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심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38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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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프레드 바르가스의 다른 책이 몇 권 있다. 할인 판매할 때 사 놓은 것들이다. 워낙 대단한 광고였기에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사 놓고 다른 책처럼 묵혀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행운이다. 왜냐고? 그것은 프랑스 추리문학의 여제로 명명되는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바로 이 책이 '형사 아담스베르그 시리즈' 최신작이란 것이다. 이 소설 이전에 몇 편의 시리즈가 더 있었는데 읽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번역 출간된 책이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이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 남아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도입부에서 간단하게 하나의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한 노부인의 죽음이다.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현장을 둘러보고 빵 속살을 이용해 아내를 질식시켰다는 것을 추리해낸다. 50년 이상 같이 산 부부인데도 남편은 아내의 결벽 등살을 견디지 못하고 죽인 것이다. 이렇게 사건을 해결한 후 경찰서로 간다. 다른 작품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을 동료 형사 베랑크의 복귀 문제를 논의한다. 그때 한 노부인이 경찰서 앞을 서성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이 이전에 비둘기가 죽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누군가가 비둘기 다리를 줄로 묶어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그냥 보고 넘길 수 있는 사건이지만 그는 이 범인을 잡으려고 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은 바로 이 노부인이 가져온 사건이다. 그녀는 딸 리나가 본 환상 때문에 겁에 질렸다. 그 환상은 1777년 유령부대가 노르망디의 본느발 숲에 나타난 것이다. 이 부대는 성난 군대로 불린다. 이들이 지적한 사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리나가 본 사람은 모두 네 명이었고, 그 중 세 명은 아는 사람이다. 그 중 첫 번째 인물인 에르비에가 집에서 사라진 것이다. 리나의 엄마가 걱정하는 것은 에르비에가 죽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때문에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피해가 올 것이란 예상이다. 특히 리나. 예전에도 이 환상을 본 사람을 마을 사람들이 죽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적인 형사라면 이것을 그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믿지 않지만 의심할 수는 있다. 아담스베르그 서장은 노르망디로 달려간다. 그 공포의 숲에서 한 노부인을 만난다. 레온이다. 이 노부인은 사라진 에르비에의 시체를 숲 속 성당에서 발견했다. 자신의 개를 기다린 후 집에 와서 신고한다. 서장과 저녁 식사를 하고 시가를 나누어 핀 후 유대를 쌓는다. 이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것은 헌병대다. 헌병대 대장은 나폴레옹의 제국 원수였던 다부의 후손인 에므리 대위다. 그는 서장이 자신의 관할에 와서 사건 수사하는 것을 싫어한다. 살짝 다툼이 생긴다. 레온의 집 근처에서 쉬던 서장은 이상한 소리를 듣고 레온의 집으로 달려간다. 레온이 바닥에 짓이겨진 상태로 혼수상태다. 이제 사건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여기에 또 하나의 사건이 추가된다. 그것은 경제계의 거물인 클레르몽이 차 안에서 타 죽은 사건이다. 방화된 차가 놓인 장소와 방법 등이 한 명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방화 10범의 모모다. 아담스베르그는 모모가 한 범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직관과 관찰력이 만들어낸 믿음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휘둘러 모모를 범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서장은 억울한 범죄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위험한 수단을 사용한다. 바로 자신이 인질이 되어 모모를 달아나게 하는 것이다. 공범으로는 자신의 아들과 바로 자신이 된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일하는 형사들 몇몇은 이 비밀을 알아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수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그를 감시한다. 상부에서는 모모를 일주일 안에 잡지 못하면 그와 부하 형사들이 잘릴 것이라고 협박한다. 긴장감은 고조된다.

 

하나의 사건만 다루지 않고 여러 건을 같이 펼쳐놓고 진행한다. 세 건의 살인 사건 중 한 건은 해결했고, 비둘기 같은 동물 학대 사건은 조사중이다. 이런 그의 곁에는 특이한 인물들이 있다. 고시를 말하면서 탁월한 수사능력을 보여주는 베랑크, 베랑크를 싫어하고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인 당글라르, 거구지만 비둘기를 되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르탕쿠르, 그 외 다양한 습관을 가진 형사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너무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라 아담스베르그 서장이 아니라면 이들을 잘 지휘할 수 없을 것 같다. 실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범인을 추리해내는 그를 보면 감탄하게 된다. 늘 멋진 형사나 탐정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별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 사건들은 연결되어서 아담스베르그의 통찰력과 추리에 의해 모두 해결된다. 한 마을의 비극 속에 한 가족을 집어넣고, 그들을 사건의 중심으로 만든다. 라나의 환상 속 성난 군대는 그것을 현실화시킨다. 한 명씩 죽는다. 희생자들은 심정적으로 살인자임을 누구나 알지만 증거가 없어 놓아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다. 어떻게 보면 통쾌하지만 현실은 그 뒤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실패했다. 경찰들의 노력과 오랫동안 쌓인 경험은 날카로운 이성과 더불어 범인에게 한 발 다가가게 한다. 뭔가 허술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밝혀진다. 성난 군대 전설이 중심에 서고, 현실의 사건들이 그것을 뒷받침하면서 짜임새 있게 나아간다.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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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뉴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보경 옮김 / 학고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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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여행 에세이다. 분량이 많을 것 같은데 실제 주석을 빼면 130쪽도 되지 않는다. 보통의 여행 에세이라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분량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달려들었다. 오래 전에 사강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언제나 빗나간다. 열네 편에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을 담은 에세이들이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긴 호흡의 문장들이 잠시도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내가 아는 곳의 여행기는 나도 모르게 기억을 더듬게 만들었다. 물론 그곳도 가본 곳은 아니다. 책과 영화와 텔레비전로 본 곳들이다.

 

앞에 봉주르란 제목을 단 이야기가 네 편 있다. 뉴욕, 나폴리, 카프리, 베네치아 등이다. 이 연작들은 잡지 엘르의 편집장 청탁을 받아서 쓴 글이다. 요즘 흔히 보게 되는 여행 에세이와 달리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다. 간략하게 그린 그림 한 장이 있을 뿐이다. 만약 그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면 과연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그림이다. 못 그렸다기보다 지역적 특성을 알 수 있는 특별한 상징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각 지역은 사강의 멋진 묘사와 설명 덕분에 순간적으로 생명력을 얻어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여행에 대한 환상을 살짝 불러온다.

 

대부분 젊을 때 쓴 에세이지만 몇 편은 만년에 쓴 것 같다. 특히 ‘나의 애마 이야기’는 말년의 그녀 삶을 요약해서 들려주는 느낌이다. 도박과 약물 중독을 살짝 다루는데 이 책을 출간한 아들의 모습이 잠시 겹쳐서 떠올랐다. 어머니의 엄청난 부채를 상속받은 후 빚을 모두 갚고 다시 사강의 책들을 내놓았다는 부분에서는 ‘얼마나’, ‘어떻게’와 같은 호기심과 함께 ‘대단하다’는 감탄까지 자아내게 되었다. 말에 대한 그녀의 첫 경험과 애정은 글 곳곳에 너무 강하게 심어져 있어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봉주르 시리즈를 제외하면 가장 재미있지 않나 생각한다.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카스트로가 등장하는 ‘쿠바’ 편이다. 쿠바 혁명 기념일에 전 세계에서 50명 정도의 기자를 뽑아서 혁명 후 상황을 알리려고 하는데 이것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카스트로가 연설하는 곳으로 가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받아야 한다. 연설 후에 돌아오는 것은 더 고역이다. 꽉 막힌 그 길을 100만 명의 시민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돌아온 후 그가 쓴 글에서 쿠바 경제에 대한 부분이 있다. 경제 회생이 요원할 것 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이 된다. 미국의 경제 봉쇄는 쿠바인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자생적으로 뭔가를 발견하고 발명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 부족함이 가시지 않지만.

 

짧은 글이지만 사강이 어린 시절 고향 이야기는 강렬함이나 신기함이나 재미는 부족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긴다. 평화로운 고향의 풍경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짧게 쓴 글 때문이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날이 될 것이다.” 여행 에세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지만 어린 시절 고향 이야기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 바뀌어 그 기억이 흐릿하지만 바뀐 그곳을 뚫고 과거의 추억과 기억이 뛰어노는 장면을 잠시 볼 때가 있다. 그 아련한 그리움이라니. 잘 생각해보면 수많은 일상의 반복 중 한 장면일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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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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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스위스를 여행하고 온 친구가 아주 강하게 스위스 여행을 추천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에 홀딱 반한 것이다. 그 후에도 유럽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스위스를 추천한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회사의 팀장이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다. 꽃할배의 첫 여행지 중 한 곳도 스위스였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방송에서 마테호른과 파라마운트 영화사를 연결해서 설명하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이렇게 나에게 스위스는 몇 가지 풍경과 치즈, 시계 등으로 대변되는 제품으로 알려줘 있었다. 최소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의 남편은 이탈리아 출신 스위스인이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스위스 개발 당시에 이주노동자로 스위스에 왔다. 이것은 알불라 철도 이야기에 잠시 나온다. 이 철도 개발은 스위스를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 기차를 타고 터널을 지난 후 보게 되는 풍경을 묘사한 글에서 나의 상상력이 꿈틀거렸다. 반면에 꽃할배에서 본 마테호른의 풍경은 약간 심심했다. 카메라 앵글 속 풍경이 실제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일까? 솔직히 이 책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책의 중심이 되지 않다 보니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가끔 스위스 여행 블로그 포스팅에 나오는 것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아닌 사람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니체에서 바그너까지 모두 22장에서 적지 않은 스위스 방문 혹은 생활자를 다룬다. 재미난 것은 니체가 바그너를 숭배하다가 그의 변화에 실망한 후 극렬하게 비판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순서를 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22장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들이 수없이 나온다. 이것을 단순히 방문객으로만 다루지 않고 그들의 작품이나 정치 활동 등을 같이 연결해서 설명해준다. 같은 지역에 있었다고 해도 시대가 다르거나 만난 적이 없다거나 같이 만났다고 해도 각자가 너무 거장이라 각각 한 장을 할애한 듯하다. 단순히 스위스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책이라면 이런 식으로 편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위스가 영구중립국이란 것과 징병제란 사실만 알고 있었지 여성참정권이 1971년에야 허용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지금이야 국민소득이 높지만 한때는 이민이나 인력을 파견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유명한 스위스 근위병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스위스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은 과거는 나치와 연결되고, 현재는 은행과 이어진다. 나치가 유럽을 제패하던 그때 가혹한 국경 정책은 수많은 유대인이 죽음의 수용소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당시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질시와 비난 속에서 힘들게 살았다. 다른 책에서도 봤지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정하는데 그들은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물론 한국처럼 아직도 인정하지 않거나 일본처럼 부인하는 나라도 있다.

 

스위스가 관광대국이 된 데는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알프스를 알린 것도 처음에는 영국인이었다는 사실이나 빈약한 자원으로 인해 만들어진 음식이 풍듀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런데 이 퐁듀가 스위스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첫 번째 음식이 되었다.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관광과 연계해서 홍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스위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폐병환자들이 머물던 다보스가 예전에는 영화 촬영도 거부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필요에 의해 그 사실을 알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최근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재빠른 정책 변화에 놀란다. 그들의 놀라운 스토리텔링 관광 영업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중립국이란 이유 때문인지 스위스를 거쳐간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당연히 레닌이다. 여성참정권 이야기는 스위스를 새로운 면모를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존엄사로 부르기도 하는 조력자살이다. 안락사에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된 것도 의미있었지만 이런 조력자살을 법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여성참정권을 그렇게 늦게까지 허용하지 않은 나라가 맞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이 나라는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엇박자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2013년에 논란이 되었던 사적사용 토렌트 법적 인정 같이 놀라운 판결도 나온다.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언어의 유사성 때문인지 독일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스위스 국적은 물론 더 많다. 여행 가이드 책이 아니다 보니 여행지에 대한 설명보다 그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이 더 중심에 놓여 있다. 인물이 중심에 놓이다보니 당연히 그들의 작품이나 정치 활동 등이 같이 곁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한 참고자료 목록을 보니 각장 마다 몇 권씩 있다. 번역본이 없는 것이 더 많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왜 예상보다 훨씬 시간이 걸려 읽게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통상적인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좀더 여유를 가지고 있거나 어떤 목적을 가진 여행자라면 도움이 될 책이다. 아니면 나처럼 스위스와 그곳을 다녀간 방문객들의 이야기와 삶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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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불면의 밤을 넘어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원경 옮김 / 박하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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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책을 받아서 펼치면 작가의 이력을 먼저 본다. 낯선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에 읽었던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를 쓴 작가다. 책을 읽기 전 예전에 쓴 서평을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읽었다. 읽으면서 약간 잊기는 했지만 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우디 앨런의 뉴욕과 커트 보네거트의 블랙유머가 한데 모였다’란 평이었다. 모두 읽은 지금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전에 다른 소설의 서평을 찾아봤다. 상당히 힘들게 읽었던 기록이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도 그렇다. 문장이 어려워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어렵다는 의미다.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고 오랫동안 주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첫 문장은 ‘입은 기묘한 곳이다’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치과의사이고 이름은 폴 오로르크다. 그에게 입은 아주 중요한 곳이다. 그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곳인 동시에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이다. 전 경기를 비디오로 녹화할 정도다. 86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게 되어 기뻐했지만 이 우승으로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면서 예전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잘 이해되지 않는 마음이다. 그는 치과의사로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치료보다 예방에 신경을 쓴다. 환자들이 치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순간 뜨끔했다. 나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하고.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의 병원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자 뛰어난 치위생사 콘보이 부인이 있다. 서무를 보고 한때 사귀었던 아름다운 유대인 코니와 배우를 꿈꾸는 직원이 한 명 더 있다. 병원은 잘 되어 돈을 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불면으로 가득하다. 이 불면의 시작은 그의 아버지가 자살한 후에 생겼다. 잠을 자지 못하는 그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성과 감성이 충돌한다. 홀로 자기를 두려워하는 소년이 엄마에게 계속 말하는 것과 힘들지만 이것을 받아주는 엄마의 모습 때문이다. 그가 몇 시간을 그냥 조용히 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소설 속 한 장면에서 이것이 나오는데 새벽에 깬 후에 다시 잠들지 않고 녹화해두었던 레드삭스 경기를 본다.

 

그는 종교와 신에 대해 아주 냉소적이다. 그는 메일에도 보스턴 레드삭스 관련 글을 올리는 게시판에도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병원은 홈페이지도 없다. 오죽했으면 콘보이 부인이 책을 주문해서 병원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의사에게 조언했겠는가. 이런 조용한 삶에 큰 돌이 하나 날아와서 파문을 일으킨다. 바로 병원 홈페이지다. 그가 만들지 않았고, 자신의 이력에 대한 설명도 엉망이다. 당연히 만든 곳에 메일을 보내지만 답이 없다. 그리고 그의 본명을 사용한 트위터 계정이 생긴다. 이렇게 하나씩 온라인 공간에 그가 아닌 그의 이름을 이용한 누군가가 활동을 한다. 미스터리소설이라면 의식이 분리되어 다른 사람처럼 활동하는 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지만 최소한 여기서는 아니다.

 

그의 이름으로 올려진 글들은 함축적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도 있다. 이것을 발견하고 알려주는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던 코니다. 그인 척하는 하는 누군가가 올린 이야기는 구약을 뒤집은 내용이 있다. 아말렉인과 관련된 이야기다. 나중에 나오지만 유대인의 율법에도 이 아말렉인이 나온다고 한다. 그들을 반드시 물리쳐야 할 존재다. 그리고 울름이란 단어가 나온다. 처음 이 단어가 나왔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 이 글을 쓰면서 뒤적이다가 환자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유대인과 유대교와 아말렉과 울름은 나를 혼돈 속으로 밀어넣었다.

 

닥터 오로르크인 척하는 존재는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얼마나 잘 압니까? 하고. 이 질문은 나중에 그의 가족 족보와 연결된다. 수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 그 이력은 그조차 잘 몰랐던 것이다. 아버지의 자살 때문인지 그는 누군가의 가족이 되고 싶어 한다. 첫 번째 실패는 그가 무신론자라는 이유였고, 최근의 코니는 아이를 갖는 것 때문이다. 그는 아이 갖기를 두려워한다. 이것도 아버지의 자살 탓이다. 아이가 생기면 자살을 고민할 수 없다는 현실적이고 부성애 가득한 판단 때문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세상과 직접 부딪히면서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은 없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보면 인터넷에 자신인 척하는 누군가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내용일 것 같지만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메일로 교신을 하고, 누군가가 찾아오지만 이것이 자아 찾기나 영적 문답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르크가 보여주는 독설과 비판이 블랙유머의 재미를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뒤에 그를 사칭한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지만 이를 둘러싼 해석이 갈라지는 것을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분명한 결론을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닌가? 재미있는 부분과 생각할 거리가 많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하나로 꿸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어렵다. 물론 미 프로야구에 대한 부분은 쉽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올해 그 팀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떤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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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 평전 - 진보적 민족주의자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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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도 몽양 여운형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가끔은 공산주의자 박헌영과 이미지가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몽양에게 덧씌우져 있던 공산주의자 이미지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여러 번 말하지만 기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의 이미지는 그를 두려워한 세력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이 환상이 자신들의 이익과 맞아떨어질 때 그것은 현실로 뒤바뀐다. 해방 후 혼란 정국에서 그나 김구가 뛰어난 정치 감각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 결과로 하나로 암살이라는 불행한 비극을 겪은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저자는 시대순으로 몽양의 흔적을 따라 간다. 그의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긴 여정을 다루는데 새로운 부분에 눈길이 가지만 전체적으로 강한 충격을 주기에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새롭게 몽양을 인식하고 해방 전후사를 공부하는 입장에 큰 도움을 주겠지만 왜 그 시대에 최고의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조금 내용이 부족해 보인다. 아마 이것은 나의 문제가 더 클 수도 있다. 아직도 만들어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를 인식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박정희가 그러했듯이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조금씩 더하게 되면 완전히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혈농어수(血濃於水).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것은 한국적민족주의, 한국적민주주의, 한국적사회주의가 결합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인 그를 표현하기 위한 단어다. 여기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그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러시아에 가서 레닌 등을 만났고,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조국해방을 염원하면서 활동했었다. 이것이 그를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몰고, 폄하하고, 미군정과 멀어지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이렇게 하게 된 이유를 그 시대와 상황을 같이 곁들여 설명하는데 왠지 모르게 이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변명처럼 다가온다. 한 권의 평전에서 이 부분을 깊게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더 풍성한 자료와 더불어 몽양의 삶을 재해석하는 일이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해방 전후에 집중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몽양이 국내에서만 활약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해외에서 활동한 것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낯설었다. 임시정부의 수립을 둘러싼 비화는 그 시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임시정부 수립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이것이 해방 전후 국내의 정치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쳤을 것 같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파편적으로 혹은 암기식으로 기억하는 상해임시정부의 인물들을 더 잘 알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몽양이 해외 망명 12년 차였던 1929년 영국조계에서 체포되어 조선으로 넘어온다. 3년 간 옥고를 치룬다. 요즘에는 3년형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지만 몽양이 외국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를 그렇게 힘들게 잡아들여야 했는지 하는 부분에서 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가 손문이나 레닌 등과 만나고, 도쿄에서 아나키스트들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는 사실 등은 아직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야욕을 내보이지 않은 일본에게는 손톱 밑의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체포가 오히려 국내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고, 이것이 해방 후 여론 조사의 결과로 나왔다.

 

몽양의 친일을 부각하여 자신들을 물타기 하려는 세력이 있다. 바로 친일파들이다.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면서 호의호식하고 해방 후에 그 세력과 권력과 경제력을 움켜진 그들은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몽양을 공격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들이 사용하는 비열한 공작인데 대중들은 쉽게 이 이미지를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볼 때 가장 분노했다. 욕했다. 그리고 그를 두려워한 세력이 만들어낸 암살. 또 암살. 최근에 개봉한 영화 <암살>과는 완전히 다른 의도가 있는 암살이다. 역사의 물길이 바로 흘러갈 수 있는 그 시절에 다시 거꾸로 흘러간다. 한국 현대사에서 몇 번이나 있었던 일들이다.

 

바른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려주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 역사의 무의미한 가정을 몇 번이나 하게 된다. 미군정이 건준과 합작했다면 친일파가 청산되었을 텐데, 반민특위의 활동이 제대로만 되었으면 우리의 역사가 바로 섰을 텐데. 몽양과 김구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이승만의 세력이 그렇게까지 기승을 부리지 못했을 텐데. 이런 불가능한 가정을 하는 것은 바로 지금 현재의 역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장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 어려웠던 시절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들의 재산과 청춘과 생명을 바친 분들이나 그 후손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몽양에 대해 조금 더 알았다. 그리고 더 공부해야 할 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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