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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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면 군대 내부의 부조리한 상황을 다룬 소설로 바로 다가온다.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군대 내부 문제보다 오히려 다양한 인간 내면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예상한 장면이 나오지 않아 약간 어리둥절하다.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던진 내면의 절규이자 제목인 ‘살고 싶다’의 의미가 뒤로 가면서 더 강해진다. 아니 ‘살고 싶다’가 아니라 ‘살아라’로 바뀐다. 어두운 절망의 참혹한 터널을 지난 사람만이 이런 말이 지닌 무게를 견디면서 정확하게 내뱉을 수 있다. 바로 그곳에서 삶의 의지가 샘솟아 오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있던 그해 이필립 병장은 야간조 근무를 나갈 준비를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은 내뱉는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가 복무하고 있는 군 이야기가 조금씩 나온다. 군대 병장이라면 이제 편해질 때도 되었는데 그는 자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군인이다. 그 원인은 바로 무릎 부상이다. 아픈 무릎 때문에 그는 정상적인 군 생활을 하지 못했다. 군인이라면 배우고 익혔어야 할 기술도, 전우애를 쌓을 시간도 없었다. 두 번의 국군통합병원 행이 만들어낸 기수 열외 상황이다. 얼마 전 전방에서 벌어진 총격과 탈영이 읽으면서 겹쳐 보인 것도 부대 내부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임병과 탄약고 근무를 서는데 한 장교가 다가온다. 기무사 장교다. 그가 두 번이나 다녀온 병원에서 친했던 친구 선한이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말한다. 자살은 분명한데 그 이유를 몰라 이필립 병장이 가서 그 이유를 알아봐줬으면 한다. 아직도 좋지 않는 무릎과 함께 세 번째 입원을 위해 광주국군통합병원으로 간다. 낯익은 공간에 돌아오니 반가운 사람도 있지만 군병원 특수성에 의해 환자들 물갈이가 많이 되었다. 이런 상황과 분위기를 작가는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등장인물들을 한 명씩 소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순간적으로 누군가가 선한이의 자살에 관계가 있을 것이란 촉이 온다. 그런데 작가는 한 번 더 이것을 꼬아놓았다. 내면이 파괴된 사람과 고장난 사람을 등장시켜서.

 

이필립은 엄청난 독서가다. 활자 중독 수준이다. 그는 책읽기를 통해 인간 내면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경험을 한다. 그가 선택한 책이 추리소설이란 것은 이 소설의 얼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군대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조금씩 부각시킨다. 먼저 건강한 병사와 아픈 병사의 구분을 외형적인 모습으로 판단하는 문제를 다룬다. 이 판단 오류는 철저한 계급사회이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군이란 특수성 때문에 더 쉽게 생긴다. 사회라면 병원의 진단서가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되겠지만 군에서는 이런 진찰도 쉽지 않다. MRI 하나 찍기 위한 대기 시간을 볼 때 그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단체 생활에서, 특히 징집된 군인들에게 병원에서 편하게 이병과 일병 생활을 한 상병이나 병장을 자신들의 집단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이 때문에 필립은 겉돌게 된다. 억지로 그 조직에서 선임이라고 뻐기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다. 아웃사이드였던 그의 친구인 선한도 마찬가지다. 정형외과병동에서 만나 마음이 맞았지만 완치와 상관없이 자대로 돌아간다. 군 병원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 특수성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다. 각각 다른 부대와 군에서 온 그들이지만 계급은 존재한다. 병원 관리의 효율성 때문에 병실장이니 도우미니 하는 직책도 생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듯하지만 여기서도 권력이 발생한다.

 

계급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곳, 바로 군대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가 편한 부대에서 만난 최악의 선임이다. 사병이 편한 곳은 장교가 없는 곳이고, 장교가 없는 곳에서 병장은 최고의 권력을 가진다. 예전에 나보다 먼저 군에 간 친구가 끔찍한 경험을 말했다. 자신의 내부반에서 병장이 신병에게 성희롱 이상의 행동을 한 것이다. 내부반의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첫 휴가 나와서 엄청나게 술을 마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병장이 되어 말년 휴가를 왔을 때 이 기억이 흐려지고 빨리 제대해야지만 편한 곳으로 바뀐 것이다. 상황에 따라 기억이 왜곡되고 변하는 곳이 바로 군대다. 악의 사슬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발생한 군 사고를 생각하면 그렇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선한이가 자살한 이유를 알고 싶어 이필립 병장을 병원에 다시 입원시켰다. 그런데 이필립은 자신도 모르게 쓸모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탐정 역할을 한다. 또 한 명의 병사가 죽은 후, 그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은 후 진실에 한 발씩 다가간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살짝 금이 가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고 외친 것도 마음에 생긴 금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병원에는 금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된 인물이 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고장난 사람도 있다. 한 인물은 두려움 때문에, 다른 인물은 재미 때문에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무서운 이야기다. 사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서, 특히 선한의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살짝 힘이 빠졌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더 풀어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들이 죽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은 아들의 이야기 말이다. 두 달만에 썼다고 하기엔 놀라운 문장과 구성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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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시대 -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노정태 지음 / 반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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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논객 아홉 명 중 유일하게 읽지 않는 작가가 김규항이다. 씨네21에서 그의 글을 읽어봤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 중 읽은 것은 없다. 그렇다고 다른 작가들의 책들을 많이 있었느냐 물으면 그 답은 아니다, 다. 비교적 많이 읽은 작가라면 역시 강준만이고, 그 다음은 박노자다. 진중권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은 느낌인데 찾아보니 사 놓고 그냥 두었지 읽은 책은 두 세 권 정도다. 박노자보다 못하다. 오히려 우석훈보다 적다. 유시민이나 김어준, 고종석, 홍세화 등도 읽은 책은 딱 한 권씩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낯익고 출간되면 가끔 사는 작가들이다. 이 낯익음이 바로 이 책의 저자로 하여금 그들을 논객이라고 부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이 아홉 명을 논객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나에게 논객으로 다가온 사람은 여섯 명이다.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어준 등이다. 그럼 나머지 세 명은 뭘까? 이름은 알지만 그들이 일으킨 대중적인 논쟁이나 인지도가 앞의 여섯 명보다 약한 논객들이다. 홍세화의 출세작인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가 내세운 프랑스의 똘레랑스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다고 하지만 대중에게 그는 논객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의 진중권이나 김어준과는 시대와 상황을 달리한다고 해도 강준만이나 박노자와 비교해도 역시 사람들에게 주는 임팩트가 약하다.

 

고종석의 경우 먼저 다가온 것은 역시 소설이다.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게 된 것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헌책방에서 고종석을 좋아하는 아저씨들의 대화를 듣고 한 후다. 그 이후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니 기자, 작가의 이력이 보였다. 그 후 간단한 에세이 한 권을 읽었는데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문장이 좋다고 하지만 역시 문장의 힘을 알 정도의 능력이 없는 나에게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저자도 말했듯이 그는 대중적이지 않다. 그런데 왜 진보 논객으로 그를 올려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가장 많이 읽은 강준만은 90년대 나의 책읽기에 큰 변화를 준 인물이다. 인물과 사상사 책이라면 일단 사놓고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사놓은 책 중 읽은 것은 <김대중 죽이기>와 <노무현 죽이기> 등이 있고, 몇 권의 다른 책들도 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의 책을 읽었다. 참 많은 책이 출간되었는데 나의 취향과 맞는지 술술 잘 읽혔다. 그를 통해 나 역시 조선일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게 되었다. 한 명의 정치인을 어떻게 언론이 죽였다 살렸다 하는지 그 이면을 살짝 엿보게 되었다. 이후 다른 진보 저자들에게 조금씩 나의 지분이 빼앗겼지만 여전히 그의 글은 관심의 대상이다.

 

어디에도 없는 남자, 박노자. 그의 책을 읽고 놀랐다. 그의 해박함과 깊이에 감탄하고, 그가 소련 출신이란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초기에 읽은 것이 대부분인데 신문 사설을 모아놓은 것들이다. 이방인이지만 한국으로 귀화한 그의 시선을 통해 본 한국의 모습은 결코 우리가 이전까지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이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차이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이 부분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우리의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지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책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진중권과 유시민은 책으로 유명해진 듯하지만 실제 읽은 것을 보면 언론을 통해 친숙해졌다. 진중권의 책 중 미학에 대한 책만 겨우 두세 권 읽었고, 다른 책들은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 논객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은 언론이나 시사대담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너무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시민도 마찬가지다. 100분 토론의 사회자로, 엄청난 말빨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토론자로 먼저 다가왔다. 김어준 역시 한때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었던 ‘나는 꼼수다’가 없었다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지 못했을 것이다. 우석훈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88만원 세대>다. 세대 분석은 좋았지만 그 이후를 풀어내는 힘이 약했다. 오히려 ‘나는 꼽사리다’가 그를 더 친숙하게 만들고 논쟁을 불러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사기 열전을 참고해 논객 열전 식으로 기획한 것이다. 그런데 참고로 한 것이 그들의 출판물이다. 책이다. 물론 그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트위터도 인용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바탕으로 한다. 이 방법은 저자의 주관적인 책읽기를 통해 글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아홉 명이 그의 취향이자 그에게 영향을 끼친 논객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그의 글이 상당히 날카롭고 분석적이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방향에서 이 논객들을 본다고 해도 그가 가진 철학과 정당성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곳곳에 흘러나오는 그의 정치색은 이 논객들을 어떤 시선에서 보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반갑고 재미있었고 어떤 순간은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또 다른 시각을 가진 저자가 이들에 대한 논객 시대를 쓴다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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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무더워지고 있는 요즘 더위를 식혀줄 재미있는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 몇 권을 선택해봅니다.

  1. 킹 : 존 버거

  ‘킹’이라는 이름의 개가 바라본, 유럽의 어느 도시 근교 노숙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작가의 책을 한 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열 명 남짓의 사람이 등장한다니 어떤 식으로 이야기갈 풀릴지도 궁금하네요.

 

 

 2. 일곱 성당 이야기 : 밀로시 우르반

 체코가 낳은 '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이면 충분할 듯!. <푸코의 진자>를 연상시킨다는 말에 이번에는 어떤 비밀이 흘러나올지 관심도가 올라갑니다.

 

 

 

 

 3. 1030 : 리 차일드

 잭 리처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가 순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늘 기다려지는 시리즈 중 하나다. 리처의 옛 특수부대 동료들이 등장해 진정한 액션의 합合을 보여준다니 기존 시리즈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도 엄청난 속도감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봅니다.

 

 

 4 러버 소울 : 이노우에 유메히토

 <메두사>의 작가다. 이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비틀스의 앨범 제목과 곡을 차용했다는 것이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그리고 '이 소설은 요정의 숲에 사는 괴물의 이야기입니다'란 작가의 말에 호기심은 더 깊어진다.

 

 

 

  5. 탐정 매뉴얼 : 제더다이어 베리

 탐정 소설과 환상 문학, SF의 영역을 마음대로 넘나든다니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튈지 궁금하다. 탐정 소설의 규칙을 깨는 새로운 탐정 소설이라니 기존의 다른 탐정 소설들과 비교하는 재미도 적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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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재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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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의 소설이다. 작가 후기를 보니 세계문학상 1회부터 응모했다. 응모 이유도 작가가 되고 싶었던 어머니를 작가로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엄마의 일기에 그의 글을 보태 공동 저자 형식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 판사 하지환의 엄마 일기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첫 작품이 10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이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퀸의 노래를 수없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의 제목이 퀸의 노래 제목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노래와 제목이 왠지 같이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퀸의 노래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 하지환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노래이자 그의 삶이 새롭게 정리된 곳인 신해시를 다시 방문하게 만든 한 친구의 죽음과 그 현장에 틀어져 있던 노래이기 때문이다. 멜로디와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이 좋아 들었지만 한 번도 가사 내용을 번역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실제 가사는 충격적이었다. 이 충격적인 가사가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책 정보를 보면 우연한 한마디가 마음의 지옥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실제 내용은 다르다. 물론 죽은 엄마의 사망 원인이 의료 사고의 외양을 가지고, 한 도시를 지배하는 세력과의 외롭고 힘든 투쟁이 앞부분에 나온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투쟁이 중심에 있지 않고 한 남자의 심리 분석으로 흘러가 버린다. 이때부터 이 소설의 힘은 약해진다. 물론 정신분석을 통해 한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기대했다면 다를지 모르지만 감정과 상황과 분석을 도식적으로 대입하면서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구성적으로도 그가 제기한 소송과 함께 같이 교차한다거나 갈등 요소가 중첩되었다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인간의 성장에 박수를 쳤을지 모른다. 소설 속에서는 거의 이 부분만 계속해서 풀어낼 뿐이다.

 

이 책에 가장 관심을 둔 부분은 의료 사고다. 류마티스 환자가 아닌 엄마가 류마티스 약을 몇 년간 복용한 결과 암으로 돌아가신 것을 안 아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풀어갈 것인가 였다. 앞부분에서 빠르게 진실을 알게 되고, 소송을 제기한다. 한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병원의 힘은 거대해서 이제 겨우 발령난 신입 판사에게 계속해서 다양한 소송 취하의 압력이 가해진다. 이 소설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압력이 어떤 식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권력의 힘 앞에 힘겹게 싸우기보다 현실의 한계 속에 그대로 머물고 만다. 그리고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엄마의 관계를 분석하고 이해하면서 현실의 벽 안으로 더 물러서버린다. 치열함이 사라진 곳에서 현직 판사의 유치한 변명만 보이는 것 같다. 물론 아주 현실적인 상황과 관계를 잘 보여준 것은 틀림없다.

 

임직원 천 명이 근무하는 신해성모병원의 류마티스 센터의 전문의 우동규 과장, 그는 퇴행성관절염 환자들을 속여 류마티스 환자로 만들어버렸다.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은 계속해서 통원 치료를 하지 않는 반면 류마티스 환자들은 계속해서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위에 문제가 생긴다. 하지환의 엄마가 그렇게 죽었다. 여기에는 병원의 이익과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같은 의료계의 부정부패도 엮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실이 밝혀진 후 병원이 보여준 행동들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이 부분이다. 법원 관계자가 아니면 이렇게 이 커넥션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보여줄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소설은 친구의 죽음과 귀향,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을 연결해주는 노래가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다. 하지환이 경험한 죽음들이다. 죽음은 단순히 죽는다는 것을 넘어 한 인간이 세상을 새롭게 보고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부분을 정신분석으로 너무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긴박하고 긴장감이 넘쳐야 할 이야기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권력이 부정, 부패와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숨기는지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환에 투사된 작가의 모습이 어느 정도인지 살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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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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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영희 선생의 일 년 열두 달을 테마로 한 영미시 선집이다. 보통 한 달에 두세 편 정도의 시를 실고 각 시마다 간단한 해석 또는 감상을 달아놓았다. 원래는 한 일간지에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란 제목으로 1년간 연재했던 칼럼들이다. 이 중에 계절에 관한 시 29편을 추려서 담은 책이다. 그녀 생전에 일간지 칼럼을 읽은 적도 없고, 글을 읽을 생각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글에 대한 좋은 평이 올라오고, 낯설기만 했던 김점선의 그림이 반갑게 다가왔다. 그런 도중에 이 책이 출간되어 읽게 되었다.

 

영미시를 읽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우리 시도 잘 읽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 한 카페에 올라오는 시를 가능하면 하루에 한두 편 정도 읽으려고 한다. 이 시들을 읽으면서 메말라 가는 감성과 굳어져 가는 표현을 조금 가다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을 읽었다. 많지 않은 분량에 그림까지 같이 실려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읽었다. 읽으면서 어떤 대목에서는 몇 번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에 집중했고, 어딘 가에서는 고 김전선 선생의 그림에 시선을 빼앗겼다. 영어 원문이 같이 실려 있어 한 번 정도는 소리 내어 영어를 읽어봤다. 뭐 그렇다고 제대로 해석도 이해도 못했지만.

 

처음에는 시인 29명의 시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겹쳐지는 시인들이 많다. 아마 연시를 좋아하는 저자의 취향이 반영되어 그들의 시가 몇 편 더 실린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장시의 일부만 발췌해서 실은 것이다.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도 전문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너무 긴 시라면 다른 시로 대체되어야겠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해당월과 시를 연결한 설정은 상당히 좋았다. 시를 읽으면서 계절과 직접 연결해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계절이나 그 시간에만 집중했지.

 

각 해당월과 계절과 인생을 연결해 놓은 설정은 읽으면서 나는 지금 몇 월에 도착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각각 다른 운율과 분위기를 시가 만들어낼 때 그때마다 다양한 시의 세계를 맛본다. 시인에 대한 간단한 주석을 참고하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시와 괴리를 느낀다. 상당히 많은 시들이 그랬다. 그리고 4월에 오면 T.S 엘리엇의 <황무지>가 먼저 떠올랐다. 한때 4월이 오면 라디오 등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시구를 반복해서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과 생동하는 4월의 시를 들려준다.

 

이 시들의 선택이 저자의 투병중에 있었던 탓인지 모르지만 가을을 지나 겨울로 오면 자신의 삶을 조금씩 담아낸다. 물론 <눈덩이>처럼 짧고 동시 같은 시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 못한 길이나 아름답게 늙기를 바라는 심정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랑과 희망과 휴식 등을 노래하는 시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몇 편을 다시 읽었는데 조금 더 깊게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영시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 전에 읽은 하진의 <자유로운 삶>의 주인공이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비록 그는 중국인이면서 영어로 시를 쓰려고 하지만. 저자의 시 번역과 해설과 더불어 고 김전선의 그림도 마음 한 곳에 자유의 바람을 살짝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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