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불면의 밤을 넘어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원경 옮김 / 박하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언제나 책을 받아서 펼치면 작가의 이력을 먼저 본다. 낯선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에 읽었던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를 쓴 작가다. 책을 읽기 전 예전에 쓴 서평을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읽었다. 읽으면서 약간 잊기는 했지만 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우디 앨런의 뉴욕과 커트 보네거트의 블랙유머가 한데 모였다’란 평이었다. 모두 읽은 지금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전에 다른 소설의 서평을 찾아봤다. 상당히 힘들게 읽었던 기록이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도 그렇다. 문장이 어려워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어렵다는 의미다.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고 오랫동안 주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첫 문장은 ‘입은 기묘한 곳이다’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치과의사이고 이름은 폴 오로르크다. 그에게 입은 아주 중요한 곳이다. 그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곳인 동시에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이다. 전 경기를 비디오로 녹화할 정도다. 86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게 되어 기뻐했지만 이 우승으로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면서 예전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잘 이해되지 않는 마음이다. 그는 치과의사로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치료보다 예방에 신경을 쓴다. 환자들이 치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순간 뜨끔했다. 나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하고.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의 병원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자 뛰어난 치위생사 콘보이 부인이 있다. 서무를 보고 한때 사귀었던 아름다운 유대인 코니와 배우를 꿈꾸는 직원이 한 명 더 있다. 병원은 잘 되어 돈을 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불면으로 가득하다. 이 불면의 시작은 그의 아버지가 자살한 후에 생겼다. 잠을 자지 못하는 그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성과 감성이 충돌한다. 홀로 자기를 두려워하는 소년이 엄마에게 계속 말하는 것과 힘들지만 이것을 받아주는 엄마의 모습 때문이다. 그가 몇 시간을 그냥 조용히 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소설 속 한 장면에서 이것이 나오는데 새벽에 깬 후에 다시 잠들지 않고 녹화해두었던 레드삭스 경기를 본다.

 

그는 종교와 신에 대해 아주 냉소적이다. 그는 메일에도 보스턴 레드삭스 관련 글을 올리는 게시판에도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병원은 홈페이지도 없다. 오죽했으면 콘보이 부인이 책을 주문해서 병원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의사에게 조언했겠는가. 이런 조용한 삶에 큰 돌이 하나 날아와서 파문을 일으킨다. 바로 병원 홈페이지다. 그가 만들지 않았고, 자신의 이력에 대한 설명도 엉망이다. 당연히 만든 곳에 메일을 보내지만 답이 없다. 그리고 그의 본명을 사용한 트위터 계정이 생긴다. 이렇게 하나씩 온라인 공간에 그가 아닌 그의 이름을 이용한 누군가가 활동을 한다. 미스터리소설이라면 의식이 분리되어 다른 사람처럼 활동하는 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지만 최소한 여기서는 아니다.

 

그의 이름으로 올려진 글들은 함축적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도 있다. 이것을 발견하고 알려주는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던 코니다. 그인 척하는 하는 누군가가 올린 이야기는 구약을 뒤집은 내용이 있다. 아말렉인과 관련된 이야기다. 나중에 나오지만 유대인의 율법에도 이 아말렉인이 나온다고 한다. 그들을 반드시 물리쳐야 할 존재다. 그리고 울름이란 단어가 나온다. 처음 이 단어가 나왔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 이 글을 쓰면서 뒤적이다가 환자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유대인과 유대교와 아말렉과 울름은 나를 혼돈 속으로 밀어넣었다.

 

닥터 오로르크인 척하는 존재는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얼마나 잘 압니까? 하고. 이 질문은 나중에 그의 가족 족보와 연결된다. 수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 그 이력은 그조차 잘 몰랐던 것이다. 아버지의 자살 때문인지 그는 누군가의 가족이 되고 싶어 한다. 첫 번째 실패는 그가 무신론자라는 이유였고, 최근의 코니는 아이를 갖는 것 때문이다. 그는 아이 갖기를 두려워한다. 이것도 아버지의 자살 탓이다. 아이가 생기면 자살을 고민할 수 없다는 현실적이고 부성애 가득한 판단 때문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세상과 직접 부딪히면서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은 없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보면 인터넷에 자신인 척하는 누군가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내용일 것 같지만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메일로 교신을 하고, 누군가가 찾아오지만 이것이 자아 찾기나 영적 문답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르크가 보여주는 독설과 비판이 블랙유머의 재미를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뒤에 그를 사칭한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지만 이를 둘러싼 해석이 갈라지는 것을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분명한 결론을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닌가? 재미있는 부분과 생각할 거리가 많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하나로 꿸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어렵다. 물론 미 프로야구에 대한 부분은 쉽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올해 그 팀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떤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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