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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프로젝트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프로젝트 3부작 중 2번째 작품이다. 전작에 이어 에이탄 모르겐스테른의 활약이 펼쳐진다. 이번 활동의 대상은 그 악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본 731부대다. 제목인 시로 프로젝트의 시로는 그 악명 높은 731부대의 부대장인 이시이 시로다. 이시이 시로는 731부대의 연구 자료를 가지고 미국과 구소련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고, 결국 미국의 사면뿐만 아니라 거액을 받는 조건으로 전범에서 제외되었다. 이 결정은 미국과 당시 731부대 출신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주었다. 반면에 역사적 비극은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숨겨져 왔다. 만약 그가 재판을 받았다면 지금 일본이 사실이 아니라고 발뺌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블레이베르크 프로젝트>의 대활약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현재 체코 파르두비체 근교에서 의문의 사건이 벌어진다. 아내와 이혼 직전인 브라니슬라프는 부모의 집에 가는 중이다. 도로가 통제되었다. 기자의 감으로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산 쪽으로 간다. 마을을 보니 시체들이 보인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도 있다. 사진을 찍는다. 이때 체코 군인이 그를 발견한다. 그가 결코 알지 말아야 하는 것을 본 것이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때 한 거구가 나타나 군인 3명을 순식간에 해치운다. 바로 에이탄이다.

 

과거 속에서 미국 메릴랜드 주 디트릭 요새 장면이 나온다. 이 요새는 세균 병기를 개발하고 있다. 처음에 이 장면이 나왔을 미국과 731부대가 연결되었다. 하지만 사고로 이 요새는 폐쇄된다. 이 이후 이야기가 바로 브라니슬라프다. 잠시 현재로 돌아온 후 이야기는 다시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그때는 모스코바 지하철이다. 세균 공격에 의해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이 세균 공격이 전세계적으로 펼쳐지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공격은 지극히 한정적으로 펼쳐진다. 왠지 모르지만 아직 두 곳을 제외하면 어떤 공격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이야기의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전편에서 또 한 명의 괴물(?)이었던 엘레나가 에이탄의 동료로 활약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두 사람의 협력 체계는 적대적인 관계였던 과거 때문에 초반에는 불협화음을 일으키지만 곧 최상의 것으로 변한다. 이 변화 과정에 흘러나오는 두 사람의 과거 일 부분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왜 에이탄이 그렇게 엘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엘레나가 어떤 이유로 블레이베르크의 실험 대상이 되었는지. 이 둘의 과거는 비록 짧게 나오지만 강한 인상과 여운을 남겨준다.

 

얼마 전 출간된 <난징의 악마>에서 난징 대학살을 다루었다면 나치의 만행보다 더 무시무시한 731부대를 정면에서 다룬다.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이 유대인 자본에 의해 끊임없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 731부대는 거의 없다. 80년대 말에 나온 <마루타>라는 영화를 제외하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의 내용을 보고 실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 소설을 보면 영화가 실제보다 못한 것 같다. 이런 악마적인 부대의 실체를 위안부조차 인정하지 않는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할 리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는 충격적이고 참혹하고 의미가 깊다.

 

다루고 있는 소재가 무시무시한 반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간결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 속에 에이탄의 활약은 군더더기가 없다. 막힘없이 사건을 풀어내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이전까지 본 혹은 읽은 주인공들의 활약과 너무 차이가 난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의 힘이라고 할까. 아직 그 속에 인간의 한계가 남아 있어 목숨이 위험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에이탄의 활약과 731부대의 만행은 액션과 팩션의 결합이다. 다른 스릴러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외국에서 일본 731부대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부분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시로와 미국의 협잡을 다룬 이야기를 보고 이 시점만 가지고 영화로 만들어도 멋진 스릴러 한 편이 완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동경에서 벌어진 전범 재판 과정을 바탕으로 미국과 일본의 밀약을 다루고, 그 사이에 왜 이들이 전범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엄청난 살인자 전범인 시로가 재판을 받지 않고 평안하고 부유한 여생을 누렸는지 알려준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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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메리의 아들 밀리언셀러 클럽 73
아이라 레빈 지음, 조지훈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로즈메리의 아기> 후속편이다. 사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 후속편이 있다고 생각도 못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다시 책이 번역 출간되는 과정을 거친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모습이다. 출간연도를 보니 1997년도다. 한국에서 비교적 아이라 레빈 소설이 인기가 없다고 하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 중 하나가 종말론이란 점을 감안하면 역시 아쉽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 솔직히 조금 이해가 된다. 마지막 장면을 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시간은 1999년 11월9일. 출간된 연도보다 살짝 미래의 시기다. 이 시기는 종말론이 광풍처럼 휘몰아치던 시기다. 거기에 밀레니엄 괴담까지 가세해서 전 세계를 뒤숭숭하게 만들던 때다. 이것은 현실의 모습이고, 소설 속에서는 새천년을 맞이하여 앤디와 함께 축하하려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앤디가 누구냐고? 바로 전작에서 악마가 로즈메리를 통해 세상에 내놓은 아기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앤디의 정체를 모른다. 오히려 그를 새로운 구세주처럼 생각한다. 사람들의 가슴에 'I♥ANDY' 배지가 달려있다.

 

전편에서 로즈메리로 하여금 악마의 아기를 가지게 만들었던 일당 중 마지막인 스탠리 샌드 박사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이 순간 27년 동안 잠들어 있던 로즈메리가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연도를 듣고, 자신이 변한 모습을 본 후 기나긴 시간이 흘러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찾는다. 27년 동안 잠들었던 환자가 깨어났다는 사실은 뉴스가 되기 충분하다. 텔레비전에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앤디가 자기 아들임을확인한 그녀는 방송 출연으로 27년 만에 아들을 만난다.

 

작가는 노골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종말론과 연결시켰다. 악마의 아이를 세상을 구할 구세주로 내세우면서 로즈메리를 성스러운 엄마로 만들었다. 천주교의 예수와 성모를 현세에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악마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아들인 앤디는 로즈메리에게 고백한다. 자신이 어떤 힘든 상황을 넘어서 현재의 모습으로 자랐는지. 물론 아직도 그의 몸속에는 악마의 표시가 남아 있다. 분노가 표출되면 악마의 표식인 뿔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위대한 사람일 뿐이다.

 

소설은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 27년 만에 깨어난 로즈메리와 아들의 상봉 정도랄까. 하지만 전편처럼 불안감과 긴장감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계속 유지된다. 그의 정체를 보통 사람과 다르게 해석하는 단체가 존재하고, 가끔 세계의 다른 곳에서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앤디와 그의 단체가 준비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촛불 행사는 종말론적 세계와 맞닿아 있다.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지만 만약 이 촛불이 모두 타오른다면 어떤 화학 무기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언제 앤디가 인간의 가면을 벗고 악마로 변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계속 이어진다. <오멘>의 그림자가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더욱 커진 규모와 전편에서 이어지는 일들이 결합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 긴장감은 로즈메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반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첫 번째는 역시라는 감탄사를 자아내지만 두 번째는 뭐지? 하고 묻게 된다. 어떻게 보면 진한 공포의 여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깔끔한 느낌은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더 공포스러운 설정일 수도 있지만 지금 나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처럼 멍하게 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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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3기 서평단은 오랫만에 신청했고 선정되었습니다.

어느 순간은 원하는 책을 받아서 기뻤고 어떤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아 약간 곤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을 지나오면서 느낀 것은 즐겁고 신나고 흥미로웠다는 것입니다.

 

이 책들 중에서 다섯 권을 뽑는다면 가장 먼저 <결괴>가 눈에 들어옵니다.

 

1. 결괴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이번에야 제대로 재밌게 읽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것들 중 놓친 것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단권으로 나온 책을 아주 힘겹게 읽었던 기억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라고 할까요.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에 자신감을 심어줬다면 과도한 반응일까요?

 

 

 

2. 제7일

위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언제나 삶의 현장을 풍자적으로 들려주기 때문이죠. 저승에서 보내는 7일이지만 이 보다 더 현실적인 7일은 없겠죠. 요즘 <허삼관매혈기>을 한국 버전의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 다시 한 번 위화 열풍이 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3. 천국에서

  김사과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한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본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일담처럼 흘러나온 과거의 유물이 허세와 거짓임이 드러날 때 발가벗은 듯한 느낌을 받았고, 새로운 삶의 희망이 싹틀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4. 블랙스완그린

성장에 대한 강박없이 그 나이를 산 아이들의 진솔한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읽을 때보다 다 읽은 지금 더 많은 것들이 연상되면서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두툼한 것도 또 하나의 장점입니다.

 

 

 

 

5. 천국보다 낯선

낯설지만 낯익은 장면들은 영화에 대한 예전의 열정을 떠올려줍니다. 요즘은 그 열정이 사그라들었지만 그 당시의 열정과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장욱이란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 것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이 다섯 권 중 최고로 꼽으라면 힘들지만 새롭게 작가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해준 <결괴>를 선택하겠습니다. 앞에서도 썼지만 <장송>이나 다른 책에 대한 용기를 주었다고 해야 하나. 독서의 단계가 조금 더 올라간 허영심을 살짝 집어넣어준 것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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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국보다 낯선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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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짐 자무쉬의 영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제목만 같다고 생각했는데 목차를 펼치니 각 장의 제목들이 상당히 낯익다. 이 목차의 제목도 모두 영화 제목이기 때문이다. ‘전부’가 아니라 ‘상당히’란 표현을 쓴 것은 몇몇은 내가 모르거나 알쏭달쏭했기 때문이다. 한때 누구나처럼 미친 듯이 영화를 보고, 감독 이름을 외우고, 그들의 작품을 찾아서 보던 시절이 지나간 탓에 더 그렇다. 만약 요즘 누군가가 나에게 짐 자무쉬의 영화를 보라고 하면 거의 보지도 않을 것이지만 본다고 해도 졸고 있을 것 같다.

 

제목과 함께 옆에 사람 성이 같이 표기되어 있다. 정, 김, 최. 이들이 바로 각 장의 화자다. 이들은 번갈아가면서 등장한다. 같은 순서로 진행되다가 중간에 순서가 한 번 바뀐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찾게 된다면 이 세 남녀의 시작과 끝을 ‘정’이 맡고, 이들이 숨겨놓은 감정과 사실을 정리하는 역할이라고 할까. 개인의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는 소설에서 서로 겹치는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때 이 바뀐 순서가 그들의 심리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각자의 기억 속에 스스로 왜곡하고 편집했던 기억들이 겹쳐지고 제3자의 시선으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낯설고 건조하고 황량한 분위기다. 세 명이 한 차를 타고 움직이지만 그들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다. 친구 A가 죽어 문상을 가는 길이다. 이 세 명에게 A는 각각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다. 에피소드 중 하나가 응원단에 대한 것이다. 그들의 기억이 모두 불명확하다. 이런 분명하지 않음이 이 소설 전체에 가득하다. 물론 나중에 가면 그들은 자신들이 숨겨둔 속내와 감정들을 솔직하게 토해낸다. 이때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가 영화의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이다. 영화 제목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보지 않은 영화가 더 많아 잘 모르겠다. 봤다고 더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평범한 로드 무비 같았던 이야기가 중간에 바뀐다. 시간의 순서가 뒤섞이고, 낯선 장소가 나오고, 이상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장면들을 볼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스티븐 킹이다. 일상에서 낯설고 공포스러운 세계로의 전환을 다룬 그의 소설이다. 반복되는 단어와 익숙한 듯 낯선 공간은 앞에 정이 느낀 이질감을 돌아보게 만든다. 깊고 길고 어두운 터널이 반복적으로 나온 뉴스와 결합해서 나중에 새로운 이미지와 정보를 전달한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안팎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갈라질 수 있다.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네 명이지만 ‘염’은 마지막 장만 맡았다. 이 때문에 앞에 나온 모든 이야기가 현실과 분리된다. 시간과 공간이 일반적 물리법칙을 벗어나고 이야기 속에서 변주를 불러온다. 마지막 장면을 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A의 영화와의 연관성을 다양하게 고민할 수 있다. 만약 두 시간과 공간이 차원을 다르게 표현된 것이라면 겹치는 이미지로 나타날 것이고, 현실과 비현실로 인식한다면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뉠 것이다. 개인적으로 후자 쪽이다. 염이 본 뉴스가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 뉴스가 비현실이라면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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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
채한수 지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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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와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호기심은 이전부터 있었다. 지금까지 읽은 수많은 책 속에서 제자백가 이야기를 만났다. 하지만 제대로 제자백가의 저서를 읽은 적은 없다. 가장 많이 읽은 것으로 꼽는다면 <장자>가 될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장자에 매혹되어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다. 원문을 번역하고 주석을 붙이거나 아니면 장자의 전체 흐름을 새롭게 풀어내었다. 읽을 때마다 감탄하고 알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냥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수박 겉핥기식 독서의 결과다. 이것은 <논어>도 마찬가지다. 사놓은 해석 책이 몇 권 되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책은 어떻겠는가.

 

제자백가를 제목에 넣었지만 여기서 다루는 책은 모두 열 권이다. 장자, 열자, 한비자, 전국책, 여씨춘추, 논어, 묵자, 맹자, 회남자, 안자춘추 등이다. 분량으로 따지면 <장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한비자>다. <열자>까지는 어느 정도 분량이 되지만 나머지는 다루고 있는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묵자>와 <회남자> 내용이 많이 궁금했는데 너무 적은 분량이라 아쉬웠다. 현재 남아 있는 내용도 실제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을 알지만 특별히 찾아서 읽지 않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들이 아니라 더 그런지 모르겠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먼저 앞에 말한 열 권의 고전을 선택한다. 각 고전 속에서 이야기를 뽑아 저자가 편집한 내용을 나열한다. 그리고 이 내용에 대한 각각의 해설을 단다. 이 작업의 연속인데 저자의 의도에 따라 편집된 부분이 많다.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이야기 식으로 풀어내었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사람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 해석에서 본문에 생략된 부분을 말해주는데 어떤 부분은 과도한 편집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해되지 않던 부분을 잘 알려줘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 중 90% 이상은 한두 번 본 것들이다. 원전의 해설서를 읽으면서 혹은 다른 책들 속에 인용된 것에서나 고사성어에 대한 해설 등에서. 하지만 몇 가지 이야기를 제외하면 전혀 원전을 몰랐다. 한 번도 <열자>나 <전국책>이나 <회남자> 등에 실린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친다면 출처를 알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출처가 중요하다. 그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맹자>의 ‘닭 도둑의 변명’이야기는 현재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전 정권의 부자 감세 정책은 신속하고 대대적으로 벌어졌지만 현 정권의 부자 증세 정책은 아주 더디다. 대신 사람들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간접세의 증세는 신속하다. 가진 자들을 위한 변명은 언론을 통해, 정부 관료의 입을 통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경제 위기, 혼란, 성장 우선 등의 변명들 말이다. 하지만 이 변명의 이면에는 현재를 고착화시켜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저자가 해석에서 정치인들을 질타한 것도 이런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불만인 것이 몇 개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춘추전국시대 각 나라의 수도로 서울이라고 호칭한 것이다. 서울과 수도를 같은 것으로 놓고 무심코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서울이 곧 수도라는 철학을 가지고 쓴 것인지 궁금하다. 무심코 사용한 것이면 수정해야 할 것이고,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면 헌재의 관습헌법처럼, 혹은 <한비자>의 ‘입던 바지가 편하다’이야기의 해설처럼 의식 개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랑캐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는데 조금 더 연구한다면 그 시대 북방민족의 이름을 제대로 적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제목처럼 천천히 제자백가를 만났다. 특별히 신선한 것은 없지만 잘 정리된 이야기는 이전 기억들을 환기시키고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각 유파의 입장을 알 수 있어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더 느낀 것은 유학자들이 권력을 쥐게 된 데는 권력자들의 입맛에 가장 맞는 통치철학이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현재 묵자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공감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제자백가에 대한 입문서로 권하고 싶다. 단지 입문서로만. 지금 괜히 예전에 읽은 장자에 대한 책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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