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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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반 가정에서 ’쇠고기’라 함은 매우 특별한 식품일 것이다. 지난 40년 넘게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쇠고기는 ’명절 음식’이었다. 우리집에서는 설과 추석 때가 되어야 가끔 쇠고기를, 그것도 갈비찜으로 먹는 연례 행사였다. 그것은 우리 집과 친척들에게도 공통적인 음식문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우리 집과 친척은 현재 자기 집 한 채 정도 있고 부모들은 모두 일선에서 은퇴하고 자식들의 용돈으로 생활하는 정도이다. 지난 40년 동안 대부분의 친척들은 빠르면 1980년대에 늦으면 1990년대에 자기 집을 마련한 세대였다.(그렇다고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늘 풍성하게 먹은 것도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도 쇠고기는 지금도 그다지 ’좋다’던가, ’맛있다’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쇠고기(등심, 갈비, 육회 등)는 특별한 행사나 접대, 중요한 모임에서 서로 대접하는 경우에 식당에서 올라오는 음식이다. 내 기억에 회사의 법인카드로 결제하거나,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적인 필요나 기호로 인해 쇠고기를 먹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실제 먹어본 적도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일반 중산층이나 서민들은 나와 비슷한 처지이고 생각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가정하고 산다.
 
그래서 2008년 PD수첩에서 광우병을 중요하게 다루고 언론에서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때도 쇠고기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 역시 수 차례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촛불시위에 참석하였지만, 그것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분노보다 국민적,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태도와 대응이 컸다.(물론, 이명박 정부와 그 똘만이들의 작태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지만...)
 
이 책 <육식의 종말>이 처음 내 머리 속에 들어온 것은 광우병 사태가 벌어진 2008년이었다. 당시 광우병과 소고기에 대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저자의 책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구하거나 읽지는 않았다. 그 뒤로 시간이 흐른 뒤, 2009년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실 즈음 그 분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유러피안 드림>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육식의 종말>과 같은 저자라는 책 소개를 보면서 두 번째로 각인된 것이다. 저자의 책을 여러 권 준비했다가 벼르고 별러 작년(2010년) 초부터 <노동의 종말>과 <소유의 종말>, <유러피안 드림>과 <엔트로피>, 그리고 공부모임 교재로 <공감의 시대>를 읽었다. 책 내용 마다 이 책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간략하게 필요한 내용이 들어있어서 읽지 않고 넘어가도 되지 않겠냐라고 생각했다.(이 책의 최초 발간년도는 1992년이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의 저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육식의 종말>은 법정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서도 다루어졌고 남미에 대한 이야기에도,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국의 식량난과 관련한 책과 글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저자의 책 속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례를 보면서 결국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육식을 중심으로 한 현대인의 식생활에 비판을 가한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육식 문화, 특히 쇠고기에 집중되는 음식 문화와 이로 인해 파괴되는 환경과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생태계를 보호하고 생존권을 위한 식량의 공급,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명체들의 안녕을 위해서 현대사회가 육식 문화를 넘어야만 지구의 미래에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책은 서양 문명과 소에 대한 관계를 다루면서 시작한다. 내가 보기에도 육식이 흔치 않았던 동양과 달리 서양(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원 전부터 신화와 벽화에서 소가 등장하는 문화였다. 대지가 척박했던 것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책은 이어서 소와 소고기 산업으로 유럽과 미국의 경제가 변화하는 모습, 목축산업을 위해 미국 내 버팔로를 몰살시키고 인디언을 학살하는 과정, 쇠고기의 본격적인 산업화를 이야기한다.(여기까지가 1~3부) 4부에서는 유럽, 미국 뿐 아니라 제3세계와 빈국에서 대규모 경작지가 쇠고기를 위한 곡물재배지로 탈바꿈하면서 ’배부른 소 떼와 굶주린 사람들’로 양분된 세계의 모습을, 5부에서는 지구의 환경을 위협하는 쇠고기 산업, 6부에서는 ’차가운 악(cold evil)’이 되어버린 쇠고기 문화를 다룬다. 물론, 책 속에는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 서양과 그들을 모방한 몇몇 나라의 식생활과 건강이 심각하게 취약해진 상황도 묘사한다.
 
<소유의 종말>과 <노동의 종말>에서도 느꼈지만, 저자는 매우 독창적인 사유체계를 지닌 사람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보여지는 ’소유’나 ’노동에서, 그리고 이번에는 ’육식’에서 저자는 그 단어들이 함축하는 정의와 개념을 끌어내고 그것을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인 관점에서 풀어내는 재능이 탁월하다. 또한 그 과정에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폭 넓은 연구와 학식,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들어 있다.
 
한국 사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저작들은 상당히 앞선 연구들이다. 서구사회나 동양의 경우 일본 정도에서 저자의 연구 주제가 일반화되는 과정이 진행 중일 뿐이고 한국의 경우에는 <소유의 종말>과 <노동의 종말>, 그리고 이 책 <육식의 종말>의 경우에도 거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한국 뿐 아니라 동양사회의 경우 일찍부터 농경사회가 자리잡았고 신화나 음식문화에서도 육식보다 채식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육식의 종말>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2008년 촛불시위 당시의 상황에서도 깨달았듯이 서구, 특히 미국의 쇠고기 산업이 예속적인 친미정권을 등에 엎고 무차별적이고 강제적으로 이 땅을 침범하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구제역 파동에서도 보여지듯이 한국의 낙농산업이 취약하기 때문이고 먹거리는 산업과 무역으로만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책 속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쇠고기 산업의 정육체계가 부실할 뿐더러 산업으로서의 육우는 정상적인 동물의 생육과 성장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소의 체중을 늘리기 위해 자행되는 부당하고도 비도덕적인 업체들의 행위는 우리가 미국산 소고기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 쇠고기 산업은 단지 낙농 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와 콩 등 세계적인 곡물과 사료의 수급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식량과 곡물 등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가정경제에까지 좌지우지될 수 있다. 넷째, 저자의 표현대로 현재의 세계 식량위기는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위 ’선진국’이 과도하게 식량을 섭취하고 낭비하기 때문이고 더 중요하게는 사람이 먹을 식량을 소와 돼지 등 산업용 동물들이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통해 ’채식 위주’의 음식문화에 대한 계기가 마련될 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막상 다 읽고나니 내 기대와는 조금 다르게 전개된 느낌이다. 그렇더라도 [육식의 종말]에 이바지해야 하겠다는 의지가 생겨날 정도는 된다.
 
* 책 속의 문장
- 지방많은 소고기를 원하는 영국인들, 평원의 황소를 구입할 돈줄이 필요한 서부목축업자들, 잉여 옥수수를 먹어치울 비육우를 원하는 중서부 옥수수 재배 농부들, 새로운 식민지 투기적 시장을 이용하려는 영국 재정가들의 관심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미국의 ’축산단지’가 창출되었다.(p.118)
 
- 오늘날 소와 다른 가축들은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멀찍이 떨어져 있다. 사람들은 지역 슈퍼마켓에서 미리 포장된 형태의 쇠고기 부위를 구입한다. 목축업자들은 전국의 고기 생산용 소들을 많은 공업단지들처럼 사람들의 시야에서 차단된 고립된 장소에 격리시켰다. 현재 비육장은 고도로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관리인’과 짐승들 간에 직접적인 접촉은 아주 뜸한 편이다. 심지어 일상적인 사료 공급도 컴퓨터로 관리되곤 한다. 제임스 서펠은 이 정도의 거리감에서 동물들은 단순히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 추상화된 존재인 생산의 숫자나 단위가 될 뿐이다라고 말한다.(p.336) 
 
[ 2011년 2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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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