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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 반복되는 일상에 떠밀리다 마침내 새로운 세계에 닿다
오건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나를 위한 삶,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
요즘 같은 불경기에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무한경쟁 속에 부대끼다가 번아웃되거나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게 된다.
물론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말라며 일단 버텨보라고 말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라면 그렇게 버티며 1년, 2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회사에서 더 이상 쓸모 없다고 쫓아낼 때까지?
직장인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한번쯤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반복될 삶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회사를 떠나 새롭게 도전할 수 있다. 아니면,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가 부족해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저자의 경우에는 이 답을 구하러 얽매임 없이 자유를 맘껏 향유할 수 있는 예술가의 도시라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Porto)로의 여행을 결정했다.
사람들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 믿었던 안정된 직장 생활은 지난 10년 동안 그 어떤 무모함이나 용기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모터가 멈춰버린 배 위에서 그저 둥둥 떠다니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그러나 길바닥 한 곳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이 순간만큼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단단한 용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앞뒤를 따지지 않고 용기만으로 행동에 나서던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는 어떤 일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남들의 시선에 좋아 보이는 일보다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일,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길거리 전시에서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나는 가끔 동료에게 현재의 일이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지 묻는다. 대부분은 ‘그냥 하는 거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지나가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태어나 있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알아 가면서 온전한 나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pp. 38~39]
사실 우리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외치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해야만 하는 것으로 가득 찬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삶에서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인생의 목표라고도 할 수 있었던 취업이 내어준 것은 성취감도, 안도감도 아니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그것은 남들이 만든 환상을 여태 나의 꿈으로 착각하고 노력해왔다는 깨달음이었다.
~ 중략 ~
취업의 기쁨은 잠시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일이 쌓일수록 의욕보다 한숨만 늘어 갔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보람도, 이루고 싶은 꿈도 찾을 수 없다는 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p. 118]
저자도 10년간 버티다가 충동적으로 사직서를 던지는 대신 여행을 떠났다. 그 기록이 이 책, <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 유럽 여행을 간다고 하면,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혹은 체코나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르투갈 한 나라만 선택해서 떠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는 시중에서 포르투갈 여행기를 찾기 어려운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의 <페소아의 리스본(Lisbon: What the Tourist Should see)>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잘 그린 여행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 외에 포르투갈 여행기가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
때문에 이 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사진이 아닌 멋진 펜 드로잉이 곁들여 있으니…….
리스본의 첫 인상
출처: <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p. 17
포르투의 동 루이스 다리(Ponte D. Luis)
출처: <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pp. 114~115
여행의 이유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일상을 되돌아 보는, 일종의 힐링 시간이다. 저자도 포르투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풍경을 감상하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들을 풀어간다. 이 책에 실린, 글과 펜화로 옮겨진 그 순간 순간의 감정들을 읽다 보면, 그 문제들이 매듭을 칼로 자르듯이 단번에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감정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고민들의 흔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나는 수많은 프레임을 걸친 채 살아왔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 받아들였고, ‘누구만큼은’, ‘누구보다는’이란 생각으로 사회가 만든 프레임에 열심히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해왔다. 사람들의 삶은 각자의 속도와 방향이 있을 텐데, 나 자신의 것들을 외면했다.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자라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여행에서만큼은 온갖 관계와 프레임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로 지낼 수 있었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은 고민뿐만 아니라 무슨 고민을 했는지 기억조차 잊게 만들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직접적인 해결책을 찾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흔들리던 마음을 똑바로 서게 해주었다. 뿌옇고 희미하던 마음 상태가 선명하고 또렷해졌다.
여행은 관계의 거미줄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독립적인 자아로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여행은 본연의 자신을 경험하게 하고 자신의 본 모습을 더욱 알아가게 할 시간을 내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본질적인 면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믿어가는 과정을 통해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줄 무게를 키워 나가게 된다. 자신을 찾음으로써 자신다운 자신에 가까워지는 것,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다. [pp. 100~101]
여행을 일상에서의 탈출로만 여기는 글은 많다. 하지만 그런 글은 사이다처럼 순간적인 상쾌함만 가져다 준다. 그렇기에 아무 대책 없이 일상에서의 탈출만 권유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목마르다고 오염되었거나 독이 든 물을 마시는 일이고, 불이 났다고 무작정 창문으로 사람을 미는 일이다.
그래서 그러한 권유 없이 잔잔히 자신의 일상을, 고민을 잔잔하게 읊조리는 이 책이 좋았다. 저자의 생각이나 느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공감하며 지그시 미소 짓게 만드니까. 누군가에 공감한다면, 누군가를 공감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말없는 위로이고, 위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공감들 속에서 상처를 위안받고 삶을 버텨나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로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신이 가진 슬픔을 위로하려는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슬픈 소식을 듣고 있으면 내 안의 슬픔들이 늘 떠오르는데, 그런 슬픔들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로하려는 마음이 생기고는 했기 때문이다. 내가 위로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곳엔 언제나 상대방에게 투영된 나의 슬픔이 있었다. [p.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