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오래 전 스위스를 여행하고 온 친구가 아주 강하게 스위스 여행을 추천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에 홀딱 반한 것이다. 그 후에도 유럽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스위스를 추천한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회사의 팀장이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다. 꽃할배의 첫 여행지 중 한 곳도 스위스였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방송에서 마테호른과 파라마운트 영화사를 연결해서 설명하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이렇게 나에게 스위스는 몇 가지 풍경과 치즈, 시계 등으로 대변되는 제품으로 알려줘 있었다. 최소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의 남편은 이탈리아 출신 스위스인이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스위스 개발 당시에 이주노동자로 스위스에 왔다. 이것은 알불라 철도 이야기에 잠시 나온다. 이 철도 개발은 스위스를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 기차를 타고 터널을 지난 후 보게 되는 풍경을 묘사한 글에서 나의 상상력이 꿈틀거렸다. 반면에 꽃할배에서 본 마테호른의 풍경은 약간 심심했다. 카메라 앵글 속 풍경이 실제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일까? 솔직히 이 책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책의 중심이 되지 않다 보니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가끔 스위스 여행 블로그 포스팅에 나오는 것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아닌 사람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니체에서 바그너까지 모두 22장에서 적지 않은 스위스 방문 혹은 생활자를 다룬다. 재미난 것은 니체가 바그너를 숭배하다가 그의 변화에 실망한 후 극렬하게 비판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순서를 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22장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들이 수없이 나온다. 이것을 단순히 방문객으로만 다루지 않고 그들의 작품이나 정치 활동 등을 같이 연결해서 설명해준다. 같은 지역에 있었다고 해도 시대가 다르거나 만난 적이 없다거나 같이 만났다고 해도 각자가 너무 거장이라 각각 한 장을 할애한 듯하다. 단순히 스위스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책이라면 이런 식으로 편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위스가 영구중립국이란 것과 징병제란 사실만 알고 있었지 여성참정권이 1971년에야 허용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지금이야 국민소득이 높지만 한때는 이민이나 인력을 파견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유명한 스위스 근위병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스위스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은 과거는 나치와 연결되고, 현재는 은행과 이어진다. 나치가 유럽을 제패하던 그때 가혹한 국경 정책은 수많은 유대인이 죽음의 수용소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당시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질시와 비난 속에서 힘들게 살았다. 다른 책에서도 봤지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정하는데 그들은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물론 한국처럼 아직도 인정하지 않거나 일본처럼 부인하는 나라도 있다.

 

스위스가 관광대국이 된 데는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알프스를 알린 것도 처음에는 영국인이었다는 사실이나 빈약한 자원으로 인해 만들어진 음식이 풍듀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런데 이 퐁듀가 스위스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첫 번째 음식이 되었다.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관광과 연계해서 홍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스위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폐병환자들이 머물던 다보스가 예전에는 영화 촬영도 거부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필요에 의해 그 사실을 알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최근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재빠른 정책 변화에 놀란다. 그들의 놀라운 스토리텔링 관광 영업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중립국이란 이유 때문인지 스위스를 거쳐간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당연히 레닌이다. 여성참정권 이야기는 스위스를 새로운 면모를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존엄사로 부르기도 하는 조력자살이다. 안락사에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된 것도 의미있었지만 이런 조력자살을 법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여성참정권을 그렇게 늦게까지 허용하지 않은 나라가 맞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이 나라는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엇박자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2013년에 논란이 되었던 사적사용 토렌트 법적 인정 같이 놀라운 판결도 나온다.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언어의 유사성 때문인지 독일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스위스 국적은 물론 더 많다. 여행 가이드 책이 아니다 보니 여행지에 대한 설명보다 그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이 더 중심에 놓여 있다. 인물이 중심에 놓이다보니 당연히 그들의 작품이나 정치 활동 등이 같이 곁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한 참고자료 목록을 보니 각장 마다 몇 권씩 있다. 번역본이 없는 것이 더 많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왜 예상보다 훨씬 시간이 걸려 읽게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통상적인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좀더 여유를 가지고 있거나 어떤 목적을 가진 여행자라면 도움이 될 책이다. 아니면 나처럼 스위스와 그곳을 다녀간 방문객들의 이야기와 삶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딱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