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 시간.언어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2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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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는 시간과 언어를 다룬다. 한때 시간은 나의 화두 중 하나였다. 후배가 툭 던진 ‘시간의 공간성’이란 단어가 나를 괴롭혔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도서관을 뒤져 이 단어를 찾아봤지만 이에 딱 맞는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후배에게 이 단어를 물으니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모른다. 그때의 허망함이란! 덕분에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다루는 시간은 좀 더 포괄적이고 철학적이다.

 

예전에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아주 지루하게 읽은 적이 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부조리극이란 이름만 겨우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작가의 다른 작품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를 공연에 올렸다. 테이프에 자신의 감상을 녹음하고, 이것을 십 년 이상 지난 다시 듣는 내용이다. 현대 과학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작품인 테이프는 육성으로 자신의 말을 녹음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글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미래에 듣기 위해 녹음한 것이라면 진실을 이야기할 것 같지만 거짓말이 우선이다. 왜일까? 녹음된 것과 기억은 서로 다른 것을 알려준다. 당사자는 진실을 알겠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것과 연결되는 작품이 윤성희의 <부메랑>이다. 거짓 기록과 기억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찰나를 살아간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이미 과거가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과거, 현재, 미래의 삼생을 본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들이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벤야민의 ‘지금시간’이 가슴에 조용히 와 닿는다.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으로 다루지 않고 역사와 결부해서 풀어낸 것은 이 책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벤야민은 지금시간을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현재”라고 표현했다. 시간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지적인 것이라고 했을 때 시간과 기억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윤성희 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것처럼 심보선 시인의 시도 읽은 적이 없다. 공연작인 <벨락의 아폴로>도 처음 듣는 작품이다. 이번 부분을 읽을 때 이전에 읽었던 <생각의 시대>와 연결되는 몇몇 언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한때 말에는 힘이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공감하게 되었다. 언어가 우리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말해 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가 정신을 만든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요즘 세대가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문제를 지적했을 때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조승희에 대한 부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미친 놈이 저지른 총기 살인 사건이 아닌 현대의 우리가 만든 소외의 결과라는 지적 때문이다. “‘저리 가!’ ‘넌 필요 없어!’ ‘내 눈앞에서 사라져!’처럼 상대를 거부하거나 소외하는 언어행위에 담긴 폭력성과 파괴성은 그 자체가 지닌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다.”면서 예수의 산상수훈을 같이 놓았다. 여기서 언어행위란 “우리가 상대에게 어떤 의사를 전할 대 발설하는 말뿐 아니라 행동(시선, 표정, 손짓, 몸짓)까지 포함”한다고 말한다. 이것의 돌아온 탕자를 포옹한 아버지의 이야기로 가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황당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벨락의 아폴로>에 나온다. 아폴로가 취직하려는 아그네스에게 남자를 유혹하는 절대적인 비법을 전수한다. 그것은 간단하다. “참 잘생기셨어요!”라는 말이다. 이 말에 남자들은 그녀에게 반하고 자신들을 변화시킨다.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 말이 지닌 힘은 무시무시하다. 작가는 이 설정을 아주 자세하게 분석하는데 언어가 지닌 힘을 절로 느끼게 한다. 실제로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준다면 처음에는 장난처럼 받아들이겠지만 거울 앞에서 조용히 나의 외모를 감상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자는 두 권의 책 속에 혁명, 이데올로기, 시간, 언어를 풀어내었다. 결코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은 작가의 작품 해석과 함께 인식을 넓혀주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생겼다. 물론 김연수는 예외다. 시인들과의 대담은 다시금 시에 대한 도전 욕구를 불러왔고, 아직 읽지 않은 시집을 기대해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즐겁게 한 것은 철학적으로 풀어낸 작품들과 철학적인 의미들이다. 반도 채 소화하지 못했지만 집중해서 읽은 부분은 어느날 문득 머릿속에 떠올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내년에는 어떤 책들을 더 집중해서 읽어야할지 조금 더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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