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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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를 처음으로 만난 작품은 <헤드헌터>였다. 그를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은 해리 홀레 시리즈다. 이 책들이 모두 비채에서 나왔는데 처음 이 작가의 작품이 나왔을 때만 해도 재미있게 잘 쓴다 정도였다. 해리 홀레 시리즈 중 가장 먼저 번역 출간된 <스노우맨>을 보았을 때도 엄청나게 큰 기대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이어서 나온 시리즈를 보면서 그에게 완전히 빠졌다.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스탠드얼론 작품이 한 권 더 출간되었다. 바로 이 작품이다. 액션과 반전이 뒤섞여 작가의 능력이 잘 발휘되어 있다. 멋진 작품이다.

 

아들. 그는 아버지를 존경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살한 아버지와 유언장을 발견한 뒤 열여섯이란 어린 나이에 마약 중독자가 된다. 존경했던 아버지가 부패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은 그를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미성년을 벗어난 후에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뒤집어쓴다. 감옥에 갇힌다. 이 감옥에서도 그는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쓴다. 그 대가는 헤로인이다. 작가가 소년이라고 부르는 이 아들의 이름은 소니다. 그는 감옥 속에서 고해신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죄수들은 그에게 죄를 털어놓고 그의 기도를 통해 안식을 얻는다. 감옥 속의 성자와 같다. 삶의 의지를 잃은 소년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다. 하나의 고백을 듣기 전까지는.

 

자신의 삶을 파괴한 소년에게 한 죄수가 고백한다. 그의 아버지는 부패 경찰이 아니었다고. 경찰 내부에 존재하는 첩자를 잡으려고 했다고. 그 첩자에게 역습을 당해 아내와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유서를 가짜로 쓰고 자살했다고. 이 고백은 마약이 주는 평온 속에서 살아가던 소년을 뒤흔든다. 그를 감싸고 있던 세계가 깨어진다. 소년은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처절한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단순히 약물 중독에서 벗어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탈옥을 해야만 복수를 할 수 있다. 의지와 치밀한 준비는 사람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그를 감옥에서 나가게 한다. 이때만 해도 소년이 오슬로를 어떻게 뒤흔들지 예상도 못했다.

 

소년은 감옥에 있으면서 많은 고해를 들었다. 그를 희생양으로 삼은 살인 사건도 있다.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안 후 그는 복수를 꿈꾼다. 그가 감옥에 갇힌 십 수 년은 세상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왠지 짠하다. 소년은 가짜 신분증으로 휴대폰을 개통하고, 마약중독자를 위한 센터에 들어가서 쉴 곳을 만든다. 그리고 이곳에서 마리타를 만난다. 이제 하나의 거점이 만들어졌고, 첫 번째 복수를 위해 떠난다. 부유하고 평온한 가정집에서 한 여인을 쏜다. 집을 뒤져 현찰과 보석을 들고 나온다. 왜 그녀를 죽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죄를 지었기에 하고. 이 의문을 풀어주는 것은 소년이 아니다. 시몬 경정과 카리 형사다.

 

시몬은 도박중독자였다. 한 여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내인 엘세를 만난 후 중독에서 벗어난다. 그는 소니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가 소년이 살인한 첫 현장에서 보여준 짧지만 강렬한 활약은 전문가의 향기가 풀풀 날린다. 모두가 강도의 소행이라고 할 때 그는 정밀하게 현장을 보고 추리하고 증거를 쫓는다. 그의 결론은 다르다. 이것을 카리가 하나씩 배운다. 두 번째 살인 현장을 봤을 때도 그는 다른 형사와 다른 시각에서 현장을 본다. 이것은 그가 탁월한 형사란 점도 있지만 이전에 탄도학을 전문으로 하는 형사였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약 전담 형사를 한 후 경력을 쌓기 위해 살인 사건 전담으로 온 카리의 도움이 가세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부패는 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쌍둥이라 불리는 어둠 속 배후는 오슬로의 정치, 경제, 관료 조직 곳곳에 자신의 세력을 심어 놓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악당들은 그의 수하들이다. 그는 인신매매, 마약 판매, 무기 중개, 살인 의뢰 등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모든 일을 한다. 오슬로를 어둠 속에서 지배한다. 그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실 중반 이후다. 소년이 저지르는 연쇄 살인이 가리키는 방향이 분명해진 뒤에 나타난다. 그 앞에 그의 수하들이 한 명씩 소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많이,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충분히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소니,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빠진 마르타, 소니의 탈옥과 살인 현장을 둘러 본 후 소니를 찾으려는 시몬, 형사를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단계로 생각하는 카리, 동네 양아치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소니를 몰래 훔쳐보는 소년 마르쿠스. 이들이 등장하여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대단한 몰입으로 단숨에 끝까지 달려가게 만든다. 살인자를 처단하면서 더 큰 악에 다가가는 소니의 모습은 통쾌하지만 사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습에는 답답함을 느낀다.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았기 때문일까? 이제는 상투적인 말이 된 ‘역시 요 네스뵈다’를 반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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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의 대국민 보고서
고상만 지음 / 돌베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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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란 이름만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 가끔 읽은 역사서에 그 이름이 나왔지만 그렇게 비중이 높지 않았다. 그러다 이 이름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나는 꼼수다>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다루었을 때였다. 출퇴근길에 들었는데 박정희 독재자 시절의 한 단면을 잘 알 수 있었다. 한때 박정희는 영웅으로 인식되었다. 그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후 국장을 치르던 그때 외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이 이미지는 한동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것이 사라진 것은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의 악행이 하나씩 드러나면서였다.

 

지금도 그의 이런 악행을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결단으로 이해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집안 어른들을 만난다. 답답하다. 못 먹고 살 때, 한 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던지 하려고 했던 우리의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보다 대통령 덕분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방 후 친일 세력이 그대로 남아 정권과 경제를 휘어잡았던 것을 감안하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훌륭한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장준하다. <사상계>란 잡지 발행인으로 알고 있었던 그다.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그 시대 감히 박정희에게 돌직구를 날리고 감옥도 참 많이 다녀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책은 <나꼼수>의 내용과 상당 부분 겹친다. 방송이 어떻게 보면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방송에서 해주지 못한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 방송이란 한계 속에서 요약해서 들려줄 수밖에 없었던 것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도 같이 알려준다. 의문사진상위원회 조사관으로 이 죽음을 조사했던 고상만 조사관의 기록들이 국가기록원 2074년까지 자료 비공개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관계자들이 모두 죽고, 그 기억이 희미해진 후 공개하겠다는 의도다. 이 자료가 누군가에게 엄청난 위험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가에서 외부인사를 뽑아서 조사한 자료임을 감안한다면.

 

장준하의 죽음은 분명한 타살이다. 무덤이 비로 무너진 후 이장하면서 발견한 두개골의 흔적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이 타살이라고 했을까.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활동 당시 장준하의 시체를 통한 검안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정확한 조사를 방해할 세력이 두려워 시체 발굴을 하지 않았다. 거의 30년이 다 된 시간이 흘렀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조사관이 자료를 관계 기관에 요청했을 때 제대로 온 것이 없고, 자료가 없다는 회신이 온 것을 보면 말이다. 최근에 이 자료가 70년간 비공개 자료로 묶였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포천 약사봉에서 추락사했다는 날짜는 1975년 8월 17일이다. 그가 자발적으로 등산을 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위험한 길을 같이 내려오면서 추락하는 것을 봤다는 김용환의 증언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가장 큰 의문은 산에서 굴러떨어진 사람의 옷이나 같이 가지고 있던 용품들이 너무 깨끗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면서 최근에 국정원이 보여준 허술한 작전들이 떠올랐다. 기록을 삭제하고 자살했다는 국정원 직원의 차가 다르다거나 호텔에 잠입해서 외국정부 정보를 빼려다가 잡힌 것 등이 먼저 생각난다. 이런 전통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하면 너무 나간 것일까? 뭐 그 덕분에 한 항일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장준하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면을 파고들게 되었다.

 

단순히 장준하 의문사만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가 경험했던 몇 가지 의문사도 같이 다루고 있다. 다른 방송에서 이미 본 것이지만 국방부와 국정원의 지독한 정보 폐쇄나 왜곡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서로 상반되는 행동을 보인 장준하와 박정희의 간략한 개인사를 앞에 넣었다. 이 작업은 장준하가 왜 이런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박근혜를 둘러싸고 있었던 최태민 목사와의 스캔들도 당시 비서실장의 기록을 통해 명확하게 말한다. 언론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것만으로 엄청난 뉴스가 되었을 텐데 그냥 넘어갔다.

 

“우리 사회는 껄끄러운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역사는 그런 문제들을 맡아주는 전당포가 아니다.”(13쪽)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한 말이다. 현재의 시간들이 바로 역사임을 부정하고, 이 문제를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세력이 늘 하는 변명이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동안에는 이 문제를 무시하고 숨기고 왜곡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이 자료의 70년간 비공개 결정이다. 덕분에 이 책이 나와 진실의 일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그 이유를 책 뒷부분에 적었다. 너무나도 분명한 타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장준하 의문사 외에도 우리 사회는 수많은 의문사들이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군부대로 가면 이 의문사는 더 많아진다. 너무나도 빤한 것도 그들은 숨기고 왜곡하고 모른 채 한다. 관료적으로 굳어진 조직이 얼마나 문제인지 잘 알려준다. 장준하 의문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느끼고, 너무나도 분명한 자료에 이제는 해결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았다. 답답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언제 이런 의문사들이 깨끗하고 정확하게 온 국민에게 알려질까? 아주 먼 훗날의 일처럼 다가온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자. 잊지 말자. 모든 것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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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랜드 1 - 셉템버와 마녀의 스푼
캐서린 M. 밸런트 지음, 공보경 옮김, 아나 후안 그림 / 작가정신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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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화려한 수상 이력과 수많은 호평에 혹해서 선택했다. 그런데 앞부분을 읽으면서 약간 당황했다. 내가 예상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적응하게 되었다. 작가가 꼼꼼하게 묘사하고 설명한 캐릭터와 세계가 아주 멋있었다. 영화 등으로 만들어졌을 때 풍성한 장면을 보여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예상은 다 읽고 난 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읽으면서 어디에서 본 듯한 설정과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대충 맞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 등을 오마주했다는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5월에 태어난 소녀의 이름은 셉템버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끌려갔고, 엄마는 군수 공장에서 비행기 엔진을 만든다. 소녀는 일상이 따분했다. 이때 초록 바람이 찾아와 함께 모험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셉텝버는 신나는 모험을 하겠다는 기대를 품은 채 페어리랜드로 향한다. 책을 통해 알고 있던 모험과는 전혀 다른 모험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초록 바람과 함께 페어리랜드를 여행할 것이란 예상은 입국 심사대에서 깨진다. 그녀는 홀로 이 낯선 세계를 여행해야 한다. 겨우 열두 살 소녀에게는 힘든 일이다. 약간 긴장한 채로 소녀의 모험을 읽기 시작한다.

 

갈림길에서 한 길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앞으로 그녀의 삶을 결정한다. 결코 평탄하지 않다. 길을 가는 중 쌍둥이 마녀와 인간늑대 부부를 만난다. 이들은 미래를 볼 수 있다. 소녀는 이들을 만나 한 가지 부탁을 받는다. 후작이 가져간 마녀의 스푼을 가져다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소녀의 미래를 보고 알려주겠다는 조건이다. 수락한다. 소녀는 후작을 만나 마녀의 스푼을 가져오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가는 도중에 셉템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용을 만난다. 그 용은 어머니 용과 아버지 도서관이 맺어져 탄생했다. 생물과 무생물의 결합이라니 놀랍다.

 

셉텝버의 친구인 용의 이름은 엘이다. 그는 후작의 법령에 따라 날개를 묶고 있다. 날 능력은 되지만 법에 의해 날지 않는다. 그의 이름이 엘인 것은 그가 도서관에서 A부터 L까지만 읽고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단어로 시작하는 명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재미난 설정이다. 이 설정은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나온다. 모험에는 항상 새로운 지명과 사람 등이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발한 설정은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셉템버의 모험이 이어지는 동안 꾸준히 나온다. 왠지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면 <원피스>와 비슷한 부분도 상당히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나간 것일까?

 

작가가 캐릭터에 불어넣은 생명력은 대단하다. 요정들이 사는 세상을 인간의 그것과 비슷하게 만들어놓아 완전히 딴 세상이 아님을 말해준다. 맬로 여왕이 사라진 후 권력을 잡은 후작의 법들은 자유로운 존재들을 억압하는 역할을 한다. 현실에서 독재 정치나 미국의 관료주의를 은유했다고 하는데 한국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 외에 아는 만큼 많은 설정과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역자조차도 모두 파악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소설 속에는 많은 설정과 은유가 심어져 있다. 이런 종류의 판타지를 거의 읽어보지 못한 나 같은 독자에게는 낯설다. 그럼에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풍성한 캐릭터와 아직 풀어놓고 거둬들이지 못한 설정들이 남아 있다. 이제 겨우 하나의 이야기가 끝났을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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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될 거라고 오키나와 In the Blue 19
이진주 지음 / 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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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 직원이 오키나와로 휴가를 다녀왔다. 가기 전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하루에 여섯 끼 정도 먹을 것이라고 해서 그러려면 오사카로 가지! 라고 말했다. 직원은 일본 방사능이 걱정되어 이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일본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최근에 본 TV에서 방사능을 피해 본토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을 봤는데 이 책에도 그 부분이 나온다. 덕분에 오키나와는 급속하게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음식도 새롭게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반전처럼 오키나와도 자급자족하는 공간이 아니란다. 본토에서 쌀과 미역 등의 일부 해산물을 수입해서 쓴다. 과연 완전히 안전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오키나와에 대한 설명에 ‘하와이보다 가깝고 제주도보다 이국적인, 동남아보다 편하고 괌보다 뭉클한, 어떻게도 설레는’ 표현이 있다. 맞는 말이 대부분이다. 동남아보다 편한 곳이란 표현을 빼고.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온다. 두 곳 모두 낯설다. 가격을 따지면 동남아가 더 저렴하다. 비행가 값은 빼고. 그리고 두 지역이 보여주는 풍경과 음식이 다르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도 맛이 다른 것 같다. 불행했던 오키나와의 역사를 조금씩 알게 되면 이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나에게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로 더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얼마 전 오키나와의 간단한 역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진이 참 많은 여행 에세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유일하게 가본 도쿄와 다른 모습을 많이 발견한다. 글도 그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정보를 나열하지 않는다. 만약 오키나와를 여행하는데 가이드북으로 선택하려고 했다면 말리고 싶다. 참고서적 정도라면 나쁘지 않겠지만. 360장의 사진이 실려 있으니 어떻게 보면 사진집에 더 가깝다. 물론 그 위에, 옆에 저자의 단상이, 경험이, 감상이 차분히 적혀 있다. 전문 여행가의 시각은 가끔 새롭게 여행지의 풍경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것을 발견할 때 떠나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해진다.

 

이 책의 핵심 단어는 바로 ‘난쿠루나이사’다. ‘어떻게든 되겠지’란 의미다. 우리가 알고 있던 오키나와의 외피 안에 감추어져 있던 한스러움의 반전을 표현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있는 오키나와는 사실 우리가 겪고 있는 미군의 문제를 그대로 혹은 그 이상 경험하고 있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의 실수인지 아니면 실제 그런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문장이 있다. 오키나와의 옛 나라 이름인 ‘류큐는 일제 강점시대에서 미군정을 거쳐 다시 일본에 복속되는 것을 선택한 역사가 되었다.’란 문장이다. 과연 그들이 일본에 복속되는 것을 자신들의 의지로 선택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2차 대전 당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더.

 

여행을 가면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기보다 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그 도시를 돌아다니길 좋아한다. 그런데 이 하룻밤의 잠을 멋지게 표현한 글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다녔어도 잠을 자지 않고 떠난 여행지는 관광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무게를 가지지만 하룻밤을 지낸 여행지는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인격을 갖게 된다.” 이 말처럼 자고 일어난 여행지의 아침은 다르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 숙고 근처의 길들이 익숙해지면서 낯선 여행지가 아닌 아는 곳에 놀러온 듯한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이때가 정말 좋다. 이 편안함과 익숙함이 또 다른 낯선 공간과 만나면서 깨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엔 목차가 없다. 약간 불편하다. 공항이 있는 나하에서 시작하여, 북부, 중부, 남부를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과 음식을 찍고 글로 남겼다. 부록이 있어 풍부한 정보를 주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다만 소바에 대한 정보는 재미있다. 메밀국수가 아닌 밀가루 국수이기 때문이다. 미군기지의 영향 아래 있다 보니 원래의 것과 뒤섞여 만들어진 음식 문화도 눈길을 끈다. 우리의 부대찌개가 떠오른다. 직원이 가기 전까지 크게 관심이 없었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도 그렇게 관심의 대상이 아닌 곳이었는데 이제는 왠지 모르게 강하게 끌린다. 조금 길게 머물면서 두세 곳 정도 여유있게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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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필요 없다
베른하르트 아이히너 지음, 송소민 옮김 / 책뜨락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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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글 중에 나의 시선을 잡아 끈 게 있다. 바로 이 작품을 쓰기 위해 6개월 동안 장의사에서 보조원으로 일했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작품의 소재를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등의 취재를 하는 경우는 많다. 물론 자신의 전직을 이용해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많다. 하지만 이 작가처럼 직원으로 일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보통의 짧은 기간 동안의 경험만 쌓고 그만두기 때문이다. 이렇게 먼저 한 점을 딴 후 <덱스터>와 <킬 빌>에 대한 글이 나를 사로 잡았다. 특히 <덱스터>는 소설 속에도 잠시 나오지만 내가 예상한 잔혹한 복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블룸은 고아다.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다. 이 부모가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장의사를 물려받는 것이다. 어린 블룸을 양부모는 아주 혹독하게 키운다. 열 살도 되지 아이를 염하는 곳에 데리고 들어가서 일에 익숙해지길 바란다. 보통의 시체도 무서운데 찢기고 너덜너덜해진 시체까지 참석하게 만든다. 어린 아이가 무서워 내는 말은 쉽게 묵살된다. 이런 양부모와 함께 여행을 간 그녀가 그들이 바란 도움을 거절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이들은 물에 빠져 죽고, 그녀는 양부모의 장의사를 물려받는다. 더불어 가장 사랑하는 남자 친구인 마르크를 만나고, 둘은 결혼까지 한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블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형사인 마르크는 좋은 아빠이고, 시아버지는 그녀의 아이들을 잘 돌봐준다. 평온한 가정이다. 이 가족에 한 명 더 덧붙여진다면 레자가 있다. 그는 보스니아 사람이다. 인종 대학살의 와중에 살아남았다. 현금인출기를 털려고 하다가 마르크에게 잡혔지만 그의 사정을 들은 마르크가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 후 레자는 브룸의 가장 훌륭한 조수가 된다. 사업은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은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 이런 평온한 가족에게 무시무시한 사건이 생긴다. 바로 마르크가 뺑소니차에 치여 죽은 것이다. 범죄의 냄새가 강하게 난다.

 

마르크는 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둔야란 여자가 신고한 것이다. 다른 경찰이 거절한 것이지만 그는 강한 범죄의 냄새를 맡았다. 둔야를 만나 자신이 다시 조사하겠다고 한다. 그녀와 만나 그녀가 겪었던 사건의 세부적인 이야기를 듣고 녹음한다. 이 녹음을 브룸이 마르크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발견한다. 단순한 뺑소니 사건에서 타살의 흔적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하지만 분명한 증거가 없다. 둔야를 찾는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트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얼굴은 모르지만 수없이 들은 목소리라 금방 안다.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녀가 겪었던 참혹한 강간과 무지막지한 폭력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둔야가 말한 다섯 명의 남자를 찾아 복수를 하려고 한다.

 

여자 장의사가 품은 살의는 너무나도 강렬하고 잔혹하다. 첫 번째 용의자를 찾아낸다. 작은 실수를 하지만 무사히 처리한다. 장의사는 시체를 처리하는데 최상의 직업이다. 자신의 화장터를 가지고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시체들이 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시체들은 그녀가 처리한 시체 토막을 분산해서 숨기기에 딱 맞다. 비록 처음 하는 일이라 무게를 감안하지 못한 잘못이 있지만 말이다. 이 실수들은 다음 용의자를 찾아서 처리하는데 좋은 본보기가 된다. 물론 이것이 항상 그녀가 바라는 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브룸은 잔혹한 복수극을 펼치지만 덱스터처럼 훈련을 받지 않았다. 이 차이는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거기에 여자다. 무거운 시체를 옮기기도 쉽지 않다. 만약에 그녀가 실수를 해서 체포라도 된다면 그녀의 두 아이는 부모 모두를 잃게 된다. 이런 두려움은 쉴새 없이 그녀를 덮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녀는 나머지 악한들을 찾아낸다. 어쩌면 운이 좋다고 해야 할 것이다. 너무 쉽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그리고 그녀가 반전처럼 심어놓은 마지막 악당은 결코 바라지 않은 인물이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너무 안일한 설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장이 참 간결하다. 짧은 호흡으로 끊어 읽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건조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속도감을 높인다. 장면을 짧게 끊어 더 쉽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사이사이에 마르크와의 추억을 넣어 그녀의 감정을 노출시킨다. 이 추억의 삽입은 그녀가 흔들릴 때, 외로울 때, 두려울 때 마음을 다잡게 만든다. 복수의 여신이 되어 악당들을 난도질하는데 주저함이 없게 만든다. 미스터리를 자주 읽는 독자의 눈에는 허점이 많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덱스터처럼 시리즈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더 강해진 모습으로. 악당들은 결코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죽인 마르크의 아내가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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