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작가의 글이 술술 쉽게 읽힌다고 쉽게 쓰여진 글이 아니란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질의 응답으로 답을 해주시니 역시 그렇군 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술술 읽히는 책을 다음에 본전 생각나서? 또 사게 될까 싶다가 또 사게 될 거란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배경음악처럼 열심히 듣고 좋아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책도 주저없이 사게 되었고 읽게 되었고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을 이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음악 작업과 글쓰기는 결국 다 같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인간 이석원을 보여주는 도구들인데 난 그 도구에 반한건지 이석원에 반한건지는 모르겠지만-작가가 말하길 글을 쓴 사람과 글이 너무 다른 경우도 많이 봤다고 하시고, 또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유명 작가들의 실생활은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 너무 다른 것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난 계속 이석원 작가도 이석원 작가의 작품들도 사랑하게 될 거 같다.

아무튼 글을 쓸때도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음악과 책을 만드는 일은 내게 어째서 다른 것이 아닌지 나는 왜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지

앞서 말씀드린 이유로 제게 음악과 글은 별로 다른것이 아닙니다. 그 얘기는 그 두 가지의 일을 동일한방식으로 접근하고 해낸다는 뜻도 될 텐데요. 하지만엄밀히 말해서 분명히 다른 일들인데 어떻게 같은 식으로 해내는 게 가능할까요.

2009년에 어떤 영화제의 트레일러 영상 연출을 맡은 적이 있거든요. 저는 그 전까지 영상은커녕 사진한 장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었는데 어쨌든 그 일을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야 쟤는 어떻게 음악, 책, 영화, 장사 다 할 수가 있냐고 그러는데 그건제가 다재다능해서라기보다는 어떤 일에든 적용 가능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는 무슨 일이든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것만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있다는 것이죠.
- P158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이루는 요소들을 놓고 보면
그 안에서는 대체될 수 없는 일이 있고 대체가 가능한 일이 있거든요. 항상 그걸 먼저 구분하는 게 중요한데 방금 설명드린 영상에서 대체될 수 없는 역할은 뭘까요. 배우? 아니면 촬영감독? 둘 다 아니죠. 배우는 잘생긴 친구 또 데려오면 되고 촬영감독님도 잘찍어주셨지만 꼭 그분이 아니면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영화도 있겠지만요.  - P160


하지만 제 영상에서는 이 영상 자체를 구상하고 시나리오짜고 콘티를 그리고 적절한 배우를 골라서 캐스팅한 감독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죠. 대신하는순간 그건 본질적으로 다른 작품이 되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가능한 한 대체될 수없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일의 주도권도 쥘 수 있고 세상이 계속 나를 필요로 하거든요. - P161


자, 이거 너무 중요한 얘기라서 다시 한번만 정리하고 넘어갈게요.

창작자는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 분야의 많은 일을 경험하고 그에 관한 세부적인 부분들까지 배우고 익힐 수 있으면 당연히 좋겠죠. 내가 내공간 속 복잡한 전선의 배열까지 직접 해결할 수 있다면 나쁠 것 없겠죠. - P164

 그러나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세부적인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일의 원리에 관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요즘 창작자로서의 수명과 정년에 대해서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날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것보다 더 확실한 수명 연장의길이 뭐가 있겠어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상의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가게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더욱 중요한 건 내 힘으로 내 공간을구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내 가치도 인정받고 가능한 한 오래 (창작자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 P164


가령 독자들이 쉽게 잘 읽히는 글을 보면 어떻게 느끼죠? 글을 읽는 사람들이 하는 대표적인 착각, 쉽게읽히면 쓰는 것도 쉽게 썼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글을쓰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글을 쉽게 읽히도록 쓰려면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요.

 여러분 누군가에게 뭘 설명할 때 어려운 개념을 그대로 어렵게 설명하는 것과 듣는 사람 입장에서 가능한 한 이해가 쉽고 빠르게 되도록 설명하는 거랑 어느 게 더 어려우세요. 후자가 훨씬 더 어렵죠.
그거거든요. - P181


담백한 글은 글에 묻은 온갖 감정과 과잉된 수사를을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글은처음부터 단번에 그렇게 쓴 것이 아니라 그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수많은 과정 끝에 나온다는 걸 독자들은굳이 알 필요 없지만 같은 작가끼리는 알아야 하고 알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선수라면은.

질문 주신 분께서 제 글을 읽고 자기가 느낀 그대로써봤지만 잘되지 않았던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거죠. 그저 꾸밈없이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일이가능하다면, 그런 세상은 얼마나 간편하겠어요. 그럼 세상의 많은 창작자들이 자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고민을 할 이유도 없겠죠.

그래서 당신이 적어도 창작자를 꿈꾼다면 최소한 향유자로 즐기기만 하던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전문성을갖춰가는 길이니까, 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답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 P1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