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 혁명.이데올로기 편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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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의 책을 좋아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몇 권 되지 않는다. 철학을 직접 다룬 책으로는 <생각의 시대>가 유일하다. 이 철학카페 시리즈도 처음 읽는다. 다른 책을 사 놓았는지는 모르겠다. 제목들이 너무 낯익어 산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의 만족도를 생각하면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 비록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잊고 있던 개념을 떠올려주고,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몇몇 철학자들은 가능하다면 개인적으로 더 찾아 읽으면서 공부하고 싶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공연, 강연,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에서는 한 문학작품을 편집해서 보여준다. 강연은 이 작품을 풀어서 말해주고, 대담은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묻고 답한다. 이 구성만 놓고 보면 길게 이야기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철학자가 어딘 그런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낯선 두 작품은 언젠가 전체를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실제 <안티고네>는 책 속에서 본 적은 많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내용도 이번에야 제대로 알았다. <한낮의 어둠>은 정말 낯설다. 검색해도 한 출판사 나온다. 공연 속 내용만 놓고 보면 결코 한 출판사에서 나올 책이 아니다. 물론 쉽게 읽히지도 않을 것 같다.

 

공연과 더불어 같이 등장하는 작가들이 있다. 한 명은 시인 김선우고, 다른 한 명은 김연수 작가다. 시인 김선우는 솔직히 잘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검색하니 시집이 상당히 많이 나와 있다. 소설도 두 권 썼다고 한다. <나의 무한한 혁명에서>를 놓고 철학자가 시인과 대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대담이 아니다. 공연과 강연이다. 대담은 어떻게 보면 시인을 더 알게 하고, 공연과 강연의 연장선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시집 제목과 혁명이 맞닿아 있다. 물론 책 내용은 혁명에 대한 저자의 정리와 주장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에서도 이어진다.

 

혁명. 참으로 가슴 떨리는 단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혁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개혁이란 단어를 더 좋아한다. 한때 이 두 단어의 차이가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로 나누는 경계처럼 사용된 적도 있다. 이 놀라운 단어를 지첵이 자본주의의 자기변신을 ‘혁명화’라는 용어로 이름 지었다. “자본주의는 그 내재적 모순과 구조적 불균형에서 오는 한계와 무능력이 드러날 때마다, 즉 점점 더 ‘썩을수록’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바꾸는 혁명화 작업을 한다.” 라고 말한다. 이것을 단순히 자본주의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로 확장하면 어떨까? 권력의 속성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종교는 어떨까?

 

혁명의 장에서 눈길을 줘야 하는 단어는 빼기다. 미켈란젤로 프로젝트란 용어도 빼기와 관련 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빼기를 통해 돌 속에 갇힌 이미지를 밖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불어 생각할 것으로 인공지능이 있다. 불안정성, 불확실성이 주는 위험에 대한 경고는 깊이 새겨 들을만 하다. 그리고 저항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통해 완성된다. 지금은 실패지만 결국 성공한 사례를 말하는데 지속적으로 시도한 결과물이다. 현재 우리 사회도 이렇게 발전해 온 것이 아닌가. 지금도 광화문을 덮고 있는 촛불이 일회성이 아니었기에 변화를 만들지 않았는가.

 

아마도 이 작가 편에서 가장 익숙한 이름이 김연수일 것이다. 그의 장편과 단편을 몇 권 읽었고, 이제는 상당히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과거를 보면 소설 쓰기가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이다. 문학상 수상으로 인한 상금을 제외할 때 이야기다. 실제로 그의 이름이 나에게 알려진 것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아는 것이 하나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책 관련 카페 등이나 인터넷서점 서평을 보면 그의 인지도 변화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한때 절판되었던 책이 다시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번역한 책들이 가끔 보이는데 이 시절 생계를 위한 것이다. 이런 작가들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이데올로기. 정말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사상과 허위의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간단한 요약만으로 부족한 단어다. 실제 네 번째 행사 주제인데 책으로 나오면서 두 번째로 다루어졌다. 혁명과 맞물려 풀어내기 좋았던 것 같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지만 철학자가 파고 들어가니 수많은 정의와 의미가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어 사용에서 정치적 이념 및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할 때 뜨끔했다. 나도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데올로기를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본래의 목적을 왜곡하거나 해치는 이념 또는 사상”이라고 규정한다. 이것에 대한 좋은 교재가 바로 <한낮의 어둠>이다.

 

이성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감정적, 감성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한낮의 어둠>에서 다루는 상황을 보면 심문관의 시점과 비슷한 적이 나도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빈번했고, 지금도 이것을 당연시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과 같다. <한낮의 어둠>에서 다루는 수단의 정당화는 수십 수천 명의 수준을 벗어났다. 이성과 과학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절이라면 나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쉽게 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이 책은 나의 서툰 믿음을 깨트리고, 이성을 새롭게 보게 한다. 공부할 거리도 잔뜩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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