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감옥 -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
니콜라스 카 지음, 이진원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직장인들은 매일 출근을 하면서 언제쯤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를 한 번쯤은 생각한다. 최근, 퇴사 일기가 유행하는 것처럼 당당히 사표를 쓰고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이 직장인의 로망 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회사원은 직장과 일에 얽매여 있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여유롭게 하고 싶은 것 하며 충분히 쉬면서 살고 싶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여가생활을 즐기는 게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며,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는 고정관념이며 진심으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다고 명확하기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하지 않고 계속해서 쉬고 유흥을 즐기며 여기저기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 것이 더 좋고 건강한 삶일까? 

 

많은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힘들고 어렵고 스트레스가 있지만 목표가 있고 우리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바로 몰입의 즐거움이다. 몰입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목표를 제시하는 환경이 바로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가시간에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인터넷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기계의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은 시간이 지나며 찬사로 변하게 된다. 인간이 직접 많은 시간에 투입되어야 생산되던 것들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인간에게는 잉여로운 시간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자동화까지 도입되면서 인간은 완전히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더 많은 시간을 다른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인간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지켜보아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이 자동화로 인한 잉여로움을 생산성을 높이기보다는 더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며 고민과 생각을 더 안 하게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보다 휴식이 더 좋은 것이다'라는 편향의 작용으로 인해서이다.

 

자동화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비행기 조종이다. 자동화로 인해 비행기 관련 사고와 사망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것만 이야기하면 자동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자동화로 인해 조종사들은 수동 조종을 할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고 이는 실수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자동화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거나 위기 상황일 때 조종사는 수동 조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 중요하고 더 위급한 상황에서 숙련되지 못한 상태로 수동 조종을 하게 되니 당황하게 되고 실수를 하게 된다. 이는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되고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저자는 실제로 조종사의 판단 미스나 미숙한 조종으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를 입힌 사고를 책에서 소개한다.

 

컴퓨터의 발달로 인간이 분석하고 판단하는 영역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그저 사람은 데이터를 입력하는 일차적인 역할을 맡을 뿐이다. 컴퓨터와 기계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무한 신뢰는 대단하다. 이는 인간의 사고를 축소시킨다. 생각하지 않게 만들고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않게 만든다. 자신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한 컴퓨터의 해석이 더 맞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좀 더 편리하고 여유로운 삶을 위해 추구하고 계발한 기계와 컴퓨터와 자동화가 이제는 오히려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이 그 안에 갇히게 되는 형국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자동화는 우리를 행위자에서 관찰자로 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동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이것을 거부하려면 산속에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 결국, 자동화된 세상 안에서도 우리의 뇌가 녹슬거나 게을러지지 않도록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편안하게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라도 '힘든 수고'를 해야 한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귀찮고 힘들더라도 직접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일'을 통해 우리는 뇌를 단련시킬 뿐 아니라 처음에 이야기한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며 역설적이게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고 계발해야 한다. 그 능력은 바로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연하게 사고하는 능력으로 인간은 예측이 안되는 다양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대처할 수 있다.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길찾기 어플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다. 길찾기 어플만 있으면 세계 어디를 가나 공간에 대한 지각과 감각이 없어도 길을 잃지 않고 쉽고 편리하게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편리함 이면에는 뇌에서 공간을 담당하는 부분을 사용하지 않게 되는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곧 퇴화를 의미한다. 치매 환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치매 위험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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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권위자이다. 그는 현재 불평등은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경제를 지배하는 규칙들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현재 지배하는 규칙들은 바로 공급 측면 경제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세금과 복지의 부담, 정부의 규제가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는 관점이다. 결국, 이는 규제완화와 고소득자의 세율 인하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한 성장을 먼저 해서 파이를 키운 다음, 낙수효과를 통해 분배를 하자는 논리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거의 판명되었다. 공급 측면 경제학은 가진 자들은 더 가지게 만들었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나아가 불평등의 심화는 수요의 약화와 성장의 둔화를 뜻하며, 교육과 연구 개발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의 감소를 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오히려 경제적 성장을 해치게 된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 새로운 증거들을 통해 경제적 성과를 촉진하면서도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성장과 분배 중에서 하나만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간에서부터 경제를 키워나가는 방식이 성공할 확률이 크다고 말한다. 즉, 평등과 경제적 성과는 '상호보완적'관계라는 점이다. 

 

먼저 부의 불평등 원인에 대해서 짚고 넘어간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자본에 돌아가는 수익률이 전체 경제 성장률보다 큰 것이 불평등에 대한 원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는 정확한 설명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불평등의 원인은 바로 고정 자산의 가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부동산 가치 증가의 일부는 도시화에 따르는 자연적 결과다. 하지만 그 가치 증가의 큰 부분은 경제의 <금융화>에 연유한다. 금융화에 동반하는 것이 신용 공급의 증가이며, 그 전형적인 형태는 이미 부를 소유하는 사람에게로 흘러가는 신용이다."

 

추가로, 토지 지대 외에도 독점 이윤, 의약품 가격 책정, 특허를 비롯한 여타 지적 재산권 등이 다른 형태의 지대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러한 지속적인 지대는 미래 가치를 반영하여 프리미엄이 붙게 되고 이것이 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즉, 생산 능력과 전혀 관계없는 부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부와 구분하여 자본 증가만이 성장을 촉진한다고 말하고 있다.

 

높은 지대와 동시에 미국에서 일자리는 크게 줄어들었고 임금은 하락 압력을 받았다. 공급 측면 경제학의 주도로 규제가 완화되어 임금이 하락되어도 보호할 장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임금 하락과 동시에 고용 안정성도 떨어졌다. 결국 저자는 이러한 특징은 네 가지 단어로 축약한다. 바로 높은 지대, 높은 착취, 낮은 임금, 낮은 고용이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현재 경제체제를 분석하며 빙산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빙산의 맨 꼭대기는 불충분한 복지 수당, 불안한 미래와 같이 눈에 보이는 불평등 현상들이다. 수면 바로 밑에는 불평등을 창출하는 법규와 정책들이다. 즉, 세금 정책, 기업에 대한 느슨한 규제, 어린이와 노동자를 지원하는 규칙과 정책의 폐지 등이다. 빙산의 맨 밑에는 현대 경제의 기저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세계적 요인들인 기술, 세계화, 인구 구성 등이다. 그리고 우리가 싸울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빙산의 중간 구조물인 노동법, 기업 거버넌스, 금융 규제, 무역 협정, 법제화된 차별, 통화 정책, 조세와 같은 테크노크라트적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지적 재산권은 정부가 기업에게 시장 지배력을 만들어 준 대표적 사례이다. 지적 재산권은 특허와 저작권을 일정 기간 보호하여 혁신자의 독점적 수익을 보장하여, 적절한 동기를 주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여러 연구 결과는 지적 재산권이 혁신과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혁신가들에게 금전적 동기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적 재산권은 지식의 확산을 제한하기 때문에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

 

기업과 관련해서는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기업은 더 이상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연구와 개발에 투자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하고 주가 부양에만 힘쓸 뿐이다. 단적으로 책에서는 2008년 9월 금융 시장 붕괴 되기 전 1년 동안에 평균적으로 기업 이익의 107퍼센트를 자사주 매입과 배당 지급에 사용하였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기업의 자본잉여금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비용 절감이 최우선인 기업에 의해 임금 상승이 억제되고 이에 따라 생활 수준이 하락하여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기업이 얻은 모든 이익이 낙수효과로 인해 근로자들에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기업 홀로 그 모든 이익을 독식하고 있었다. 오로지 최고 경영자의 소득은 점점 증가하였는데, 문제는 보수와 성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인종차별, 성차별 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결국 이러한 경제 시스템의 이러한 모든 부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도와 법의 개정을 통한 총체적인 솔루션을 마련하지 않으면 현재의 경제 시스템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부분의 개혁과 혁신을 추구하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싸워볼 만한 것이고 우리가 유일하게 공략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저자는 희망을 걸고 있다.

 

저자는 구체적인 접근 방향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지대 추구 행위를 누그러뜨리는 것이고 둘째는 중산층의 안전과 중산층에 진입할 기회를 보장해 주는 규칙과 제도를 복원하는 것이다. 완전고용 복원, 사회간접자본 투자, 노동자 보호, 공교육과 의료, 육아 서비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대 중 하나인 지적 재산권에 대해서는 특히 미국이 먼저 나서야 된다고 말한다. 미국과 무역 상대국 모두 지적 재산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인명을 구하는 의약품과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 등 다양한 혁신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지대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금융부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금융과 관련된 다양한 의제를 소개한다. 이것을 전부 개혁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으면서도 그렇다고 지대 추구를 통해 불평등을 야기하는 이렇게나 많은 시스템에서 계속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현행 금융 시스템이 경제 전반에 유발하는 위험을 제한하고 소비자에게 대놓고 손해를 끼치는 금융 행태들을 줄이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 목표를 위해 우리가 제안하는 의제는 <대마불사>의 종식, <그림자 금융>의 위험 축소, 금융 시장의 투명성 제고, 신용 카드와 직불 카드의 수수료 제한 및 경쟁 향상을 통한 더 효율적인 지급 결제 메커니즘의 구축, 더 엄격한 처벌을 통한 규칙의 집행, 연준의 거버넌스 개혁이다."

 

기업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기업이 자본 장비와 연구 개발 그리고 노동력 육성에 투자할 동기를 유발하고, 그를 통해 경제의 활력과 혁신을 촉진하는 의제를 제안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최고 경영자의 동기를 유발하는 보수 체계를 재편하고, 단기 매매를 억제할 금융 거래세를 입법하며, 장기적인 이해 당사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최고 경영자 보수와 관련해서는 스톡옵션을 포함한 주식에 대한 세금 우대를 줄이거나 없애는 방향으로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최상위 소득층의 한계 세율을 높이고, 모든 소득 공제를 세액 공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트럼프 정권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다음으로 중산층의 규모를 키우는 부분이다. 먼저 연준은 완전 고용에 중점을 두기 위해 통화 정책을 개혁해야 한다. 연준은 오로지 물가만을 통제하기 위해 힘을 쏟았는데 이로 인해 완전 고용, 안정적인 산출량, 때로는 금융 안정성마저 희생시켰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또한, 교육과 기술, 사회 간접 자본에 대한 공공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미국의 경우 사회 간접 자본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항공, 철도, 도로 운송, 대중교통, 항구 및 내륙 수로, 수자원과 에너지, 통신과 인터넷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자 급여와 관련해서는 최저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또한, 시간 외 수당을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소득 상한선을 올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유급 병가와 육아 등 유급 가사 휴가를 법제화해야 한다. 

 

경제적 안전과 기회 확대와 관련해서는 먼저 조기 교육과 고등 교육에 대한 접근 확대, 의료 서비스 비용 낮추기 등을 제안한다. 또한 보육 수당, 가정 방문 등 어린이들의 건강과 교육을 목표로 삼는 사업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투표하기 쉽게 만들어야 하고 거액 기부금의 영향력을 낮출 수 있는 선거 자금 조달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정리하고 나니, 전혀 간단하지가 않다. 현재 경제 시스템에서 손봐야 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싹 다 뜯어고쳐야 하는 것이다. 법과 제도가 새로 정비되어야 하는데 그 영역이 너무나 광대하다. 저자는 우리가 싸워볼 만하고 개혁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오히려 "말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트럼프 정권은 친기업 정책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이는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트럼프 정권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그 미래는 어떨지 가히 상상하기 두렵다. 어쩔 수 없이 10년, 20년 뒤를 바라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지금 중고등학생들, 대학생들이 바른 관점을 가지고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제대로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후에 정치과 경제의 리더로 서서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은 있다. 저자도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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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는 제목에 혹해서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가 <심정섭의 대한민국 학군지도>를 쓴 사람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학원 강사를 했던 저자가 부동산에 대한 책을 써서 놀랐었는데, 이번에는 교육에 대한 책을 써서 또 한 번 놀랐다.

 

먼저 책에서 말하는 탈무드는 우리에게 알려진 그 탈무드가 아니다. 지금 한국에 알려진 탈무드는 마빈 토케이어라는 랍비가 일본인들을 위해 쓴 소개서와 일부 우화에 불과하다. 저자에 따르면 실제 탈무드는 73권이나 되고 그 내용도 어렵다고 한다.

 

책에 나오는 많은 내용이 귀담아들을만한데, 그중에서 특히 '탈무드를 많이 공부한 유대인은 가능한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서 탈무드와 토라는 남을 판단한 기준으로 나 자신도 판단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군대 생활에서 대화의 90%가 선임욕이듯,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대화의 90%가 상사욕이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상사욕을 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다. 이야기하다 보면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하고 욕이 욕을 부르는 경우도 많다.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탈무드는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판단하는 내가 판단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토론을 할 때 이 주제가 토론할 가치가 있는 주제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가치가 없는 토론이라면 침묵하는게 낫다고 조언한다. 물론, 토론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분별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 정도의 지혜를 갖추고 있다면 이미 상당한 내공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토론을 하다 보면 결론 없이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먼저 토론할 만큼 지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씩 집고 넘어가서 결론이 도출되어야 하는데 집고 넘어갈 기반이 없다. 따라서, 가정만 무수히 늘어놓다가 토론이 끝나버린다. 혹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토론할 가치가 없는 경우이다. 책에서는 '신념과 믿음의 영역'이 바로 토론할 필요가 없는 주제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정통파 유대인들은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을 강조한다. 많은 랍비들이 직업과 매일의 일상이 바로 거룩한 삶의 시작이라고 가르친다. 진리를 깨달았다고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진리를 가르치고 가정을 잘 지키는 일을 제일 먼저라고 말한다. 저자는 히브리어 아보다Avodah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히브리어에서 아보다Avodah라는 말은 '예배'라는 뜻 외에도 '일', '직업'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즉, 일상이 예배이고, 예배를 보는 것은 일상을 충실히 사는 것이다. 안식일 하루만 거룩하게 사는 게 아니다.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남은 6일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가정의 평화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데 모든 남편과 아빠들이 새겨 들어야 하는 말이다.

 

카네기의 말을 가정생활에 적용해보자.
"옳은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평화로운 삶을 살길 원합니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가정에서는 평화가 제일 우선이다. 때로는 나의 고집과 생각을 꺾고 평화를 위해 가족들과 타협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 말이 이해가 되는 사람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이렇게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자기만의 생각과 고집이 견고해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책은 이어서 남편과 아빠들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면 안된다고 부언한다. 

 

유대인에게 가정은 단순히 아이를 낳고 기르고 쉬는 공간이 아니라 성전과 같은 곳이다. 따라서 가정에서 전통과 가치의 전수가 이어진다. 이로 인해 유대인 가정은 현대 사회에서도 굳건하게 유지될 수 있다. 성막과 성전이 세워지기 전의 원형 성전이 가정이라고 말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기를 수 있는 것은 바로 논리력이다. 그리고 이 논리력은 변화무쌍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토론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적으로 상당한 훈련을 받게 된다. 단순히 단답형 답을 얻고 외우는 것이 아닌, 논리적으로 추론해가는 사고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요약본을 통해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는 탈무드를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 책에서 언급하듯이, 1,000년에 가까운 시간과 2,000명에 가까운 랍비들의 토론 중에서 제대로 된 해석과 논리만이 살아남은 것이 바로 탈무드이기 때문이다. 

 

논리력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탈무드를 공부한 사람은 윤리적인 실천을 시작한다. 하루하루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선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탐구, 교육, 실천의 선순환이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행의 대상은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서두에 길고 긴 탈무드 토론을 마치고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것이 결국 '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가정과 함께 하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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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은 그 나라 그 장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건축물 만큼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대하고 웅장하고 상징적인 건물일수록 그냥 지어진 경우는 없다. 그 당시의 모든 사회적, 과학적 학문 지식이 총동원된다. 

 

책에서 소개하는 걷고 싶은 거리에 대한 접근 방식은  저자의 뛰어난 통찰력과 논리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걷고 싶은 거리는 우연성과 이벤트가 넘쳐나는 거리이다. 그럼 우연성과 이벤트는 어떻게 만드는가? 단위 면적당 블록 코너의 개수가 많을수록 보행자는 선택의 경우가 많아지게 되고 이는 우연성과 이벤트로 연결된다. 또한 단위 면적당 상점의 개수도 마찬가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걷고 싶은 거리가 바로 '명동'이다. 명동 거리를 보면 위에서 말하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특히, 명동은 보행자 전용거리라서 건너편 상가와도 밀접하게 붙어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저자는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형 콤플렉스 건물을 만들 더라도 거리와 접한 면에는 작은 소규모 가게들이 많이 배치되도록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도시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현대에 들어 다양한 재료의 수입이 가능해지면서 형태가 아닌 재료를 통한 다양성이 발생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도시를 보면 재료는 통일되고 형태가 다양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를 권력 때문이라고 한다. 펜트하우스는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반면에, 자신은 남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꼭대기라 하더라도 옥탑은 전혀 다른 공간이다. 왜냐하면 옥탑은 아무나 넘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꼭대기 층인 펜트 하우스만 같은 공간만이 권력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감시하는 자와 감시받는 자라는 두 계층이 발생하게 된다.

 

감시라는 것은 물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책에서 나오는 단적인 예가 바로 공원이다. 폭이 너무 넓은 공원은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고 결국, 밤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주변의 고층건물이나 주거 건물에서 내려다볼 때 전체가 보일 수 있는 폭의 공원은 오히려 감시로 인해 안전한 공간이 된다. 초등학교의 경우도 밤에 지나가면 으슥한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주변에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시설이 들어선다면 '학교 중심의 공동체 형성과 학교의 보안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또한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단하게 말하는데, 지나가며 한 말이지만 의미심장한 말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이제 홍대 앞에서 쫓겨난 예술가들과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쫓겨나는 건축가들이 가는 지역이 어디인지 알아봐야 할 시점이다."

 

즉,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 독특한 문화와 색깔을 가지게 되면서 자본이 몰리게 되고 집값이 상승하게 된다. 그럼, 가난한 예술가들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뉴욕과 홍대에서 발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화재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남다르다. 남대문의 경우 그 재료인 나무가 오래되어서 문화재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바로 문화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남대문이 불타서 최신 재료로 새로 지웠다고 해서 결코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건축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독교는 초기의 제사 중심의 예배에서 군중 설교 체제로 예배의 형식이 바뀌면서 점점 대형화되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모세의 성막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솔로몬의 성전, 예수가 전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다 수행했기 때문에 기존의 제사가 필요 없게 된 점, 카타콤, 국교로 제정되는 전체 흐름을 훑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흐름을 설명하면서 기독교의 핵심 교리(진리)까지 포함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 만약에 저자가 기독교인이라면 이 책이 복음 전도의 한 방편으로 쓰일 것을 고려하며 집필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악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후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는 이 커튼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고 나온다. 이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인해서 막혔던 관계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으로 해소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둘로 나누었던 공간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희생양이 되어서 한 번의 십자가형으로 제사를 대신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기독교가 된 것이다."

 

다음 주제는 마당이다. 계속해서 바뀌는 마당은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한다. 따라서 아무리 넓은 거실이 있더라도 마당을 따라잡을 수 없다. 저자는 '마치 마당은 매일매일 벽지와 가구가 바뀌는 거실'이라고 표현한다. 

 

사무실과 관련해서도 이야기하는데, 먼저 형광등이다. 대부분의 사무실은 천장이 3m를 채 넘지 않는다. 공간 활용을 최대한으로 하기 위해 천장 높이는 최소화되는 것이다. 만약, 형광등이 없었다면 이런 구조가 불가능하다. 햇빛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햇빛이 들어오기 위해서 천장 높이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천장 높이가 높은 사무실이 창의적인 환경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소개한다.

 

한옥과 아파트를 비교하며 아파트의 방들에 있는 창문이 거실 쪽으로 나 있었으면 가족들간에 좀 더 많은 대화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문은 그대로 존재하여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되 창문을 통해 서로 건너다볼 수 있고 이에 따라 문을 닫고 있어도 느슨한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거리의 건물들이 조금은 새로워 보이고 앞으로 어떤 집을 짓고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구조가 관계와 소통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고 마당이 있는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도 가지게 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나니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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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81년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현대소설가이다. 또한 조제프 푸셰,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디킨스, 도스토옙스키 등에 대한 평전을 출간해서 평전 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미래의 나라, 브라질>은 1941년에 쓴 작품인데, 그는 1942년 <체스 이야기>가 출간된 것을 보고 다음날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저자는 <미래의 나라, 브라질>에서 브라질의 역사와 경제, 문화, 주요 도시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루며 브라질을 소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브라질의 평등하고 관용을 바탕으로 된 융합되고 조화로운 삶의 모습이야말로 모든 나라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컨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인종, 계급, 피부색, 종교, 신념이 결정적으로 다른데도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는 모든 나라에서 절박하게 다가오는 문제다. 특히 복잡한 인적 구성(인종적 구성) 때문에 브라질에서 이 문제는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했지만 브라질만큼 원만하고 모범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 나라도 없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증언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책을 시작하며 자신이 아직도 브라질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라고 고백하며 겸손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겸손한 태도와는 반대로 책에서 담고 있는 브라질에 대한 소개는 방대하고 깊이가 있다. 물론, 브라질에 대해 기본적인 시각이 긍정적이기 때문에 브라질의 어두운 면과 부족한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개론서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브라질은 여러 인종이 함께 살아가면서도 인종 차별이 없는 신기한 나라이다. 흑인과 백인, 혼혈인과 황인종 사이에 절대적 평등이 원칙이 적용된다니 이런 나라가 있나 싶다. 원칙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회가 될 수 있었던 기반은 브라질에서는 순수 혈통이라고 주장할만한 개념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저자가 브라질의 이러한 점을 높이 산 것을 당시 사회적 상황에서 이해할 필요는 있다. 저자는 나치가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압박을 가하자, 유럽을 떠나서 브라질 등에서 거주하며 강연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나치즘과 민족주의와 인종 차별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고 많은 이들이 죽음을 당하는 혼란스러운 유럽을 벗어나 브라질에 와보니 브라질은 천국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을 비롯한 각종 차별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브라질에는 인종차별도 없고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우리만 보더라도 서양인을 바라볼 때와 동양인을 바라볼 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양인에 대해서는 뭔가 모를 동경심을 가지고 있고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 자체가 차별적 발상이고 우리 문화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브라질은 처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땅이고 식민지였다. 왜냐하면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발견했을 때 그 땅에는 금과 은, 그리고 어떤 광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브라질을 발견하고도 유럽인들 중 오직 수백 명이 포르투갈에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포르투갈은 추방 제도를 도입해 사형에 처할 조인들 중에 의향이 있는 이들을 사형시키지 않고 브라질로 보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브라질에 간 이들이 바로 예수회 사제들이었다. 유일하게 이들이 브라질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고 건설적인 생각을 하며 다가올 세대를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도덕적 평등을 우선시하며 혼종과 교육을 통해 새로운 나라로 발전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설립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물론 이들은 이러한 목적이 수 세대를 거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뿌린 씨의 열매를 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예수회 사제들은 브라질을 위해 헌신을 한 것이다. 놀라운 희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브라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금 이야기이다. 처음 브라질을 발견한 개척자들은 금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에 포르투갈은 내륙 원정에서 금이 나는 지역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다이아몬드도 발견된다. 브라질의 금과 다이아몬드 매장량은 엄청났는데, 초기에 전 세계 발견된 금과 24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물론 이는 다 포르투갈의 차지였다.

 

그러나, 문제는 금의 매장량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불과 50년이 채 못되어 금은 바닥나고 포르투갈은 직격타를 맞아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마치 로또를 맞아 수십억을 벌었는데 이 돈으로 사업을 진행하다가 돈은 추가로 계속 필요한데 수십억이 바닥난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반면, 브라질은 황금을 발견하러 떠났다가 비옥한 광야를 발견하고 정착하며 마을과 도시가 생겨나게 되었다. 인구가 골고루 분산되면서 좀 더 균형을 잡게 되어 해안 국가가 아닌 진정한 국가로 변하게 된다.

 

포르투갈은 나폴레옹에 의해 결국, 왕실 가족이 1만 5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가게 된다. 이로 인해 브라질은 각종 규제가 철폐되며 리우데자네이루는 학술 기관, 박물관 등을 갖추게 된다. 이제 포르투갈과 브라질은 정치적으로 완전한 평등한 나라가 된 것이다.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야기하는데, 바로 설탕과 담배, 그리고 카카오였다. 이 3가지 상품들이 18세기까지 브라질 경제를 떠받치는 주요 세 기둥이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그 이후, 브라질은 커피를 통해 다시 한 번 세계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그러나 브라질 경제는 커피에 너무 의존하게 되고 커피값이 떨어지자 국가의 재정은 휘청거리게 된다. 이어 브라질은 고무나무를 통해 큰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 고무나무 씨앗이 영국과 싱가포르, 수마트라, 자바 등으로 퍼져가게 되면서 말레이시아에 생산력이 밀리게 된다. 

 

또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수출이 막히고 주요 물품 수입이 불가능해지게 되었다. 브라질은 이러한 위기를 맞으며 전화위복을 도모하게 되는데, 국내의 산업을 육성하게 되고 공산품과 수공업 제품도 생산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이제 더 이상 한 가지 수출품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미래의 나라, 브라질>에는 역사와 경제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만 동시에 문화 및 주요 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며 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재밌게 풀어낼 수 있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를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따라서, 단지 브라질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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