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홍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로 마주 보는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외롭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 이레나 그녀가 좋아하는 친구 율이 등이 바로 그들이다. 율이가 바라는 사랑은 엄마의 사랑이고, 이레는 율이의 사랑을 바란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바라는 사랑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특히 이레의 경우 율이와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졌을 때 생길 아픔과 상실감을 먼저 생각한다. 이런 사랑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먼저 느끼지만 곧 공감하게 된다. 뭐 보통 이런 경우 가슴앓이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소설은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사랑을 다루지만 배경이 되는 설정은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진출이다. 율이 엄마가 구멍가게를 하는데 동네 어귀에 대형마트가 들어선다. 대형마트 하나가 들어서면 동네의 조그만 마트는 대부분 문을 닿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율이 엄마는 매일 데모에 나가고, 가게는 율이와 이레가 본다. 이 시간이 이레에게는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율이가 대형마트에 취직한다. 당연히 엄마 몰래 취직한다. 이 취직이 나중에 불러올 징후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곳곳에 나타난다.

 

어릴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은 이레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할머니는 그녀에게 엄마이자 아버지다. 그런데 할머니가 암에 걸렸다. 아주 슬픈 현실인데 할머니가 너무 쿨하다. 할머니와 함께 하는 몇몇 에피소드를 보면 이레가 얼마나 행복한 가정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상실감에 빠진 그녀가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친다. 바로 취업이다.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한다. 이때 한 아르바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들어주는 사람>이란 직업이다. 그녀가 생각한 것은 물건을 들어주는 것이었는데 실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 다른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레의 아르바이트는 사실 쉬운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냥 듣기만 한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어느 고객은 구멍 이야기만 하다 끊고, 어떤 고객은 불만만 토해놓고 끊는다. 각자 자신의 가슴 속에 쌓인 이야기를 밖으로 토해놓고 부담을 드는 것이다. 듣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이레에게는 이 일을 하는데 재능이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율이의 가출 이후 그를 찾아 떠나는 이레의 모습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문장과 사람들의 관계를 그렇게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현실의 무거움을 의도적으로 살짝 벗어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유심하게 이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안고 있는 아픔과 고통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이레가 할머니와 함께 간 사이비 의료기기 판매소 풍경은 사랑도 관심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위로하고 위로받는 곳이다. 혹시 이레 할머니도 이곳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쿨한 할머니는 그냥 한 번 경험할 뿐이다. 아들이 자신이 싸우는 대형마트 직원으로 취직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계속 투쟁하는 율이 엄마의 모습은 강한 생명력과 함께 애잔함을 전해준다. <들어주는 사람>의 사장이 겪은 과거와 현재 직업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슬픈 풍경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