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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식량 - 인류는 자연환경의 위기에 맞서 어떻게 번성하는가
루스 디프리스 지음, 정서진 옮김 / 눌와 / 2018년 2월
평점 :
인류는 아직 자연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태풍,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를 막아낼 기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신림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농작지를 만드는 등 자연에 있는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과학과 기술을 갖추었다. 인간은 자연을 활용하였지만 이는 자연이 훼손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다. 인간에 의한 자연 훼손은 결국 인류에게 재앙으로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첨단과학과 기술은 다시 한 번 놀라운 혁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저자는 이 두 견해 모두 세상을 설명하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인간과 자연이 맺은 유구하고 복잡한 관계는 결코 간단히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식량이 많아지면 개체 수가 늘어난다. 하지만 무한정 늘어나지 않고 한계에 부딪힌다. 성장세를 내리치는 도끼가 등장한다. 그다음, 성장의 톱니바퀴(ratchet)가 등장하여 이를 중심으로 다시 성장을 이룬다. 인류는 이 과정을 반복했다. 성장과 위기, 전환점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위기는 주로 기근과 식량 부족이었다. 현재 세계는 한 쪽은 넘치는 식량으로 고민하고 다른 한 쪽은 부족한 식량으로 고민한다.
재밌는 것은 저자는 문명과 식량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지구의 특별함을 말한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이 바로 지구의 특별함이다. 태양과 거리가 멀면 얼게 되고 가까우면 수증기가 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액체인 물로 존재한다. 태양은 점점 뜨거워지기 때문에 몇 십억 년이 지나면 지구는 물이 없는 황무지가 될 것이다. 일단, 지금은 걱정 안 해도 되는 문제이긴 하다. 앞으로 10억 년 정도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물과 더불어 온실가스로 일부 열을 붙잡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행성 크기에 따른 중력도 대기를 붙잡는 변수이다. 기울어진 자전축으로 남반구와 북반구가 교대로 열을 받는 것도 지구의 특별함이다. 기울어지지 않았으면 여름은 너무 뜨겁고 겨울은 너무 추워서 생명 진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달은 지구가 다른 행성들의 중력장에 이끌리지 않도록 보호해 지구 자전축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한다.
지구의 특별함은 바로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다. 지구는 물과 탄소, 질소, 인 등의 물질이 순환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판구조 운동은 대륙을 이동하고 산맥을 형성할 뿐 아니라 탄소 재순환 메커니즘의 동력을 제공한다.
인간은 유전자를 통해서 다음 세대에 생존 전략을 물려준다. 물론, 인간은 큰 두뇌로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사회적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누적 학습을 한다. 단순히 기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고 발전시킨 기술을 물려주는 것이다. 나아가, 누적 학습은 문화를 생성한다. 불을 다루는 것도 인간 고유 영역이다.
인류는 수렵채집을 하며 이동하다가 농사를 지으며 한곳에 정착한다.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이 가능하면서 모여 사는 인원이 늘어난다. 이와 동시에 가축을 기르면서 결핵, 천연두 등 질병의 시대가 열렸다. 견과류, 씨앗, 고기를 주로 먹다가 곡물에 의존하면서 영양 상태는 나빠졌다.
정착 사회는 자연에 큰 부담을 준다. 농작물을 수확할 때마다 토양이 양분인 질소와 인을 빼앗긴다. 위에서 언급했듯, 지구 순환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인간은 인위적으로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가장 오래된 방법 중 하나가 화전농법이다. 화전농법은 작물이 흡수한 질소와 인 등 주요 양분 재순환 속도를 높인다.
질소 순환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박테리아이다. 박테리아는 기체 질소의 강력한 결합을 분리해 수소 원자 세 개와 질소 원자 한 개로 구성된 암모니아를 형성한다. 박테리아가 죽어 땅속에서 분해되면 체내에 있던 암모니아가 땅속으로 흡수된다. 다른 박테리아는 이 암모니아를 분해해 식물의 양분이 되는 질소로 바꾼다. 질소를 기체에서 식물과 동물이 이용할 수 있는 다른 형태로 바뀌는 과정을 고정이라고 한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했지만 기체 질소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박테리아의 기체 질소 분리는 여전히 수수께끼인데 놀랍게도 일상적인 온도와 압력 속에서 이 과정을 해낸다. 자연의 신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질소와 함께 인도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다. 인도 순환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순환은 몇 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다. 문제는 인 일부가 순환고리에서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빗물에 씻겨 바다에서 유실되기도 하고 인을 함유한 토양이 바람에 날아가기도 한다. 결국, 토양에 존재하는 중요한 양분인 인은 보충하지 않으면 점점 그 양이 줄어든다. 유실되는 인이 토양으로 돌아오는 유일한 방법은 인을 함유한 암석인 인회석이 풍화되어 토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주기는 대략 백만 년이다. 인간이 도저히 기다릴 수 없는 기간이다.
인간은 토양에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인의 순환 과정에 개입하여 속도를 높였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그 방법을 설명한다. 첫 번째 방법이 바로 화전농법이다.
"하나는 퇴비와 죽은 동식물의 잔해 속에 함유된 인이 짧은 시간 내에 순환되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땅을 파서 인이 함유된 암석을 캐내는 것이다."
인류는 토양에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씨름했다. 중국인들은 첫해에 곡물, 다음 해는 콩과 식물, 그다음 해는 참깨 같은 유지작물을 심는 돌려짓기 방식을 이용했다. 이 방식은 토양에 질소를 계속 공급해 작물 생산량을 높였다. 또한, 중국인들은 인분과 음식 찌꺼기를 비롯한 오물을 재활용했다. 작물마다 각기 다른 거름(콩과 식물은 재, 채소는 돼지와 인간의 분뇨)을 주는 방식도 이용했다.
북유럽 삼포식 농업도 더 많은 농작물을 생산했다. 바로, 농지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3년을 주기로 다른 작물을 번갈아 심는 것이다. 첫해는 겨울 작물, 다음 해는 콩과 식물, 세 번째 해는 밭을 쉬게 하면서 가축에게 사료가 되는 풀이 자라도록 내버려 둔다. 가축 배설물은 질소를 땅에 되돌린다. 삼포식 농업은 농지의 3분의 1을 쉬게 해야 한다. 18세기 중반 보완 발전된 노퍽 사포식 농업이 등장한다. 핵심은 풀들이 자라게 놔둔 휴경지에 질소고정 식물인 토끼풀을 심는 것이다. 4년 주기로 밀, 순무, 보리, 토끼풀을 돌려 짖는다. 토끼풀은 가축 먹이뿐 아니라 토양에 질소를 공급했다.
토지에 양분을 공급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끝이 없다. 이번에는 조류의 잔해와 배설물이 퇴적한 것인 구아노를 이용했다. 구아노에는 질소와 인이 풍부했다. 페루를 포함한 중간상은 구아노 거래로 큰 이득을 취한다.
인류는 자연에서 양분을 얻으려는 노력과 동시에 화학 비료 연구에도 힘을 쏟는다. 식물이 거름이나 인분뿐 아니라 염류와 광물에서도 양분을 얻는다는 리비히의 '광물설'을 근거로 과학자들은 실험을 진행한다. 19세기 말부터 화학비료를 상업적으로 생산하게 되고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천연퇴비, 구아노, 인분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높은 온도와 압력이 필요하지만 기존 방식보다 낮은 온도에서 질소 고정이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 핵심은 철가루를 촉매제로 사용해 기체 질소를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합성해 질소를 고정하는 것이다. 1908년 하버는 이 공정에 관한 특허를 취득한다. 마침내 공장에서 생산하는 합성비료가 탄생한다.
질소 고정 기술은 독일이 암모니아를 통해 탄약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토양 양분 공급을 통해 더 많은 생산량 확보로 사람을 살리려는 기술이 오히려 탄약을 제조하여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된 것이다. 하버는 천재적인 재능을 독가스와 다른 독성 물질을 사용하는 데 사용했다. 그는 전쟁을 단축시키려는 의도라고 정당화했지만 그의 아내는 결국 남편의 생각을 참을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한다. 하버는 그 공로로 유태인 혈통임에도 나치 정권하에 카이저 빌헬름 물리화학 연구소 소장 지위를 유지한다.
이 기술 덕분에 인류는 자연과정을 통해 얻는 것보다 더 많은 질소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인은 여전히 자연에서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인은 뼈에서 얻을 수 있는데, 19세기 후반 영국은 전장에서 뼈를 강탈해간다고 비난받기도 했다. 뼛조각과 이빨이 가득한 지층을 발견했는데 이 암석도 과인산염 비료 공장의 주원료로 뼈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인회석 퇴적층은 모로코, 서사하라에 많이 있다. 문제는 인회석 말고는 새로운 물질이나 질소 고정 기술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고정 질소는 완벽한 기술일까? 인간이 자연 순환에 개입하면서 토양에 흡수되는 고정 질소가 증가했다. 박테리아가 고정 질소를 질소 가스로 전환하는 것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양이다. 결국, 고정 질소는 하천과 바다로 이동한다. 고정 질소로 인해 조류와 식물이 걷잡을 수없이 자란다. 조류는 죽고 부패하며 산소를 소모하여 해양 생물은 필요한 산소가 부족한 상태가 된다. 물고기의 떼죽음과 광대한 녹조류의 원이 고정 질소이다.
대기도 변화한다. 기체 질소 일부는 순환하지 못하고 아산화질소가 된다. 아산화질소는 온실가스 역할을 하여 이산화탄소와 함께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고온현상에 기여한다.
토지 양분과 더불어 인류는 종자 연구도 지속했다. 종자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다윈과 멘델이다. 근친교배 지양, 잡종의 강한 생명력 활용, 예측 가능한 형질을 가진 종자 생산이라는 원칙을 기반으로 20세기 식물 육종가들은 연구를 하게 된다. 1960년이 되자, 잡종 종자, 화학비료, 살충제, 새로운 기계 도입으로 옥수수 수확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육식은 윤리적 문제를 떠나 에너지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다. 먹이 사슬 위로 올라갈수록 손실되는 칼로리양은 점점 커진다. 소가 사료를 통해 먹은 단백질 가운데 5퍼센트만이 소고기에 들어 있다. 태양에너지부터 시작한 단백질 중 95퍼센트가 손실된다.
저자는 아일랜드 감자 기근 사태, 옥수수마름병, 카사바깍지벌레, 녹색잎진드기, 헤센파리 등을 이야기하며 다수확 품종을 육성하기 위해 유전자를 획일화한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단일 품종의 문제는 <바나나 제국의 몰락>에도 잘 나타난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농민은 해충의 위험을 염두에 둔다. 작은 밭에 여러 작물을 동시에 경작한다. 수확량은 단일재배에 비해 적지만 병해충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는 일도 적고 값비싼 살충제를 살 필요도 적다.
살충제의 사용을 최소화해야 하나 실상은 그럴 수 없다. 살충제로부터 살아남은 해충은 자손들에게 살충제에 강한 유전 형질을 물려주고 그럼 더 강한 혹은 더 많은 살충제를 사용해야 하는 구조이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살충제는 물에 녹지 않고 지방에 쌓인다. 먹이사슬이 올라갈수록 DDT 농도는 높아진다. 먹이사슬의 마지막은 바로 인간이다. 대표적 살충제인 DDT는 전면 금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다양한 살충제를 사용한다. 인류는 유생물을 박멸하는 마법의 탄환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볼로그의 왕복육종 등을 기반으로 수확량은 크게 증가한다. 이를 녹색혁명이라고 불렀다. 녹색혁명은 종자, 화학비료, 관개시설, 농기계를 도입한 산업형 농업을 동반한다. 경제 여력이 없는 가난한 농부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또한, 엄청난 수확량에 눈이 먼 농부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병해충 대처법과 지역 고유 품종을 재배하는 방법을 너무 쉽게 버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나아가 농부들은 상업용 종자, 비료, 살충제 구매를 위해 빚더미에 않게 된다.
녹색혁명에 반대하여 나온 개념이 인도 스와미나탄이 만든 '상록혁명'이다.
"녹색혁명의 경험은 인류가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그는 주장했다. 스와미나탄이 그리는 차세대 혁명의 구상에 따르면, 빈농들이 직접 농사와 관련된 결정에 참여하고, 비료와 물 사용의 효율성을 개선하고, 생명공학을 통해 가능해진 진보된 기술의 혜택을 빈농들도 누리게 된다."
여전히 위험은 내포하지만, 인류는 토양 양분의 공급과 종자 개발, 화학비료, 살충제 등으로 식량과의 전쟁을 끝내는 것처럼 보인다. 과도한 식량 공급이 이제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다. 고지방, 고칼로리 식단 보편화로 10억 명이 넘는 비만 인구가 발생했다. 동시에, 지구 건너편에는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10억 명이 되지 않는 인구가 동시에 존재한다.
더 큰 문제는 생명체가 주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조건인 안정적인 기후, 행성의 재순환 시스템, 다양한 생물의 향연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지구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다른 각 국가의 뜻을 모으고 합의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순환 고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일부 도시 사람들이 옥상과 빌딩 사이에 밭을 일구고 인분을 재활용하며 채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작은 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선진국은 음식 낭비를 줄이고 개발도상국은 저장 시설을 개선해서 상해서 버려지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육류가 아닌 채소 위주의 식단도 작은 시작이다. 채식 중심 식단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육류 섭취에 따른 에너지와 물의 과도한 소비량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이와 같은 작은 움직임을 통해 집단적 의식을 일깨워야 한다. 풍성한 식량을 일궈냈지만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위기 앞에 직면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인류는 다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