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 돈황과 하서주랑 - 명사산 명불허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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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에 대한 로망

 

버려진 곳’ 혹은 돌아올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타를라마칸’ 사막하지만 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포함한 타림 분지에서는 한때 소위 실크로드 문명이 번성했었다하지만 실크로드 문명의 몰락과 이후 생겨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하나의 문명이 소멸되었다는 전설 1)은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여러 이야기꾼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불의 검등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혜린(1962~ )이 그녀의 단편 만화 로프누르잃어버린 호수’(1996)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누란(樓蘭)2)이 소멸되는 것처럼 묘사했던 것처럼.

 

한편, ‘’, “꽃을 위한 序詩’, ‘부다페스트에서의 少女의 죽음’ 등으로 유명한 김춘수(金春洙, 1922~2004)도 누란을 기리는 시를 남겼다.

 

누란(樓蘭)

 

                                   김춘수

 

과벽탄(戈壁灘).

고비는 오천리(五千里사방(四方)이 돌밭이다월씨(月氏)3)가 망()할 때,

바람 기둥이 어디선가 돌들을 하늘로 날렸다.

돌들은 천년(千年)만에 하늘에서 모래가 되어 내리더니산 하나를 만들고

백년(百年)에 한 번씩 그들의 울음을 울었다.

옥문(玉門)을 벗어나면서 멀리멀리 삼장법사(三藏法師현장(玄奬)도 들었으리

 

명사산(鳴沙山).


그 명사산(鳴沙山저쪽에는 십년(十年)에 한 번 비가 오고비가 오면 돌밭 여기저기 양파의 하얀 꽃이 핀다.

봄을 모르는 꽃삭운(朔雲백초련(白草連).

서기(西紀기원전(紀元前백이십년(百二十年). ()의 한 부족(部族)

그 곳에 호(천 오백 칠십(千五百七十), (만 사천백(萬四千百),

승병(勝兵이천 구백 이십갑(二千九百二十甲)의 작은 나라 하나를 세웠다.

언제 시들지도 모르는 양파의 하얀 꽃과 같은 나라 누란(樓蘭).

 

 

실크로드의 답사

 

실크로드의 시작은 섬서성(陝西省서안(西安)의 북서쪽 시가지 외곽에 있는()나라 때의 장안(長安)이다이곳을 포함해서 진령산맥(秦嶺山脈북쪽에 서쪽으로는 대산관(大散關), 동쪽으로는 함곡관(函谷關), 남쪽으로는 무관(武關), 북쪽으로는 소관(蕭關)으로 둘러싸인 들판이 있는데이를 4개의 관문[]의 가운데[]라는 의미로 관중평원(關中平原)이라고 한다관중평원은 관중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關中者 得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고경제의 중심지였다.

 

그렇기에 중국답사기가 서안함양공항아니 관중평원에서 시작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물론권두의 중국답사기를 시작하며에서 저자는 나의 중국 답사기 첫 번째 대상은 역대 왕조의 수도이다한 나라의 문화유산은 뭐니 뭐니 해도 옛 수도에 집중되어 있는 법이다따라서 나의 중국 답사기는 고도순례(古都巡禮)가 대종을 이루게 될 것” [p. 7] 이라고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는 하다구체적으로 중국 8대 고도[북경(北京), 서안(西安), 낙양(洛陽), 남경(南京), 개봉(開封), 안양(安陽), 항주(杭州), 정주(鄭州)]를 열거하며, “나의 중국 답사가 여기에 머물리 만무하다내 전공이 미술사인지라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있는 미술사적 명소를 즐겨 찾아 다녔지만 실제로 답사의 감동은 오히려 사상사문화사의 고향에서 받은 것이 더 크고 진했다” [p. 10]고 말했다하지만돈황(敦煌)으로 가는 답사여행의 출발지는 서안이 아니라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咸陽)이었으니까따라서 서안을 본격적인 답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기에 다소 아쉽지만단지 그뿐이다.

지난 2000, 2억 위안[ 340억원]을 투입해 영화 세트장 형태로 만화 같은 건물을 짓고 동상 조각을 배치” [p. 39]해서 아방궁 테마파크를 세웠다고 하는데나는 2001년 서안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진시황릉의 진시황 동상이 떠올랐다.

 

아방궁 테마파크


출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1>, p. 38

 

진시황릉 앞 진시황 동상



 

대륙을 연결하는 회랑처럼 길게 뻗어 있는 협곡이 마치 ‘달리는 회랑’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하서주랑(河西走廊)은 동쪽 오초령(烏?嶺)에서 시작해 서쪽 옥문관(玉門關)에 이르며남으로는 기련산(祁連山)과 아미금산(阿爾金山), 북으로는 마종산(?), 합려산(合黎山및 용수산(龍首山)) 사이 길이 약 900km의 서북-동남 방향으로 늘어선 좁고 긴 평지이다이곳은 한나라 무제가 흉노를 몰아내고 하서 사군[河西四郡무위(武威凉州), 장액(張掖甘州), 주천(酒泉肅州), 돈황(敦煌沙洲)]을 설치한 곳이다고구려의 유민인 고선지(高仙芝, ? ~ 756)가 정벌했던 서역(西域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맥적산(麥積山석굴 답사를 끝내고 왜 우리나라는 이런 석굴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문화란 그 나라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구현되는 법” [p. 136]이라고 대답한다그리고 어떤 형태의 유무에 우열을 두지 않고굴착이 용이한 사암(砂岩절벽이 많은 인도와 중국에는 석굴 사원이화강암(花崗岩)이 많은 한국에서는 마애불(磨崖佛)과 산사(山寺)일본의 독자적인 정원 예술이 반영된 사찰정원을 공평하게 감상할 것을 주문한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 가욕관(?)은 명()나라 초기에 몽골의 후예를 자처하는 티무르를 대비하기 위해 설치한 관문으로 명나라의 쇄국정책을 암시하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가욕관을 나와 고비 사막을 질러가면 드디어 돈황(敦煌)에 도착한다.

타임슬립이라는 작품의 형식과 실크로드라는 배경이 유사한 김혜린의 단편 만화 <로프누르잃어버린 호수>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저자가 소개한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1907~1991] <돈황>(1959)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진다.

 

하나 덧붙이자면,

처음 이 책을 구입했을 때명사산(鳴沙山명불허전(鳴不虛傳)’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놀랐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사자성어가 귀에 박혀 있어편집과정에서의 오류로 이름 명[]’이 아닌 울 명[]’이 들어간 줄 알았기 때문이다다행히 책을 펼쳐보니 월아천(月牙泉 3층 누각인 월천각(月泉閣)에 걸린 현판에 그렇게 적혀있었다고 한다그리고 명사산의 명성이 헛되이 전하는 것이 아니다”[p. 332]가 아닌 명사산의 울림은 헛되이 울리는 것이 아니다” [p. 332]에서 오는 울림이 더 컸다고 하니 아마도 그런 이유로 소제목을 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 소위 실크로드 문명이 모래바람으로 순식간에 소멸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다이들은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세력과 한()으로 대표되는 정착세력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간신히 생존했다누란의 경우에도 국가가 소멸된 후 도시로서의 기능은 유지했으나 유목민들의 침탈 속에서 인구가 감소하여 소멸했다고 한다.


2) 누란(樓蘭혹은 크로라이나(Kroraina):  누란이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흉노의 묵돌선우[冒頓單于]가 전한(前漢)의 문제(文帝)에게 월지[月氏]에게 이겨 누란 등 26국을 평정했다는 선언이 담긴 편지[B.C. 176]에 의한다이후 누란은 생존을 위해 흉노로 대표되는 유목세력과 한()으로 대표되는 정착세력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했다그 과정에서 B.C. 77년 한나라가 보낸 사신에 의해 누란의 왕인 안귀(安歸)가 암살당하고 나라 이름이 선선(?)으로 개명당했다. 448년에 이르면 독립된 왕국으로서 누란 혹은 선선은 사라진다.


3) 월지(月氏): 타림 분지에서 동서 무역을 독점하던 고대 인도유럽어계 토하라인(Tocharians)의 일파로 추정된다기원전 2세기 흉노에게 멸망한 후 서쪽으로 가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있던 그리스계 박트리아를 정복한 세력을 대월지(大月氏)라 하고타림 분지에 남아 누란(樓蘭), 쿠차[龜玆國등의 도시국가를 이루고 살던 세력을 소월지(小月氏)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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