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가공선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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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살해당하고 있다 <게 가공선>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저, 서은혜 역 <게 가공선 蟹工船>을 읽고 / 2012.10, 214쪽, 창비


<게 가공선>은 먼 바다 위를 떠도는 노예선 같은 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29년 일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돼지우리와 같은 환경과 폭력이 난무하는 비참한 노동현장에서 벌어진 투쟁과 반란을 담았다.

이 작품은 먼 바다를 떠도는 거대한 배를 무대로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를 드러내고 노동자의 자각과 투쟁을 역동적으로 그려내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대표작이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수준을 사상의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일본 근대문학에도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코다테 항구에 광부, 농민, 빈민굴 소년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배를 타고 넉 달 동안 캄차카 바다에서 게를 잡는다. 그 배의 상황은 끔찍하다. 숙소는 악취가 들끓어서 똥통이라 불렸고 이가 들끓었다. 작업을 게을리하는 자는 “쇠막대기를 시뻘겋게 달구어서 몸에 갖다 대겠다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폭풍이 몰아쳐도 게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야 했다. 

어선은 부정부패에 힘입어 ‘항해선’이 아니라 ‘공장선’이 되어 항해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선장과 선박회사는 공무원과 해군을 극진히 대접한다. 일하다 병들어 죽은 사람은 바다에 던져졌다. 그곳에 모인 거의 모든 이들은 평생 늘 뭔가 해 왔다. 국토 개척, 관개 공사, 철도 부설 등이었다. 그런데도 극도로 가난했다. 홋카이도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다코’(문어)라고 불렀다. 정부도 군대도 그들이 편은 아니었다.

어부들은 이런 말을 내뱉는다. “문어는 살기 위해선 자기 팔다리까지 먹어치운다지, 이것이야말로 우리와 닮지 않았나, 어쨌든 죽고 싶지 않아. 캄차카에서 죽고 싶지 않아…아니 이미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게 가공선>을 발표했을 당시, 작가는 일본공산당에 대한 혹독한 탄압이 계속되면서 지하조직으로 옮겨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집필과 헌신적 활동을 계속하다 1933년 2월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사망한다. 경찰 당국은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기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2차대전 종전 후에도 그의 작품들을 금서 취급하는 등 사후에도 철저하게 박해받았다.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노동 현실이 척박해지면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게 가공선>이 다시 인기를 끌며 새로이 주목받았다.


<게 가공선>은 발표된 지 80여년이 지난 후, 장기불황과 금융위기로 고통을 겪던 일본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30만권이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일본공산당에 1만여명이 새로 입당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공산당 입당이 증가한 것은,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가 군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융합해 내달리던 시대에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며 착취 속에 신음하던 노동자들을 향해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살해당하고 있다”고 외치다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라 한다.


2012년 창비가 처음 작품을 번역해 출판했을 때, 경향신문은 "지금 일본 사회에선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근로자들이 '게 가공선이네'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은 요절한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의 대표작 <게 가공선>에서 비롯됐다."고 소개했다.


‘게 가공선’의 이미지는 몇 년 전부터 한국사회의 젊은세대들이 자조적으로 내뱉는 '헬조선'과 비슷한 느낌이다. 세월호 참사와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스펙 경쟁에 치이는 젊은이의 처지는 <게 가공선>이 그린 지옥 같은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고공농성장과 시멘트바닥, 광화문 세월호 천막과 병상에 누워계신 백남기 농민이 번갈아가며 떠올랐다.


[ 2016년 8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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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책임 - 한홍구 역사논설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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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역사와 책임>

한홍구 교수 저 <역사와 책임>을 읽고/  2015. 4., 271쪽, 한겨레출판


지진이나 기상이변과 같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은 어떤 대비책을 세우더라도 인간의 힘으로는 아직 속수무책이다. 미리 예측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자연은 인간의 예측을 쉽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재(人災)는 다르다. 인재는 인간의 오만과 무책임과 탐욕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시스템과 구조나 문화, 정치와 제도가 왜곡되어 있으면 인재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도 인재에 해당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세월호 참사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발생했고, 참사 이후의 과정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해경과 해양수산부의 무능함과 무책임은 ‘해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청와대와 행정부 그리고 여당은 대형 참사에 대응할 능력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과오와 치부를 감추는 데 급급했다. 언론과 방송은 정부와 공안기관이 불러주는 데로 받아쓰면서 진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정부와 함께 피해자와 선의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진실을 규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겁박한다. 야당은 쓸모가 없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하면서 300명 넘는 승객들에게 버려두고 속옷 바람으로 도망가는 선장(이준석)과 선원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결사항전”이라며 라디오에 녹음기를 틀어놓은 후 한강다리를 끊고 먼저 도망친 이승만과 국방장관, 관료, 정치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승만이 다시 환생한 것처럼, 대통령 박근혜는 국내에서 대형 정치사회적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늘 해외로 줄행랑을 친다. 귀국하면 늘 “가만히 있으라” “색출, 엄단”이라며 국민들을 협박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전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행정부와 정치권과 언론의 모습에서 한국현대사의 숱한 기억들을 떠올린다고 한다. 저자 한홍구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세월호 참사’와 똑같은 장면을, 아니 21세기에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현대사를 돌아보았다.


저자는 현재 집권세력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과 집권세력의 모습에서 찾기 시작한다. 당시 이승만과 집권세력은 ‘북진통일’이라는 호언장담만 일삼다가 정작 전쟁이 발생하자 서울시민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 그리고 미군을 따라 서울에 돌아온 후, 그들은 ‘부역’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을 사수하고 지킨 서울시민 수백 만명을 재판도 없이 즉석에서 학살하고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고 연좌제로 묶어버렸다. 당시 ‘처리’된 부역자는 약 56만 명이었다.

또한 이승만과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아 한강다리를 폭파한 일선 장교와 육군참모총장은 폭파의 책임을 뒤집어 씌고 처형되고 살해되었고..


1960년 4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 고등학생의 죽음은 이승만과 집권세력의 실탄 발사를 통한 강경진압 때문이었다. 당시 김주열 등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직발사하도록 지시하고 그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자는 마산경찰서 경비주임 경위 박종표였다. 

박종표라는 자는 1949년 4월에 반민특위에서 ‘아라이 겐기치’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악질 헌병 보조원으로 활동했던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친일 경찰들의 습격으로 무력화된 반민특위는 그해 8월 박종표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박종표는 4월 혁명 후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감옥에 갇혔으나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5.16 쿠테타 이후인 1968년 그를 풀어주었다.)

반민특위 해체 이후 일제의 악질 고등경찰 노덕술이 헌병으로 업종을 바꿔 서울시민을 부역자로 몰아 학살했고, 박종표는 반민특위 이후 헌병보조원에서 경찰로 업종을 바꿔 이승만의 충견이 되어 김주열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던 것이다.


해방 후 분단과 전쟁을 거쳐 악질 친일파들이 독립세력과 양심세력을 대거 학살하면서 대한민국의 권력을 거머쥔 것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공안 권력의 비밀인 셈이다. 그 후예들이 지금껏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공안권력은 대한민국 수구세력의 중추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수많은 마피아 집단들은 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해피아’뿐 아니라 재정경제부 출신의 ‘모피아’, 국토건설부 출신의 ‘건피아’, 교육부 출신의 ‘교피아’ 등등 정부 부처 개수만큼이나 많은 관료 출신 마피아를 하나하나 따질 수 없어 ‘관피아’라 부른다.

공안 권력의 형님, 아우, 삼촌, 조카, 언니, 오빠, 누나, 동생들이 각계각층의 마피아가 되어 빨대 하나씩 꽂고 설계 변경하고 노후수명 연장하고 규제 완화하고 서로 전관예유 전통 물려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며 오순도순 사이좋게 대한민국을 운영해왔다. 다 밟아버린 줄 알았던 빨갱이들이 되살아나기 전까지.”(40쪽)


이 책의 2~3부에서는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공안권력을 이용해 양심적인 인사들과 애꿎은 시민들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례와 진정한 ‘국기문란 반역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통합진보당, 그리고 애국민주인사들을 간첩으로, 내란으로 조작하여 학살하고 탄압한 사례를 보여준다.

4부에서는 ‘한국 사법 엘리트가 살아가는 법’을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보여준다.

5부에서는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이 ‘영구적으로’ 미군에게 넘겨준 대한민국의 군사작전권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그리고 ‘전통야당’과 ‘정권교체’를 부르짖는 현재의 야당들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현재의 보수 야당이 왜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최악의 현대사를 보내온 대한민국이 그나마 어느 정도의 공동체와 양심과 자유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에게 희망이나 가능성이 있는가. 저자의 대답은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해방 후의 역사만 보더라도 세월호보다 더 끔찍하고 광범위한 참사를 당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한강다리 끊고 도망가고 선장이라는 자가 혼자서 속옷 바람으로 도망쳐도, 기관장, 항해사, 갑판장 등속이 다 무책임하게 도망쳐도 대한민국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시민 대중들이 간직한 복원력 때문이다. 믿을 것은 우리 자신밖에,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온 역사밖에 없다. 호흡을 길게 가져야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아마 백 번도 훨씬 넘게 강연을 다니면서 세월호 사건의 역사적 뿌리에 대해, 세월호 사건을 통해 본 한국 현대사에 대해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녔던 말로 머리말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이 복원력밖에 없다. 더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11쪽)


"바로 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인상 깊은 문장-


“한국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밴 플리트(James Award Van Fleet) 장군의 스물여섯 살 새신랑이었던 아들은 아버지의 예순 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얼마 후 북한 지역으로 출격하였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미군 장성의 아들 중에 아버지와 함께 한국 전쟁에 참전한 사람이 145명이고, 이 중 35명이나 전사하였다고 앞에 인용한 페런바흐는 쓰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장관이나 국회의원, 고위 장성의 아들 중에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희생된 경우가 있는가? 과문이지만 들어본 적이 없다.”(43쪽)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며 전화를 끊은 사무장 양대홍은 부인의 애타는 전화에는 응답하지 않고 끝내 퇴선 지시를 내리지 않은 무전기를 꼭 쥔 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구명조끼 가모자라자 "내 거 입어” 하고 선뜻 벗어준 학생, 그와중에 아기부터 탈출시키던 아이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끼고 살아가기에 너무나 아이들 곁에서 선생 노릇 하고 싶어 했던 교감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 가라앉은 선생님들, 그리고 겨우 매점에서 물건 파는 어린 알바생이면서 "선원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 거야. 너희들 다 구하고 나갈 거야"라며 세월호의 악마들, 대한민국호의 악마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책임 감을 보인 박지영....... 


이들이야말로 구조변경에 노후수명 연장에 과적에 규제 완화에 온갖 비리와 뇌물로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우는 대한민국호가 여태껏 가라앉지 않고 항해할 수 있는 숨은 복원력이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이 복원력밖에 없다. 

더 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51쪽)


[ 2016년 8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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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2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2
김세준 지음, 소희 그림 / 615(육일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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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이 희망이다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야기 2>

김세준 저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야기 2>를 읽고 / 2013. 12., 237쪽, 615출판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를 어려워하는 학생 등 초보자를 위한 철학이야기...

저자는 대한민국을 ‘자살공화국’으로 만든 중요한 원인 하나를 '철학적 빈곤’이라 주장한다. 만일 자살을 선택한 젊은이들이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인류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래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면 그들은 "자살이 아니라 보다 생산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빈곤이라는 사회적 폭력과 맞섰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대중적 권위를 획득한 유일한 종교적, 철학적 사조는 물신숭배와 황금만능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모든 것이 교환가치로 전환되는 화폐지배체제에서 철학의 빈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의 빈곤이 한국 사회를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만큼 올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스펙이 아니라 바로 철학입니다. 우리에게 철학이라는 무기가 있는 한 그 어떤 악조건에서도, 심지어 강제수용소에서조차, 우리는 삶의 전투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역사의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철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출간하고 있는 저서가 바로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야기> 시리즈다.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야기> 시리즈 1권은 2011년 말에 출간되었고, 이어 2년 만에 2권이 출간되었다. 우연하게도 필자는 2014년 1월에 1권을 읽은 데 이어 2년 만인 지난 6월에 2권을 읽었다. 
1권에서 저자는 철학의 기원과 개념, 철학의 탄생과 변천, 철학이 다루는 문제, 철학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해 독자가 가져야 하는 관점, 기존 철학이 해결한 문제와 남긴 문제, 개인의 판단과 행위에서 철학이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20~30대 젊은이에게는 설득력 있는 호소력과 진지한 내용으로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철학하기의 목적은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혁하기 위한 것”이라는 문장이 철학에 대한 저자의 요지다. 230년전 칼 맑스가 선언하던 근본적인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야기> 시리즈 1권이 ‘철학과 세계’에 대한 철학이야기라면, 2권은 ‘사람과 세계’에 대한 철학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2권의 큰 목차 제목을 “세계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정리했다.

저자는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19세기 중반부터 200년을 주도했던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맑스가 "물질 중심의 근본원리에 철저히 근거해 사람과 사회, 역사의 모든 원리들을 이론적으로 전개하면서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사람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 사람을 소외시켰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가 맑스의 ‘역사발전의 합법칙성’과는 다르게 후발 자본주의 국가와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에서 사회주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다. 
"물질 중심의 철학원리는 사람을 둘러싼 주위세계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해답을 줄 수 있지만, 사람의 본질과 사람과 주위세계의 관계에 대한 해답을 주기 어렵다. 사람의 역사는 자연의 역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25쪽)

이에 따라 저자는 ‘사람은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의 주인’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사람과 세계에 대한 철학원리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사람은 세계와 자연에게 영향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세계의 운동과 변화 발전에 작용하는 여러가지 요인들 중에서 사람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31쪽)이라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세계의 주인은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셈이다.
“인류의 철학적 사유는 사람 중심의 근본원리에서 출발할 때 사람의 운명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답에 마침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운명의 길찾기는 사람이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지위)를 정확히 알 때 비로소 시작되며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알아야 당당하게 운명과 맞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32쪽)

사람이 동식물과는 달리 자연 등 외부세계로부터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취지로서 ‘사람은 세계의 주인’이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능동성을 뛰어넘어 자연과 세계를 ‘인간의 소유’라는 의미로 확대되거나 ‘인간의 마음대로 개조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공감할 수 없다. 자연과 세계 그리고 지구와 우주는 '인간만의 소유물’도 아니고 ‘인간의 창조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과 세계 그리고 지구와 우주가 없이 인류는 탄생할 수조차 없었으며, 단 한 순간도 생존할 수 없다.
실제 인류가 신과 자연과 세계의 지배에서 벗어난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인류는 ‘자연과 세계의 주인’이라는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하여 자연과 세계에 대한 너무도 많은 피해를 주고 엄청나게 훼손시켰다. 근현대사는 소위 선진 자본주의 국가 등 일부 인류의 범죄적 행위로 인해 자연뿐 아니라 대다수 인류에게도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음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또한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사회적 관계의 영향 속에서 살아가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를 주도하고 사회를 개조, 변혁시키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에 의존할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지배합니다.”(115쪽) 즉 저자는 리차드 도킨스 등 진화생물학자들이 주장하는 ‘이기적 유전자’가 생물학적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내재된 것이 아니며, 진화나 유전에 의해 ‘사이코패스적 유전자’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기적 유전자도 사이코패스 유전자도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같은 사회적 관계와 사회경제체제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본성은 ‘남에게 의지함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처리해 나가려는 성질’을 가진 ‘자주적이며 사회적인 속성’이며, 자연과 세계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창조적인 사회적인 속성’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본능적이고 맹목적인 동물과 달리 ‘의식’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의 의식은 개인적, 개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 집단적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사회적으로 형성, 변화되는 의식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인간)’은 사람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조직화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개인이나 소수가 강압적인 기득권 권력으로부터 자주적이고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 원리와 사회적 속성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철학적 원리와 사회적 속성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다분히 선언적이고 규정적이다. 논리적인 과정과 합리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사람, 인간, 인류에 대한 과거 학자들의 장구한 연구와 성과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도 부족하다. “자주성이 없는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어도 사회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125쪽)과 같은 대목에서는 보편적인 인류애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런 면에서 사람, 인간에 대한 철학적 논리적 탐구과정은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의 <싸우는 심리학>과 철학 교수 출신 이병창의 <청년이 묻고 철학자가 답하다>를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결론으로 내린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문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 2016년 8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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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8
김부식 지음, 김아리 엮음 / 돌베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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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고대사의 최고 공인역사서 <삼국사기 三國史記>

김부식 저, 김아라 역 <삼국사기 三國史記>를 읽고/ 2012. 8., 297쪽, 돌베개


공부모임 참가자가 추천했는데, 작년 후반부터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한 한국고대사와 관련되어 있어 드디어 읽게 되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공인’된 역사서다. ‘공인’이라는 의미는 주류학계와 관련 정부부처에서 인정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류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다른 ‘역사서’들 역시 존재한다.(마치 기독교의 성경이 서기 90년과 397년에 종교회의에서 공인되었고, 당시 성경 이외의 다른 경전은 배척받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나 할까.)


고려 인종 23년(1145년), 왕명을 받고 김부식과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완성(편찬에 참여한 편수관(編修官)은 총 11명으로 감수국사 김부식이 책임자)된 <삼국사기>는 삼국시대라고 불리는 천 년의 역사를 담았고, 그 이후 현재까지 천 년 동안 전하고 읽히고 있다.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정치적 흥망 변천을 주로 기술한 정사체(正史體)의 역사서인 셈이다.

고대사 연구자들 중에는 “고려는 유교적인 역사 서술 체계를 바탕으로 초기부터 실록을 편찬했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모두 불탔다”며 <삼국사기> 편찬의 배경을 소개하고 있다. 일부는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한 후 분열된 민심을 수습하고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려고 한 인물로 평가한다.


<삼국사기>는 〈본기(本紀)〉, 〈연표(年表)〉, 〈지(志)〉,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28권, 3권, 9권 그리고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이 워낙 방대한 데다가 공부모임 참석자들이 <삼국사기>를 처음 읽는 것이라 요약본이라 할 수 있는 돌베개 출판사의 번역본을 교재로 정한 것이다. <삼국사기>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시작으로 여러 권의 번역본과 해석본을 읽어야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삼국사기> 중에서 의미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삼국의 이야기들을 뽑아 일곱 장으로 나누어 재구성해보았다. 제왕과 명신의 기록이 대부분이지만, 아주 드물게 모습을 보이는 일반 백성들의 모습을 이 책의 일곱 번 째 장에서 모아보았다.”(출판사)


<삼국사기>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온달전' '화왕계' '소년 관창' 등 동화책으로, 드라마로 접한 많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한국사 고전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삼국사기> 중에서 의미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삼국의 이야기들을 뽑아 쉬운 한글로 번역했다.


<삼국사기>에는 삼국의 시조와 건국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건국 이야기는, 천신(天神)과 수신(水神)이 결합해 세상의 시조를 낳았다는 오래된 부여 계통 시조 신화의 틀을 확장시킨 이야기이다. 그래서 천신의 아들 해모수와 수신의 딸 유화가 결합해 주몽을 낳았다고 했다. 여기에 영웅적 고난과 투쟁을 거쳐 고구려는 건국하고 동명성왕이 된다는 건국 영웅의 일대기가 결합되어있다.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백제의 건국신화로도 연결된다. 백제의 시조는 비류와 온조로, 그들은 고구려의 동명성왕이 죽고 유리가 왕위를 계승하자 고구려를 떠나 남하했다. 그리고 각기 성읍국가를 세웠는데, 나중에 온조가 비류의 세력을 흡수하여 연맹왕국으로서의 백제를 일으켰다. 

신라는 고구려·백제와는 다른 시조신화와 개국전설을 가지고 있다. 시조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난 인물로, 여러 촌락의 세력들이 모여 그를 왕으로 받들고 나라를 열기로 합의해 신라가 개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라 건국 초창기는 그 외에도 여러 집단이 유입해 들어와서 여러 세력들이 연합해 나라를 형성했다. 나중에 유입된 집단은 세력을 키워 신라의 왕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래서 박씨계의 유리이사금을 이어 석씨계의 탈해이사금이 왕위를 이었고, 이후 박씨계와 석씨계가 한동안 서로 왕위를 이었다. 그 이후에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김씨계 집단이 세력을 키워나가 그 6대손인 미추왕대부터는 김씨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렇게 신라에는 박혁거세의 개국 이야기 외에도 국가형성 과정에 유입된 석탈해와 김알지에 관한 기원이 함께 전하고 있다.


고대사를 공부하다보니 <삼국사기>를 출간한 출판사와 번역한 역자에게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역자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 특히 삼국을 창건한 시조들의 이야기를 신화로 규정한다. 그러나 인류의 신화는 아무런 근거 없이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신화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나 과거 각종 유물이나 서적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를 통해 신화의 이면을 해석하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삼국사기>의 주 편찬자인 김부식이 경주 출신 문벌 귀족으로서 유교 이념으로 지배 질서를 재정립하고 금나라와 온건한 대외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던 점을 들어 <삼국사기>가 사대주의 경향을 지닌 신라 중심 역사서라는 데는 공감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한다. 신채호는 <조선사 연구초>에서 김부식을 고려  중기의 사대주의적, 보수적 문벌로 평가했다. 물론 <삼국사기>가 삼국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 책을 읽고서 <삼국사기>가 얼마나 객관적이었는지, 공정했는지, 사대주의적 경향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감도 잡기 어렵다. 필자 스스로의 판단력을 갖추려면 <삼국사기> 완역본뿐 아니라 <삼국사기> 이전과 이후의 공인, 비공인 국내 사료와 중국측 역사서 등을 어느 정도 공부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 2016년 8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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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 이기영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0
이기영 지음, 이상경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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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일제 강점기 농촌마을의 실상

이기영 <고향> 1933년작, 2015. 11. 문학과지성사


<고향>은 1920년대 중반 원터라는 충청도의 한 농촌마을을 무대로 식민지 자본주의가 강요되는 상황에서 일제의 착취와 그에 따른 농촌의 황폐화, 식민지 자본주의화에 따른 광범위한 농민계급의 분해와 반프롤레탈리아적 성격을 지닌 빈농의 속출, 그에 따른 농민의 노동자화와 노동동맹의 필연성, 그리고 파업과 소작쟁의 등을 통한 빈농과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김원칠, 김선달, 조첨지처럼 땅을 지키고 살아온 원터 마을의 여러 빈농들과 새로운 것에 대한 지향을 강렬하게 품고 성장하는 인순이, 인동이, 방개, 막동이 등 농촌의 젊은 남녀들을 한 축으로 하고, 마름 노릇을 하면서 중간에서 농민들을 수탈하는 안승학과 고리대금업을 하는 권상철 등이 다른 한 축을 이루어 전개된다. 거기에 소작농의 아들로서 동경유학을 마치고 귀향한 전위적 지식인 김희준이 농민들을 의식화하고 그들의 집단 의식을 매개하여 마름 안승학에 맞서는 소작쟁의까지 이끄는 고리 역할을 하며, 안갑숙, 권경호처럼 자기의 계급을 마침내 뛰어넘어 민중의 편에 서는 지식인까지 광범위한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은 주인공 김희준이 5년 동안 동경 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원터 마을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그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마을은 한편으로는 전등과 전화가 가설되고 읍내에는 제사공장도 들어서면서 시골 읍내가 도회지로 변하는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농민들은 점점 못살게 되어 술지게미까지 사다가 먹는 판이다.

농민들은 희준이가 번듯하게 출세할 것이라는 선망과 기대를 가지는 한편 마름인 안승학과 일제의 순사는 희준이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 희준이는 농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직접 농사를 지으며 마을 청년회 일을 보고 야학을 연다. 농민운동보다는 여가 선용에 더 관심이 많은 청년회원들은 소시민성을 깨달으면서 그는 야학을 바탕으로 두레를 모은다. 마름 안승학은 두레를 놀면 소작인들이 합심하여 힘을 가지게 될까 두려워하여 학삼이로 하여금 방해공작을 펴게 하지만 실패한다. 

방개를 놓고 사랑을 다투던 인동이와 막동이, 소가 뜯어 먹은 콩잎 때문에 큰 싸움을 벌인 백룡이 모친과 쇠득이 모친 등도 두레를 놀면서 화해하고 서로 한마음이 될 수 있었다. 농민들 사이에서 유식꾼으로 살아온 경력 때문에 늘 진보적 견해와 보수적 견해로 대립해 온 김선달과 조첨지도 두레를 통하여 합심하게 된다. 


서울 유학을 가 있던 안승학의 딸 갑숙이는 고향에 와서 소꿉동무였던 희준이의 변화한 모습에 찬탄하며 경호와의 연애 문제로 부녀간의 충돌을 일으키고 가출하여 읍내 제사공장의 여공이 된다. 제사공장에는 가계를 돕기위해 이미 씩씩한 여공이 된 인순이와 인동이에 대한 애정을 누르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시집을 갔다가 못 참고 뛰쳐 나와 건강한 여공이 되어 새 생활을 시작한 방개도 있다 그리고 갑숙이와 연애 문제가 꼬이면서 자신이 읍내 부자 권상철의 아들이 아니라 구장집 머슴 곽서방의 아들임을 알게 된 경호도 새 생활을 꿈꾸며 이 공장의 사무원으로 들어와 있다. 

원터 마을의 농민들이 모처럼 풍년의 꿈에 들떠 있을 때 홍수가 나서 논은 모두 물에 잠기고 인동이 네 담이 무너져 그 아내가 유산을 하는 등 마을 전체가 큰 피해를 보게 되자 사람들은 안승학에게 소작료를 탕감해 달라고 청원하나 들어주지 않아 민지주에게 직접 요구하기에 이르렀는데 지주는 모든 것을 마름에게 일임할 뿐이다. 마름 안승학은 오히려 지주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여론의 중심이 된 인물들만 탕감해 주겠다는 술책을 쓰려 한다. 그러나 농민들은 희준이의 지도로 단결하여 벼를 베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시일을 끌면서 농민들은 당장의 배고픔 때문에 벼를 베어야겠다고 동요한다. 


이들의 동요에 희준이는 크게 당황하고 그 동안 자신이 행한 조직사업과 농민들에 대한 의식화사업의 수준에 회의하게 된다. 그 때 갑숙이, 방개 등이 기금을 내놓아 급한 변통을 하고 인동이와 김선달이 농민들을 설득하여 단결을 흐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고서도 안승학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최후의 수단으로 갑숙이와 경호의 비도덕적 계를 폭 로하겠다는 위협으로 안승학을 굴복시키고 농민들은 승리를 거둔다.


작품의 배경이던 1920년대는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과 산미 증산 계획의 여파가 농촌을 황폐화시킨 시기이다. 소지주와 자작농이 몰락하고 소작농이 급증하며, 급격한 계층 분화 현상을 보이던 때였다. 곡가는 폭락하고, 이에 따라 기승하는 고리대금업, 가혹한 소작료 등이 농민을 극심한 기아와 유랑으로 내몰았다. 

이기영은 <고향>에서 이러한 농촌의 가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였고, 농민들의 단결과 저항을 통해 이를 타개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식민지 조선의 항일운동가로서, 그리고 봉건적인 착취체제를 타파하려는 실천적인 문학가로서 일제시대의 적나라한 사실을 보여주고 노동자 농민 등 민중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선보였던 1930년대 중반은 상당수 지식인들과 계몽운동가들이 일제에 협력하기 시작한 때였다. 


현대 문학계에서 <고향>은 ‘프로문학의 정점’이자 한국 근대 장편소설에 사실주의(리얼리즘)의 확립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문학’은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줄임말로, 1923년을 전후하여 사회의식을 강조하며 등장한 신경향파 문학이 1925년 8월 ‘카프(KAR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결성과 함께 뚜렷한 목적의식을 강조하는 문학사조를 말다.

저자 이기영(李箕永, 1895. 5. 29 ~ 1984. 8. 9)은 일제 강점기 카프의 맹원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소설가이다. 도쿄 세이소쿠(正則)학교를 중퇴하고,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귀국했다. 1924년 문예지 《개벽》 현상문예에 〈오빠의 비밀 편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 후 〈서화〉, 〈인간수업〉, 〈고향〉, 〈신개지〉, 〈땅〉, 〈두만강〉, 〈봄〉 등을 발표했으며, 희곡 작품으로 〈그들의 남매〉, 〈월희〉 등이 있다. 

해방 후 친일파들의 득세와 위협으로 월북하여 북한에서 조선예총위원장 등 각종 기관의 책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집단성과 프로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을 쓴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영등포공부모임의 작년 11월 세미나 교재로 선정되었고, 참가자들의 큰 관심 속에 열성적인 토론과 평가가 진행되었다.


[ 2016년 7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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