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골라주는 남자 - 18년차 여행작가 노중훈의 여행의 맛
노중훈 지음 / 지식너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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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의 테마로 100곳의 식당을 다룬다. 내가 가본 곳을 세어본다. 4곳이다. 반면에 이름을 아는 식당은 상당히 많다. 이 차이는 방송으로 식당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가본 곳들이 지역적으로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나오면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여행과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한쌍이지 않은가. 저자도 여행작가이지 않은가. 언제부터인지 가슴 한 곳에서 떠나고 싶다는 열망이 커진다. 일상의 무거움이 머리를 짓누를수록 이 열망은 더욱 자라난다.

 

맛집 책을 많이 읽었지만 겹치는 집은 많지 않다. 오히려 <수요미식회> 같은 방송에서 본 집이 더 많다. 요즘 먹방이 대세에 유행이다보니 맛집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 많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이런 방송이나 책을 즐겨 들고 보았다. 한때는 방송이 나오지 않는 집이 더 귀했던 적이 있다. 자주 가는 식당들도 최소한 한두 번 이상은 방송에 나왔고, 벽에 방송 장면들이 출력되어 붙어있다. 맛집 방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면서 무조건 방송에 나오는 집에 가는 발걸음이 뚝 거친 적도 있다. 방송에서도 차별을 두기 위해 몰래 가는 방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면 괜히 또 한 번 가보곤 한다.

 

이렇게 맛집은 계속해서 나를 유혹한다. 지난 여름 제주에 가서 경치를 보기보다는 방송에 나온 맛집 탐방에 더 열을 올렸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계속 비가 온 것이다. 며칠 동안 식당을 돌면서 느낀 것은 나의 입맛과 방송의 괴리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다.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책이다. 방송이다. 이전보다 열심히 찾아보지 않지만 맛집 방송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눈길이 간다. 외식을 하려고 하면 맛집을 열심히 검색한다.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름 선별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물론 이것도 늘 맞는 것은 아니다.

 

여행작가란 직업 때문인지 아니면 먹는 것을 좋아하는 탓인지 전국곳곳의 식당이 나온다. 이전 같으면 제주도 식당이라는 이유로 놀랐을 수도 있지만 요즘은 너무 많이 나왔다. 이 책의 특이한 부분 중 하나로 꼽는다면 섬의 민박집 밥을 목록에 올려놓은 것이다. 단순히 차별화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그 집이 맛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잊고 있던 기억의 한 자락을 불러왔다. 민박의 추억이다. 하지만 민박집 밥을 먹은 기억은 거의 없다. 대부분 밥을 해먹거나 아니면 나가 사먹었다. 뭐 대부분 민박의 경우 단체로 갔으니 그렇기도 하다.

 

해장으로 시작하여 고를 필요 없는 식당으로 끝난다. 속풀이 테마에서 우래옥을 넣은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평양냉면계의 넘사벽이란 표현은 수많은 평양냉면 마니아의 반발을 살 수 있다. 실제 다른 방송에서 평양냉면을 다루었을 때 얼마나 많은 논쟁이 있었고, 개인 취향이 나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수집을 보면서 갈 곳이 많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신성각 짜장면이 어떤 맛일까 궁금하다. 팥을 좋아하는 나에게 진주의 수복빵집은 왜 몰랐을까? 하는 아쉬움을 준다. 몇 번이나 진주를 다녀왔기에 생긴 아쉬움이다. 어쩌면 먹고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질 기억력과 너무 오래전 방문한 했기에.

 

맛집을 다니다가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 식당이 회사 근처에 있으면, 집 근처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애성회관의 경우 지난 번에 갔다가 내부공사중으로 문을 닫아 그냥 돌아왔다. 차를 가지고 가면 늘 주차 문제가 생기는 곳이라 그때의 아쉬움이란. 류지의 솥밥은 늘 먹기보다는 가끔 둘러보고 싶다는 느낌이다. 김진환제과점 식빵은 이번에 꼭 사 먹고 싶다. 자신만의 맛을 찾아가는 식당들은 언제나 호불호가 갈린다. 박찬일 주방장의 로칸다 몽로는 한번쯤 가서 맛보고 싶다. 노부부의 치킨집 중동구판장도 마찬가지다.

 

한 잔 술이 당기는 날 좋은 친구들과 함께 가보고 싶은 식당들이 보인다. 늘 먹는 삼겹살에 소주가 아니라. 한동안 혼자 밥을 자주 먹었다. 하지만 청진옥은 아니었다. 노포임을 감안하면 다른 테마로 가야하지 않을까? 이천냥의 김밥은 이 김밥을 사기 위해 그곳으로 가고 싶게 만든다. 뭐야 할 가능성이 더 높지만. 부부청대문이 목록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 식당에 대해 자세히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불편한 식당이란 표현이 딱 맞는 곳이다. 예전에 이 근처에 살았을 때 알았다면 한두 번 정도 시도했을 텐데. 광주식당의 밥 이야기에서 인사동 골목길에 있던 식당이 떠올랐다. 반찬보다 밥으로 더 유명했던 집이다. 이렇게 이 책에 나오는 식당들은 추억도 같이 불러온다. 연말연초에 최소 한 곳 이상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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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너티
알리스 페르네 지음, 김수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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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은 <우아한 과부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터너티>란 프랑스 영화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정했다. 표지에 나오는 세 명의 여인이 소설 속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여인들일 것이다. 그런데 누가 누군지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영화를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누릴 재미를 위해 찾지 않았다. 실제로 발랑틴, 마틸드, 가브리엘 역을 할 배우가 누굴지 계속 상상했다.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하지만 정확하게는 누군지 모른다. 혹시 나중에 영화로 본다면 이것이 또 하나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원성이란 제목을 정한 것은 “결코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피와 살은 우리를 영원히 연결한다. 사람의 생김새와 성격을 결정짓는 암호는 그 암호가 어디에서 생겨나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삶의 그림자와 냉정함, 붕괴의 비밀을 드러낸다. 이런 삶의 과정은 끝없이 반복된다.”라는 문장과 맞닿아 있다. 흔히 인간의 불멸은 그 유전자를 남김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계를 통할 때만 가능하다. 예전에 읽은 책에 의하면 실제 유전적 아버지와 키우는 아버지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는 해외 통계가 있었다.

 

우아한 과부들이란 윈제목처럼 이 소설을 이끌고 나가는 것은 여자들이다. 과부들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마틸드의 경우 남편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따지면 가브리엘은 발랑틴의 가족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나중에 다시 두 집안이 이어지는 일이 벌어지지만. 이 소설 속 여인들은 정말 많은 아이들을 낳는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숫자다. 유산이나 사산 등을 제외하고 마틸드가 낳은 아이가 열 명이다. 이십대 초반에 결혼하여 죽는 순간까지 아이를 낳은 것이다. 작가는 그녀가 임신한 순간을 아주 빛나는 순간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삶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20세 초반 유럽은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남자들은 전쟁터로 나가 죽고, 그 죽음을 살아남은 아내와 엄마들이 그 아픔과 고통을 껴안아야 했다. 이 소설 속에서 발랑틴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전쟁과 병으로 아이들을 잃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아픔을 본 아들 앙리가 빨리 결혼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인지 모른다. 마틸드를 선택하여 결혼한 그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피임을 하지 않은 대가는 아내의 죽음이었다. 비록 열 명의 아이를 얻었다고 해도. 이 소설의 대부분은 이런 앙리와 마틸드와 마틸드의 친척인 가브리엘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삶과 관계와 부부의 유대 등이 간결하면서도 길게 나온다.

 

실제 소설의 분량은 2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한 쪽의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런데 다루고 있는 시간은 근 100년에 달한다. 등장하는 이름도 결코 적지 않다. 아이들만 해도 수십 명이다. 많을 때는 십수 명의 아이들이 한 아파트에서 살기도 한다. 작가는 앙리의 직업을 간단하게 말하지만 충분한 설명이 없다. 어떻게 이렇게 큰 집에 살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여자와 영원이다. 사랑이다. 마지막 장에서 발랑틴의 증손녀가 사랑을 만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한 명의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될 것이란 말로 끝을 맺는다. 이런 유전적인 영원성이 지엽적인 이야기를 빼고 간결하면서 유장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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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 시간.언어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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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는 시간과 언어를 다룬다. 한때 시간은 나의 화두 중 하나였다. 후배가 툭 던진 ‘시간의 공간성’이란 단어가 나를 괴롭혔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도서관을 뒤져 이 단어를 찾아봤지만 이에 딱 맞는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후배에게 이 단어를 물으니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모른다. 그때의 허망함이란! 덕분에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다루는 시간은 좀 더 포괄적이고 철학적이다.

 

예전에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아주 지루하게 읽은 적이 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부조리극이란 이름만 겨우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작가의 다른 작품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를 공연에 올렸다. 테이프에 자신의 감상을 녹음하고, 이것을 십 년 이상 지난 다시 듣는 내용이다. 현대 과학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작품인 테이프는 육성으로 자신의 말을 녹음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글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미래에 듣기 위해 녹음한 것이라면 진실을 이야기할 것 같지만 거짓말이 우선이다. 왜일까? 녹음된 것과 기억은 서로 다른 것을 알려준다. 당사자는 진실을 알겠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것과 연결되는 작품이 윤성희의 <부메랑>이다. 거짓 기록과 기억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찰나를 살아간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이미 과거가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과거, 현재, 미래의 삼생을 본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들이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벤야민의 ‘지금시간’이 가슴에 조용히 와 닿는다.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으로 다루지 않고 역사와 결부해서 풀어낸 것은 이 책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벤야민은 지금시간을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현재”라고 표현했다. 시간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지적인 것이라고 했을 때 시간과 기억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윤성희 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것처럼 심보선 시인의 시도 읽은 적이 없다. 공연작인 <벨락의 아폴로>도 처음 듣는 작품이다. 이번 부분을 읽을 때 이전에 읽었던 <생각의 시대>와 연결되는 몇몇 언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한때 말에는 힘이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공감하게 되었다. 언어가 우리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말해 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가 정신을 만든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요즘 세대가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문제를 지적했을 때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조승희에 대한 부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미친 놈이 저지른 총기 살인 사건이 아닌 현대의 우리가 만든 소외의 결과라는 지적 때문이다. “‘저리 가!’ ‘넌 필요 없어!’ ‘내 눈앞에서 사라져!’처럼 상대를 거부하거나 소외하는 언어행위에 담긴 폭력성과 파괴성은 그 자체가 지닌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다.”면서 예수의 산상수훈을 같이 놓았다. 여기서 언어행위란 “우리가 상대에게 어떤 의사를 전할 대 발설하는 말뿐 아니라 행동(시선, 표정, 손짓, 몸짓)까지 포함”한다고 말한다. 이것의 돌아온 탕자를 포옹한 아버지의 이야기로 가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황당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벨락의 아폴로>에 나온다. 아폴로가 취직하려는 아그네스에게 남자를 유혹하는 절대적인 비법을 전수한다. 그것은 간단하다. “참 잘생기셨어요!”라는 말이다. 이 말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반하고 자신들을 변화시킨다.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 말이 지닌 힘은 무시무시하다. 작가는 이 설정을 아주 자세하게 분석하는데 언어가 지닌 힘을 절로 느끼게 한다. 실제로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다면 처음에는 장난처럼 받아들이겠지만 거울 앞에서 조용히 나의 외모를 감상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자는 두 권의 책 속에 혁명, 이데올로기, 시간, 언어를 풀어내었다. 결코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은 작가의 작품 해석과 함께 인식을 넓혀주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생겼다. 물론 김연수는 예외다. 시인들과의 대담은 다시금 시에 대한 도전 욕구를 불러왔고, 아직 읽지 않은 시집을 기대해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즐겁게 한 것은 철학적으로 풀어낸 작품들과 철학적인 의미들이다. 반도 채 소화하지 못했지만 집중해서 읽은 부분은 어느날 문득 머릿속에 떠올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내년에는 어떤 책들을 더 집중해서 읽어야할지 조금 더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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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 혁명.이데올로기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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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의 책을 좋아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몇 권 되지 않는다. 철학을 직접 다룬 책으로는 <생각의 시대>가 유일하다. 이 철학카페 시리즈도 처음 읽는다. 다른 책을 사 놓았는지는 모르겠다. 제목들이 너무 낯익어 산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의 만족도를 생각하면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 비록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잊고 있던 개념을 떠올려주고,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몇몇 철학자들은 가능하다면 개인적으로 더 찾아 읽으면서 공부하고 싶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공연, 강연,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에서는 한 문학작품을 편집해서 보여준다. 강연은 이 작품을 풀어서 말해주고, 대담은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묻고 답한다. 이 구성만 놓고 보면 길게 이야기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철학자가 어딘 그런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낯선 두 작품은 언젠가 전체를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실제 <안티고네>는 책 속에서 본 적은 많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내용도 이번에야 제대로 알았다. <한낮의 어둠>은 정말 낯설다. 검색해도 한 출판사 나온다. 공연 속 내용만 놓고 보면 결코 한 출판사에서 나올 책이 아니다. 물론 쉽게 읽히지도 않을 것 같다.

 

공연과 더불어 같이 등장하는 작가들이 있다. 한 명은 시인 김선우고, 다른 한 명은 김연수 작가다. 시인 김선우는 솔직히 잘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검색하니 시집이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 소설도 두 권 썼다고 한다. <나의 무한한 혁명에서>를 놓고 철학자가 시인과 대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대담이 아니다. 공연과 강연이다. 대담은 어떻게 보면 시인을 더 알게 하고, 공연과 강연의 연장선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시집 제목과 혁명이 맞닿아 있다. 물론 책 내용은 혁명에 대한 저자의 정리와 주장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에서도 이어진다.

 

혁명. 참으로 가슴 떨리는 단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혁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개혁이란 단어를 더 좋아한다. 한때 이 두 단어의 차이가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로 나누는 경계처럼 사용된 적도 있다. 이 놀라운 단어를 지첵이 자본주의의 자기변신을 ‘혁명화’라는 용어로 이름 지었다. “자본주의는 그 내재적 모순과 구조적 불균형에서 오는 한계와 무능력이 드러날 때마다, 즉 점점 더 ‘썩을수록’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바꾸는 혁명화 작업을 한다.” 라고 말한다. 이것을 단순히 자본주의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로 확장하면 어떨까? 권력의 속성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종교는 어떨까?

 

혁명의 장에서 눈길을 줘야 하는 단어는 빼기다. 미켈란젤로 프로젝트란 용어도 빼기와 관련 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빼기를 통해 돌 속에 갇힌 이미지를 밖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불어 생각할 것으로 인공지능이 있다. 불안정성, 불확실성이 주는 위험에 대한 경고는 깊이 새겨 들을만 하다. 그리고 저항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통해 완성된다. 지금은 실패지만 결국 성공한 사례를 말하는데 지속적으로 시도한 결과물이다. 현재 우리 사회도 이렇게 발전해 온 것이 아닌가. 지금도 광화문을 덮고 있는 촛불이 일회성이 아니었기에 변화를 만들지 않았는가.

 

아마도 이 작가 편에서 가장 익숙한 이름이 김연수일 것이다. 그의 장편과 단편을 몇 권 읽었고, 이제는 상당히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과거를 보면 소설 쓰기가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이다. 문학상 수상으로 인한 상금을 제외할 때 이야기다. 실제로 그의 이름이 나에게 알려진 것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아는 것이 하나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책 관련 카페 등이나 인터넷서점 서평을 보면 그의 인지도 변화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한때 절판되었던 책이 다시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번역한 책들이 가끔 보이는데 이 시절 생계를 위한 것이다. 이런 작가들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이데올로기. 정말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사상과 허위의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간단한 요약만으로 부족한 단어다. 실제 네 번째 행사 주제인데 책으로 나오면서 두 번째로 다루어졌다. 혁명과 맞물려 풀어내기 좋았던 것 같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지만 철학자가 파고 들어가니 수많은 정의와 의미가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어 사용에서 정치적 이념 및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할 때 뜨끔했다. 나도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데올로기를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본래의 목적을 왜곡하거나 해치는 이념 또는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이것에 대한 좋은 교재가 바로 <한낮의 어둠>이다.

 

이성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감정적, 감성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한낮의 어둠>에서 다루는 상황을 보면 심문관의 시점과 비슷한 적이 나도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빈번했고, 지금도 이것을 당연시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과 같다. <한낮의 어둠>에서 다루는 수단의 정당화는 수십 수천 명의 수준을 벗어났다. 이성과 과학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절이라면 나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쉽게 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이 책은 나의 서툰 믿음을 깨트리고, 이성을 새롭게 보게 한다. 공부할 거리도 잔뜩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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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남자 걷는 여자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9
정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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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잊으려고 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단 그 감정을 잊고, 그 사람의 이미지를 잊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잊었다고 생각한 옛사랑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잊었다고 생각한 기억은 되살아나고, 그 당시의 아픔과 괴로움과 열정 등이 뒤섞이면서 살아난다. 이십 년이 넘었던 기간 동안 감정이 메말라 간 남자라면 이 상황이 불편하지만 오랜만 가슴 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의 한 축은 바로 이런 남자가 담당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기 전 한 통의 메일로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다면 어떨까? 엄마로 알고 있던 사람이 친엄마가 아니고 자신이 불륜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안다면? 먼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마린이 이런 경우다. 엄마의 누드 모델이었던 그녀가 자신의 친엄마였다니. 아빠의 죽음도 충격인데 이 사실은 더 심하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남자 친구를 떠나 한통의 엽서에 나온 주소로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엄마의 어릴 때 남동생 같았던 그 남자. 바로 은탁이다.

 

첫사랑이 너무 강렬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삶이 너무 바빠 다른 여자를 만나지 못한 것일까? 은탁을 몇 년 동안 좋아했던 여자 후배도 있었다. 하지만 삶은 어느 순간 변화를 맞이한다. 멀고 긴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하던 그가 짐을 정리한 채 고향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무물고기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큰 성공도 실패도 없는 공간이지만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온다. 만약 이 게스트하우스가 없었다면 마린이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인연은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어진다.

 

소설은 현재보다 과거에 더 비중을 둔다. 이 과거가 은탁과 마린의 현재를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의 첫 접점이 시작한 것도 과거다. 물론 그 인물은 은탁의 첫사랑이자 린의 엄마인 소정이다. 길지 않은 분량이다보니 간결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군더더기가 없다. 세밀한 상황 묘사나 전개보다 그 당시 감정을 표현하는데 더 충실하다. 자신의 생모를 아는 남자를 만났다고 그 이야기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작가는 무겁게 이 상황을 그려내지 않고 린을 통해 경쾌하고 가볍게 풀어낸다. 어떤 순간은 농담 같다. 하지만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 조금 낯설게 다가온다.

 

출생의 비밀과 그 과거와 관련된 남자의 등장과 만남이 어떻게 보면 구식이다. 신파적이 될 수 있지만 작가는 과감한 생략과 게스트하우스의 현실을 통해 조용히 풀어낸다. 재미난 것은 부령제과의 인기다. 아니 그보다는 부령반점의 역할과 이야기들이다. 작은 마을의 경우 그 마을 사람들의 기억을 먹고 산 존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기억 속에나 존재한다. 그 중국집 딸이 빵가게를 열었는데 인기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은탁과 마린을 사랑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사랑은 짝사랑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충격이 이 상황을 가속화시킨다.

 

첸의 린에 대한 사랑은 명확하다. 하지만 은탁에 대한 수연의 감정은 무얼까?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남자는 매일 달리고, 여자는 걸었다. 하루에 몇 번의 만남이 길 위에서 펼쳐졌지만 그냥 게스트하우스 사장과 손님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알고 인정하면서 이 감정은 변한다. 이 감정선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 과거는 알지만 현재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결말이 조금은 낯설다. 다른 방식으로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비어있던 시간들이 채워지면서 숨어 있던 감정들이 튀어나왔는지 모른다. 다른 속도로 걷고 뛰던 두 남녀는 이제 완주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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