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락사스의 정원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0
이평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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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의 기억은 늘 이현세의 만화로 이어진다. 학창시절 만화방에서 본 한 구절이 나로 하여금 <데미안>을 읽게 만들었다.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다 그 유명한 문장을 만났다. 새와 알과 아브락사스의 그 문장 말이다. 그 이후 이 유명한 문장은 나의 뇌리 속에 박혔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책으로 나를 인도했다. 결론만 말하면 헤세와 나는 맞지 않았다. <유리알 유희>,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을 거의 의무감으로 읽었다. 아마도 내가 예상한 것과 달랐고, 그 당시 내가 선호하는 내용도, 이해의 깊이도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의 저자는 <데미안>을 다섯 번 읽었다고 한다. 20대에 읽은 세 번째에야 겨우 이해가 되었다고 한다. 나에게는 지금도 희미한 기억의 일부만 남아 있는데 다섯 번이라니... 소설 속에서 데미안은 주인공 기연이 일하는 카페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 마리가 즐겨 읽은 책 제목이다. 마리도 다섯 번 읽었다고 한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마리에게 어느 정도 작가의 감성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유명한 문구를 기연의 성장과 변화의 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깨어나려고 버둥거린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로망 컬렉션이란 시리즈 이름처럼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한 남자의 사랑과 성장과 변화다. 아버지의 몰락과 새어머니의 도망(살던 집을 팔았다)은 그를 빈곤한 삶으로 몰고 간다. 이런 그를 구해주는 것은 카페 ‘데미안’의 사장 장이다. 그의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기연으로 하여금 안정된 수익과 주거지를 제공받게 만든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의 외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빠트렸다. 모델 학원과 연기 학원을 다닌다고 설정한 것만 놓고 보면 키 크고 잘 생긴 외모를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도입부에 성공한 그가 다시 ‘데미안’에 와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가 생각한 것은 마리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앞에서 말한 <데미안>의 문장은 각각 하나의 장이 된다.

 

이 소설 속 몇 가지 장면들은 찌라시나 연예계 소문으로 들었던 것들이다. 게이, 마약, 성 상납 등이 대표적이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널려 있다. 그 중에서 극소수만이 그 줄을 잡고 올라갈 수 있다. 소설 중반은 기연이 그 줄을 잡고 세상의 빛을 받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그 빛의 이면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자신을 데뷔시킨 다이애나와의 성관계와 그녀의 집착,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성 상납, 이 과정에서 하게 되는 마약 등. 만약 그 자신이 다이애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다면, 사랑하는 여인 마리를 포기했다면 그의 미래는 당분간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중간했다. 그 둘을 모두 잡으려고 하면서 둘 다 놓친다.

 

아브락사스는 선도 악도 아니다. 인간은 그의 정원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야 한다. 방황도 하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거대했을 때는 그 욕망에 굴복하지만 그 욕망이 채워지면 사랑의 욕망이 다시 자란다. 이 악순환은 두 사람 모두에게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장도 <데미안>을 다섯 번 읽었다고 말한다. 또 작가의 분신이 된 것이다. 그가 하는 충고는 아주 현실적이다. 기연의 기대를 깨트린다. 문밖으로 날아간 새는 그의 희망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자극적인 내용과 소재들이 가득하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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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
유카와 유타카.고야마 데쓰로 지음, 윤현희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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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북> 편집자이자 평론가인 유카와 유타카와 무라카미 하루키 전문기자이자 저널리스트인 고야마 데쓰로 두 사람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 세계를 놓고 대화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이렇게 오랫동안 다루고 출간한 것도 흔한 것이 아닌데 이것이 외국에 출간되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그만큼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나 자신도 그의 오래되고 엄청난 팬이다. 좋아하는 외국 작가의 순위에 늘 최상위에 그를 올려놓고 있고, 그의 신간이 나오면 항상 위시리스트에 넣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고 말하지만 내 경우만 놓고 보면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재미있게 읽었을 뿐이다. 그의 소설이 번역되어 나오면서 한국 문단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고, 꽤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그의 문체를 흉내 내려고 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솔직히 그 당시는 문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던 시기라 그 의미를 잘 몰랐다. 그리고 장편을 좋아했던 나이기에 하루키의 문체는 단편에 더 잘 어울린다고 했을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단편집과 에세이를 읽으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이 대화집은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단순히 대화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에 이 대담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칼럼 등을 쓴 것도 같이 넣었다. 물론 이 칼럼의 내용들 중 많은 것들이 대담 속에 나온다. 하지만 이 칼럼을 읽다 보면 이들이 얼마나 하루키를 좋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문학에 접근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들을 떠올려 보고, 언젠가 그의 작품들을 다시 읽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 속에 가득 차 올랐다. 물론 사 놓고 너무 두꺼워 시작도 못한 <1Q84>는 처음 읽겠지만.

 

네 번의 대화는 그의 신간 출간과 맞물려 있다. 첫 대화만이 첫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애프터 다크>까지 다룬다. 두 번째 대화의 작품은 <1Q84>고, 세 번째 대화의 작품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다. 마지막 대화는 그의 단편소설에 대한 것들이다. 그런데 목차의 제목을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두 번째와 세 번째 대화에 붙은 제목이다. <1Q84>에는 해독이란 단어가 붙었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는 매력이란 단어가 같이 놓여 있다. 이 차이는 둘의 대화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후자의 경우는 최근에 읽었기에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의 감상을 떠올려볼 수 있었고, 전자는 출간 때부터 이 작품에 대한 해독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1Q84>를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더욱 더.

 

이 대화집은 하루키 팬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팬이라면 공감할 내용이 무지 많다. 음악에 대한 글에서 “어떤가. 무라카미 씨의 이런 글을 읽으면 누구라도 이 앨범이 듣고 싶어지지 않을까?”라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예찬한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읽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클래식은 아니지만 재즈를 열심히 찾아 들었던 적도 있다. 에세이를 읽다가 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 대화집은 옛 작품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오고, 다시 읽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암호처럼 그의 작품을 해석하고 분석하고 추정하고 감탄하는 모습들 때문이다.

 

두 대화자의 하루키 작품 읽는 법은 다르다. 유카와가 “상당히 세세하게, 낱낱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단편소설을 읽는군요. 저는 좀 넓게, 의미를 한정하지 않는 쪽으로 읽어갑니다.”라고 한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4라는 숫자>와 <1963년>이란 칼럼이 대표적이다. 덕후의 세계로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상력이 발전했다. 물론 일정 부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하기는 한다. 대화를 읽을 때는 누가 한 말인지 그렇게 구분하고 읽지 않았는데 이 문장을 발견한 후 다시 몇 곳을 찾아보니 역시 그 차이가 드러났다. 언젠가 하루키의 소설을 다시 읽고, 이 책을 다시 본다면 나의 해석도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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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 대중문화로 보는 박정희 시대
이영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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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로 보는 박정희 시대란 부제가 달려 있다. 대중문화는 박정희 시대를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중예술이 박정희 시대의 역사를 보고자 하는 하나의 연구 대상이다. 저자는 “대중예술의 변화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고 단언한다. 이것은 ‘불황에는 짙고 화려한 립스틱과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 식으로 단순하게 정식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대중예술의 유행과 인기의 변화가 정치사적 변화와 맞물려 나타나는 일은 우연이라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몇 가지로 예로 1992년에 서태지와 아이들로 비롯된 댄스 뮤직의 시대와 얼터너티브 록의 유행 등의 현상이 등장한 것과 조용필의 인기 시대가 정확하게 전두환 정권의 시대와 일치한다는 것 등이다. 여기서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이 관계를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심층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예술로 역사를 읽어내는 일이 수용자 대중이나 생산한 창작자도 잘 깨닫지 못하는 대중의 사회심리를 섬세하게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속살을 읽어내는 것’이란 표현을 저자가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를 얼추 다섯 시기로 나눈다. 이 다섯 시기는 모두 선거가 있는 시기와 맞물려 있고, 대중문화 인기 판도의 변화가 꽤 의미 있는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한국의 오늘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란 말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1960년대를 해석하기 위해 1부는 1960년 4.19 이전의 대중예술로 향한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너무 낯익은 단어이지만 아프레걸은 너무 낯설다. 아프레걸이란 단어는 전후란 의미의 아프레게르란 불어에서 변종된 신조어다. 신조어가 되면서 원래의 의미는 사라지진다. 또 사교춤의 단속이 박정희 시대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잠시 동안 기억 왜곡을 생각하게 만든다.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들과 카바레의 풍경은 사교춤은 나쁜 것이란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이 단속은 정부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게 만든다.

 

2부와 그 이후로 이어지는 대중예술의 분석은 매체와 연결해서 진행된다. 방송국 개국과 라디오 드라마, 영화, 소설, 음악 등이 분석의 대상이다. 지금은 라디오에서 성우들이 드라마를 읽어주는 것이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는 이 라디오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였다. 그런데 이 라디오의 보급이 1960년대만 해도 그렇게 많이 되지 않았다. 아직 문맹률이 높았던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소설이 대중들에게 많이 읽힐 수 있는 시기도 아니다. 이것은 이런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정해져 있음을 알려준다. 혁명을 일으킨 세대가 왜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지, 그 시대 인물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분화된 60년대를 저자의 분석을 통해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하나로 읽게 되는 그 시대의 변화가 보인다. 금지곡의 대명사가 된 두 노래 <아침이슬>과 <동백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는 여담처럼 전해지는 것과 너무 달라 낯설다. 원래의 작곡 의도와 다르게 불리게 된 <아침이슬>이나 오랫동안 금지곡이었다고 하는 <동백아가씨>가 꽤 오랫동안 팔렸다는 사실 등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영화가 만들어내는 아버지의 이미지 변화와 여성 이미지 변화는 우리가 단순하게 기억하던 것과 너무 달라 조금 놀랐다. 또 직설적인 노래가사는 어떤가.

 

1970년대 청년문화에 대한 분석도 이식론, 자생론, 혼종론 등으로 대립하지만 전후 세대의 탄생과 연결한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세대론은 현재도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록하면 떠오르는 저항정신이 70년대 한국에서는 없었다고 한다. 청년문화의 중심에 포크가 들어선 것도 이 시대와 관계 있다. 포크가 락보다 상대적으로 건전해 보였고, 정부의 퇴폐문화 단속과도 관계가 있다. 아직 사회의 성숙도와 문화의 이해도가 많이 나아가지 못한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더 들어가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새로운 흐름 수용에 대한 대중예술 분야별 속도는 대중가요, 소설과 영화 순이다. 70년대를 해석하는 저자의 글도 이 순서를 결코 넘어서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놀랍고 흥미로웠던 것은 김수현 작가의 등장이다. 작가의 드라마를 제대로 본 것이 없어 쉽게 평가를 내릴 수 없지만 현재까지 최고의 드라마 작가 중 한 명이자 히트 제조기였던 그녀가 처음 나타났을 때 여주인공들이 기성세대 작품과 다르게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수현이 청년문화라 지칭하는 부류에 끼지 않았고, 이 시대의 청년문화 현상은 남성의 관점과 감수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신이 새로운 진보적 예술 문화 운동의 주체들이 탄생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 시대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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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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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다 미쓰요의 단편 여섯 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주로 그녀의 장편만 읽다가 단편집을 읽으니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각각 분량이 조금씩 다른데 하나로 이어지는 주제가 있다. 바로 또 다른 인생이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화자들은 모두 현재와 다른 삶을 꿈꾼다. 현재의 삶이 불만 가득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환상 혹은 기대에서 비롯했다. 사실 결혼한 사람들 누구나 한 번 이상씩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만약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과연 그 삶이 행복한 것일까? 어떻게 보면 평행우주의 한 장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는 순간도 있다.

 

주제와 가장 비슷한 제목을 가진 작품이 <또 하나의 인생>이다. 부부가 불륜커플과 함께 산토리니로 여행을 갔다. 이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에 놓고, 화자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을 꿈꾼다. 늘 함께 한 남편의 부재를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나’는 이 사실에 놀란다.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감정이 꿈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륜커플의 격앙된 감정은 잔잔하고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여행에 변화를 불러온다.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 또 하나의 인생보다 이 커플이 싸운 이유와 그 결말이 더 궁금해진다.

 

<달이 웃는다>는 아내의 불륜과 이혼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아내가 바라는 이혼을 계속 거부하다가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다. 그러다 한 여성택시운전사를 만나면서 자기 인생의 변곡점 중 하나를 회상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예쁜 여경찰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한 말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 말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아내의 이혼 요구를 줄기차게 거절하고 아내를 괴롭혔던 그의 집착이 끊어진 것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의 선택이 그 당시 아이의 공감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도 무사 태평>은 쫓기는 삶을 사는 한 여자를 보여준다. 블로그 순위를 위해 매일 자신의 글을 올린다. 대부분 자신이 요리한 음식이나 산 음식이다. 그녀의 현재는 결코 자신이 바란 삶이 아니다. 결혼까지 생각한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자신을 찼고, 이 때문에 현재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산다. 평범한 주부다. 하지만 블로그가 그녀를 조금 특이하게 만든다. 쿨할 것 같았던 인생이 현재의 불만으로 과거의 집착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결코 가보지 못한 삶을 자꾸 생각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런 삶에서 딸은 그녀의 감정 깊은 곳을 건드린다. 가끔 블로그 때문에 화를 내지만 말이다. 과거를 현재에 와서 확인하는 순간 그 과거는 조금씩 날아간다. 그녀가 친구에게 말했던 말처럼.

 

<주방 도라>는 아내와 이혼한 후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 이름이다. 우연히 방문한 것처럼 가서 그녀의 삶을 염탐한다. 이 과정에 그는 만약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이란 가정을 수없이 한다. 직설적으로 물어볼 수 없어 여자사람 친구를 데리고 가서 정보를 더 얻는다. 역시 정공법으로 다가갈 생각은 없다. 그가 이혼하게 된 과정을 봐도 마찬가지다. 도망다니다가 이혼당했다. 옛 여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없었던 그가 다시 잘 될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보이지 않지만 그의 노력여하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표제작 <평범>은 평범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유명인이 된 동창생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둘은 친했고, 한 남자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일이다. 그러다 유명인이 된 친구를 잡지와 방송에서 보게 되었고, 트위터로 소식을 얻는다. 그러다 유명인인 하루카가 그녀를 만나러 오겠다고 한다. 아이없는 그녀가 남편 몰래 그녀를 만난다. 그런데 하루카의 목적이 그녀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하루카의 특별해 보이는 삶이 자신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루카가 “아주아주 평범한 게 불행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라는 말을 하는 순간에.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는 읽으면서 평행우주론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10년 버스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이다. 그녀는 이 사고 이후 자신의 삶을 두 개로 분리한다. 현실의 그녀와 그녀가 바라고 꿈꾸는 또 다른 삶으로. 현실은 10년 전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후회하고, 또 다른 나는 아주 평범한 엄마의 삶을 자세하게 그려낸다. 만약이란 가정이 얼마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만약을 버릴 때 삶은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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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씽크_오래된 생각의 귀환
스티븐 풀 지음, 김태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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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의 귀환’이란 부제를 출판사에서 붙였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의 놀라운 역사 정도로 직역할 수 있을 것이다. <리씽크>란 제목에서 나오듯이 이 책은 과거의 이론이나 생각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현재에 발전시킨 것들을 다룬다. 저자는 “재고와 재발견의 기술은 권위, 지식, 판단, 옳고 그림 그리고 생각 자체의 절차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위한 자료를 하나씩 풀어서 보여준다. 부제가 지닌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명제, 반명제, 예측의 3부로 나누었다. 사실 이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모르겠다. 모르는 것은 넘어가고, 아는 것만 본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하지만 이 저자가 들려주는 과학에 대한 이론들은 쉽지 않다. 그냥 전체적인 개요는 알겠는데 세부적으로 과학에 들어가면 나의 한계가 금방 드러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 그대로다. 그리고 몇몇 이야기는 나에게도 그렇게 낯설지 않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이미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손을 씻는 이야기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것이 그 당시 의사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이 의사들의 반대가 과학의 발전을 도왔다는 것이다. 반대를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 이유가 명확해지고 과학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블랙박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효과가 분명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행동이나 과학을 풀어낸다. 블랙박스를 해석하는 것이 당시 과학으로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재 혹은 미래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정을 모른다고 결과를 무시하는 행동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블랙박스 이론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과거에 무시되었거나 한계가 분명했던 이론과 과학이 새로운 과학 등의 발전과 다른 아이디어에 의해 다시 조명 받는 일이 생긴다. 실제 이런 사례들을 엮어서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하나로 엮어서 풀어내려고 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 부분이 광고 문구에 따르면 통섭의 천재라는 말에 부합할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흔히 말한다. 맞는 말이다.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도 과거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책에서 ‘기마대의 부할’이란 유쾌한 제목을 붙인 장도 실제 읽어 보면 별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대륙에서 특공대가 말을 타고 옮겨 다녔다는 것이다. 당연히 현대의 최신장비들을 지니고 말이다. 이처럼 상황과 현실에 맞게 기존의 아이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연한 사고와 지식과 경험이 왜 현장에서 필요한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범신론과 좀비 아이디어의 부할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다. 특히 좀비 아이디어 부분은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몇 가지 선입견에 그대로 적용된다. 비과학적이고 사실과 너무나도 다른 정보가 감정에 호소하고, 아니면 말고 같은 말로 왜곡하면서 지속된다. 저자는 이것과 과거의 이론의 문제를 다르게 분류하고 있다. 아니 이런 것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과학과 이론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낙수효과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좀비 아이디어다. 우리 주변을 떠돌고 다니는 수많은 이론 아닌 이론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범신론은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저문 이론이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와 과학의 발전 등이 엮이면서 이 이론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론이 그렇게 낯설지 않다. 아마 여기저기에서 본 내용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곤마리 정리법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일본 만화나 영화나 소설 등에 익숙한 나에게 낯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용성 측면에서 틀린 아이디어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상기시켜준다고 할 때 고개를 끄덕였다. 틀렸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행동하거나 실험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시대와 과학의 발전에 의해 바뀔 수 있다.

 

개인적으로 눈길을 많이 끈 부분은 기본소득과 우생학이다. 최근에 자주 나오는 기본소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을 ‘사회배당’이란 말로 바꾸니 새로운 가능성이 조금 보인다. 인종대청소의 원인 중 하나였던 우생학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원래 학문이 의도했던 것과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을 가지고 전체를 매도하는 나쁜 습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곱씹으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말의 남용에 대한 버트런드 러셀의 답변은 더욱 그렇다. 이런 리씽크의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일단 알아야 한다. 모른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조금 힘들게 읽었지만 차분히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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