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인권 -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26
서보혁 지음 / 책세상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서평] 서보혁 저 <코리아 인권 : 북한 인권과 한반도 평화> 2011. 1., 책세상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 상황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일차적 책임은 북한 정부에 있겠지만, 국제사회와 남한 정부의 대북한 인권정책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 인권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리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북한 인권을 ‘실제로’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위 두 개의 문장이 북한의 인권 상황과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겠다는 국제사회 및 한국 정부의 활동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이 책은 기존의 북한 인권 논의와 정책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바탕으로, (북한 인권을 정치적, 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코리아 인권’이라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
‘코리아 인권’은 남북한이 국제 인권 규범에 입각해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반도 차원의 인권 신장을 위해 협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저자는 "남북관계와 북한 인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추구해야 할 과제"이며, 코리아 인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남한의 적극적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코리아 인권’에 대해 책 뿐만이 아니라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시론] 유엔 북한인권 결의와 한국 역할 / 서보혁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5603.html)

제1장 ‘국제 인권 제도의 현황과 추세’에서 저자는 인권의 원리와 국가의 책임을 설명한 후, 국제 인권 제도의 발전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1948년 유엔에서 ‘세계 인권 선언’이 채택된 후, 국제적으로 인권의 개념과 제도는 발전해 왔다. 처음 1세대 인권이라 할 수 있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일명 ‘자유권’)’에서 출발한 인권의 내용은 제2세대 인권, 즉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일명 ‘사회권’)’로 확대된 후, 현재는 제3세대 인권인 자결권, 개발권(발전권), 평화권, 소수 종족의 문화 유산을 보호할 권리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국제사회와 유엔은 각종 인권 기구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자유권위원회, 사회권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 이주노동자위원회, 장애인권리위원회 등이 그것이다.

인권의 내용과 개념의 역사를 통해 현재 인권 논의에서 중요한 개념은 ‘인권들 사이의 상호 연관성’과 ‘인권과 다른 보편적 가치들 간의 연관성’이라 할 수 있다. 유엔인권위원회와 인권 전문가들은 인권이란 “서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총체”라고 말한다. 따라서 자유권, 사회권 및 제3세대 인권은 따로 떼어낼 수 없이 연관되어 있고, 각각의 인권의 신장 없이 다른 인권을 신장시킬 수 없게 된다. 또한 인권 내에 상호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인권과 다른 보편적 가치들 사이에도 불가분성과 상호 연관성이 있다. "인권 단체가 인권 신장을 위해 다른 보편 가치(민주주의, 평화, 사회발전, 인도적 지원 등)와 관련된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인권 문제만 다룬다면 그것은 순진하거나 무지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제2장 ‘기존의 북한 인권 논의 비판’에서 저자는 국내와 국외의 북한 인권 관련 논의과정을 소개하면서 ‘백가쟁명’과 ‘각개약진’이라고 규정하면서 국내의 경우 정당이나 시민단체 등이 각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고, 해외의 경우에는 관련 국가들이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개별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국내에서 북한 정권 타도를 외치고 대북 삐라만 발송하면서 북한의 다른 인권과 국내 인권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편향적인 북한인권단체들과 정치권을 비판하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내재적 접근’이라는 관점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하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원칙적인 입장만 밝히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진보진영에 대해서도 비판하며, 한국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 등이 북한의 인권 문제 중에서 ‘자유권’에만 집중할 뿐 사회권이나 제3세대 인권, 그리고 보편적 가치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태도도 비판한다.

“이들은 북한 인권 문제를 북한 정권을 비판,부정하는 근거로 삼을 따름이지, 해당 인권의 성격과 특징을 감안해 어떻게 개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다. 이는 인권의 불가분성과 인권의 통합적 접근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반인권적 사고와 방법으로 인권 개선에 나서는 자기모순을 보여준다. 인권은 목적인 동시에 수단과 과정이고, 베제와 차별이 아니라 포용과 연대로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역사가 말해준다."
“인권의 이중적 상호 연관성을 상기할 때, 인권 개선과 평화 정착,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화해와 협력을 조화롭게 추진할 지혜가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남한의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분단이 주는 구조적, 역사적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다."

국내에서 제기된 북한 인권을 둘러싼 쟁점으로는 인권관, 북한 인권 실태, 북한 인권 상황이 악화된 원인, 탈북자 문제, 북한 인권 개선 방안 등이 있으며, 저자는 각 쟁점에 대해 평가한다. 각 쟁점에 대한 설명과 평가 중에는 각 쟁점에 대한 북한 정부의 입장과 대응이 소개되어 있다.
“다섯 가지 북한 인권 문제를 둘러싼 쟁점은 현재 우리 사회가 북한 인권의 실태와 원인, 해법을 두고 다양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각기 자기 입장만 합리적이고 상대의 입장은 비합리적이라는 논쟁 구도를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 인권의 범주와 그 원인, 그리고 탈북자 등에 관한 입장 차이는 역설적으로 어느 한쪽의 입장이 아니라 양쪽의 입장을 동시에 취할 때 온전한 이해와 합리적 접근이 가능함을 말해준다. 다양한 입장차이는 북한 인권에 관심이 있는 모든 그룹이 서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공감대를 이루면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 뒤에는 북한, 대북정책, 그리고 인권 일반에 대한 인식과 접근방법의 차이가 무겁게 도사리고 있다. 이는 북한 인권의 신장은 ‘인권’ 자체만이 아니라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 그리고 북한의 개혁 개방 등 ‘북한’이 처한 다른 관심사와 주변 환경과 연계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저자는 결국 지금까지 북한 인권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선택주의, 근본주의, 상대주의, 도구주의, 차별주의라는 다섯 가지로 제시해 이후 대안 모색의 반면교사로 삼는다.
“그러나 특정 국가의 인권 문제만을 따로 떼어내어 접근하는 것은 자국의 인권을 함께 성찰하지 않고 타자를 차별과 배제의 시각으로 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권의 보편성을 왜곡할 수 있다. 특히, 북한과 정치 체제가 다르거나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가 북한 인권을 다룰 경우 적대적이고 차별적인 인식을 갖고 대상화해 접근할 개연성이 높다.”
“북한 인권만 다루는 국내외 단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인권 문제는 유보해 놓고 외부의 특정 인권 문제를 대상화해 차별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북한 인권에 관여하는 근거로 인권의 보편성을 들고 있지만, 그런 접근은 사실 인권의 보편성을 오용하는 것이며,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 채 갈등만 조성한다.”
“국제 사회가 아무리 인권이 보편성을 명분으로 특정 국까의 인권 문제를 다룰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우월의식과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가진 채 인권 문제만 부각시키는 것은 진정성도 없고 상대방의 인권 신장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저자는 기존의 북한 인권 논의와 활동에 대해“남한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은 실태 파악과 여론 조성, 북한 비판 등을 넘어서 실질적인 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 평가하면서” 동시에 "그동안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은 당위성만 있었을 뿐 전체적인 추진전략이 미흡”했고, “구체적인 북한 인권 개선 방법론 제시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활동 원칙과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자신의 결론으로 제3장에서 ‘코리아 인권의 필요성과 방향’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먼저 남북한 인권을 비교, 평가하면서 코리아 인권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북한 인권이 실질적 개선을 위해 “북한 인권 개선 방법상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각 문제 해결을 위한 기능적 접근에 그치지 않고 북한 인권에 접근하는 시각 자체의 변화가 필요”함을 주문한다. “남북한의 인권을 상대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할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치적 악용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 인권에 대한 도구주의적 접근을 지양하려면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측의 진정성이 요구되고, 그것은 곧 북한 체제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필요로 한다.” 또 북한 인권을 대상화해 차별적으로 접근하는 오만한 자세를 바꾸려면 “자신의 인권 문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양측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북한 인권에 접근하는 방법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그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이어진다. 남한의 입장에서는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남북한 인권 문제에 동시에 접근하는 ‘코리아 인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코리안 인권’이 필요한 이유로, 먼저, 냉전 시기에 남북이 체제 경쟁 차원에서 쌍방의 인권을 비난해온 것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으며, 둘째, 북한 인권을 둘러싼 논쟁의 이면에는 서로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권을 둘러싼 보편성-특수성 논쟁(개인주의적 인권관 대 집단주의적 인권관, 자유권 대 사회권)이 있고, 셋째, 북한 인권 문제를 둘러싼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고 논의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화시킬 필요가 있으며, 넷째, 아시아 권역 내 인권 긱구가 사실상 부재하는 상태에서 코리아 인권, 즉 남북 간 인권 협력이 지역 내의 인권 협력 발전에 초석을 놓을 수 있고, 다섯째, 북한 인권을 탈북자 문제와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등 전쟁과 분단으로 파생된 인도적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정 정치 체제 혹은 이념이 인권을 신장하거나 억압한다는 주장은 인권을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리를 통해 국가 권력은 그 체제 내의 인권 탄압을 은혜할 수 있다."
“체제가 다르고 군사적 대치 상황에 있는 남북한이 인권관을 둘러싼 입장 차이를 논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상호 대화와 협력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인권관이 변화하거나 자신과 다른 시각을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코리아 인권은 국제 인권 레짐을 준거로 삼아 상호 협력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극단적인 두 인권관을 화해시켜줄 것이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은 겉으로는 그것이 북한 인권 개선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사회 집단의 이해관계라는 정치적 맥락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코리아 인권은 그런 논쟁이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최소화하고 모든 논의와 방안이 실질적 인권 개선에 이바지하도록 한다는 실사구시이 관점을 견지한다.”
“남북 양측은 유엔과 유엔의 주요 국제 인권 규약 가입국이고 인권 보호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만큼 원칙적으로 인권 협력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남북이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교류와 협력을 진행하고, 그에 따라 일정 수준의 신뢰가 형성되면 다른 분야와 함께 인권 분야에서도 가능한 사안부터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인권을 광의로 정의하고 거기에 탈북자 무제와 남북 간 인도적 문제를 포함시키는 것은 소극적 차원에서는 북한 인권에 대한 대상화와 차별화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보다 적극적인 차원에서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남한의 건설적 관여의 기회를 넓혀준다. 요컨대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협력은 코리아 인권의 토대이자 가교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코리아 인권의 개념을 “남북한이 국제 인권 원리와 상호 존중의 정신 아래 인권 개선을 위해 협력해나가는 과정과 그 결과가 한반도 차원에서 나타나는 상태”라 정의하고, 이는 남북한이 상대의 인권 문제를 도구화, 대상화하지 않고 한반도 차원의 공동 협력 과제로 인식하는 것을 전제로 함을 밝힌다. “유엔의 정신이기도 한 평화공존과 국제협력은 코리아 인권이 지향하는 인권 개선 전략의 지지대이다.”
그는 남한의 입장에서 코리아 인권이 남한의 적극적 역할로 북한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해내는 소극적 측면과 남북한이 상호 인권 개선에 건설적으로 관여함으로써 인권 친화적인 통일과 아시아 인권 레짐 형성에 기여하는 적극적 측면을 함께 갖고 있음을 주장한다.

코리아 인권에 접근하는 방향으로 그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세 가지는 맥락적 보편주의와 역사구조주의, 그리고 포괄적 접근이다.
맥락적 보편주의는 인권의 보편성을 구체적인 인권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다. 즉 해당 인권 문제 안팎의 배경과 조건을 실질적 인권 개선에 활용하는 접근 태도이다. 맥락적 보편주의는 코리아 인권에 대한 몇 가지 원칙으로 구체화된다. 보편성,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그리고 상호 연관성이다. "북한 인권과 관련되어 있는 개발, 평화, 인도주의, 민주주의, 화해의 문제 그리고 한반도에서 그런 보편 가치들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분단 체제는 코리아 인권이 포괄적 범위에서 그리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역사구조주의란 종합적인 인권 실태 파악과 원인 규명에 유용하다. 구체적인 인권 침해 형상에 대해서는 보호조치와 함께 인권 침해 중단 및 방지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나, 근본적인 인권 증진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역사구조주의는 탈북자 문제의 원인, 역사적 배경, 해결 방법 등을 다룸에 있어 한반도와 동북아의 이중 분단 체제까지 포함한 다층적 변수와 남북을 포함한 국제협력, 그리고 이중적 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탈북자의 입장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요컨대 코리아 인권에 관한 역사구조주의적 인식은 분단, 전쟁, 체제경쟁으로 남북한 인권을 역사적으로 악화시켜온 구조적 제약을 공동으로 해결할 전기를 마련하는 데 관심을 둔다.”
셋째, 포괄적 접근이라 함은 인권 범주와 관련 변수의 복잡성을 직시한다. 코리아 인권의 시각에서 인권의 범주는 남북한 각각의 대내적 인권, 남북 사이의 인권, 탈북자를 비롯한 재외 동포의 인권을 망라한다. 그리고 이들 인권 범주에는 남북한 각각의 정치,경제 체제와 인권관은 물론 분단 체제와 남북관계, 그리고 북미 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주변 정세도 변수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남북 인권 협력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항목들을 제시한다. 
그는 남북 인권 협력 방안의 현실성을 위해 현재 상황에서는 크게 두 가지가 먼저 해결되어야 함을 말한다. 먼저 남북 관계의 변화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있거나 갈등 상황에 있는 경우 이 구상은 실현 가능성을 잃게 된다. 이런 점에서 코리아 인권이 남북 관계 발전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는 앞의 전제가 현실적 의미를 가진다. 즉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한 우호적인 남북관계의 형성이 북한의 실질적 인권 개선, 나아가 코리아 인권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상호 체제 존중을 전제로 한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 다른 조건으로는 북한의 대외 환경 개선이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남한의 건설적 역할에는 국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도 포함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일본을 몰론 유럽연합 측에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것을 촉구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국제 협력을 이끌어낸 것이 좋은 예이다.” “안보, 경제 분야를 포함한 북한의 전반적인 대외 환경 개선은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이 인권 개입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데 긴요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국 일본의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와 대북 경제 제재의 해제일 것이다. 물론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약속한 것을 이행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저자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남한의 적극적 역할을 위해 필수적으로 남한이 국내의 제반 인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함을 주문한다. 
“만약 남한이 국내 인권 문제를 간과한 채 북한 인권을 대상화해 다룬다면, 그것은 인권의 보편성을 훼손할 것이고 북한 인권의 실질적 개선에도 기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남한이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해 발언할 수는 있겠지만, 대내 인권이 후퇴한 상태에서 북한 인권을 거론할 경우 북한의 긍정적 반응을 얻기는 커녕 국제사회의 신뢰마저 상실할 수 있다. 이처럼 남한 내의 인권 증진은 북한 인권 개선은 물론 인권 친화적인 통일을 준비하는 데도 꼭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한반도의 구조적인 이유로 북-미 갈등으로 인한 전쟁위기가 상존하여 국민들의 평화권이 위협되어 있고, 빈부격차의 심화, 자살률 세계 1위, 비정규직 비율 세계 상위권 등 사회권은 악화일로에 있으며, 결사의 자유 억압, 표현의 자유 위축, 파업의 자유에 대한 손배소 그리고 분단체제를 악용한 반북 선동과 종북몰이, 개인의 사상과 양심을 자유를 억누르는 국가보안법의 유지와 악용, 소수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선출직 국회의원의 의원직 강제 박탈 등 자유권 마저 후퇴하는 2015년 상황에서 남한이 북한에게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인권 대화를 제안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새로운 내용을 많이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주도적으로 문제 삼는 국가가 미국이었기 때문에 - 유엔에서 정한 각종 선언이나 규약, 조약, 의정서에 가장 참여하지 않는 국가도, 이라크와 아프간 등에서 대량인명살상을 하는 국가도 미국이다 그리고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대부분의 근거가 국정원의 각종 ‘교육’을 거친 탈북자이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자국의 인권은 군사독재 시절로 퇴행하시키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현재의 북-미 대립구조나 남북관계의 특성상,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 상대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색채를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체제와 이념에 따라 관점과 해석과 내용이 달라진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등으로. 그럼에도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소수자, 약자가 소수이고 약하다는 이유로 배척되고 배제되고 공격받고 차별받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그런 관점의 ‘보편성’을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의 논리적 근거로서 아쉬운 점은 남한이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334

이 책을 읽은 후 이유와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지 북한 인민의 보편적 인권이 훼손되어 있고, 북한 인민의 인권 훼손이 분단구조로 인하여 남한 민중의 인권 훼손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북한은 남한과 다른 체제이지만 결국 한민족이고 동포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비록 체제는 다르지만 남북의 제도, 문화, 경제뿐 아니라 인권 역시 남북이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즉, 남한 내에서 나의 인권과 가족들, 지인들,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이 증진되기 위해서는, 남한 내에서 후퇴하고 있는 자유권과 사회권, 평화권이 증진되기 위해서는 북한 인민의 인권 역시 증진되어야 하는 연결 고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한 내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분단상황을 빌미로 군사독재와 기득권 독재를 강요하는 극우보수집단의 횡포이기 때문이다.
휴전선 앞에서 대북 삐라를 살포하면서 군사갈등을 부추기고 접경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며 연평도 사태와 같은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소위 ‘북한인권단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을 넘어서, 북한 인권을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 속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코리아 인권’ 개념으로 확대시켜 남북한 인권을 함께 증진시키자는 저자의 제안은 크게 공감이 되면서 남북 문제와 인권 문제에 대한 방향감각을 잡아주었다.

남북한이 협력하는 인권 개선의 길을 제시하는 이 책이 "한국 내부의 인권 문제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며, 정쟁의 대상으로 분열되어 온 북한 인권 논의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환"시켜 줄 것으로 기대한다.

[ 2015년 3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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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탐구히스토리
에드워드 H. 카 지음, 길현모 옮김 / 탐구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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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E. H 카(Edward Hallett Carr) 저, 길현모 역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 1961, 238쪽, 탐구당

20대 시절에도 <역사란 무엇인가>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p.42)
당시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라는 것이 어떤 굳어진 ‘정의’나 모든 것을 규정하는 ‘개념’ 아니라는 것, 교과서나 방송 또는 언론이나 학자들이 제시하는 것 이외에 숨겨져 있거나 감추어져 있는 다른 ‘역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역사에서 위인이나 영웅 개인보다 다수의 개인과 집단이 더 중요하다는 것, 시간이 좀 더 지나거나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교체되면 과거의 사실에 숨겨져 있는 이면이 드러나고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역사는 진보할 수 있으며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한 편으로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이 희미해지고 한국사회에서 부정과 불의가 뿌리깊은 것을 목격하면서 역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이 희석화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나마 정의와 양심이 조금씩이나마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하면서 역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지천명의 나이에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롭고 각별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차를  첫 번째 ‘역사가와 사실’에서부터 마지막 ‘넓혀지는 지평선’까지 여섯 개로 나누었다. 여섯 개의 목차를 통해 역사가의 의무와 역할, 역사와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 사회와 개인의 관계와 역할, 역사와 과학과 도덕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진보로서의 역사 등을 다룬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와 역사가와 역사서와 인간과 세계를 두루 관통하는 ‘역사철학’을 다루고 있다.(자세하게 공부한 내용은 http://blog.daum.net/hy2oxy/8692525 에서 참고)

○ ‘위인’ : 위인에 대한 헤겔과 E. H 카의 정의를 보면, 외국의 위인들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인물이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칭송과 우상화 역시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다. 과거 친일파나 군사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 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헤겔)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使役人)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E. H 카)

○ ‘역사가와 사실’ : 세계사나 동양사, 한국사 등 인류가 이룩해 놓았다는 제반 역사서들은 과거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역사가들이 특정 사실을 골라서 자신의 역사철학에 맞도록 구성한 것이며, 따라서 역사 또는 역사서 읽기를 전후하여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E. H 카는 친일파와 서구숭배주의자들이 구성한 한국의 과거 역사와 현대사가 불신받을 수밖에 없는는 이유를 명쾌하게 지적한다.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곡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문제이다.”(p.30)
“역사가는 임시로 선택된 사실과, 그러한 사실선택을 이끌어 준 임시적인 해석 - 그것이 타인의 것이건 자신의 것이건 - 과의 양자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서 해석이나 사실의 선택 및 정리는 다 같이 쌍방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미묘한 반무의식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울러 내포되는 것이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p.42)

○ ‘사회와 개인’ : 인류사회에서 사회와 개인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며, 개인과 집단의 의식과 행위는 사회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역사에서 특출했던 개인은 당시 시대적 과제나 일부 또는 다수의 요구, 외부적인 힘의 작용에 필요한 활동을 했기에 당시의 역사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런 개인이 시대적 과제나 다수의 요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탄생 직후부터 세계는 우리에게 작용하기 시작하는 것이고, 우리들은 단순한 생물적 단위로부터 사회적 단위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사시대나 역사시대의 여하한 단계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의 사회 속에 태어나는 것이고 또한 태어난 직후부터 사회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도 개인적인 상속물이 아니라 자기가 자라고 있는 집단에서 받은 사회적 획득물입니다. 언어와 환경은 다 같이 그의 사고의 성격을 결정짓는데 기여하며 그의 초년기의 관념조차도 타인들에게서 받는 것입니다.”(p.44)
“인간의 사회 속에서 개별화의 과정과 사회의 힘 및 결합력의 증대와의 사이에 대립관계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일 것입니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라고 할 때에 그것은 각 개인의 상호의존관계가 진보되고 복잡한 형태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근대국가 사회가 개인성원들의 성격과 사상을 형성하는 힘에 있어서나, 그들 간에 단합성이나 획일성을 이룩해 놓는 힘에 있어서 미개부족 사회보다도 무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p.45)

○ ‘역사와 과학’ : 역사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다. 역사가가 사실과 해석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이 양자도 서로 떼놓을 수는 없는 것이며 또한 양자 중의 하나만을 우위에 올려놓을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가가 보편성과 일반성을 다루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 있으며, 과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비슷하게 역사가의 주관성과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우선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 자체부터가 역사가로 하여금 과학자나 마찬가지로 일반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p.92)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입니다."(p.93)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데 있습니다."(p.99)

○ ‘역사와 종교와 도덕’ : 진지한 천문학자라는 것과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과는 양립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마음대로 유성의 궤도를 바꾸고 일식이나 월식을 지연시키고 우주의 운행규칙을 변경시킨다고 믿는다는 것과는 양립될 수 없는 것처럼 개인적인 도덕적 판단을 역사의 인과관계에 개입시키거나 교훈을 얻는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은 분리되어야 한다. 역사가는 역사적 인물의 공적인 판단과 행위를 역사서 속에서 평가하는 것이지 사적인 판단과 행위를 역사서 속에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도덕가에게 맡길 일인 것이다.

“진지한 역사가란 신이 역사 전체의 행로를 명령하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고 믿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특정한 인종이나 종족에 대한 살률에 끼어든다거나, 요슈아의 군대를 돕기 위해서 달력을 속여서 낮 시간을 연장한다거나 하는 구약성서식의 신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개개의 역사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을 끌어댈 수도 없는 것입니다.”(p.108)
"파스퇴르나 아인슈타인은 사생활에 있어서 모범적이라기도바도 성자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설사 그들이 불성실한 남편, 잔인한 아버지, 절조 없는 동료였다고 한들 그들의 역사적 업적이 손상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p.111)
“역사가들은 노예 소유주 개인에 대해서는 심판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노예 소유제 사회를 평가한는 일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이란 어느 정도까지는 해석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며,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 또는 가치 판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역사란 하나의 투쟁 과정이어서 그로부터 나타나는 여러 결과는 우리들이 그것을 좋게 판단하건 나쁘게 판단하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일부 집단이 타 집단을 희생시켜가지고 성취할 것입니다. 결국은 지는 편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p.116)

○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 역사가에게는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을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 즉 E. H 카의 말대로, 개인뿐만 아니라 역사가들 역시 미래에 일어날 역사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 예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의 조건을 따져봄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대한 개연성 또는 합리적 추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 또한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 역사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다음 달에 A라는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역사가가 할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역사가들이, 일부는 A 국가의 사태에 대한 개별적인 지식을부터, 일부는 역사의 연구로부터 끄러내려고 하는 결론은, A 국가의 정세는 이러이러하니까 만일 누군가가 일을 일으킨다든가, 정부측에서 손을 써서 이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짙다는 정도의 것입니다. 또한 이상의 결론에는 전망까지도 뒤따를 수 있습니다만 그 전망은 일부는 국민 각층이 취하리라고 생각되는 태도에 관한 딴 여러 혁명으로부터 유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p.102)
"볼세비키 당원들은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끝장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혁명도 같은 방식으로 끝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고, 그런 까닭에 그들은 자기들의 지도자들 가운데서 나폴레옹을 가장 닮은 트로츠키를 불신하고, 나폴레옹과 가장 닮지 않은 스탈린을 신임했던 것이다”

○ ‘진보로서의 역사’ : E. H 카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과거의 여러 세대의 경험을 측정함으로써 자기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이며,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라고 규정한다. 결국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보를 믿지만, 진보로서의 역사의 특징은 “역사에서 역전이나 이탈, 중단이 없이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나온 진보는 없다.”는 것과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명의 탄생이라는 것은 진보의 가설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으로 잡아볼 수는 있겠지만, 문명이란 결코 발명된 것은 아니며, 때때로 극적인 비약이 수반되었다고 여겨지는 무한히 점진적인 발전과정"이라 말합니다. 기원전 3천년, 4천년 전에 나일강이나 황하 유역에서 문명이 창안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p.171)
“적어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역전이나 이탈, 중단이 없이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나온 진보라는 것을 믿는 일은 없었다는 것, 따라서 가장 급각도의 역전이라 해도 반드시 진보에 대한 믿음에 치명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진보란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라 할 수 있다.(p.174)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독자들은 인류의 역사는 수백, 수천 년 전의 역사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과 과학적 증거의 확인, 그리고 삭제되거나 묻혀진 사실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50~100년 전 역사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과 가해자/피해자의 존재, 그리고 그 후손들과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 속에서 사실 관계가 부족하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한 과거사, 지배계층이나 특정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역사적 사실과 역사해석에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것이 ‘진보’와 ‘역사’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분단과 민족 문제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한반도의 현실은 그런 태도를 절실히 요구한다.

오랜만에 E. H 카의 역사철학을 다시 읽으면서 다시금 ‘역사’와 ‘진보’에 대한 믿음을 되살려본다. 그렇지만 20대의 열정 이후 또다시 20년을 넘는 기간 동안 지내오면서 배우고 깨닫고 느낀 지금 시점에서는 '역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 그도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지적했듯이 ‘역사’는 우주나 지구처럼 자연스럽거나 법칙적으로 ‘진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접어들면서 오히려 과거보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얻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과거의 오류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경향도 많고.

21세기 인류는, 서구사회에서 20세기 초 이래 100년 만에 소득과 부의 불평등성이 최고조에 도달한 것처럼, 수천~수만 년에 걸쳐 이룩한 인류의 진보가 후퇴할 수 있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있다. 비록 역사가 중단과 후퇴와 전진을 반복한다고 하지만, 현재의 세대가 역사에서의 전진이 아닌 중단 또는 후퇴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면 그 자체로 고통스럽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2015년 한반도와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이들이 겪고 있는 생생한 삶인 것이다.

그럼에도 미래를 살아야 하는 자식들과 후손들이 존재하는 한, 현 세대는 과거에서 교훈을 찾아 현재의 역사가 헛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인상깊은 문장-

“인간의 사회 속에서 개별화의 과정과 사회의 힘 및 결합력의 증대와의 사이에 대립관계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일 것입니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라고 할 때에 그것은 각 개인의 상호의존관계가 진보되고 복잡한 형태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근대국가 사회가 개인성원들의 성격과 사상을 형성하는 힘에 있어서나, 그들 간에 단합성이나 획일성을 이룩해 놓는 힘에 있어서 미개부족 사회보다도 무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p.45)

“우리들은 자유와 평등 사이의 긴장이라든가 개인적인 자유와 사회적인 정의 사이의 긴장이라든가 하는 문제를 추상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는 도안에 자칫하면 그러한 싸움이 추상적인 관념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그것은 개인 그 자체와 사회 그 자체와의 투쟁이 아니라 사회 속에 있는 개인집단 상호간의 투쟁인 것이며, 각 집단은 자기편에 유리한 사회정책을 추진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사회정책을 저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p.48)

“역사가 하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한없는 재물과 부를 지니는 것도, 전투를 하는 것도 역사 자체는 아니다. 모든 것을 행하고 차지하고 싸우고 하는 것은 인간, 즉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이다."(p.71 칼 마르크스 인용)
“2,500만의 가슴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었던 굶주림, 추위, 가차 없는 억압, 이것이야말로 철학을 즐기는 변호사나 돈 많은 장사꾼이나 지방귀족들의 금간 허영심이나 적대적인 철학 같은 것보다도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동일한 이치는 국가 여하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모든 혁명에 대해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p.71 토마스 칼라일 인용)

“이러한 이름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많고 적고 간에 무의식적인 행동을 함께 하고 있는 개인들이며, 그들에 의하여 하나의 사회적인 힘이 형성되는 것입니다."(p.72)

“역사에 있어서 수(數)라는 것이 중요합니다.”(p.73)

“특권 없는 사람들 위에 부과되는 보수의 대가는 특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위에 부과되는 혁신의 대가만큼이나 무거운 것입니다.”

"일반화라는 것이 개개의 사실을 맞추어 넣을 수 있는 역사의 대체계의 구성을 허용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체계를 세웠다거나 믿고 있었다거나 해서 흔히 비난을 받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만 그의 서한에서는 일반화의 원칙이 들어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놀랍도록 비슷한 사건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일어나면 전연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이와 같은 사건의 진행을 각각 따라 연구한 다음에 이를 서로 비교한다면 이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쉽사리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초월한다는 것을 최대의 덕으로 삼는 역사철학의 이론이 제공하는 열쇠를 가지고서는 결코 이상과 같은 이해에는 도달할 수 없다."(p.95)

“사회과학자들의 모든 관찰에는 반드시 그의 편견이 들어간다는 것 또한 진리는 아니다. 관찰과정 자체가 관찰대상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진리다. 즉 자기 행동이 분석과 예언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당사자들은 결과에 대한 불길한 예언에 의해서 사전 경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따른 행동의 수정이 가해지게 되고, 설사 그 예언이 아무리 정확한 분석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에 가서는 적중되지 않는다는 일도 생길 수 있다”(p.103)

“역사가는 재판관이 아니며 사형선고만을 내리는 가혹한 재판관은 더욱 아니다.(노울즈) 그러나 히틀러나 스탈린, 매카시 상원의원 등처럼 역사가 및 일반 사람들과 동시대의 인물의 경우에는, 그들의 행위로부터 직간접으로 피해를 받은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직능이 아니라는 주장을 누군가가 비판할 때” 역사가들이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고 밝힙니다.(p.114)

“개인에 대한 도덕적인 단죄를 열을 올려 주장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무의식 중에 집단이나 사회 전체를 위한 구실을 마련할 수가 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 도덕에 집중하게 되면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낳아 놓은 사회에 대한 역사가들의 도덕적 판단, 자신들의 집단적 과오에 대한 성찰은 실종될 수 있다.(p.115)

“우리들이 역사나 일상생활에서 적용하고 있는 도덕적 기준이란 은행수표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쇄된 부분과 써넣은 부분이 있습니다. 인쇄된 부분은 자유와 평등, 정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얼마만큼의 자유를 누구에게 주려고 하는가, 누구를 우리들과 동등하게 인정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어느 정도까지인가 하는 것을 딴 부분에 적어 넣기 전에는 수표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때 그때의 경우에 따라 수표의 내용을 기입해 나가는 그러한 방식이야말로 바로 역사의 문제인 것입니다. 즉 추상적인 도덕개념에 특수한 역사적 내용이 담겨져 나가는 과정이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란 말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도덕적 판단은 개념적인 틀 속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만, 그 개념적인 틀 역시 역사적 산물 이외의 겻은 아닙니다.”(p.120~121)

“평등, 자유, 정의, 자연법 등의 가상적인 절대자들도 그 실제내용은 시대가 변하고 대륙이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집단은 역사에 뿌리박은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유리되고 역사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기준이나 가치란 추상적인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닌고 있는 믿음이나 우리가 설정하는 판단기준이라는 것도 역사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연구의 대상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인간행위의 그 밖의 측면과 조금도 다를 것은 없는 것입니다."(p.123)

“피부색은 생물학적인 유전이고, 언어는 인간의 두뇌활동을 매개로 하여 전승되는 사회적 획득물입니다. 유전에 의한 진화는 몇 천년, 몇 백만년을 단위로 해서만 측정될 수 있는 것으로써, 유사 이래로 인간에게는 아직도 이렇다 할 생물학적인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획득에 의한 진보는 세대를 단위로 하여 측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과거의 여러 세대의 경험을 측정함으로써 자기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이라 규정한다.(p.170)

“인간은 조상들의 경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란 자연계에 있어서의 진화와는 달리 습득된 자산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이 ‘자산’에는 물질적인 재력뿐 아니라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고, 변형하고 이용하기 위한 능력도 포함된다. 그리고 '진보의 내용'은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p.178)

“역사 서술을 진보하는 과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제 사건의 진전에 대해서 부단히 넓혀지고 깊어지는 통찰을 마련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p.186)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p.196)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p.198)

[ 2015년 6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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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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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김태형 저 <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를 읽고 / 2010. 11., 307쪽,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IMF 금융위기와 미국발 경제위기를 겪고 난 이후 시기의 한국인들의 마음에 대한 최초의 심리학 보고서이다. 더 정확하게는 “ IMF 경제위기라는 크나 큰 정신적 외상을 겪은 한국인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보고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은 단군 이래 최악의 불안과 우울, 무기력과 분노를 경험하고 있다. 정부와 언론이 화려하게 포장하여 발표하는 외형적인 경제 지표 이면에는 한국인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려주는 통계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세계 50위권에 불과하고, 한국은 OECD 국가 중 남녀 소득 격차, 국채 증가율, 세부담 증가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근로 시간, 노동유연성(해고의 용이성), 산재 사망자, 비정규직 비율, 이혼율, 자살률, 사교육비 비중 등이 1위인 나라이다.
이 보고들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생존을 위협당하며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김태형은 한국인의 심리 상태를 한마디로 ‘불안’, 즉 생존위협에 대한 만성화된 공포라고 규정하고, 자살률이 높아지는데 출산율은 줄어드는 한국사회가 이미 멸종의 길로 들어섰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또한 IMF경제위기 이후 사회 시스템의 변화와 환경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인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무한 경쟁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까지 개인의 문제로 돌려왔던 불안, 우울 등 한국인이 겪고 있는 마음의 병은 사실 바로 한국사회로부터 비롯되었다. 급속한 경제 성장 후, IMF라는 부작용을 경험한 한국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한국인들의 트라우마의 원인 중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발생한 것은 30%에 불과하며, 나머지 70%는 사회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IMF 경제위기 이전부터 한국 땅에 상륙한 신자유주의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한국의 주류세력을 통해 국민들에게 검침없이 확산시켰고, 신자유주의적 발전모델을 강요함으로써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을 손아귀에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한국인들의 마음은 시퍼렇게 피멍이 들었고 그것은 어느새 치명적인 마음의 병이 되어버렸으며, 그리하여 오늘의 한국인들은 과거 어느때보다 불안하고 우울하며 무기력하고 또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광풍이 대다수 한국인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다수 한국인들은 ‘너무나 불안’하기 때문에 일중독, 자녀교육 중독에 빠져버렸으며, 그 불안의 원인은 신자유주의가 이식한 ‘무한경쟁’이다. “경쟁에서 낙오될까봐 어른들이 강박적으로 일에 매달리고 자식들을 공부에 올인시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과 ‘한국경제의 미래가 너무나 불확실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IMF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발전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한국인들의 트라우마를 계속 악화시켰다. 
그때부터 한국인들은 자신말고는 "그 누구도, 아무 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교훈을 떠안은 채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는 것이다.

미국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만들어진 한국식 경쟁의 특징은 ‘승자독식의 원리’와 ‘사회의 모든 영역에 도입되는 무차별성’이다. "과거에는 노동자, 농민, 학생과 같은 사회집단들의 경우 비록 개인이기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집단 내부에는 공동체주의 혹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살아 쉼 쉬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이나 노동자집단 내부에까지 경쟁이 무차별적으로 도입된 결과 오늘날의 학생들이나 노동자들한테서 공동체의식을 찾아보기란 아주 어려워졌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한국인들의 내면에 들어와 튼튼히 자리를 잡고 앉아 지속적으로 생존위협을 가한다.”

그러한 ‘생존위협’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 역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함과는 별도로) 제도적인 측면과 구조적인 배경에는 신자유주의가 강요한 규제완화, 민영화, 비정규직화, 물질만능주의가 도사리고 있었고, 그 피해는 애꿎은 어린 학생들에게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것은 국가가 아니다!”라고 분노하면서 바꾸려고 저항하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무기력과 우울함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사법, 학계 등 도처에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가 보이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불안, 공포, 두려움과의 연관성에 대해, 저자는 “사람은 육체적 생명만이 아니라 사회적 생명도 가지고 있으며, 그 사회적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라는 개념으로 분석한다. 그 개념을 뒤집으면 “사람이 사회집단에서 배제되거나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허락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타인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사회에 필요하지 않은 무가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나 반만년 이상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를 공유해온 한국인들은 공동체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때문에, 다른 민족이나 사회보다 집단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저자의 심리학적 분석은 ‘내면화된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은 사람들에게 우울, 무기력, 고독 등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시키며, 부정적인 감정은 ‘도피’ 동기를 가져오고, 그 동기는 불안과 공포를 유발시키며, 사람들은 이에 대해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두려움을 회피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방어기제를 남용하는 사람은 결국 정신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제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분출하거나 그 자극원을 제거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해결해야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저자는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현재 한국인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원인을 9가지 심리 코드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마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저자가 제시한 심리 코드 9가지 중에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을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기본 원인이 한국사회에 있다면 마음수양이나 치료를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사회를 개혁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좀 더 근본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회개혁을 위한 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첫째는, 절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회적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부 원인을 안다 하더라도) 개인의 힘만으로는 사회개혁이 불가능하며 그것은 오직 사회집단만이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처해 있는 불안증폭사회의 해결책과 방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먼저 자신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마음이 병들어서이고, 자신을 병들게 하는 것은 병든 한국사회 때문이라는 사실을 의식화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몇 가지 실천을 해야 한다. 첫째,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들을 재검토하여 건강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둘째, 건강한 공동체를 찾아 소속되고, 스스로 소규모 공동체라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개인적 사회적 병인을 의식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개인적으로든 공동체를 통하서든 정치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사회를 개혁하여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만이 ‘불안증폭사회’를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증폭사회를 저지하는 사회 개혁의 방향 중 시급한 것은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영역을 줄어야 하며,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구현해 한국인들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하고, 건전한 정치세력이 등장함으로써 대중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건전한 정치세력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필히 사상, 정치 시장에서 자유경쟁을 허용해야 함을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정치판에 시장원리와 경쟁원리를 도입해 시장독점을 타파하고 불량상품을 퇴출시키지 않는 한 한국의 정치상황은 좋아질 수도 없고, 대안세력도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태형의 심리학은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원인 이외의 사회와 역사 속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고 신선하다. 기존 한국 심리학계에서 제시하는 심리분석은 마치 '신자유주의의 심리학판'처럼 개인 위주라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보였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한국인의 집단 심리와 병리현상이 몇 년 사이에 한꺼번에 형성되지는 않았을텐데, 그 부분에 대한 접근이 부족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트라우마 한국사회>가 단연 돋보인다.

심리학자 김태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트라우마 한국사회>를 통해서다. 그는 <트라우마 한국사회>에서 한국현대사를 통해 형성된 한국인들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세대별 트라우마와 집단 트라우마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트라우마 한국사회>의 전작이다.
한국인들의 사회적 심리와 사회적 트라우마를 다룬 저자의 ‘한국인의 심리 3부작’의 최종인 <싸우는 심리학>까지 읽어야 '김태형 심리학’을 다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 2015년 4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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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진실 -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나
곽동기 지음 / 615(육일오)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추천 [서평] 곽동기 저 <세월호의 진실 :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나>를 읽고 / 2014. 08.196쪽, 도서출판615

세월호가 침몰한지 1주년이 하루 남았다. 2014년 4월 16일 아침은 화창하고 따뜻한 봄날이었지만, 세월호 안에 갇혀 정부를 믿으며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의 외침은 세월호 주변만 맴돌던 해경의 사이렌과 헬리콥터 소리에 가려졌고, 방송에서는 ‘전원구조’라며 이들을 외면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진도에 찾아가 다짐했던 ‘최선을 다한 구조’는 공염불에 그쳤고, 해경과 해군의 방해 속에 부모들의 절규와 간절함을 뒤로 하고 그렇게 학생들은 바다 속에 수장되었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나?”

사고 직후, 청해진해운의 위험천만한 운항과 선장과 선원들의 파렴치한 행각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해경과 해수부와 해군은 학생들에 대한 구조에 전력하기보다 언론플레이에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거짓말은 침몰 현장을 찾아간 유가족들과 몇몇 양심적인 기자들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 책은 세월호 참사 후 100일 만에 발간되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거짓말을 들추어내고 합리적인 의혹을 제시하며 ‘특별법’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전국에서 54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의 의혹을 풀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서명했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세 번이나 유가족과 시민들을 속이며 야합을 거듭했고, 야합 끝에 특별법을 만들었다. 
2014년 11월 그들이 국회에서 짜집기한 세월호특별법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구조실패에 대한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기어려운 법이었지만,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부족하나마 진실규명을 위한 첫 걸음이라 판단하여 수용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의 우려는 2015년 들어 새누리당이 추천한 특별조사위원의 황당한 주장과 정부의 불법 시행령으로 현실화된 상태다. 특별조사위원회의 주요 조사대상인 해양수산부와 해경의 공무원들이이 특별조사위원회 조직을 장악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교묘하고 야비하게도 한 편에서는 (유가족이 논의 자체를 반대하는) 배보상안을 언론에 뿌려 물타기를 하고 세월호를 인양을 검토하겠다는 등 정치적 수사를 남발하며 진상규명을 방해하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의 주인인 시민들은 1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무엇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밝혀야 하는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의 행보가 의문투성이일수록 오히려 시민들과 유가족이 국민적인 진실조사에 나서야 한다. 이 땅의 주인은 대리인인 공무원과 정치인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기 때문이다.

"해경은 왜 골든타임을 버렸는가.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해군참모총장의 통영함 출동명령을 누가 막았는가. 해경은 왜 언딘에게 구조작업을 전적으로 맡기고 민간잠수사의 구조를 막았나."

"4월 16일, 그 급박하던 시간에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세월호는 왜 비상사고시 국정원에 보고하게 되어 있었나. 세월호에서 발견된 [국정원 지적사항]이란 문서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도대체 우리 아이들을 누가 죽였는가."

저자 곽동기는 이 책을 통해 세월호 침몰 전부터 100일 되는 날까지 제기되었던 대부분의 의혹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의 해명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제1부 '침몰의 재구성’ 제1장 ‘믿을 수 없는 조사결과’는 정부와 해경의 조사결과가 믿을 수 없음을 지적한다. 
세월호의 급변침은 없었고 불가능했으며 세월호는 'j자 커브'로 돌았다. 생존자의 증언과 각종 증거들은 정부의 발표와 방송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와 달리 실제로 화물이 먼저 기울지 않았음을 말해주기 때문에 정부가 제시한 항적기록은 신뢰받지 못한다. 
또한 세월호와 같은 8천 톤급 선박은 갑자기 기울어질 수 없으며, "조타미숙으로 순식간에 엎어질 수 없다.”(청해진의 선원과 해경에 대한 재판 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해양전문학과 교수는 "7천 톤급 배는 조타기 조작으로는 절대로 침몰할 수 없다. 외력이 가해져야 가능하다"고 증언했다.)

제2장에 '정부가 외면한 의혹들’은 정부와 언론, 검찰이 외면한 의혹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수많은 증인들은 4월 16일 아침 8시 52분 단원고 학생이 119에 신고하기 전부터 세월호가 비정상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세월호는 군산앞바다에서부터 흔들렸으며, 항로가 서해상 영해선을 벗어났고 선체가 크게 기울었다.
정부와 검찰, 언론은 레이더에 나타난 괴물체의 정체에 대해 함구했고,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해경의 수상한 행보에 대해서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제3장 '신뢰잃은 증거들’은 정부와 검찰의 증거가 조작되었거나 불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세월호 AIS는 왜 꺼졌나. AIS(선박자동식별장치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는 군산 앞바다에서부터 진도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4번이나 꺼지는 등 있을 수 없는 상태를 보였다. 세월호 AIS는 레이더와 전혀 다른 항적을 기록하고 있다.
해경 진도관제센타는 교신기록을 조작했으며, 제주관제센타는 교신기록 녹음이 존재하지 않은채 ‘기억’에 의존해 수기로 기록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보였다. 정부와 해경은 처음 몇 명의 생존자와 희생자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더니, 그 이후부터는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검찰은 세월호 선원과 해경, 해수부 공무원들의 핸드폰 기록과 영상과 카카오톡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김인성 교수에 의해 복구된 희생학생들의 핸드폰 기록과 영상이 없었다면 선원들과 해경과 해수부, 언론과 검찰의 거짓말은 그대로 통했을 것이다.(유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의 유가족들의 핸드폰 통화기록과 문자기록이 4월 16일 이후부터 짧으면 4월 말, 늦으면 5월까지 삭제되었다고 한다.)
세월호 선장을 데려갔던 해경 아파트의 CCTV는 핵심적인 기간 동안 삭제되었고, 해경123정과 헬기 511~3호기가 세월호 현장을 촬영한 영상기록은 상당부분 지워져 있었다. 진도관제센타의 CCTV 기록은 3개월이나 사라졌다.

제2부 '구조로 포장된 학살극’ 제4장 '구조를 못하였나? 안하였나?’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핵심 의혹이 "구조를 못한 것인지, 하지 않은 것인지”임을 지적한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은 특별관리대상이었는가? 그렇다면 왜 세월호만 그런가? 해경은 왜 골든타임을 버렸나? 주한미해군 본험 리처드호는 무엇을 하였나? 해군은 최선을 다했는가? 해경과 해군은 왜 민간잠수사를 배척했는가?
작년에 개봉된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에 나타난 ‘다이빙벨’의 제작자 이종인씨의 증언에 따르면, 해경과 해군은 이종인씨와 다이빙벨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들의 생명과 안전을 심하게 위협했다.

제5장 '콘트롤타워는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장수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책임을 회피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 정부조직법은 청와대가 재난과 안전에 대한 책임의 법률적 근거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최종 책임과 궁극적 책임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 국가정보원은 세월호 참사 전후에 정보를 어떻게 받았고, 어떤 대책회의를 했으며, 어떤 지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국민들에게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재난의 최종 책임자로서 청와대 최초보고시간과 지시내용은 반드시 밝혀야 한다. 
국정원은 세월호 침몰에 대한 학자와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제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침몰원인에 대한 은폐 의혹도 받고 있다. 사고 인지시점까지 조작통제한 의혹이 있다. 또한 세월호 내에서 발견된 ‘국정원 지시사항’과 세월호의 사고 보고계통 등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인가?”에 대한 철저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제6장 '청해진과 해운자본’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구조 실패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또다른 대목이다. 
세월호 구조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부&해경과 언딘의 유착관계(특혜)는 천안함 사고때부터 시작되어 이어진 것이며, 청와대 전 비서실장 김기춘과 청해진해운 회장 유병언의 특별한 관계 역시 밝혀야 한다. 유병언은 1990년대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의 자금줄이었고,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은 유병언의 범죄 수사에 외압을 가한 정황이 있다. 그 이후 청해진해운과 세모그룹은 정권이 비호 속에 급성장했던 것이다.
유병언 회장 시신의 발견으로 정권과의 유착과 비호, 범죄증거 은폐 의혹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 커진 셈이다.

이 책은 세월호 참사 100일 후에 발간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 국회 국정조사나 청문회 그리고 재판과 특별법 제정과정 등에서 제기된 새로운 의혹이나 밝혀진 진실, 앞으로 밝혀야할 내용들이 추가되지 않았다. 세월호도 조속히 인양해야 한다. 불완전하나마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되고 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되었으니 2015년 한 해 동안 진실규명을 위해 특조위와 유가족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세월호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밝혀진 것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46749.html)
또한 그동안의 사태와 과정을 지켜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는 데 있어 ‘돈 중심의 사회’, ‘출세만을 위한 행보’, ‘가족이기주의’와 같은 우리 사회의 문화도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의 책임이다”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회자되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명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을 탄생시킨 것도 국가와 정부의 주인이라 자부하던 기성세대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왜 우리 아이들이 무참하게 죽었나?”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알게하도록 하는 것이고,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밝혀 법의 심판대에 올리는 것이며, 어떤 제도와 정책 그리고 문화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 일조했는지 밝혀내어 바꾸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국가와 공무원, 언론과 국민들은 유가족에게 어떻게 배상하고 보상하고 위로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 2015년 4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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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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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저 < 금요일엔 돌아오렴 >을 읽고 / 348쪽, 2015. 01., 창비

학생들은 3박 4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에 갇힌 일반인 승객들과 더불어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들은 가닿을 수 없는 수많은 금요일을 보내고 있고,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의 모두를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아이들을 빼앗긴 세월호 유가족 열 세분의 사연이 담겨 있는 책. 
한 가족 한 가족의 사연을 대할 때마다 감정이 복받치고 빰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그해 12월까지 240일 동안 단원고 희생학생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그중 부모 열 세명을 인터뷰하여 이 책을 펴냈다. 유가족들의 증언과 고백을 모아낸 가족대책위 차원의 공식 인터뷰집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 기록들이 객관적이고 간결한 기억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증언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 작업은 부모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과정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세상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삶의 진실이 있었다."

“우리가 포기한 어떤 지점들을 부모들은 그대로 뛰어넘었다. 부모들은 예단하지도 속단하지도 않으면서 유연하게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릎도 꿇었다. 고통 앞에 솔직했고 자신들의 바람 앞에 명확했다. 그리고 지혜롭고 현명했다. 부모들의 이 지혜로움과 현명함은 자식을 위해 당신들의 온 마음을 낸 결과라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슬프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이 책은 기존의 언론매체가 보도하지 못한 유가족들의 애타는 마음, 힘없는 개인이 느끼는 국가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와 무력감, 사건 이후 대다수 가족들이 시달리고 있는 극심한 트라우마 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참사가 있고난 뒤 9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사건 당일의 일분일초를 또렷하게 기억해내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전대미문의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뛰어난 기록문학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터뷰를 하고 글을 정리한 작가기록단과 더불어, 8명의 대표적인 만화가가 총 13편의 삽화와 표지화를 그리는 일에 동참하여 그림으로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깨우침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제1부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록'은 희생자들을 추억하는 가족들의 여러 모습을 담았다. 공황장애 때문에 집안에서 주로 생활해온 김건우 학생 어머니는, 진상규명 활동을 위해 광화문광장에 나올 결심을 하곤 한발 한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스로 걸음을 내딛는다. 인터뷰 내내 속내를 내비치지 않다가 결국에 듣는 이 모두를 울려버린 유미지 학생 아버지 편은 오래전 딸이 맹세한 약속이 죽은 뒤에나 지켜졌다며 한탄하는 부정(父情)을 담았다. 신승희 학생의 언니가 수능을 앞두고도 매일같이 동생을 추억하며 2학년 동생들을 모두 살려내고자 밤마다 꾸는 꿈 이야기는 그 간절함만큼 비애감도 크다. 단 하나의 혈육을 잃고 혈혈단신이 된, 김소연 학생 아버지 편은 한부모 가정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상황이 그의 사투리에 실려 애잔하게 전달된다.

"아들을 혼자서라도 끝까지 기억하기 위해 백살까지 살겠다” (1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딸의 생일이 3월 16일. 사고난 날이 4월 16일. 아이가 발견되어 찾은 날이 5월 16일. 16일은 부모가 맞이하고 싶지 않은 숫자" "아빠와 함께 하늘여행을 하겠다는 약속을, 딸이 죽은 뒤에 지켰다” (1반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 씨)
"진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후 나중에 후회를 안 만들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자식을 위해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 (3반 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전민주 씨)
"세상에 딸하고 자신, 둘만 남겨졌는데 그 아이를 잃었다” (3반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 씨)

제2부 '기억하는 사람들, 기록하는 사람들'에는 전국 각지에서 유가족을 대표해 활동하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주로 실려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이들이 어떤 계기로 진상규명 활동에 앞장서게 되었는지가 드러난다. 신호성, 이창현, 문지성, 박수현 학생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진상규명 활동을, 억울하게 떠나보낸 아들딸에 대한 의리이자 그들이 자신들에게 내준 숙제이며 결국 스스로를 위한 치유라고 말한다. 대통령과 통화한 5분간 사적인 청을 자제하며 자기 아이를 살려달라고 호소하지 못해 끝내 아쉬워하는 애끓는 마음, 본인이 암 말기에 접어들어 어떤 활동에도 나서지 못하는 한 어머니가 다른 유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장면 등이 읽는 이의 코끝을 시리게 한다. 참사의 기억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는 이들에게 유가족들이 스스로 내린 답이 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호성이 가고 나서 호성이 엄마는 만능이 됐다고.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뭐라도 해야 편해요. 애가 힘들게 갔는데 부모가 편하면 안 되지 싶어서. 그래야 애한테 덜 미안하고 죄가 좀 가시는 거 같아서 정신없이 돌아다녀요. 아마 평생 갈 것 같아요.” (6반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
“맨날 잔소리해서 가깝게 못 지낸 게 제일 후회스럽지” “앞으로는 두려울 게 없다고나 할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숨기는 게 없으면 두려울 게 없을 거 같아요. 지금은 욕도 많이 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솔직해지고 남들이 보는 누도 그렇게 두렵지 않고 대담해졌다고 할까.” “어쨌든 진실이라는 목표 하나 보고 달려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거에요. 전에는 저쪽 길로 갔다면 지금은 방향을 틀어서 이 길로 가는 건데, 그냥 끝까지 갈 뿐이지요.” (5반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최순화 씨)
"대통령과 5분간 통화했는데 그후로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아이를 찾았는데 얼굴이 없었어요.” “진상규명을 위해 섬들을 찾아헤맸어요.” “무슨 보상을 해주려면 그동안 우리가 일한 것 다 쳐서 제대로 해줘야 해. 보상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계산을 못하겠으니 당신들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 어떻게 계산이 돼. 자식 잃은 게 게산이 돼? 정신 없이 쫓아다니면서 하는 우리들 이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건강 잃으면서 하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안전법과 그걸 위해 하는 우리들의 모든 행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

“그 동영상이 휴대전화 안에 들어 있었던 건 아빠가 나서서 어떤 형식으로든지 진상규명을 담당하라는 의미라고요. 동영상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저는 그랬어요. 그건 우리 아들이 내준 숙제인데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진상규명이 끝나고 나면, 희생된 304명의 모든 유가족과 국민, 그리고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하나 올릴 거에요. 이 사건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마무리가 됐는지. … 우리 수현이에게도 보여주어야죠. 숙제검사는 꼭 받아야 하니까.” (4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 씨)
"암과 씨름하던 인생에 난데없이 딸의 죽음이 먼저 찾아왔다. 그날 이후 세상에는 지독한 슬품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찼다.” “이번 일로 정말 잔인하고 몹쓸 세상도 경험했짐나, 사회를 지탱해주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어요. 국민들 다수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언론이 다 조절하고 검열하니까. 그런데도 잠깐잠깐 분향소든 ‘이웃’이든 시국미사든 가보면 소수는 알고 있고 움직이더라구요. 아, 소수라도 이렇게 힘써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덜 억울하구나, 내가 덜 바보구나, 내가 덜 외롭구나 싶어요.” (2반 길채원 학생의 어머니 허영무 씨)

제3부 '사람의 시간, 416'은 아픔을 딛고 자신의 처지를 용감히 직시하고 성찰해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준우 학생의 어머니는 수학여행에 가기 싫어한 아이를 굳이 떠밀어 보내곤 이를 죄스럽고 슬프게 회고하면서도 아이의 생전 친구 부모들과 모임을 만들어 서로 힘을 북돋우며 마음을 추스르고자 한다. 21년 전 서해페리호 사건 당시 의경으로서 모든 과정을 지켜봤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는 구조의 면면에서부터 법의 현황까지 하나도 바뀌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이번에는 반드시 미래의 안전을 위한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야 함을 몇번이고 당부한다. 이번 참사로 단 한명만 살아 돌아온 2학년 10반의 가족대표를 맡은,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가 말하는 ‘부모들의 공동체’의 소중함, 분노와 슬픔을 넘어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밝은 얼굴로 전해주는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등의 말들은 도리어 우리 어깨를 도닥인다. 가슴이 미어질 듯한 글들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힘을 좀체 잃지 않는다. 

“동생 태준이도 중2인데 저한테 자기가 공부할 필요 없다고, 열심히 살아도 허망할 거 같다고 말해요. 자긴 영어문제 푸는 데 오래 걸리는데 형은 영어 단어 5분이면 100개를 외울 정도로 잘났었는데, 그런 형이 갑자기 그렇게 됐는데 공부는 왜 하느냐고. 아빠도 회사 다니며 훌륭한 사람 돼야 한다고 떵떵 호령했는데 지금 저리 됐지 않느냐고. 그러면 할 말이 없어요.” “내 마음을 자꾸 키워가려고 해요" (7반 이준우 학생의 어머니 장순복 씨)
“진도에 빈자리가 많아지니 더 못 떠나겠더라고요.” “진도에 내려가서도 내 자식 보고 싶고 그리워 울고 싶어도 실종자 가족 앞에서는 못 울어요. 몰래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울고 오지. 우리도 실종자 가족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새해 페리호 사고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에요. 그런데 21년 후 세월호 사건을 또 겪은 거지, 내가. 그 애기를 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바뀐 게 없어서야. 아무 것도.” “배 타기 싫다는 딸에게 내가 큰 배는 빨리 가라않지 않고 통제에만 잘 따르면 된다고 애기해서 보냈어. 우리 딸이 내 말을 잘 듣는데. 세희가 살면서 터득한 게 항상 나중에 가면 아빠가 했던 말이 맞는다는 거여서 내 말을 잘 들었거든. 그것 때문에 너무나 가슴이 아픈 거야.” (9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 씨)

“바지선을 직접 구해 사고해역으로 나가봤어요. 사람은 많은데 어느 놈 하나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질 않는 거에요. 조명탄만 터뜨리고, 배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어요. 시간만 끌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진도군청에 있었던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는 계속 언론플레이를 했어요.” “부모들은 여당과 야당이 야합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도 정치권의 한계를 깨닫고, 그럴수록 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결국 국민의 힘이 있어야 진실규명이 가능하다다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부모들이 깡다구가 생기는 것 같아요.” “87년 6월 항쟁부터 거의 30년이 지났는데도 세상은 그때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더 나빠진 것 같아요. 사회의 모순은 더 고착되고 견고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허울만 좋은 민주주의에 국민들이 완전히 속았어요. 내 딸을 잃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우리가 꼭 진실을 밝힐 거에요.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30년 후에 나 같은 사람이 또 가족을 잃고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겠어요?” (10반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현동 씨)

“가만히 멍하게 있으면 아이들이 생각나고 거기에 끝없이 빠져들어요.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듣지도 않으면서 하루종일 텔레비젼을 그냥 틀어 놔요. 집에 떠드는 소리가 없으니까 마음이 너무 허전해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이 인생이 너무 아까운 거에요. 얘가 앨범 두 개도 못 채우는 인생을 살았구나. 얼마나 꽃다운 나이에, 엄마 아빠하고 겨우 이제 대화가 되기 시작하는 때에…” “목 디스크를 오래도록 앓고 있었는데 사고나서 진도에 갔다온 후에 목이 하나도 안 아픈 거에요. 통증이 사라진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한테 아들이 엄마를 많이 사랑해서 엄마 병을 가져갔나 보다고 그렇게 애기를 해요.” “우리 애들이 그렇게 괴롭게 갔느데 그만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는 건 엄마 아빠의 도리가 아닌 거 같아요. 몇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내가 눈 뜨고 있을 때까지는, 눈 감기 전까지는 진실을 알아냈으면 좋겠어요." (8반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이지연 씨)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빼앗긴 아빠 엄마들에게 이제 4월 16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한 이후 유가족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이 어둠 속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부실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그 거리에는 유가족들이 믿어왔던 상식이 없었다. 국가도, 정부도, 국회도, 언론도 없었다. 다만 일부 선량하고 정의로운 시민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이 책에는 13명의 단원고 학생의 부모들의 사연이 기록되어 있지만 304명에 달하는 세월호 희생자 역시 각각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어느 가족의 사연이 안타깝지 않고 슬프지 않겠는가마는, 304명의 희생자는 304개의 우주만큼의 행복과 사랑과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다. 304개의 가정과 304개의 가족이 저마다의 일상생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당했을 것이고, 각각의 가족의 살아왔던 기억과 가족관계 속에서 가정의 삶이 붕괴되고 해체되고 유지되고 이어나갈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지배계층의 모습과 언론의 행태와 사회시스템은, 유가족들이 당한 피해와 희생이 언제 어디서라도 다른 가정에 닥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사회의 문제와 구조에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가족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세월호 진상규명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 남단이라는 공간 속에서 한민족의 역사 속에 함께 살아왔다. 우리는 서로가 몇 다리만 걸쳐도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록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직접 닥친 피해가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학생들과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의 속살인 것이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갖고, 유가족의 사연에 공감을 하고, 진실을 밝히고 재방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 고통이 떠나기도 전에 또 다른 고통들이 닥쳐와 부모들의 상처를 후벼파기도 했다. 아팠다. 아파서 또 울었다. 시민들의 마음이 어떻게 순식간에 절대적인 호의에서 절대적인 반감으로 바뀌는지, 그분들은 어리둥절해댔다. 세상이 참으로 교활했다. 언론이, 정치인이, 일부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선장보다 해경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되어갔다. 가족들을 조롱하고, 보상금으로 공격했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벽을 만들고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이 비정상적인 현상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고,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숨겨진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도 부모들은 천천히 또 길을 갔다.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기이하고, 많은 고통을 준다 해도, 그들은 없던 길들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신들을 내동댕이친 것도 사람이지만 자신들을 다시 일으키는 것도 사람인 것을 알기에 그들은 원망하지 않았다."

“이번 인터뷰는 유가족들뿐 아니라 이 사회이 평범한 이들을 위한 작업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토록 쉽게 또다른 ‘유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유가족들의 삶을 깊게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아이들은 가고 없지만 유가족들의 몸부림이 헛된 기다림만은 아니었음을 약속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 2015년 4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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