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컴백홈

 

 

 

집에 돌아왔다. 제일먼저 경비실에 들러 택배 상자를 수거하고 어디 멀리 갔다 오느냐는 경비 아저씨의 질문에 날이 추웠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나 추웠다는 거 누가 좀 알아줄까 싶어서. 아저씨는 이제 날이 풀렸다고 봄만 오면 된다고 하신다. '제 말이요'. 목소리를 들으니 오늘이 아파트 재활용 수거 날인데 작업하시기가 한층 수월하신 듯 했다.

 

 

그런데 난방을 끄고 갔더니 집안이 온통 냉기였다. 짐을 풀고 있는데 서재 방에서 약간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다. 아뿔사. 의자에 전기 방석을 안 끄고 간 것이다. 다행히 의자가 타진 않았기에 큰 일은 없었지만 이래서 불이 나는 구나 싶었다. 분명 끄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이제 늙은 것이 틀림없다. 어떨땐 문을 잠그고 왔나 싶어 주차장에서 다시 올라간 적도 있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나.

 

 

그나저나 이번엔 완전한 로그아웃 상태를 유지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됬다. 컴퓨터도 안 켜고 메일확인이니 서재방문 같은 건 돌아와 하리라 마음 먹고 떠났는데 저녁에 딱히 할 일도 없고 혹시 해서 가져간 노트북의 용도는 역시 달리 용도가 없었다. 대단한 작업을 하러 간 것도 아니면서 일상과 여행을 분리하려는 태도 자체가 우스워지길래 그냥 보고 싶으면 보고 귀찮으면 잊기로 했다. 더 웃긴건 책도 안가져갔다고 생각했는데 노트북 가방에 떡하니 미리 넣어둔 책이 있더라. 이제 우리가 사는 현실 안에는 컴퓨터 바깥과 컴퓨터 안이라는 두 가지 세상이 거의 대등한 비율로 이중나선구조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어느 한쪽이 싫다고 나머지 한쪽만 볼 수도 없고 실상 그러기도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려는 작업도 찍어온 사진 몇 개와 다녀온 소회를 적어 올리려는 것이므로 결국 컴퓨터 밖에서 한 일을 컴퓨터 내부로 가져오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고선 나는 여행을 마무리 지을 것이므로 두 세상은 상호 인과관계를 형성하며 우리네 현실을 완성해주고 있다. 스마트 폰이 생기면서 이 현상은 더 강화되기만 한다. 이게 무슨 목숨 줄이나 되는 것 마냥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어디를 가서도 세상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로그 아웃을 하지 못한다. 나 여기 어디라고 트위터에 한줄 떠들었다가 지금 누구 들으라고 누구에게 내 행선지를 말하는 것인지 뻘쭘 해지는 것이었다. 습관이란 정말 시간이 갈수록 철학이상의 종교가 되는 습관이 있지 않은가.


 

 

 

#2. 묘지에서

 

 

정말로 추웠다. 오랜만에 손이 몹시도 시렵다는 느낌, 에베레스트에 등반하는 산악인들의 동상은 어떤 고통일까를 처음으로 떠올리며 추위를 실감했다. 그래서 (산소만)사진을 못 담았다. 사실 찍어도 나는 자꾸 예전 엄마 살아 계실때의 사진과 비교하게 되는 지라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가 더 맞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아버지와 같이 묻히고 난 다음부턴 묘지 사진을 안 찍고 있다. 그러곤 돌아와 이 사진을 본다. 저 끝에 뒷정리 중이신 엄마를 보면서 잘 다녀왔다고 보고를 한다. 내가 마련하지 않은 이상한 종류의 꽃이 꽂혀있었다. 나 몰래 누군가가 다녀간 게 분명하다. 엄마의 형제아니면 아버지의 형제들이겠지... 언제 왔을까. 최근일 거라는 예감이 드는 건 왜 일까...


 

 


< 영천 국립 호국원 - 6년 전 >

 

 

묘지는 벌판이기 때문에 무슨 사막이나 남극같은 기분이 든다. 이 추운 날 죽어 묻히는 사람과 홑저고리 상복하나만 입은 상주도 있는데 나는 장갑이 없어서 얼어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신기한건 돗자리 깔고 앉아 있다보면 내 머리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참 따스하다는 것. 콧물을 훌쩍이며 앉아 있는데 봄소풍 온 것같이 순간 그 공간만 따스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이 바로 시골의 추위인데 아무리 영하십도의 날씨지만 햇빛만 있으면 또 그 추위에 적응이 되면서 그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 나는 잠시나마 그곳은 어떠시냐 여쭈어보면서 나는 잘 있다고 대신 답을 한다.

 

 

 

#3. 경주에서

 

 

 

 

 

 

 

 

 

 

 

 

 

 

 

 

 

 

 

 

 

 


< 경주 호반 1교 >

 

강물이 얼어 있었다. 그 시선으로 보자면 산도 건물도 나무도 모두 얼어 있었다. 딱딱하고 건조해 보여 사진찍기도 재미가 없는 날씨다. 경주 보문호의 호반교라는 다리가 거울에 비친 것 마냥 수면에 대칭을 이루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날 얼음이 녹는 소리를 들었다. 얼음은 '스르르' 녹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얼음 밑에서 부터 심하게 싸움을 벌이는 듯 하나둘 부숴지고 빠개지고 으깨지고 때론 예리하게 돌아서면 둔탁하게 그야말로 요란을 떨면서 형태의 변형을 견뎌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어디서 공사를 하는 것인지 둘러 보던 중에 그 소리가 물 밑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얼음이 깨지는 곳에 퐁퐁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내친김에 돌을 던져 균열을 극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와 함께 여러번 돌을 던져 보았다. 나쁜 짓이었을까. 어떤 곳은 꿈쩍도 하지 않아 애꿎은 돌만 저 멀리 미끄러져 갔고 어떤 곳은 돌의 충격이 컸는지 물의 파장이 꽤 멀리 나아가는 듯 했다. 무엇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김훈 작가는 이런 걸 저절로 이루어지는 의식이라 하겠지...- 그들은 우리가 봄을 기다리는 사이 제 살을 깨뜨리며 자신을 녹이고 있었다. 그건, 모르긴 해도 우리처럼 전쟁같은 삶 아닐까.

 

 

그럴 것이다. 얼었던 마음이 녹는 것도 그와 비슷 할 것이다. 마음이 녹는 걸 기온이 올라가는 걸 풀린다고 하지 않는가. 단단한 덩어리가 녹아야 비로소 풀리는 것이다. 우리는 대단한 발견을 한 과학자나 되는 듯 한참을 다리위에서 얼음이 녹아 다시 물이 흐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아프더라도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 석굴암 가는 길 >

 

 

석굴암 가는 토함산 길엔 죄다 앙상한 나무들만 즐비했다. 분명 어렸을 적 가본 곳인데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불상도 그렇게 작았을리가 없는데 세월은 무슨 조화인지 모든 것이 축소된 크기로만 나를 맞이했다.

 

 

 

 

 

 

 

 

 

 

 

 

 

 

 

 

 

 

 

 

 

 

 

 

 

 

 

 

 

 

 


< 석굴암 계단 >                                                         < 불국사 대웅전 >

 

 

 

 

 

 

 

 

 

 

 

 

 

 

 

 

 

 

 

 

< 석굴암 입구에서 경주시를 내려다 본 전경 >

 

 

 

 

 

 

 

 

 

 

 

 

 

 

 

 

 

 

 

 

 < 속리산 휴게소 >

 

 

 

불국사를 고등학교때 가보고 처음 갔는데 그때 친구들과 사진찍었던 장소는 생생히 기억나서 참 반가웠다. 그런데 역시 규모가 어찌 그리 작을 수 있는지... 나는 생각만큼 그리 큰 사람이 되지도 못했는데 상대적으로 내가 보았던 그것들만 작게 느껴지다니. 작년에 경주에 갔을때 첨성대 역시 똑같은 느낌이었다.

 

 

신문에서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말로 되뇌이며 반복하는 사람은 실제로 뇌에서 행복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호르몬이 발견된다고 하는 기사를 읽었다. 때마침 찾아온 늦은 한파 덕에 사람 구경이 쉽지가 않았다. 한적한 여행을 하고 돌아와 이것이 행복인가를 생각한다. 이것은 행복일 것이다, 로 결정하기로 한다. 아니 이것은 행복이다. 늘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이 맘때 여행을 자주 갔던 것 같다. 돌아와 이제 봄만 기다리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봄에 뭐 특별히 좋은 소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꽃이 피길 기다렸던 것 같다.

 

 

날씨가 풀렸다는 소식에 씨익 웃었다. 일부러 나 추우라고 날씨가 심술을 부렸나 싶기도 하고 아직은 아니다 긴장감을 주려고 했나 싶기도 한데 여튼 겨울을 끝내고 돌아온 느낌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내 두 눈으로 얼음이 녹고 있는 걸 목격했기 때문에. 아픈 겨울은 반드시 떠나간다. 어쩌면 아프기 때문에 봄이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쇠같던 저 얼음을 녹이고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저들을 보면. 강물이 흘러가듯 봄이 오듯 다시 천천히 귀를 기울인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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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1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2-02-2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경주.. 좋은 도시죠. 사실 경주는 밤에 거닐면 더 멋진 도시기도 하지요. 문화재 전시지역의 소등시간쯤에 맞춰서 저런 곳에 가면 정말 색달라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옛날에 한 번 그런 경험을 했는데 잊을 수 없네요. 그러고보면 정말 수학여행의 도시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저에게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가? 라고 묻는다면 춘천을 택하겠지만ㅎ 경주를 택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한사람 2012-02-21 09:54   좋아요 0 | URL

ㅋㅋ 옛날에 그런 경험이라~
저는 밤에 같이 거닐 사람이 없어서요, 밤에는 못다닙니다.
운전도 야간엔 색맹환자나 다름 없어요, 하하

춘천은 대학생때 가본 후로
여행한다고 가본적은 없었어요.
경주는 영천호국원 갈 때마다 들르는데-영천에서 가까움-
순전 다시 운전하고 올라오기 싫어서 경주에서 하룻밤 자고 온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아예 묘지는 뒷전이고 경주에서 이틀밤 룰루랄라 하고 온답니다..

매번 느끼는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되있더라구요.

gimssim 2012-02-20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국원에 부모님 뵙고 가셨군요.
이맘 때가 석굴암 가는 길이 제일 고즈넉할 것 같아요.
춘삼월 호시절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걸음을 옮기게 되지요.
좋은 여행 되셨는지요?

한사람 2012-02-21 09:57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중전님의 사진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보문호수에서요,하하

석굴암 가는 길이 이상한 매력이 있더군요.
나무들이 듬성듬성해 아래로 절벽이 훤하고 아차
발을 잘못디디면 저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내려가는 길인데 도착해보면 올라와 있고..

미치도록 추울줄 알았는데 또 걷다보니 견딜만하고
심지어는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포근하기까지 하고, 히히

그동안 경주에 가면서 석굴암, 불국사를 안가다가
이번에 아이때문에 가보았는데 완전 좋았습니다!!!!

순오기 2012-02-21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겨울에 떠난 여행이라니, 부럽습니다!
경주는 중3때 수학여행 이후 못 갔으니 벌써 30년도 훌쩍 넘어 40년 가까이 되어가네요.ㅜㅜ
사진에 홀려서 석굴암 계단을 오르고 싶네요~ ^^

한사람 2012-02-21 10:04   좋아요 0 | URL

수학여행때 다녀간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는 어쩜 그리 크게 보였을까요.
불상은 아주 자그만하고
불국사에 왜 청운교 앞 단체사진 찍는데 있잖아요.
거긴 정말 동네 사찰같았어요 ㅠ
그 뒤로도 친구들과 엄청 걸었던 것 같은데 두어개 사당만 있고 끝...

규모면에선 실망이지만
그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심정을 몇개 느끼고 돌아왔어요.
석굴암 계단을 내려오는데 마음이 이상했어요.
뭔가 일이 잘 될 것 같고, 히히
희망 같은게 가슴에 담겨진 것 같고..

저는 이쯤 되면 날이 풀리겠지 싶어 예약한건데
한겨울 날씨라 떠나기전 두려웠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것도 운치있고 나름 매력이 있더라구요.
순오기님도 언제 한번 아이들 데리고 다녀오세요 !!!!
경주갔다 왔다고 자랑한 적은 없었는데
그냥 말로는 할수 없을 무언가가 전해져 왔습니다~

굿바이 2012-02-2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이 녹고 있었단 말이지요. 이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되기도 하는군요.
몇 해 전에 석굴암에 갔었는데 저도 그 계단이 참 작게 느껴졌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이 이곳을 지나갔기에 이렇게 닳았나 싶었어요.
여튼 잘 돌아오셨다니 제가 다 좋네요 :)

한사람 2012-02-21 13:45   좋아요 0 | URL

예, 얼음이 지금쯤 다 녹았을까..모르겠네요 !
그 얼음 녹는 소리가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마치 물속 깊은 곳의 그들만의 전쟁같았달까? 하하

잘 돌아왔구요.
날씨가 풀려서 좋아요.
언제그랬냐는 듯 벌써부터 봄옷 생각이 간절해요 ㅋㅋㅋ
(제가 다 좋다는 말씀이 ㅠㅠ 왜 이리 위로가 ...)

cyrus 2012-02-2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사진도 보기 좋았고요. 경주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여행 가셨을 때 날씨가 많이 춥던가요? ^^

한사람 2012-02-21 23:42   좋아요 0 | URL

많이 많이 추웠어요 ㅋㅋ

산소에서 가장 추웠구요.
돌아올땐 그래도 풀려서 나았지만
뭐 일도 다 보고 구경도 다 한 참이라 ㅠㅠㅠ

시루스님 하고 경주는 멀지 않군요^^
좋은 휴식이 될거예요~~~
(여친하고면 더 좋구요, 하하)

네오 2012-02-2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글씨가 왜이리 편해졌어요 ㅋㅋ 다 좋은데 사진밑에 <석굴암에 계단> 뭐 이런거 잘 정렬해서 올립시다 ㅋㅋ 삐딱하게 보이잖아요 ㅋㅋ

한사람 2012-02-23 16:26   좋아요 0 | URL

하하, 폰트를 크게 해봤어요.
시원하게~

그런데 <석굴암 계단>이 정렬이 안되었어요?
제 컴에선 멀쩡한데 ㅠㅠㅠㅠ
 

 

 

 

#1. 두꺼워진다는 것

 

 

 

 

   책을 읽고 나 이런 책 읽었다고 떠들기 시작한 것이 만으로 2년, 햇수로 3년 째 이다. 지난 2년은 사업 망하고 집에 꼭꼭 숨어들어 외부와 일체 연락을 단절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동안 거의 책하고 컴퓨터 화면만 보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떤 사람도 만나기 싫었다. 살면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보지 않았기에 사람에 대한 실망감은 더 뼈저리고 감당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완벽주의자였던 스스로가 인생의 크나큰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모양새가 그런대로 멀쩡했던 내 삶의 이력서에도 하나둘 빨간 줄이 쳐지기 시작했고 어디다 내놓기에 민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를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 전엔 책도 안 읽고 글도 쓰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 안 읽고 글 안 쓰는 사람은 대부분 나처럼 생각이 짧다고 여겼으니까)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사람은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았다. 아마 드러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 이년간 단지 책 읽고 글 쓴다는 이유로 같이 책 읽고 글 쓰는 사람들로부터 어이없는 일을 꽤 당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어졌고 잊어버리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알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생기는 덕에 분노보다는 측은지심이 더 많아졌다. 또 오해건 이해건 분명 내가 무언가를 쓰고 세상에 떠들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므로 -그리고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은 더 상상력이 풍부하므로-그냥 내가 감당했어야 할 일들 이었다는 생각이 많다. 내가 더 잘나서가 아니라 세월이 주는 선물이기도 하고 상처 받는 것도 경력이 되다보니 점점 능숙해지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사실 나이 들면 이 착각 때문에 자신이 어느덧 너그러워졌고 이해심이 많아졌고 유 해졌구나 오해를 하곤 한다. 그러다가 비슷한 상처를 받으면 여지없이 서운하고 똑같이 상처받는 자신을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른다. 한번 아팠던 곳이라고 다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분명 그 굳(어 버렸다고 생각하는)은 살의 더께위로 내가 본 다른 사람의 상처와 눈물도 얽혀 들어가는 듯하다. 상처는 맞는데 아프기도 한데 내가 아프면서 그래 너도 그랬구나를 체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화된 상처. 교류된 상처. 나도 아프지만 너 아픈 것도 알게 되는 것, 나아가 그 아픔의 정도까지 공감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대의 왼쪽 발뒤꿈치에 겨우내 붙어 있는 몇 조각 각질만도 못한 만큼이지만 그것도 여러 번 쌓이다 보니 암 것도 없었을 때와 차이는 나는 듯하다.

 

 

 

 

 

#2. 시리다는 것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 감독 알렉산더 페인 / 조지 클루니, 주디 그리어 출연

 

 

 

 

 

   마음이 잡히질 않아 영화를 봤다. 그런데 영화보고 나서 더 붕뜨고 말았다. 옆집 아저씨로 변한 조지 클루니는 늙어도 멋있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혼자서 두어 번 훌쩍거렸다. 승승장구에서 너는 왜 우냐고 하는 이수근에게 김병만은 ‘니 마음을 알겠어서...’라고 했는데 내 마음이 꼭 그랬다. 나는 남자도 아닌데 그 마음 알 것 같았다. 연기라는 게 원래 그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훌륭한 거 아닐까. 약간 배도 나오고 이태리 정장이 아닌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에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 진짜 볼품없이 뛰는 모습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사랑스러웠다. 이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그 속에서 밀도 높은 파문이 결국 일고 만다. 슬픔을 견디는 건 사실 그 다음날 아침 먹고 점심 먹고 또 저녁 먹고 잠들면서 이루어지는 일에 불과했다. 사람은 그러다가 어느날 죽는 것이다. 그 변함없는 사실이 좀 시리긴 하지만. 영화 리뷰는 내 이웃님 맥거핀님에게 부탁하고 나는 그냥 한마디만 하련다. 오는 27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탈 것 같은 예감이 심하게 든다. (골든글러브 타면 이어지는 아카데미도 같이 타던데, 하하 브래드 피트도 좋지만 조지 클루니가 타길 바라는 사심에서)

 

 

 

   이번 주에 온 책, 담 주에 오기로 한 책만 해도 배가 불러 터질 것 같다. (나도 이런 책 자랑을 하다니 참 대견하군 ㅋ) 내가 산 책도 있지만 요즘 갑자기 여기저기서 좋은 책이 생긴다. 책을 쌓아두는 것도 부질없는 욕심인데 생각 같아서는 2월 내로 다 읽고 리뷰도 다 써내고 싶으나 두어 권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자본주의 그 이후>는 가뿐히 500p, <종말론>은 450p,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도 공부하겠다고 산 책이라 만만치가 않다. 김태용의 소설집 <포주 이야기>는 소설이 독특한 듯해서 유하의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는 옛 정때문에...


 

 

 

 

 

 

 

 

 

 

 

  

 

 

 

 

 

 

 

 

 

 

 

 

 

 

 

 

 

 

 

 

 

 

 

 

 

   날이 영 풀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데 나는 내일 2박 3일 여행을 떠난다. 겨울은 늘 한두 번 씩 새로 오는 봄에게 자기 자리를 내주지 않고 심술을 부릴 때가 있다. 지금쯤이면 큰 추위는 물러가겠지 싶었는데 산소 앞에서 덜덜 떨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뼈가 시리다. 그러고 보니 산소갈 때 늘 몇 가지 제사음식을 준비하시던 엄니 생각이 절실하다. 몇 가지 물어 볼 것도 있고 보고 할 것도 있고 일 년 만에 얼굴을 내미는 딸자식이 그새 늙었다고 뭐라 하시지 않으실까... 오늘은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은 날이다. 고로 마음이 복잡한 날이다. 마음의 때를 박박 밀고 와야겠다. 부디 개운해야 할 텐데 돌아오면 이빠진 사람처럼 시큰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뭐 하나 대책이 없을 때 '대'하라고 있는 것이 '책'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생각난다. 책을 가져갈까 말까 실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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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2-02-1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책읽기에 의미부여를 너무 많이 하다보면.. 자만심도 생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도 주고 그러죠, 풋. 뭔가 더 끄적거리고 싶지만... 더할 말이 없네요.. 아마 추천을 누른 수많은 방문자들도 비슷한 생각에 댓글을 못남기고 떠난게 아닌가 싶네요. 어쨌든,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가 맘에 드네요. 저도 책을 몇 권 구입했는데 아직 한 권이 배송에 문제가 생겨서.. 안와서 기분이 좀 울적하네요.

한사람 2012-02-18 22: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제가 읽을땐 안그러면서 여기 페이퍼 쓸땐
꼭 책하고 글하고 맞춰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즐기곤 해요.
(이번엔 안그럴려고 쓴건데 그런 건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ㅠ)
저는 여기 경주에 오고 있는데 택배전화가 왔어요.
경비실에 맞겨 달라고 했는데 그걸 못 받고 온게 너무 아쉽더라구요.
추천이고 뭐고 이 글을 혹시 삭제할지도 모르니 나중에
가연님 덧글이 없어졌더라도 서운해 마세요~


stella.K 2012-02-1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읽다가 말아야지 하다가 다 읽어버렸습니다.
요즘엔 컴에서 글을 보는게 점점 쉽지 않아요.
그래서 10포인트로 키워서 글을 쓰고 있죠.

그분이 남자신가 봅니다.
저야 어떤 분인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약간 나쁜 남자꽈는 아닐까,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요?ㅋㅋㅋ
용서하시길.ㅠ

저 유하의 책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저는 하도 브래드 피트 얘기를 많이 들어서 이 사람이 탈 건가 싶기도 한데
남의 나라 이야기라 누가 타든 별로여요.

지금 여행중에 계시겠군요. 부럽습니다. 잘 다녀오시길.^^

한사람 2012-02-18 22:54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폰트가 작아서 저도 힘들어요 ㅋㅋ
딴에는 글이 길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너무 거대해 보이지 않으려고
타이트하게 편집하는 거거든요. 대신 단락은 많이 띄우고요.

제가 너무 제 상황에만 몰입하다 보니
또 실수를 한 것 같아요.
저만 좋다고 글을 쓰는게 아닌데..

유하의 책은 받아보고 약간 후회하고 있어요.
(영화 예매권 준다해서 혹해서 산 것도 있어요.)
늘 신간 마케팅에 걸리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늘 걸리는 신세죠 뭐 ㅎㅎ

오늘 산소에서 영하 십도에도 불구하고 한시간이나 앉아 있었어요.
눈물에 콧물에 지금 죽겠습니다 ㅠㅠㅠ

cyrus 2012-02-1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곤 해요. 동서문화사에서 나온건데 엄청 두꺼워요,
페이지만해도 1000페이지 넘는답니다. ^^;; 아마도 국내에 번역된 수상록 중에서 완역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고독의 위로>에서 작가들은 글을 쓰면서 고독을 위로했다던데 일리가 있는거 같아요.
내가 쓴 글이 자신이 생각했던 마음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마음 외부로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봐요. 혹시 한사람님도 마음이 뒤숭숭하더라도 글을 많이 쓰세요. 글 쓰기 싫으면
책 자랑을 하셔도 좋아요 ^^ 오늘도 날씨가 무척 춥네요. 오늘까지 반납해야 할 책 한 권 때문에
도서관에 나가봐야 해요. 나가기가 귀찮네요. 하필 반납해야 할 책이 <고독의 위로>네요 ^^;;

한사람 2012-02-18 22:57   좋아요 0 | URL

맞다..몽테뉴는 <수상록>을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이죠?
그걸 다 읽으셨단 말씀이죠?? ㅋㅋㅋ
오늘 여행오면서 책을 안가져왔어요.
컴퓨터도 여기도 잊어 버리자 했는데.. 여기와서 호텔방에서 결국 댓글을 남기는 군요, 하하

<고독의 위로>는 괜찮았나요?
그러고보니 시루스님과 가까이 있네요~
서울보다 안 추울줄 알았는데 모든 강이 얼었더라구요 ㅠ

2012-02-19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0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0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0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더러운 세상에 산다는 것

 

 

 

 

   요즘 들어 아이가 부쩍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제 초등 6학년이 되는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더럽다는 기준과 근거는 무엇일까. 아이는 무엇을 보았길래 툭하면 무슨 유행어처럼 말끝마다 같은 말을 내뱉는 걸까 싶어 하루는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이는 한숨을 쉬고선 이렇게 답했다.

 

 

   “빽이 없으면 내가 처한 상황이 불리해지는 거.”

 

 

   간결하고 단호했다. 그리고 빽이 없어서 어떤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건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아이는 ‘빽’이 흔히들 생각하는 부모님의 직업이나 재산, 아파트 평수 같은 것이 믹스된 배경이 아니라 한마디로 ‘일진’이라고 부연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반에서 일진과 연결고리가 없으면 소위말해서 찍히기가 쉽다는 뜻이었다. 날라리로 보이는 아이들은 반드시 중학교 일진을 빽으로 두고 반에서 짱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중학교 일진이 초등학교 후배를 선별해 기르면서 중간관리자를 만드는 형국이다. 초등학교 짱은 왕따나 찐따, 은따를 중학교 일진에 보고하고 중학교 일진은 타겟이 되는 아이들만 골라 (효율적으로)돈을 뜯거나 이유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초등 짱과 중학교 일진이 어떤 경로로 연결이 되는지는 아이들도 모른다고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아파트 단지를 사이에 두고 근처에 있으면 이 고리는 더욱 질기고 탄탄한 모양이다. 그래서 반에서 ‘빽’이 있는 친구들과 (싫어도)표면적으로 사이좋게 지내야 하며 혹시라도 그들에게 찍히면 학교생활이 곧 죽음이니 ‘더러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이번에 전교에서 가장 유명한 짱과 같은 반이 되었는데 다른 반에선 그 짱과 같은 반이라는 소식에 울었다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내가 직접 귀로 들으면서도 믿기가 어려웠고 부모된 입장에서도 딱히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전에 미용실에 갔는데 거기서도 아줌마들끼리 일진이 단골화제였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소식만 사실인 것이 아니고 학교폭력은 이제 너무나 일상적인 공통의 문제가 된 듯하다. 한 아이가 일진에 맞고 돌아왔는데 피해자 아버지가 유명한 교수였다고 한다. 교수 아버지는 학부모를 종용해 가해자 아이를 처단하자고 의견을 개진했고 다른 학부모들은 적극찬성을 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아이의 신상을 알고 있기에 앞으로 평생 앞길을 막겠다는 일종의 보복성 관리형의 처벌에 동의, 협조를 한 것이었다. 속된 말로 내 자식 때린 그 자식이 어디 사람구실하게 내버려 두나 보자, 하는 식이다. 그럴만한 사회적 지위와 인맥과 돈이 있기 때문에 앞에선 선처를 바라네 합의를 해주네 하면서 뒤에선 모든 연줄을 동원해 끝까지 밟아주겠다는 것이다.(일진도 무서웠지만 교수 아버지가 더 서늘했다)


 

 

   아이 말로는 사후 보복 때문에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쉽게 이르지도 못한다고 했다. 아무리 일진을 처벌하고 전학을 가게해도 우리가 아이 학교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세세한 부분에서 미묘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아이들 몫의 학교생활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빽이 있는 부모들도 피해자가 된 자기 아이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는 이유이다. 아이와 집중적으로 이야길 해보니까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최선이라는 결론이었다. 너무 잘난 척을 해도 안 되고 너무 침묵해도 안 되고 혼자 얌체 짓을 해도 안 되고 안 좋은 일 있다고 징징대도 안 되고 어떤 특정 과목을(특히 예체능) 너무 못해도 안 되고 너무 더러워도 안 되고 너무 뚱뚱하거나 못생겨도 안 된다. 한마디로 모든 것의 중간치인 평범한 아이가 되는 것이 찍히지 않는 비결인 것이다. 가슴 아픈 것은 혹시 학원을 안다니거나 학습지를 안 한다거나(전교 1등도 아니면서) 핸드폰이(혹은 MP3) 없다거나 집이 멀다거나(아파트 단지와)하는 사항도 찍힐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뿌리 깊은 획일성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다수의 입장에서 소수를 인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집단이기심이다. 더 많은 쪽이 강한 것이고 다르고 적은 쪽이 약한 것이다. 아이들이 못 참는 건 자신과 달라서 아예 1등을 하거나 재능이 뛰어나 가수나 특기생이면 모를까 자신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으면서 달라 보이는 그 모든 것인 듯하다. 따라갈 수 없는 차이만 할 수 없이 인정하고 제끼는 것.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일진이라는 상징은 학교폭력 조직을 의미하지만 그 이면엔 재수 없(어 보이)는 또래에 대한 응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재수 없어 보인다는 건 아주 많이 다르거나 우월한 것이 아니고 작고 사소한 차이에서 비롯된 불쾌감은 아닐까. 그 불쾌감은 혹시 살려면 같이 살고 죽을려면 다 같이 죽어야 한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같은)는 탈개인, 탈개성의 시대부터 이어져온 집단 트라우마의 잔재는 아닐까.

 

 

 

   아이들은 우리 때 보다 전반적으로 열등감, 패배감은 덜해졌지만 시기심은 많아졌다. 물질적으로 풍부해졌기 때문에 괜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시기심은 결국 그 부모들로부터 기인한다고 보기에 결국 아이들은 우리가 배우고 키워온 악의 습관들을 그대로 상속받아 시대적 환경과 함께 급진적으로 변형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제발 우리 아이들이 우리와는 다른 교육을 받고 우리와는 다른 깨끗한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랐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가치관을 몸과 마음에 그대로 새긴 채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더러운 세상이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씁쓸하고 속상한 날들이다.

 

 

 

#2. 깨끗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

 

 

 

   39.5㎢는 강남구의 면적이다. 우연인가. 이 책에서 만난 방주시의 면적은 꼭 39.5㎢이다. 그러니까 강남구만큼의 땅에 높이 1.2km 되는 뚜껑을 하나 덮어 서울특별시 중에서도 진짜 특별한 그들만의 도시를 만들었다면 그 도시이름은 ‘방주시’라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이 소설은 방주시에 탑승한 아이들과 방주시에서 하선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탑승과 하선이라 한 이유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탑승과 하선을 한 아이들이 같은 아이들이므로 방주시에 탑승했다가 추방된 아이들로 바꾸겠다. 이 소설이 꼭 강남구에 이사 갔다가 적응 못하고 다시 살던 변두리로 돌아온 어느 꿈많은 서민의 이야기로 읽히는 건 무슨 까닭일까.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뚜껑만 덮지 않았지 방주시라는 가상의 도시는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삼성 밑 지하 백 미터 위치쯤에 존재할 것 같은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어떠한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닥쳐도 안전하며 이상기후와 질병 바이러스에 노출이 안 되는 무균실 같은 이상향이 있다하면 그건 누가 왜 만들었는지 우리에게 보고하고 있다. 아니 차분히 따져묻고 있다.

 

 

 

    요즘 아이와 함께 동네를 나가면 하도 ‘엄마, 재 일진이야’하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기에 깨끗한 세상을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터였다. 마침 봄방학을 맞아 새학기를 앞두고 엄마들 몇 명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해 봐도 끝에 가선 서로 조심하자뿐인지라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 고민거리가 생기면 꼭 희한하게도 꼭 그와 연관된 책을 읽게 되는데 이 소설은 앞서 언급한 교수 아버지급 이상의 부모님들이 모여서 장기 프로젝트로 실현한 이상향의 시나리오 같았달까.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지름이 15㎡나 되는 운석이 떨어졌는데 그 자리에 넓이 39.5㎢, 높이 1.2㎞ 되는 '방주시'가 만들어졌단다. 모양새는 SF 영화에서 익숙한 공간으로 돔 형태의 초호화 도시인 이곳은 저 밑의 지상인과는 차원이 다른 양식 있고 세련된 부자들만의 세상이다. 주로 국회의원, 판검사, 변호사, 의사같은 상위레벨의 부모님의 자제들이 방주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서 방주시가 탄생했고 그곳엔 최상위층의 인간들만 살게 되었을까. 정부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난후 그 자리를 복원할 생각으로 소수정예의 공간으로 계획 개발해 버린 것이다. 영화 2012(2009)에서 보면 저명한 과학자들이 예언한 멸망의 2012년을 대비해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한 일들이 꼭 이 소설과 흡사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지진, 화산폭발, 해일 등의 각종 재해들이 발생하고 있을 때 G8 회원국은 ‘노아의 방주’같은 거대한 배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방주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어마어마한 금액(약 10억 유로, 1조 5천 억 원)을 낸 지구상의 몇 십 만 명에게만 해당된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돈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쓰나미에 실려 가거나 화산과 동반폭발하면 된다.

 

 

 

 

 

 

< 2012 / 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출연 - 존쿠삭, 아만다 피트, 2009 개봉>


 

 

   실제로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휴스턴에서는 허리케인을 막기 위해 도시전체를 돔시티로 계획한 적도 있다. 사실 도시를 덮고 보호하는 거대 인공 돔은 오랫동안 SF의 소재였으며 실현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대중적인 편의장치로 사용하는 네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같은 문명의 이기들도 불과 십 년 전에는 미래프로젝트였다. 도시계획은 막대한 예산과 시간, 기술이 걸리는 사안인데 문제는 샘플형의 이 도시에 과연 누가 혜택을 받을 것인가 인 것이다.

 

 

 

 

 

 

< 휴스턴 돔 프로젝트 'Eden' - 2009. 6. 디스커버리 채널>

 

 

 

   네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도 돈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듯이 미래도시도 혹시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계획이 되지는 않을까. 대학에도 정원이 있듯이 방주시에도 정원이 있다면 선택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경쟁을 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사람 솎아내기 과정에서 서바이벌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소수의 특권층도 학교는 다니고 병원도 가야 하고 식당도 가야하는데 혹시 방주시에는 그 특권층을 위한 봉사자들(이를테면 ‘도시의 시스템을 유지시켜줄 따까리’같은)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기후가 변동하고 질병이 창궐하고 물자가 부족한 비방주시민들은 과연 이 불평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말도 안되는 불평등을 타파하기 보다는 혹시 악착같이 방주시에 탑승하려 사력을 다하진 않을까. 내가 안 된다면 내 자식이라도 올려 보내고 싶지 않을까...

 

 

 

#3. 그것 만이 우리 세상

 

 

 

 

   이 소설은 비록 소재와 구성은 SF 영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갈등과 해결방식은 지금 우리 현실과 똑같다. 그래서 서사는 전혀 미래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시사문제로 읽힌다.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모두 지금 당면한 문제이다. 우리는 모두 불평등하고 불공정한지 알고 있지만 어떻게든 더 살기 좋은 공간을 원하고 더 수준 높은 학교를 원하고 질병과 재해 없이 오래 살길 원하고 더불어 내 주변 사람들도 같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방주시내의 방주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빌어 작금의 문제들을 인큐베이팅하는데 성공했다.

 

 

 

   방주고는 성경을 일독해야 하는 일종의 종교학교이면서 대기업 계열사 모 정보통신 회사의 회장이 이사장인 사립학교이다. 이사장의 손자가 학생회장이니 삼대 권력세습의 북한사회와 다를 것이 없다. 이 학교에서 선심 쓰듯 정원의 10%를 할당해 입학을 허용한 '지상의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마와 이루는 1%의 특권층 밑에서 잘 배운 인재들로 상징되는 하수대리인, 즉 그들만의 노예를 상징한다. 학생회장 나일락은 삼성가의 후계자쯤으로 보면 되겠다. 방주시에 불만을 가진 독서모임 프로네시스의 회장이면서 기숙사장 시온施昷은 가정형편은 형편없지만 성적은 최상위인 소위 노조위원장이나 운동권 학생회장쯤으로 보면 되겠다. 윤시온은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테러계획의 음모를 주도하고 실행하는 요원이며 학교방침을 거스르는 불가촉천민을 잡아내겠다는 일락은 권력자의 대리인으로 보인다. 아이들 이름이 마노와 루비를 비롯해 유시온, 나일락, 유다나, 남달리, 배두인, 노안지, 박하상인 것이 굉장히 종교스러우면서도 중성적이고 뜻깊어 보였다.

 

 

 

   이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하여 현실성을 확보한 인물은 주인공 마노이다. 마노는 ‘너무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중간인물’이었기에 눈에 띄지 않는 평범성을 주목받아 학생회 전용 프락치로 선택된다. 마노는 쌍둥이 누나 루비를 지키기 위해 프락치를 수락하지만 방주고에 다니는 광장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시온 조직의 계획을 막으려 한다. 가족의 안전 때문에 직업을 택하고 사랑 때문에 조직을 배반하는 전형적인 드라마 캐릭터이다. 모든 비극이 끝나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찾는 설정이다.(물론 그때 가족과 사랑 모두 살아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작가는 마노의 고민과 질문, 대답을 통해 마노의 선택에 동의하는지 반대하는지 의견을 여러 번 묻는다. ‘자기가 믿는 것,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마노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지 절간을 부수는 게 아니’라고 결론내릴 때 당신도 그렇지 않냐고 깊게 응시한다. 우리는 뿌리 깊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이 사회의 학벌체계와 교육시스템을 늘 비판하지만 노력해서 얻은 학벌을 자랑스러워하며 운 좋게 들어간 대기업에 만족해한다. 혹시 부모를 억세게 잘 만난 것은 물론이요 학벌도 좋고 연봉도 좋고 결혼까지 재력의 집안과 맺어져 강남의 어느 최첨단 아파트의 최상층에 살고 있다면 저 밑에 사는 인간들은 땅바닥인간이거나 쓰레기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선택받은 이들과 그들이 또다시 선택한 하위자들은 방주인지 바벨탑인지 모를 곳에서 신과 가까운 높이에 안도하며 살아갈 것이고, 지상에 남아 있는 자들은 개미지옥에 빠진 벌레들처럼 꼬물거리며 살아가리라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위에 있는 이들의 먹이나 거름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p110

 

 

 

   방주고의 선생들은 철저한 보신주의자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학생사이 갈등 같은 건 하등 자신의 업무와 상관이 없다. 학교에서 과학실험을 하고 난 폐기물들은 당연히 지상으로 배출되고 간혹 지상에 다녀온 친구가 있다면 그들이 혹시라도 전염병균을 묻혀 왔을까봐 깨끗이 소독이 된다. 학생들은 ‘미디어의 의무와 표현의 한계’같은 주제를 영어로 프리토킹하면서 수업을 받고 매끼 7성급 호텔 같은 식사를 하고 트레이닝 복도 프랑스 의상학과 출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는다. 그래서 지상에 가족을 두고 온 의식 있는 학생들은 내 가족이 기후나 돌연변이, 물자부족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상대적 불평등’ 때문에 살아갈 수 없는 것이구나를 실감한다. 그 중에 기특하게도 이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빨리 깨달은 시온은 이렇게 말한다.

 

 

 

못 따라 가는 거 맞지. 머리가 아니라 이, 마음이.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사람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도저히 접지 못하는 마음이.   -p158

 

 

 

   이것이 책 좀 읽고 글 좀 쓰고 연설 좀 하는 열일곱의 엘리트 학생의 입에서 아니 가슴에서 나온 말이다. 어른들처럼 자기가 구축한 세상에 이민족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권력과 돈을 이용해 치밀한 각본을 짜고 그 시나리오에 연루된 무고한 조연들이 시니컬하게 같은 친구에게 충고를 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너는 외려 다수의 하나가 되고 너한테 아무리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해도 그땐 당연히 소수를 배제했을지 모른다고. 그러니 여기 어렵게 다수가 된 우리들이 소수인 너희들을 봐주기는 힘들다고. 우리가 사는 깨끗한 세상엔 더러운 소수는 필요 없다고. 어쩌면 이리도 일진의 논리와 같은 것인가.

 

 

 

   소설은 대단한 흡입력을 가지고 끝까지 쉴 틈을 주지 않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리고 미래의 또 다른 반전을 암시하면서 막을 내린다. 장편이긴 하나 짧고 굵은 이야기로 느껴졌고 작가의 개성과 성찰이 잘 어우러졌다. 청소년용으로도 무리 없고 우리 같은 학부모 혹은 교사들에게도 적극 추천이다. 결론이 없기 때문에 토론용으로도 좋을 듯하다.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읽고 <아가미>나 <고의는 아니지만>이 궁금해졌다. (이 작품을 읽기전에는 구병모라는 작가가 남자인줄 알았다는 ㅠ)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도 쓰고 영화도 만들고 음악도 그림도 그리는 건 아닐까 싶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작품을 느끼다 보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기 때문에. 아이가 내뱉는 ‘더러운 세상’도 방주시라는 ‘깨끗한 세상’도 결국은 우리 사는 세상의 양면인 것이지 하나의 세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더럽기 때문에 깨끗한 세상을 원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더러워질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살아가는 동안 그 더러움과 깨끗함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지금 더럽다면 하루속히 깨끗해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조금 깨끗해졌다면 다시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 그 손을 놓지 않는 일. 그것만이 우리 같이 사는 세상이어야 할 것이다. 머리로 판단하고 결론짓는 것이 아니라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사람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도저히 접지 못하는 마음’ 하나로 연결되는 세상이어야 할 것이다. 그 마음만 있다면 방주 같은 배나 미래 잠수함, 돔시티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필요하더라도 모두를 위한 배요 강이요 하늘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같은 마음의 세상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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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1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아픕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하지만 빽이라는 것이 정말 있으니까 그것도 두려워요.
또 사소한 일로 따돌림을 당하고 친구들로 부터 경멸의 눈초리를 받는다는 것도 두렵습니다...
저는 체육을 무지하게, 엄청나게 못해요. 웬만한 여자들보다 최하위수준이건만 시골에서는 예체능을 못하는 걸로는 따돌림을 안합니다. (아, 저희학교만 그런가요) 남자들은 그림 엄청 못그리는게 당연하고 여자는 체육못하는게 당연하고. 하지만 시골아이들이라 그런지 심성들이 착하다보니 노는 아이들도 엄청 심한 한 사람빼고는 다 착해요.
아이고,

한사람 2012-02-17 11:05   좋아요 0 | URL

요즘은 왕따도 하위분류를 하더라구요. 급도 있구요..참..
예를들어 피구를 너무 못해서 자기네 반이 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든가
자기는 영어를 학원다녀서 날고 기는데 발음이 안좋다든가
(그렇더라도 절대 잘난척을 하면 안되고 ㅠ)
팀숙제를 하는데 기여도 없이 묻어가기만 한다든가..
참 여러가지로 아이들이 싫어하는 종류도 많아서, 들으면서도 갑갑하고 그래요.
학원스트레스가 심해서 그걸 학교에다 푸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왕따를 당하는 쪽은 아예 포기하고 더 심화되는 길을 선택하는 듯해요.
무엇보다 아이들 표정이 대체로 어둡다는 것이 가장 우울하고 그걸 보면서도
해결책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ㅠ
(소이진님은 좋은 학교 다닌거예요 ㅋ)

울보 2012-02-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3학년딸이 아빠 우리반에 일빵있다, 그게 무슨소리냐고 했더니 우리반 남자친구가 3학년 짱이라고 그말에 아빠가 체격이 좋아, 라고 물으니 아니 작아. 그런데 그에게 일짱이래, 그말에 아빠 그친구랑 친하니. 라고 묻더군요, 응 딸의 대답, 그래 그런 친구랑은 친하게 지내, 그렇다고 네가 그속에 들어가란말은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참,나부터도 이런말을 하니. 옆지기도 고등학교때 학교에 일진에게 한번도 괴롭힘을 안당햇데요, 왜 라고 물었더니 옆지기 말수도 없고 체격도 작고 , 돈도 빼긴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자기랑 친한 친구가 일진이었는데 이친구 나랑 친해 한마디에 아이들이 건들지를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소리를 듣는데 왜 마음이 아픈지, 내아이에게 뭐라 가르쳐야 할지 정말 모를때가 많아요, 그런 친구들이랑은 어울리지마, 라고 하지만 그래도 안어울리다가 또 아주 많은 고민을 하지만 답이 없더라구요, 그래도 아직 중학교 까지 연결되고 그런 일진의 무리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한것 같은데 ,그래서 노상 거리에서나 어디에서건 아이 친구들을 만나면 말걸고 놀이터에서도 몰려소 놀고 잇으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면 지적을 너무 많이 하는 엄마라 딸이 그러지 말라고 말리기는 ㅎ ㅏ지만, 그래도 내아이친구들이잖아요, 어른들이 겁난다고 무섭다고 내아이에게 보복이 두렵다고 모른척 한다면 안될것 같아요, 언제나 우리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닐까요,

한사람 2012-02-17 11:10   좋아요 0 | URL

울보님 말씀처럼 일짱과 친하게 지내야(친한 것으로 보여야) 별 탈없이 학교생활할수 있다는거 실감해요.
친구의 친구든, 친구의 언니든, 어떻게든 일짱과 연결고리가 있으면 안건드리는 것도
완전 어른들 학연, 지연, 인맥으로 연결된 서로봐주기 풍토 그대로구요.
중학교 일진들은 세명씩 몰려다니며
딱보기에도 약간 화장도 하고 옷차림도 어른 스럽고
표정도 무표정이거나 냉소적이고
그렇더군요. 학원다니느라 바쁜 아이들보다 현저하게 걸음도 느리구요, 하하

아침 신문에 보니 피해자와 가해자 아버지끼리 서로 고소공방전이 붙었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아이가 저학년일때는 남일이거니 했는데 고학년이 되니까
사춘기와 물려서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ㅠㅠㅠ

맥거핀 2012-02-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산인가 분당인가 어느 아파트에서 아파트 구역 전체에 일종의 스크린도어를 설치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요. 말 그대로 외부인들은 들어오지 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소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소설이 되는 세상인가 봅니다. 이글을 보니 앞으로가 더욱 우려가 되는군요. 이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한사람 2012-02-17 11:1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분당살때 무지개마을에서 죽전과 연결된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이 죽전에서 넘어오는 차량들이 주로 이용하다보니
아침마다 지체되는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은 말 못하겠어요 ㅠ
그뿐 아니라 분당수서간 고속화도로 끝무렵에 수지로 이어지는 토끼굴도 막았어요.
제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몇배되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었는데
아침마다 그쪽 경비아저씨와 우리쪽 경비아저씨끼리
서로 자기네 아파트 차가 먼저 큰길로 가도록 차량정리를 하셨죠..

저는 아이가 분당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학간 다음부터 여러 스트레스가 없어졌다고 들었어요.
(분당주민 분들에겐 모욕적이겠지만-뭐 저도 분당살았으니까 ㅠ-학교에서의 경쟁심이 너무 심해서 돈없고 빽없으면 못견딥니다)
이 모든게 학부모들의 뿌리깊은 이기심과 경쟁심, 시기심, 열등감의 잔재라고 봐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게 아니고
아이들이 보란듯이 잘살아서 결국 내 마음 만족하고자, 사는 사람들에 불과하니까요..

cyrus 2012-02-1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돔 사진 보니깐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이 생각났어요. 그 소설도 어떻게 보면 막장이라고 할 정도로
사리사욕에 눈이 멀거나 외부인과의 접촉을 거부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등장하거든요.
그것도 마음이 돔에 둘러싼 이후부터요. 그런 장소도 결국에는 더러운 세상이 되고 만거죠.

그런데 구병모라는 작가분이 남자가 아니였군요, 저도 그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이름이 남자 이름 같아서요 ^^;;


한사람 2012-02-17 11:24   좋아요 0 | URL

아..<언더 더 돔>이 돔에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군요.
돔이라는 게 안전 보호 장치이지만 결국은 아무리 원인이 합당해도 인공적인 것이니까
분명 물리적인 문제는 발생하게 되있을거예요.
이 소설은 그 돔안에 누가 들어가고, 누가 못들어가나를 따지면서
그렇다면 그 누구는 왜 다른 누구를 못들어오게 하나
말씀하신대로 외부인(이민족)을 거부하는 모습에 질문을 던집니다.

저같이 남자분이라 생각하는 분이 있네요, 하하
 

 

 

 

 

 

#1. 나의 오늘

 

 

 

   졸업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학년이 올라가는 것도 내 일은 아니다. 2월이 지난다고 해서 새 학기가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이별해야 할 것도 시작해야 할 것도 보완해야 할 것도, 내겐 없다. 처음으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는 무엇을 졸업해야 할까..., 하고 멘션을 올렸더니 어떤 분이 ‘겨울’이라고 답해주었다. 그 한 단어가 갑자기 눈물 나게 반가웠다. 삼재도 지난 지 오래고 삼년상도 지났고 지난 이년간 사업으로 진 빚도 대충 갚았다. 올해는 내게도 뭔가 터져주었음 좋겠다. 대박이나 뜻하지 않은 일회성의 행운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투자한 시간이 묵묵히 그러나 정직하게 운을 준비하는 과정이었기를 바란다. 이런 바람은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 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다를 것이 없었건만.(봉주 5회를 듣고 쬐금 불쾌했던 마음은 풀어졌지...사람 참, 하하) 신기하게도 내가 원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것과 똑같다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글을 쓰는 거요. 그러다가 나는 고독한 존재로 변했지요. 나한테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 7시예요. 침대에서 간밤에 썼던 것을 다시 읽거나, 머리가 맑고 개운한 상태에서 내 마음에 드는 소설을 생각해요. 마치 어린 애들처럼.

 

-p99, <16인의 반란자들>

 

 

   그나저나 이렇게 말한 작가는 누구일까요?

  (힌트 : 성은 오씨요, 한국의 음식이 두개나 들어간 이름 ㅋㅋ)

 

 

 

 

 

#2. 그들의 오늘

 

 

 

 

 

   이 책을 읽는 것은 어찌 보면 욕심이다. 만약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하면 그건 ‘읽고 싶다’가 아닌 ‘가지고 싶다’일지 모른다. 성격이야 어떻든 간에 일단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 비록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수상을 한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서로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잇 북, 워너비 아이템에 속한다. 이 책이 가지는 인터뷰 집으로서의 가치는 문학적 이라기보다는 여가적 이고 심층적 이라기보다는 다층적이다. 커피 한잔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 본 후 근사하게 거실 서가에 꽂아두면 금상첨화인 책이다. 폼도 나고 교양도 있어 보이고 어쩐지 나의 문학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주는 느낌이 든다. 덮고 나서 여운도 길어 묵직하고도 알싸한 무언가가 가슴에 남아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반나절이면 세계 일주에 나선 저자들의 기록을 충분하게 살펴볼 수 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만나본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한명도 없었다는 것인데 그들은 모두 2000년대 이후의 수상자였다. 존 맥스웰 쿠치(2003), 르 클레지오(2008), 헤르타 뮐러(2009), 마리오 바르가사 요사(2010)정도만 읽어본 나로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어떤 작가는 아예 이름도 성도 나라도 작품도 심지어는 성별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꼭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작품을 많이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문학적 소양이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딴에는 책 좀 읽고 글 좀 쓴다는 자의식으로 늘 괴로워하던 나였기에 그런 고민이 순간 터무니없이 우스워 졌다고 할까. 과학도 아니고 역사나 정치, 음악, 미술, 모든 내가 잘 모르는 분야가 아닌 문학인데... 문학상인데... 나는 내 무관심에 절로 발이 저렸다.

 

 

    더군다나 저자들이 만난 수상자들은 이제 모두 7,80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이다. 그들은 대부분 거짓말처럼 늙어버린 슬픔을 안고서 스스로 ‘사진을 찍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젊음을 모르고 그저 이 책속의 얼굴과 표정을 작가의 이름과 일치시키며 내가 아는 사람으로 영구 저장할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여기까지 힘들게 살아온 결과로서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나는 그들의 인생과 작품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공한 얼굴만 구경하게 된 것이다. 저자가 수상자들을 만나고 돌아와 책이 출간, 번역되는 세월동안 이미 운명을 달리한 작가들도 있다. 주제 사라마구와의 인터뷰는 그가 사망하기 불과 일이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나기브 마푸즈는 인터뷰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소개된 폴란드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는 바로 지난주에 타계했다. 기사를 찾다가 타계소식을 보고 소름이 끼치면서 목이 메이기도 했다.(그렇다면 만약 내가 이 책을 가을이나 내년쯤에 읽는다면... 그땐 또 누가...) 누가 봐도 시인이면서 “나는 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다고 말한 작가의 목소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가슴에 머리에 쿵쿵 울리는 느낌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대체 죽어서 어디로 간 것일까. 여기서 이렇게 오늘도 변함없이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해놓고선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혹시 자신의 부고를 알게 된 독자에겐 운 좋게도 독자가 가지고 있는 당신들의 작품 속으로 슬며시 박제되어 영원히 새겨진 것은 아닐까.

 

 

    먼저 이 책은 16명의 수상자들을 ‘반란’이라는 테마로 묶었다는 것이 조용한 반란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에 의하면 수상자들을 만나보니 하나같이 문학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회에 참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에 그들을 반란자라 부르고 싶었다 한다. 반란자들은 전쟁이나 독재에 항거하고 환경이나 생태계 보존을 주장하고 인종차별과 여성인권에 목소리를 드높인다. 문맹퇴치, 에이즈 퇴치에 앞장선다. 대부분 종교를 믿지 않으며 특정한 이즘을 갖고 있지 않다. 이외수 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기파이며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인간성이다. 파리로 망명한 중국의 가오싱 젠은 ‘어떤 이즘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라 말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스스로 어느 편에 서명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음모자나 중개자라 말했다. 혼혈이었던 데릭 월콧은 ‘문학에는 인종적인 순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V.S 네이폴은 자신은 종교인이 아니며 다만 ‘내 삶은 글을 쓸 뿐’ 쓰는 게 자신의 종교이며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종교’라 칭했다. 눈과 귀가 멀어 인터뷰가 어려웠던 나기브 마푸즈에겐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지인들과의 문학모임이야 말로 종교라 여겨졌다. 그들에겐 규칙적인 글쓰기가 일상이고 종교도 사랑도 우정도 행복도 정치도 모두 글쓰기에 귀속되는 사람들이었다. 특이했던 건 남자들은 대부분 아름답고 젊고 활기차고 지적인 아내를 두고 있었지만 여자들은 독신이었다는 것. 노벨상은 남자에겐 성공이겠지만 여자에겐 보상이었을까.

 

 

   그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거나 혹은 아주 나이가 들어서도 작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에 본 것은 대부분 전쟁과 상처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것을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각기 어느 나라 어디에서였는지가 달랐을 뿐 말하는 방법은 같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숨죽여 고통을 견디는 모습을 보고선 그 고통을 반영하기 위해 작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겐 장애인 아들이 있었고 세상과의 소통은 아들의 눈을 통해서였다. 그들은 상을 받고나서도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한다. 토니 모리슨은 노벨상이 아니라 다른 어떤 상도 자신을 좋은 작가 좋은 사람으로 바꾸지 못할 거라 했다. 이탈리아의 극작가 다리오 포는 자신에게 주어진 노벨상이 권력의 부당함을 풍자한 모든 광대들을 위한 보상이라 말했다. 키가 크고 미소가 큰 오르한 파묵은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는 식당에 가고 싶지 않고 사람들을 보는 것도 싫’다고 말하는 듯 했다. 도리스 레싱은 손님이 온다는 데 (아무리 작가라지만)어떻게 그렇게까지 집안이 지저분할 수 있는지 충격이었다. 나딘 고디머의 강단 있는 표정도 인상 깊었고 월레 소잉카의 백발과 흰수염은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나이지리아 민주주의 투쟁의 아이콘답게 크게 클로즈업 한 손가락엔 흡사 자신이 걸어온 길과도 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인터뷰엔 사진작가가 동반했기에 필히 그들의 시선과 표정이 담긴 프로필 사진과 배경사진이 담겨있다. 단정한 뒷모습도 좋았다. 나는 작가들의 사진을 보면서 자주 뭉클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바로 작가들의 손이다. 작가들의 손을 찍는 사진작가들이 많은 것인지 비슬라바 쉼보르스카는 손이 반년 전에 부러졌다면서 정말로 손 찍는 게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 손으로 그들은 무엇을 해왔는가. 지금의 손은 무엇을 말하는가. 글을 쓴다는 건 손을 쓴다는 것이다. 그가 손으로 한 것은 곧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의외였던 건 조정래 작가처럼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육필 원고를 고집할 줄 알았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놀라운 정보였다. 컴퓨터로 작업방식을 바꾸었더니 7년에 한권에서 3년에 한 권이 되었다고.

 

 

 

 

- Wislawa Szymborska (photo by Kim Manresa) -

 

쉼보르스카 의 두 손은 수분이 모두 제거된 어떤 생명체의 외피와 마주하는 것 같아 한참이나 시큰했다.
유리잔을 쥐고 있는 자태에서도 단호한 근육의 힘이 느껴질 정도로 이 사진은 뇌리에 남았다.
흑백사진임에도 그 와중에 손톱은 무미건조가 아닌 분명한 컬러와 빛이 살아 있지 않은가. 
그는 여성이었고 손이 예쁘게 나오길 바랐던 것이다.

 

 

첫째, 나는 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둘째, 나는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즉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셋째, 나는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면 우리 한테 남는게 뭐겠어요? 나는 당신들과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 조금은 얘기할 수 있어요.   - p284

 

 

     하지만 그녀는 시에 대해 자신에 대해 그리고 정치에 대해 결국 다 말하고 말았다.

 

 

 

 

 - Gabriel García Márquez (photo by  Kim Manresa) -

 

마르케스 의 손은 무엇보다 작으면서 바짝 깎은 손톱과 손등에 무성한 털이 인상적이었다.
남자의 손가락이라고 하기엔 다른 작가들 보다 훨씬 굵기가 작았다.
막일이나 바깥일을 전혀 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손이 젊고 건강한 편이었다.
저 아담하고 사실적인 손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이 그려진 것이다.

 

 

 

 

   가오싱 젠은 망명한 파리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귄터 그라스는 책을 하나 끝내면 그 손으로 조각을 했다. 자신처럼 작가이면서 미술가인 인물들의 작품을 전시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술이 세상을 구원하진 못해도 적어도 자기 자신은 구원할 수 있고 좋은 시가 삶의 고통을 제거해주지는 못하지만 공포를 아름다움으로 바꿀 수는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살아 남았기에 수치스러웠고 유대인이고 흑인이며 여성이며 혼혈이고 반정부주의자 였기에 박해 받았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유대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고 혼혈도 아니고 데모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러나.

 

 

 

 

#3. 나의 내일

 

 

 

 

 

 이것은 나의 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손에 대해 치명적인 콤플렉스가 있다. 다섯 번째 새끼손가락을 보시라. 나의 새끼 손가락은 남들보다 딱 반 마디가 짧다. 가운데 마디의 생장점이 돌연변이를 일으켰는지 그만 눌러 앉아 버렸다. 안 그래도 손가락이 짧은 편이라 거의 초등 1학년 아이 수준이다.(다행히 아이는 내 손가락보다 길다. 유전이 아니었다) 살면서 새끼 손가락을 사용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놈의 새끼 손가락만 보면 괜한 자격지심이 드는 것이다. 무언가 신체 일부분이 제대로 다 자라지 못하고 기가 꺾였다는 둥 이 손가락으로 약속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둥 내가 혹시 나중에 작가가 되어 저들처럼 사진기자가 내 손을 찍겠다고 하면 나는 보란 듯이 주먹을 쥐리라...등등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 한술 더 떠 무언가 일이 잘못 되었을 때 괜히 손가락이 짧아서 그랬다고 말도 안 되는 탓을 돌리곤 한다.

 

 

   작가들의 손을 보면서 반사적으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손을 겹쳐보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어른의 위대한 작품 같은 손이고 내 손은 아직 걸음마 아기 손이었다. 내 손은 아직 이렇다 할 삶의 무늬가 새겨지지 않았고 내가 걸어온 지도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깨끗해 되려 미안 할 지경이었다. 어이없게도 이 짧은 손가락이 갑자기 사랑스러워지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내일이 오지 않았다. 모든 걸 졸업하고 이제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많은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저들처럼 슬며시 깍지를 끼어본다. 아직은 부드러운 마디가 한참이나 멀었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았으니까. 이 손은 더 진하고 더 주름질 날이 한참이나 남았으니까.

 

 

 

 

 

 

 

 

 

 

 

덧붙임)

 

이 책에 나딘 고디머의 <내 인생, 단 하나 뿐인 이야기 / 2007>가 잠시 소개 되었다.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자선기금을 마련하고자 작가가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부탁해 엮은 소설집이다.
<16인의 반란자들> 중에서도 몇 명이 이야기를 제공했다.

(귄터 그라스, 오에 겐자부로, 주제 사라마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러니까 나딘 고디머 까지 다섯명이 일치한다.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이 읽어보려고 도서관에 찾아 보았더니 마침 대출중 ㅠ

생각보다 어렵다는 평이 많아 살까 말까 잠시 고민을 했다.

(누구 아시는 분 평가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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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2-10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소개한 서재 이웃분들 많이 있던데, 인터뷰집이면서도 작가들의 손을 찍은 사진들도 있군요.
실물을 가늠해보자면 책이 클거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언급한 소설집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소설집인데 인문학 책처럼 내용이 어렵지 않을거 같아요. 한사람님이라면 충분히 읽으실 수
있을거라고 봐요 ^^

그런데 님의 손이,,, 남자 손인줄 알았어요ㅎㅎㅎㅎㅎ 농담이에요 =3=3

한사람 2012-02-11 12:25   좋아요 0 | URL

예, 책이 일반 단행본보다는 조금 커요. 무겁기도 하구요.
종이질도 다르구요, 하하.
이런 기획을 했다는게 부럽고 작가들 좇아다니느라
고생한 경험도 부럽고 ㅋㅋ
글보다는 사진이 더 기억나요.

나딘 고디머의 책은 좀 지루할거 같은데
이 책에서 언급된 작가들이 나오니까 궁금해서리 ㅋ

제가 손이 좀 작아요. 손가락도 짧구요, 그런데 사진을 찍으니
더 퉁퉁하고 과장되보이네요 ㅠㅠㅠㅠ

stella.K 2012-02-1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게 한사람님 손이라굽쇼?
의외로 후덕하게 생긴 손인데요?ㅎㅎ
제 손은 길고도 굵은 편인데 그런 손이 또 게으르다더군요.
그래서 그런가 이렇게 꿈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요.ㅠ
마침 이 책이 송경동의 책과 함께 이번 평가단 책으로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아직 도착이 안 되고 있는데 발송을 했다니 곧 도착이 되겠죠.
이번 달 평가단 정말 끝장이었습니다. 책 선정은 최곤데 배송은 최악이라고나 할까요?ㅋ
저도, 두책이 도착되면 송경동 책부터 읽게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말씀하신대로 읽기 보단 가지고 싶다쪽?ㅋㅋ

맨 밑의 책 몇년 전에 샀는데 넘 재미없어서 친구 줘 버렸던 기억이 나요.
저는 좀 취향이 아니던데. 가지고 있었다면 한사람님 보내드렸을 거예요.
여러 사람이 쓴 단편 모음이라 괜찮을 법도 할 텐데 저는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
많이 나와선지 이상하게 질리더라구요.>.<;;

한사람 2012-02-11 12:32   좋아요 0 | URL

흑.. 실물로 보면 얇고 작아요 ㅠ
손재주 있다고 하는 손 ㅋ

공교롭게도 매번 에세이 평가단 책을 꼭 제가 먼저 읽게 되네요.
아무래도 담번 평가단때 그 쪽을 신청할까?? 봐요 ~~~ ㅋㅋ
에세이와 인문쪽이 겹치는 접점지대에 우리가 있군요 ㅋㅋㅋㅋ

그런데 지금이 몇일인데 아직 책이 안왔다니 음..
자꾸 일정이 밀리나보군요.
평가단이 얼리 어댑터의 성격도 있는 건데 출간된지 한달 지나서 읽고 글쓰면
좀 늦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나딘 고디머의 책은 어쩐지 스텔라님이 읽었을거 같더라구요.
전에 미셸 투르니에 단편 이야기 하셨잖아요.
그 소설이 이 책에 있는 거 같아서 ..
그런데 역시 재미없다고 하셔서 ㅋ 담 기회로 미룰까봐용(역시 책은 운명이야 ㅋ)


잘잘라 2012-02-1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쉼보르스카의 손 사진은 정말 뭉클하네요. 느낌은 완전 나무, 그것도 한오백년 살아온 고목같아요. 이 책, 처음엔 막 갖고싶었다가 시간 지나면서 시큰둥해졌더랬는데 님 페이퍼 읽고 다시 갖고 싶어졌어요. 결국 장바구니로..^^;; 참참참!『16인의 반란자들』리뷰대회 하던데요, 네24,에서요^^;;

한사람 2012-02-11 12: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여인의 손, 할머니의 손, 작가의 손 이전에 한오백년 살아온 고목!! 맞다, 그 말이 하고 싶었어요. 저도 처음에 혹해서 시큰둥 하다가 서점가서 들쳐보고 사진때문에 ㅋㅋ
안되겠다. 갖고 말아야겠다, 싶었어요.
많은 사진들 중에 좋은 것들만 책에 실었을 거잖아요.
그 나머지 안 뽑힌 사진들이 마구 궁금해요..

리뷰대회 소식은 저도 봤어요.
저는 요즘 리뷰대회가 재미없어 졌어요, 하하하
작정하고 각잡고 기획적인 구성해대는 것보다
그냥 이렇게 편하게 글쓰고 내 꼴린대로 떠드는게
좋아졌어요.
특히, 이미 사놓은 책도 대회한다고 하면 책이 별로로 보이고
소식을 들은 책은 안사고 싶어져요.(그래서 대회같은 거 일정전에 후다닥 써버리고 싶어요 ㅋㅋㅋ)

또 무엇보다 수상의 의미가 글쓰기의 발전과 비례하지 않는 것 같아
많이 회의적이 되었어요~

히히, 그래도 가끔은 적립금등의 유혹과 책선물에 혹할 때가 있긴해요.
근데 이 책은 그냥 잡문수준으로 마쳐야 할듯 ㅠ

메리포핀스님, 오랜만에 반가워요!

가연 2012-02-1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뜸했습니다ㅎㅎ 글 내용보다는 한사람님의 손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사실 저는 엄밀히 말하면 손금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풋.

한사람 2012-02-13 10:46   좋아요 0 | URL

손금볼 줄 알아요??
음 ~ 이건 제 생각인데
손금도 성장(?)하는 것 같더라구요.
손금대로 살아가는게 아니라 살아가는대로 손금이 만들어 지더군요 ㅋㅋ

바쁘신 듯한데,
사람은 바빠야 해요, 하하

보물선 2012-02-1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아봤던 너의 손이구나! 바로!

한사람 2012-02-15 10:38   좋아요 0 | URL

그 손이야 !!! 내 손 작고 아담했지?? ㅋㅋ
 

 

 

#1. 영원을 구경하다

 

 

 

   슬슬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드디어 아이와 엄마간의 희비가 교차하는 시점이다. 이번 방학은 지난 겨울 보다 덜 추워 한층 더 나들이 계획이 많았을 듯 하다. (돈도 더 들었을 것이다 ㅠ) 보통 설 연휴가 봄방학시즌인데 이번엔 1월달 이어서 그런지 설 지나고 나니 벌써 개학준비로 마음이 바빠졌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느끼는 것인데 웬만한 전시는 거의 초등학교 저학년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는 체험이니 과학관이니 하는 관람을 유치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특히 방학용 특별 전시로 이름 지어진 각종 전시체험 행사는 사람만 많고 수준은 형편없어 돈만 아까운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나름 주제를 세워 국립과천 과학관에서 하는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전(展)'과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스키타이 황금문명전’을 보고 왔다. 날은 추웠지만 사람들은 여전했다.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정리를 하려는데 눈이 오고 있었다.

 

 

 

 

 

- < 신비오 파라오 투탕가멘 전 >, 국립 과천 과학관 (2012. 1.31)

 

 

 

   투탕카멘전에 전시된 유물은 대부분 대영박물관이나 이집트 박물관의 유물들을 복제한 모형들이다. 영국이나 이집트까지 가기는 어려우므로 대여했다고 치고(?) 구경하면 된다.  9시30분부터 입장하기 때문에 일찍 가는 것이 좋다. 한 겨울이지만 유치원생부터 어르신들까지 관광버스 대절팀이 많아 보였고 사람이 많아도 무덤에 관한 전시라 그런 것인지 여느 전시장보다 시끄럽진 않았다. (그래도 최근에 본 전시 중에서 볼꺼리는 많았다)

 

   나는 거기서 단체로 관람 오신 할아버지들을 볼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 방문하신 듯했고 무슨 여행상품의 한 코스처럼 그렇게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아이가 커 사람이 많아도 잃어버릴 걱정을 안 하게 되었고 머리가 커 내가 좋다고 이거 봐라 하며 손을 이끌지 않아도 되었다. 각자 자유롭게 관람을 하던 중 나는 단체 관람객 중 할아버지 한 분이 어느 패널 앞에서 꼼짝을 않고 서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한 쪽 벽면에 일렬로 전시된 액자는 장례절차에 관한 시리즈 벽화 그림이었는데 할아버지는 열 몇 개 그림 중 거의 마지막 단계인 지옥부분에서 그림을 응시하고 계셨다. 관람을 너머 사색이었고 명상이었다. 미이라의 부검과정이나 복원 모습 등에만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진 벽면의 전시물이었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알 수도 없는 혹시 이해한다고 하여도 다른 중요전시물들에 비해 존재감이 없어 보인 그림들이었다. 뭐랄까, 할아버지는 마치 바짝 다가온 자신의 죽음을 미리 시뮬레이션 해보는 시간을 가지신 듯했다. 그림과 할아버지 사이 분명 무언가 지나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지나온 생을 돌이켜보신 것일까 앞으로의 생을 상상해 보신 것일까.


 

 

 

 

- <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 예술의 전당 (2012. 1.27)

 

 

 

   스키타이 황금문명전은 지난 주말에 다녀왔는데 이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유물들은 모두 우크라이나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중인 것들로 이번엔 한국투어로 기획된 전시였다. 세계 최초의 유목민족의 유물이라는 점에서 또 세계 5대 문명의 예술성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면 되겠다. 귀금속 같은 경우는 민속 공예품으로 팔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디자인이 정교해 놀랍기도 하였다. 전시 동선 상에 신라 금관이 전시되어 있는데 스키타이의 황금숭배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에 등장하는 그리핀의 형상도 확인할 수 있다.

 

 

 

 

 

-  < 놀이의 순간 >, 예술의 전당 (2012. 1.27)

 

 

 

   한가람 미술관 1층에서 놀이의 순간이라는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지하주차장과 연결된 홀에 미리보기 같은 무료전시를 하고 있는데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명화전시와 착시를 이용한 감상이 주 포인트이다. 그외 아트센터 곳곳에서 전시를 하고 있는데 어른까지 끼어들어 보고 오기가 참, 그랬다. 요즘 전시회 성인 관람료는 만 이천원이다. 입장료와 주차비에(각종 공공장소 주차비가 4천원이더군... 언제 오른 것이냐...) 점심에 간식거리 톨비, 혹은 주유비까지 합치면 역시 가장 싼 건 영화야,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뮤지엄샵에서 명화 다이어리 하나 사주고 돌아오는 길. 문화 혹은 예술적 심성은 철저히 돈으로 길러진다는 생각을 했다. 돈이 많으면 더 많이 예술을 생각할 기회에 노출된다.

 

 

 

#2. 영원을 견디다


 

 

   집에 돌아와 나는 이 책을 덮었다. 역사도 좋고 예술도 좋지만, 무언가 허전함을 채울 길은 이 방법 밖에 없었기로... 이 불후의 명작을 지금에서야 읽었노라 말하는 것이 새삼 창피하다. 어떤 유명한 명작은 그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익숙하고 선명해 거의 읽었다고 믿게 되는 책들이 있다. <노인과 바다>는 내가 헤밍웨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읽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작품 중 하나였다.

 

   처음 몇 페이지는 같이 온 영문판과 대조해 보다가 얼마 안 되는 뒷장이 궁금해 그냥 달렸다. 마치 내가 망망대해에 청승맞게 떠있는 배에 홀로 앉아 노를 젓는 심정이었다. 역시 허전함은 허전함으로 막아야 한다. 노인은 최선을 다한 오늘 밤 사자 꿈을 꿀 것이고 허전한 나는 노인의 꿈을 꾸게 될까... 그렇다면 혹시 이렇게 말해주시진 않을까.

 

 

그러고 나서 돌아가 꿋꿋하게 도전하며 너답게 살아. 사람이든 새든 물고기든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p57

 

  

 

    그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놈에게 보여주고 말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노인의 모든 것이 인간이 할 수 없고 아무도 그를 견뎌낼 수 없는 순간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노인처럼 되고 싶었다. 얄밉게도 나는 노인처럼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나는 비겁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살면서 <노인과 바다>를 읽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아직 노인은 아닐지 모른다. 어부 같은 일과는 상관없을지 모른다. 아마 전혀 낚시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른 생각 없이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죽어라 생각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누군가를 간절히 이기고 싶은 사람인지 모른다. 혹 누구도 경쟁자가 없다하면 그토록 지겨운 자신을 넘어야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아니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처럼 막막한 무엇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일지 모른다. 그 사람은 자신의 뜨거운 심장과 지나온 시간과 흘려온 눈물을 믿었지만 더 이상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지만 그 다를 것 없는 오늘이 지나고 나면 어딘가에서 커다란 행운을 만날 것이라 믿었는지 모른다.

 

   아마 그 사람은 많은 도전을 했을 것이고 그만큼에 비례하는 실패를 했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속절없이 나이만 들었을지 모른다. 한 시절 젊음과 건강을 믿고 그것이 영원하리라 의심치 않았는지 모른다. 가끔 그 사람에게 찾아온 행운은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의 노력 때문이라 여겼는지 모른다. 자신의 재능은 비교적 세상에 써 먹을 만한 것이며 누군가는 꼭 그 재능을 알아 봐주리라 믿었는지 모른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아무도 이기지 못하고 무엇도 잡지 못한 오늘을 견디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노인과 대치하며 꿋꿋하게 바다를 나아갔던 그 물고기가 보고 싶었다. 물고기는 고통스러웠을지언정 외롭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처럼 울고 있을지 모를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나처럼 똑같은 사투에 놓여있을 그가,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놈이 선택한 것은 그 어떤 덫과 함정과 속임수도 미치지 못하는 먼 바다의 깜깜하고 깊은 물속에 머무르자는 것이었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은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그놈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말이야. 이제 우린 서로 연결된 거야. 어제 정오부터, 게다가 우린 아무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p 52


 

    노인은 자신이 죽여야 할 상대도 형제라 여겼다. 다만 서로 목숨을 건 채로 같은 고통을 견디고 있기 때문에 배에 묶여 '둘이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은 어부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죽인 것이지 결코 물고기로 다른 이득을 보자고 죽인 것이 아니라 말했다. 외려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도 '녀석을 사랑했고' 그리고 '죽은 뒤에도 사랑했'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 나의 적이 되어 목숨을 건 그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 줄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적의 손에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경쟁은 내 전부를 걸 수 있는 일생 일대 최고의 사건이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노인도 보고 싶었다. 그가 살아온 바다가 그리웠다.


 

    오늘 내가 본 그림속의 사람은 영생을 꿈꾸기도 하고 초원을 누비기도 했다. 책에서의 사람은 바다에서 삶을 관조하기도 했다. 모두다 영원을 믿는 듯 했다. 정말 사람인 나는 이제 돌아와 내 한 몸 누울 수 있는 침대를 찾고 싶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지만 나인 사람은 얼마나 많이 지고 얼마나 많이 실패를 하였던가. 나아닌 그들 모두는 역사도 예술도 문학도 불멸이라는 희망을 꺼트리지 않은 채 아름답게 버티고 있는 존재들만 같다. 그 아름다움이 나에겐 왜 이렇게 서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하지만 오늘은 울어도 아픈 날은 아닐 듯 하다. 영원하다는 건, 아니 영원을 바란다는 건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이기에 그 거짓말이 차라리 차갑게 나를 위로한다. 돌이켜 보면 아무도 나를 패배하게 한 것은 없었다. 그저... 여기까지 이렇게 살아 왔고 살아 가고 있을 뿐이다. 사는 건 이기고 지고와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우지. 다만 더 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 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 p33

 

   운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내일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운이 왔을때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어제하던 걸 멈추진 않아야 겠다. 누가 알아? 내일이라도 운이 트일지, 하하. 매일매일 새로운 날인걸. 당신도 나도 그건 똑같은 일인걸...

 

 

 

 

 

 

 

덧붙임)

 

한달에 열개의 포스트가 넘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폭풍독서를 한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 갈증이 분명하다.

 

참, 투탕카멘전은 PDF 파일로(약 40M) 괜찮은 학습자료가 있는데

초등용으로 좋을 듯하다.

(혼자 갖고 있기 아까워 댓글 주시면 메일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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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 2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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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1 0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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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1 1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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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2 1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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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2-0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33쪽의 문장이 유난히 새로워요. 분명 읽은 책인데 낯설고 새롭고.
정말 운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저 살아야하니까 사는 날들도 이제는 받아들인만 한 것 같아요. 애써 포유류의 숙명 따위를 언급하지 않고 말이죠.

한사람 2012-02-02 10:22   좋아요 0 | URL

예, 저는 유난히도 그 문장이 읽는 동안에도 계속 남더라구요.
노인이 계속해서 누구와 대화하듯이 바다에서 독백을 하잖아요.
흠칫흠칫 나한테 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구요.
나중에 읽어도 또 색다른 느낌일것 같아요.
그래서 '불후의 명작'인가봅니다^^

아이리시스 2012-02-01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이건 뭡니까! 이 대영박물관 같은 분위기는..( '')
그러고보니까 한사람님도 그렇게 쓰셨군요..(제대로 안 읽고 댓글 단다ㅜㅜ)

좋겠어요, 서울사람들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부산에서 뭘 해도 잘 안갑니다ㅋㅋㅋ)

한사람 2012-02-02 10:25   좋아요 0 | URL

한때는 의무적으로 다녔는데..
지금은 거의 아이숙제때문에 다닙니다.
좋아하는 전시는 성곡이나 가나아트에서 하는데
너무 멀어서... 괜히 혼자 청승 떨기 싫어서 안가게 되네요, 하하

그대신 부산은 언제든 휭하니 바다로 나갈수 있잖아요 !!!!
오늘 여긴 엄청 추워요, 부산은 아닐거잖아요 !!
ㅋㅋ

2012-02-02 0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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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2 1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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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2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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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0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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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2-02-06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과천 과학관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라... 날이 가을일때 갔었는데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나는데 또 한 번 더가보고 싶네요. 밖에 김밥사들고 자리펴놓아도 좋은 장소같았는데...ㅎㅎ

한사람 2012-02-07 08:59   좋아요 0 | URL

가연님은 과학전공이니 애정이 남다르시군요 ㅋㅋ
저는 과천가는 길이 좋아요.
근처에 현대미술관 올라가는 길(미술관보다 길이, 하하) 사계절 아주 좋아요.
과학관, 박물관은 한번도 즐기면서 관람한적이 없었던거 같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