로 제 의견을 밝히지 않았지만, 재야사학자를 ‘사이비학자’나 ‘식민사학자’라고 비난하는 대목에 대해서는 반박하기도 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 중 일부가 ‘과거 선조들의 자랑찬 역사’를 공부하라면서 추천하는 책이 오항녕의 <조선의 힘>이다.

책 한 권으로 학자 한 명의 주장과 이론을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재야사학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조선의 자랑찬 역사’를 배울 수 있다고 강력하게 추천받은 책이니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출판사의 소개글은 나름 의미심장하고 긍정적이었다.(대부분의 출판사들이 그렇지만...)
"500년 이상 역사를 지속한 조선의 힘을 재발견하고 기존의 오해와 왜곡, 부정적 시각에 반론을 제기하는 책. '당파싸움'이나 '사대주의', 근대로의 전환에 실패한 역사로 조선을 바라보는 편견을 깨고, 문치주의, 대동법, 실록, 강상 등에서 나타나는 500년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조선문명의 삶의 양식과 생각, 제도 등의 긍정적인 측면을 다룬다.”

오 교수는 <조선의 힘>의 프롤로그에서 한국사회에서 ‘근대’가 그다지 논리적, 합리적이지 않은 ‘역사의 법칙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전근대’가 무조건 ‘나쁜 것’ 또는 ‘잘못된 것’ ‘부족한 것’으로 인식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는 ‘폭력성’이 전제되어 있음에도 그러한 ‘폭력성’을 한국인들이 내면화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근대는 보편적이지 않은 목표를 보편화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에는 당연히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라는 폭력성이 포함된다. 이 폭력성을 내면화하면서 사람들은 성립할 수 없는 명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6쪽)
“나는 진보라는 근대역사학의 담론, 즉 자유와 해방의 기치 아래 가야 할 목표로 규범화된 근대의 담론과 거리를 두고 있다.”(6쪽)
“근대로의 길은 당연히 전혀 법칙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적어도 그들 대부분에게는 결코 해방도 아니었다.”(7쪽)
“근대주의에는 목적론과 진보주의가 깔려 있다. 인류사회는 근대자본주의 사회를 향해 진보해왔다는 관점이다.”(8쪽)

오 교수의 문제의식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한국사회의 정치인, 관료, 지식인들이 한국현대사를 거치면서 부지불식간에 다윈의 ‘진화론’과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과 같은 ‘서구식 근대 담론’을 내면화했고, 거기에 일제와 미제의 식민사관과 ‘우리 안의 사대주의’가 더해져 일제 강점기 이전의 한반도 역사를 폄훼하거나 부정하고 현재까지도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전반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대 서구사회는 ‘진화론’의 정확한 개념은 ‘약육강식’과 다름에도 ‘진화론’을 ‘강자의 폭력’과 ‘식민지 침탈’의 논리로 이용했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은 당초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후배 학자나 정치인들로 인해 서구사회 일부에만 적용되는 원시공산제 ->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를 마치 인류사회의 공통적인 역사적 법칙성처럼 지구 전체에 인식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마르크스는 비록 ‘사적유물론’을 이론화시켰지만, 자본주의라는 근대가 결코 평민, 인민, 약자에게 ‘바람직한 사회체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급기야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가 해체된 이후에는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라는 억지까지 등장했죠.

그와 동시에 오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식민주의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식민주의는 근대주의와 결합해 ‘범식민주의’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이 식민사관을 가볍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식민사관은 극복되었다고 착각하는 분들도 많은 듯하다. 내가 보기에는 결코 ‘아니다’. 여전히 그 담론에 포섭되어 있다.”(8쪽)

그는 식민주의에 찌든 사람들이 식민자들이 세뇌한 ‘너희들의 유전자에는 원래 사대주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담론에 포섭되어 사대주의에 찌든 조선시대를 피해, 고대시대로 올라갔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해서는 사대주의가 극복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사대는 사실이므로, 이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사대? 그게 왜 문제지?’라고 되물어보아야 한다”(8쪽)는 것입니다.
“광복 이후에 한국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극복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근대주의에 빠져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 나는 위의 식민주의와 근대주의를 합쳐 ‘범식민주의’라고 부른다.”(9쪽)

그러면서 자신은 역사의 표상으로 진보보다 ‘변화와 적응’이라는 말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앞에서 적시한 오 교수의 문제의식은 전체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아주 쉽고 편하게 기재한 문장 중에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상식을 뛰어 넘는 비합리적인 비약도 존재한다. 그것은 두 문장에서 알 수 있다.

첫째는, 위에서 표현된 “사대(事大)가 왜 문제지?”라는 문장이다.
오 교수는 ‘사대주의(事大主義)’라는 단어와 개념을 너무나 혐오한 나머지 ‘사대’와 ‘사대주의’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
‘사대’는 말 그대로 ‘큰 것, 큰 나라, 대국을 존중하고 협력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대’라는 개념에는 어떤 가치판단이나 호불호가 개입되이 않은 상태에서 대국과 소국, 강국과 약국 사이의 기본적인 외교관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반면 ‘사대주의’는 '자율적이지 못하고 자국보다 강한 국가, 세력에 복종하거나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주의’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나 집단, 국가나 사회라는 공동체에서는 ‘사대주의’가 많은 문제를 양산시킬 수 있다.

오 교수 역시 “사대주의가 왜 문제지?”라는 질문을 던지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의 출간 취지를 보면, ‘조선은 사대주의가 아니었는데?”라고 질문을 던져야했다.
식민주의자들, 제국주의자들이 던져 놓은 ‘사대주의’ 프레임을 깨기 위해 다른 질문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비켜서 엉뚱한 지점을 공략하면 ‘성동격서’가 아니라 ‘뚱딴지’가 되어버릴 수 있다.

‘비합리적인 비약’의 두 번째 사례는 프롤로그 5쪽에 나온다.

오 교수는 근대와 근대주의의 불합리함에 대한 예를 들면서 “길 가다 강도를 만나 상해를 당하면 그 사람에게 운이 없다고 하지, 그 사람이 실패했다고는 하지 않는다”라면서 "조선이 왜란과 호란을 당하고, 일제와 서구열강의 침략을 받은 것에 대해 외국이 나쁜 강도일 뿐이지 강도를 당한 조선은 잘못이 없다"라고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그럴싸한 주장이다. 특히 피해자가 개인일 경우에.
그러나 문제는 조선이라는 공동체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데 있으며, 더군다나 그 조선이라는 국가는 오 교수가 <조선의 힘> 본문에서 여러 차례 ‘조선의 힘’이라고 강조하는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토론했던 국가였다는 점이다.

이성계와 신진사대부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것은 고려가 너무 원나라에 사대주의로 일관했기 때문(거의 식민지 속국이라고 부를 정도로)이고 왕실과 기득권층이 부패할대로 부패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국가라는 공동체가 백척간두에 서게 되고 대다수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정신과 성리학의 담론이 고려의 전복과 조선의 개국에 백성들이 동참하고 동의해준 것이다.
따라서 굳이 근대국가의 개념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조선이라는 국가는 자신의 영토와 백성을 안전하게 돌보고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유지된다. 그리고 소위 그런 ‘안보’와 ‘안민’은 조선사 500년 동안 왕실과 사대부들이 ‘경연’과 ‘공문’과 ‘저서’와 ‘법규’에 늘 강조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은 국가가 존재하고 유지되는 동안 인접국인 명나라와 청나라, 여진과 거란, 왜와 일제, 러시아 등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항상 사신을 교환하고 학문을 나누고 교역을 했다. 즉 조선에 대한 외국의 침략은 ‘아무 것도 모르는 선량한 시민이 그냥 길을 걸어다가 생각지도 않은 강도의 급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진화론이나 사적유물론을 적용하지 않아도, 인류의 역사는 침략과 갈등이 이어져 왔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와 사기(사마천), 자치통감 등에는 법칙성이나 논리성과 관계 없이 무수히 많은 전쟁과 침탈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 시대 내내 여진족이나 거란족, 왜 등 주변국과 종족의 침략과 약탈이 있었고, 심지어 조선은 두 번의 왜란고 호란을 경험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정상적인 국가라면 항상 외국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주변 국가가 아예 침략과 도발을 할 생각이 없도록 국방을 튼튼하게 하던지, 초기의 침략이나 도발을 초전에 박살내어 안보와 안민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안보와 안민의 문제는 사대나 사대주의의 문제가 아니고 강도의 문제도 아니며 제국주의나 근대의 문제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권력과 부를 거의 독차지했던 왕실과 사대부들은 국가 지도부와 권력체계의 책임자로서 그런 기본을 준수하지 못해 두 번의 양란과 호란을 당했고, 급기야 일제에게 국가를 강탈당했다.
그런 과거사를 제대로 연구하여 현재와 미래에 대비하지 못하면 또다시 제2의 침략과 강탈을 당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과거사의 긍정성을 찾자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거사에서 잘못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지 않고 긍정적인 면만 찾아서는 “왜 침략을 당했냐?” “왜 나라를 빼앗겼냐?”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우리도 좋은 점이 있었는데...”라는 자조와 자위 밖에 남지 않는 것일 뿐...

그런데, 국가의 기본도 제대로 못한 기득권층을 잘못과 부족함을 연구하고 공부하자는 것을 식민주의와 범식민주의 프레임으로 규정해 가두려는 것은 역사학이나 역사학자로서 오 교수의 기본 자질이 의심 된다.
잘한 부분은 물려받고 잘못한 부분은 비판하여 반면교사로 삼는 것은 역사학과 인간사회의 기본입니다. 외세의 침략에 대해 “침략한 놈들이 잘못이지 당한 놈들은 잘못이 없다”라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오 교수가 ‘조선의 힘’이라고 강조하는 ‘문치주의’나 ‘경연제도’ 그리고 ‘인사제도’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긍정하면서도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고 논리적이지 못한 주장이 많다고 생각한다.(자세한 비판내용은 http://blog.daum.net/hy2oxy/8693331 참조)

오 교수가 <조선왕조실록>의 객관성과 실체를 너무 강조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가 사학자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들먹이지 않아도, 후세에 전해지는 과거 시기의 당대 기록은 ‘승리자의 기록’임은 두 번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조선왕조실록>은 사료의 하나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 절대적인 ‘성경’이나 ‘도그마’가 아님은 사학자 뿐 아니라 대부분의 학자들 뿐 아니라 일반적인 수준의 시민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런 <조선왕조실록>이 남긴 기록만을 절대시하면서 다른 사료나 역사기록을 무시하고, 맥락을 분석하지 않고 <조선의 힘>으로 ‘실록’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광해군은 이렇다”, “정조는 저랬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이지 답답할 지경이었다.

오 교수가 <조선의 힘>을 통해 주장하려는 것은 “한국사회에게 조선은 '오래된 미래’”라는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필자는 오 교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식민주의와 근대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긍정’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과 시사점을 찾아 내부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찬양은 이승만이나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현재 한국사회 주류의 구태와 일맥상통한 모습이다.

‘실록’과 관련하여 주류사학계 내부에서나 재야사학계에서 지적하고 비판하는 내용은 무수히 많다. 다른 학설과 분석과 이론을 여러 사료와 검토를 통해 충분히 검토하고 논쟁하는 것이 한국사학계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아래는 오 교수가 <조선의 힘>에서 인용하고 주장하는 내용 중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통해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김집, 송시열, 송준길이 대동법에 찬성하고 추진하려 했다?" 141쪽
"광해군 집권 초기 김집파가 ?i겨난 이유가 '청의 견제 및 김집의 낙향’이라고?" 142쪽
"광해군 때 대동법 확대가 가능했던 이유가 ‘관료사회의 이해가 깊어지고 양전이 실시되고 경험이 축적되어서’라고?" 142쪽
"효종의 영장제도와 노비추쇄가 ‘효과도 없이 민심만 어지럽혔던 정책’이다?" 144쪽
"광해군 때 토호가 ‘왕실과 결탁’하여 대동법 실시를 반대했다?" 145,146,148쪽
"대동법으로 ‘안민’과 ‘재정 확보’가 달성되었다" 149

"윤후의 성리학, 탈주자학이 성학의 주체를 군주로 삼았나? 존비귀천 예법?" 191
"송시열은 성(리)학을 인간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학문으로 생각했다?" 192
"효종 국상 자의대비 기년복" 192
"송시열이 양반 군역 주장" 192
"윤후가 귀양가고 사사당한 이유" 193

"광해군 때 사건들의 실체 여부"
"광해군이 조선시대 내내 복권되지 못한 이유"
"조선 최초로 명 사긴에 뇌물을?" 204
"광해군 9~12년 강홍립 패전시 수만명이 죽었다" 209
"광해군이 왕권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궁궐공사를 진행하며 막대한 추가 세금까지 추징했다" 
"6~7천명이 공사, 쌀 4~8천석/월, 1인당 18kg/월 x 6천명 = 10.8만kg/월 / 140kg = 700석/월 231,214"
(http://www.koreartnet.com/wOOrII/initial/list0111/011110_01.html)
"강홍립 심하전투에서 항복 후 9천명 전사" 222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광해군의 군사/외교의 차이점"

"광해군이 후금과의 '화친’을 부정했다" 223
"후금과 화친이 곧바로 명에 대한 배신이다" 224
"광해군 당시 후금이 변방의 골치거리에 불과했다" 224
"후금은 동아시아에 새로운 비전은 커녕 명을 대신한 동아시아의 전통질서를 연장시켰다" 225

"시오노 나나미의 예를 들거라면 '융성'과 '쇠망'을 각각 비교해야 할텐데, 오항녕은 왜 '쇠망'의 원인을 찾으려는 학자들을 식민사학지라고 매도하나?"
"고구려는 어떻게 수,당의 침략을 막았고, 고려와 조선은 왜 당했을까?"
"광해군의 군사/외교와 인조의 군사/외교를 비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2016년 5월 29일 ]

오항녕, 조선의힘, 문치주의, 근대주의, 식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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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 제국의 거짓말, 위안부의 진실
손종업 외 지음 / 도서출판 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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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손종업 외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를 읽고 / 2016. 5, 430쪽, 도서출판 말


2013년에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하여, 2014년 6월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유하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한국 검찰에 고소했고, 2015년 11월 18일에 박유하 교수가 불구속 기소되었다.
또한 피해자들은 비슷한 시기에 법원에 출판물배포금지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은 2015년 2월 34곳의 문장의 삭제를 조건으로 출판물 간행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국내의 일부 학계와 언론계로부터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2015년 11월 26일에는 일본과 미국의 지식인 54명이 항의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필자 역시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원칙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검찰 기소가 『제국의 위안부』로 인해 심대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의해 이 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 기소를 평가하는 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문과 언론의 자유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그 취지와 전제가 '권력에 의한 탄압', '소수를 향한 다수에 의한 폭력과 마녀사냥', '공익과 진리를 위한 추구' 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70~80년 전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힘도 없이 일본 제국의 반인륜적 범죄에 희생당해야 했고 한국의 친일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제국의 위안부』에 의해 모욕당하고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소송을 낸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학문과 언론의 자유'에서 벗어나는 예외일 것이다. '자유'란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특히 약자와 피해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자 기본일테니까.

『제국의 위안부』는 과연 위안부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나? 『제국의 위안부』를 직접 읽거나 비판서 등 관련 서적을 읽지 않은 채 섣불리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책 한 권이 아니라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국내외적인 상황과 맥락, 저자인 박유하가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한 전후에 보여온 학문적인 성과와 언행을 살펴야만이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 책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의 부록에는 2015년 2월 출판물배포금지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과 삭제된 34곳의 문장이 삽입되어 있다.(첨부 사진 참조) 저자들의 주장이나 논리가 아니라 공개된 법원의 자료이다.
법원이 삭제를 명령한 34곳의 문장은 박유하의 책 제목처럼 일본군위안부를 '제국의 위안부', 즉 일본제국을 위해 '애국'을 한 식민지 여성이며, 일본군들과 '동지적 관계'를 맺었고 그녀들이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온 게 아니라 다분히 '돈'을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또는 업자에게 속아서 따라나섰다고 규정했다. 그 문장들은 위안부 피해자분들에게 또다시 커다라 심적 고통을 안겨주었음이 분명하다.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에서 저자들은 몇 가지 방향에서 『제국의 위안부』와 박유하를 비판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번 일련의 사태가 문제의 본질을 떠나 학문과 표현의 자유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일본 국가기관의 관여 아래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연행된 여성들에게 '성노예'를 강요한 극히 반인도적이고 추악한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 그 범죄행위로 인해 참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커다란 아픔을 견디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그 범죄행위에 대해 일본은 지금 국가적 차원에서 사죄와 배상을 하고 역사교육 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에는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1965년에 해결되었다고 강변하는 부조리를 고집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그 부조리에 맞서 1,200회 이상 매주 수요시위를 개최 있고 지친 노구를 이끌고 전 세계를 돌며 경의로운 해결을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필자는 이 엄중한 사실들을 도외시한 연구는 결코 학문적일수 없다고 믿는다.

저자들은 『제국의 위안부』가 사실 관계, 논점의 이해, 논거의 제시, 서술의 균형 논리의 일관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이라고 평가한다.
기존의 연구 성과와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에 의해 확인된 것처럼,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위안부』는 책임의 주체가 민간업자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법적인 쟁점들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매우 낮은 데 반해 주장의 수위는 지나치게 높다.
충분한 논거의 제시 없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을 위해 "군인과 동 지적인 관계에 있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피해의 구제를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아픔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저자들은 『제국의 위안부』가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일본의 지식사회가 '연구의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워 『제국의 위안부』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과연 그러한 평가가 엄밀한 학문적 검토를 거친 것인지 커다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들은 <제국의 변호인>이라는 책의 제목은 말 그대로 일본제국, 일본 정부, 일본군인을 변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는 형식적으로는 양측에 화해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늘상 일본정부, 일본제국의 편을 든다는 것이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로  이니치신문사에서 <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수상을)사퇴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면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망명을 『제국의 위안부』가 대신 해내고 있는 셈”이라고 소감을 밝혔는데, 『제국의 위안부』를 읽다보면 박유하가 정신적으로 과거 현재의 일본국과 동지적 관계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제국의 변호인’인 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단지 박유하 개인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다. 이 책은 박유하 너머에서 『제국의 위안부』에 갈채를 보내는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과 우익에게 그리고 한국 내 지식인들에게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제국의 위안부』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성향을 보이는 지식인의 욕망, 요구와 딱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제국의 위안부』를 심도 깊게 비판해온 정영환 준교수(메이지가쿠인대학)는 “일본의 논단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예찬하는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지적 퇴락’의 종착점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 책이 일본 언론계에서 이토록 폭넓게 예찬 받은 것은 박유하 씨가 일본사회의 지식인의 욕망을 민감하게 감지하여 전전의 대일본제국의 책임 부정과 전후사의 수정이라는 두 가지 역사수정주의에 호소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의미에서 ‘제국의 위안부’ 현상이라는 것은 일본의 지식인, 언론계의 문제인 것이다.”(정영환)

이런 판단에 근거해 볼 때 일본의 ‘제국의 위안부 현상’은 의도적이고 정략적으로 조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지 박유하라는 여류작가, 여성교수한 명의 독특한 해석에 지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와 맥을 같이 하기에 극찬해마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박유하가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의 우익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핵심 주장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일본 우익의 ‘종군위안부’ 관련 핵심 슬로건은 “성노예는 거짓말이다”, “강제연행은 거짓말이다.”, “종군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다”라 할 수 있다.
최근 일본 각지에서 열리는 우익단체의 ‘종군위안부’ 관련 홍보전에서는 『제국의 위안부』에 아오는 말을 인용해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때 단골로 인용하는 말이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는 ‘동지적 관계’라는 말이라 한다.

이처럼 일본 리버럴, 일본 우익이 제국의 위안부에 찬사를 보내고 상을 주는 현상에 대해서이 책에서는  「일본 리버럴 지식인은 왜 박유하를 지지할까」 (길윤형),「일본의 새로운 역사수정주의와 『제국의 위안부』 사태」 (김부자), 「위안부 문제와 학문의 폭력-식민주의와 헤이트 스피치」 (마에다 아키라) 등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들은 『제국의 위안부』와 이 책을 둘러싼 국내외 움직임에 민감한 이유가 있다.
식민지근대화론, 국정교과서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입장과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흐름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1919년) 법통성을 부정하고 새롭게 건국절(1948년)을 추진하는 세력과 전쟁범죄, 식민지 지배 책임을 회피하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는 세력은 이미 내용적인 ‘화해’를 끝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조만간 한일군사동맹을 위해 어깨동무를 나란히 할 ‘동지적 관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화해’의 담론으로 포장하고, 표현의 자유로 띠를 두르고, 사상 검열 당한 피해자 흉내를 내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제국의 위안부’의 결정적 문제는 식민지 지배의 문제를 식민지 피해자가 아니고 제국의 눈, 가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들 역시 책의 부록에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입장 "을 담은 학자들처럼 뼈저리게 반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일본제국의 식민지강점과 친일파 정권의 한일협상,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거의 대다수 한국 지식인들은 그동안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제국의 위안부』와 박유하에 대한 사법부의 대응(?)에 대해 김규항, 김철, 장정일, 유시민, 금태섭, 홍세화, 류근, 고종석 등 190명의 교수, 문화예술인, 언론인들은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며 반대했지만, 위안부피해자들이 수요집회를 1,200회나 진행하는 동안 정작 그들이 그동안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공론화와 문제해결에 대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 소위 민주정부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에도 수요집회는 계속되었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지식인사회에서 무관심 영역이지 않았나?

"끝으로 우리는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고소라는 법적인 수단에까지 호소하시게 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깊이 되새기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거듭 상처를 주는 이러한 사태에 이르게 되기까지 우리의 고민과 노력이 과연 충분했는지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 외교적·정치적·사회적 현실 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의의 여신의 저울이 진정 수평을 이루게 하는 그런 방식 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합 니다." 2015, 12.9.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 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2차 성명) : 국내-김창록(경북대) 등 258명, 국외-마에다 아키라(도쿄조케이대학) 등 122명 [425쪽]

- 인상 깊은 문장 -

"박유하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편익을 추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녀의 책이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가가 문제일 따름이다. 학문은 ‘해결책’이 아니라 ‘진실’ 또는 ‘사실’을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과 맞서야 한다."(손종업, 37쪽)

"『제국의 위안부』를 옹호하면서도 그 주장의 파편만을 임의로 가져오는 글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일본군의 동지인 위안부’, ‘위안부의 기억을 왜곡하는 우리’라는 파편으로 그 책을 말하지 말라. “제국의 일원인 위안부-매춘을 만드는 국가구조-제국의 합법”이란 논리의 흐름과 “한국의 위안부 인식을 왜곡한 배후권력인 정대협”이라는 (박유하의) 전체 주장을 가져와서 그에 대해 항변하라."(김요섭, 69쪽)

"아베 신조 수상을 비롯한 정치가는 역사의 사실을 부정하고 개찬(改竄)하며 책임도피를 도모해 왔다. 또한 아우슈비츠의 거짓말에 해당하는 위안부 거짓말이나 남경대학살 거짓말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도, 대중 매체에서 도 표현의 자유란 이름하에 역사의 사실을 부정·개찬하고, (위안부) 피해자를 다시 모욕하면서 존엄의 회복을 방해하고 있다. 우익 정치가나 헤이트 단체뿐 아니라 일부 지식인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마에다 아키라, 89쪽)

"박노자 오슬로국립대학 교수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북한 혹은 암묵적으로 중국에 맞서기 위해 한국이 일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한일 화해론의 근거가 된다면 굉장히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론을 논의하기에 앞서 한번쯤 곱씹어 봐야 할 지적이다. 그러나 이런 점까지 인식하고 발언하는 일본 내의 리버럴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어쩌면 그 점이 일본 리버럴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일지도 모른다."(길윤형, 125~126)

"즉 박유하 씨의 ‘위안부’상은 일본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이 책이 조선인 ‘위안부’는 소녀도 성노예도 아니고, 일본인 병사와는 “‘같은 일본인’으로서 ‘동지적 관계’’를 가지는 ‘제국의 위안부’로, 지금까지 성노예로서의 ‘위안부’상을 ‘전면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새로움을 가장하면서, 내실은 하타 이쿠히코 씨의 ‘위안부’ 제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해석(=‘전지 공창시설론’)과 우에노 지즈코 씨의 피해자상의 해석(=‘모델 피해자론’)을 합체시켜, 일본군의 책임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적인 ‘위안부’ 담론이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김부자)

"이 책이 일본 언론계에서 이토록 폭넓게 예찬 받은 것은 박유하 씨가 일본사회의 지식인의 욕망을 민감하게 감지하여 전전의 대일본제국의 책임 부정과 전후사의 수정이라는 두 가지 역사수정주의에 호소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의미에서 ‘제국의 위안부’ 현상이라는 것은 일본의 지식인, 언론계의 문제인 것이다."(정영환, 243쪽)

"2015.12·28 한일 외교 합의는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온 20여 년 간의 국제공조 노력을 헛되이 만드는 일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만이 피해자가 아닙니다. 아시아 전역의 피해자들과 그들을 위해 활동해온 전 세계 시민들에게도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베리 피셔 변호사, 172쪽)

"징용소송, ‘위안부’ 소송을 추진하던 당시 “우리는 2차 대전의 마지막 전투를 치르고 있다.” 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21세기 시점에서 2차 대전의 마지막 전투를 아직도 계속해야 하는 현재 상황이 안타깝지만, 한국의 피해자들은 배리 피셔 변호사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에 큰 위로를 받으실 것입니다."(정연진, 173쪽)

"영화 「귀향」에서 기이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장면은 ‘위안부’ 소녀들 중 한 명이 「가시리」를 부르는 장면이다. 그는 평양 권번 출신의 여성으로, 다른 소녀들보다 나이가 많다. 이것은 『제국의 위안부』나 일본 극우들이 말하는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장면일까. 그렇지 않다. ‘위안부’들 중에는 강제나 겁박 등에 의해 끌려온 십대 소녀들도 있었고,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따라 나섰지만 취업 사기를 당한 사람들도 있었고, 성매매라는 것을 알고 온 권번 출신의 창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황진미, 191쪽)

"그런데 박유하는 ‘위안부’ 개인들의 일상을 계속 강조한다. 이것은 마치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같은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알려진 대로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암울하고 고통스러웠던 것만은 아니고 나름 살만한 세월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식민지 시기에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에 근대화가 되었으니 식민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리가 ‘식민지근대화론’이다. 그러므로 박유하의 주장에 ‘식민지근대화론 위안부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김수지, 206쪽)

"결국,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은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로 만들어 일본군의 범죄를 면죄해주는데 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안부(성노예) 문제는 단지 일본만의 책임이 아니며 일본 보다 일찍 제국주의 확장을 한 서양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초점을 흐리게 한다. 이처럼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 제목은 일본의 전쟁범죄, 식민지 지배 책임을 희석화, 추상화하고, 축소하는 데 활용된다."(최진섭, 244쪽)

박유하가 “취사선택”해서 발췌한 ‘위안부’들의 ‘좋은 기억’들은 정대협 활동가와 연구소 연구자들이 여러 번 찾아가며 오랜 시간을 들여 끌어낸 증언들이다. 그 증언집에 있는 이야기를 생존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안 했다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당사자들이 “버렸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김복동 할머니도 그러한 기억을 “버리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에게 꼭 알리고 싶은 핵심적인 이야기들을 몇 번이고 강조하면서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다. 왜냐, 그런 이야기들이야말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을 당사자가 더 잘 알기 때문이다."(양징자, 271쪽)

"학자의 양심은 때론 국적을 초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유하의 이러한 우편향 인식은 최근 일본의 집단 자위권을 통한 무력사용 선언과 평화 헌법 개정과 맞물려 설득력이 오히려 더 떨어져 보인다. 이 부분에 와서는 ‘일본 우익 학자 누군가가 쓴 글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갈 정도이다."(조의행, 296쪽)

"『제국의 위안부』를 쓴 목적이 이해, 화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이토록 일관되게 가해자 입장은 두루뭉수리 넘어가고, 불행은 피해자 동족인 이웃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이 대체 우리 민족에게 무슨 짓을 저질러 왔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고은광순, 300쪽)

"‘4개의 터부’(천황제, 야스쿠니신사, 난징학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외에도 헤이트 스피치 등을 통해 중국, 한국, 동남아에 대해 철두철미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는 점과 일본은 문명국가이고 그 이외의 아시아 국가는 야만국가라는 서구적 가치관을 답습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일본 평화주의의 본질은 이중적이며,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오히려 일본인 납치문제를 들어 일본이 피해자인 양 하는 일본의 민족관, 인간관에 대해 평화 운동가들이 제대로 유효한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서승, 323쪽)

"일본의 소녀상 철거 요구를 통해 더 깊고 넓은 시야를 갖게 됐습니다. 소녀상은 단지 일본군 ‘위안부’의 위로와 평화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평화,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긴장, 대결, 군국주의를 추구하고, 거짓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세력이 소녀상 철거를 원한다면, 소녀상을 지키는 일이 곧 진정한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김운성, 336쪽)

"박 교수는 위안부 동원이 일본이나 일본군의 ‘국가 범죄’가 아니며, 설혹 범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주로 ‘업자의 범죄’라고 한다. 동시에 박 교수는 업자의 책임도 크지만 일본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천황이나 일본정부가 성노예제에 대하여 법적 책임이 아닌 식민지배와 관련해서 상징적이고 구조적인 책임을 진다고 말한다. 책임에 관한 이러한 식의 복화술은 책임을 실제로 허구화한다."(이재승, 341쪽)

"저자는 “법적 책임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면서 자신은 끝없이 ‘뒤틀린 법 도그마’에 빠져들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가 강요한 조약을 내세워 ‘성노예’ 피해자에게 “협력자” “가해자” “무의식적인 제국주의자”라는 지위를 강요한다. 일제가 식민지‘법’에 따라 한 일이니 문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식민 지배, 국가주의, 남성 중심주의, 근대자본주의, 가부장제가 문제라는, 이미 많은 학자가 제시한, 그 자체로서는 타당한 주장은 법적 책임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업자의 책임’으로 왜소화되어 버린다. 그렇게 잎사귀를 강조하느라 줄기를 부정하다 보니 잎사귀만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괴이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김창록, 382쪽)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운동은)역사 속에 묻혀 있던 여성의 경험을 가시화함으로 가부장제, 식민주의, 민족주의의 공모 체제에 균열을 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 거대 역사에 질문하고 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연대는 여성에 대한 전시 폭력이라는 거대한 부정의의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자 투쟁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확대, 유지되고 있는 초국적 페미니스트 정치학에 근거한다. 이는 젠더, 민족,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등의 축이 교차하는 접점에서의 수많은 차이와 경계를 넘어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과 실천의 의지로 연결된 연대다."(이나영, 401쪽)

[ 2016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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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 반성과 성찰의 기록
신석진 외 지음 / 생각비행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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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를 읽고 / 2015. 12, 신석진 외, 생각비행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에 대해 강제해산 결정을 내렸다. 진보를 표방하던 한 정당이 통째로 사라진 순간이다. 사법살인이라는 논란도 있었지만 사회적 시선은 냉담했다. '종북'이라는 꼬리표가 가져온 결과다. 

한때는 200만표가 넘는 유권자 지지를 받기도 했고, 통합진보당 전신인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따지면 15년 세월을 지켜왔지만 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셈이다. 


그런데 바로 1개월 후인 2015년 1월 통진당 해산 결정의 핵심근거가 됐던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죄(내란선동은 유죄)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헌재의 결정이 지나치게 정치적 의도를 가졌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물론 그렇다고 사라진 정당이 다시 부활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 책은 그 모든 과정을 직접 겪었던 통합진보당 당직자들의 담담한 자기반성과 진보정치에 대한 성찰의 글이다. 사법적 판단에 대한 반론이나 당시 냉담했던 진보진영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아니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한결 덜하다.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는지 밝혀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진보정치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 진보정치 실패에 대한 지지자들의 원망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 고 있다. 한때 2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보내준 표를 받은 정당이 공중분해 됐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것이지만, 진보정치는 그 전에 이미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진보 정치의 진지한 성찰과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 들이 이 책을 읽기 원한다."(서문)

많은 사람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에는 수구세력의 전례 없는 공안탄압이라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 측면에서는 타당한 의견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갈릴레오, 서구의 혁명세력과 사회주의 정당, 조광조와 허균, 동학농민항쟁과 학생운동 등 한국사회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지역과 국가에서 당시의 체제와 이념에 반하거나 권력자들의 전횡에 저항하는 개인과 세력은 유례 없이 탄압을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제와 권력자들이 새로운 사상이나 세력을 탄압한다고 하여 새로운 사상이나 세력이 항상 패배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과학은 신앙을 극복했으며,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서구의 좌파 정당은 오랜 탄압과 공격을 뚫고 승리를 거두었다.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진보정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우호적 여론이나 민주주의라는 대의에 입각해 통합진보당을 지원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실패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고로 이 책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치가 실패한 책임이 당사자들에게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해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보려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외부의 탄압에게만 책임을 돌리거나 외부적인 조건만을 탓해서는 스스로 변하여 상대방과 조건을 극복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을 뒤져보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이라는 진보정당 14년을 거치면서 정당의 주류정파의 생각과 행동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비주류측 관점의 출판물을 많지만, 주류의 입장이나 관점에서 진보정당사를 기술하거나 입장/관점/태도를 밝히는 출판물은 거의 없다.

그런 측면에서도 이 책은 진보정당 14~5년의 흐름과 평가를 균형감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들은 현실정치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왜 통합진보당이 스스로를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의 담지자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했는가 하는 뼈저린 후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이 책에 담아냈다.


4명의 공동저자가 명망가가 아니라 실무당직자라는 점도 선입견을 줄이는데 일조했다. 

저자들은 통진당 해산결정 이후 독서모임을 만들어 6개월 동안 토론을 하면서 얻은 고민의 결과를 담담하게 책으로 엮었다. 이들은 진보정치의 실패와 통진당이 보여줬던 아마추어리즘과 국민과의 괴리 등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또 예민한 주제라 할 수 있는 종북논란에 대한 진보진영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에둘러 가지 않고 정직하게 말하고 있다. 이들은 "종북 이념으로 한국에서 정치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럴 의사를 가진 정치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정치는 신앙이 아니며,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장과 논리는 도태되기 마련"이라고 잘라 말한다. 


또 경제민주화, 무상급식 등 복지확대, 재벌해체 등 진보진영이 앞장서 제기했던 이슈가 보수정당까지 채택하고 수용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진보정치의 고민은 한층 더 깊어지고 세련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저자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듯이 반성과 성찰이 주를 이루다보니 대안모색에 대한 비중이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구체적으로 책 내용을 살펴보면,

1장은 ‘다수파의 원죄, 패권주의’를 다루었다.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돌아온 평가는 독단과 전횡을 일삼는 ‘패권주의자’란 비난이었다. 이 글에서는 왜 그런 평가를 받게 됐는지부터 밝힌다. 고단한 진보운동에 헌신하게 한 원동력은 강한 신념과 확신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배타적인 선민의식으로 나타났고 문제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주의’란 가치를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하고 다원주의적 태도를 가질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 제도적 해법보다는 정치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타협과 절충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장 ‘진보의 멍에, 종북주의’는 통합진보당에게 가장 난감하고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부딪히는 종북주의에 대한 글이다. 통합진보당은 그동안 북한 관련 쟁점에 대해 뚜렷한 자기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그런 태도가 원칙적으로는 일리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검증받아야 하는 정치인과 정당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을 추종하고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에 대한 해명과 반론도 있다. 없는 것을 없다고 증명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반북, 비북, 친북, 종북으로 나누고, 종북과 반북은 배제하되 친북은 물론 북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비북을 진보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북핵 문제와 3대 세습,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진보가 취해야 할 입장을 제안한다.

3장에서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비판 중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를 제외한 문제들을 살펴봤다. 우리는 진보정당에서 이념과 철학이 갖는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다만 그간의 진보진영 내 이념 논쟁이 실제로는 알맹이가 빠진 세력 간 갈등에 불과하며(‘이념논쟁’, 관행을 극복하자), 정통과 이단 논쟁 같은 소모적 양상을 띠고 있음을 꼬집는다(‘정통’과 ‘이단’의 이분법). 정당은 일사불란한 질서가 필요하지만, ‘오더’가 아닌 자유롭고 개방적인 토론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강조한다(일사불란함의 전제, 자유롭고 개방적 인 토론의 힘). 전민항쟁을 꿈꾸던 시절의 언어 습관이 갖는 문제를 지적하고(전민항쟁의 향수), 의회주의, 합법주의와 같은 어법이 나온 배경을 짚는다(의회주의, 합법주의 비판의 두 측면). 아울러 애국가 논란을 통해 진보가 가져야 할 ‘국가관’은 어떠 해야 하는지 짚고 있다(진보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4장 ‘진보 혁신의 고정관념’은 진보정치의 혁신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되풀이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진보의 거친 행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에 수긍하면서도, 진보정치의 근원적 동력일 수 있는 진보운동의 가치나 급진적 지향을 버리지는 말자고 주장한다. 다만 진보가 추구해야 할 급진성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 책의 한계다. 정권심판론과 같은 정치적 의제의 과잉이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 두 차례의 보수정부 등장 이란 현실에서 진보정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뿐 아니라 정치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낡은 진보’의 근거로 제시되는 민족 문제도 진보가 버려야 할 영역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대하는 진보당의 관성적 태도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4장은 또 진보정치의 근간처럼 여겨지는 ‘노동 중심성’이 눈앞의 시급한 과제를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을 제기한다. 노동운동에 대한 혁신 요구에 대해서도 진보가 현장에서의 실천을 떠나 관성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는 않은지 문제를 제기한다.

5장 ‘경제정책, 이념에서 현실로’는 진보정치에 대한 정치적 사고의 변화나 혁신이 정책 영역에서 어떻게 투영돼야 하는지 보여준 다. 우리 경제 현실에서 전통적인 진보/보수의 구분이 설명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며 그 원인을 밝히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재벌 해체’를 고수해야 했던 이유가 이념이 아니라 우리 경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야권도 경제성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면서, 현 단계에서 진보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유용한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진보진영에서 나오지 않았던 참신한 주장들이 있다. ‘부유세 논쟁’을 통해 진보정치의 성찰적 변화과정을 구체적으로 짚어가는 한편 ‘증세 논쟁’을 통해 진보진영도 세부적인 방법론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기회비용이나 상충관계가 없는 정책은 없다며 정답을 찾기보다는 대응방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어찌됐든 격동의 현장을 보냈던 진보정당 당직자들이 스스로의 실패와 좌절을 인정하며 기울였을 술잔들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일까 작가 장정일은 "정치에 관한 책이 이토록 마음을 아프게 할 줄 몰랐다"면서 "참혹하고 아름다운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는 좌우명을 누군가 독차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 이들의 것"이라고 추천사로 대신했다.(‘정치에 관한 책’이 이토록 슬플 줄이야 (장정일 독후감)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475)


친일과 분단, 전쟁과 군사독재, 그리고 그 오랜 과정에서 형성된 기득권 구조와 분단이데올로기가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결과, 한국사회는 21세 들어서도 겉만 화려한 채 그 내면을 썩어들어가고 있다. 1%, 5%의 최상층은 온갖 불법과 편법, 부당한 방식으로 부와 권력을 획득하고 있고, 95~99% 대다수 사람들은 허리가 휜 채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고 있다.
'헬조선', 'OECD 최악의 50관왕', '초고속 고령화와 저출산', '5포세대와 N포세대' 등이 바로 지난 100년의 한국현대사가 가져온 결과로서 21세기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표현들이다.

소위 '진보'는 그런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상이나 흐름, 정책이나 세력을 의미한다. '헬조선'을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변화를 시도하는 주체들부터 스스로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 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의 서문의 제목이 최근 몇 년 동안 격동적으로 전개된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진보정치권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것은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우리의 토론이 진보정치 실패 원인 분석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다. 토론을 통해 우리가 얻은 첫 명제는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이 책 전반에 스며든 전제가 됐다. 안타깝게도 어떤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글쓴이들의 부족한 탓이 크고 무엇보다 지나온 시대에 대한 해석이 명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토론 결과를 요약 해보면 다음과 같다."

"글쓴이들이 진보정당 15년의 역사를 모두 감당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은 시기를 남들과는 다소 다른 위치에서 지켜봤다. 합당과 분당, 그리고 정당 해산에 이르는 역사적 과 정에 필요한 실무를 처리한 당사자이기도 했다. 당의 지도부나 전문적인 연구자는 아니지만, 남길 수 있는 기록과 공유할 수 있는 평가가 있으리라 판단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무런 대표성이 부여되진 않았지만, 치열한 현장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라 믿었다."

"지난 몇 년간 함께 시련을 경험한 동료 중에 혹시나 이 책을 읽고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일일이 대면하여 양해를 구할 일이었으나 용기도 없고 부끄러워 그러지 못했다. 글쓴이 모두는 진보정치가 생존하기 힘든 척박한 한국 정치판에서 단지 살아남는 것을 넘어 수권 가능한 세력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부족하지만 이 책이 진보정치의 재기와 도약을 바라는 모든 이의 희망 가운데 자유롭고 개방적인 토론의 소재로 활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 2016년 5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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