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글항아리 이슬람 총서 3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배성민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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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평]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저, 배성민 역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Islam and Modernity>을 읽고 / 2015.03., 97쪽, 글항아리

2015년 1월 이슬람교 신도들 중 일부 근본주의 테러리스트 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저질러진 ‘샤도부 엡도 테러 사건’이 발생한 후, 프랑스 파리의 대규모 집회에 모습을 나타낸 이스라엘 수상과 영국 총리 등 서방 국가 수반들과 경찰을 환호하는 프랑스 시민들을 목격하면서 지젝은 혼란스러웠다.
“테러집단이 가한 위협은 기적을 이루어내고 말았다. 네타냐후와 올랑드, 라브로프와 캐머런, 그리고 시민과 공권력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1968년 급진주의자가 낳은 세대를 1968년 급진주의자가 맞섰던 원래의 적과 화해시킨 것이다. 미국의 애국법이 프랑스식으로 실현된 것 같다. 자신을 스스로 감시에 내맡긴 대중이 애국법에 환호하는 꼴이다.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13쪽)

하지만 지젝은 '지금이 바로 생각할 용기를 낼 때’라며 진지한 사고를 요구한다. "우리는 왜 이슬람을 읽어야 하는가?”
"자유주의 좌파는 왜 가짜 좌파인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왜 가짜 근본주의자들인가?”라는 질문들을.

이슬람 근본주의의 성향을 지닌 두 형제 테러리스트가 풍자 주간신문인 샤를리 에브도 사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했다. 총격 끝에 열두 명이 숨졌다. 이 경악스러운 테러는 언뜻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만평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샤를리 에브도는 이미 여러 번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을 실었고, 그 때문에 폭탄 테러나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 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 게재를 중단하지 않았다. 
즉 이 사건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분노가 극단적인 테러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을 실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만평이 테러나 방화 사건을 불러왔을 때 잠깐 잘 팔렸을 뿐 늘 적자에 시달리던 인기 없는 신문이었다. 그렇다면 질문. 어째서 두 형제는 이런 한물간 신문에 실린 만평에 ‘분노’를 느꼈을까? 진정한 근본주의자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특징들이 그들에게는 유독 보이지 않는다. 진짜 근본주의자에게는 시기도 원한도 없다.”(18쪽)

그는 묻는다. "혹시 테러리스트가 보이는 저 열정은 오히려 그에게 진짜 확신이 없음을 증거하는 게 아닐까? 얼마나 믿음이 연약했기에 풍자 주간지에 실린 한심한 만화를 보고 위협을 느꼈겠는가!" 말하자면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휘두른 폭력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19쪽)이라는 것이다. 

세계 자본이 민족국가의 힘을 잠식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개되면서 ‘이슬람국가IS’가 나타났다. 그러나 세계 자본이 가져온 경악과 두려움을 똑같이 일으키는 주체가 IS 체제이기도 하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바로 이 IS 안에서 자신의 극단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사실 ‘근본주의’라는 말은 아랍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용어도 서구권, 특히 영어권에서 붙인 이름이다. 원리주의라고도 일컫는 근본주의가 단지 전통과 교리 준수를 중시하는 것이라면 모든 이슬람 종파가 그러할 것이다. 여기서 근본주의가 가리키는 것은 테러를 단행하는 등 훨씬 과격한 태도다. 그렇다면 이슬람 근본주의는 단지 전근대적이기만 한 걸까?

지젝은 "좌파는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중동에서 좌파의 실패가 근본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IS에 합류하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프랑스는 9.11 테러 이후 미국처럼 우경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휩싸여 있다. 어째서일까?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자신이 우월하다는 진짜 ‘인종주의’다운 확신이 없었듯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지킬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실제로 내재하는 결함에 대한 반응이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20쪽)라는 것이다.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미 '근대적 언어'로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용은 전통적일지라도 말하는 방식은 근대적이라는 것이다. 가령 IS 지도자인 아부 바르크 알 바그다디의 사진을 보면 멋진 스위스제 시계를 차고 있다. IS는 온라인으로 선전하고 금융거래를 할 만큼 잘 조직되어 있다. 즉 그들은 "근대화를 극구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착적 근대화를 보여주는 사례”(21쪽)에 가깝다.

하지만 지젝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관점 안에 내재해 있는 모순도 강조한다. 이슬람교도가 신성모독을 대면할 때 침묵하지도, 가만히 있지도 못하듯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진영 역시 자신들의 '자유’가 모독당하면 가만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정치적이고 영적인 모든 권위를 비웃고 풍자한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타인이 겪는 고통과 모욕에 대한 과민한 반응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2011년 프랑스는 이른바 ‘부르카 금지법’을 만들었고, 이에 대해 파키스탄 출생의 한 여성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제소하기에 이르렀지만 유럽인권재판소는 그것이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두 인종이나 두 종교 집단이 함께 살지만 양립할 수 없는 삶의 규칙을 갖고 있을 때, 이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서구에서는 “아동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이유로 서구식 교육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이 ‘관용’을 베푸는 “자유로이 선택하는 주체”, 즉 아미시 공동체나 미국식 교육이냐 혹은 부르카를 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등장하려면 그들은 먼저 자기 뿌리와 전통에서 잘려나가고 특수한 생활세계에서 분리되는, 지극히 험한 폭력을 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원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는 왜 이슬람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역자는 지젝을 비판한다. 역자는 지젝이 "아마도 이 질문을 이슬람교 안에서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고 해석한다. 자유주의의 언어로 이슬람교를 상대하면 상황이 더 나빠지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와 이야기하려면 이슬람교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지젝은 이 질문을 던질 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는 이슬람교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서로를 이간질한다. 이슬람교 앞에서는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자유주의 앞에서는 이슬람교를 옹호한다.”며 지젝을 비판한다.
역자는 “이슬람교 안에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이 자리를 재규정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세속적 자유주의를 이슬람교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유일신교 안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세속적 자유주의가 공존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훨씬 더 차기 있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세속적 자유주의가 당당하게 유일신교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유일신교도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테러는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누가 ‘테러’가 무엇인지 규정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비난하는가? 주로 국제 정치경제를 지배 또는 주도하는 서구진영의 개념과 논리이다. 또한 ‘근본주의’나 ‘원리주의’ 그리고 ‘풍자’와 ‘멸시’, ‘자유’와 ‘평등’,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적 사상, 도덕 개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슬람교나 중동지역 사람들도 그런 서구진영의 개념이나 세계관, 논리나 도덕을 받아들였을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만의 고유한 사회문화를 수백, 수천 년 동안 지녀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젝이 이슬람교와 서구의 화해와 대화를 모색하려면 서구적 관점과 개념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젝을 비롯한 서구의 좌파가 오랫동안 동양 및 이슬람과 화해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 그런 기본적인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2015년 8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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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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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저, 공문혜 역 <침묵 silence >을 읽고 / 2003. 01., 308쪽, 홍성사


<침묵>은 1966년 처음 출간되었으며, 17세기 일본 막부 체제가 가톨릭을 탄압했던 사례를 소재로 하여 '인간이 고통받을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그리스도 교인의 고뇌와 의문을 담아낸 기독교 소설이자 역사소설이다.

1635년 카톨릭교 예수회는 일본에 파견된 선교사 페라이라가 배교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로드리고 신부를 다시 선교사로 보낸다. 일본에 도착한 로드리고 신부는 가톨릭 공동체에서 다양한 군상들을 발견한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박해 때문에 하느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피안의 세계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고, 배교자라는 이유로 미움받는 기치지로는 자신의 나약함으로 고뇌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관헌에 붙잡혀 끌려간 로드리고 신부는 '하느님은 거미줄에 걸린 나비'라면서 기독교 신앙을 저버린 선배 가톨릭 신부 페라이라의 배교를 직접 확인한다. 자신도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고문당하는 교우들을 위해 배교를 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할 상황에 처해 고뇌하고 갈등한다. 
이때 그리스도가 그에게 말한다. "너는 내가 교우들을 외면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 같이 고통받고 있었다", "나를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겉으로는 성화상 밟기로 배교하지만, 속으로는 기독교 신앙을 보전한다.

로드리고 신부는 파교한 이후 일본 막부의 배교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카톨릭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서적을 발간하고, 일본인 카톨릭 교도의 배교 업무에 참여하고, 일본으로 들어오는 그리스도교 신부와 종교물품을 색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중에 다시 자신에게 찾아온 기치지로에게 고해성사를 해준다. 그는 유럽의 교구나 교황청을 배반했을지언정 그리스도를 결코 배반하지 않았다고 다짐한다. 다만 그때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모든 시련이 필요했으며, '나는 일본의 유일한 가톨릭 사제'라는 자부심을 갖고서 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당시 일본의 모습과 주인공들의 상황은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건과 인물이 실존한다고 전해한다. 당시 일본에 파견된 유럽의 사제 조세페 캘러, 알로요, 카솔라 신부는 고문과 ‘구멍 매달기’ 형벌을 받아 파교하였다. 조세페 캘러는 파교한 뒤 막부 권력에 협조하면서 일본 여인을 아내로 맞아 살다가 8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작가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만약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고통받는 민중들을 외면하는 그분을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무기력한 분으로 보아야 하는가, 의지가 박약하여 종교적 신념을 지킬 수 없는 기독교인을 배교자라고 비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예수회 선교사인 로드리고를 통해 독자에게 하면서도 억지로 답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작품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작품은 카톨릭 교구에 보내는 편지 형식과 3인칭 시각으로 주인공의 행동을 묘사하는 형식이 섞여 있음에도 독자가 읽는 데 불편하지 않다. 서양인 신부의 시각으로 17세기 일본의 모습과 일본인의 삶에 대해 표현했지만 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세밀한 심리묘사가 장점이자 특징이다. 특히 고문당하는 교우들을 위해서 배교할 것인지 고민하는 가톨릭 신부 로드리고의 고뇌와 그리스도와의 대화장면은 작가로서의 실력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이 잘 묘사된 장면이다.

<침묵>은 종교인과 신도들이 읽기에 불편할 수 있다. 카톨릭 사제였던 주인공이 결국 배교한 것도 불편하게 하지만, 종교인으로서 기존의 종교 이론과 해석을 부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인류는 아직 신이 존재하는지 증명하기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지 증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로드리고 신부의 ‘배교’가 실제로 신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피교자의 발에 짓밟히면서도 이것을 용납하고 계셨다는 외경스러운 신앙의 역설을 통해 신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을 통해 종교가 아닌 인간의 ‘신념’ ‘양심'과 ‘신념/양심을 지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신념이나 양심을 지키려는 것 뿐만이 아니라 불의와 비상식 또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을 따르지 않으려는 마음까지 포함될 수 있다. 인간은 얼마나 강할까? 나약한 사람은 신념이나 양심을 가질 수 없을까?
누군가 세월호 희생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밟지 않으면 국가를 부정하는 매국노(빨갱이,종북)라며 고문(고발,공개)하겠다면 당신은 밟을 것인가? 그 그림이 세월호 희생자가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그 그림이 이스람교의 마호메트 사진이고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면 기꺼이 밟을 것인가? 북한의 인공기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밟을 수 있을까?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깃발이라면 곧바로 짓밟을 수 있는가? 

-작가 소개-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년 3월 27일 ~ 1996년 9월 29일)는 일본의 작가이다. 이모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1955년 발표한 《백인》(白い人)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을 수상하고 《바다와 독약》(海と毒藥)으로 일본 문학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대표작으로는 17세기 일본 막부의 가톨릭 탄압을 소재로 한 《침묵》(沈默, 1966년)이 있는데, 침묵은 홍성사에서 한국어판으로 출판하였다. 엔도는 현대 문학에 영향을 끼쳐서 영국의 가디언지에서는 엔도 슈사쿠의 별세를 기념하는 기사를 작성하였다.

-인상 깊은 문장-

”1638년 1월 일본에서는 3만 5천 명의 카톨릭 신도들이 반란을 일으켜 시마바라를 중심으로 막부군과 악전고투한 결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학살되었다는 것이다.”(17쪽)

“저희 종교가 이 지방 농민들에게 물밀듯이 확대되어 간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사람들이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기 대문입니다. 오로지 인간으로 취급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제들의 인자함에 동요되었던 것입니다.”(50쪽)

“아니, 기치지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금 더 다른 무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박해가 시작되고 오늘까지 20년, 여기 어두운 일본의 땅에 많은 신도들의 신음이 가득 차고 사제의 붉은 피가 흐르고 교회의 탑이 붕괴되어 가는데, 하나님은 자신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희생을 보면서도 아직 침묵하고 계십니다. 기치지로의 어리석은 원망에 그러한 물음이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86쪽)

"그가 혼란에 빠진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뜰 안의 정적과 매미 소리와 파리의 날개 소리였다. 한 인간이 무참히 죽었는데도 바깥 세상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전과 다름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바보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순교란 말인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왜 당신은 침묵하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저 애꾸눈 농민이 오로지 당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런 정적이, 이런 고요가 계속되는가? 이 한 낮의 고요함. 매미 소리. 이런 어리석고 참혹한 일과는 전혀 관계 없다는 듯이 그분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이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186쪽)

"이것이 기도한 말인가? 기도란 당신을 찬양하기 위해 있는 거라고 오래오래 믿어 왔지만 그러나 이런 당신을 향한 기도는 마치 저주를 위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비웃음이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이윽고 내가 죽임을 당하는 날도 여전히 바깥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갈 것인가. 내가 죽임을 당한 뒤에도 매미는 여전히 울고 파리는 졸음을 재촉하는 날개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닐 것인가. 그렇게까지 영웅이 되고 싶은가. 네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남모르게 죽는 참된 순교가 아니라 허영을 위한 죽음인가. 신도들에게 칭송받고 기도받고, 그리고 저 신부는 성자였다는 말을 듣고 싶기때문인가.  희생의 제단 앞에서 피리 소리가 구슬프게 흐른다.”(186쪽)

"그때 하늘은 잔뜩 흐리고, 태양은 구름 뒤에 사라진다. "온 땅에 어둠이 임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이것이 오랫동안 생각해 온 순교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본 농민의 순교는 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 저 사람들이 입고 있는 남루한 옷처럼 초라하고 가련하기만 했다.”(187쪽)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276쪽)

"그 성화 위에 나도 발을 놓았다. 그때 이 발도 움푹 들어간 그분의 얼굴 위에 있었다. 내가 수없이 생각한 얼굴 위에. 산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나 옥사에서 언제나 생각해 내며 따뜻한 위로를 받았던 그분의 얼굴 위에. 인간이 생존해 있는 한 선과 아름다움 그 자체인 얼굴 위에. 그리고 평생을 사랑만을 베풀려고 했던 그분의 얼굴 위에. 그 얼굴은 지금 성화판의 나무판자 속에서 닳고 패어 버린, 그리고 슬픈 듯한 눈을 하고 이쪽을 보고 있다. "밟아도 좋다"라고 슬픈 듯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간들과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293쪽)

"성직자들은 이 모독의 행위를 격렬하게 질책하지만,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콘 그분을 배반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최후의 가톨릭 신부이다. 그리고 그분은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비록 그분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오늘까지의 인생은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행위를 따르며 배우며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293쪽)

[ 2015년 8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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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의 길 - 10.4 정상선언 주역들이 말한다
김만복.백종천.이재정 지음 / 늘품(늘품플러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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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참여정부 후기 외교안보통일 관계자인 김만복, 백종천, 이재정의 < 한반도 평화의 길 : 10.4 선언 주역들이 말한다>를 읽고 / 2013. 03., 449쪽, 늘품플러스

이종석의 <칼날 위의 평화>와 김종대의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로 참여정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돌아본 후, 이어서 참여정부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비교해볼 수 있는 책을 찾아보았고, <한반도 평화의 길>을 골랐다.

저자인 김만복, 백종천, 이재정은 참여정부에서 각각 국정원장, 안보실장, 통일부 장관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0.4 남북 정상선언을 이끌어낸 실무주역들이다.
김만복은 유신독재 시대에 공채로 국정원에 들어간 후 외교관을 지냈고, 백종천도 유신독재 시대에 육사를 나와 육사에서 교육을 담당한 바 있다. 이재정은 성직자, 교육자, 정치인이라는 여러 분야에 종사한 후 현재 경기도 교육감이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가 막 집권했던 2013년 초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면서 대북정책에 대해 집권 세력에게 조언하기 위해 <한반도 평화의 길>을 출간했다. 특히 어자들은 이 책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10.4 남북정상선언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최초의 책으로 회담 전체의 실체를 밝혔다고 자평한다.
이 책의 공저자인 3인이 모두 정상회담의 전후과정은 물론 정상회담장에 배석했던 책임자로서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2013년은 한반도에 정전협정이 발효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평화체제와 평화협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남북관계의 이정표를 세우고 함께 갈 수 있는 원칙을 만들었다면, ‘10·4 남북정상선언’은 그 원칙을 이행할 수 있는 실행도구다. 그리고 그 성과는 차기 정부가 남북 간 합의사항을 얼마만큼 지키느냐의 문제로 넘어갔다. 과연 남과 북은 ‘한반도 평화’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평화의 결실을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반도 평화의 길: 10·4 정상선언 주역들이 말한다]가 바로 그 결실의 출발점이다.”(서문)

저자들은 이 책에서 먼저 1953년부터 현재까지 역대정권에서의 남부관계를 개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한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역점을 두어야 할 남북관계 발전방향과 과제를 제안한다. 3명의 공저자가 분야별로 나누어 집필하였다. 
제1부는 남북관계의 지향 목표와 남북관계 역사 개관(김만복), 제2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집행결과 평가(백종천), 마지막 제3부는 향후 과제(이재정)로 구성되어 있다.

‘남북관계의 지향 목표’에서 김만복은 “남북관계의 궁극적 목표가 평화적 통일”이라고 규정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거의 대다수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외세에 의해 한반도가 분단된 지 이제 70년이 다 되어 가며, 냉전이 종식되고 독일이 통일된 지도 벌써 20년이 흘렀다’면서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다”고 진단한다. “21세기 탈냉전, 탈이념, 글로벌 시대에 유독 한반도에서만 냉전적, 이념적, 군사적 대결이라는 시대착오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당면 목표를 "‘평화적 통일’이라는 우리의 민족사적 과제와 궁극적 목표를 향하여 남북이 화해,협력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 ‘남북경제공동체’를 구축하며 이를 토대로 ‘사실상이 통일 단계’인 ‘민족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평화적인 통일’ 기반을 조성해 나가는 데 두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김만복이 남북관계에서 평화적 통일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고 ' 평화체제와 평화협정’이 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지 그 이유를 세세하게 제시하지는 않았다. 간단하게 ‘시대착오적인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아마 자세한 이유와 설명을 덧붙이기에는 이 책의 발간 목적에서 약간 벗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통일외교안보 분야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일반 독자들이 저자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유’ 또는 ‘필요성’을 설명하는 내용을 어느 정도 할애해야 했을 것이다. ‘당위’와 ‘상황’으로는 남북관계와 같은 거대하고 민감한 주제를 받아들이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적 통일은 시대적 상황과 민족적 당위라는 거시 담론을 뛰어넘어 당장 한반도 남북의 주권자인 국민(인민)들이 분단체제와 남북대결로 인해 삶의 질이 낮아지고 미래에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역사 개관’에서 김만복은 1953년 이후 남북관계를 7단계로 평가했다. 1단계는 1953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의 ‘적대적 대결기’, 2단계는 1970년대 초부터 1973년 8월까지의 ‘대화 모색기’, 3단계는 1973년 9월부터 1970년대 말까지의 ‘냉각기’, 4단계는 1980년 2월부터 1992년 9월까지의 ‘대화 추진기’, 5단계는 1992년 10월부터 1998년 2월까지의 ‘정체기’, 6단계는 1998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의 ‘화해,협력기’, 마지막 7단계는 2008년 3월 이후 현재까지 ‘경색기’다. 냉전 구도와 외세의 입김을 극복하고 박정희 정권의 7.4 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10.4 공동선언까지 그동안 남북 사이에 공감하고 합의했던 각종 의제들을 추진했다면 한반도의 역사를 달라졌을 것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출간일은 2013년 3월인데, 박근혜 정부 등장이후부터 2015년 8월인 현재까지도 ‘경색기’는 이어지는 것 같다. 물론 그 사이에 남북관계는 경색 중에도 작년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고, 올해 광복70주년 민간단체 주도의 남북공동행사 추진을 위한 대화는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과 집행 결과에 대한 백종천의 평가는 예상대로다. 이미 이명박 임기 중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내외 전문가들과 학자, 정치권과 언론에게 ‘실패’이자 ‘후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백종천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시한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부터가 허구적이었으며, 이는 남북관계와 관련한 통치철학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 출발점은 이명박 정부의 ‘북한붕괴론’에 기초한 대북한 인식의 오류였고,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임기 중에 수립한 대북정책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는 집권 초기에 취한 청와대 내 통일외교안보 조직의 해체에 따른 ‘컨트롤 타워’의 부재도 큰 기여를 했음을 지적한다. 정치적 동기에서는 소위 ‘ABR(노무현 정부의 정책 부정)’에서 비롯되었다.
한 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장기적, 근본적 목표를 향해 전진하기는 커녕 당면 목표마저 후퇴시키며 민족과 역사에 대역죄를 저지른 셈이다.

1004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공저자들의 평가는 무척 높다. 615 공동선언에 기반했기 때문에 1004 공동선언에서 많은 세부적인 내용들을 합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노무현 정부의 임기 말인 2007년 10월에 남북정상회담을 실시했다는 것이 여러 가지 단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2007년 12월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는 정치행위”로 해석하는 보수진영의 평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남한의 정치사회 성격상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실시된 남북공동선언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대북정책과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 국회와 언론, 시민사회진영과 사전에 교감하여 조율한 것도 아니었고, 대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승리한(승리를 예상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을, 그것도 남북관계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사안의 실행여부는 추진 과정과 방식에 따라 여당의 승리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노무현 정부와 이 책의 공저자들이 너무 순진하다고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이재정은 제3부 ‘향후 과제’에서 박근혜 정부 초기의 대북정책 추진환경을 분석한 후, 대북정책 추진방향 - 3대 목표, 6대 기조, 5대 추진 원칙 - 과 분야별 우선추진 과제를 제시한다. 평화정착, 공동번영, 민족공동체 형성 분야 등 3가지 분야별로 총 19개 우선 추진과제다. 추진과제가 다채롭고 기발하다. 615, 1004 공동선언을 토대로 한다면 당장이라도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별도로 대처 방향을 제시한다. 먼저 그는 북핵문제가 “국제문제이자 남북문제”라는 점을 환기시킨 후, “이명박 정부가 북핵문제를 남북문제로 보고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북한의 핵무장을 방관하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에서 “북-미협상과 6자회담 등 국제적 해결의 틀과 남북대화라는 ‘투 트랙’ 전술을 유연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이재정이 박근혜 정부에게 제안한 남북관계 정책방향과 과제는 대부분 남북관계의 궁극적 목표와 당면 과제를 잘 짚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를 지나며 평가하자면 이명박 정부보다 심각할 정도로 통치철학도 없고,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정책과 전략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실효성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이재정이 제안한 정책방향이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외교적 목표나 목적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백종천이 제2부의 중간에서 지적했듯이 2010년부터 미국 행정부의 북핵 대처방향이 ‘비핵화’에서 ‘핵확산 금지’로 선회하고 있다는 정황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 집권 이후 북한의 목표와 태도 역시 ‘핵확산 금지 합의를 통한 체제보장과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나 미국의 전략, 목표가 그렇다면 남북관계의 지향점이 큰 방향에서 재점검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에서 해결할 지점은 ‘북핵’ 문제만이 아니기 때문에 분단체제의 극복과 평화적 통일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더미처럼 많다. 1953년부터 2007년까지 남북이 합의한 사안들에 북핵 문제도 없었다. 남한은 이미 지구상에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과 수교를 맺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핵무기는 오히려 제3차 세계대전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따라서 분단체제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조성되는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해소하고 남북이 대화를 통해 화해,협력을 본격화하고 남-북-미가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상호 공존에 나선다면 북한의 핵무기는 당분간 문제될 것이 없다. 어차피 지구상의 핵무기는 한꺼번에 단계적으로 위협을 제거해야 할 것이므로..

이재정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리고 “교류협력의 가치가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 더 나아가 “경제협력이 평화를 이룩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하는가”라는 점을 알게 되기를 바랬다.

[ 2015년 8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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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 반성과 성찰의 기록
신석진 외 지음 / 생각비행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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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진보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고 보수가 `개인 내지 패거리 이익에 대한 집착`이라 할 때, 200년대와 달리 최근 몇 년간의 진보는 분열과 대립을 거듭하면서 거대양당의 무능과 부패를 견제하지 못했다.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진보에게 필요한 반성과 성찰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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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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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빅터 프랭클 저, 이시형 역 <죽음 수용소에서,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 승리>를 읽고 / 2005. 08., 246쪽, 청아출판사


법정스님 추천도서 중 서른 여섯 번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겪은 생사 엇갈림 속에서도 삶 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 승리를 보여준 프랭클 박사 자서전적인 체험 수기..

저자는 잔인한 죽음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기나긴 죄수 생활에서 자신 벌거벗은 몸뚱아리 실존을 발견했다고 말한다.부모, 형제, 아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모두 죽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인간으로서 모든 가치를 파멸당한 채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핍박 속에 몰려오는 죽음 공포를 견뎌내고 미있는 삶을 발견하고 유지했다는 저자 이야기는 독자들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 체험을 바탕으로 프랭클 박사는 자신 독특한 정신분석 방법인 로고테라피('미치료'란 뜻이며 빈 제3정신학파로 불림)를 이룩한다. 조각난 삶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미와 책임 확고한 유형으로 짜 만드는 것이 프랭클 박사가 스스로 창안한 현대 실존 분석과 로고테라피 목적이자 추구하는 바다.(책 후반부에 로고테라피에 대한 개념과 이론, 치료방식 등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음)

강제수용소에서 저자를 생존시키고 삶이 미있도록 한 것은 아래와 같이 개인적인 깨달음과 노력이었다.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 닥치더라도 설령 변할 수 없는 운명에 닥치더라도 인생에서 미를 찾아야 한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해서 인간 잠재력을 증명하는 것은, 개인 비극이 승리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곤경에서 인간이 성취를 일구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더 이상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 불치 병이나 수술이 불가능한 병에 걸렸다 할지라도 우리는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도전을 해야 한다.”

그는 인간이 ‘우스꽝스럽게 헐벗은 자신 생명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았다. 책에는 이때 사람들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무감각 복잡한 흐름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제일 먼저 그들은 자신 운명에 대해 냉정하고 초연한 궁금증을 갖는 것에서 구원을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곧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남아있는 삶을 지키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다. 가까이서 자기를 지켜보는 사랑하는 사람 모습을 떠올리는 것으로, 종교에 지하거나 농담을 하는 것으로, 나무나 황혼 같이 마음을 치유해주는 아름다운 자연을 단지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그들은 굶주림과 수모, 공포 그리고 불에 대한 깊은 분노 감정들을 삭인다. 
하지만 명백하게 몰상식한 이런 시련에서 더 큰 미를 찾도록 도와주지 않는 한, 위에서 얘기한 순간적인 위안들은 그들에게 살고자 하는 지를 북돋아 줄 수 없다. 
바로 여기서 저자는 독자들을 실존주 중심적인 주제와 만나게 해준다. 즉,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제수용소에서는 모든 상황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이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이라는 것이다.

저자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제가 강제 징병과 강제징용, 위안부 등으로 동원되어 일본과 만주, 동아시아 전역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떠올랐다. 2차대전 현장에서 일본군에 해 학살된 징병 조선인들, 일본과 만주 곳곳에서 강제노동 후 몰살된 징용 조선인들, 아시아 전쟁터 곳곳에 위안부로 끌려가 학대되고 살해된 위안부 조선인들,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서 미국 원자폭탄에 해 사망하고 피폭을 당해 고통받으며 숨져간 조선인들...
히틀러 나치 홀로코스트와 일제 조선인 학살 및 한반도 내 항일 조선인 학살은 학살 규모와 방향은 달랐지만 비인간적인 학살과 제노사이드 수준 만행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나치 유대인 강제수용과 학살과 탄압은 독일군과 독일인에 해 이루어졌지만, 조선인에 대한 학살과 탄압 맨 앞에는 친일파 조선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일제 잔혹함과 일부 친일파들 굴종이 면면히 이어져 온 후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출판사는 이 책에 대해 "앞일을 가늠할 수 없는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조차도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성 승리를 일구어낸 한 '보통 사람'이 보여준 나치 치하 강제수용소에서 경험은 이제는 개인경험이 아닌 인류 경험이 되었다."라고 극찬한다. “우리 비극적인 과거로부터 얻은 교훈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샘솟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일정 부분 출판사 평가에 동하고 공감한다. 100년 넘게 이어지는, 외세에 유린당하고 친일친미 사대주 세력과 냉전수구세력 폭압 속에서 한국 민중들과 엘리트 계층이 보여주는 사대주와 굴종과 비겁함과 좌절과 변절 속에서도 결국 개인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는 아우슈비츠 저자 태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과 저자에게 쉽게 동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듯한 방향성에 공감하기 어렵다. 주어진 문제를 개인 문제로 치환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제국주 간 식민지 쟁탈전에서 시작된 것이고 히틀러 유대인 학살은 증오와 공포를 이용한 통치술이 기본 바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어진 인생 조건을 저항 없이 수용하면서(나치 잔혹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속에서 개인적으로 자살하거나 좌절하지 않기 위해 개인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뇌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저자와 같은 아주 능력있는(?) 개인 소수이기 때문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그 중에서도 저자와 같이 정신적으로 망가지지 않은 사람은 아주 극소수일 것이다.
수백 만 명 유대인들이 자신들처럼 강제로 끌려와 수용되었고 차례로 학살되고 있음을 알았음에도(비록 나치 힘과 폭력이 막강하다 하더라도..) 민족적, 집단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저항할 방법을 모색하기 보다 쉽게 굴복하고 수용소 내에서 외부 도움만을 바라는 자세를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들 그런 모습이, 즉 유대인 강제 동원에 협력했던 유럽 내 유대인 조직 엘리트들 태도와 일반 유대인들 체제 및 폭력에 순응이 홀로코스트 후 유대인 학살을 빌미로 서방 문명국가(?)폭력에 도움을 받아 팔레스타인인들을 ?i아내고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을 건국한 파렴치한 행위로 고스란히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건국 후 이스라엘 정치권과 정부, 엘리트들이 미국과 서방 국가들을 (서로)이용하여 중동인들과 중동 국가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공격하고 있는 현재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책 속애서 발견한 한 가지 미심장한 이야기...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죽은 때는 1944년 성탄절에서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짧은 기간이었다고 한다. 많은 유대인들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전쟁이 끝날 것을 예상했다가 예상이 틀리자 급속하게 희망을 잃었고 그런 절망적인 태도가 사람들 살고자 하는 지를 꺽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제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많은 친일, 부일 협력자가 발생한 것도 1945년 해방 직전 몇 년 동안이었다.
즉, 현재 박근혜 정권 또는 미국에 종속과 냉전수구세력을 극복할 수 없다며 절망하고 좌절하게 되는 순간 한국인 누구나 변절하거나 육체적, 정신적 죽음에 처할 수 있으니 스스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2013년 12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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