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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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어려움

 

다른 언어로 쓰여진 글을 읽으려면 그 나라 언어를 할 줄 알면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언어가 존재하고 그 언어들을 한 개인이 다 익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 언어를 번역해주는 사람, 즉 번역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당 언어를 아는 것만으로 번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외국 문물을 ‘적절하게’ 옮기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번역을 아무리 잘한다 해도, 일한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원래의 의미는 어떻게든 손실될 수밖에 없다. 번역된 문장은 결국 번역가 자신이 쓴 문장이므로, 번역가 고유의 생각, 가치관, 판단, 개성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더 나아가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이라면 한국어라는 언어가 비롯된 한국적 토양, 사회, 문화, 사고방식이 담길 수밖에 없다.” [p. 7]

 

뿐만 아니다. 거의 잊혀진 단어나 기존에 없던 단어를 번역할 때에도 어떻게 번역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의 딸은 풀밭에서 린턴과 대화를 나누다 심심해지자 월귤(越橘)을 따 모아서 유모에게 나눠주면 손장난을 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신사 숙녀들은 말린 월귤에 사탕수수 엿물로 단맛을 낸 후식을 즐기고, <초원의 집>에서는 월귤로 파이를 굽거나 거위 구이에 발라 먹을 젤리를 만들고, (<호호 아줌마가 작아졌어요>에서) ‘호호 아줌마’는 남편이 팬케이크 발라 먹을 잼을 만들려고 숲에서 월귤을 따서 양동이에 담는다.” [pp. 252~253]

 

월귤(Lingonberry)



출처: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p. 250

 

여기서 월귤은 ‘링곤베리(lingonberry)’의 번역어지만, 거의 잊혀진 단어이기 때문에 저자처럼 “월귤이라는 이름에 ‘귤’이 들어가므로 귤과 비슷한 과일이라고 상상”[p. 253]하기 쉽다. 게다가 “블루베리 (blueberry)나 크랜베리(cranberry)같은 열매들은 아예 이렇다 할 번역어가 따로 없어서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 영한사전 편찬자들은 블루베리나 크랜베리의 한국어 뜻풀이를 ‘월귤의 일종’이라든지 ‘월귤의 사촌’이라고 기재하고, 그걸 본 번역가들이 책에다 블루베리나 크랜베리를 ‘월귤’이라고 뭉뚱그려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한국어 번역서에 월귤이 나오면 그게 원문에서 링곤베리인지, 블루베리인지, 크랜베리인지 알 수가 없다.” [p. 255]

 

하나 더 언급하자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같은 종류의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두 단어가 주는 어감 혹은 분위기는 서로 다른 음식인 것처럼 이질적이다. 그래서 저자도 “‘라즈베리 코디얼’을 마시는 소녀와 ‘산딸기 주스’를 마시는 소녀는 외모도, 성격도, 말투도 다를 것만 같다. 그러므로 진저브레드, 블루베리, 라즈베리 코디얼이 나오는 책을 읽은 독자의 경험과, 생강빵, 월귤, 산딸기 주스가 나오는 책을 읽은 독자의 경험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훌륭한 책은 번역판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이롭다는 말이 있다. 다양한 번역이 나올수록 그만큼 다양한 의미가 생겨나고,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 [p. 6]이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문학 작품 속 음식들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라는 소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온전히 번역에 대한 이야기 혹은 번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소설에 등장한 음식들에 대한 에세이에 가깝다. 이는 이 책이 전채(前菜, appetizer)에 해당하는 제1부 ‘빵과 수프’, 본 요리에 해당하는 제2부 ‘주요리’, 후식(後食), dessert)에 해당하는 제3부 ‘디저트와 그 밖의 음식들’로 구성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음식 이름을 제목으로 한 각 챕터는 해당 음식이 등장하는 소설의 한 장면과 해당 음식에 대한 아기자기한 삽화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햄과 그레이비(Ham with Gravy)’의 경우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멈의 커다랗고 검은 두 손에 들린 쟁반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 버터 바른 참마 두덩이, 수북이 쌓인 메밀 팬케이크 위로 뚝뚝 흘러내리는 시럽, 그레이비에 둥둥 떠 있는 커다란 햄 한 조각. 어멈이 가져온 무거운 음식상을 보자 스칼렛의 얼굴에 떠올랐던 가벼운 짜증은 고집스러운 독기로 바뀌었다.” [p. 104]

 

그리고 각 챕터 끝에는 최연호 파티시에의 감수를 받아 음식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정보를 덧붙였다.

 

꿀벌빵(Bienenstich)


출처: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pp. 296~297

 

덕분에 이 책은 분명히 번역가의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번역가의 삶 등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소설에 언급된 요리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일종의 ‘문학 작품 속 요리 사전’의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낯선 요리에 궁금증이 있는 이에게는 안성맞춤인 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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