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정동진에 가면 - 정동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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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지 않았다. 그 당시 엄청난 열풍이었지만 드라마에 관심이 없다 보니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드라마 속 유명한 대사나 장소 등은 너무나도 많이, 자주 방송에 나와 알고 있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정동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혹은 드라마 속 장소를 보기 위해 정동진으로 갔다. 유행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나는 한참 유행할 때 가지 못하고, 몇 년 전 늦은 여름 갈 곳이 없어 한낮에 놀러갔다. 한적한 그곳의 풍경은 여유로워 좋았다. 기차역도 나쁘지 않았다. 잠시 머물다 스쳐지나가기에 좋은 곳이었다.

 

지금도 연말이 되면 수십 만의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흉물스러운 건물이 하나 있다. 거대한 배 모양의 건축물이다. 멀리서 지나가듯이 보면 나쁘지 않지만 해 뜨는 풍경을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인데 이 지역이 탄광촌과 어촌이 함께 했고, 모래시계가 뜨기 전에는 그냥 한적한 동네였다고 한다. 물론 광산 경기가 좋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살았다. 딱 거기까지다.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사람들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자리를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채웠는데 갑작스러운 관광 특수가 주민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온 모양이다. 책 후반부에 이 이야기가 나올 때 씁쓸했다.

 

기본적으로 옛사랑의 흔적을 쫓아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미연이라고 불렀던 국민학교 동창이다. 소설 속 화자인 석하는 동해에 사인회를 왔다가 미연의 소식을 듣는다. 그 당시 몰랐다가 밤에 문득 그 이름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찾아와 그녀를 만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그 속에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당시 추억과 애틋한 마음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나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앞부분을 읽을 때 왠지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조금 더 읽으면서 사라졌다. 그 자리를 석하의 이야기가 조용히 파고들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이 남아 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언제나 잊고 있던 기억의 한 자락이 갑자기 떠오르면 감상적으로 변하게 된다. 미연이란 이름이 그 작용을 한다. 그녀를 찾는 방법도 무식하다. 잡지에 나온 사진 한 장을 들고 정동진에 내려와 카페를 돌면서 찾아다닌다.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고, 솔직히 말해 그렇게 설득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감상에는 공감한다. 어릴 때 한 약속을 잊고 있다가 갑자기 그것이 떠올라 먼 정동진까지 올 정도로 둘 사이가 각별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뭐 덕분에 아련한 옛사랑의 느낌을 만끽했지만. 기억과 사실 사이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작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정동역이 맞을까, 아니면 정동진역이 맞을까.

 

많지 않은 분량이라 조금만 집중하면 금방 읽을 수 있다. 책 뒤에 단어들만 적어놓은 것이 몇 쪽 있는데 흔히 말하는 이야기의 키워드다. 처음 이 단어들을 읽었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이 단어들이 이야기를 조용히 떠올려주었다. 감성적인 문장과 이야기가 아주 조용히 천천히 가슴속에 스며든 것이다. 물론 이야기에 반발하는 부분도 있다. 중학교 때 헤어진 두 남녀가 이십 년 이상 지난 후 다시 만났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는 부분이다. 중간에 비슷한 또는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지만 한 번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고, 편지조차 주고받지 않은 사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겨 놓은 감정의 여운은 진하다. 정동진에 대해 알게 된 몇 곳은 다음에 갈 일이 있으면 둘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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