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 평전 - 진보적 민족주의자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얼마 전까지도 몽양 여운형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가끔은 공산주의자 박헌영과 이미지가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몽양에게 덧씌우져 있던 공산주의자 이미지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여러 번 말하지만 기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의 이미지는 그를 두려워한 세력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이 환상이 자신들의 이익과 맞아떨어질 때 그것은 현실로 뒤바뀐다. 해방 후 혼란 정국에서 그나 김구가 뛰어난 정치 감각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 결과로 하나로 암살이라는 불행한 비극을 겪은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저자는 시대순으로 몽양의 흔적을 따라 간다. 그의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긴 여정을 다루는데 새로운 부분에 눈길이 가지만 전체적으로 강한 충격을 주기에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새롭게 몽양을 인식하고 해방 전후사를 공부하는 입장에 큰 도움을 주겠지만 왜 그 시대에 최고의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조금 내용이 부족해 보인다. 아마 이것은 나의 문제가 더 클 수도 있다. 아직도 만들어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를 인식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박정희가 그러했듯이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조금씩 더하게 되면 완전히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혈농어수(血濃於水).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것은 한국적민족주의, 한국적민주주의, 한국적사회주의가 결합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인 그를 표현하기 위한 단어다. 여기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그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러시아에 가서 레닌 등을 만났고,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조국해방을 염원하면서 활동했었다. 이것이 그를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몰고, 폄하하고, 미군정과 멀어지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이렇게 하게 된 이유를 그 시대와 상황을 같이 곁들여 설명하는데 왠지 모르게 이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변명처럼 다가온다. 한 권의 평전에서 이 부분을 깊게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더 풍성한 자료와 더불어 몽양의 삶을 재해석하는 일이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해방 전후에 집중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몽양이 국내에서만 활약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해외에서 활동한 것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낯설었다. 임시정부의 수립을 둘러싼 비화는 그 시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임시정부 수립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이것이 해방 전후 국내의 정치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쳤을 것 같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파편적으로 혹은 암기식으로 기억하는 상해임시정부의 인물들을 더 잘 알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몽양이 해외 망명 12년 차였던 1929년 영국조계에서 체포되어 조선으로 넘어온다. 3년 간 옥고를 치룬다. 요즘에는 3년형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지만 몽양이 외국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를 그렇게 힘들게 잡아들여야 했는지 하는 부분에서 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가 손문이나 레닌 등과 만나고, 도쿄에서 아나키스트들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는 사실 등은 아직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야욕을 내보이지 않은 일본에게는 손톱 밑의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체포가 오히려 국내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고, 이것이 해방 후 여론 조사의 결과로 나왔다.

 

몽양의 친일을 부각하여 자신들을 물타기 하려는 세력이 있다. 바로 친일파들이다.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면서 호의호식하고 해방 후에 그 세력과 권력과 경제력을 움켜진 그들은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몽양을 공격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들이 사용하는 비열한 공작인데 대중들은 쉽게 이 이미지를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볼 때 가장 분노했다. 욕했다. 그리고 그를 두려워한 세력이 만들어낸 암살. 또 암살. 최근에 개봉한 영화 <암살>과는 완전히 다른 의도가 있는 암살이다. 역사의 물길이 바로 흘러갈 수 있는 그 시절에 다시 거꾸로 흘러간다. 한국 현대사에서 몇 번이나 있었던 일들이다.

 

바른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려주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 역사의 무의미한 가정을 몇 번이나 하게 된다. 미군정이 건준과 합작했다면 친일파가 청산되었을 텐데, 반민특위의 활동이 제대로만 되었으면 우리의 역사가 바로 섰을 텐데. 몽양과 김구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이승만의 세력이 그렇게까지 기승을 부리지 못했을 텐데. 이런 불가능한 가정을 하는 것은 바로 지금 현재의 역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장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 어려웠던 시절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들의 재산과 청춘과 생명을 바친 분들이나 그 후손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몽양에 대해 조금 더 알았다. 그리고 더 공부해야 할 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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