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2,000년 유럽의 모든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존 허스트 지음, 김종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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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서유럽을 다루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이다. 초기 유럽 문명은 3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바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 기독교, 게르만 문화이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인들의 생각은 '세계는 단순하고 논리적이며 수학적이다'라는 것이었다. 기독교도의 생각은 '세상은 악이고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라는 것이었다. 게르만 전사들의 생각은 '전투는 재미있다'라는 것이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유럽 문명을 형성한 것은 바로 이 세 요소의 혼합이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믿게 되고 기독교 교회가 로마화된다. 교회가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을 보존하고 게르만 전사들이 기독교를 믿으며 그리스와 로마 지식이 보존된다.  

15세기 르네상스 시기가 도래하며 고전이 최고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어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기독교가 로마의 것이 아님을 주장하게 되고 17세기 과학이 등장한다. 과학은 그리스인들이 틀렸다는 지적을 하게 된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에 힘입어 백과사전이 만들어진다. 백과사전은 ABC 순 색인으로 지식을 정리하며 교회가 이야기하는 진리와 다른 지식을 동일선상에 놓는다. 이어 18~19세기 낭만주의가 등장한다. 계몽주의와는 반대의 길인 정서, 문화 등을 강조하는 길을 가게 된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계몽주의, 낭만주의 운동 이 모두가 상이한 방식으로 교회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유럽 사회는 세 가지 거대한 침입을 맞게 되는데 첫 번째가 게르만족이 로마제국을 침입(3~6세기) 한 것이고 다음엔 무슬림(7~8세기), 마지막은 바이킹(9~10세기)이다. 게르만족 침입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한다. 잉글랜드에도 게르만족이 장악하여 기독교로 재개종이 일어난다. 그 이후 12세기 십자군 운동이 시작되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멸망한다. 콘스탄티노플이 멸망하자, 고전 그리스 지식을 보존하고 연구했던 기독교 학자들은 고대 필사본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간다.  

정치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아테네의 민주 정치로 시작한다. 로마의 정치형태는 공화정이다. 공화정은 왕이 없고 집정관이 있는데 매년 2명씩 원로원(의원수 300명, 귀족들로 구성)에서 선출했다. 평민들이 참여하는 민회가 있었지만 힘이 없었다. 평민들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중에 호민관이라는 제도가 생긴다. 그 이후 공화정 시대가 끝나고 황제가 등장한다. 첫 황제가 바로 율리아스 카이사르의 조카딸의 아들이자 그의 수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이다.  

중세 시대 초기에는 봉건 군주들도 힘이 약하고 자신만의 군대 조직이나 세력이 없었다. 그러나 1400년경부터 군주들이 우위를 점하며 절대군주가 등장한다. 의회를 소집할 필요도 없었다.  

영국은 의회와 왕이 세력 다툼을 하고 의회파와 왕당파는 전쟁을 벌인다. 의회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의회파 사령관인 올리버 크롬웰이 1649년 왕인 찰스 1세를 처형한다. 크롬웰은 살아 있는 동안 왕을 대신해 통치한다. 그 이후 왕과 의회의 권력은 의회에 의해 정의된다. 이때 <권리장전>이 나오고 피를 전혀 흘리지 않아 '명예혁명'이란 이름을 얻는다. 이렇게 영국은 의회정치 틀을 마련한다. 

1800년대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그는 로마의 사레를 중요히 여겼다. 파리 개선문도 로마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책에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각 나라의 시대별 상황에 대해서도 핵심 사건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나중에 나라별로 다시 한 번 읽어봐야 될 부분이다.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특히 역사 공부는 전체와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평소에 관심을 가지며 궁금한 내용들을 그때마다 찾아보고 익히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원인과 결과를 알면 머리에 잘 들어온다. 일단 역사랑 친해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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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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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주 시내버스 입사 5년 차인 저자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담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이다. 하루 18시간을 일하는 저자는 시내버스 운전 2년이 넘자 절로 글이 써졌다고 말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로사회의 최전방에서 장시간 운행을 통해서만 생계유지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직업운전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저자는 섬세한 버스기사님이다. 버스 타면 앉을 시간도 안 주고 바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뒤에서 기다리는 버스 때문이기도 하고 간격 유지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노인이나 아이 있는 엄마는 시간을 좀 더 준다. 가끔 힐 신은 승객도 스타일 구기지 않게 저자는 신경 쓴다. 그렇다고 다른 승객들이 눈치채게 할 수는 없다. 저자는 맥없이 기어를 넣다 뺐다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린다고 한다. 

"얼레, 버스가 갑자기 왜 이러지?" 

버스 승객들 중에 시골은 특히 노인이 많다. 노인들은 관절이 약하기 때문에 빨리 버스에 오를 수가 없다. 이때 버스기사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데, 천천히 올라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사정 봐주지 않고 빨리 타세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나름 해법을 터득했다. 

"아직 젊고만 기어 올라온대요?" 
"아이고 기사님, 칠십이 젊어요!" 

버스기사는 근골격계 질환이 많다고 한다. 장시간 반복 동작을 해서 관절에 무리가 많아서 인 것 가다. 특히, 주행 시 진동 등으로 인해 허리가 특히 문제다. 가장 좋은 해법은 일 욕심 안 내고 자주 쉬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일당만 포기하면 된다는 것이다.  

장시간 운행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기사의 건강뿐 아니라 시민의 안전도 크게 위협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새벽 5-6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정말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운행 막바지로 접어들수록 피로와 스트레스로 운전이 난폭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저자는 2교대 근무를 제안한다. 

버스를 타러 횡단보도를 건널 때 마침 타야 되는 버스가 정류장에 있으면 항상 고민을 한다. 이미 정류장은 벗어났지만 신호에 걸린 버스에 달려갈 것인가 말 것인가. 달려가서 난처한 표정과 함께 문을 열어주면 열어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보통은 그냥 보내고 다음 버스를 탄다. 일단, 정류소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버스 기사는 이런 승객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항상 궁금했는데 저자는 이것도 이야기한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기 전에 이미 눈짓 손짓으로 버스를 타도 좋겠느냐고 공손하게 사인을 보내온다. 어차피 사거리 신호가 한 바퀴 돌 때까지 오도 가도 못 하니까 문을 연다. 참고로, 정류장을 벗어나 있는 버스를 당연하다는 듯 문을 두드리는 승객은 절대 안 태운다... 이왕 열어줄 거 기분 좋게 열어주면 좋은데 그게 잘 안된다. 버스를 몰다 보면 어느새 화에 사로잡혀 있고 한번 화에 사로잡히면 사람 자체가 싫어진다... 내 경우는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신호에 걸리면 타든지 말든지 아예 앞문을 열어놓고 먼 산을 본다." 

재밌게도 저자도 승객이 되어 신호에 걸린 버스를 탄 경험을 이어서 이야기한다. 버스에 타자 기사님은 먼 산을 보고 계셨다. 저자는 역지사지를 제대로 경험한 것이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버스도 적자 노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호텔 사업과 항공 사업이 성수기 때와 특정 노선에서 많은 수익을 내서 사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렇다면 버스 회사 경영진은 어떻게 하면 적자 노선을 최소화시킬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을 하면 최적의 노선 및 배차 간격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각 지역 버스 노선 컨설팅도 좋은 사업일 것 같다. 이미 누군가 하고 있을 수도. 아니면, 호텔이나 항공 사업에 비하면 시장이 작아서 아무도 진입 안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혹은, 버스 노선의 급격한 변경은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호텔 사업이나 항공 사업에 비해 접근이 어려울 수도 있다. 시장 규모는 꽤 되는데 접근이 어려운 경우라면, 도전할만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속한 회사 경영진은 나름 합리적이다. 교통사고가 나면 징계를 하는 버스 회사도 있는데 저자가 속한 회사는 징계는 없다. 다만, 사고자 명단을 매월 게시한다. 버스 기사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은 사회적 평판과 명예를 소중히 여겨서 징계보다 오히려 더 큰 효과가 있다. 저자가 속한 회사는 징계가 있는 회사와 사고율 차이가 크게 없다.  

가끔 내릴 때 너무 급하게 문을 닫아서 쫓기듯이 내리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언급한다. 

'저 기사 갑자기 왜 저래, 돌았나?' 
'내 맘이다 왜, 한 많은 세상 그런 것이나 좀 내 맘대로 하자!' 
보통 세 가지 경우로 뒷문을 닫는다. 
첫째, 우리 어머니 등 맞기 좋게 보지도 않고 계단을 다 내렸겠다 싶으면 닫는다. 
둘째, 보고 있다가 승객이 버스에서 딱 떨어지는 순간 닫는다. 
셋째, 승객이 완전히 떨어지면 버스 밖 백미러로 다시 확인하고 닫는다. 

이 외에도 윤리적 버스 승차, 서로 카드 찍어주겠다는 승객들, 좌회전 신호 2번 받으면 시말서감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버스 기사가 아니면 도저히 이야기해줄 수 없는 에피소드라서 더 재밌다. 

책에서 버스 운전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어릴 적 이야기도 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때렸던 이야기며, 술 먹고 오셔서 자고 있는 자기를 깨우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한다. 아버지를 용서하기 힘들었던 그 마음까지도.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은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고 제시한다. 대리운전기사, 검사, 의사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환경미화원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환경미화원입니다> 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기회와 여건이 되면 내가 직접 인터뷰를 통해 책을 쓰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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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8-01 15: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보이지 않는 고통>이라는 책인데, 육체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직업적 고통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사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비록 외국의 사례이지만 읽으면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그 책 다 읽으면 이 책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데굴데굴 2018-08-02 08:14   좋아요 2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저도 빠른 시일 안에 <보이지 않는 고통> 읽어봐야 겠네요.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는 사회역학을 바탕으로 쓴 책인데요. <보이지 않는 고통>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같이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재벌 흑역사 - 상 - 개정증보판 한국 재벌 흑역사
이완배 지음 / 민중의소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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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원도 아산리에서 태어나서 그의 호도 아산이다. 가출하여 19세에 서울 쌀가게 점원으로 취직하다. 1938년 쌀가게를 인수한다. 1940년 자동차 수리공장을 차리고 1946년 현대자동차 공업사를 세운다. 1947년  현대토건사(현대그룹 모체가 된 현대건설)를 세우며 그의 무데뽀 정신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때, 대부분 건설 사업은 미군이 발주했는데 정주영 동생 정인영이 일본 유학 생활로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정주영은 수많은 공사를 싹쓸이했다. 

한국 기업들은 초기 외형을 확대하느라 외자, 은행권 대출, 사채까지 빌려다 썼다. 과도한 외형 확대로 부채 더미에 올랐고 기업들은 박정희 정권에 민원을 넣기 시작한다. 결국, 박정희는 사채 동결이라는 초법적 결단을 내린다. 모든 사채 이자율을 월 1.35%로 통일하고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으로 바꾼 것이다. 월 1.35%는 당시 은행 대출 금리보다도 낮은 금리였다. 정주영은 가장 큰 혜택을 본 기업가 중 한 명이었다. 재벌은 이처럼 초기 성장 중에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과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박정희는 특히 정주영을 좋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87년 울산 현대그룹 노동자들은 두발 자유화를 외쳤다. 황당하게도 이 당시에, 현장 경비들이 노동자들의 복장을 검사하고 조인트를 까댔다고 한다. 경비들은 대부분 해병대 출신인데, 노동자들 머리가 길다며 이발기로 머리를 밀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현대조선은 조선소와 26만 톤 급의 대형 유조선을 동시에 만드는데 고작 27개월이 걸렸다. 1973년 34명, 1974년 25명이 숨졌다. 당시 현장 노동자는 최고 40시간까지 한숨 못 자고 일한 적도 있다고 말한다. 살인적인 노동 환경이었던 것이다.  

1989년 1월 8일, 파업 중이던 현대그룹 노조 간부들이 수련회를 가졌는데 복면 쓴 괴한이 침입해 각목, 야구방망이 등으로 급습한다. 2월 21일엔 심지어 식칼까지 동원한다. 쇠 파이프도 이해가 안 되지만 식칼은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다. 조합원 두 명이 칼에 찔려 중태에 빠졌고 중경상 입은 노동자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저자는 정주영이 '악마적 노조관'을 가지고 있다고 평한다.  

1960년, 정부는 '개발 지역을 지정할 권한'을 가진다. 지정하는 순간 땅값은 급등한다. 이 정보는 권력의 실세들에게 공유된다.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방석에 앉아서 돈을 번다. 강남을 개발하는 계획 이름이 당시에는 영동지구 주택 건립 계획이었다. 영동지구는 영등포 동쪽을 말한다. 현대건설은 우연찮은 기회에 압구정동 일대에 막대한 땅을 사두었고 영동의 지가 상승은 현대건설과 정주영에게 로또에 가까운 행운이었다. 

당시, 현대건설은 무주택 사원용 아파트를 지었다. 총 952가구 중, 291가구만 실제 사원들에게 분양되고 나머지는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언론인 등에게 분양되었다.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명박도 네 채를 분양받았다.  

현대차는 수출 차와 내수 차에 차이가 있는 것이 발견되어 곤욕을 치렀다. 무상보증 서비스 기간만 해도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무이자 할부 혜택 기간도 거의 2배 차이 났다.  

1988년 5공화국 청문회에 정주영은 증인으로 참석한다. 이때 노무현은 '증인은 영향력 면에서 의원보다 100배나 크다'라고 말한다. 다른 국회의원들은 증인이란 말도 못 했다. '존경받는 기업인',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증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고향 대선배님' 등 다양한 호칭을 썼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이며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돈의 힘이 훨씬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대목이다. 저자가 말하듯, 자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 중에서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압도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전두환이 물러나자 정주영은 1년 만에 변신한다. 1년 전에는 일해재단은 인재 양성 목적으로 설립된 순수 민간 싱크탱크이고 자발적으로 냈다고 기자 회견을 가졌다. 그런데 청문회에서 기금 모금의 강압성을 바로 인정한 것이다. 노무현은 시류를 따라 힘 있을 때 붙고 힘없을 때 떨어지는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제서야 청문회 중 유일하게 '죄송'이라는 단어가 정주영의 입에서 나온다. 일해 재단이나 미르· K스포츠재단이나 똑같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는데 이미 반복되고 말았다. 

1989년 정주영은 노태우로부터 북한 방문 허용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결국, 1998년 정주영은 소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 땅을 밟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당시, 김대중 정권의 재벌 개혁 및 압박은 거세었는데, 정주영이 소를 끌고 가는 '신의 한 수'로 재벌 개혁 칼날을 멋지게 피해 나간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역사를 살펴보면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신의 한 수'보다 '지옥행 급행열차'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현대그룹은 기아차-아시아차, 한화에너지, LG반도체를 차례로 삼키면서 수익성이 점점 나빠진다.  

정몽구, 정몽헌 두 공동회장 체제를 유지하다, 200년 왕자의 난이 발생한다. 결과,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을 현대그룹으로 분리하여 현대차그룹을 만들게 된다. 정몽헌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문어발식 무리한 경영으로 현대건설 부도 등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고 검찰 수사를 받던 정몽헌 회장은 투신자살한다. 

정주영의 아들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은 바로 정몽준이다. 정몽준은 국회의원을 선택하고 대선 후보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며 국민들 앞에 알려지게 된다. 재벌 2세, 3세들의 삶이나 사고방식을 알 길이 없는데 정몽준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몽준은 22세 때 대학 스키연맹 신임 회장이 되며 신문에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정몽준은 31세 때 현대중공업 사장이 된다. 고시원을 방문한 정몽준의 표정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멘탈이 붕괴된 모습이었다. 그 고시원이 사실 나름 괜찮은 고시원이었는데도 말이다.  

현대차그룹 승계를 위해 이노션 회사가 활용된다. 정의선은 이노션 상장으로 4,000억을 챙기는데 여론은 무리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후하게 평한다. 저자는 2인자 전략은 이래서 위대하다고 말한다. 이재용과 정의선은 나이도 비슷해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한다. 일찌감치 후계자가 결정된 것도 비슷하다.  

현대차그룹은 모비스는 현대차를 지배하고 현대차는 기아차를 기아차는 다시 모비스를 지배하는 삼각형 지배 구조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주인인가? 중요한 것은 함부로 그룹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몽구는 모비스 지분 6.96%를 들고 있어서 현대차 그룹 회장이다. 

정몽구는 동생 그룹이 자금난에 치닫던 때, 현대차그룹만을 위한 한국 로지텍을 설립한다. 그전에는 현대상선이 물류를 담당했었다. 동생에게 통쾌한 복수를 날리고 한국 로지텍 지분은 자신과 아들 정의선이 나눠 가진다. 결국, 총 50억 원을 들인 한국 로지텍(글로비스)은 2015년 시총 9조에 가깝게 된다. 이 역시 2인자 전략이어서 사람들은 이재용에게는 "당신이 삼성그룹을 지배할 자격이 있느냐?"라고 묻지만 정의선에게는 묻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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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벌 흑역사 - 상 - 개정증보판 한국 재벌 흑역사
이완배 지음 / 민중의소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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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고 기억된다. 흔히 이야기하듯, 쿠데타는 성공하면 혁명이지만 실패하면 반란, 반역이다. 저자는 부족한 재벌들의 어두운 역사 기록으로 인해 책 원고 작업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재벌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고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재벌은 승자이다. 따라서, 재벌 해악을 다루는 기사와 책은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물론, 재벌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저자도 언급한다. '공'이 있고 '과'가 있는데 '공'에 대한 자료 밖에 없고 '과'에 대한 자료는 부실한 것이 문제이다. 저자는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분명히 말하며 책의 집필 의도를 밝히고 있다. 

삼성 창업자는 이병철이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대구, 이 시절 이병철은 '밤의 황태자'로 불릴 만큼 시내 요정을 휩쓸었다고 한다. 이병철은 흔히 말하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1,000석 농지를 소유한 대지주였다. 농지개혁 직전 한국에서 1,000석 이상 소유한 대지주는 905명뿐이었다고 한다.  

정미소 사업, 김해 평야 투기 사건을 비롯해 여러 사업을 하다 잘 안되어 만주와 중국으로 두 달 여행을 간다. 이 여행에서 유통업의 미래를 보고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다. 이것이 바로 삼성그룹의 모태이다. 무역업에 이어 국수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는데 대박을 친다. 이어, 양조 사업으로 성공을 한다. 젊은 시절 실패로 인해서인지 이병철은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는 아니었다. 철저히 의식주 위주 사업에 집중한다.  

대구를 떠나 서울 혜화동에 안착한 이병철은 삼성물산공사라는 회사를 세운다. 설탕 제조업(1953년 제일제당 설립), 모직(1954년 제일모직 설립)에도 뛰어든다.  

LG 구인회와 사돈지간인 이병철에게 동양 TV를 넘겨준다. 그런데 이병철이 LG 텃밭인 가전 사업에 진출하여 앙숙이 된다. 효성도 이병철이 자신들 창업주 조홍제 뒤통수를 쳤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병철과 조홍제는 삼성물산공사로 동업을 시작해,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계열사를 늘렸는데 1960년 이병철이 갑자기 동업 청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군사 쿠데타는 삼성과 이병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박정희는 군사 정통성 확보를 위해 기업 경영자 대부분을 부정축재자로 몰았다. 결국, 이병철은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 열고 전 재산을 국가에 내놓겠다고 밝힌다. 물론,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1962년 흉년과 1963년 큰 태풍과 호우로 농토가 엉망이 된다. 시중에 식량이 동의 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때 밀가루, 설탕, 시멘트 3대 제품 가격이 급등한 삼분폭리 사건이 벌어진다. 이 시기, 이병철은 오로지 돈벌이에 몰두하여 제일제당 밀가루 가격을 올린 것이다. 문제는 이 밀가루 가운데 4,500톤이 정부가 해외 원로로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제일제당 설립에 필요한 18만 달러도 정부의 특별 외화 대부로 조달했다. 

"태풍과 흉작으로 국민들이 배를 곯고 있다면, 원조 경제를 바탕으로 재벌로 성장한 이병철은 사재를 내놓아서라도 국민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데 '원조'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였다." 

"원조 물자와 원조 자금으로 사업의 기반을 닦은 이병철은 엉뚱하게도 '국민들의 먹을 권리'를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했다. 이병철은 그 제일제당을 기반으로 삼성 재벌을 일으켰다. 지금 삼성이 쌓아놓은 그 수많은 열매는, 밀가루 한 포대를 구하지 못해 곯은 배를 움켜쥐어야 했던 1963년 민중들의 삶을 밑거름으로 열린 것이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맹희가 아버지 이병철에게 밉보여 승계 과정에서 밀려난다. 한국비료 건설 자재로 들어오던 컨테이너 안에 사카린이 대량으로 발견된다. 사카린을 밀수해 국내에 은밀히 유통한 것이다. 고발자가 이맹희나 이창희 둘 중 한 명이 박정희에게 고자질한 것인데, 박정희는 이병희를 내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이맹희, 이창희는 삼성그룹으로부터 멀어지고 3남 이건희가 왕좌를 차지한다. 

박정희와 이병철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박정희는 군사정부를 이끌 돈줄을 이병철을 통해 확보했다. 한국비료도 박정희 요청으로 설립했다. 박정희가 농민들 표를 얻기 위해선 비료 공장이 필요했다. 사카린 밀수도 정치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용인자연농원 땅과 관련해서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으로 기이한 우연 아닌가? 이병철은 용인 일대의 땅을 휩쓸었고, 나라는 법을 고쳐 "새로 조림한 산림은 증여세를 면제한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뒤 등기를 살펴보니 그 땅의 대부분은 이병철의 아들 이건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제일제당은 1997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2002년 사명을 CJ로 바꿨다. 신세계 백화점 오너 이명희는 이병철의 막내(넷째) 딸이고 이건희의 여동생이다. 이명희 아들이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이다. 이명희는 열정적으로 아버지를 따르는 막내딸이었다. 5남 7녀 중 막내였지만 이명희는 한 그룹을 맡게 된다. 2006년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이 증여세를 내고 떳떳하게 기업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발표한다. 이는 인정해줄 만한 대목이나 두 번의 세무조사에서 발견된 상당한 규모의 차명계좌로 '떳떳한 증여가 미완성 작품'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신세계는 특이하게 이명희나 정용진이 등기임원이 아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릴 수 있는 권리는 그대로 가지고, 법적 책임은 회피하는 자세, 신세계그룹은 그것을 '신뢰 경영이라고 부르는 반면 세간에서는 그것을 '무책임 경영'이라고 부른다." 

이건희는 자동차를 사랑했다. 이건희는 삼성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자동차 경기장에서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을 직접 몰며 스피드를 즐겼다. 2015년 9월 한 주간지가 국토교통부의 자료를 근거로 이건희의 자동차 보유 대수를 공개했는데 1억 원 이상 수입차가 모두 124대였고 다 합친 가격이 477억이었다고 한다. 물론, 개인 사유재산과 취미활동은 시비를 걸면 안 된다. 

문제는 삼성자동차를 설립한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 승인을 받는다. 삼성자동차의 첫 제품은 SM5였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출시일이 외환위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1998년 2월이었다. 결국, 삼성자동차는 실패한다. 이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이건희는 삼성생명 주식 400만 주를 내놓는다. 한 주에 9,000원에 매입한 비상장 주식을 70만 원으로 책정해 내놓았다. 삼성자동차 4조 원이 넘는 부채 대부분을 비상장 주식으로 처리했다.  

이건희와 미래에셋 박현주는 풍수지리를 매우 중요히 여긴다. 증권사는 대부분 본사가 여의도에 있는데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본사는 여전히 4대문 안에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옛 삼성증권 본사였던 종로타워는 건물 상층부가 뚫려 있는데 그 땅에 재앙의 기운이 워낙 강해 이를 빼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건희는 신입사원 면접 때도 관상가이자 역술인인 함양의 박재현 도사를 대동했다.  

삼성의 인재 관리는 엄청나다.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대학교수, 기자 등 관리 대상도 폭넓다. 심지어 저자는 기자 5,6년 차 시절 자신도 삼성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골프도 안 치는 걸로 나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삼성과 중앙일보는 1세대 이병철과 홍진기를 이어 2세대 이건희와 홍석현 시대에도 끈끈한 교류를 이어간다. 홍석현은 스스로 브로커가 되어 삼성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을 이회창 측에 건넨다. 검찰의 삼성 봐주기로 박근혜 정부 세 번째 국무총리에 오른 황교안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었는데 이건희, 이학수, 홍석현 등 주요 인물을 모두 무혐의 처리한다. 그 해 중앙일보는 황교안을 사회 분야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이건희는 2009년 8월 배임과 조세포탈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4개월 뒤, 이명박 정부는 IOC 위원이었던 이건희가 사면되어야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에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이건희 딱 한 명만 사면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단 한 명 만을 위한 사면 조치가 내려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재용 승계와 관련해서 큰 역할은 한 것은 에버랜드 전환사채이다. 문제는 전환사채 전환가격을 당시 시가의 10분의 1도 안되는 가격으로 발행했다는 것이다. 발행한 전환사채 절반을 이재용에게 몰아준다. 1998년 삼성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던 회사는 삼성생명인데,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 3444만 주를 매수한다. 문제는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9,000원 정도에 인수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재용은 48억 원에 에버랜드를 삼켰고, 에버랜드는 300억 원에 삼성생명을 삼켰다. 그런데 당시 이재용이 집어삼킨 에버랜드 주식의 가치는 세법에 따라 계산하면 800억 원에 육박했고, 에버랜드가 집어삼킨 삼성생명의 가치는 2조 3,437억 원이었다. 48억 원으로 800억 원을 만들고, 800억 원짜리를 2조 3,437억 원으로 불리는 이 눈부신 재테크 과정이 성사된 기간은 단 1년이었다." 

저자는 이어서 대부분 편법이고 아주 일부만 불법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 세법은 삼성이 발전시켰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비상장기업을 저가에 사거나 팔 수 없다. 이재용 이후 제도와 법이 보완된 덕분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기상천외한 합병도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배권 강화로 설명한다. 에버랜드 후신 격인 제일모직은 놀이동산을 운영하고 패션 사업을 한다. 삼성물산은 건설과 종합상사가 주력이다. 두 회사가 합병하여 시너지를 내고 성장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이재용은 제일모직을 충분히 지배할 만큼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제일모직이 다른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력은 충분했는데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만 매우 약했다는 점이다. 이재용도 삼성전자 지분을 단 0.57% 들고 있었는데 다행히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4.1% 보유하고 있었다. 

이 구조를 간파한 벌처펀드가 바로 폴 싱어가 이끄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이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지분을 7.12% 장내 매수한다. 삼성물산 주가가 5만 원 초반일 때 집중적으로 사들인다. 이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부당함을 알리기 시작한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 자산의 세 배가 넘었는데 시총으로 합병 비율을 평가하다 보니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0.35주가 합병 비율이 되었다. 삼성물산에 심각하게 불리한 합병 비율인 것이다. 

"이재용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의 주식은 최대한 비싸게 쳐주고, 이재용이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는 삼성물산은 최대한 싸게 쳐준 상태에서 두 회사를 합병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KCC(삼성물산 지분 5.76% 보유)와 연기금(삼성물산 지분 11.21% 보유)이 삼성 편을 들어주며 합병은 찬성률 69.53%로 승인했다. 문제는 연기금은 공적 자금으로 중요한 표결권을 행사할 때 반드시 의결권 자문사를 통해 객관적인 자문을 받도록 되어 있다. 보통은 이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런데, 삼성물산 합병 관련해서는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 의견을 듣지 않고 찬성을 던진다.  

박검수 특검팀은 이재용에게 징역 12년 형을 구형했다. 1심에서 12년 형은 5년 형으로 줄어든다. 이재용 지배력 확보도 있지만 계열사 이익에도 기여하는 면이 있다는 점, 수동적 뇌물이란 점을 드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몰상식을 보여준다고 평한다. 2 심은 더 나아가 정경유착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국민을 바보로 만든 판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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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쉴 틈 없는 회사의 시간과 숨 돌릴 나만의 시간 사이에서
박인경 지음 / 빌리버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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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리어 읽기 시작했다. 제목 읽는 순간 깊은 공감과 함께 읽을 수밖에 없다. 서울 직장인과 쉴 틈 없는 회사는 동병상련의 키워드이다. 

퇴근 시간은 소리 없는 눈치게임이다. 내가 항상 우리 부서 스타트를 끊는다. 한 달 20영업일 중 15일 이상은 내가 스타트를 끊는다. 그렇게 스타트를 끊어도 6시 칼퇴 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다.  

저자는 출근길 패턴이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지하철역 앞에서 마시는 커피, 좋아하는 노래, 환승길, 독서 이것이 저자의 패턴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출근길 패턴도 생각하게 된다. 지하철역 가서 일단 독서, 환승, 다시 독서, 그리고 내려서 회사까지 빠른 걸음. 크게 패턴이라 할만한 것은 없지만 매일 반복되니 패턴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아, 저자는 내리기 두 정거장 전에 책을 덮고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하며 마음 준비를 한다. 나도 패턴에 이 행동을 추가할까 잠깐 고민이 된다. 

다음 문장도 극하게 공감하는 내용이다. 

"회사 문을 이영차 밀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회사 문을 나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오직 단 한 가지의 생각에 갇힌다. 집에 가고 싶다. 이 생각에는 출구도 없다." 

회사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이제 시작인데, 한숨부터 나오는 내 모습이 가끔 한심하긴 하다. 직장인이면 프로정신이 필요한데, 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한숨이라니. 그래도, 한숨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린이집 교사인 저자는 싸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은 고요한 태풍의 눈이 되길 바라지만 결국 태풍에 휩쓸리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고백한다. 자식 한 명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여러 명을 동시에 돌보는 일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어린이집 교사들이 존경스럽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는 순간 개인 시간은 반의반으로 줄어든다. 보통 이 경우,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이 유일한 개인 시간이다. 점심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가끔은 혼자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하다. 보육교사는 이 개인 시간이 없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보육교사는 적게는 다섯 명, 많게는 열 명의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어야 한다. 그것도 허겁지겁 먹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자녀가 있는 부모는 아이와 함께 먹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보육교사는 정말 쉬운 직업이 아니고 아이를 사랑하고 소명의식이 있어야 가능한 직업이다.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보다 사람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훨씬 많다. 저자도 그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이랑 일하면 회사가 마음에 든다. 회사가 그만두고 싶을 때는 일하는 사람들과 불협화음을 낼 때였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가끔 어떤 회사는 저녁 6시에 회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자도 책에서 그 이야기를 한다. 약속을 잡았는데 계획에 없던 회의가 갑자기 잡히는 것이다. 책에 다음과 같은 대화를 소개하는데, 웃기에는 너무 슬픈 현실이다. 

"다들 약속 있는 거 아니죠?" 
"아닙니다.(약속이 없어도 없고, 있어도 없습니다만.)" 

'원장님은 왜 오늘따라 남편분께 늦게 갈 거라고 전화하시는 건지'라는 대목도 공감이 간다. 예전 회사 팀장님이 그랬다. 이제 집이 슬슬 가볼까 싶은데, 갑자기 팀장님이 아이들한테 전화하시더니 '오늘 좀 늦어'라고 말씀하신다. 조용히 나가서 하시면 모르겠는데, 팀원들 다 듣고 있는데서 꼭 통화하신다. 우리도 들으라고 그러시는 건지. 그럴 때 좀 황당하긴 하다. 

퇴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직장 상사를 만나게 되면 정말 전력질주해서 도망가고 싶다. 특히, 앞에 걸어가고 있는 상사를 보면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진다. 저자는 일부러 지하철을 한 번 놓치고 탔다고 말한다. 백 번 공감이 간다. 안 그런 직장인 있다면 매우 행복한 직장인이다. 

책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처럼 저자는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한다. 대부분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때로는 분노하며 읽을 수 있다. 평범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녹아져 있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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