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정동진에 가면 - 정동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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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지 않았다. 그 당시 엄청난 열풍이었지만 드라마에 관심이 없다 보니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드라마 속 유명한 대사나 장소 등은 너무나도 많이, 자주 방송에 나와 알고 있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정동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혹은 드라마 속 장소를 보기 위해 정동진으로 갔다. 유행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나는 한참 유행할 때 가지 못하고, 몇 년 전 늦은 여름 갈 곳이 없어 한낮에 놀러갔다. 한적한 그곳의 풍경은 여유로워 좋았다. 기차역도 나쁘지 않았다. 잠시 머물다 스쳐지나가기에 좋은 곳이었다.

 

지금도 연말이 되면 수십 만의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흉물스러운 건물이 하나 있다. 거대한 배 모양의 건축물이다. 멀리서 지나가듯이 보면 나쁘지 않지만 해 뜨는 풍경을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인데 이 지역이 탄광촌과 어촌이 함께 했고, 모래시계가 뜨기 전에는 그냥 한적한 동네였다고 한다. 물론 광산 경기가 좋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살았다. 딱 거기까지다.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사람들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자리를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채웠는데 갑작스러운 관광 특수가 주민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온 모양이다. 책 후반부에 이 이야기가 나올 때 씁쓸했다.

 

기본적으로 옛사랑의 흔적을 쫓아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미연이라고 불렀던 국민학교 동창이다. 소설 속 화자인 석하는 동해에 사인회를 왔다가 미연의 소식을 듣는다. 그 당시 몰랐다가 밤에 문득 그 이름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찾아와 그녀를 만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그 속에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당시 추억과 애틋한 마음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나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앞부분을 읽을 때 왠지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조금 더 읽으면서 사라졌다. 그 자리를 석하의 이야기가 조용히 파고들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이 남아 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언제나 잊고 있던 기억의 한 자락이 갑자기 떠오르면 감상적으로 변하게 된다. 미연이란 이름이 그 작용을 한다. 그녀를 찾는 방법도 무식하다. 잡지에 나온 사진 한 장을 들고 정동진에 내려와 카페를 돌면서 찾아다닌다.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고, 솔직히 말해 그렇게 설득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감상에는 공감한다. 어릴 때 한 약속을 잊고 있다가 갑자기 그것이 떠올라 먼 정동진까지 올 정도로 둘 사이가 각별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뭐 덕분에 아련한 옛사랑의 느낌을 만끽했지만. 기억과 사실 사이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작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정동역이 맞을까, 아니면 정동진역이 맞을까.

 

많지 않은 분량이라 조금만 집중하면 금방 읽을 수 있다. 책 뒤에 단어들만 적어놓은 것이 몇 쪽 있는데 흔히 말하는 이야기의 키워드다. 처음 이 단어들을 읽었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이 단어들이 이야기를 조용히 떠올려주었다. 감성적인 문장과 이야기가 아주 조용히 천천히 가슴속에 스며든 것이다. 물론 이야기에 반발하는 부분도 있다. 중학교 때 헤어진 두 남녀가 이십 년 이상 지난 후 다시 만났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는 부분이다. 중간에 비슷한 또는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지만 한 번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고, 편지조차 주고받지 않은 사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겨 놓은 감정의 여운은 진하다. 정동진에 대해 알게 된 몇 곳은 다음에 갈 일이 있으면 둘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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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갈 용기 - 자유롭고 행복해질 용기를 부르는 아들러의 생로병사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노만수 옮김 / 에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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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그 후 그의 저작들이 각각의 출판사에서 번역되었다. 처음에는 같은 출판사라고 생각했는데 몇 권 확인하니 모두 다르다. 이런 성공은 인문학이 홀대받는 현실에서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나처럼 아들러에 문외한인 사람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의 이론에 관심을 둔 것을 보면 더더욱. 하지만 심리학에서 아들러의 명성은 대단하다. 아마 나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었을 것이다. 단지 프로이트나 융처럼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저자는 아들러 심리학 전문가다. 제목처럼 늙어갈 용기를 아들러 이론을 통해 다섯 장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대화할 용기, 몸말에 응답할 용기, 늙어갈 용기, 책임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등이다. 이것은 각각 타자, 아픔, 나이 듦, 죽음,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각 장에 용기란 제목을 붙였는데 이 개념은 아들러 이론의 핵심 중 하나다. 출간된 각 책의 제목에 용기란 단어가 들어간 것이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다. “참된 능력은 용기다.”라고 아들러가 생각할 정도였다.

 

아들러 심리학 대중서 역할을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꼼꼼하게 읽으면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 책이 이 정도 내용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내용을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한 상태지만 ‘우리의 앞길을 막아설 질병, 노화, 죽음이라는 인생의 과제’를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준다. 어느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인간에게 생로병사는 어쩔 수 없는 절대적 현실이다.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듯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도 거의 대부분 자신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이 과정 중 현재 우리에게 크게 와 닿는 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다. 이 과정이 모두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데 저자는 상당히 신선한 시각으로 이 현상을 바라본다. 누구도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공연히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실행하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욕구는 결국 타인이 만들어낸 공포를 내적으로 받아들이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들러는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결정한다”고 본다. 즉 어떤 특정한 경험을 트라우마로 보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있을 것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의미 부여다. 그 속에 파묻혀 사는 것을 경계한다. 그는 사람이 아닌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시한다. 혼자서만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공동체 심리학으로 불린다.

 

저자는 심근경색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이 그로 하여금 삶을 다른 방식에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아픈 사람도 그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 아픔을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존재’란 단어가 새롭게 다가온다. 인간은 전체를 벗어나 홀로 살 수 없는 존재다. 혼자만 행복한 것은 자기만족일 뿐이다. 그는 있는 것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싫어한다. 일본의 핵발전에 대해 비판적인데 필요악이란 논리를 부정한다. 맞다. 비겁한 변명이자 타협책이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 많이 자주 본 것이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부족해서 자유롭지 못하다”란 문장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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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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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56분에 시작해서 다음 날 새벽 6시 52분까지 일어난 이야기다. 패밀리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 아사이 마리에게 남자가 다녀오면서 시작한다. 물론 그 이전에 ‘우리’라는 존재가 보는 밤의 도시 풍경을 아주 멋지게 그려내고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역시 하루키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마리에게 다가온 남자는 아는 척 한다. 그런데 이름을 잘못 부른다. 유리라고. 그녀의 언니 에리와 함께 2년 전 호텔 수영장에 간 적이 있다. 이 우연한 만남이 결코 짧지 않은 밤 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발점이 된다. 하루키 특유의 문장과 분위기로 나를 강하게 빨아들인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우리’라는 존재다. 작가는 친절하게 ‘우리’에 대해 설명해준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름 없는 침입자다. 우리는 본다. 귀 기울여 듣는다.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그곳에 존재하지 않고, 흔적을 남기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정통적인 시간 여행자와 동일한 규칙을 지키는 셈이다. 관찰하지만 개입은 하지 않는다.” 이 글은 ‘우리’가 마리의 언니 에리의 방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서술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에리의 방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을 그냥 보고 있는 장면들을 읽을 때면 “우리는 한낱 시점에 불과하다. 어떤 형태로든 상황에 관여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은 마리가 머물고 있는 한밤의 도심이다. 그렇다고 에리의 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원이 연결되지 않았는데도 텔레비전이 켜지고, 얼굴을 알 수 없는 남자가 그 방을 쳐다본다. 나중에는 화면 속으로 에리와 침대가 들어가는 일까지 벌어진다. 뭐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장면들이 곳곳에 나온다. 바로 거울이다. 마리나 다른 사람도 거울을 본 후 그 이미지가 홀로 남아 있는데 이 이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 판타지 같은 설정이 늦은 밤 아주 조용히 펼쳐진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조금 지루했다.

 

마리에게 아는 척 남자, 다카하시가 사라진 후 한 여자가 그녀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그녀가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다카하시에게 들은 것이다. 중국 매춘녀를 한 손님이 폭력을 가한 후 옷을 가지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풀기 위해 중국어 가능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중국인 조직에 연락을 한다. 어떻게 이 상황을 넘기지만 일본에 자리 잡은 중국 조폭은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열아홉의 어여쁜 중국 여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잠시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온 러브호텔 알파빌의 매니저 가오루와 시간을 보낸다. 간단한 이야기가 둘 사이에 오고 간다.

 

‘우리’는 하나의 시점으로 여기저기를 오가면서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마리와 에리만 보여줄 것 같았는데 가오루나 다카하시나 중국 매춘녀에게 폭력을 가한 남자까지 등장시켜 이 한밤중의 사건들을 조용히 관찰한다. 감정은 대화를 통해 나오고, 밤이 깊어지고 새벽이 가까워지면서 가슴 한 곳에 조용히 묻어두었던 이야기가 밤의 어둠을 뚫고 흘러나온다. 여기서도 감정의 폭발은 없다. 절제된 감정은 차분하게 대화를 통해 표현된다. 격렬한 행동도, 터져나오는 감정의 폭발도 없다. 마리와 다카하시의 대화를 듣다 보면 이들이 겪은 일들이 화면 속 한 장면처럼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이 속에 한밤의 진실이 담겨 있다.

 

중간중간 낯선 느낌이 많이 든다. 화려한 하루키가 보인다고 생각할 즈음 기묘한 일이 벌어져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짧은 시간을 다루다 보니 뭔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냥 흘러갈 뿐이다. 중국 매춘녀에게 폭행을 가한 남자가 그 여자의 휴대전화를 편의점에 놓아둔 후 벌어진 두 개의 에피소드는 오해와 착각이 불러온 무시무시한 협박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리가 에리의 문제를 인식하고 다카하시에게 털어놓을 때 과거의 기억 하나가 그녀를 일깨운다.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 그녀를 도와준 에리의 행동이다. 그 이후 이 자매의 사이는 벌어졌다.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그녀는 언니에게 다가간다. ‘우리’는 작은 태동을 본다. 새로운 시작은 새벽과 함께 온다.

 

예전에 읽었던 <어둠의 저편> 개정판이란 사실을 인터넷 서점 정보를 보고 알았다. 나의 이 무참한 기억력이라니... 덕분에 하루키의 소설을 다른 번역자를 통해 한 번 더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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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아티스트
스티브 해밀턴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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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음악 관련 이야기인 줄 알았다. 록앤롤의 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어 제목을 본 후에 금고털이에 대한 이야기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입견이 책을 펼쳐 읽은 첫부분에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것은 주인공 소년 마이클의 나이였다. 여덟 살에 끔찍한 사건을 겪었고, 이 때문에 기적의 아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대신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아이다. 그 후 9년의 시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겨우 열일곱이다. 이런 소년이 우리가 흔히 영화 속에서 봐왔던 금고털이 역할을 한다니 잘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이다. 이 소설은 마이클이 감옥에 갇힌 후 자신의 인생을 적은 글이다.

 

인생은 갑자기 하나의 전환점을 던져준다. 이것은 예측할 수도 없고, 그때도 알 수 없다. 마이클에게는 어릴 때 자신을 데리고 와서 같이 산 리토 삼촌이 버린 자물쇠를 주어 만지면서부터다. 처음엔 흥미와 오락이었지만 금방 그 재능이 꽃을 피운다. 물론 이 재능이 크기 위해서는 좋은 선생이 필요하다. 그 선생이 바로 고스트로 불리는 사람이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 직업 세계에 누군가 홀연히 나타나 ‘자네 재능이 있군, 나에게 한 번 자물쇠 여는 법을 배우겠는가.’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열일곱 살 소년이 범죄자들과 어울려 금고를 열러 다니지도 않는다. 작가는 노련하게 시간을 교차시키면서 왜 마이클이 이 금고털이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그가 만나는 범죄자들을 통해 이 세계의 한 면을 보여준다.

 

특별한 재능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언제나 위험해진다. 마이클도 자신의 친구를 돕기 위해 한 행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는 그 당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던 그가 다른 누군가의 장난에 의해, 충동에 의해, 알 수 없는 열정에 의해 뒤바뀌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은 바로 어밀리아의 집에 몰래 들어가고, 그녀의 그림을 봤을 때다. 그 자신도 그림을 잘 그리지만 그가 본 그림과 자화상은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를 충동질해 데리고 간 아이들이 도망칠 때 그는 그 그림에 메여있었다. 경찰에 잡힌다. 공범을 말하지 않는다. 그 집주인 노먼의 집에서 하루 네 시간 육 주간 봉사하는 판결이 내려진다. 이 집에서 힘든 땅파기를 하고, 어밀리아를 만난다.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나타난다.

 

마이클은 고스트에게서 다섯 개의 호출기를 받는다. 색에 따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어떤 색은 아마추어가, 어떤 색은 동부나 서부의 전문가들이 그를 필요로 한다. 빨간 호출기가 울리면 바로 연락해야 한다. 왜냐고? 그를 이 세계로 강제로 밀어 넣고 그가 한 일의 수수료 10%를 챙겨가는 두목이 연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이 소년이 상당히 경험 많고 노련한 금고털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스트를 통해 재능을 꽃피운 후 금방 이 세계에 나온 새내기였다. 아마추어와 함께 일하는 위험을 보여준 후 서부로 가서 전문가들과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이 둘의 차이가 너무 확연해서 고스트가 그에게 알려준 교훈에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위험은 어디에나 있다.

 

그가 어떻게 금고털이 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의 핵심은 어밀리아다. 그녀의 엄마가 자살했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산다. 이 기적의 소년이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가 본 것은 자기 내면의 어둠이었다. 그래서 둘은 금방 끌린다. 시작은 마이클이 어밀리아를 그린 그림을 그녀가 자는 방에 놓아두면서부터다. 몰래 들어가서 놓아둔 것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마이클에게 이 모험은 위험한 것이지만 그녀는 그림으로 답한다. 다음은 만화로 자신의 감정을, 상황을 표현하는데 그녀 또한 같은 방식으로 대답한다. 이렇게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이 어밀리아의 아버지 노먼의 사업실패와 연결되고, 그의 재능이 악당의 귀에 들어간다. 그는 어밀리아를 위해 금고털이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렇게 보면 한 남자의 순정을 담은 성장과 사랑 이야기다.

 

보통 범죄소설에서 많이 공을 들이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범죄를 준비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범죄 준비 과정이 그렇게 세밀하게 나오지 않는다. 금고털이 소년이 주인공이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서 들려줄 뿐이다. 함께 도둑질을 하는 동료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떻게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 등은 많이 생략되어 있다. 다만 빠른 시간 안에 금고를 열지 않으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어느 순간에는 운도 작용한다. 고스트가 자신들의 작업을 예술이라고 말하는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 손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연습하고 노력하는 모습과 그 섬세한 작업을 본다면 말이다. 모두 읽고 난 지금 이 천재 금고털이 소년이 감옥을 나온 후 보여줄 새로운 활약을 기대해본다.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위험한 일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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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데이
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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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있다. 그 혹은 그녀는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다. 단 하루도 예외가 없다. 이렇게 5993일을 살았다. 5994일이 되는 날 스스로 A라고 하는 사람은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리애넌이다. 그녀는 5994일째 몸 주인인 저스틴의 여자 친구다. 이 둘의 관계는 열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리애넌이 더 매달린다. A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리애넌과 함께 바다로 간다. 이 짧은 여행은 이 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로 A와 리애넌의 사랑 이야기다. 단순히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하루하루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많은 의미와 삶을 담고 있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것이 일상이 된 A. 리애넌을 만난 후 변한다. A는 그녀를 보고 싶다. 다행이라면 A가 깨어난 동네에서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까지 거리는 길어도 1~2시간이면 충분하다. 몰래 그녀에게 접근한다. 어떤 때는 여자의 모습으로, 어떤 순간은 남자로 그녀 앞에 나타난다. 외모도 모두 다르다. 어느 날은 엄청난 뚱보로, 때로는 아주 멋진 몸매를 가진 채. A에게 성은 큰 의미가 없다. 외모도 의미가 없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의 성이나 외모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의 시각 속에 갇혀 있었는지 깨닫는다.

 

사랑은 위험한 감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열정이 삶과 세상을 변하시킨다. 자신을 깨닫게 한다. A도 이 감정 때문에 실수를 한다. 먼 거리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제 시간에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면서 남긴 흔적 때문에 그가 하루 동안 머물렀던 네이선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물론 정확한 정체는 모른다. 이것은 A도 마찬가지다. 이 일이 A와 A가 머물렀던 네이선 모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네이선은 A를 악마로 부르고, A는 이에 변명한다. 리애넌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A의 정체는 무엇일까? A와 같은 존재들이 또 있는 것일까?

 

자신의 선택이 아닌 알 수 없는 방식으로 A는 매일 아침 다른 사람 몸에서 깨어난다. 선택하기 따라서는 몸 주인의 일상이나 중요성과 상관없이 하루 동안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이런 삶이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태어나면서 이렇게 적응하지 않은 존재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일 어디, 누구의 몸에서 깨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A에게 갑자기 나타난 사랑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A가 일상으로 삼았던 일들이 흐트러지는 계기가 된다. A의 영혼에 새겨진 사랑이 일상과 관계의 반복을 깨트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A가 리애넌의 몸에서 깨어난 하루다. 이때 하루 동안 그녀의 몸안에서 살면서 느낀 감각과 감정들은 평범하지만 그 사랑의 깊이를 아주 잘 표현해준다. 그녀가 보고 듣고 움직이고 만지고 부딪히는 느낌 모두가 A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갑자기 짝사랑했던 그 옛날 기억 한 자락이 떠오른다. 그녀가 걸었던 길, 만졌던 물건, 보았던 시선, 곁을 지나면서 풍겼던 향기 등등. 평생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물론 그 당시는 이보다 더 아픈 일이 없지만. 소설 속 두 인물의 사랑은 성이나 외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혀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둘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눈빛에 담긴 감정이다. ‘나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A의 존재를 발견하는 리애넌을 볼 때 이들의 사랑은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내일이 없는 이들의 현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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