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스웨덴에 살고, 차는 사브만 몬다. 나이는 59세이고, 6개월 전 아내가 죽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원칙은 칼 같이 지킨다. 거의 웃지 않았고, 평생 한 여자만 사랑했다. 식당에서 웨이터가 계산을 잘못한 것을 발견하고 같이 간 친구 루네와 이 웨이터를 고소할 것인지 1시간이나 논의할 정도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우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매일 아침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돌면서 확인한다. 지금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자살해서 죽은 아내 곁으로 가는 것이다. 이 남자의 이름이 바로 오베다.

 

오베가 컴퓨터를 사러 간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괴팍한 노인네가 직원들은 짜증나고 두렵기만 하다. 그가 쏟아내는 독설과 까칠하고 화난 말투는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이곳에 왔을까? 그 이유를 그 다음 장부터 하나씩 보여준다. 오베라는 남자가 어떤 성격이고, 어떻게 행동하고,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면서. 그리고 가장 원했던 것이 어떻게 방해받고, 외골수 삶을 살던 그가 주변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가 괴팍함을 보여줄 때마다, 그것이 더 완고해질 때마다 감탄하면서 이것을 간단하게 무너트리는 파르바네의 행동에 놀란다.

 

파르바네는 오베가 죽으려고 집 천장에 구멍을 뚫고 목매는 끈을 달 때 이사온 이란 출신 여자다. 남편과 두 딸이 있고, 현재 임신한 상태다. 남편 패트릭이 트레일러를 잘못 운전해 오베의 집 벽을 끍었다. 자신의 평온한 자살을 방해한 이들을 보러 나갔다가 트레일러를 후진시켜주고 인연을 맺게 된다. 이 인연이 오베의 자살을 끝없이 방해한다. 멍청한 남편이 창을 고치다 떨어져서 차고에서 자살하던 것을 중단해야 했다. 이전에는 목을 매달았지만 줄이 끊어졌고, 약을 먹으려는 순간이나 총으로 자살하려는 순간 등에서 파르바네나 다른 사람들의 방해로 시도조차 못했다.

 

그냥 죽으면 끝이 아니냐고? 무슨 소리! 그것은 오베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이 죽은 후 일어날 여러 가지 상황들을 정리해서 유서로 남겨두고 있다. 총으로 자살하려고 할 때 피가 사방으로 뛰는 것을 감안해 벽과 바닥에 비닐을 덮고, 정장을 입고 죽으면 매장할 때 입을 옷을 걱정하며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죽으려는 그의 시도는 늘 간발의 차이로 실패한다. 이 실패가 우리에게는 큰 즐거움을 준다. 그의 실패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그 사이에 그의 과거가 하나씩 흘러나오면서 이 괴팍한 노인과 같이 산 아내 소냐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완고하고 원칙적이고 과묵한 그지만 소냐와의 만남은 이전까지 그의 삶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소냐와 살면서도 자신의 원칙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고, 주변사람들이나 권위주의와 싸웠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권위주의 집단은 공무원이다. 몸에 이상이 있다고 사랑하는 배우자가 있는데도 요양원에 넣으려는 집단이다. 오베도 아내 소냐의 사고 이후 이들과 싸워야 했고, 지금은 이전 친구였던 루네의 문제로 그들과 대립한다. 한때 루네는 그의 유일한 친구였지만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로 서로 갈라섰다. 루네도 완고하기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에 벌어진 대결은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한다.

 

홀로 남은 오베는 매일 소냐의 무덤가로 찾아가서 그의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말한다. 아내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이기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 외로움과 괴로움을 산산조각내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그는 이전보다 더 주변과 소통하고 살게 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아내 소냐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의 원칙에 살짝 벗어나도 소냐의 눈빛이 마음이 떠올라 그냥 지나간다. 차도 자전거도 다른 기계들도 전혀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욕하면서 어느 새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고양이 어니스트를 사랑했던 아내처럼 야생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이 고양이 또한 그의 평화로운 자살을 방해한다.

 

이 독특하고 괴팍하고 완고한 오베라는 남자가 나는 좋다. 그의 이웃이라면 어쩌면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그가 세운 원칙이 너무나도 완고하기에. 하지만 그가 투덜거리면서 보여준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가 경험한 삶의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있다. 파르바네의 운전 연습을 도와줄 때 보여준 그의 분노와 더불어 섬세하고 자상한 표현은 그의 또 다른 모습이다. 동성애자에게 호모라고 말하지만 그는 편견을 보여주지 않는다. 말자체가 편견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가 커밍아웃했을 때 재워주고, 아버지와 화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직설적이고 투덜거리고 누구나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삶의 균열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 파르바네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약하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삶을 산다. 그의 존재는 이제 그 동네 곳곳에 스며들고,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 파르바네의 말처럼 그녀는 소냐에게서 그를 가장 잘 빌려 썼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데카이
키릴 본피글리올리 지음, 성경준.김동섭 옮김 / 인빅투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영화로 상영했다. 배우들에게는 관심이 갔지만 요즘 영화를 잘 보지 않고, 평도 그렇게 좋지 않은 듯해 그냥 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진 원작 소설이 있으면 관심이 생긴다. 이전에는 영화를 보았기에 원작소설에 관심이 그렇게 없었는데 요즘은 영화를 잘 보지 않아 원작에 관심이 많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이미지가 소설로 계속 이어져 그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원작을 먼저 읽은 경우도 그 피해는 어쩔 수 없다. 아직 나의 내공이 이 둘을 구분할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영화가 더 궁금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구성이 나의 독서법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화를 선택했으면 한다는 의미다.

 

1970년대 5권의 시리즈로 나왔다고 한다. 그 중에서 두 작품을 모아 이 한 권으로 묶었다. 이어지는 작품인데 별도로 읽어도 문제가 없다는 말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작을 읽지 않고 뒤편인 <피스톨을 가진 당신 뒤에(After you with the Pistol)>를 읽는다면 이해가 갈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이것은 내가 연속으로 읽은 탓에 더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뒤편에서 시작하는 부분만 가지고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아니라고? 그럼 당신의 놀라운 추리력이나 둔감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모데카이. 그는 미술품 거래상이다. 이야기는 모데카이와 영국 특수경찰그룹 SPG 책임자 마트랜드가 만난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둘은 동창이다. 한 명은 정부의 특수경찰이고, 한 명은 스페인에서 도난당한 고야의 <웰링턴 부인>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되는 미술품 거래상이다. 각각 다른 위치에 있는 이 둘은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눈다. 마트랜드는 모데카이를 납치해 고문까지 하는데 이것을 모데카이가 예상하고 있다. 이 부분을 볼 때만 해도 약간 심약한 그지만 적들의 공격을 잘 피하고 잘 이용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더 진행되고, 뒤편으로 넘어가면서 이런 생각은 산산조각났다. 일반적인 주인공들과 다른 활약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야의 그림만 해결하면 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순간 한 장의 사진이 문제가 된다. 이것이 뒤로 넘어가면 헤로인으로 변한다. 개인의 문제가 조직과 엮이면서 커지고, 비밀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누군가가 이것을 계속 압박한다. 이 압박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모데카이가 놀랍지만 뭔가 깔끔한 느낌이 없다. 약간 붕 떠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잘 집중이 되지 않는다. ‘지난 50년 동안 가장 외설스럽고, 최고로 재밌으며, 즐길 만한 추리소설’이란 평가를 누가 한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줄리언 반스의 평을 보면 분명히 내가 제대로 느끼지 못한 재미가 있을 텐데 읽으면서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명확하게 진행되지 않아 조금 답답하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2부에서 모데카이와 결혼하는 조한나의 정확한 정체가 궁금해지고, 그녀에게 휘둘리는 그가 약간 맹하지만 귀엽다. 하지만 답답하다. 선이 굵은 주인공이라면 단호한 행동으로 자신에게 굴레를 씌운 적들을 무찌를 텐데. 그런 점에서 모데카이의 부하인 조커는 계속해서 시선을 끈다. 약간 무지한 듯하지만 강한 충성심과 강렬한 액션으로 모데카이에서 느낄 수 없는 통쾌함을 주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집중력이 좋지 않아 이 콤비가 만들어내는 상황과 액션 등에서 재미를 완전히 누리지 못했지만 가장 시선을 끈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에 모데카이가 오해와 실망에 잠겨 있을 때 툭 던진 한 마디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다. 곳곳에 재미난 상황이나 문장들이 나오지만 이것만으로 엄청난 극찬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결코 세상에 순종할 수 없다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는 두 번째 만난다. 언제부터인가 산문집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이외수의 산문집은 손이 잘 나가지 않았다. 보통의 산문집과 다른 편집이라 쉽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읽다보면 그 의미심장한 내용 때문에 자주 숨을 고르게 된다. 이때마다 속도가 더디게 흘러간다. 그런데 이 더딘 흐름이 좋다. 이번 산문집은 쓰다가 찢어버린 원고지 종이더미를 뒤져 찾아낸 미발표 시, 그림,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중에서 이 시대 청춘들과 공유하고 싶은 글을 정리하고, 최근에 집필한 산문 등을 모았다. 당연히 그의 이전 삶이 녹아 있다. 글 쓴 시기를 제대로 표기해주지 않아서 내용으로만 그 당시 이외수의 삶을 추측해야 한다. 조금 아쉬운 편집이다. 쓰다가 찢어버린 원고지를 생각하면 당연할 수 있지만.

 

사랑, 춘천, 가난, 문학, 낭만, 여자, 청춘, 예술, 종교 등에 대한 그의 단상을 모아놓았다. 그냥 얼핏 읽으면 꼰대의 말처럼 다가오는 것도 있지만 조금만 음미하면 풍자가 엿보이는 글들로 가득하다. 그가 겪어야 했던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과 현실과의 괴리는 최근에 대중적으로 변신한 그의 모습이 아닌 소설 한 편을 위해 골방에 자신을 가둔 채 글을 썼던 그 시절의 이외수를 자연스럽게 떠올려주었다. 그 치열한 문장과의 대결은 담배로 이어졌고, 몸은 꼬챙이처럼 마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처음 그가 텔레비전 예능에 나왔을 때 너무나도 낯설었다. 내가 읽은 소설이나 그에 대한 정보와 엄청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기 마련이다. 자주 보니 그의 이런 모습도 반갑고 재미있다.

 

모두 열 꼭지로 나누었지만 제목만 보고는 그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어떤 짧은 산문은 두 번이나 나오는데 활자의 크기 차이인지 눈으로 보이는 길이가 다르다. 내용도 어떤 것은 한 줄로 끝나고, 어떤 것은 몇 쪽을 채운다.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역시 한 줄이다. 그가 경험했던 것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자는 난해하다. 그 어떤 현대 시인의 난해시보다 더 난해하다.”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아는 척해도 결국 자기 여자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요즈음은 소크라테스보다는 돼지 쪽이 더 인기가 있다.”라는 말처럼 현실을 그대로 요약해서 들려주기도 쉽지 않다. 읽으면서 ‘나는?’이란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춘천에 대한 애정, 젊은 날의 고생, 변한 세태 등이 곳곳에 나온다. 자살에 대한 충동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 같다. 젊을 때 나 자신도 자살 생각을 해보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깊은 허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던 그를 세상 밖으로 건져올린 사람이 누굴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의 아내였을까? 아니면 다른 누구? 술집에서 안주값이 없어 소주에 김치를 몇 번이나 시켜 먹다가 더 이상 리필이 되지 않은 사연은 처절하다. 구질구질하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다. 그의 요청에 회 안주를 포장해준 횟집 주인이 있는 것이다. 그의 이십 대 이야기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깡소주에 새우깡 안주로 집에서 혹은 야외에서 먹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술집이란 공간이 그들을 어떻게 끌어당겼는지 생각하면 짠하다.

 

그의 단상은 정제된 문장을 통해, 시를 통해, 짧은 이야기를 통해 계속 나온다. 세상과 손을 잡고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면 좀더 편안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싸웠다. 세상과 타협하려는 자신과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실제 삶을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글 속에 드러나는 치열함과 고민과 고뇌는 나의 가슴 한 곳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묵직함이란. 현실 세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나올 때면 반갑고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이 과거 속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희망을 말하며 ‘우리도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이다’고 했을 때 그가 겪었던 어둠과 암흑에 조용한 빛 한 자락이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코 세상에 순종하고 방황만 할 수는 없다. 나도 살아가야 할 세상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시나무새>가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적이 있다. 미국 드라마로도 제작되었고, 흥행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드라마로 제작된 소설의 경우 잘 읽지 않는데 이 소설은 읽었다. 그것도 단숨에 읽었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사랑이 미친 듯이 읽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콜린 매컬로는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녀가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고 했을 때 왠지 모르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는 한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 관련 책이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자주 가던 헌책방에서 이 책들을 자주 보였는데도 손이 나가질 않았다. 그 당시 놓친 책들이 다시 나왔을 때 그 가치를 새롭게 알게 되고 왜 그때 읽지 않았는지 한탄한 적이 많다. 이 책도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언제부터인가 로마 시대 이야기를 즐겨 읽고 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었고, 카이사르 전기도 읽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천천히 읽으려고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지만 늘 실패했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에 관심이 갔지만 쉽게 손이 나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소설 등에서 늘 카이사르 시대 전후를 다룬 이야기를 만났다. 이 만남은 어쩔 수 없이 마리우스, 술라, 카이사르란 이름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카이사르에 비해 상대적인 지명도가 떨어지는 두 사람이지만 실제 그 시대 역사를 보면 이들의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카이사르가 그 위대한 이름을 떨치는데 그 기반을 닦은 인물들이자 그와 인척관계에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카이사르란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기억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마리우스와 술라에게 두 딸을 보낸 카이사르가 나의 기억 속 그와 달라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율리우스 가문은 독특한 이름 작명법이 있는데 두 번째 아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넘겨준다. 이 소설 속에서 마리우스에게 딸을 보낸 카이사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카이사르의 할아버지다. 로마시대 이야기를 읽다보면 늘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이름인데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이름이 쉽게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이름의 어려움을 넘어선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두 명이다. 마리우스와 술라다. 이들의 장인 카이사르가 이들이 정치적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실제 그 기반을 닦는 인물은 바로 이들이다. 이 중에서 특히 마리우스는 전쟁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로마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젊을 때 귀족 한 명과 장난치고 놀린 것이 평생 그의 성공을 막고 있다. 그 귀족 자제가 바로 이 시대 가장 강력한 귀족 집안이었던 메텔루스였던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로마 공화정이라고 부르지만 그 실상은 귀족 공화정이었고, 시민계급이 막 성장하던 시기였던 이때는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기 딱 좋은 시대였다.

 

마리우스가 정통의 방법으로 집정관의 직위에 오른다면 술라는 나의 기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귀족이지만 가난했다. 뛰어난 미모 때문에 모든 여자들이 그를 원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의붓어머니와 한 전쟁 미망인의 정부로 살게 만든다. 어린 남자와 동성애에 빠져 있고, 재산이 없어 자신의 계급을 이용할 수조차 없다. 이런 그가 어떻게 재산을 쌓고, 중앙정치로 편입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솔직히 말해 엄청난 연구를 했다는 작가의 이력을 감안한다고 해도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작가의 상상에 의한 창작인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책에서 보여준 술라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더 이야기가 진행되면 과연 술라가 어디까지 변신을 할지 궁금하다.

 

이제 7부작 중 1부의 첫 권만 읽은 상태다. 복잡한 이름과 이 시대의 풍경과 이권으로 뭉친 관계 등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파격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고, 역사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그 결과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읽는 동안 몰입하게 만든다. 세밀하게 그려낸 로마의 모습은 손에 잡힐 듯하고, 공화정으로 알려진 로마 귀족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설명해줘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직 가장 유명한 카이사르까지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로마와 주변 국가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이나 정쟁 등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단순히 결과만 알고 있던 로마사를 작가는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 멋진 세계를 새롭게 만들었다. 7부작까지 모두 번역되어 나오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아시아 문학선 13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 <말 한 마디 때문에>의 후속작이다. 전작을 읽은 덕분인지 이번 작품은 더 재밌게 읽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뉴아이궈다. 그의 엄마는 전작에서 아빠와 헤어진 아이 차오칭어다. 그녀가 유괴된 후 어떤 과정을 거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는지 보여주는데 불과 수십 년 전 중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낯선 모습이다. 읽으면서 시대를 알 수 있는 것을 그렇게 많이 발견하지 못한 전작에 비해 이번에는 휴대폰이 나와 비교적 최근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과 사연과 관계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단순히 문화 차이라고만 하기에는 더욱.

 

말 한 마디. 정말 살아가면서 많은 상처를 주고받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말 한 마디다. 뉴아이궈가 친구와 절교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모가 사이가 좋지 않아도, 자신들의 관계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흔들려도 굳건했던 것이 하나의 자그마한 오해에서 비롯한 말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만든다. 그런데 이해가 좀처럼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그들이 이 오해를 바로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때까지 쌓아온 우정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의 모습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살고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이 비수가 되어 상대방의 가슴에 꽂힌다는 표현도 있으니.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지나가는 이야기 중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차오칭어의 양아버지가 흘린 돈을 두고 벌어진 다툼이다. 원래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였는데 이 돈 때문에 완전히 갈라진다. 돈을 두고 두 사람 사이에 숨겨져 있던 속내와 욕심이 그대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요물 같아서 언제 어떤 순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것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적게 하는 사람이나 상관없다. 이 사건 때문에 차오칭어가 결혼을 하게 되고, 그녀의 삶도 꼬인다. 그녀가 결혼하게 된 사연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비밀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잘 보여준다. 남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것처럼 포장한 말과 행동 뒤에 숨겨진 의도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뉴아이궈의 삶을 보면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진다. 돈이 많아서 생긴 여유는 아니지만 일을 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것 같아 그렇게 느낀다. 실제 그의 삶은 여유롭지 못하다.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고, 자신은 이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고, 친구들에게 아내에 대한 조언을 구하지만 제대로 된 해답은 하나도 없다. 그가 집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간 것은 바로 이것을 피해 달아난 것이다. 군대에서 배운 운전 실력이 그가 먹고 사는데 지장없게 만들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생존 조건일 뿐이다. 아내와 결혼한 것도 사랑 때문이 아니다. 이혼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한 그에게 여자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타난 장추홍은 그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녀와 달아날 용기가 없다.

 

뉴아이궈의 인생을 따라가는 와중에 차오칭어와 관련된 사연들이 곳곳에 나온다. 이것은 다시 전작의 사연과 이어진다. 뉴아이궈가 엄마의 죽음 이후 이 사연을 좇아간 것도 그의 엄마가 간혹 그에게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해준 것과 관계가 있다. 전작과 이어지면서 정말 긴 세월을 다루고 있다. 중국 현대사의 흐름 한 자락을 민중의 삶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치와 경제가 아닌 실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게 요약해서 그 삶의 한 단면을 극적으로 연출해내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열린 결말이다.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하지만 예상한대로 그 결말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장추홍에게 하고 싶었던 말 한 마디가 궁금해진다. 이 말 한 마디가 엄마의 양아버지 우모세의 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류전윈의 소설에 더욱 빠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