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 나를 찾아 떠나는 유창선의 인문학 동행
유창선 지음 / 새빛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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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가 행복하지 못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 나를 찾아 떠나는 유창선의 인문학동행> 유창선 저, 2016. 3., 새빛


2016년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시사평론가인 저자는 한국이 이미 ‘공동체로서의 기능이 정지된 사회’라고 진단한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직장이 변변치 않다는 이유로, 너무 정직하게만 살았다는 이유로 많은 한국인들이 좌절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OECD 국가 중 출산률과 자살률이 1위를 달리는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한마디로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사회라는 공동체에서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고, 그 공동체가 젊은 세대에게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방송과 팟캐스트에서는 특정 정파나 정치인의 편에 서 있는 증오와 저주의 언어들이 쏟아지고 있고, 그 우물 안에 모인 마니아들은 열광하곤 한다. 이 같은 광경 그 어디에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 밀알이 되는 진보의 숭고함이나 품격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진보의 숭고한 가치가 자리하고 있어야 할 머릿속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완고한 집착만이 가득 차 있다. 넓은 세상의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들의 곁을 떠나간다. 다른 사람들과는 소통하지도, 정서를 공유하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진보의 자폐증이다.”(128쪽)


직업이 정치평론가였던 저자는 정치에 대한 기대도 접은 듯 보인다. 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정치에 목을 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2008년 이명박-새누리당 정권이 집권한 이후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방송과 뉴스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2013년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이 등장한 이후로는 저자뿐 아니라 야권 성향이거나 중립적인 정치평론가들마저 베제되어 버렸다. 정치적인 경쟁 대상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국민들의 시야에서 제거하려는 전근대적인, 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방식의 ‘정치 아닌 정치’가 다시 무덤 속에서 부활한 셈이다. 

방송과 뉴스에서 밀려난 이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인터넷 소셜스페이스 공간에서 활동하며 박근혜 정권을 견디던 저자를 더욱 지치고 좌절하게 만든 것은 한국정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욕망의 쟁투’였다. 그 쟁투 중 특히 여야간의 대결뿐 아니라 야권과 진보진영 내부에서 벌어지는 쟁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삶’과 ‘사람’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숨기지 않고 말을 해도 된다면, 우리의 앞날에 대한 나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생존과 욕망에 눈멀지 않아도 되는 착한 세상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든 삶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대했던 정치는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었다. 정치의 세계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였기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파벌 간의 쟁투는 우리의 기대를 번번이 배신하곤 했다. 그래도 우리가 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목을 매고 운명을 위탁한다면 우리는 너무 비루해진다. 변할 수 없는 진실은, 우리의 삶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메시아는 없다.”(5쪽)


저자는 세상을 사는 것이 원래부터 힘든 일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한다. 생존과 욕망에 눈멀지 않아도 되는 착한 세상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든 삶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임을 저자는 숨기지 않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려울수록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였다.

정치보다도, 어떤 이념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그를 위해 우리는 더 넓고 깊어져야 한다는 것, 저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개인적 삶에서든 사회적 삶에서든 쉬운 삶은 없다. 세상도 하루아 침에 바뀌는 것은 없다. 이 시대의 거대한 벽이 돌멩이 몇 개 맞아 해체되거나 재구성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세상을 더 낫게 변화시키는 일은 원래 어려웠던 것이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려워도 더 나은 삶과 세상에 대한 지치지 않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가능성 여부를 떠나 그 길에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존감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에 상관없이 자기의 힘을 키우고 신뢰하며 살아갈 때 삶의 지구력이라는 것이 가능해 질 수 있다."


"한번에 바뀌는 역사는 없다. 희망이 아니라 나 자신을 믿어야 지치지 않고 그 길에 서 있을 수 있다. 산 정상이 너무 높아 보인다면 아득한 그곳을 보며 오르지 말고, 한발 한발 내딛는 내 발을 보며 오르라. 가끔은 내려가고 싶은 충동을 견뎌내며 땀 흘려 오르다보면 어느덧 가고자 했던 그 곳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240쪽)


삶이 힘들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지금 이것이 내가 원했던 삶인가? 이렇게 사는 게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해 저자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 준다. 

그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대에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함께 손을 잡고 고민하고 싶어 한다. 끝없이 강요받는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잃어 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라 말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것은 밀실 속으로의 도피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배려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갈 때,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과 손잡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이 재산과 명성을 얻는 데는 몰두하면서도 자기 내면의 영혼을 돌보는데 소홀한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 영혼을 돌보지 않는 모습이 반드시 이기적이거나 탐욕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자기보다 사회를 우선하는 이타적 삶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도 자기 영혼을 돌보지 않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세상을 위해 이타적 삶을 살면서도 정작 자신의 영혼은 피폐해지고 스스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들 말이다.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느라 그렇다고 설명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좋은 삶이라 하기는 어렵다. 내가 행복하지 못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는가"(16쪽)


저자는 오랫동안 정치평론가 생활을 하면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자신의 활동이 좌우되는 일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외부에 의해 휘둘리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삶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그 생각들을 써내려갔다고 말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는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는 우리 삶의 고민이 고전의 대가들과 함께 펼쳐져 있다. 소크라테스와 니체와 톨스토이와 고흐가 자신의 삶에서 느꼈던 고통과 번민이 오늘 우리의 고민과 손을 잡으며 잃어버린 자신을 찾도록 도와준다. 철학을 우리 삶의 울타리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독자들의 삶을 반성하게 한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저자의 독서량이 엄청나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정치평론을 하면서 언제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책을, 그것도 자기 것으로 깊이 있게 읽어냈을까 놀라게 될 정도다. 독자들은 이 책 한 권으로 고전 100권의 힘을 그대로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부터 칸트와 니체를 거쳐 푸코와 데리다에 이르는 철학, 소포클레스와 오비디우스에서 시작하여 단테,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카프카, 카뮈에 이르는 문학, 그리고 다윈과 윌슨, 도킨스의 과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통찰들이 이 한 권의 책에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독자 대신 책을 읽어주고 요약해주는 것이 아니라 책, 철학, 인문학을 공부하는 진정한 목적이다.


"우리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이유는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이다. 마음속에 울림이 생기면 사람은 생각이 변화하게 된다. 생각의 변화는 다시 내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 의미를 갖는다. 머리만 큰 사람이 아니라 다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어 뚜벅뚜벅 걸을 수 있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가 연결되어 있는 세계의 변화로 이어질 때 나의 변화는 비로소 완성된다. 생각이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은 다시 세상을 바꾼다.”(248쪽)


‘나를 찾아 떠나는 인문학 동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저자가 인문 고전 공부를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는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들이 저자의 공부를 따라가기에는 무척이나 벅차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라는 한 권의 책 속에 저자 자신이 회의하고 고민하는 여러 개념들-인간, 삶, 탐욕, 불안, 행복, 진보, 자유의지, 자존감, 분노, 부활, 이념, 혁명, 고통, 부끄러움, 죽음, 자살, 용기, 희망, 연대, 도덕 등-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부터 현대 서구의 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론이 등장한다. 철학자 이외에 소설가와 시인의 작품의 일부가 소개되기도 한다. 그 수가 무려 백 명이 넘는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렇게 많은 철학자와 인문학자가 동원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공부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따라주지 않는 일반 독자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그런 세상 역시 ‘불공평’할 것이다. 철학자나 소설가의 작품 하나를 이해하기에도 보통의 시민들은 힘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인상 깊은 문장 -


"절제되지 않은 분노의 해악이 역사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도 과잉 분노가 만들어내는 거칠은 인간 심성 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분노를 다스리는 주인이 되지 못한 채 그 노예가 되는 경우를 말이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분노하여 세상을 바꿔 야 한다는 '진보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런 모습은 흔하게 나타난다. 중요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진보라는 마을의 사람들 내부에서 나타났던 내부에서 나타났던 민낯은 이 사 회에서 진보가 어째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해왔던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권력을 향한 증오의 언어들이야 정치적 정 당방위라 설명될 수도 있겠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언어의 총질 또한 그에 못지않게 격하다. 

정치인 지지충들 사이에서는 정치인들보다 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들이 난무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행위는 악으로 간주되고, 내가 지지하는 인물만이 무오류의 절대선이다. 이들에게는 '나의 것은 선, 나와 다른 것은 악’이다."(127~128쪽)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인간으로서 갖고 태어난 그 엄청난 능력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죽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생각의 능력을 갖게 되었건만, 정작 내가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채 묻혀두고 있다면 그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14쪽)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 자신의 사적인 욕망을 키우고 그것에 매달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언제나 자기가 서 있는 곳을 생각하며 돌아보는 노력은 소중하다. 

세상을 바꿔야한다며 정치적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도 정작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황폐화된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삶에서는 세상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기운이 나오기 어렵다."(17쪽)


[ 2016년 7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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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복기하다 -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11가지
이정희 지음, 박홍규 그림 / 들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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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새로운 세상은 반드시 온다는 믿음만은 버리지 않겠다"

이정희 저 <진보를 복기하다 :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11가지>를 읽고 / 2016, 2., 312쪽, 들녘


"사랑하기에 진보다. 포기할 수없는 이유,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므로 꿈꾼다. 그리고 받아들인다. 서툴고 거칠어 상처만 입힌 사람, 가까이 두지 않으려는 마음들을, 사랑하기에 받아들인다. 그래서 아프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아직도 다 알지 못하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새로운 세상은 반드시 온다는 믿음만은 버리지 않겠다는 것뿐.”(307쪽)


정치무대와 언론에서 사라진지 약 1년 만에 공개적인 의견을 피력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이 책이 발간된 때는 통합진보당이 박근혜-새누리당 정권과 사법권력으로부터 강제해산 당한지 1년 2개월이 지나는 시점이었다.


이정희는 진보당 해산 이후 정권과 사법권력의 강제해산 조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보정치의 실패를 자인하며 스스로 긴 침묵에 빠져 있었다. 담담하게 그리고 아프게 혼자 진보정치의 실패와 온갖 비난을 감당해온 것이다. 

자신이 속해 있던 조직의 모든 실패와 문제점을 고스란히 스스로의 책임으로 떠안는 것이 그동안 보여준 그녀의 입장과 태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기간을 지내왔을 것이다. 그녀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 개관적인 사실이든 아니든...


"2012년, 진보당을 만들며 처음 맞은 약진의 기회에 분출하는 서로의 욕심들을 가라앉히고 이름 없이 먼저 나서서 헌신하던 진보정치의 첫 마음을 되살려냈더라면, 초기의 갈등을 수습하고 신뢰를 쌓는 데 대표로서 전력을 기울였더라면, 이 실패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진보당 통합이 헌신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 되지 못하고 더 큰 이익을 기대하는 통합에 그치고만 결정적인 책임이 나에게 있다. 내가 앞서 상대에게 헌신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진보정당다운 통합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나와 동료들에게 가해진 허위의 공격에 침묵할 수 없어도 당이 갈라지는 사태만은, 중앙위 폭력사태만이라도 무릎 꿇어서라도 막았더라면 지금의 결과가 이렇게까지 참담하지는 않았을텐데. 되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파국을 막지 못한 책임은 역사 앞에 너무나 무거운 것이다. 내부의 갈등을 파고 들어온 외부의 공격은 진보당을 국민들과 지지자들로부터 철저히 고립시켰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내란음모 조작과 헌정 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청구에 맞서 사회 각계 단체들과 인사들이 함께 나서주셨지만 몇 년에 걸쳐 집요하게 계속되어온 ‘종북 정당이라는 공격을 이겨낼 수 없었다."


"결국 진보당은 해산당하고 말았다. 실망하고 기대를 거둔 분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등 돌린 분들의 가슴에 난 상처들, 내 탓이다. 그 어떤 능력도 없었던 데다 이제 자격조차 잃었다. 타인에 대한 원망은 시간과 함께 줄어드는데, 나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질타는 더 커지기만 한다."(300쪽)


2011년 말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와 시민사회세력이 함께 결성한 통합진보당은 2012년 4월 4.11 총선에서 진보정당 역사상 가장 많은 의석인 13석이라는 실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한달 만에 부정경선을 필두로 하는 당내 각 정파의 대립과 갈등으로 끝내 당이 갈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당 내부와 외부에서 거세 ‘종북 공세’의 폭풍우가 밀려왔다.

통합진보당과 그 당에 남아 있던 국회의원들은 19대 국회 내내 개혁 입법을 본회의에 올리는 것이 버거웠다. 당과 의원 개개인에 대한 종북 공세와 야권 내에서까지 퍼진 ‘왕따’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책 <진보를 복기하다>는 부제가 '버리기 아까운 진보정책 11가지'인 것처럼 통합진보당이 19대 국회에서 입법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11가지 개혁입법의 내용을 소개하는 분량이 가장 많다.


"진보당은 정치의 현실에서 제거되었다. 그러나 애써 심어놓은 진보 정치의 새싹마저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한때라도 진 보정치에 기대를 주셨던 분들께 이 법안들에 간직된 진보정치의 꿈과 사랑만큼은 다시 봐주시기를 호소드린다. 이 법안들이 실현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세상은 꼭 올 것이라는 희망을 키워주시기를 바란다."


"이 법안들과 정책들이 현실이 되면,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지 않고 농민이 논밭 갈아엎고 농약을 마시지 않을 터다. 이 법안들은 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을 중지할 권한을 부여하고, 죽음의 일터에 노동자를 몰아넣는 사용자는 존재할 수 없게 하여, 노동자와 사용자가 인간으로 공존할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농민에게 농작물 가격 결정권을 주고, 소비자에게 안정된 가격으로 안전한 농산물을 먹을 권리를 보장하여,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한국 농업의 미래를 설계할 것이기 때문이다.”(308쪽)


11가지 진보정책과 개혁입법은 아래와 같다.

1. 죽지 않고 일할 권리 - ‘기업살인처벌법’, 2. 가장 아래에서 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 ‘노동관계법’, 3. 농업 문제는 국가 존립의 문제 - ‘국민기초식량보장법’, 4.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나라에 요구할 권리 - ‘물·전기·가스 무상공급제’, 5. 수구세력 장기집권의 보검, 종편 - ‘종편퇴출법’, 6. 늑대에게 물리지 않으려거든 애완견으로도 키우지 말라 - ‘국정원해체법’, 7. 경제성장의 외형 대신 민주주의, 호혜 협력,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 ‘통상절차법’, 8. 서두르자, 보에 가로막힌 강물이 썩는다 - ‘4대강 복원법’, 9. 안보와 인권, 안보와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길 - ‘대체복무법’, 10. 네 탓이 아니야 - ‘차별금지법’, 11. 1년 365일 주권자가 되는 길 - ‘국민참여예산제·국민소환법’ 


"나는 지금도 꿈꾼다. 이 법률안들이 시행되면 사회의 흉기가 된 종편들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고, 국정원은 해체되고 정치공작은 종말을 고할 것이며, 비리와 독선의 거수기 국회의원들은 소환당할 것이다. 언론과 국정원과 비리 정치인들에게 장악당한 권력이 비로소 시민의 손으로 되돌려지는 순간이다. 4대강의 보는 해체되고, 개발독재와 환경 파괴의 더러운 욕심과 독단은 똑똑히 심판받을 것이며, 강에 깃든 생명들은 그 천연의 터전을 되찾고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다시 키워낼 것이다. 

70년 동안 멈춰 있을 뿐 끝나지 못한 채 때마다 적대의식과 종북몰이를 불러온 전쟁은 드디어 끝을 맺을 것이고, 평화의 신념은 존중받을 것이다. 이 법안들의 효과는 단지 누구에게 돈 몇 푼을 더 주거나 위기에서 탈출시키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되찾게 하는 것, 서로 믿고 협력할 수 있는 세상은 온다는 희망을 키우는 것이 이 법안들이 가져올 가장 중대한 변화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진보정당사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014년 당시 한국사회의 진보정당은 통합진보당과 통합진보당을 탈당해 나온 정의당, 노동당과 녹색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의 한국진보운동과 진보정치의 가장 큰 축적물은 통합진보당일 수밖에 없다. 가장 오랜 역사와 규모를 보여주기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은 2001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에서부터 이어지는 15년 전통의 진보정당을 자임했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로부터 강제해산을 당할 당시 진보당의 당원 명부에 기록되어 있는 당원은 12만 명이었고 매달 5천원 이상을 당비로 납부하는 진성당원은 2만5천명이었다. 

진보당의 대부분 당원과 진성당원은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서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였다. 그들은 통합진보당의 당 강령 규정처럼 한국사회를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로 바꾸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음에도 ‘종북공세’의 광풍에 쓰러진 것이다.


비록 야만과 몰상식이 판을 치는 한국 정치판과 마녀사냥 여론에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었지만, 필자는 결코 극우보수정권인 박근혜-새누리당과 수구적인 헌법재판관에게만 책임을 돌리지는 않는다. 한때 15% 넘는 정당 지지율을 기록했고, 13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던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에는 진보정치와 당 내부에서 오래도록 누적되었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과정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자기 정파 중심의 정치, 정치적 경제적 이권에 민감한 야권과 진보진영, 선민의식과 배타성, 이성보다 감정이 지배하는 정치 조직논리,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사라져가는 풍토 등...


사실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과 진보정치의 실패를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으려 하는 이정희 전 대표의 평가는 타당하지 않다.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과 실패는 이정희 개인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전체와 나아가 진보정치권 전체 나아가 한국사회의 진보적인 미래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의 책임이 있다. 순수함과 열정이 가득한 미래의 지도자 자질을 가진 젊은 정치인이 종북 공세에 멍들어가는 상황을 두 손 놓고 방관한 선배들은 이유여햐를 막론하고 비판받아야 하고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개인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정파적인 이해관계로 이정희를 대하고 이용한 이들도 철저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진보정치권에서 지위가 높을수록, 명망이 클수록, 권한이 많을수록 그만큼의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정치의 주력을 담당했기 때문에 그들의 책임이 더 큰 것이고, 당 대표였기 때문에 이정희의 책임 더 클 뿐이다. 한국정치에서, 아니 진보정치진영에서 자신(들)의 위치와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는 개인과 집단일수록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과 그를 전후한 한국사회 전반의 유신회귀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이 그 사람이, 그 집단이 진정한 진보세력의 주력인 것이고 진보적인 정당인 것이다. 개인적 집단적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한히 헌신하는 자세가 바로 진보정치이고 혁신이고 변혁일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진보적인 미래 사회는 자신의 책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이는 방향이며, 진보정당이 제시하는 미래의 사회상과 태도일 것이다.


"진보정치의 분열과 좌절에 실망한 분들에게, 또한 해산된 정당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손발이 묶인 분들에게, 당을 대표했던 사람으로서 저지른 많은 잘못을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차마 용서를 구하지 못한다. 그저, 살아가려 한다. 아픈 비판과 질책도 계속되는 수사와 재판들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나의 잘못을 딛고 넘을 뿐 진보정치 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만 품고, 보이지 않는 곳일지라도, 가슴속에 함께 품었던 꿈과 사랑 만은 잊지 않고.”(309쪽)


이정희의 저런 발언과 모습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08년 정치 입문 이후 일관되게 보여온 모습이었다. 그녀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나 전해 들은 이들이 한결 같이 평가하는 ‘진정성’이다. 이정희가 ‘진보의 아이콘’이라는 평가는 개인의 인기나 학벌, 직업이 아니다. 존중과 겸허, 인간에 대한 예의, 헌신과 원칙, 민중에 대한 사랑과 진보에 대한 신뢰의 아이코인 것이다. 이런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진 정치인을 한때 자신이 몸 담았던 정당의 대표로 함께한 이들은 복받은 경우에 속한다. 한국의 진보정당사에 이런 정치인은 없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한국사회의 진보적인 전진은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정치, 행정, 사법, 언론, 문화, 태도의 근본적인 변화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진전은 각 분야에서 모두 진행해야 하되 특히 진보정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변화의 상징적인 계기는 ‘이정희의 정치적인 부활’로 나타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 2016년 7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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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 - 위대한 군주와 잔혹한 아버지 사이, 탕평의 역설을 말한다
김수지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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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英祖 재위 1724~1776년)는 ‘탕평제도’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조선 21대 임금이며, 사도는 '뒤주에 갇혀 굶어죽은 비운의 왕세자’로 남아있는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년)다. 그리고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正祖 1752~1800년)는 영조의 손자다. 이 책은 영조에서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했던 가족사이자 조선후기 왕조사에 대한 탐구서다.


<조선왕조실록> 등 조선시대에 대한 정사 그리고 근대 이후 주류사학계의 사관이 반영된 역사책이 아닌 다른 관점과 사실을 발굴하여 해석한 역사서에 대한 관심이 이 책을 연결해주었다. 몇몇 개인의 개별적인 성격이나 행위에 의해 역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경제적인 구조와 여러 세력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역사가 구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시기는 조선 후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하나의 국가로서 조선이 왜란과 호란을 겪은 후 사회경제적인 구조가 변해가는 시기였고, 국가로서도 사회로서도 공동체로서도 한 단계 발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물론 그런 시각은 후대가 과거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의 평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시기는 단순히 ‘윈대한 군주’니 ‘가혹한 아버지’ 또는 ‘정신병이 있는 아들’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돌아볼 게 아니라 가족사이자 왕조사에 얽혀있던 당시의 정치세력인 붕당(남인南人과 소론少論과 노론老論)의 정치구조와 갈등을 좀더 알아보고 싶었다.


저자는 “온갖 가지 이유로 피해자 사도세자에게 참화의 책임을 돌리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다른 관점과 역사적 사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조와 사도>를 썼다고 말한다. 정작 사도세자의 죽음을 겪었던 당대 사람들은 “혜경궁 홍씨의 입장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고, 그 살해 사건이 “얼마나 정치적인 목적에서 행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모두 알고 있었음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도세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영조가 태어난 해(1724년)부터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해(1762년)까지의 정치적 상황을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 그 격 동의 전말을 살펴보았다. 조선왕조실록과 기존에 발표된 여러 논문 과 단행본을 기초로 했지만 『한중록閑中錄」과 그것만을 기초로 사도세자의 정신병만을 참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해석하는 단행본들의 주장은 근거로 삼지 않았다. 이들의 주장은 이미 널리 대중에게 알 려져 있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이고 이 책은 그러한 주장들에 반대 되는 증거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라는 것이 다른 한 가지 이유다. 


영조(1694-1776, 재위 172-1776)는 즉위 당시 이복형인 경종(조선 20대 임금)을 살해하고 즉위했다는 논란에서 숙종(조선 19대 임금)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논란까지 정통성이 매우 취약했다. 왕조 국가에서 취약한 정통성을 강화하지 않고는 왕권 강화는커녕 왕좌를 유지하기도 힘든 법이다.  저자는 우리가 익힐 알고 있는 영조의 ‘탕평책’은 이 사태를 무마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책으로 나왔다고 평가한다. 

영조가 즉위했을 당시 조선의 상황은 왜란, 호란으로 민생이 피폐해진데가 양란 이후 천재지변이 연이어 발생하고 조정의 실정이 이어지면서 평민들뿐 아니라 적지 않은 양반들도 먹고 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조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커짐에 따라 전국에 실향민과 난민, 도적떼가 증가하고 있었다. 여기에 숙종, 경종 때까지 살륙당하고 탄압을 받은 남인 세력과 소론 강경파 관련자들의 반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조 자신의 왕권뿐 아니라 조정과 사대부의 지배체제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영조는 즉위 후에 자신의 즉위에 찬성하지 않거나 반대했던 소론들을 자기 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면서 그들을 척신(戚臣 왕과 성이 다른 왕의 인척)으로 만든다. 소론 대신 조문명(趙文命, 1680~1732년)을 맏아들 효장세자(孝章世子 구)의 장인으로 만든 것이 그 일환이었다. 영조는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무신란戊申亂)’을 겪왜서 소론을 포용하는 탕평책을 더욱 강화했다. 이런 소론 포용 탕평책은 영조 31 년(1755)에 소론을 멸종시킨 사건인 을해옥사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즉, 탕평책은 영조가 자신만의 정치세력을 확대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영조 11년(1735)에 태어난 사도세자는 사실상 영조의 소론 포용 탕평책의 모범적 선전용으로 훈육되었다. 효장세자가 영조 4년에 10살의 나이로 사망한 후 영조와 소론에게 사도세자 이선(李愃)은 ‘효장세자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대타’였다. 이선은 자연스럽게 친소론 정서 속에서 자라났고 이것은 영조가 자신을 반대했던 소론을 자신이 적극적으로 포용했다는 것을 대외적의로 알리기 위한 정책적 의도였다. 


저자는 세자 이선이 결국 비극적으로 아버지 영조에게 살해당한 정치적 배경에는 이런 소론 포용 탕평책이 차츰 무너져간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영조는 소론을 포용하는 탕평책을 이용해서 소론이 자진해서 당론을 버리고 영조와 노론에게 투항하게 하는 정세를 만들어갔다. 척신과 소론을 이용해 경종 재임시 자신을 역모의 수괴로 기록했던 ‘임인옥안(壬寅獄案)’을 폐기한 것이다. 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친소론의 홍보물로 이용되었던 사도세자는 영조 이후 차기 권력을 노론 일당독재로 만들고 싶어하던 정치세력들(노론)에게 자연스럽게 타도 대상이 되고 만다. 영조는 ‘나주벽서 사건’과 을해옥사(乙亥獄事)로 소론을 전멸시킨 후 왕권이 전에 비해 강화된 후로는 소론 포용 탕평책을 계속 추진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오 히려 왕권을 강화하는 데 불필요하고 귀찮은 정책으로 여겨졌다. 장성한 세자의 존재가 왕권 강화에 걸림돌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조는 세자를 눈엣가시로 여겼고 이것을 알아챈 정치세력들은 부자지간이 더욱 멀어지게 부추겼고 온갖 모함을 해댔다. 이 정치세력이 이른바 ‘노론 벽파僻派’이다. 

한마디로,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였으며, 필요가 없어지자 ‘팽’을 당했다는 것이다. 사도세자에게 씌워진 혐의를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차기 권력인 세자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왕좌는 자신의 것일 세자가 아버지를 죽이고 왕좌를 탈취할 모반을 꾸민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사도세자가 살해당할 때 조정의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 벽파에 의해 사도세자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주장들이 『영조 실록」에 기록되었고 이후 사도세자비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의해 한 번 더 유포된다. 오늘날 사도세자의 정신병 논란은 『한중록」을 연구하는 국문학자들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사도세자의 정신병 논란은 더 증폭되어 분노 절장애를 앓았다는 정신분열을 앓았다는 둥 여러 가지로 변주되더니 이제는 사도세자가 독특한 정신적 문제를 가졌던 인간으로 각색되어 TV드라마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 의해 고착되고 있다. 사도세자가 왜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에는 어떤 정치적 혼란들이 깔려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들은 가차 없이 희석되고 폄하되고 있다. 


“사도세자 정신병 논란은 어찌 보면 가해자들을 지독하게 온정적으로 옹호하고 피해자가 되레 혹독하게 비난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미 300년 전에 잔혹하게 죽음을 당했고, 또 자신의 입장을 한마디도 변호할 수 없는 사도세자에게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6쪽)


가해자가 위로받고 피해자가 비난당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한국현대사 속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 강점을 극복하기 위해 수년, 수십년 동안 국내외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독립투사들이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와 독재자들에게 ‘빨갱이’로 몰려 학살을 당하고, 후손들은 씨가 마르거나 대대로 한국의 어두운 골목에서 빈궁한 처지로 살아가고 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분단을 극복하고자 통일운동을 전개했던 이들은 ‘종북좌파’로 내몰리고 있고, 피땀을 흘려 한국의 경제성장과 풍요를 일구어낸 노동자와 농민들은 재벌과 언론에 의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먹고 살기에도 벅찬 소득에 허덕이고 있다.


[ 2016년 7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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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전자 - 우리는 왜 죽은 박정희와 싸워야 하는가
김재홍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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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저 <박정희 유전자 :  우리는 왜 죽은 박정희와 싸워야 하는가?> 2012. 10., 351쪽, 개마고원


2011년은 5.16쿠데타 50주년이었고 2012년은 유신쿠데타 40주년이었다.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는 종신 집권을 꿈꾸며 10월 유신을 일으켰다. 1인독재로 군림하던 그는 1979년 10월 26일 심복 김재규에게 총탄을 맞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12일 박정희의 친위대장이었던 전두환이 박정희로부터 배운 듯 다시 쿠데타를 저지름으로써 독재 체제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민주화가 성취된 지금까지도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는 계속되고 있다.


군사독재 시기에 자행된 수많은 국가 범죄는 여전히 묻혀 있고,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정치-문화-경제-사회의 여러 퇴행적인 제도와 관습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강산이 네다섯 번은 바뀔 시간이었지만 박정희의 시대는 아직 청산되지 않고 있다. 그의 딸 박근혜와 극우보수세력들이 박정희가 한국사회에 뿌려놓은 ‘유신’이라는 암을 청산시키기는 커녕 ‘유신체제를 부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도 여전히 박정희식 사고방식과 언행을 보이는 직간접적 후계자들이 사회 지도층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장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일본제국주의 통치를 찬양하거나 헌정을 유린하고 정부와 국회를 불법과 무력으로 전복한 516 군사쿠테타와 유신쿠테타를 ‘혁명’으로 부르면서 버젓이 기념사업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

문제는 기득권 세력이나 여당 뿐 아니라 야당이나 시민사회진영에도 적지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박정희 체제의 흔적들을 ‘박정희 유전자’로 명명한다. 이 책은 우리가 구시대를 넘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박정희 유전자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그는 21세기까지 한국사회에 이어져 온 ‘박정희의 유전자’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박정희 유전자’의 첫 번째는 경제구조, 즉 ‘1% 대 99%의 재벌 중심 경제’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인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박정희가 만든 경제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에 있다. 전 경제부총리는 이헌재는 최근 저서에서 박정희 이후 모든 정부는 경제적으로 ‘박정희 체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부의 쏠림 현상은 선별한 소수 기업에 모든 특혜를 몰아주던 박정희 시기의 경제개발에서 비롯되었다.


두 번째는 언론에 대한 통제다. KBS, MBC, YTN 등 언론노조의 파업사태는 언론탄압의 박정희 유전자를 잘 보여주었다.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는 박정희 시기 한국을 언론자유 5등급 국가라고 평가했다. 4등급 국가였던 이집트나 파키스탄보다 낮았다. 민주화 이후 한국은 언론자유국으로 평가받았지만 2011년 프리덤 하우스는 한국을 다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시켰다. 한국은 2011년 언론자유 순위가 44위로 탄자니아(34위)와 가나(41위)보다 뒤졌다.


세 번째는 제왕적 대통령제다. 대선후보 3인방이 모두 강조하는 정치개혁을 위해서도 박정희 유전자를 청산해야 한다. 박정희정권 아래서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기보다 정권의 들러리에 그쳤다. 독재정권 시기 여당이었던 공화당과 민정당은 정부 정책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며 야당들도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박정희가 사라진 이후에도 이런 문제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와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요구가 나타나고 있다.


네 번째는 남북 간 적대적 공생과 대결주의다. 박정희는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독재를 정당화했다. 한편으로는 유신 선포를 미국보다도 북한에 먼저 알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북한과 뒤에서 협력하기도 했다. 국가 안보가 아니라 권력 확보를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수법은 박정희가 원조이다.


마지막은 검열과 사찰 등 사상에 대한 통제다. 박정희정권의 사상 통제는 우리나라에 세계 최장의 장기수 보유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박근혜 후보가 부정투표 의혹을 받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겨냥해 “국가관이 불분명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이나, 트위터에 북한 관련 농담을 올린 죄로 징역 2년을 구형받은 박정근 씨의 사건은 이런 사상 통제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여섯 번째는 일본군 위안부 보상 문제와 독도 영유권 분쟁이다. 양국 간 국민감정을 악화시키고 있는 독도 영유권 분쟁의 기원은 박정희 시기 체결된 한일협정이다. 이 협정에서 한일 양국은 독도 영유권을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밀약을 맺었다. 일본군 위안부 보상 청구권이 소멸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2015년 12월 28일 박정희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박근혜는 한국인들의 뜻과 관계 없이 일본 정부와 ‘제2의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하였다.


한국 국민이라면 박정희가 누구인지는 다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독재 시기의 일들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쯤으로 알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의미가 크다.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식 서술과 오늘날의 시각에 근거한 평가로 박정희 시대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권으로 읽는 박정희’라 할 만하다. 핵심 관련자들의 증언 녹음테이프와 여러 정치인과 군부 인사들에게서 듣고 메모한 취재노트,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회고록과 사건 실록 등을 바탕으로 5.16과 12.12의 진실을 실감나게 보여주며, 그로부터 배태된 박정희 유전자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지금도 일으키고 있는지 지적하고 있다. 


박정희의 5.16군사반란은 이후 최악의 헌정유린인 유신쿠데타로 이어졌고, 박정희 사후에도 그의 후계 세력들이 박정희 체제를 지속해나가고 있다. 인물과 세력만이 아니다. 재벌 중심 경제 체제, 경제성장지상주의, 권위주의, 군사주의, 지역주의, 색깔론 등 박정희 유전자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의 사고에 깊이 박혀 있다.


출판사는 이 책에 대해 "박정희를 떠나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박정희를 떠나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일본에 과거사 사죄를 요구하듯이 독재정권 시기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2013년 새 정부가 유신독재 아래서 저질러진 모든 체제폭력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과거사평가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럴 때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소개한다.


[ 2016년 6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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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 우리 역사 바로잡기 2
이덕일.김병기.박찬규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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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만주 벌판에서 찾은 고구려의 역사 

김병기, 이덕일 저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를 읽고 / 2007. 8., 511쪽, 역사의아침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역사학계에서 고구려의 역사와 영토에 대한 이견이 많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측의 ‘역사왜곡’과 중국측의 ‘동북공정’에 대비하여 연구했다며 발표하는 각종 결과물들이 오히려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의 논리에 충실하다는 비판이다. 

한국사 전반에 그런 지적들이 나오지만, 일제침략과 박정희 군사독재 미화 등의 근현대사를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이 고조선사와 고구려사에 대해 왜곡에 대해 관심이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은 장기적이고 치밀하게 진행 중이다. 문제는 한국에서도 동등한 수준으로 고대사를 연구하면서 학문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데 있다. 오히려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들러리를 서주는 분위기가 국내 주류사학계의 현주소다. 

그런 현주소의 뿌리 중 한 가지는 주류사학계의 학맥에 있을 것이다. 해방 후 미군과 친일파들이 양심적인 학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고 탄압한 이후, 이병도를 비롯하여 일제시대 정치적 목적으로 한국의 고대사와 중세사를 철저히 조작한 일제 사학자들에게서 근대사학을 배운 이들이 역사학계를 지배했고 21세기까지 그 학맥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사학계 내부의 전근대적인 문화 등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것이 필자가 국내 주류사학계와 국사편찬위, 국사교과서 등이 배제하고 외면했던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와 발해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국사책에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통일신라+발해), 고려와 조선시대에 위인으로 기록된 인물과 역적으로 기록된 인물에 대해 다시금 공부해보려고 마음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하의 역적이자 살인마라 할 수 있는 친일파와 이승만과 박정희가 사후 100년도 되지 않았는데, 건국자나 위인으로 조작되는 ‘역사왜곡’의 현장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초중고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소위 ‘삼국시대’ 이전의 한민족사에 대해서는 정부와 국내 주류사학계가 그다지 관심을 쏟지도 않고 연구도 하지 않는다. 단적인 사례가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문서들을 아직도 번역하고 있다. 그만큼 정부와 주류학계는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다.(한국고전번역 50년 계기로 본 한국고전번역의 성과와 과제 http://www.itkc.or.kr/itkc/post/PostServiceDetail.jsp?menuId=M0441&clonId=POST0016&nPage=1&postUuid=uui-99d14476-a99c-4c30-89c1-2577)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주류사학계는 ‘친일사학’이나 ‘식민사학’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일제시대에 부역했던 상당수의 관료와 사학자와 관련자들이 청산되지 않은 채, 여전히 공공기관과 국공립대학과 학계를 장악하고 있고, 그들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사학계가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수수방관하고 때로는 거드는 동안 치열하게 역사왜곡과 싸우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공공기관과 대학과 주류사학계에서는 배제되었지만, 발로 뛰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여 고대사와 근현대사를 바로잡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 책도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읽은 건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우리 역사 바로잡기’ 시리즈로 발간 중이라 한다.


저자들은 고구려가 “기마민족 특유의 대륙성과 진취성을 발휘하여 중원의 패자로 군림한 동아시아 최강국”의 역사였다고 평가한다. 그들은 나름 엄중한 학문적 방법을 동원하여 왜곡되고 폄하된 고구려 역사의 30가지 쟁점들을 되짚었다. 

고구려를 비롯하여 고조선의 옛 강역에 존재했던 부여, 비류국 등이 고조선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던 이유, 고구려 건국연대에 관한 여러 설들, 무려 94년이나 재위했다는 태조대왕과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차대왕(95세 즉위), 신대왕(77세 즉위)에 관한 의문들,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태왕의 북방확장정책을 계속 수행하는 대신 수도를 남쪽의 평양으로 옮긴 이유, 당시의 세계 최강대국 당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고구려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한 용장이자 영웅인 연개소문이 흉포하고 잔인한 독재자로 전해진 이유, 미천왕과 부인 주씨의 합장 무덤인 안악 3호분에 전연前燕에서 망명한 동수의 시신을 배장한 과정을 꼼꼼히 추적함으로써 중국 측 사료를 근거로 한 역사 기술로 그동안 왜곡되어온 고구려 역사의 진실을 밝혀냈다. 

또한‘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고구려의 역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의 시각이 반영된 <삼국사기>와 전통적인 중화 패권주의 사관에 입각해 쓴 중국 사서들의 잘못된 표기방식,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모순된 논리 때문에 진정한 실체가 왜곡, 폄하된 채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고 분석한다. 


저자들은 식민사관과 중화사관이라는 구각(舊殼)을 깨고 고구려를 바라본다. 

이 책을 통해 고구려가 건국 초기부터 복속과 연합을 적절히 활용한 자주적인 외교술을 펼쳐 한·신·후한·삼국시대·위진 남북조시대·수·당 등 중국의 수많은 나라와 대적해 우위를 점하는 과정, 고구려를 천하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독자적인 천하관, 고분벽화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사상과 풍속, 신라의 삼국통일 후에도 150여 년이나 이어진 유민들의 발자취 등을 통해 살아 숨쉬는 고구려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추모왕(주몽), 동쪽으로 연해주, 서쪽으로 난하 지역, 남쪽으로 예성강에서 충주와 영일만을 잇는 지역, 북쪽으로 흥안령 산맥 북쪽 흑룡강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한 광개토태왕, 후한이 멸망하고 369년 만에 중국 대륙을 통일해 한껏 기세가 오른 수나라에 선제공격을 가하고 200만에 이르는 침략군을 일거에 무너뜨린 영양왕,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도 당나라 한복판에 치청왕국을 세워 산동성, 안휘성, 강소성 일대의 15개 주를 다스리며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한 이정기 등 고구려인이 기마민족 특유의 진취성을 발휘하여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기상을 떨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고구려는 고조선과는 별개의 나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고구려가 고조선의 옛 고토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국가라는 사실, 주몽을 단군의 아들이라고 명명한 <삼국유사>의 기록,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단군사화의 내용 등을 통해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라는 역사 의식을 갖고 성장한 나라임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의 건국과 관련하여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기록들, 고구려인들이 직접 기록한 건국기원에 대한 일차 자료인 광개토태왕릉비문과 모두루묘지문 등을 종합, 분석하여 고구려를 건국한 세력과 시조 추모왕에 대한 의문점들을 명쾌하게 정리해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두 번째 국가인 부여와 또 한 명의 건국영웅인 부여 시조 동명왕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고구려가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중원의 패자로 군림하며 국가 발전을 이루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두 편의 답사기가 실려 있어 고구려 역사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고구려 첫 도읍지인 오녀산성(중국 길림성 환인 소재), 우리 민족의 전통 공법인 그랭이 공법을 사용해 축조한 장수왕릉, 지금은 많이 무너져 내려 본래의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잔존 형태를 보아 7층 이상으로 조성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광개토태왕릉, 고구려의 건국기원이 기록된 광개토태왕릉비와 모두루묘지, 고구려와 공동 군사작전을 펼쳐 후한後漢에 맞선 선비족의 발상지 알선동굴, 고구려 여인으로 북위의 황후가 된 문소황후의 영릉을 구석구석 찾아간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고구려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중원의 여러 나라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축조한 고구려의 산성 중 중국 요녕성과 길림성 일대의 주요 산성 여섯 곳을 찾은 답사기를 함께 실었다. 고구려는 당시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산성을 가장 많이 쌓고 제일 잘 이용한 나라였기 때문에 산성은 고구려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며, 동북공정 이전과 이후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중국과 맞서 싸운 고구려의 산성이 중국의 문화유산이 된 아이러니한 현장, 1950년대에는 20미터가량 남아 있던 고구려 성의 벽돌을 동네 사람들이 가져가 담으로 사용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황, 중국의 동북공정이 심화되면서 일부 고구려 산성을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중국식으로 복원한 모습은 올바른 역사 인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고구려는 기원전 107년 이전에 이미 존재했으나 이는 추모왕이 건국한 고구려는 아니었을 것이다. 『위략'고구려 조의 "본래 연노 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쇠약해져 지금은 계루부에서 대신하고 있다”는 기록이 이런 사실을 시사해준다. 계루부는 추모왕 계열을 뜻한다. 따라서 추모왕이 건국한 고구려는 700년을 존속했는데, 그 이전에 존재했던 고구려까지 합치면 900년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 다 추모왕이 건국하기 이전의 고구려를 고구려 역사에 포함시킬지 말지를고민해야할시점이다.”(63쪽)


“아!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우셨다. 왕은 북부여에서 나셨으며,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알을 가르고 세상에 내려오시니, 날 때부터 성스러우셨다. □□□□□□ 명(命)에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엄리대수를 지나게 되어 왕께서 나루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이들이 떠올라라." 이 말씀에 따라 즉시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이들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강을 건너 비류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 (왕은) 왕위에 낙이 없자 (하늘로) 사신을 보내시니, 황룡이 내려와 왕을 맞이하였다. 왕은 홀본 동쪽 언덕에서 용의 머리에 서서 승천하셨다. 세자로서 고명(顧命)을 이어받은 유류왕은 도(道)로써 나라를 다스렸고, 대주류왕(대무신왕)은 왕업을 계승하여 단단히 하셨다.

원문: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郎. 剖卵降世 生而有聖. □□□□□□命駕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郎 鄒牟王. 爲我連葭浮龜." 應聲即爲連葭浮龜. 然後造渡 於沸流谷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不樂世位 因遣 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岡] 履龍首昇天. 顧命世子儒留王 以道興治 大朱留王 紹承基業.”(광개토대왕릉비문)


[ 2016년 6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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