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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매트 타이비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세 가지를 언급한다. 미국은 빈곤이 심해지고 있고 범죄는 줄어들고 있으며 수감 인구는 두 배로 늘어났다. 책은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각종 사례를 들며 파헤치고 있다. 그가 내리는 결론은 단순하다. 범죄를 저지르기도 전에 가난한 이들을 수감하여 범죄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법은 전혀 공정하지 않고 부자에게 들이대는 잣대와 가난한 이들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라는 말은 거짓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가진 돈도 없고 세상 경험도 많지 않은 사람들은 돈과 정치적인 백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편에 선 경관들의 바로 턱밑에서 엄청난 죄를 짓고도 무사히 빠져나가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복지 급여를 신청하면 정부는 예비적 가택 수색을 시행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조사관의 행위는 마치 범죄자를 취조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옷장 속옷을 꺼내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사생활과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시하는 행위다.
반면 기업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금융 위기의 주범인 금융기관의 고위 임원들 중 감옥에 수감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가난한 사람은 죄가 없어도 꼬투리를 잡아 감옥에 처넣으면서 기업인들은 증거가 명백함에도 대마불사라는 명목하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하며 그냥 넘어간다.
"믿기지 않겠지만, 분홍색 매직펜 하나 때문에 수감되는 사람이 있고, 말아 피우는 담배 때문에 혹은 신분증 없이 음료수를 사러 동네 가게에 갔다가 수감되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폭력배나 테러리스트 계좌 개설을 도와준 은행 직원과 뉴욕 지하철에서 잠이 든 고등학교 중퇴자 중에서 누가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미국에서는 후자가 더 큰 처벌을 받고 있다. 아니, 전자는 처벌도 안 받으니 사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법은 차별적이다. 그냥 차별적인 게 아니라 심각하게 차별적이다.
"법치주의는 서서히 퇴색되어 가고, 그 대신에 실패한 자, 가난한 자, 약한 자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강한 자, 부유한 자, 성공한 자의 위법 행위를 눈감아 주는 방향으로 설계된 특이하고 거대한 관료주의가 서서히 강화되어 왔다."
저자는 첫 사례로 2008년 이후 미국 내에서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최초의 소송을 다룬다. 피고인은 골드먼삭스나 JP 모건 체이스 같은 기업들이 아니다. 피고인은 바로 차이나타운에 입주한 가족 소유의 작은 지방 은행인 아바쿠스 페더럴 저축 은행이었다. 이 작은 은행이 금융 위기에 대한 책임으로 법정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바쿠스 은행은 금융 위기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국 이민자들의 소득 신고 누락 관행과 관련된 사건을 금융 위기 주범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들이 아바쿠스 기소로 무얼 얻고자 하는지 분명했다. 시 정부는 그 기소로 금융 범죄를 엄격하게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소득을 얻었고, 언론은 사법부의 엄정함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인상적인 방법으로 보도하는 소득을 얻었다."
기업과 정부는 '부수적 결과'라는 용어로 법의 차별적 적용을 옹호한다. 부수적 결과는 바로 기업과 임원이 처벌받아 기업이 망하면 무고한 직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시스템 붕괴 등 예측할 수 없는 부수적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문제는 대부분 기업들은 기소 유예 합의나 불기소 합의로 소송에서 벗어나고 범죄 행위를 시인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내는 벌금이나 합의금은 그들이 1년에 벌어들이는 돈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들은 상황에 따른 관대한 처분이 경제를 살린다는 이론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이하게도 마땅히 법리학적으로 관대한 처분을 받아야 할 만큼 크고 중요한 존재가 누구인가를 따지는 계산법을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그런 처분을 받기엔 적합하지 않을 만큼 작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누구인가를 계산해 냈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범법 행위를 저지른 초대형 은행, 대출업체, 신용 평가업체 가운데 어느 후보를 택해서 소송을 해야 강한 상징성을 지닌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누구를 피고인석에 세울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바로 아바쿠스 지방 은행이었다.
부수적 결과는 오로지 기업들을 위한 핑계였다. 개인들도 범죄 혐의로 기소되면 수많은 부수적 결과가 발생한다. 개인이 기소되면 이후에 대출, 취업, 정부 지원금 등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무고한 가족까지도 복지 수급 자격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개인의 부수적 결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기업의 형사 소추의 부수적 결과는 신중히 고려하는 것이다. 사실 부수적 결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금융 고위 임원 몇 명 체포해도 그 기업이 무너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어째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임원들을 체포하는 것이 <죄 없는 희생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금리 조작에 가담한 UBS 직원들 몇십 명을, 자금 세탁의 범죄에 가담한 HSBC 직원들 몇 명을 법정에 세운다고 해서 그 기업들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당연히, 기업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부수적 결과'를 고려하여 처벌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범법 행위를 하라고 부추기는 꼴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노숙자 행색을 하고 걸어 다니다 경찰 눈에 띄면 몸수색을 당한다. 경찰은 할당량을 받게 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무고한 주머니에서 대마초 반 토막이라도 발견되면 체포당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보석금 결정이 내려지는데 이를 지불한 돈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교소도에 수감될 수밖에 없다.
무임승차도 당연히 단속 대상이다. 경찰은 집요하다. 무임승차하는 노숙자들을 잡으려고 사복 경관을 보낸다. 경찰은 일단 잡아들인 다음 협상을 시작한다.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25달러만 내라는 것이다. 증거가 없고 무죄임을 증명하는 것도 매우 번거롭고 많은 시일이 걸린다. 이러한 횡포는 주로 노숙자 같은 취약계층에만 발생한다. 따라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렵고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무차별적 단속과 체포는 계속 자행된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같은 미국에 사는 백인들도 정의를 수호하는 경찰이 과연 이렇게 무분별하게 체포를 할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고 이는 세계가 두 개로 완전히 갈라진 반증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가 <The Divide>인 것이다.
"아무튼 세계는 두 개로 갈라져 있고, 각각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다. 여기엔 <불공정>과 <불평등> 같은 흔한 정치적인 표현조차 쓸 수 없다. 그저 난장판 속에서 광기로 치닫는 미친 세상일뿐이다."
경찰은 체포 건수를 늘리기 위하여 트집을 잡아 사람들을 검문하고 체포한다. 기소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냥 돌려보내면 그만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체포이다. 그러나 체포당하는 사람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책에는 밤늦게 일하고 집 앞에 서 있다가 붙잡힌 사례도 나온다. 명목은 '보행자 통행 방해'였다. '보행자 통행 방해'로 잡혀가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물론, 백인이 사는 동네에는 '보행자 통행 방해'명목으로 체포하는 경관이 한 명도 없다.
리먼브러더스의 중역들은 바클레이스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 및 고용 제안을 받고 발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자산 매각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이처럼, 마지막까지 리먼브러더스의 임원들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아닌, 사적인 이익과 안위만을 추구하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들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아가, 이들의 행위는 범죄이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려는 찰나에 이익을 얻기 위하여 물불 안 가리고 달려는 바클레이스의 탐욕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부는 다른 은행들에게 리먼 같은 기업들이 문제를 안고 있다는 걸 경고하거나, 리먼 파산으로 손실을 입은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국고를 투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서민들은 언제나 봉이다. 사법 정의도, 구제 금융도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이민자들의 수감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수감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사업에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는 점이다. 바로, 민간 교도소 운영 업체인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이다. 월스트리트도 이 기업의 잠재적 성장을 눈여겨보고 투자를 했다. 이민자들은 수감되고 나서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된다. 이민자 가족들 중에는 일부가 수감된 후 추방되어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책에서 말한다.
이민자들이 체포당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무면허 운전이다. 문제는 무자격 이민자는 운전면허를 받을 수 없도록 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즉, 합법적인 비자가 없는 이들이 무면허로 운전하다가 추방된다.
책에는 공매도 한 다음에 멀쩡한 기업을 비난, 비방하여 이미지를 훼손하고 주가를 떨어뜨리는 헤지펀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들은 단순히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직접 전화하여 위협하기도 하고 회사 CEO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에게까지 편지를 쓰는 등 정상적이지도 않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방법을 동원한다. 공매도를 하면 주식 대여료를 지불해야 하고 주가가 상승하게 되면 갚아야 되는 금액이 천문학적으로 커진다. 그래서 이들은 생사를 걸고 그 회사를 망가뜨리려고 한다.
책에는 캐나다 보험회사인 페어팩스의 사례를 소개한다. 페어팩스는 헤지펀드의 공격에 결국 소송을 걸게 된다. 하지만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고 8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헤지펀드는 쉽게 먹이를 놓지 않으며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포기하는 순간 손실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페어팩스가 소송을 제기하지만 헤지펀드의 범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아직까지 헤지펀드에 대한 어떤 조치도 내려지지 않았다. 사실 페어팩스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대부분 헤지펀드의 공격에 무너지고 만다. 즉, 헤지펀드는 공매도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린다.
"페어팩스의 소송 과정은 거꾸로 뒤집힌 <소모전에 의한 사법 정의>였다. 공격이 시작되고, 공격자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여러 해에 걸쳐서 진행되는 끝도 없는 서류 작업 속에 모든 것이 파묻혀 갔다."
결론적으로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혹독한 처지에 놓여 있다. 가난한 자와 부자에 대한 불평등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저자는 관료제가 사회적 불평등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거대 조직이라고 지적한다. 관료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갑부들에게 몰아주는 메커니즘이다. 관료제는 노골적으로 말해서 흑인을 특히 더 미워한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스펙트럼의 한족 끝에 있는 사람에겐 과속 딱지 한 장이 떨어질 뿐이지만, 다른 한쪽 끝에서는 징역형이 떨어질 수 있다."
모두에게 공정하고 정의롭게 시행되어야 할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을 보존하고 유지해야 하는 법이 오로지 부자들의 재산과 기득권만을 유지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법은 가난한 이들을 처벌하는 데는 냉정하고 재빠르다. 반면, 부자들은 처벌하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노력한다. 결국 가난이 죄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