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테네시 역으로 들어왔다. 검댕으로 뒤덮였는데도 검은색 페인트칠에 빛이 반사되는, 그때까지 본 것 중 가장 훌륭한 기관차였다. 기관사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쾌활한 성격으로,아무런 격식 없이 객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코라는 지하철도 기관사들에게 전염되는 터널조증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 P365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유개화차, 그다음은 그녀를 
노스캐롤라이나로 데려다준 무개화차, 그 다음으로 제대로 된 객차 - 연감에서 읽었던 것처럼 시설을 다 갖추고 안락한 것 - 에 오르려니 코라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서른 명은 앉고도 남을 호화롭고 보드라운 좌석이 있었고 황동 손잡이에 촛불 불빛이 닿아 은은하게 빛났다. 새로 칠한 광택제 냄새에 코라는 마법 같은 여행의 첫 승객이 된 기분이었다. 코라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쇠사슬에서 그리고 다락방의 우울함에서 풀려나, 좌석 세 개를 차지하고 잠을잤다. - P365

큰아들이 다섯 살이었을 무렵, 밸런타인의 마부 한 명이 함부로 백인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목이 매달리고 불태워졌다. 마부의 친구들은 그날 그가 읍내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밸런타인과친하게 지내던 은행 직원 하나가 귀띔해주길, 소문에 따르면 어떤 여자가 애인의 질투심을 일으키려다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몇 년 더 지나면서 
밸런타인은 인종적 폭력이 더욱더 사악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근 시일내에, 그리고 남부에서는 그 폭력이 약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와 아내는 가정을 이루고 살기에는 버지니아가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농장을 팔고 이사했다. 인디애나는 땅값이 쌌다. 거기에도 백인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가까이 있지는 않았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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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따금씩 오데트를 만나는 자리에서 모르는 남자가그녀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볼 때면, 마치 포르슈빌이 그녀 집에 있을 때 스완이 찾아갔던 날 그녀가 보였던 것과 똑같은 슬픔이 그녀 얼굴에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이런 일은 드물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이나 세상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녀가 스완을 만날 때 그녀의 태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자신감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신감은 그녀가 스완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곁에서 또는 멀리 떨어져 있을 때조차 그녀가 보였던 조심성과는 큰 대조를 보였는데, 어쩌면 그런 감정에 대한 무의식적인 보복이거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는지 모른다. 

**‘조심성‘에서 ‘자신감‘으로의 태도변화-오데트
- P227

그 무렵 그녀는 스완의 말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대답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달라요." 그녀는 약간 머리가 벗은 그의 긴 얼굴을 응시하곤 했는데, 스완의 성공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은 전형적인 미남은 아니지만 멋지지. 그 머리카락하며, 그 외알 안경하며, 그 미소하며!‘라고 생각하게 하는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정부가 되고 싶은 것 이상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머릿속에 든 것을 알 수만 있다면!"
- P228


지금은 스완이 하는 말에 때로는 신경질적으로, 때로는 관대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 당신은 결코 다른 사람처럼 될 수 없어요!" 그녀는 요즘 걱정거리로
조금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스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프로그램만
 봐도 어떤 교향곡인지 알고, 친척 관계를 아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누구와 닮았는지 알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스완에 대해 
‘그는 확실히 못생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외알 안경하며, 그 머리카락하며, 그 미소하며 우스꽝스러워요!‘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그들의 상상력이 단지 몇 달 사이에 진짜 애인의 얼굴과 바람난 애인의 얼굴 사이에 무형의 경계선을 만들어 놓은것이었다.) 이렇게 말했다.

 "이 머릿속에 든 것을 바꾸어 좀 분별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에 대한 오데트의 태도에 조금만 의심할 여지가 있어도 금방 자기가 바라는 대로믿기 마련인 그는 이 말에 맹렬하게 덤벼들어 "당신이 그러길바라면 그렇게 할 수 있지." 하고 말했다.
- P229


그날 저녁 이후로 스완은 그에 대한 오데트의 감정이 결코되살아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또 행복에 대한 그의 희망이 더이상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하다 스완!!!
- P283

그는 중얼거렸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행복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불행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이런 생활이 이미 몇 해 전부터 계속되며, 그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 생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날마다 아무런 기쁨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만남을 기다리느라 그의 연구나 쾌락, 친구, 결국에는 그의 삶마저 희생하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녀와의 관계를 미화하고 파국을 막아 온것이 오히려 그의 운명을 해롭게 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바람직한 사건은 그가 꿈속에서만 일어났다고 그토록 좋아했듯
그 자신이 떠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았다. 우리
는 자신의 불행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만큼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고
그는 중얼 거렸다.

*인용한 부분의 첫문장과 끝문장이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스완이 오데트에 대한 감정을 스스로 정리해 나가는 의식의 흐름을 보여준다.

- P286


그러나 그가 빠져나온 그의 삶의 매우 특별한 시기에 대해, 그 시기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가능한 동안 그 시기에 대한 어떤 뚜렷한 이미지라도 가져 보기 위해 자주 노력했지만 이미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사라져 가는 풍경을 바라보듯 이제 막 자신이 떠나온 사랑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을 둘로 나누거나, 소유를 멈춘 감정의 진실된 모습을 재현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곧 어둠이 그의 머릿속을 가리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러자 그는 보기를 단념하고는 코안경을 벗어 알을 닦았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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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의 연애생활은 언제 끝나는거지?
아..정말
프루스트 선생 만연체 문장도 힘들고 너무 많은 주석도 힘든데 그래도 난 이런 만연체 문장 너무너무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이 푹 빠져서 계속 읽게 된다.
오데트는 남자의 마음을 쥐락펴락, 스완의 마음도 쥐락펴락 연애고수다!

그러나 막상 잠을 자려고 했을 때, 자신에게 가하던, 너무도 습관이 되어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속박을 풀려고 하는 순간 차가운 전율이 역류하면서 오열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유조차 알려 하지 않았고, 눈물을 닦고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참 멋지군, 내가 신경증 환자가 되다니." 

그러고는 다음 날에도 오데트가 무엇을 했는지 알기 위해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고, 그녀를 보기 위해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청난 피로가 느껴졌다. 휴식도 변화도 성과도없는 이런 행동의 필연성이 너무도 잔인하게 느껴져, 어느 날인가는 배에 종기가 난 것을 보고 어쩌면 그 종기가 그의 목숨을 앗아 갈지도 모르며, 자기는 이제 아무것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이 병이 임박한 죽음의 순간까지 그를 지배하고 노리개로 삼을 거라고 생각하자 진정한 기쁨이 느껴졌다. 그리고사실 그는 이 시기에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가끔 죽음을 원했는데, 그의 격심한 고통보다는 그 단조로운 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 P224

그렇지만 그는 자기가 오데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그녀가 자기에게 거짓말할 그 어떤 
이유도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그가 그녀를 만나러 갔던 그날 오후에 그녀가 포르슈빌과 같이 잤는지 아닌지를 마침내 알게 될 때까지 살고 싶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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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2-0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 읽으셔서 부러워요. 만연체 죽음이고 특히 스완의 오데트에 대한 집착, 질투에 대한 대목이 참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이 대장정을 마치시면 절대 후회 안 하실 겁니다. 파이팅!

은하수 2023-02-05 16:03   좋아요 0 | URL
blanca님 반갑습니다^^
스완 집착남 여자입장에선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들거 같죠? 2권 빨리 읽어서 끝나고 싶네요 답답해서요 ㅎㅎ 근데 13권까지 완독이 목표인데 계속 이런 만연체의 문장이겠죠? ㅠㅠ

북프리쿠키 2023-02-0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수님. 완독을 기원합니다!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책을 읽으시다뉘^^

은하수 2023-02-05 16: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일단 2권 끝내고 13권까지 완독해 보겠습니다. 올해 원대한 목표가 13권 완독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섬유 ‘면‘의 처절한 역사다.

˝인정사정없는 목화라는 기관차는 아프리카인들의 육체라는 연료를 요구했다.˝(225)











대농장에서, 그녀는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바람을 쐬고 여름 별을 바라보며 제한 없이 움직였다. 작음 안의 큰 곳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주인에게서 자유롭지만 일어설 수도 없는 작은 토끼장 속을 살금살금 돌아다녔다.

코라는 이 집의 다락방을 몇 달째 떠나지 않고 있었지만 관점은 아주 멀리까지 방랑했다. 노스캐롤라이나에는 정의의 언덕이 있었고, 코라에게도 자기만의 정의의 언덕이 있었다. 

공원이라는우주를 내려다보면서 그녀는 이 마을이 원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돌 벤치에 떨어지는 햇살에 일광욕을 하고, 사람을 목매다는 나무의 그늘에서 더위를 식혔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에 족쇄가 차인 그녀와 같은 수인들이었다. 마틴과 에설은 불 꺼진창문 뒤에 숨어 감시하는 그 많은 눈에 공포에 떨었다.
 
마을은 금요일 밤이면 어둠 속의 것들을 물리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모여들었다. 부상하는 검은 부족, 혐의를 꾸며내는 적, 자신을 혼낸 것에대해 한 집안을 파멸시킴으로써 장대하게 복수하는 아이.

 이웃과 친구와 가족의 얼굴 뒤에 도사린 것들을 대면하느니 다락에 숨어있는 편이 더 나았다.
- P252

"누구라도 움직였다간 뽑힌 이가 더 많아질 것이오." 그 남자가말했다. 셋은 밝은 데로 걸어 나왔다.

말한 사람은 마을에서 본 젊은 니그로, 코라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이었다. 그는 리지웨이를 감시하느라 지금은 코라 쪽을 보지 않았다. 그의 얇은 테 안경에 등불이 반사되어 마치 그 불꽃이 그의 안에서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권총이 수맥을 찾는사람의 지팡이처럼 두 백인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다.

두 번째 남자는 라이플총을 들고 있었다. 키가 큰 근육질의 그 남자는 두툼한 작업복 차림이었는데 코라가 보기에는 이 일을 할때 입는 복장 같았다. - P315

이 남자들이 리지웨이의 손목을 마차 바퀴에 쇠사슬로 묶을 때 그는 웃었다.
"아까 그 소년은 교활한 부류야." 리더가 말했다
"나는 알 수있어. 우리는 가야 합니다." 
그가 코라를 바라보았다. 

"우리와 같이 가겠어요?"

코라는 새 나무 신발로 리지웨이의 얼굴을 세 번 걷어찼다. 세상이 나서서 사악한 자들을 벌주지 않을 거라면, 코라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나중에 코라는 세 번의 살인이라 세 번이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말 속에서나마 잠시 다시 살려내고자 러비, 시저, 재스퍼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아니었다. 전부 다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리지웨이를 왜 죽이지 않았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죽였어도 결코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는데 말이다.
- P318


코라의 방. 그 모든 감옥들을 거치고 밸런타인 농장에서 받은또 하나의 믿기지 않는 선물.

시빌과 딸 몰리는 이 집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은 생석회로 외벽을 칠하고, 그 위에 분홍색 물감을 칠했다. 거실에는 노란 물감을 칠하고 하얀색 테두리를 둘렀더니 해가 들면 생기가 넘쳤다.

따뜻한 계절에는 들꽃으로 장식을 했고, 가을에는 붉은색과 황금색 낙엽으로 만든 화환을 걸어두어 늘 실내가 상쾌했다. 보랏빛 커튼이 창문에 걸려 있었다. 농장에 사는 목수 두 명이 이따금씩 가구를 만들어 날라다주었다-그들은 시빌에게 다정했고 무심한 그녀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그들의 손은 내내 분주했다.
 시빌은 포대 자루를 물들여서 카펫으로 만들었는데, 코라는 두통이찾아올 때면 그 위에 누워 있었다. 거실로 산들바람이 잘 들어와 두통의 공격을 줄여주었다.
- P366

정말 많은 탈주자들이 밸런타인 농장을 거쳐 갔다- 여기 누가 머물다 갔는지를 다 꿰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시빌은 혹시 조지아에서 온 여자를 알지 않았을까? 코라가 어느 날 시빌에게 물었다. 코라는 몇 주째 그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두어 번은 밤새푹 자기도 했고, 다락에서 지내며 빠졌던 살이 어느 정도 다시 붙었다. 
파리 소리가 잦아들면 밤중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메이블이라는 이름을 썼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조지아에서 온 여자를 알지 않았을까?

**메이블... 엄마...찾을 수 있을까?
꼭 찾았으면 좋겠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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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작가의 글이 술술 쉽게 읽힌다고 쉽게 쓰여진 글이 아니란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질의 응답으로 답을 해주시니 역시 그렇군 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술술 읽히는 책을 다음에 본전 생각나서? 또 사게 될까 싶다가 또 사게 될 거란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배경음악처럼 열심히 듣고 좋아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책도 주저없이 사게 되었고 읽게 되었고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을 이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음악 작업과 글쓰기는 결국 다 같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인간 이석원을 보여주는 도구들인데 난 그 도구에 반한건지 이석원에 반한건지는 모르겠지만-작가가 말하길 글을 쓴 사람과 글이 너무 다른 경우도 많이 봤다고 하시고, 또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유명 작가들의 실생활은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 너무 다른 것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난 계속 이석원 작가도 이석원 작가의 작품들도 사랑하게 될 거 같다.

아무튼 글을 쓸때도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음악과 책을 만드는 일은 내게 어째서 다른 것이 아닌지 나는 왜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지

앞서 말씀드린 이유로 제게 음악과 글은 별로 다른것이 아닙니다. 그 얘기는 그 두 가지의 일을 동일한방식으로 접근하고 해낸다는 뜻도 될 텐데요. 하지만엄밀히 말해서 분명히 다른 일들인데 어떻게 같은 식으로 해내는 게 가능할까요.

2009년에 어떤 영화제의 트레일러 영상 연출을 맡은 적이 있거든요. 저는 그 전까지 영상은커녕 사진한 장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었는데 어쨌든 그 일을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야 쟤는 어떻게 음악, 책, 영화, 장사 다 할 수가 있냐고 그러는데 그건제가 다재다능해서라기보다는 어떤 일에든 적용 가능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는 무슨 일이든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것만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있다는 것이죠.
- P158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이루는 요소들을 놓고 보면
그 안에서는 대체될 수 없는 일이 있고 대체가 가능한 일이 있거든요. 항상 그걸 먼저 구분하는 게 중요한데 방금 설명드린 영상에서 대체될 수 없는 역할은 뭘까요. 배우? 아니면 촬영감독? 둘 다 아니죠. 배우는 잘생긴 친구 또 데려오면 되고 촬영감독님도 잘찍어주셨지만 꼭 그분이 아니면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영화도 있겠지만요.  - P160


하지만 제 영상에서는 이 영상 자체를 구상하고 시나리오짜고 콘티를 그리고 적절한 배우를 골라서 캐스팅한 감독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죠. 대신하는순간 그건 본질적으로 다른 작품이 되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가능한 한 대체될 수없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일의 주도권도 쥘 수 있고 세상이 계속 나를 필요로 하거든요. - P161


자, 이거 너무 중요한 얘기라서 다시 한번만 정리하고 넘어갈게요.

창작자는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 분야의 많은 일을 경험하고 그에 관한 세부적인 부분들까지 배우고 익힐 수 있으면 당연히 좋겠죠. 내가 내공간 속 복잡한 전선의 배열까지 직접 해결할 수 있다면 나쁠 것 없겠죠. - P164

 그러나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세부적인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일의 원리에 관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요즘 창작자로서의 수명과 정년에 대해서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날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것보다 더 확실한 수명 연장의길이 뭐가 있겠어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상의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가게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더욱 중요한 건 내 힘으로 내 공간을구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내 가치도 인정받고 가능한 한 오래 (창작자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 P164


가령 독자들이 쉽게 잘 읽히는 글을 보면 어떻게 느끼죠? 글을 읽는 사람들이 하는 대표적인 착각, 쉽게읽히면 쓰는 것도 쉽게 썼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글을쓰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글을 쉽게 읽히도록 쓰려면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요.

 여러분 누군가에게 뭘 설명할 때 어려운 개념을 그대로 어렵게 설명하는 것과 듣는 사람 입장에서 가능한 한 이해가 쉽고 빠르게 되도록 설명하는 거랑 어느 게 더 어려우세요. 후자가 훨씬 더 어렵죠.
그거거든요. - P181


담백한 글은 글에 묻은 온갖 감정과 과잉된 수사를을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글은처음부터 단번에 그렇게 쓴 것이 아니라 그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수많은 과정 끝에 나온다는 걸 독자들은굳이 알 필요 없지만 같은 작가끼리는 알아야 하고 알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선수라면은.

질문 주신 분께서 제 글을 읽고 자기가 느낀 그대로써봤지만 잘되지 않았던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거죠. 그저 꾸밈없이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일이가능하다면, 그런 세상은 얼마나 간편하겠어요. 그럼 세상의 많은 창작자들이 자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고민을 할 이유도 없겠죠.

그래서 당신이 적어도 창작자를 꿈꾼다면 최소한 향유자로 즐기기만 하던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전문성을갖춰가는 길이니까, 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답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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