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 - 고전 20권 쉽게 읽기
임수현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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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제대로 읽으려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고전을 아무리 읽어도 그 고전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떤 책을 읽었다는 만족감은 얻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시간 낭비, 돈 낭비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은 범위와 분량이 방대하고, 대부분 외국어로 되어있기에 번역의 문제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고전 읽기는 배 한 척을 타고 막연히 바다로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배가 제대로 항해를 하려면 나침반이나 지도와 같은 도구가 필요한 것처럼 고전 읽기도 그런 도구가 필요하다. 2005년 서울대에서는 ‘대학생을 위한 권장도서 100권’을 선정하고, 그 권장도서에 대한 해제집을 출간한 것도 그런 도구를 안겨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의 범위는 여전히 광범위해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아니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선뜻 손을 내밀기 어렵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새로운 사회현상을 이해하려면

 

그렇다면 왜 사회과학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들어가는 말’에서

 

정치, 경제, 문화, 법, 언론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제 우리 삶의 지평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분석하고 미래를 현실에 가깝게 예측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죠.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보해 가기에, 시대의 흐름이 추동하는 새로운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와 대응력을 갖추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pp. 19~20]

 

라고 얘기한다. 나아가 사회과학 계통의 고전을 읽는 포인트 세 가지도 언급한다.

첫째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나만의 관점과 법칙을 정립(定立)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규칙성과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 혼돈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만의 법칙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 고전의 저자들이 자신의 책에서 내세우는 주장의 타당성과 근거의 신뢰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적극적인 사례 분석과 가설 검증을 통하여 핵심 이슈에 대한 고유의 견해와 분석틀을 갖춰야 한다.

 

둘째, 이론을 뒷받침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면서 읽어야 한다.

특정한 사회과학 이론이 유일한 해답이나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과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사고하는 융합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 포인트의 부가 설명이라고 볼 수도 있는 얘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사회 현상은 다양한 원인 및 변수들의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의 방법론을 통해서만 사회현상을 분석하면 결국 문제의 일면만 편협하게 바라보게 된다.

 

 

서양 사회과학 고전 20선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한 사회과학의 고전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고전 사회학 3 대가(大家)의 저서다. 이 책이 선정한 20권의 목록에는 경제적 토대를 기반으로 사회변동과 자본주의의 태동을 설명하는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자본론>이 제외되어 있다 하지만, 부의 추구를 정당화하는 칼뱅주의가 자본주의의 태동과 발전을 이끌었다는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5)을 소개하면서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회학의 대가인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이 자살이 개인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자살론>(1897)도 소개되어 있다.

이들의 뒤를 있는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사회학자로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가 있다. 그의 <구별 짓기>(1979)는 취향이 사회적으로 훈련됨으로써 형성되는 정치적, 문화적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3대 사회학자로는 <제 3의 길>의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 ), <위험사회>(1986)의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 <액체 현대>의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가 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현대 사회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된 위험’을 체계적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기술문명이 발전할수록 그 위험의 수위가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의 한 갈래로 여겨지는 인류학 분야에서는 문명과 미개를 나누는 것이 서구인의 욕망에 기반한 허상이라고 주장하는 클로드 레비스토로스(Cladue Levi-Strauss, 1908~2009)의 <슬픈 열대>(1955)가 있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꿈에 과학적인 근거와 작동 원리가 내재해있다고 주장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꿈의 해석>, 군중의 심리와 무질서한 행동에 대해 분석한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 1841~1931)의 <군중심리>(1895)가 있다.

 

경제학 분야에서는 ‘건전한 이기심’ 혹은 ‘자기애’를 가진 개인이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한 결과 사회가 발전하고 국부(國富)도 증진된다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국부론(國富論)>(1776)이 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고전학파 경제학은 공급 중심이었기에 대공황이 닥치자 무력해졌다. 이때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수요 중심의 경제학을 내세운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1936)이다.

 

정치학 분야에서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이 <미국의 민주주의>(1835)를 통해 민주주의의 이점과 해악이 미국의 사회제도와 관습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폈다.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에드워드 헬릿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는 전간기(戰間期, 1919~1939)의 국제정세를 현실적으로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한 <20년의 위기>를 통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으로서 국제정치학이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고 한다.

 

언론 분야 혹은 커뮤니케이션학 분야는 통계학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미국의 실증적/계량적 연구와 철학적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유럽의 비판적/정성적 연구로 구분된다. 비판적 연구 분야에는 현대 대중문화를 비판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정치경제학적 접근을 주장한 허버트 쉴러(Herbert Schiller, 1919~2000), 미디어와 문화의 관계를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편향성>을 쓴 해롤드 이니스(Harold Innis, 1894~1952), 기술결정론적 접근을 주장하는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 등이 있다. 이 중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보다 그 미디어 자체의 특성이 사회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내용의 <미디어의 이해>(1964)를 내놓았다.

 

이처럼 저자는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의 고전들을 소개하고 있다.

 

 

 [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 활용법

 

<임수현의 친절한 사회과학>은 고전의 바다를 항해할 때 필요한 나침반 역할을 하는 책이다. 하지만, 사회과학 고전을 읽었다는 사실 자체만 만족하거나 책에 소개된 특정 이론에 매몰되어 버리면 도리어 시간낭비가 되고 만다.

 

따라서 앞에서 저자가 언급한 세 가지 포인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나만의 관점과 법칙을 정립(定立)해야 한다.

둘째, 이론을 뒷받침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책에 언급된 내용과 비교하면서 읽어야 한다.

셋째, 사회과학의 다양한 분과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사고하는 융합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여기에 소개된 책 가운데 하나라도 읽어보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이 떠먹여주는 것이 ‘내 것’으로 소화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나아가 시간과 여력이 된다면, 해당 고전의 완역본(完譯本)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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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타협 미식가 - 맛의 달인 로산진의 깐깐한 미식론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김유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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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기타오지 로산진?

 

<무타협 미식가>. 왠지 비타협 민족주의자처럼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가시밭길에 서슴없이 발을 들여놓을 사람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드는 제목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누구에 관한 책일까일본의 전설적인 미식가인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1883~1959, 이하 로산진’]에 관한 책이다.

기타오지 로산진’. 처음 듣는 이름이고잘 모르는 사람이지만인터넷을 찾아보니본명은 후사지로[房次郞]로 일본의 화가도예가서예가[書道家], 칠공예가[漆藝家], 요리사[料理家], 미식가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이라고 한다그러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 글을 남겼고, <무타협 미식가>는 그 중에서 음식과 요리미식 철학이 담긴 글을 취사 선택해 엮은 것이라고 한다어떻게 보면 옛 문인들의 글을 모아 문집(文集)을 펴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로산진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4개월 전에 자살하고어머니는 태어난 지 이레도 지나지 않은 로산진를 핫토리[服部순사의 소개로 알게 된 농부에게 양자(養子)로 보냈다이후 스무 살에 도교로 가기까지 여러 집을 떠돌며 살아야 했다. 1904년 스물한 살의 나이로 일본미술협회전에 <천자문(千字文)>을 써내 입상한 뒤 서예와 전각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40대에 이르기까지 궁핍하게 살아야 했다. 1921년 벤리도우[便利堂]의 나카무라 다케시로[中村 竹四이하 다케시로’]와 함께 회원제 식당 미식구락부(美食俱樂部)’를 열었고, 1925년에는 도쿄 중심부에 자신의 미식 철학을 집대성한 호시가오카 사료[星ケ岡茶寮]’를 만들었다이때가 미식가로서 전성기가 아니었을까하지만 1930년대에 조선을 사랑하는 민예운동가로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에게 독설을 퍼붓는 등 제멋대로 행동하고자금의 낭비도 있어서 호시가오카 사료의 사장 다케시로에게서 해고된다어떻게 보면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애플에서 축출당했던 것을 연상시키는데의외로 두 사람은 양자출신이라든지 외골수라든지 여러 면에서 닮았다.

 

 

미식(美食)이란 무엇인가?

 

로산진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요리의 근본이 식재료를 살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p. 50]고 했다. 또한, 맛있는 음식은 무엇보다 재료의 맛이다재료가 나쁘면 아무리 솜씨 좋은 요리사라도 어쩔 수 없다” [p. 59]고 해서 식재료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는 요리하는 사람이 식품 그 자체가 가진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요모조모 요리를 궁리하고요리법을 제대로 개발해 알맞게 요리한다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맛있는 음식은 영양 공급은 물론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고건강과 평안을 선사한다제대로 만든 요리는 그 자체로 예술이며 삶에 재미를 더한다.” [p. 46]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미료의 사용에 엄격해질 수 밖에그의 입장에서는 오늘날처럼 쓸데없이 설탕을 부어 재료의 본 맛을 잃게 만들고서는 조금도 돌이켜 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양식은 설탕 맛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면서 서양인이 하는 일이라면 무턱대고 받아들여 그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따라 하려는 풍습은 분별 있는 사람들을 빈축을 산다설탕은 식재료의 뒤떨어진 맛을 감출 때 쓰는 것으로설탕을 사용하는 일은 재료의 질이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다설탕과 화학조미료를 줏대 없이 사용하는 습관은 마땅히 삼가야 한다” [pp. 25~26]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

 

식재료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로산진은 요리에 맞는 식기의 필요성도 강조한다하지만 이 경우에는 당장 그런 도구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p. 24]는 변명이 튀어나온다이에 로산진은 “식기를 만드는 사람이 식()의 고상함과 속됨을 모르고요리하는 사람이 어떤 음식에 어떤 식기를 써야 하는지도 분별하지 못한다사람이 요리와 식기를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개나 고양이와 다름없지 않은가” [pp. 43]하고 말한다한 번뿐인 인생하루에 한끼라도 제대로 먹어야 하지 않을까?

 

요리(料理)는 헤아릴 ()’에 이치 ()’자를 쓴다그만큼 합리적이어야 한다어떠한 음식이든 도리에 맞지 않으면 안된다요리는 음식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다.

갓포(割烹),  조리는 자르거나 삶는 것만을 일컬을 뿐 음식의 이치를 헤아리는 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요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치를 헤아리는 일이므로 부자연스럽게 음식을 만들거나 무리하면 안된다” [p. 57]고 요리와 조리를 구분하는 로산진의 입장에서 미식(美食)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따라서 로산진이 말하는 미식가(美食家)도 단순히 음식 맛만 느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음식과 식기와의 조화손님과 주인의 대화가게 분위기 등 맛을 둘러싼 모든 풍경도 두루 살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식사의 효율성을 따지는 입장에서는 로산진의 말이 가진 자의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리를 단순한 기술로 보지 않고하나의 예술로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로산진은 단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아름답고건강하고자유롭게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삼시 세끼 식사를 하고맛있는 음식만 먹고좋아하는 음식만 먹어라시시한 식기로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의지를 품고 인생을 깊고 의미 있게 살아라 [p. 43]고 말한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다만 한끼라도 돼지처럼 주어진 것으로 때우는 데 급급하지 않고제대로 먹기 시작한다면 무엇인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로산진의 무타협 미식 철학은 단순히 음식 맛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아무 의미 없이 인생을 살아가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일지도 모른다우리 삶에서 가장 자주 하는 행위 가운데 하나인 식사조차도 적당히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뿜는 것이 아닐까그렇다면 이 책은 ‘1장 미식가의 길과 ‘2장 요리의 본질은 단순히 미식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일상에서 삶의 철학을 노래하는 책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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