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 이름 중에는 참 이상한 이름도 있다. 아내와 함께 오늘 춘심산촌 밭가 담 밑에 심은 화초가‘으아리’란다. 밭가 담 밑을 으아리 심는 장소로 정한 까닭은 으아리가 덩굴식물이기 때문이다. 말이 담이지, 사실은 오랜 세월 밭에서 농사짓다가 나온 돌들을 밭가에 놓으면서 형성된 돌무더기다. 돌무더기에 흙까지 얹히자 자연스레 담 비슷해졌다.

으아리를 심기 전 담을 뒤덮은 환삼덩굴들부터 제거하는데 이런, 아주 작은 철쭉이 그 밑에서 발견되었다. 잎사귀들이 파란 게 다행히도 살아있었다. 우리가 지난봄에 이 녀석을 심어놓고서 그 동안 몰랐던 것은 무심해서라기보다는 환삼덩굴들이 번식력이 대단해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어 안 보인 때문이다. 그 지랄 같은 나쁜 놈들 행패 속에서도 죽지 않고 마침내 이 가을 햇빛을 받게 된 작은 철쭉 녀석.

 

박대 받은 기억만 있을 담 밑에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내가 삽으로 녀석 밑을 깊이 파서 농막 앞 양지 바른 자리로 옮겨 심었다. 잡초방지매트도 다시 깔아주었다. 아내가 특별히 당부해 물도 한 주전자 부어주었다. 그러자 녀석이 이런 말을 하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잘 크겠습니다. 내년 봄을 기대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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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거리를 걷다가 모() 부동산중개소의 폐업 인사 글을 봤다.

“죄송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기에 인사를 단 한 줄밖에 못 남겼을까? 가던 발걸음이 절로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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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제25호 태풍 '콩레이'가 부산을 거쳐 간 이후 부산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에 크고 작은 바위가 잇따라 밀려왔다.”는 기사와 함께 위의 사진이 실렸다.

나는 사진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태풍이 무서웠으면 바다 속 바위들까지 육지로 피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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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이 가을이 새삼스럽기는 지난여름이 별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름이 더운 철이라지만 섭씨 40도라니! 우리 산하를 불태울 듯한 폭염에 하루하루가 불지옥 같았다. 아내와 나는 그 폭염을 잠시라도 피하는 방편으로 춘심산촌 농장을 거의 날마다 찾았다. 숲속의 춘심산촌 기온은 시내보다 보통 2도 정도 낮다.

그러는 가운데 밭 한가운데에서‘아가리를 벌린 채 폭염에 죽은 새끼 독사’를 목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새끼 독사의 최후는 스스로 자초한 결과였다. 넓은 밭 전체가 비닐이거나 잡초방지 매트로 촘촘히 덮여 있는데 그걸 모르고 들어왔으니 막막한 합성수지 사막에 들어선 거나 같아서 목말라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새끼 독사의 최후를 목격하고서 나는 어떤 기대를 품게 되었다. 새끼 독사를 낳은 어미 독사 또한 밭 한가운데에 들어와 같은 모습의 최후를 맞을 거라는 기대다. 작년에‘길이가 두 발 넘는 독사 한 마리가 밭 가장자리 돌무더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동네 사람들의 얘기가 떠오르면서, 그렇다면 그 놈이 목말라 죽은 작은 독사의 어미가 분명하고 머지않아 모자가 같은 전철을 밟을 게 빤하다는 판단에서다. 그 동안 농사지으면서‘길이가 두 발 넘는 독사’가 혹시 내 가까이 있나 살펴야 하는 엿 같은 부담감이 이번 기회에 잘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런데 누가 내게‘왜 두 독사가 모자지간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 그냥 느낌상 그런 것 같을 뿐이다. 어쩌면‘자기를 낳은 어미를 잡아먹는다는 살모사’얘기가 내 잠재의식 속에서 살아나 작용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폭염이 물러갔다. 가을이 찾아왔다.  

결론을 말하겠다. ‘길이가 두 발 넘는 독사’가 끝내 밭에 나타나지 않은 채 가을이 온 거다. 새끼 독사가 폭염에 죽은 지 2달 넘도록 어미 독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이제 나의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역시 어미 독사는 새끼 독사와 달리 영리했다는 것을. 영리했다기보다 나름대로 지혜가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 아닐까. 이런 추측이 가능했다. ‘어미 독사 또한 우리 밭으로 한 번은 들어오려 했다. 하지만 밭 전체를 촘촘히 덮은 비닐과 잡초방지 매트에서 나는 합성수지 특유의 냄새를 맡고는 발길을 돌렸다. 맨흙이나 바위나 수풀 같은 자연에서 풍기는 냄새 이외의 다른 냄새는 위해한 사물들에서 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오랜 세월의 경험과 지혜의 결과였다.

 

폭염에 죽은 새끼 독사는 사람으로 치면 철부지 사춘기 소년이 아닐까. 위해한 사물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았겠지만 당장은 낯선 곳을 향한 호기심에 발길을 멈출 수 없었던. 그 결과는 참혹했다.

어미 독사. 그대의 노련함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대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 폭염이 물러간 이 가을, 나는 밭에서 작물들의 수확에 전념하고 그대는 밭에서 먼 숲 같은 곳에서 안 보이게 조용히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그 길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무심포토 '폭염에 죽은 독사' 바로가기 

  http://blog.aladin.co.kr/749266102/102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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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네 부근에서 도로확포장 공사가 있었다. 4차선 도로를 6차선으로 확포장하기 위해 산 옆을 깎아낸 공사 현장을 보다가 소스라쳤다. 수만 년 전, 어쩌면 수백만 년 전 지층의 속살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빗금 모양으로 가을 햇빛에 노출된 암갈색 지층. 만일 옛 선인들이 보았더라면 ()이 땅속에서 죽은 자국이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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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kim77 2018-10-1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