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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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일곱 단편은 1980년부터 1982년 사이에 발표된 것이다. 하루키가 전업작가가 되기 전 작품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이 단편집은 그 당시의 글을 그대로 실은 것이 아니다. 작가의 전집이 나올 때 작가의 손에 조금 혹은 조금 더 많이 개작되었다. 개작된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알고 싶으면 책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참고하면 될 것이고,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인터넷서점에서 잘 검색되지 않는 초판본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띠지에 나오는 ‘작가의 전면 개고를 거친 완전판 출간!’이란 표현은 개인적으로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읽은 듯하지만 나의 저질 기억력은 이 책을 읽을 때 처음 읽은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어쩌면 처음 읽는지 모른다. 하루키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판본이 다양해서 헷갈릴 때가 있다. 집에 있는 책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 단편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는 읽는 동안 혹시 <양을 둘러싼 모험>과 어떤 연관성이 있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답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거슬리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시드니에 사는 탐정이 엔화로 수수료를 받는 장면이다. 실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의 말에 “어린이 대상 단편집에 실렸다”란 글을 읽고 금방 수긍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에서도 나오지만 이 글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제목이 정해진 후 쓴 글들이다. <오후의 마지막 잔디>와 <땅속 그녀의 작은 개>는 예외다. 재미난 점은 <오후의 마지막 잔디>가 나온 후 장편 개작 요청을 팬들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이다. 하루키의 몇몇 장편이 단편에서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당연하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느낌 감상이 뭔가 에로틱하면서 느슨한 기분이었는데 실제 뭔가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몇 가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이것 때문에 팬들이 요청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루키의 소설의 분위기가 강하게 풍겨 그런 것도 있겠지만.

 

<땅속 그녀의 작은 개>는 눈으로 쫓다가 입으로 소리 내니 발음하기 상당히 어려웠다. 머리와 입이 꼬인 느낌이랄까. 비수기의 한적한 리조트호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화자와 한 여성의 짧고 강한 며칠이 아주 인상적이다. 자신의 일상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젊은 여자와의 만남을 다루는데 제목은 그녀의 이야기에 나온 사연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 허점투성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늘 인식하지 못한다. 아니면 필요를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화자가 그 젊은 여자를 리딩하는 장면은 이 단편의 또 다른 묘미다.

 

표제작 <중국행 슬로보트>의 제목을 읽으면서 중국으로 배를 타고 가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하루키는 배가 아닌 그가 만난 세 명의 중국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때, 대학 초 아르바이트 때, 스물여덟 살 때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중국인 동창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서른이 넘었다. 이 다른 연령별로 만난 중국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나는 중국에 대한 감상은 ‘너무도 멀다’는 것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올려 풀어내는 그의 능력이 다시금 잘 발휘되어 있다.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는 판타지같은 이야기다. 가난한 아주머니에 대해 써보고 싶다고 말하고 난 후 오고 가는 대화는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특히 “내가 왜 가난한 아주머니에 대해 소설을 쓰려는지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에 대한 소설을 써야 하고, 그에 대한 소설을 쓰고 나면 그것 쓰는 이유를 설명할 이유도 이미 없지 않을까.”(54쪽)하고 말할 때 그의 소설 중 하나가 어디에서 시작하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다른 작가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이후 가난한 아주머니가 그에게 다가왔다가 떠나갔는데 이 존재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인다. 작가가 상당히 손을 본 작품이라는데 초판은 어떨지 궁금하다. 어느 문장이 새롭게 생겼고, 이야기의 흐름이 어디서 살짝 변했는지 알고 싶다.

 

<뉴욕 탄광의 비극>은 뉴욕 탄광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화자와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닥칠 때마다 동물원을 찾는 비교적 기묘한 습관을 가진 친구 이야기다. 하지만 기묘한 습관에 중점을 두고 펼쳐지는 소설은 아니다. 친구의 상복을 빌려 입고 장례식에 간다는 이야기가 몇 번이나 흘러나오는데 그 당시 죽은 몇 명의 친구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목도 그렇고. <캥거루 통신>은 작가의 경험을 반영한 재미난 실험이 담겨 있다. 백화점 상품관리과 직원이 잘못 산 판을 교환해달라는 고객에 대해 카세트테이프로 불가능하다는 회신을 한다. 그런데 그 회신이 골 때린다. 어떻게 보면 미친놈처럼 보인다. 카세트테이프 소설로 썼다는데 작가의 목소리로 이 소설을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뭐 일본어는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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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홍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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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주 보는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외롭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 이레나 그녀가 좋아하는 친구 율이 등이 바로 그들이다. 율이가 바라는 사랑은 엄마의 사랑이고, 이레는 율이의 사랑을 바란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바라는 사랑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특히 이레의 경우 율이와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졌을 때 생길 아픔과 상실감을 먼저 생각한다. 이런 사랑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먼저 느끼지만 곧 공감하게 된다. 뭐 보통 이런 경우 가슴앓이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소설은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사랑을 다루지만 배경이 되는 설정은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진출이다. 율이 엄마가 구멍가게를 하는데 동네 어귀에 대형마트가 들어선다. 대형마트 하나가 들어서면 동네의 조그만 마트는 대부분 문을 닿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율이 엄마는 매일 데모에 나가고, 가게는 율이와 이레가 본다. 이 시간이 이레에게는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율이가 대형마트에 취직한다. 당연히 엄마 몰래 취직한다. 이 취직이 나중에 불러올 징후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곳곳에 나타난다.

 

어릴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은 이레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할머니는 그녀에게 엄마이자 아버지다. 그런데 할머니가 암에 걸렸다. 아주 슬픈 현실인데 할머니가 너무 쿨하다. 할머니와 함께 하는 몇몇 에피소드를 보면 이레가 얼마나 행복한 가정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상실감에 빠진 그녀가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친다. 바로 취업이다.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한다. 이때 한 아르바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들어주는 사람>이란 직업이다. 그녀가 생각한 것은 물건을 들어주는 것이었는데 실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 다른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레의 아르바이트는 사실 쉬운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냥 듣기만 한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어느 고객은 구멍 이야기만 하다 끊고, 어떤 고객은 불만만 토해놓고 끊는다. 각자 자신의 가슴 속에 쌓인 이야기를 밖으로 토해놓고 부담을 드는 것이다. 듣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이레에게는 이 일을 하는데 재능이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율이의 가출 이후 그를 찾아 떠나는 이레의 모습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문장과 사람들의 관계를 그렇게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현실의 무거움을 의도적으로 살짝 벗어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유심하게 이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안고 있는 아픔과 고통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이레가 할머니와 함께 간 사이비 의료기기 판매소 풍경은 사랑도 관심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위로하고 위로받는 곳이다. 혹시 이레 할머니도 이곳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쿨한 할머니는 그냥 한 번 경험할 뿐이다. 아들이 자신이 싸우는 대형마트 직원으로 취직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계속 투쟁하는 율이 엄마의 모습은 강한 생명력과 함께 애잔함을 전해준다. <들어주는 사람>의 사장이 겪은 과거와 현재 직업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슬픈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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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빵빵 일본식탐여행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1
다카기 나오코 지음, 채다인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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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일본 도쿄를 3박 4일 일정으로 돌아다녔다. 우에노 근처에 숙소를 잡아놓고 전철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여러 곳을 돌아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 것도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로 블로그를 참고했는데 가능하면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보다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곳을 먼저 찾았다. 물론 이 정보들은 먼저 다녀간 한국 여행객들이나 현지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다행이라면 숙소 근처에 시장이 있어 현지인들처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동경을 말하면 이 식당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일본 도쿄 가이드 북에 가장 많이 나오는 곳 중 한 곳이 츠키지 어시장이다. 블로그를 보면 거의 성지순례 수준이었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일찍 가야 하는 곳이었다. 조건이 맞지 않고 다른 곳에서 먹은 초밥 정식 때문에 가감하게 포기했다. 이 식당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움직였다면 한두 가지 더 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우에노 시장의 현지 음식은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맛있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행의 목적이 다른 관광객 따라하기로 변했을 것이다. 물론 완전히 그들의 길을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여유롭거나 힘든 일정을 우리만의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앞에 쓴 글들은 이 만화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다. 현지인처럼 먹기란 주제와 맞을지 모르지만 작가가 돌아다닌 곳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 왜 이런 긴 글을 먼저 썼을까? 바로 이 만화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을 정말 자주 가거나 길게 여행을 하지 않으면 이 책에 나온 음식점들을 둘러보는 것은 거의 무리다. 앞에서 말한 성지 순례 같은 음식점을 둘러보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이런 곳을 어떻게 다 둘러보겠는가. 현지인처럼 먹는다고 하지만 음식은 호불호가 분명해서 실패할 때도 많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그런데 외국이라면 더 할 것이다. 이런 입맛의 차이는 이 만화 속에서도 나온다. 단순히 사진만을 봤을 때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 별론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음식도 상당히 많다. 먹게 되면 생각이 바뀔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한국 사람이 일본으로 여행을 간다면 대부분 도쿄와 오사카 근처나 북해도 등으로 대부분 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실린 음식이나 식당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계획했던 오사카 여행이 일본 방사능 여파로 파기된 후 머릿속에서만 먹을 것을 상상하는데 이 책은 그 외 지역의 음식도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다.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음식 여행이다 보니 낯선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식욕을 자극한다. 한국 각 지역을 여행할 때 관광지 식당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찾아 먹기 시작한 것이 불과 1~2년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이 작가의 이 기획은 나의 취향과 딱 맞다. 다만 나라와 지역이 다를 뿐이다.

 

현지인처럼 먹기란 주제로 각 지역을 돌아다니는데 동반자도 다양하다. 이 다양한 동반자 때문에 생기는 에피소드는 음식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각자의 취향이나 행동이 재미난 에피소드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식 이야기로 들어가면 먹을 때 에티켓도 같이 다뤄준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가끔 이런 정보는 아주 실용적이다. 그리고 작가가 돌아다니면서 먹은 식당에 대한 상세한 지도를 첨부한 것은 나처럼 제대로 위치를 찾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간 사람에게 정말 소중한 정보다. 뭐 덕분에 다른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었지만.

 

맛있는 식당이나 음식 정보를 원한다면 솔직히 이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색다른 여행을 하고, 현지인들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낯선 동네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식당보다 그 마을 사람들의 꾸준한 선택을 받는 식당을 가보고 싶다면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여기서 내공이 쌓인다면 세계 어디를 가도 싸고 맛있는 진짜 그 동네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뭐 다른 목적으로 여행을 간다면 다른 문제지만. 작가가 다녀온 지역과 식당과 음식은 책 지도를 참조하면 간략하게 알 수 있어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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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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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강의 장편소설을 좋아한다. 한강이란 작가를 모를 때 읽은 <그대의 차가운 손>과 <검은 사슴>을 읽고 반했다. 그 후 단편집을 읽었다. 장편과 다른 호흡과 너무 어둡고 암울해 읽기가 힘들었다. 다시 읽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 늘 궁금하지만 왠지 손이 쉽게 나가지 않는다. 반면에 몇 권 읽은 장편은 나를 깊은 곳까지 빨아들인다. 이번 소설도 그렇다. 80년 5월 광주로 나를 데리고 간 후 현실로 다시 돌아와 가슴 한 곳을 뒤흔들고 눈물을 쏟게 만든다. 살아남은 자들의 애절한 외침에 나도 모르게 먹먹해지고 눈물이 흐른다. 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이제는 한 세대가 지났다. 그 시간이 흐른 후 많은 것들이 희석되었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그날을 폄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왜곡까지 한다. 언론도 이런 왜곡에 은연중에 동참하고 있다. 그날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자식을, 부모를, 친구를, 동료를 잃은 사람들에게 그날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그들도 평범한 사람처럼 먹고 싸고 울고 웃고 사랑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기억의 저편에서 그날은 강한 어둠을 품고 그들의 기억과 추억을 하나씩 갉아먹고 있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마지막 장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처절한 외침과 애절한 방황은 문장을 넘어 가슴 속에 와 박히다. 아픔보다 먼저 눈물이 나는 것은 왜일까?

 

80년 5월 광주 도청에서 한 소년이 친구를 찾는다. 그 소년의 이름은 동호, 친구는 정대다. 정대는 누나와 함께 동호의 집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 이 어린 친구들이 시위대와 함께 걷다가 헤어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대가 군인의 총에 맞아 죽는다. 자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 시민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쓰러진 사람을 구하러 간 시민도 총에 맞는다. 어린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후 동호는 병원과 도청으로 그때 헤어진 친구를 찾아다닌다. 도청에서 군대의 총칼에 난도질당한 시체를 수습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이야기는 바로 이 순간에 시작한다.

 

군대의 총격에 친구를 두고 달아난 동호는 정대가 죽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죄책감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청에 머문다. 이때 도청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은숙 누나, 선주 누나, 진수 형 등이다. 첫 장이 동호를 보여준다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죽은 정대를, 세 번째는 은숙 누나를, 네 번째는 진수 형을, 다섯 번째는 선주 누나를, 여섯 번째는 동호의 엄마를 보여준다. 이들은 각각 다른 시간과 다른 이야기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동호로 이어진다. 각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80년 5월 광주와 그 후의 삶들이 하나씩 역사 속으로 스며든다. 나의 가슴 속으로도 스며든다.

 

그 당시 광주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그날의 아픔과 고통을 모르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현재를 살아가야만 하기에, 사람들의 강한 생명력 때문에 잊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평생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죽은 자보다 오히려 산 사람들이 더 고통을 받는다. 고문과 인격적 모독과 성추행 등으로 평생 어둠 속에서 산 사람도 적지 않다. 이 소설은 그들 중 극히 일부만 다룰 뿐이다. 만약 그들 모두를 다룬다면 소설이 아닌 역사의 증언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기억과 아픔을 담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슴 깊은 곳까지 다가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잔혹한 학살과 참상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한다. 특히 어떻게 동호가 죽게 되었는지 설명해줄 때 그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의 이야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면서 머릿속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면 뒤의 두 장은 가슴으로 바로 들어왔다. 가장 감상적인 이야기지만 그들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갑자기 문장을 읽다가 눈물이 나왔고, 가슴에서 아픔이 치솟았다. 살아남은 엄마의 이야기는 회한과 고통으로 가득하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담담하지만 전두환의 광주 방문과 함께 벌어진 사건들은 다시 눈물을 쏟게 한다. 겨우 그들의 마음 한 자락이 전해져 왔을 뿐인데 말이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한 소년에서 시작한 광주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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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여전히 아픔이 이어져 온 달이다.

6월의 무더위를 조금은 식혀줄 책들을 몇 권 선택해본다.

  1. 모즈가 울부짖는 밤 : 오사카 고

  무엇보다 제목과 시리즈의 첫 권이란 사실 때문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일본판 본 시리즈는 과연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궁금하다.

 

 

 

 

 2. 밤은 고요하리라 : 로맹 가리

 1974년 작품이다. 그가 죽기 6년 전이다. " 본문 내내 장도 절도 없이, '의식의 흐름'처럼 맥락도 예고도 없이 온갖 화제를 건드리는 두 남자의 수다 같은 대담을 읽다 보면, 그동안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의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인간' 로맹 가리의 진짜 모습을, 그가 일궈온 지위와 문학 세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아직도 그의 작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나에게 한줄기 단초를 제공해줄 기회가 아닐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3. 피버 드림 : 조지 R.R 마틴

"브램 스토커와 마크 트웨인의 만남"이라는 찬사는 그냥 지나갈 수 없게 만드네요. 그리고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와 함께 가장 혁명적인 뱀파이어 소설이란 평가는 호기심을 배가시킵니다. 이미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로 확고한 판타지 거장의 자리를 차지한 그이기에 초기작에 관심이 갑니다.

 

 

 4. 맥주별장의 모험 : 니시자와 야스히코

 침대와 맥주가 있는 별장에서 벌어지는 추리 게임과 반전의 반전이 펼쳐지는 이야기는 더운 여름 야구 중계와 맥주 한 잔처럼 읽는 순간 여유를 줄지도 모르겠다.   ‘닷쿠 & 다카치’ 시리즈의 2권이라고 하는데 마음에 들면 1권을 읽어야할 것 같다. 시리즈의 순서를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좋은 시리즈라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5. 의적 메메드 : 야샤르 케말

 케말의 책은 깊이가 있다. 읽는 재미도 가득하다. 사회적 모순의 타파와 민중을 구원하는 영웅을 갈망한다는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케말이란 이름만으로 읽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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