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 흑역사 - 상 - 개정증보판 한국 재벌 흑역사
이완배 지음 / 민중의소리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정주영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원도 아산리에서 태어나서 그의 호도 아산이다. 가출하여 19세에 서울 쌀가게 점원으로 취직하다. 1938년 쌀가게를 인수한다. 1940년 자동차 수리공장을 차리고 1946년 현대자동차 공업사를 세운다. 1947년  현대토건사(현대그룹 모체가 된 현대건설)를 세우며 그의 무데뽀 정신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때, 대부분 건설 사업은 미군이 발주했는데 정주영 동생 정인영이 일본 유학 생활로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정주영은 수많은 공사를 싹쓸이했다. 

한국 기업들은 초기 외형을 확대하느라 외자, 은행권 대출, 사채까지 빌려다 썼다. 과도한 외형 확대로 부채 더미에 올랐고 기업들은 박정희 정권에 민원을 넣기 시작한다. 결국, 박정희는 사채 동결이라는 초법적 결단을 내린다. 모든 사채 이자율을 월 1.35%로 통일하고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으로 바꾼 것이다. 월 1.35%는 당시 은행 대출 금리보다도 낮은 금리였다. 정주영은 가장 큰 혜택을 본 기업가 중 한 명이었다. 재벌은 이처럼 초기 성장 중에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과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박정희는 특히 정주영을 좋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87년 울산 현대그룹 노동자들은 두발 자유화를 외쳤다. 황당하게도 이 당시에, 현장 경비들이 노동자들의 복장을 검사하고 조인트를 까댔다고 한다. 경비들은 대부분 해병대 출신인데, 노동자들 머리가 길다며 이발기로 머리를 밀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현대조선은 조선소와 26만 톤 급의 대형 유조선을 동시에 만드는데 고작 27개월이 걸렸다. 1973년 34명, 1974년 25명이 숨졌다. 당시 현장 노동자는 최고 40시간까지 한숨 못 자고 일한 적도 있다고 말한다. 살인적인 노동 환경이었던 것이다.  

1989년 1월 8일, 파업 중이던 현대그룹 노조 간부들이 수련회를 가졌는데 복면 쓴 괴한이 침입해 각목, 야구방망이 등으로 급습한다. 2월 21일엔 심지어 식칼까지 동원한다. 쇠 파이프도 이해가 안 되지만 식칼은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다. 조합원 두 명이 칼에 찔려 중태에 빠졌고 중경상 입은 노동자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저자는 정주영이 '악마적 노조관'을 가지고 있다고 평한다.  

1960년, 정부는 '개발 지역을 지정할 권한'을 가진다. 지정하는 순간 땅값은 급등한다. 이 정보는 권력의 실세들에게 공유된다.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방석에 앉아서 돈을 번다. 강남을 개발하는 계획 이름이 당시에는 영동지구 주택 건립 계획이었다. 영동지구는 영등포 동쪽을 말한다. 현대건설은 우연찮은 기회에 압구정동 일대에 막대한 땅을 사두었고 영동의 지가 상승은 현대건설과 정주영에게 로또에 가까운 행운이었다. 

당시, 현대건설은 무주택 사원용 아파트를 지었다. 총 952가구 중, 291가구만 실제 사원들에게 분양되고 나머지는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언론인 등에게 분양되었다.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명박도 네 채를 분양받았다.  

현대차는 수출 차와 내수 차에 차이가 있는 것이 발견되어 곤욕을 치렀다. 무상보증 서비스 기간만 해도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무이자 할부 혜택 기간도 거의 2배 차이 났다.  

1988년 5공화국 청문회에 정주영은 증인으로 참석한다. 이때 노무현은 '증인은 영향력 면에서 의원보다 100배나 크다'라고 말한다. 다른 국회의원들은 증인이란 말도 못 했다. '존경받는 기업인',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증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고향 대선배님' 등 다양한 호칭을 썼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이며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돈의 힘이 훨씬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대목이다. 저자가 말하듯, 자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 중에서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압도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전두환이 물러나자 정주영은 1년 만에 변신한다. 1년 전에는 일해재단은 인재 양성 목적으로 설립된 순수 민간 싱크탱크이고 자발적으로 냈다고 기자 회견을 가졌다. 그런데 청문회에서 기금 모금의 강압성을 바로 인정한 것이다. 노무현은 시류를 따라 힘 있을 때 붙고 힘없을 때 떨어지는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제서야 청문회 중 유일하게 '죄송'이라는 단어가 정주영의 입에서 나온다. 일해 재단이나 미르· K스포츠재단이나 똑같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는데 이미 반복되고 말았다. 

1989년 정주영은 노태우로부터 북한 방문 허용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결국, 1998년 정주영은 소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 땅을 밟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당시, 김대중 정권의 재벌 개혁 및 압박은 거세었는데, 정주영이 소를 끌고 가는 '신의 한 수'로 재벌 개혁 칼날을 멋지게 피해 나간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역사를 살펴보면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신의 한 수'보다 '지옥행 급행열차'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현대그룹은 기아차-아시아차, 한화에너지, LG반도체를 차례로 삼키면서 수익성이 점점 나빠진다.  

정몽구, 정몽헌 두 공동회장 체제를 유지하다, 200년 왕자의 난이 발생한다. 결과,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을 현대그룹으로 분리하여 현대차그룹을 만들게 된다. 정몽헌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문어발식 무리한 경영으로 현대건설 부도 등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고 검찰 수사를 받던 정몽헌 회장은 투신자살한다. 

정주영의 아들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은 바로 정몽준이다. 정몽준은 국회의원을 선택하고 대선 후보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며 국민들 앞에 알려지게 된다. 재벌 2세, 3세들의 삶이나 사고방식을 알 길이 없는데 정몽준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몽준은 22세 때 대학 스키연맹 신임 회장이 되며 신문에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정몽준은 31세 때 현대중공업 사장이 된다. 고시원을 방문한 정몽준의 표정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멘탈이 붕괴된 모습이었다. 그 고시원이 사실 나름 괜찮은 고시원이었는데도 말이다.  

현대차그룹 승계를 위해 이노션 회사가 활용된다. 정의선은 이노션 상장으로 4,000억을 챙기는데 여론은 무리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후하게 평한다. 저자는 2인자 전략은 이래서 위대하다고 말한다. 이재용과 정의선은 나이도 비슷해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한다. 일찌감치 후계자가 결정된 것도 비슷하다.  

현대차그룹은 모비스는 현대차를 지배하고 현대차는 기아차를 기아차는 다시 모비스를 지배하는 삼각형 지배 구조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주인인가? 중요한 것은 함부로 그룹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몽구는 모비스 지분 6.96%를 들고 있어서 현대차 그룹 회장이다. 

정몽구는 동생 그룹이 자금난에 치닫던 때, 현대차그룹만을 위한 한국 로지텍을 설립한다. 그전에는 현대상선이 물류를 담당했었다. 동생에게 통쾌한 복수를 날리고 한국 로지텍 지분은 자신과 아들 정의선이 나눠 가진다. 결국, 총 50억 원을 들인 한국 로지텍(글로비스)은 2015년 시총 9조에 가깝게 된다. 이 역시 2인자 전략이어서 사람들은 이재용에게는 "당신이 삼성그룹을 지배할 자격이 있느냐?"라고 묻지만 정의선에게는 묻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