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잔인한 달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신예용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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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3권이다. 1권 <스틸 라이프>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서평을 찾아보니 이번에 읽으면서 느낀 것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스리 파인스 시리즈가 그 마을 안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찰청 내부의 알력을 같이 다루기 때문이다. 그 알력은 가마슈가 상사인 아르노의 부정을 고발하면서 생긴 것이다. 결속이 강한 조직의 경우 내부 고발로 인해 조직 내부의 부정부패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 경찰 조직도 그런 조직 중 하나다. 언론이나 깨끗한 경찰들에게 그는 영웅일지 모르지만 기존의 가치관을 숭상하는 관료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소설은 작은 스리 파인스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부활절을 앞두고 벌어지는 조그만 소동과 모습들은 고요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마을에 작은 이벤트가 벌어진다. 교령회다. 현대에도 이런 모임이 벌어진다는 것이 놀랍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첫 번째 교령회는 실패한다. 두 번째 교령회가 펼쳐지는데 장소가 놀랍다. 그곳은 저주가 깃든 옛 해들리 저택이기 때문이다. 옛날 이 저택에서는 참혹한 살인이 벌어졌고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바로 이때 한 사람이 죽는다. 그녀의 이름은 마들렌이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죽었다. 그냥 보면 살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혈액 검사 결과 에페드라라는 약물이 검출되었다. 살인 사건의 흔적이 보인다. 가마슈의 상사이자 친구인 브레뵈프가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가마슈를 스리 파인스 마을로 보낸다. 그리고 이 조사팀에 자신의 스파이를 한 명 집어넣는다. 그는 르미외다. 이때 또 한 명이 등장한다. 1권에서 관심있게 본 이베트 니콜이다. 그녀도 역시 가마슈를 감시하기 위한 스파이처럼 보인다. 이제 이 소설은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진행된다. 하나는 마들렌의 죽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마슈를 실각시키기 위한 브레뵈프의 계략이다.

 

마들렌은 암에 걸렸었다. 치료가 되었지만 재발했다. 곧 죽을 예정이지만 이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녀의 죽음은 바로 이런 정보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마들렌의 심장 질환과 에페드라가 결합하고 공포가 더해지면 죽음이 올 수도 있다. 그녀는 이런 계획에 의해 죽은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늘 빛을 뿌리고 다니는 그녀를 죽일 사람이 이 마을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보면 용의자가 넘친다. 해부해서 사인을 조사하고, 주변 사람을 탐문 조사하면서 강한 빛이 깃든 곳에서 자라는 사악한 의지를 발견한다.

 

가마슈를 보면서 그의 인내와 냉철함에 놀란다. 그는 사소한 말이나 단서를 통해 사건을 추리하고 진실에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의 팀은 다른 조직에서 적응하지 못했거나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런데 이들이 가마슈를 만나 최고의 팀을 이룬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불안하고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가 할 일은 제대로 한다.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가마슈가 한다. 그에게는 아들 같은 부관이 한 명 있다. 보부아르 경위다. 그도 다른 조직에서 퇴출되어 가마슈의 팀에 왔다. 가마슈의 사랑을 바라면서 최선을 다한다. 아르노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요구했던 충성심을 그는 자발적으로 바친다. 가마슈를 흔들 음모에 가장 분개한 것도 역시 보부아르다.

 

작은 마을이고 놀라운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곳이지만 벌써 3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사건만이 아니라 경찰 내부의 문제를 같이 엮어서 구성을 튼튼하고 짜임새 있게 만든다. 스리 파인스 마을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꼬고 엮어서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슬픔과 질투와 원망이 뒤섞여 용의자의 폭은 더 넓어진다. 견고한 구성과 전개는 묵직한 느낌을 전해준다. 앞부분에서 보여준 마을 사람들의 행동과 관계를 좀더 집중해서 봤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다. 덕분에 더 관심을 두고 본 것은 가마슈를 둘러싼 음모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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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Sunny 1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오주원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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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를 즐겨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두 본 만화는 많지 않다. 하지만 <죽도 사무라이>를 한 권씩 읽으면서 투박해 보이는 그림 뒤에 가려진 잘 짜인 편집과 연출을 보면서 감탄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별아이 보육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담긴 여러 원생들의 사연과 생활은 한 번 볼 때보다 다시 그냥 펼쳐서 유심히 볼 때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무심코 지나간 그림이나 대사가 새롭게 다가올 때도 많다. 각 장면이 의미없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6화가 실려 있다. 시작은 한 소년 세이가 보육원에 오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별아이가 그냥 학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곳에 사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기숙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활이 힘든 부모가 이곳에 아이를 맡겨 두고 간다. 자주 이곳을 찾아오는 부모도 있지만 1년에 한두 번만 오는 부모도 있다. 하루오의 경우가 후자다. 늘 반항적이고 강할 것 같지만 아이의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좋아하는 마키오 형이 왔을 때 그의 행동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엄마에 대한 만남이 헤어지는 무서움을 변하는 순간을 표현할 때 이 어린 소년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가 손에 잡힐 것 같다. 이 대화를 자는 척하면서 듣고 있는 세이의 모습도.

 

별아이에 사는 아이들은 부모와 같이 살지 않지만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순수함을 잃어가지만 그곳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 하루오가 써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겐지가 놓아둔 성인 잡지를 보면서 어른인 척 하지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상처는 어느 순간 밖으로 표출된다. 이것은 겐지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문을 돌려 돈을 모으지만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술값으로 나갈 뿐이다. 답답하다. 중학생이 바에서 술로 자신의 화를 누그러트린다. 늦은 밤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릴 때 그의 모습은 잠시라도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처절함이 보인다.

 

각 화마다 등장하면서 배경처럼 보였던 타로가 사라진 아이를 찾아 데려오는 6화는 보육원 아이들의 일상이 살짝 나온다. 소년과 소녀들의 치기 어린 장난들도 같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쇼스케가 홀로 돌아다닌 것이다. 이 아이를 찾기 위해 보육원 아이들이 찾아다니는데 이때 세이가 한 마디 한다. “저긴 우리 집이 아니야”(206쪽) “절대 아니야”(207쪽)라고. 다른 아이처럼 그 동네 말을 사용하지 않는 세이가 지닌 절망이 역설적으로 표현되었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띠지에 나오는 <핑퐁>과 <철근 근크리트>를 읽지 않았다. 그러니 그 만화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모습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작가 자신의 소년기를 토대로 그려내었다는 문구만으로 눈길이 간다. 그리고 써니의 정체가 보육원 뜰 한구석에 방치된 고물차라는 것을 앞부분에서 알게 된다. 그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휴식처이고 대화의 공간이다. 또 써니는 아이들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만화가 몇 권까지 나올지 모르지만 아직 수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을 것 같다. 학구파에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곳에 동화되지 못하고 있는 세이가 과연 어떻게 변할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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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나무 1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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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타임 투 킬>의 3년 후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 전작의 세부적인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주인공 이름조차도. 실제 읽은 지가 십 수 년이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계속 읽으나가면서 몇 가지 기억은 돌아왔다. 하지만 그 소설을 떠올려줄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놀라운 것은 주인공 제이크 브리건스가 그 재판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3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평범한 변호사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재판의 성공이 엄청난 보수를 받는 변호사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보여준다. <레인메이커>에서 보험회사에 승소했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것과 연결된다.

 

이번 소설도 역시 미국의 민감한 인종 문제와 이어진다. 모든 사건의 발생 원인은 한 거부의 자살에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세스 후버드다. 그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놀라운 재산을 남긴 후 자살한다. 그 계획은 나무에 목을 매어 죽고, 자신의 직원 중 한 명을 약속한 시간에 그곳으로 오게 해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만든다. 당연히 경찰이 와서 시체를 내리고 집에 가서 유서를 발견한다. 자살로 판명난다. 이제 그의 자식과 손자들이 유산을 물려받으면 끝이다. 그런데 그가 자살하기 전 한 통의 자필 유언장을 작성해서 제이크에게 보낸다. 그 유언장에 실린 내용은 이전의 유언장을 폐기하고 흑인 가정부 레티에게 유산의 90%를 물려준다는 것이다.

 

언제나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소식 중 하나가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가족들의 소송이다. 유언장의 내용을 신뢰하지 못하면서 생긴 분쟁들이다. 이 유언장도 그렇다. 자식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물려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레티에게는 그가 언질을 준 약간의 유산이 얼마일까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세스가 치밀하게 계획한 것은 전혀 공증이 되지 않음으로써 분쟁의 소지를 남겨두었다. 물론 공증이 되었다고 소송이 붙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자살하기 불과 하루 전에 만든 유언장이고, 이 유언장을 작성할 때 함께 한 사람이 레티가 유일하다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자식들의 변호사가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유언장을 무효화하려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한 중년 흑인 여성이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많은 논쟁을 일으킨다. 세스의 자식들이 유산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레티 주변에도 그 유산의 일부를 노리는 사람들이 모인다. 당연히 이해 관계가 충동하고 엮인다. 이 와중에 제이크가 해야 할 일은 세스의 유언이 그대로 이행되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일이 곧 레티의 이익인데 레티의 남편은 인종 문제를 이용해 소송을 거는 흑인 변호사를 선임한다. 하나의 소송에 다양한 이익이 걸리면서 변호사들 숫자만 늘어난다. 이것을 정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트리 판사다. 그는 판사의 권한을 이용해서 소송의 분위기와 상황을 주도해나간다. 최종 결과는 배심원이 내리지만 그 과정을 조율하는 것은 판사임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법정 스릴러지만 솔직히 이전에 본 그의 소설에 비해 긴장도가 떨어진다. 그의 소설에 익숙한 것도 있지만 중반 이후 세스가 왜 레티에게 그런 거액의 유산을 남겼는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입도는 변함없이 좋다. 하나의 소송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변호사들이 왜 둘 이상이 함께 다니는지, 1심에서 승소하였다고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보여주면서 조금은 낯선 법조계의 모습을 알 게 한다. 법의 허점이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직업들이 나올 때 세월의 흐름을 살짝 엿보게 된다. 그리고 80년대 미국 남부 지역이 아직도 백인우월주의가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지금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제목부터 약간의 스포일러가 담겨있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의문인 ‘왜 흑인 가정부 레티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겼을까?’에 대한 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답만이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지 않는다. 소송에 이기기 위한 변호사들의 노력과 계획과 조사와 치밀한 전략 등이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전체적인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법정에서의 치열한 싸움보다 바깥에서 생긴 변수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제이크의 역할이 전편보다 약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은 그의 소설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훈훈하고 낯설고 억지스럽다.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 때문일까? 그렇지만 반갑고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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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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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하진을 책을 몇 권 사놓았지만 읽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몇 년 전 갑자기 하진에 대한 좋은 서평들이 올라와 관심을 두었고, 호평들 덕분에 몇 권을 샀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책장 어딘가에 꽂아둔 채로 몇 년이 흘렀다. 산 후 바로 읽지 않은 책들의 운명이 거의 대부분 이런 식으로 책더미 속에 파묻힌다. 하지만 기억 한 곳에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미지들이 남아 있다. 이 기억은 나중에 그 작가나 작품을 읽고자 하는 마음을 되살려준다. 하진의 이번 소설도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다. 취향의 차이다.

 

1000쪽이 넘는 분량이다. 하진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보니 취향에 맞는지 알지도 못했다. 단순히 하진이란 작가의 이름 때문에 선택했다. 최근 바빠 충분히 집중할 시간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낯선 작가의 장편을 읽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비교하고, 삐딱하게 보면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론 이 책을 단숨에 읽을 정도는 아니다. 분량이 그렇다. 난의 이야기 속에서 하진의 모습을 찾고, 작가가 만난 시인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읽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난 우다. 중국인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학업을 포기한다. 중국 정치에 혐오를 느낀 것이다. 그는 학창시절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베니아다. 그녀가 그의 삶을 지배한다. 아내 핑핑도 이 사실을 안다. 난은 핑핑과 결혼해서 타오타오란 아들을 두고 있다. 미국에 유학 와서 아내를 불렀다. 나중에는 아들도 왔다. 이 소설을 첫 부분은 다섯 살 아들이 홀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이다. 엄마는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다행히 잘 도착했다. 제대로 된 가족이 모인 것이다. 이때부터 우 가족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한 사람의 중국인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난 우의 이야기다.

 

중국 국민으로 생활하다가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살기로 결심한 우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의 국적을 감안하면 거의 노동일 밖에 없다. 하지만 낯선 타국에서 살아야 하는 그에게 이 일은 생존에 대한 문제다. 부잣집 관리 일을 하지만 돈이 부족해서 뉴욕에서 중국 시 잡지 편집 일을 하지만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부업으로 선택한 것이 식당 일이다. 그의 성실함 덕분에 식당에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 기회를 그는 놓치지 않는다. 이제 요리사는 그의 평생의 직업이 된다. 아메리카 드림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난이 바라는 것은 평온한 일상과 시를 쓸 수 있는 환경이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식당을 인수하고 빚내어 집을 산다. 생활이 쪼달린다. 풍족한 미국에서 그들의 삶은 궁핍하다. 물론 그 당시 중국에 비하면 풍족하다. 조그만 중식당을 운영하고 빚을 갚으면서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시인의 삶이 꿈틀거린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줄기인 시인이 되고 싶은 난의 의지가 곳곳에 스며있다. 그는 중국인이지만 영어로 시를 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이 괴리는 평생 그를 괴롭힌다. 나중에는 포기하라는 혹평까지 듣는다. 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중국인의 영어에 대한 나의 착각을 깨닫는다. 그들이 쉽게 영어를 배운다는 착각을.

 

난은 중국 태생의 중국인이지만 미국 영주권을 얻고 시간이 흐른 후 시민권을 받는다. 그런데 그의 태생 때문에 중국인들이 그에게 와서 애국을 강요한다. 단지 중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중국을 도와야 하고 응원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거부한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정부를 비판했던 사람들마저도 무분별한 애국주의에 빠져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단순히 이것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금방 깨달았다. 한국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민족주의, 애국주의, 국수주의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마오쩌뚱을 비판한 글을 읽으면서 다시 우리의 박정희가 떠올랐다. 박정희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어른들은 미화된 위대한 지도자 이미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마오도 여자를 바꿔가며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더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그것은 그가 쓴 책의 인세를 챙겼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주석이 말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마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이미지들이 산산조각난다. 그리고 90년대 급속하게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여줄 때 우리가 흔히 부패되었다고 말하는 중국의 진짜 모습 중 한 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소설은 한 중국 이민1세대가 시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 문화의 충돌을 경험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간다. 밖에서 볼 때는 평온하지만 그의 내면은 불타고 있다. 사랑보다 의무감에서 처자식을 돌보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미국에서 수년 간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아니 산다고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보면서 놀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미국으로 온 그의 아들보다 영어의 활용이나 이해가 떨어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교적 평온한 이야기지만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된다. 난의 삶이 평탄하게 흘러가도, 주변의 삶에 흔들려도, 내면에서 열정이 솟구쳐 올라도 작가는 무리하게 비약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심한 소설인데 긴 세월 속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 덕분에 결코 심심함을 느끼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난이 애국을 외치는 사람들에 반대하여 자유를 말할 때 깊이 공감한다. 물론 미국인으로 산다고 그의 삶이 자유로울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언론과 정보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나라라면 다를 것이다. 작가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란 부분에 눈길이 많이 갔는데 세부적인 부분에서 많이 나왔다고 한다. 모든 부분을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인의 정체성과 시와 영어에 대한 고민과 노력은 알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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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에 베이다 -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
이로 지음, 박진영 사진 / 이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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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한 책이다.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책등에 베이다니 그게 가능할까? 물론 이것은 저자의 수사다. 뻔한 과장이다. 하지만 저자의 글에 귀를 기울이면 이것이 꼭 과장된 수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말한 책등이 서점에서 나를 매혹시켰던 수많은 책등을 떠올려준다. 표지와 제목과 저자와 출판사 이름 등이 함께 어우러져 책에 대한 열망과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지금은 이 열정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연소한 것은 아니다. 자주 서점에 가지 않음으로 인한 일시적인 휴식기다.

 

분명 저자는 책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책이 주인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스물다섯 권의 책들은 저자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물론 책 속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도 많다. 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부분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을 베고 지나간 책등에 대한 추억과 이해 등에 집중한다. 그래서 읽다 보면 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이것을 보고 뭐지?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 신선하고 재밌다. 곱씹어 생각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그냥 웃으면서 지나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실제 책 속에는 책등 사진이 없다. 책등이란 외양에 매달리면 저자가 보여주는 작품과 단상의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추억 뒤에 자리 잡은 깊은 이해와 사유는 어느 순간 번뜩이는 재치를 보여준다. 그가 지어낸 콩트는 간결하지만 재밌다. 현실을 뛰어넘었지만 그 속 깊은 곳에는 변함없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눈감고 귀 닫고 있으면서 놓친 것들이다. “우리 무조건 행복하자고 외치는 불행에 대하여. 가족의 고통을 촬영하는 환희에 대하여.”(171쪽) 말할 때 가장 슬픈 노래의 세계를 살짝 엿본 느낌이다.

 

에세이는 태생적으로 개인의 추억과 기억과 감상을 먹고 산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간결한 책은 독특함이 많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기존에 읽은 문장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도 서평을 많이 써다보니 어느 때는 그대로 붙여넣기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나 단어가 그대로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가 걸러낸 문장과 이야기는 책과 어우러져 새로운 재미와 감각으로 다가온다. 살짝 비튼 곳에서는 웃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했을 때 “글을 쓰기보다 누군가의 글을 옮겨 적는 일을 잘하면 어떻게 해야 하죠?”(219쪽)라고 되물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 나온 답 중 하나가 필경사와 인용의 창고다. 띠지에 나오는 한 번도 인용된 적이 없는 문장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각각의 분량이 다르다. 문장은 간결하다. 인용도 적지 않다. 빠르게 읽힌다. 긴 호흡의 글보다 짧은 글을 선호하는 저자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웠던 것은 ‘낭독’에 대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책은 눈으로 읽고 소리는 사라졌다. 가끔 의미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 소리 내어 읽어본다. 몇 번 그렇게 읽다보면 문장이 분해되고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된다. “이 문장들은 이제 나와 함께 합니다!”(95쪽)란 선포에 공감한다. 이 짧은 책이 매력있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글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가끔 무작정 펼쳐서 아무 곳이나 한 번 읽어보면 어떨까 궁금하다. 물론 이것은 이 책에 대한 기억이 좀더 흐려진 후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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