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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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중 이상하게 읽기 힘든 작가 중 한 명이 줄리언 반스다. 늘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 이전에 다른 책을 읽고 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평소보다 더 집중하고 긴 시간을 들였음에도 그렇다. 물론 나의 취향 등과 정반대 의견을 말하는 독자들도 자주 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힘든데 반스는 재밌고 즐겁다고. 작가의 이름  때문에 사놓은 몇 권의 반스 책들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될지 괜히 궁금해진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늘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있고, 읽어야지 생각을 하는데도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이 책들은 죽음의 영역 속에 있는 것일까?

 

반스의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체계적으로 읽지 않았고, 제대로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작가가 관심을 가진 분야가 죽음이란 것도 알지 못한다. 실제 원제에도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다. 출판사에서 편집하는 과정에 죽음을 넣었다. 여기에 ‘웃으면서’란 단어를 넣어 살짝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이 ‘웃으면서’란 단어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줄리언 반스가 말하는 죽음에 관한 유머가 그것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가족에서 시작하여 가족으로 끝난다. 그 사이를 채워주는 것은 역시 기억과 추억과 예술가들의 죽음이다.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대로 읽지 못하지만 관심이 있는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들의 죽음을 인용한 글들이다. ‘죽음에 대한 유쾌한 한판 수다’라고 적어놓았는데 어떤 대목에서는 크게 공감한다. 기억과 죽음에 관한 많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몇몇은 나의 기억과 경험과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의 에피소드를 두고 자신이 소설가가 된 이유를 설명한다, “똑같은 사건에 대한 세 가지 설명이 서로 어긋난다.” 우리가 소설을 읽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다. 다른 관점, 다른 해석 등이 주는 재미. 이 대목을 읽으면서 소설의 힘에 대한 옛글들이 떠올랐다.

 

죽음과 예술가에 대한 글을 쓰는 동안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인물을 만난다. 그런데 다행이라면 그 책에 나온 예술가와 그가 인용한 예술가가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겹쳤다면 그는 새롭게 글을 썼어야 했을 것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작가는 쥘 르나르다. 르나르와 그의 부모의 죽음과 관련된 죽음의 기록은 반스의 부모 죽음과 비교되는 부분이 있다. 죽음의 기록은 서로 엇갈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반복되는 글도 바로 이 부분이다. 단순히 예술가들만의 죽음을 다루지 않고 가족을 다루면서 개인적 경험도 같이 나열한다. 이 부분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비록 내가 경험한 것과 다르다고 해도.

 

인생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다행이라면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죽음을 둘러싸고 종교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의 반응도 다르다. 그가 무신론자가 된 이유도 특별하지 않다. 다시 불가지론자가 되었지만 종교의 감정은 전혀 없다. 조금 특이한 부분이다. 조금 더 세밀하게 읽었다면 아마도 내가 가장 재미있어 했을 부분은 바로 다른 예술가들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에피소드들이다. 거장들의 말년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도 깨끗하지도 못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그가 걱정하는 부분이 여기다. 그렇다고 이 걱정에 매달려 암울하게 지내지는 않는다. 유모와 위트 넘치는 글은 그것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든 다음에 차분하게 이 책을 읽는다면 분명히 다른 이해와 해석으로 다가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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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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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에서 모던 앤 클래식 시리즈로 SF소설을 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이전까지 나온 작품들이 모두 나의 기대를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이 장르가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비록 이전처럼 SF문학을 더 많이 읽지 않고 있지만 늘 관심을 두고 있는 장르이다 보니 이쪽의 신간이 나오면 늘 눈길이 간다. 다만 추리소설보다 더 협소한 시장이다 보니 나오는 책이 훨씬 적다. 그래서 아직도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의 숫자가 훨씬 적다. 그래서 이 작품집의 작가도 낯설다. 화려한 수상 이력을 생각하면 조금 의외지만 나의 얕은 지식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 작품집의 표제작 <블러드 차일드>는 정말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SF문학상 세 개를 모두 수상했다. 네뷸러상, 휴고상, 로커스상 등이다. 이 중 하나만 받아도 엄청난 홍보를 하는데 셋이나 받았다. 그런데 이런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진 작품이 겨우 단편선집 <토탈호러>에 실린 것이 전부였다. 한국의 SF 시장이 얼마나 척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당시 이 단편선집을 읽었지만 나의 관심은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에 가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장편들도 이전까지 딱 한 권 출간되었다. 이번에 읽으면서 검색한 결과다.

 

이 책은 일곱 편의 단편 소설과 두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재미난 점은 각 단편이 끝난 후 저자의 후기가 덧붙여져 있다는 것이다. 처음 단편을 잡지 등에 출간할 때는 없었던 부분인데 단편집으로 묶이면서 덧붙여진 것이다. 덕분에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되었고, 독자나 평론가들의 오독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막은 것도 사실이다. 단편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바와 작가의 후기가 다른 경우(대부분 다르다) 읽었던 이미지가 흐려지고 깨어지는 단점이 있다. 물론 새롭게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장점도 공존한다.

 

<블러드 차일드>는 읽으면서 조금 난해했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어 작가가 설명만 가지고 상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알을 먹으면서 젊음을 유지하는 부분과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의 생명체를 위한 숙주가 되는 이야기가 아주 놀랍게 펼쳐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에어리언 시리즈의 한 장면 같은 부분도 있지만 자발적이라는 것과 숙주를 살리려는 노력 등이 세밀하고 탁월한 심리 묘사와 더불어 표현되었다. 왜 이전에 이 작품의 재미를, 깊이를 알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 당시 좋아하던 SF 장르가 아니었던 탓일 것이다.

 

<저녁과 아침과 밤>은 유전적 질환을 소재로 했다. 듀리에-고드 질환(DGD)라고 불리는 이 병은 한 치료제에서 발생했고, 유전된다. 무서운 것은 엄청난 자해와 자살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부모가 죽었던 장면에 대한 묘사는 한 편의 호러 소설 일부를 읽는 것 같다. 장편으로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을 소재다. <가까운 친척>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SF 느낌이 없다. 읽다 보면 하나의 가능성이 살짝 엿보이는데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 구약성경을 예시로 삼았다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말과 소리>의 시작은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놀라운 미래의 모습이 나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에 의해 인류가 파괴된 후의 세상이다. 말도 소리도 글도 잃은 사람들 속에서 급박하게 변하는 전개는 한 편의 멋진 묵시록이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종말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다.

 

짧은 단편 <넘어감>은 놓친 부분이 많다. SF적 요소도 적다. 후기가 없었다면 기억에 남는 것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특사>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사람이 통역사로 등장한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 통역사가 높은 소득을 얻는다. 통역사를 지원한 사람들과의 대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조금씩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은 점점 규모가 커진다. 장편 속에 하나의 에피소드로 넣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작품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무수히 많은 외계 침공 영화 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마사의 책>은 신이 등장한다. 신과의 대화를 통해 인류의 구원을 이야기 한다. 작가의 유토피아 이야기라고 하는데 서구의 신이 가진 오류가 더 눈에 들어온다.

 

단편 소설의 뒤에 두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긍정적인 집착>과 <푸로르 스크리벤디>다. 전작은 그의 삶을 요약한 듯하다. 물론 그 속에는 그가 어떻게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는지가 핵심이다. 후작은 글쓰기에 대한 글이다. 많은 부분 공감한다. 길지 않고 핵심만 실려 있어 글쓰기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알려주기 좋다.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글 모두 군더더기 없는 글이라 조금 건조한 점도 있지만 작가의 삶을 조금은 엿본 듯한 즐거움을 준다. 한국에 출간된 유일한 단편집이란 부분에 관심이 가고, 더 많은 작품들이 번역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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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존 파인스타인 지음, IB스포츠 옮김 / 북스타(Bookstar)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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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이 이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 정보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가끔 신문 스포츠란에 조금씩 나왔지만 제대로 된 정보는 없었다. 그러다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에서 투수로 이름을 날리면서 메이저리그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메이저리그 선수조차 한 명 없었던 시절이었다. 메이저리그에 가장 가깝게 간 선수가 박철순이었고, 그 당시 최고의 투수였던 최동원은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선수가 승승장구한 것이다. IMF시절 국민의 영웅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이후 수많은 한국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로 향했다. 몇 명을 제외하면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조차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명의 한국 선수들이 떠올랐다.

 

최근에 포탈사이트 스포츠란에서 가장 먼저 보는 부분이 해외야구 부분이다. 일본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없어진 지금은 메이저리그 소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추신수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최고의 선수들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대부분 신인이다. 류현진은 부상으로 작년 한 해를 재활로 쉬었고, 지금도 겨우 공을 던지는 수준이다. 곧 올라온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강정호는 작년처럼 좋은 활약을 펼치고, 박병호는 적응하는 단계다. 이대호와 김현수는 플래툰 체제 아래에서 가끔 등판한다. 오승환은 중간 계투라 1~2회 정도 던진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가 있는 반면 성적이 별로인 선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현재 메이저리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간 선수들이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것에 비하면 천국이다.

 

제목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책 속에 나오는 몇 명의 이름이 낯익다. 처음 읽을 때는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다. 나의 기억과 비교하기 위해서다. 몇 명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했고, 어떤 선수는 자주 들락거렸다. 포드세드닉처럼 월드시리즈 영웅이 있는가 하면 겨우 한 경기에 출전한 선수도 나온다. 하지만 현재 이들은 모두 마이너리그 선수다. 한 시리즈의 영웅도 지속적인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면 마이너리그로 갈 수밖에 없다. 꾸준함은 메이저리그의 기본이다. 아무리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나이가 너무 많거나 자신이 속한 구단의 이해와 맞지 않으면 메이저리거가 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깝고 비정해보이는 부분이었다.

 

단순히 선수만 다루지 않는다. 감독과 심판도 같이 다루면서 마이너리그에 관계된 모두를 보여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메이저리그. 하지만 이 문은 굉장히 좁다. 한국의 유망주들이 이 벽을 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몇 명은 꽤 오랫동안 메이저리거로 활약했지만 그 누구도 박찬호나 추신수처럼 꾸준함과 대박을 터트리지 못했다. 매년 스포츠란에는 미국 프로야구로 향하는 몇 명의 선수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마이너리그 성적을 알려주지만 어느 순간 사라진 선수도 꽤 많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하는 선수도 많아졌다.

 

매년 마이너리그 선수들에 대한 순위가 나온다. 전체 순위와 팀 순위가 나오는데 이 유망주들은 얼마 지

나지 않아 메이저리그에 올라온다. 너무나도 유명한 유망주의 경우는 시즌 도중 주전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잠시 올라왔다 가거나 이름이 말해진다. 선수의 숫자가 늘어나는 시기가 되면 대부분 불려온다. 시즌이 끝나고 나면 내년 신인왕 후보로 올라간다. 이런 선수들이 우선인 상태에서 나이가 많고,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노장들은 그 가능성이 점점 희박하다. 하지만 이들은 존재하고, 이들의 존재가 유망주의 성장을 돕는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하나는 선수 개개인의 삶과 기록을 간략하지만 깊이 있게 다룬다. 감독과 심판도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것을 꿈꾸며 활동하는 그들의 삶은 메이저리그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숙소와 이동방법도 다르다. 최저연봉은 말할 것도 없다. 마이너리그 선수의 경우 비시즌에는 다른 직업을 가진 선수도 상당히 많다. 삶은 그 급여로 버티기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추신수가 늘 말한 그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빵 이야기는 이 책 속에 잘 드러난다. 상당한 유망주였지만 이치로의 벽에 막혀 있던 그가 트레이드를 통해 성장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물론 이 책에는 추신수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낯선 이름이 많다 보니 가독성이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마이너리그 최상위인 트리플 A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들은 메이저리그에 가장 가깝지만 평생 한 번도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이들이 받는 월급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아래는 더 적을 것이다. 화려했던 메이저리그 경력을 가진 선수도 마이너리그에 내려와 다시 승격되길 기다린다. 나이가 들면서 포기하는 선수도 있고, 아직도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는 선수도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지 능력이 부족했기에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단지 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재미있고 즐겁게 읽을 수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바로 번역이다. 원문과 대조하지 못했지만 투수와 타자가 뒤바뀌어 표현된 곳도 있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곳곳에 보인다. 책 뒷장에 나온 선수 중 몇 명이나 이 책을 끝까지 읽었을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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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조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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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가 2009년에 나온 후 참 오랜만에 나온 후속작이다. 경관 3대의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은 작가가 새로운 작품으로 나타났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3대의 손자인 안조 가즈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읽은 이야기를 많이 떠올렸다. 시간의 흐름 속에 기억은 희미해져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옛글을 찾아보니 그때의 재미가 살짝 떠오른다. 그리고 마지막 경찰 호루라기 부분은 여전히 여운을 남긴다. 앞부분의 복잡한 듯한 이야기 구성을 지나면 단숨에 빨려 들어간다. 제목처럼 경관의 조건을 생각하면서.

 

경찰학교를 졸업한 가즈야가 간 곳은 경무청의 지시에 의해 특정인물을 조사하기 위한 수사4과다. 그 대상은 가가야 히토시다. 그는 상관이 원하는 실적 이상을 올리는 경찰이다. 야쿠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정보를 교환하고, 그 사이에서 개인적 이익을 취한다. 이전의 경찰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경찰 부패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시점에서는 다른 문제다. 작가는 가가야의 체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찰 수뇌부의 권력 다툼도 같이 보여주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을 조금씩 고조시킨다. 그의 체포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가즈야. 그는 직속 상관을 고발했다. 원래 이 목적으로 가가야 밑에 들어갔지만 주변의 시선은 따갑다. 전날 각성제 1킬로그램을 가지고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을 보고 경무청에 신고한다. 그는 자신에게 질투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고 몇 번이나 되묻는다. 가가야도 여자 친구도 각성제를 사용했을 것이란 추측을 했다. 하지만 둘은 그 어떤 약물도 사용하지 않았다. 가가야는 수사를 위해 야쿠자에게 돈을 빌려 각성제를 마련한 것이다. 현대 경찰에게 이것은 범죄다. 조직의 허락을 받지 않았고, 그 사이에 불법적인 일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실적은 이 모든 것을 덮기에 충분했다.

 

앞부분은 이런 가즈야와 가가야의 과거를 빠르게 보여준다. 법정에서 입을 다문 가가야는 야쿠자와 경찰 모두에게 전설 같은 존재로 남는다. 가즈야는 다른 부서로 가서 차근차근 실적을 쌓고, 경부가 된다. 그리고 조직범죄대책부 1과2계 계장으로 부임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1과장이 그를 데리고 간 것도 경찰 내부 분위기 쇄신과 조직범죄에 대한 정보 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가가야가 떠난 후 조직범죄에 대한 정보도 실적도 많이 떨어졌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그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실적이다. 경찰 상층부에서 그를 복직시키려는 시도가 몇 차례나 있었다. 그러다 한 경찰의 죽음이 그를 경시청으로 오게 만든다.

 

경시청에 다시 온 그는 홀로 활동한다.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만 조사는 혼자 한다. 과거의 인맥은 아직 살아 있다. 그가 보여준 행동은 야쿠자의 신뢰를 쌓기 충분하다. 얼굴 마담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조금씩 사건의 실체를 향해 나아간다. 그 반대편에서 가즈야의 팀이 조직의 힘을 이용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과 대비된다. 전설의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9년의 세월 속에 바뀐 것도 많지만 그대로 인 것도 적지 않다. 그의 모습은 아련하게 추억을 자극한다. 마음속으로 가즈야를 더 응원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가야를 복직시킨 사건은 가즈야 팀의 수사와 5과의 수사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이 두 과는 도쿄의 마약시장의 흐름을 조사하다가 한 장소에서 만난다. 잠입수사관이 중개상으로 인정받기 위한 시험단계에서 경찰임을 밝히는데 이것이 살인으로 이어진다. 이 야쿠자는 경찰 신분인 것을 알고도 고문을 멈추지 않는다. 경찰도 안이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멈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현장 지위를 가즈야가 했고, 살인자 한 명이 달아난다. 이것이 가즈야게는 큰 짐이 된다. 독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크게 잘못한 것이 없지만 경찰 내부의 알력과 편견은 이것을 더 과장되게 표현한다.

 

경찰 살인자 미나가와는 사라졌다. 일본으로 들어오는 마약상의 루트도 찾지 못했다. 1과와 5과는 이 둘을 위해 경쟁한다. 흔한 말로 제대로 공조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조직의 생리란 이런 것이다. 효율과 경쟁은 늘 같이 붙어다니면서 조직원에게 강요한다. 경찰은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퍼포먼스를 펼친다. 내막은 숨긴 채. 작가는 이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실의 경찰이다. 경찰 내부의 모습이다. 미행하는 방법도 바뀌었다. 이런 장면들은 소소한 것이다. 그 바탕에 흐르는 것은 두 인물의 내면과 경찰의 삶이다. 마무리 부분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속도감과 몰입도는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이 시리즈 언제 다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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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안나
알렉스 레이크 지음, 문세원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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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유괴를 소재로 한 심리스릴러다. 표지에 나온 ‘유괴한 딸이 돌아오는 순간, 끔찍한 악몽이 시작된다.’란 문구는 이 소설의 특징을 잘 표현한다. 실제 분량도 유괴와 그 이후가 비슷하다. 소설은 유괴된 이후 7일간과 아이가 돌아온 이후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유괴된 7일간은 엄마의 실수와 가정의 불화 등을 섬세하게 다룬 심리 묘사가 주 내용이고, 돌아온 이후는 이전까지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는 과정과 유괴의 숨겨진 비밀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속도감 있게 읽은 것은 역시 후반부다. 예상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정신없이 끝까지 달리게 된다.

 

표지의 광고 문구를 읽고 잠깐 착각한 부분도 있다. 분량을 잘못 예측한 것이다. 주된 내용이 유괴된 딸이 돌아온 이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유괴된 7일간은 긴장감이 조금 부족했다. 줄리아 가족의 과거와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부분과 줄리아의 실수를 두고 파고드는 언론과 SNS의 모습은 그렇게 낯선 장면이 아니었다. 다른 작품들에서 자주 보았기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딸의 실종 이후 몇몇 장면은 나의 정서와도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실종을 유괴로 단정한 이후 벌어지는 상황과 이것을 둘러싼 감정은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아이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구성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유괴된 7일 동안 유괴범의 행동과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매일 시작하는 도입부에 유괴범의 이야기가 나와 이 유괴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돈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부모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고, 아이를 성매매나 다른 용도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면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유괴가 의도한 최종 목표가 누군지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을 위한 장치들이 유괴된 7일 동안 계속해서 이어진다. 진실은 아이가 돌아온 후 은밀하면서 재빠르게 진행된다.

 

줄리아는 초등학교 교사에 만족하는 남편이 불만이다.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야망이 없는 것이 계속 눈에 걸린다. 자신이 세운 기준에 남편 브라이언이 도달하지 못하자 이혼을 결심한다. 아이의 유괴는 바로 남편에게 이혼을 말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다. 문제는 이혼전문변호사인 그녀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에 늦었다는 것이다. 사전 연락도 없이. 언제나 아이들은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사고난다. 방심은 무슨 일을 불러올지 모른다. 아이는 사라졌고, 부모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화목한 가정이라면 부부가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이 상황을 이겨나가겠지만 이 부부는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태다. 그들의 이 상황은 밖으로 드러나고 줄리아에게 더욱 나쁘게 작용한다.

 

언제나 조작된 진실은 사실 몇 개와 거짓으로 채워져 있다. 언론에 발표된 기사 내용과 SNS 내용들은 줄리아를 공격한다.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언론이 제공한 기사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무자격엄마라는 해시태그가 붙고, 사람들의 악평과 질시를 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모함이 가미된 게시글이지만 이전까지 그녀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들은 완전히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것을 차단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현실적일 수 있지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순간이 오는데 그것은 안나를 위한 그녀의 아주 처절한 행동 때문이다.

 

읽으면서 왜 범인은 안나를 돌려보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생겼다. 하지만 유괴 이후가 펼쳐지고, 하나의 가정을 세우면서 점점 사라졌다. 시어머니와 줄리아의 대결 구도로 바뀌면서 누구 더 착한 쪽인가 하는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줄리아 역시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부간의 첫 싸움은 누가 더 준비를 잘 했는가로 결판난다. 예상한 결과다. 하지만 반격이 바로 시작된다. 이 반격으로 법정스릴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는데 빠르게 분위기가 바뀐다. 그리고 하나씩 나오는 숨겨진 과거는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읽으면서 계속 설마? 하고 생각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아쉬웠다. 깔끔한 맛은 있지만 두려움이란 강한 여운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심리스릴러를 좋아한다면, 길리언 플린을 좋아한다면 분명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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