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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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0년 에드거 최고 장편소설상 수상작이다. 수상 이력을 생각하면 상당히 늦게 출간되었다. 장르소설 애호가의 한 명으로 이렇게 출간된 것만으로도 반갑다. 사실 이 작품은 한국의 독자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이 아니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하지만 이 살인범을 잡으려는 의지나 과학 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책 속에도 나오지만 합리적인 추론에 의해 범인을 잡는 명탐정도 없다. 어떻게 보면 13세 소년의 성장소설이자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을 다룬 소설이다. 억지스럽게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도 않고, 불필요한 설명도 없다. 하지만 역사의 한 장면으로 독자를 끌고 가 현대사의 비극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대공항기 텍사스 동부 지역의 13살 소년 해리가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노년의 해리가 과거의 한 연쇄살인 사건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해리는 여동생 톰과 함께 허리를 다친 개 토비를 죽이러 갔다가 강에 놓여 있는 시체를 발견한다. 아이는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린다. 아버지는 마을의 보안관이자 이발사다. 다음날 흑인 여성 시체를 치운다. 그리고 이 시체를 흑인들의 마을로 데리고 가서 흑인 의사에게 해부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인 의사가 흑인 시체를 다루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인종차별주의가 너무나도 당연했던 1930년대 남부로 데리고 간다.

 

이 훼손된 시체는 이후에도 발견되었지만 이전에 발견된 흑인 여성의 시체가 또 있었다. 언론은 이 사실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녀들이 흑인 매춘부였기 때문이다. 만약 백인이었다면 흑인 중 누군가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거세되고 살해당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 속에서 한 흑인이 아주 사소한 이유로 범인으로 지목되고, 보안관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목 매달려 죽는다. 백인들이 흑인을 몇 명이나 죽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남북 전쟁 이후 흑인들이 해방되었지만 현실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백인을 나리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낮춘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흑인 매춘부의 죽음을 흑인들의 타고난 천성인 것처럼 매도하고 무시한다. 남자들의 아내에 대한 폭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 불편한 사실들은 언제나 마주할 때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흑인들과 백인들이 사는 곳이 나누어져 있다. 백인이 흑인을 강간하는 것이 큰 죄가 되지 않지만 흑인이 백인 여성을 만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해리에게는 다행히 이성적 판단을 하는 부모님이 있었다. 인종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이 시절 남부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개인과 민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일들이 몇 번 있었다. 우리의 교육이 그런 식으로 흘러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이 시절에는 그렇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배심원으로 유죄와 무죄를 나누기에 백인들이 손해보는 일은 거의 없다. 존 그리샴이 <타임 투 킬>에서 다룬 것은 아주 먼 훗날이자 흑인의 인권이 아주 많이 신장된 후다.

 

긴박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와 연쇄살인범과의 밀고 당기는 대결이 이 소설에는 없다. 연쇄살인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남부의 현실을 살인 사건 속에서 하나씩 보여주면서 천천히 진행된다. 그렇다고 지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현실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해 어떤 마무리로 이어질까 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읽으면서 혹시 이놈이 범인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가 맞았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합리적인 추론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한정된 공간과 등장인물 속에서 직관적으로 유추한 것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소설을 많이 읽다가 얻어걸린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식으로 수사를 하면 당연히 수많은 문제를 만들 것이다.

 

이 소설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에필로그를 꼽고 싶다.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그 이전에 알려지고, 인종차별로 가득한 남부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 이야기도 좋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준 한 부분을 꼽으라면 이 에필로그다. 연쇄살인을 해결한 이후 현실의 삶을 요약해서 들려주는데 냉정하고 비정하다. 동화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미담은 없다. 어쩌면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역사라고 하지만 아직도 은연중에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종차별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섬뜩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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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로마사 2 - 왕의 몰락과 민중의 승리 만화 로마사 2
이익선 지음, 임웅 감수 / 알프레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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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이 무너진 이후부터 포에니 전쟁 전까지 이야기다. 마지막 왕 거만한 타르퀴니우스가 쫓겨났다고 하지만 그가 왕의 자리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왕은 자신의 세력을 모아 로마를 공격하지만 실패한다. 다른 에트루리아 왕 포르센나에게 붙어 로마의 왕위를 다시 빼앗으려고 하지만 로마 시민들의 놀라운 희생정신에 감복한 포르센나가 정복 직전에 물러나면서 로마는 그 이름을 유지한다. 특이 가이우스 무키우스가 보여준 행동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행동들은 로마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나타난다.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도 필요하다.

 

이번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공화정 귀족과 평민들의 대립과 공존이다. 왕이 쫓겨나 공화정으로 변했다고 하지만 이 공화정은 모두 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들을 대표하기 위한 집정관을 두 명 내세우지만 임기는 겨우 1년이다. 성문법이 없어 귀족들이 그리스로 유학을 가서 12표법을 만들었지만 이 법 또한 귀족을 위한 부분이 더 많다. 이 시대 에피소드를 몇 개만 보아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귀족들의 힘 앞에 평민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하지만 평민들이 뭉치면 어떨까? 이런 점에서 평민들의 기나긴 투쟁기이기도 하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결코 로마는 제국을 건설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책에서 집정관, 독재관, 호민관 등이 어떻게 탄생했고,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 카이사르 전후 역사 소설 등을 읽을 때면 늘 이들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고 대충 알았었다. 이제 이 의문이 해소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역시 평민들의 연대와 로마의 기사회생이다. 갈리아 족의 침입으로 완전히 무너질 뻔 했지만 금을 지급하면서 위기를 넘어갔다는 이야기에서는 내가 알고 있던 로마와 달라 조금 놀랐다.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이 어떤 의미인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1권과 같이 직설적이고 현대적인 표현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돌려서 말한 것을 그대로 풀어내어 낯선 부분이 있지만 이해는 그만큼 쉬워진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 과정 속에는 굴욕도 있고 거대한 위기도 있었지만 전편에서도 말한 정복지 주민을 차별하지 않고 동맹자로 받아들인 부분이 큰 역할을 했다. 나중에 이 부분을 둘러싼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생각되지만 대단한 정책적 결단이다. 다만 공화정 원로원의 구성을 보면 아쉽다. 그리고 이 정책을 보면서 왜 발해가 더 오랫동안 제국으로 남지 못했는지 이해하는 단서 중 하나를 발견한 느낌이다. 지금의 한국도 이 부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귀족과 평민의 대결이 분량 속에서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계속 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로마의 평민들이 전쟁까지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권리 중 일부를 쟁취하는 것과 2차 대전 중 공산주의자들이 보여준 행동이 서로 비교되었다.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연대가 어떤 의지로 표현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평민들의 위대한 승리라고 하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대단한 진보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어디선가 나타나 로마를 구하고 사라진 수많은 귀족들의 이야기는 두 계급간의 조화와 동반의식이 필요한지 그대로 보여준다. SPQR(로마의 원로원과 민중)이 진정한 의미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 생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조금 낯설었지만 포에니 전쟁부터는 그 유명한 한니발로 시작하여 낯익은 로마의 집정관 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또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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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로마사 1 - 1000년 제국 로마의 탄생 만화 로마사 1
이익선 지음, 임웅 감수 / 알프레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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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까지 읽은 지금 이 만화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로마가 어떻게 탄생하였고, 그 로마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초기 과정이 아주 잘 요약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로마인의 시점으로 풀어내면서 현재의 해석을 곁들이는 방식인데 다른 책에서 놓친 부분을 잘 보여준다. 흔히 로마의 탄생을 로물루스 형제에게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트로이 전쟁까지 올라간다. 그 시작은 트로이의 몰락과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사위인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하면서부터다.

 

아이네이아스는 지중해를 향해하다가 만난 카르타고의 건국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운명은 새로운 트로이 건설을 위해 그녀를 떠나라고 한다. 이 떠남이 그녀의 자살을 불러오고, 저주를 남긴다. 이것이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전쟁이 계속된 이유라고 한다. 사료에 의하면 이 둘의 만남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한 대목인데 로마의 입장에서 쓴 승자의 기록임을 같이 보여준다. 이렇게 만화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사실을 같이 보여주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분명한 성공이다.

 

아이네이아스의 긴 여행과 새로운 정착을 다룬 후 그의 후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로물루스 형제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은 하나의 거대한 제국 씨앗과 그 초기 발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로물루스 형제간의 알력과 살인은 많은 역사에서 본 것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로마의 위치에 대한 찬사는 낯설었다. 제국으로써 로마가 성장하는데 위치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말할 때 수많은 세계의 도시들이 떠올랐다.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가 “도시로 성장할 조건을 모두 갖춘 독특한 터”라고 말한 것도 역사가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로물루스에서 시작한 일곱 왕의 이야기는 제대로 로마사를 공부하지 않은 나에게는 낯설었다. 왕정 시대가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로마 이야기는 카이사르 전후 100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로 꼽는 “패자들까지 자신들에게 동화”시킨 방식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이 정책이 얼마나 꾸준히 지속되었는지 보여준다. 일곱 왕 중 세 명이 초기 라틴족이나 사비니족이 아닌 에트루리아 인이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부족 사회가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을 받아들여 인구를 늘여야만 한다. 그렇다고 왕권까지 넘겨주는 경우는 아주 특이한 일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로마는 아직 작은 도시 국가일 뿐이다. 하지만 제국의 기초는 이미 이때부터 닦아지고 있었다. 가장 만족한 부분은 PART1에서 요약한 지중해의 권력 이동과 로마의 성공과 멸망 등이다. 자료 조사와 공부가 충실히 되었기에 이런 요약이 가능하다. 분량을 늘이기는 쉬워도 적당하게 줄이는 것은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로마사를 과거의 시각으로 풀어내지 않고 현대와 한국인의 시선으로 그려내어 더 쉽게 공감하게 만든다. 어떤 장면에서는 너무 양아치스러워 놀라기도 했다. 정확한 표현에 집착하는 독자라면 기겁을 할 정도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1시간 만에 이 책을 독파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쉽고 재미있다는 평에는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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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플라이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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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갑자기 베스트셀러 역주행를 한 장르소설 한 편이 있었다. 바로 <데드맨>이다. 이번 작품은 이 작품의 후속작이다. 지금도 <데드맨>이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모르는데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그 재미에는 공감했다. 잘 짠 구성 속에서 개성 강한 인물들의 협력과 애브덕션이란 추론 과정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은 뒤로 가면서 점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가부라기 형사 팀의 활약은 약간 아웃사이드 같은 모습이 있지만 개개인의 능력이 극대화되면서 진실에 가까워진다.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일본 드라마에서 자주 봤기 때문일 것이다.

 

에필로그를 보면서 뭐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장면이 왜 필요한지 알려주기 위해 독자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이런 구성이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다시 떠올리게 되었을 때 작가의 의도를 금방 알게 된다. 이렇게 이 소설은 많은 부분에서 바로 알게 된다. 실제로 범인을 추론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 작가가 중간중간에 엇나가는 부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의 범인은 쉽게 맞췄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는 20년 전 살인은 조금 다르다. 가부라기 형사의 의문이 하나씩 풀려갈 때 놀라운 사실을 만나게 된다.

 

현상에 의문을 던지는 역할을 가부라기 형사가 한다면 프로파일러 사와다는 논리적 추론을 통해 이 의문에 답한다. 니코타마가와 강변의 시체 모습에 의문을 품고, 20년 전 사건에서는 밥상의 반찬이 이상하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에 의문을 품으면서 각각의 단계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이것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인물인 다누마 촌장을 구속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단서가 그를 가리킨다고 해도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논리적 추론은 그 정해진 틀 속에서만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틀을 깨트리고 다른 각도에서 상황을 보게 하는 것이 바로 가부라기 형사의 애브덕션이다.

 

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된 마을을 둘러싼 사건들을 다룬다. 현재는 유스케의 잔혹한 죽음이 있고, 과거에는 이즈미 부모의 죽음이 있었다. 시간적으로는 20년의 시차가 있다. 동일인의 소행이라고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렇다면 너무 쉽게 이야기가 풀린다. 이때 그 동일인이 다누마 촌장이다. 마을의 댐 건설 반대편에 서서 오랫동안 촌장 역할을 했지만 실제 그의 역할은 내부 스파이다. 댐 건설 지연으로 인해 건설사가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댐 건설로 인해 다시 한 번 더 이익을 얻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은 한 인물이 다누마 촌장이다. 그에게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액의 돈이 정기적으로 들어왔다. 물론 이것은 누군가의 고발에 의해서다. 그에 대한 수사 과정에 가부라기 팀이 온 것이다.

 

다누마 촌장을 빼면 히류무라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세 명이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이즈미와 잠자리를 좋아하는 유스케와 이들의 친구이자 건축가인 겐 등이다. 이들의 어릴 때 추억은 풋풋하고 정답고 순진함으로 가득하다. 이즈미 부모의 죽음으로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렇게 만난 이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면서 자신들의 감정과 정체를 숨긴다. 현실의 무거움과 욕망과 순수함이 뒤섞인 결과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그들의 삶에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충분히 평범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제목에 잠자리가 들어간 것처럼 소설 곳곳에 잠자리 이야기가 나온다. 세 명의 어린 아이들을 엮어준 것도 사실 잠자리다. 비극도 잠자리 때문에 발생한다. 잠자리를 두고 일본 고사까지 들먹이는 부분에서는 약간 과장되었다는 느낌도 있지만 전문가들이 새로운 종에 대해 얼마나 강한 열망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에 몇몇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인다. 직업에 대한 열정은 가부라기 형사 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군마현 경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누구도 알지 못했던 과거의 아픈 사실이 드러날 때 나의 기억은 다른 소설 한 편으로 날아갔다. 이 잔혹함이란!

 

일본 드라마나 소설 등으로 친숙한 장면들이 많다. 수사본부의 모습이나 히메노 형사의 활약 등은 특히 그렇다. 재미난 것은 관리관 역할을 하는 사이키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연상된 것이 <춤추는 대수사선>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나도 모르게 무로이가 떠올랐다. 물론 그 드라마처럼 관할경찰서 형사들이 주인공은 아니다. 하지만 범인을 잡기 위한 그들의 열정과 대사 몇몇은 나도 모르게 그 드라마를 떠올리게 된다. 아니면 <파트너> 속 몇몇 에피소드. 가부라기 형사 팀이 건설사를 찾아가서 홍보팀 직원과 나누는 대화는 대기업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지 그대로 보여준다. 추리라는 요소를 빼고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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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 법정이 우리의 가슴에 새긴 글씨
법정 지음, 현장 엮음 / 책읽는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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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란 에세이를 다 읽지 못했다. 오래 전 문고본을 들고 다니다 조금씩 읽었는데 술 한 잔 하고 탄 늦은 밤 택시에 두고 내리면서 인연은 끊어졌다. 다시 사서 읽어도 되지만 왠지 모르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도 법정 스님의 다른 책들은 한두 권씩 샀다. 그 당시는 에세이를 거의 읽지 않는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언론을 통해 스님의 부고를 들었다. 깜짝 놀랐다. 늘 유명인의 부고를 듣지만 그때는 조금 특별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유언은 그의 이름으로 발간된 책들의 가격을 폭등하게 만들었다. 이상한 열기가 한국을 휩쓸었다.

 

언론을 통해 스님의 일화나 간단한 이야기가 나오면 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다 읽지 못한 무소유지만 그의 삶은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후 책을 내지 말라고 했지만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얻게 될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유언을 지키지 않았다. 그 결과로 법정 스님과 관련된 책들이 새롭게 나오기도 했다. 이 책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솔직히 법정 스님만 알지 현장 스님이 누군지 모른다. 비슷한 이름을 서점 등에서 본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책 속에 분명하게 나온다. 속세의 촌수로 따지면 조카다. 이해인 수녀의 글을 보면 이 사실이 많이 알려진 모양이다. 현장 스님이 엮은이로 나온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스님의 명동성당 강론, 종교 교류 활동, 애송한 짧은 시와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 교류 활동의 한 방편으로 명동성당 강론을 했는데 차분하게 새겨들을 말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것은 길상사 마리아 관음상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상당히 특이하다. 불교란 거대한 틀을 뛰어넘었다는 평에 동의한다. 천주교 신자에게 불상을 의뢰했다는 그 자체가 놀라운 발상이다. 스님의 넓은 포용력이 없다면 쉽지 않았을 작업이다. 강론의 원고가 없어 이해인 수녀의 CD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했다는 부분에서도 스님이 가진 삶의 한 철학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를 가장 사로잡은 부분은 애송한 짧은 시와 그가 쓴 글과 간단한 그림들이다. 표지에 나온 그림처럼 선 하나로 휙 그려낸 그림이 가슴 한 곳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일필휘지로 갈겨 쓴 글들은 초심자가 단숨에 알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글을 쓴 사람만이 가능한 서체다. 놀이(戱)란 단어를 그가 쓴 글에 많이 덧붙였는데 이 부분도 재밌다. 글의 내용은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닌데 글자의 모양이나 구도는 놀이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편지글로 오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괜히 스님이 재밌게 놀았던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싶다. 이 욕심 버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그의 작품을 전부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두께도 당연히 얇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디다. 글과 그림은 한 번 더 쳐다보게 되고, 내용은 잠시 곱씹게 만든다. 병을 얻은 후 유머 감각은 아재 개그에 가깝지만 여유가 보인다. 그의 글에서 위안을 얻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 사람이나 그와의 만남을 통해 변화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그의 부재는 이해인 수녀의 이 말 한 마디로 충분히 표현된 것 같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스님.” 언젠가 그의 종이 놀이와 글들이 더 모여 더 두툼한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과일을 먹을 때는 그 꽃향기까지 먹을지로다.”라는 말처럼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무소유 삶까지 실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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