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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로 간 소신
이낙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9월
평점 :
저자는 한국교총이 발행하는 <한국교육신문>에서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7년 쓴 글을 2018년에 다시 읽으며 느낌을 덧붙여 엮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책을 통해 만나는 것은 늘 즐겁고 흥미로운 과정이다. 처음에는 머뭇머뭇 거리며 글을 따라 읽어가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마치 내가 그 경험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동화된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쉽기도 하고 현실을 직시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첫 이야기는 저자가 5일간의 휴가를 써서 8일이라는 긴 휴일을 보내는 내용이다. 저자는 5일을 처가에서 보내는데 지난달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에서 보낸 나날들이 떠올랐다. 장모님들은 다 요리를 잘 하시나 싶다. 매번 처갓집에 가면 풍성한 대접을 받아서 송구스러운데 이번에도 그랬었다.
저자는 자녀가 둘 있는데 둘 다 딸인데 이 또한 똑같다. 물론, 나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긴 한데, 일단은 같은 상황이다. 저자의 딸들은 이미 많이 커서 스물한 살, 고2가 되었는데 저자와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남들이 살짝 늙은 애인쯤으로 보겠지."
"아빠, 거울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대화 가운데 부녀의 정겨움과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런 관계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간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나도 저자만큼만 딸들과 즐거운 농담을 하는 사이가 되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이 생긴다.
저자 어린 시절에는 마을에 전기가 안 들어 왔다고 한다. 그러다 전기가 들어오고 흑백텔레비전이 들어와 사람들이 저자의 집에 몰리기도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50-60대의 어린 시절이다. 물론, 저자는 68년생으로 딱 50세여서, 50대로 불리면 억울할 수도 있는 나이이긴 하다.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나는 어린 시절을 적는다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이다. 1메가 플로피 디스크가 얼마나 큰 지 알려주면 깜짝 놀랄 것 같긴 하다. 비디오 달려 있는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텔레비전이 무식하리만큼 뒤로 튀어나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도 놀랄 것 같다.
아버지를 회상하며 화투판을 기웃거린다든지, 낮술을 드신다든지 하는 내용도 저자는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저자는 고깃집에 투자했다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정리한 것도 고백한다. 2년여 동안 철저히 하수 인생을 살았다고 회고한다. 좋은 기억, 슬픈 기억, 힘든 기억 등 모든 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저자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씁쓸한 기억은 씁쓸한 기억대로 나의 일부인 것이다. 나에게도 여러 씁쓸한 기억과 경험이 있는데 저자처럼 언젠가는 조금씩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기사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인터뷰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해를 쓰지 않도록 큰 맥락에서 적절히 편집하는 것도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노련함과 노하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저자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네 식구가 모여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도 가족들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야기를 하고 발표하는 것을 힘들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능수능란해진다고 한다. 돌아가면서 사회를 보는 것도 팁으로 알려준다.
책에는 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의 '414 호헌조치'에 맞선 민주화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는 이처럼 여러 글에서 당시 사회적 상황과 개인의 경험을 함께 언급한다. 개인의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고작해야 1997년 IMF, 2002년 월드컵, 2008년 금융위기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IMF나 금융위기 때 직장인이 아니어서 특별한 이야기도 없긴 하다. 아, 2016-17년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 정도까지 가능할 것 같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연애시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