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고세훈 지음 / 한길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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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이 책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 이하 ‘오웰’)로 알려진 사람의 전기가 아니다. 이는 이 책이 한 개인의 삶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늘어놓는 연대기 혹은 편년체(編年體)라는 일반적인 전기 형식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서사와 사상을 연대기적으로 묶어서 서술하다가 읽는 즐거움과 주인공의 일관되고 체계적인 사유방식을 모두 놓칠까 염려” [p. 39]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 크게 오웰의 삶을 그린 ‘1부 생애’와 그의 사상과 작가로서의 글쓰기 태도를 다룬 ‘2부 사상과 글쓰기’로 엮여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을 한 사람의 일생에 평론을 곁들인 평전(評傳)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조지 오웰’이라는 모범 답안을 두고, 은연중 그와 비교하면서, 그의 시각으로 바라본 지식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한 것으로도 보인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글을 엮어나가다 보니 내용상 중복되는 부분이 튀어나와 아쉬웠다.

 

 

오웰의 사상과 글쓰기 태도

 

장 폴 샤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이하 ‘샤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이란 집단은 지적 능력에 관계되는 일을 통해서 어느 정도 명성을 획득한 후에,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이라는 보편적이고 독단적인 개념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회와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자신들의 명성을 남용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 [p. 14]이라고 비판한다.

이와 비슷하게 오웰은 “권력 언저리에서 킁킁대며 안일과 위선과 표변을 일삼는 지식인에 대한 거대한 보고서” [p. 33]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지식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웰이 보는 지식인은 어떤 존재일까?

첫째, 지식인은 무지몽매한 민중을 가르치는 자가 아니다.

흔히 지식인이라고 하면, 무지몽매한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984>와 <동물 농장>으로 알려진 오웰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전제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독자들을 가르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즉, “그는 궁핍과 질병이 주는 삶의 신산(辛酸)함에도 불구하고 승자 진영에 편입되고자 안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생을 피해자 편에 서서 그들의 눈과 입을 빌려 관찰하고 발언하기를 지속했다. “오웰은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설교하지 않았으며, 간섭하려 하지 않았다 (…) 그는 결코 시끄럽지 않았으며, 불안한 자의 독단을 보이지 않았다 (…) 그는 관광여행의 안내자의 태도를 취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p. 34]

 

둘째, 지식인은 늘 진실과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지녔음직한 정치적 편견 혹은 종교적 가치에 대해 스스로 민감할수록 미적, 지적, 정직성의 희생 없이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인간에겐 너무도 명백하여 변경 불가능한 사실들, 그리하여 조만간 직면해야 할 사실들을 무시하는 능력, 곧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믿으려는 성향이 있다. 마침내 틀렸음이 밝혀졌을 때에도 옳음을 보이기 위해 사실들을 비트는 것이 인간이다.” [p. 503]

샤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사회에서 가장 소외 받는 계층, 즉 일반적으로 피지배계층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확장된 이익을 대변하는 ‘보편적 계급’이기 때문에 지식인은 이들의 입장에 서거나 이들을 대변할 경우에만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갖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는 지배계층의 일부일 수 밖에 없는 지식인이 자신의 시각으로 피지배계층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시각을 가지려 해야 한다는 얘기이면서 동시에 지식인이 피지배계층이 될 수 없는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오웰은 이러한 샤르트르의 주장을 가장 잘 구현한 지식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웰에게는) 이데올로기든 신앙이든 혹은 권력에 의해서든 그것이 작가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자율성을 제한한다면, 작가의 생명인 정직성 또한 제약될 수밖에 없음이 자명해 보였다.

오웰로서는 진실, 사실과의 정직한 대면, 그리고 그러한 대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는 인간이 주관적인 감정을 온전히 배제하지는 못할지라도,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가능하면 사고로부터 그것을 걷어내는 일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읽을 만한 것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성을 말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pp. 502~503]고 여겼던 것이 아닐까?

 

 

정치적 글쓰기라는 예술

 

우리가 학창시절에 KAPF나 프로문학을 배우면서, 문학에 정치적 의도가 들어가면 작품이 아니라 선전선동의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정치적 글쓰기라고 하면 예술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웰에게 문학과 정치적 가치는 상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말년에 그는 자신이 지난 10년 동안 늘 가장 원했던 것이 “정치적 글쓰기를 하나의 예술로 만드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p. 503]

오웰이 보기에는 “소설을 쓰는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보통사람과 계급적으로 유리된 중간계급에 속해 있다. 보통사람, 특히 노동계급(의 삶)과의 접촉이 쉽지 않을 때 작가들은 주제나 소재의 부재에 시달리며, 단어와 표현의 미학적 유희에 쉽게 빠져든다. (그 결과로 산출된 작품들은) 모든 것이 허용된 듯이 보이지만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으며, 재미는 있을지라도 감동은 찾기 힘들다.” [pp. 526~527]

오웰이 이런 말을 한 것에는 어떤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혹은 독자들을 선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글쓰기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오웰은 ‘보통사람들의 품위(common decency)’가 사회 곳곳에 스며드는 세상을 꿈꿨다. 언어가 간결하고 명료하면 보통사람들이 정치적 논의로부터 배제되거나, 지도자들에 의해 쉽사리 속임을 당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글쓰기의 어려움과 정치작가로서의 다짐을 이렇게 토로했다.

책을 쓰는 일이란, 어떤 고통스런 질병을 한 차례 길게 앓는 것 같은 끔찍하고 탈진시키는 투쟁이다. (...) 자신의 개성을 말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쓸 수 없다. (...) 내 작업을 돌아볼 때, 내가 생기 없는 책을 쓰고, 미사여구, 의미 없는 문장, 화려한 수사, 곧 눈속임에 취해 있을 때는 예외 없이 정치적 목적을 결여했을 때였다는 것을 본다.” [p. 36]

 

즉, 오웰에게 중요한 것은 “일관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일관된 도덕적 힘이었다. 무릇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선택을 강요하지만, 도덕적 힘은 개인의 선택을 추동(推動) 한다. 오웰의 도덕적 힘은 (<카탈로니아에 경의를[Homage to Catalonia]> (1938) 등에서 드러나는) 피해자에 대한 연민 그리고 (<버마 나날들[Burmese Days]>(1934)에서 보듯이) 가해자로서의 수치와 죄의식에 터를 잡고 있다.” [p. 35]

따라서 그가 사회주의자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어떤 이데올로기에 근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보통사람에 의해 보통사람의 가치와 정서가 구현되는 정치에 희망을 걸었던 결과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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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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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이 나오기까지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이라고 하면 대부분 <코스모스(Cosmos)>(1980)라는 이름의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떠올린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Cosmos: Possible Worlds)>의 저자인 앤 드루얀(Ann Druyan, 1949~ )은 바로 그 칼 세이건의 아내이자 천문학자인 스티븐 소터(Steven Soter, 1943~ )와 함께 <코스모스>의 원고를 함께 작성한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1996년 칼 세이건이 사망한 후에도 그녀는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스티븐 소터와 함께 2014년 <코스모스>(1980)의 업데이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Cosmos: A Space Time Odyssey)>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했을 뿐 아니라 제작 및 감독에 참여했다.

그렇기에 40년의 시간이 흐른 2020년에 앤 드루얀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방식으로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Cosmos: Possible Worlds)>을 출간하고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왜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을 출간 및 제작했을까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이하 ‘아인슈타인’)은 1939년 세계박람회 개막식에서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p. 26]라고 말했다.

앤 드루얀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이 말이 ‘코스모스’ 프로젝트의 꿈이라고 한다. 그녀가 보기에는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여러 위기를 전부는 아니라도 많이 해결해 줄 만한 열쇠” [p. 7]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과학의 성취를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 이해한다는 것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과학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p. 7]이라고 본 것이다. 사실 우리는 과학을 도구로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그녀는 과학을 도구가 아닌 사상 혹은 관점으로 수용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그녀도 과학이 가지는 부정적인 영향력은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처럼 과학이라는 학문을 내용적 측면이 아니라 형식적 측면에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과학자들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른바 지도자들은 다음 선거 혹은 사분기 평가까지의 시간에만 신경 씁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근시안적 사고를 지속할 여유가 더는 없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우리가 제대로 해결해 내지 못할 경우, 지구 문명 전체를 파괴할 위기이니까요.” [p. 9]라고 말한 것일 것이다.

 

인류는 이 책의 1장 처음에 쓰여진 것처럼 “우리는 이 광막한 우주에 출현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존재” [p. 39]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술적 사춘기’ 즉, “젊은 문명이 스스로를 파괴할 기술적 수단을 갖추었지만, 아직 그런 파국을 예방할 성숙함과 지혜를 갖지 못한 위험천만한 시기” [p. 421]를 거치는 것도 당연하다.

어쩌면 저자가 인류가 자초한 ‘대멸종의 시대’를 언급하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우리 중 충분히 많은 수가 전 세계 과학자들의 말을 마음에 새긴다면, 그리고 행동한다면, 이 재앙을 충분히 멈추고 되돌릴 수 있다고” [p. 8]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칼 세이건 <코스모스>의 정식 후속작’이라는 책소개를 들어 저자가 <코스모스>(1980)에 대한 신뢰와 지지에 기대어 이 책을 썼다고 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말한 대로 과학이라는 열쇠로 인류가 재앙을 멈출 수 있다는 믿음을 확신시켜 무의식 중에 파멸로 향하는 인류의 발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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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 - 부산 근대건축 스케치
최윤식 지음 / 루아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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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근대의 기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지만, 일본에 의해 강화도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내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되고 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는 1876년도 주요한 후보 가운데 하나이다.

동래부(東萊府) 관할이었던 부산포(釜山浦)가 도시로서의 틀을 잡게 된 것이 앞에서 언급한 강화도 조약에 의해 개항장으로 지정된 이후이니 어떻게 보면  ‘부산(釜山)’이라는 도시의 존재감은 근대도시로 형성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전쟁 등을 거치면서, 또 경제개발과 산업화의 과정에서 근대도시 부산의 거리와 건축물은 훼손되거나 소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자는 “오래된 것이 낡은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이 낡은 것이다. 그 낡은 것조차 얼마 남지 않았으니 뒤를 이을 부산 사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p. 5]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렇기에 1910년대 부산항과 1926년 무렵의 광복로, 1930년대 대청정 거리 모습에서 시작해 1943년 화재로 소실된 태평관,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소실된 옛 부산역, 공회당 그리고, 부산우편국, 1979년에 철거된 부산세관, 1983년에 헐린 상품진열관, 마지막으로 현재 보존되고 있는 석당박물관, 일신여학교, 임시수도기념관, 부산근대역사관 등에 대한 68점의 세밀화를 우리에게 건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910년대 부산항

출처: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 pp. 8~9

 

부산우편국

출처: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 pp. 72~73

 

석당박물관

출처: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 pp. 84~85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화되어 간다. 도시의 거리와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거리와 건축물에는 그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단순히 우리가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러한 공간들을 계속해서 파괴하기만 하면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던 자연 파괴의 대가를 지금에 받는 것처럼 또 다른 형태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저자가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있는 건축물, 잊혀진 거리를 세밀화의 방식으로 남기는 것은 벌목으로 더 이상 나이테가 생기지 못하는 나무처럼, 그 공간에 쌓인 추억과 이야기가 휘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사라진 건축, 잊힌 거리>는 건축에 관심 있거나 부산의 역사에 흥미를 느끼는 이에게는 큰 선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책등이 없는 누드 사철 제본으로 되어 있어 68점의 세밀화를 보다 편하고 제대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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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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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어려움

 

다른 언어로 쓰여진 글을 읽으려면 그 나라 언어를 할 줄 알면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언어가 존재하고 그 언어들을 한 개인이 다 익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 언어를 번역해주는 사람, 즉 번역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당 언어를 아는 것만으로 번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외국 문물을 ‘적절하게’ 옮기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번역을 아무리 잘한다 해도, 일한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원래의 의미는 어떻게든 손실될 수밖에 없다. 번역된 문장은 결국 번역가 자신이 쓴 문장이므로, 번역가 고유의 생각, 가치관, 판단, 개성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더 나아가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이라면 한국어라는 언어가 비롯된 한국적 토양, 사회, 문화, 사고방식이 담길 수밖에 없다.” [p. 7]

 

뿐만 아니다. 거의 잊혀진 단어나 기존에 없던 단어를 번역할 때에도 어떻게 번역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의 딸은 풀밭에서 린턴과 대화를 나누다 심심해지자 월귤(越橘)을 따 모아서 유모에게 나눠주면 손장난을 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신사 숙녀들은 말린 월귤에 사탕수수 엿물로 단맛을 낸 후식을 즐기고, <초원의 집>에서는 월귤로 파이를 굽거나 거위 구이에 발라 먹을 젤리를 만들고, (<호호 아줌마가 작아졌어요>에서) ‘호호 아줌마’는 남편이 팬케이크 발라 먹을 잼을 만들려고 숲에서 월귤을 따서 양동이에 담는다.” [pp. 252~253]

 

월귤(Lingonberry)



출처: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p. 250

 

여기서 월귤은 ‘링곤베리(lingonberry)’의 번역어지만, 거의 잊혀진 단어이기 때문에 저자처럼 “월귤이라는 이름에 ‘귤’이 들어가므로 귤과 비슷한 과일이라고 상상”[p. 253]하기 쉽다. 게다가 “블루베리 (blueberry)나 크랜베리(cranberry)같은 열매들은 아예 이렇다 할 번역어가 따로 없어서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 영한사전 편찬자들은 블루베리나 크랜베리의 한국어 뜻풀이를 ‘월귤의 일종’이라든지 ‘월귤의 사촌’이라고 기재하고, 그걸 본 번역가들이 책에다 블루베리나 크랜베리를 ‘월귤’이라고 뭉뚱그려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한국어 번역서에 월귤이 나오면 그게 원문에서 링곤베리인지, 블루베리인지, 크랜베리인지 알 수가 없다.” [p. 255]

 

하나 더 언급하자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같은 종류의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두 단어가 주는 어감 혹은 분위기는 서로 다른 음식인 것처럼 이질적이다. 그래서 저자도 “‘라즈베리 코디얼’을 마시는 소녀와 ‘산딸기 주스’를 마시는 소녀는 외모도, 성격도, 말투도 다를 것만 같다. 그러므로 진저브레드, 블루베리, 라즈베리 코디얼이 나오는 책을 읽은 독자의 경험과, 생강빵, 월귤, 산딸기 주스가 나오는 책을 읽은 독자의 경험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훌륭한 책은 번역판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이롭다는 말이 있다. 다양한 번역이 나올수록 그만큼 다양한 의미가 생겨나고,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 [p. 6]이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문학 작품 속 음식들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라는 소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온전히 번역에 대한 이야기 혹은 번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소설에 등장한 음식들에 대한 에세이에 가깝다. 이는 이 책이 전채(前菜, appetizer)에 해당하는 제1부 ‘빵과 수프’, 본 요리에 해당하는 제2부 ‘주요리’, 후식(後食), dessert)에 해당하는 제3부 ‘디저트와 그 밖의 음식들’로 구성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음식 이름을 제목으로 한 각 챕터는 해당 음식이 등장하는 소설의 한 장면과 해당 음식에 대한 아기자기한 삽화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햄과 그레이비(Ham with Gravy)’의 경우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멈의 커다랗고 검은 두 손에 들린 쟁반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 버터 바른 참마 두덩이, 수북이 쌓인 메밀 팬케이크 위로 뚝뚝 흘러내리는 시럽, 그레이비에 둥둥 떠 있는 커다란 햄 한 조각. 어멈이 가져온 무거운 음식상을 보자 스칼렛의 얼굴에 떠올랐던 가벼운 짜증은 고집스러운 독기로 바뀌었다.” [p. 104]

 

그리고 각 챕터 끝에는 최연호 파티시에의 감수를 받아 음식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정보를 덧붙였다.

 

꿀벌빵(Bienenstich)


출처: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pp. 296~297

 

덕분에 이 책은 분명히 번역가의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번역가의 삶 등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소설에 언급된 요리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일종의 ‘문학 작품 속 요리 사전’의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낯선 요리에 궁금증이 있는 이에게는 안성맞춤인 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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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 돈황과 하서주랑 - 명사산 명불허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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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에 대한 로망

 

버려진 곳’ 혹은 돌아올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타를라마칸’ 사막하지만 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포함한 타림 분지에서는 한때 소위 실크로드 문명이 번성했었다하지만 실크로드 문명의 몰락과 이후 생겨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하나의 문명이 소멸되었다는 전설 1)은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여러 이야기꾼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불의 검등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혜린(1962~ )이 그녀의 단편 만화 로프누르잃어버린 호수’(1996)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누란(樓蘭)2)이 소멸되는 것처럼 묘사했던 것처럼.

 

한편, ‘’, “꽃을 위한 序詩’, ‘부다페스트에서의 少女의 죽음’ 등으로 유명한 김춘수(金春洙, 1922~2004)도 누란을 기리는 시를 남겼다.

 

누란(樓蘭)

 

                                   김춘수

 

과벽탄(戈壁灘).

고비는 오천리(五千里사방(四方)이 돌밭이다월씨(月氏)3)가 망()할 때,

바람 기둥이 어디선가 돌들을 하늘로 날렸다.

돌들은 천년(千年)만에 하늘에서 모래가 되어 내리더니산 하나를 만들고

백년(百年)에 한 번씩 그들의 울음을 울었다.

옥문(玉門)을 벗어나면서 멀리멀리 삼장법사(三藏法師현장(玄奬)도 들었으리

 

명사산(鳴沙山).


그 명사산(鳴沙山저쪽에는 십년(十年)에 한 번 비가 오고비가 오면 돌밭 여기저기 양파의 하얀 꽃이 핀다.

봄을 모르는 꽃삭운(朔雲백초련(白草連).

서기(西紀기원전(紀元前백이십년(百二十年). ()의 한 부족(部族)

그 곳에 호(천 오백 칠십(千五百七十), (만 사천백(萬四千百),

승병(勝兵이천 구백 이십갑(二千九百二十甲)의 작은 나라 하나를 세웠다.

언제 시들지도 모르는 양파의 하얀 꽃과 같은 나라 누란(樓蘭).

 

 

실크로드의 답사

 

실크로드의 시작은 섬서성(陝西省서안(西安)의 북서쪽 시가지 외곽에 있는()나라 때의 장안(長安)이다이곳을 포함해서 진령산맥(秦嶺山脈북쪽에 서쪽으로는 대산관(大散關), 동쪽으로는 함곡관(函谷關), 남쪽으로는 무관(武關), 북쪽으로는 소관(蕭關)으로 둘러싸인 들판이 있는데이를 4개의 관문[]의 가운데[]라는 의미로 관중평원(關中平原)이라고 한다관중평원은 관중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關中者 得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고경제의 중심지였다.

 

그렇기에 중국답사기가 서안함양공항아니 관중평원에서 시작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물론권두의 중국답사기를 시작하며에서 저자는 나의 중국 답사기 첫 번째 대상은 역대 왕조의 수도이다한 나라의 문화유산은 뭐니 뭐니 해도 옛 수도에 집중되어 있는 법이다따라서 나의 중국 답사기는 고도순례(古都巡禮)가 대종을 이루게 될 것” [p. 7] 이라고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는 하다구체적으로 중국 8대 고도[북경(北京), 서안(西安), 낙양(洛陽), 남경(南京), 개봉(開封), 안양(安陽), 항주(杭州), 정주(鄭州)]를 열거하며, “나의 중국 답사가 여기에 머물리 만무하다내 전공이 미술사인지라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있는 미술사적 명소를 즐겨 찾아 다녔지만 실제로 답사의 감동은 오히려 사상사문화사의 고향에서 받은 것이 더 크고 진했다” [p. 10]고 말했다하지만돈황(敦煌)으로 가는 답사여행의 출발지는 서안이 아니라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咸陽)이었으니까따라서 서안을 본격적인 답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기에 다소 아쉽지만단지 그뿐이다.

지난 2000, 2억 위안[ 340억원]을 투입해 영화 세트장 형태로 만화 같은 건물을 짓고 동상 조각을 배치” [p. 39]해서 아방궁 테마파크를 세웠다고 하는데나는 2001년 서안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진시황릉의 진시황 동상이 떠올랐다.

 

아방궁 테마파크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1>, p. 38

 

진시황릉 앞 진시황 동상



 

대륙을 연결하는 회랑처럼 길게 뻗어 있는 협곡이 마치 ‘달리는 회랑’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하서주랑(河西走廊)은 동쪽 오초령(烏?嶺)에서 시작해 서쪽 옥문관(玉門關)에 이르며남으로는 기련산(祁連山)과 아미금산(阿爾金山), 북으로는 마종산(?), 합려산(合黎山및 용수산(龍首山)) 사이 길이 약 900km의 서북-동남 방향으로 늘어선 좁고 긴 평지이다이곳은 한나라 무제가 흉노를 몰아내고 하서 사군[河西四郡무위(武威凉州), 장액(張掖甘州), 주천(酒泉肅州), 돈황(敦煌沙洲)]을 설치한 곳이다고구려의 유민인 고선지(高仙芝, ? ~ 756)가 정벌했던 서역(西域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맥적산(麥積山석굴 답사를 끝내고 왜 우리나라는 이런 석굴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문화란 그 나라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구현되는 법” [p. 136]이라고 대답한다그리고 어떤 형태의 유무에 우열을 두지 않고굴착이 용이한 사암(砂岩절벽이 많은 인도와 중국에는 석굴 사원이화강암(花崗岩)이 많은 한국에서는 마애불(磨崖佛)과 산사(山寺)일본의 독자적인 정원 예술이 반영된 사찰정원을 공평하게 감상할 것을 주문한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 가욕관(?)은 명()나라 초기에 몽골의 후예를 자처하는 티무르를 대비하기 위해 설치한 관문으로 명나라의 쇄국정책을 암시하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가욕관을 나와 고비 사막을 질러가면 드디어 돈황(敦煌)에 도착한다.

타임슬립이라는 작품의 형식과 실크로드라는 배경이 유사한 김혜린의 단편 만화 <로프누르잃어버린 호수>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저자가 소개한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1907~1991] <돈황>(1959)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진다.

 

하나 덧붙이자면,

처음 이 책을 구입했을 때명사산(鳴沙山명불허전(鳴不虛傳)’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놀랐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사자성어가 귀에 박혀 있어편집과정에서의 오류로 이름 명[]’이 아닌 울 명[]’이 들어간 줄 알았기 때문이다다행히 책을 펼쳐보니 월아천(月牙泉 3층 누각인 월천각(月泉閣)에 걸린 현판에 그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그리고 명사산의 명성이 헛되이 전하는 것이 아니다”[p. 332]가 아닌 명사산의 울림은 헛되이 울리는 것이 아니다” [p. 332]에서 오는 울림이 더 컸다고 하니 아마도 그런 이유로 소제목을 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 소위 실크로드 문명이 모래바람으로 순식간에 소멸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다이들은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세력과 한()으로 대표되는 정착세력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간신히 생존했다누란의 경우에도 국가가 소멸된 후 도시로서의 기능은 유지했으나 유목민들의 침탈 속에서 인구가 감소하여 소멸했다고 한다.


2) 누란(樓蘭혹은 크로라이나(Kroraina):  누란이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흉노의 묵돌선우[冒頓單于]가 전한(前漢)의 문제(文帝)에게 월지[月氏]에게 이겨 누란 등 26국을 평정했다는 선언이 담긴 편지[B.C. 176]에 의한다이후 누란은 생존을 위해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세력과 한()으로 대표되는 정착세력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했다그 과정에서 B.C. 77년 한나라가 보낸 사신에 의해 누란의 왕인 안귀(安歸)가 암살당하고 나라 이름이 선선(?)으로 개명당했다. 448년에 이르면 독립된 왕국으로서 누란 혹은 선선은 사라진다.


3) 월지(月氏): 타림 분지에서 동서 무역을 독점하던 고대 인도유럽어계 토하라인(Tocharians)의 일파로 추정된다기원전 2세기 흉노에게 멸망한 후 서쪽으로 가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있던 그리스계 박트리아를 정복한 세력을 대월지(大月氏)라 하고타림 분지에 남아 누란(樓蘭), 쿠차[龜玆國등의 도시국가를 이루고 살던 세력을 소월지(小月氏)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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