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도시를 생각해 - 우리가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도시의 안녕을 고민하다
최성용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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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한 도시생활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것들

 

오늘날 ‘도시화’는 더 이상 피할 수 있는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 광복이 후 압축적인 도시화의 결과, 2021년 기준으로 인구의 91.8%가 도시에 살고 있다1)이처럼 도시화가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이라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한국의 도시화를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아파트’다. 1980년에는 전국 주택 중 아파트 비중이 7%(37만호)였는데, 30년 만인 2010년에 이르면 59%(819만호)로 급증2)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주택을 재산증식을 위해 사는(buying) 물건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한 몫 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주택난 해소라는 같은 목적으로 아파트를 짓기 시작한 파리와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파리는 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교외에 낮은 임대료를 내고 장시간 사용할 수 있는 장기 임대 아파트를, 서울은 시내 또는 시내에 가까운 곳에 매매가 가능한 분양 아파트를 건설했다. 그 결과

 

파리의 아파트는 위험지역이라는 인식과 함께 저소득층의 주거 공간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서울의 아파트는 선호하는 주거 형태가 되었고 중산층 이상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습니다. [p. 36]

 

이처럼 선의로 시작된 파리의 아파트 정책이 실패했지만, 서울의 아파트 정책도 완벽하게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 안과 밖의 구분과 갈등, 단지 내의 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의 구분과 갈등, 아파트를 구매할 능력이 없는 원주민이 쫓겨나는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등을 통해 아파트 단지를 ‘게토’로 만들어냈다.

 

출입을 막는 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더라도, 아파트 단지 하나가 만들어지면 주변 시가지에는 장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간이 생기는 것 같은 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중략 ~

아파트 단지 입주자들이 이용하는 내부 공간에는 근사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지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마을의 경관은 견고한 담장과 건물의 긴 외벽 탓에 삭막하고 단조롭습니다. 주변이 어떻게 되든 단지 안쪽의 전용 공간만 쾌적하면 그만인 것이지요. 이 아파트 담을 따라 걷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걷고 싶은가요? 상점이 있고, 사람들의 사회적 교류가 이뤄지던 거리는 아파트 단지의 등장과 함께 ‘통행로로서의 길’만 남게 됩니다. [pp. 47~48]

 

이처럼 ‘통행로로서의 길’은 도시생활의 편리성을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 가운데 하나다.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선택한 자동차 우선의 교통정책도 보행자 교통사고의 급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마치 산업혁명 시기에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처럼, 자동차가 사람을 잡아먹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 문제는 ‘보행권’으로 상징되는 노력에 의해 많이 완화되고 있다.

 

자동차 중심의 거리가 사람 중심의 거리로 바뀌는 일은 단순히 걷기 편한 길로 바뀌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걷고 싶은 거리가 많아지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로 인해 시민의 일상이 작은 부분에서부터 변화하거든요. 더 안전해지고, 우연한 만남이 늘어 이웃과 더욱 가까워지고, 동네 상점은 손님으로 북적이게 되고, 공동체 구석구석이 더 건강해지지요. [p. 26]

 

물론 저자가 바라는 것처럼 긍정적인 변화만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파리의 임대 아파트 건설처럼 선한 의도가 나쁜 결과를 빚어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단일 민족 국가라는 신화 속에서 살아왔다. 물론 옛 부여 지역에 정착한 속말 말갈(粟末 靺鞨)이나 백두산 근처에 정착한 백산 말갈(白山 靺鞨) 같은 말갈계 고구려인 혹은 발해인이 존재했고, 신라의 9서당 가운데 하나인 ‘흑금서당(黑衿誓幢)’에서 알 수 있듯이 말갈계 신라인도 존재했다. 하지만, ‘3D 업종’ 기피로 인한 외국인 노동자, 농촌의 노총각 문제로 인한 국제결혼 등으로 증가한 이주민과의 갈등, 최근 지하철 시위로 부각된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 등은 여전히 우리가 다른 존재와의 공존(共存)에 서툴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1996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촉진하는 시민의 모임에서 시작된 (사)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시민연대는 독특한 주장을 하고 있다.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도시를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장애물이 없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의 전환이 있었거든요. 국적, 나이, 장애, 성별 등에 따른 제약 없이,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함께할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편의 시설을 따로 설치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이렇게 보편성을 중심으로 도시를 만드는 기법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합니다. 장애나 장벽이 없는 환경을 만든다는 뜻에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즉 ‘무장애’라고도 하고요. [pp. 136~137]

 

좋은 얘기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도시에는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주장이다. 전쟁이나 재해로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거나 새로 도시를 만들 경우에나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지속 가능한 도시개발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3조에 의하면 ‘그린벨트’라 불리는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설정되었다. 하지만 신도시를 개발하는 등 조금만 토지가 필요하게 되면 대뜸 그린벨트 해제를 들먹인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그린벨트가 개발예정구역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닐까?

 

2019년, 대장들녘은 3기 신도시 예정지에 포함되면서 ‘대장지구’로 불리게 됐습니다.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정책적 필요 속에서, 넓게 펼쳐진 대장들녘이 개발의 적지로 꼽힌 것입니다. 대장들녘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잘 보존해야 할 개발제한구역’이 아니라 ‘언젠가는 개발해야 할 개발예정구역’에 그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보통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할 때는 이미 훼손이 많이 진행되어 보존 가치가 낮은 4, 5등급의 개발제한구역이 대상이 됩니다(개발제한구역은 1~5등급으로 나뉘는데, 1등급이 환경적 가치가 가장 높고 5등급이 가장 낮습니다). 대장지구는 면적의 99.9%가 개발제한구역이고, 그 중 84.5%가 2등급 이상의 보존 가치가 높은 땅입니다. 3등급까지 포함할 경우 그 수치는 92.2%로 올라갑니다. [pp. 263~264]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통한 양적인 도시 개발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시를 개발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The High Line)’으로 대표되는 도시재생이 있다. 이 방식은 버려진 도시 건축물에 숨을 불어넣어 과거와 미래를 조화시킨다. 그리고 ‘공생(共生)’을 전제로 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개발 방식이기도 하다.

 

낡은 공장은 일단 밀어 버려야 한다는 시선을 거두고 나니,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인천시 서구 가좌동에는 ‘코스모 40’이라는 복합 문화 공간이 있습니다. 카페, 공연장, 전시장이 어우러져 있는 이곳은 오래된 화학 공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독특한 이력을 자랑합니다. 건물이 위치한 곳에는 원래 코스모화학이라는 이산화티타늄 정제 공장이 있었습니다.

중략 ~

1968년부터 40여 년간 자리를 지켰던 공장은 울산으로 이주하면서 2016년을 끝으로 가동이 중단됩니다. 그리고 철거 절차에 들어갑니다. 오염 물질을 내뿜는 공장의 가동 중단과 철거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희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역의 한 회사가 이곳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해 공장의 한 동을 매입하면서 ‘코스모 40’이라는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게 됩니다. 전체 45개 동 가운데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고 남겨진 40번째 동이 리모델링 대상이었지요. 이곳의 이름이 코스모 40인 이유입니다. 기존의 오래된 공장 건물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필요한 시설은 새롭게 증축해 연결하니 멋진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pp. 290~292]

 

어떤 방법이든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1) 국토교통부/한국국토정보공사(LX), ‘도시계획현황’(e-나라지표).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200)

 

2) 국토연구원 자료. 최성용,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 (북트리거, 2021), 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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