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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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는 느낌보다 당혹감이 더 크다. 문체는 안정적이지만 작가가 설정해 놓은 장치와 구성이 혼란으로 몰아갔다. 의도적으로 연도를 한글로 썼는데 이 때문에 몇몇 시간에 대한 개념이 깨졌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나이와 사건의 발생시기가 머릿속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이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앞장으로 돌아간 것도 바로 이 시간 때문이다. 잘못 읽고 착각한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연출인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 속에 몰입하는데 가장 방해가 된 것은 사실이다.

 

프롤로그에 한 여자가 칼에 찔린 채 어딘가로 떨어진다. 처음 이 장면을 읽었을 때와 지금 다시 보니 느낌이 다르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왜 나왔는지 몰랐고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답을 알게 되었다. 이 장면이 다음에 벌어질 모든 살인사건의 단서를 제공한다. 물론 이것은 소설을 끝까지 읽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또 다른 의문을 제공한다. 다음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어떤 부분에서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가 연상되는 부분도 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낼 때 몇 가지 설정을 해놓았다. 하나는 연도를 한글로 풀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들은 김 형사나 반장으로 불리고, 쌍둥이 동생이 실종된 여자는 그녀로, 그녀와 잠을 자고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주인공은 민성이라고만 나온다. 이 소설에서 전체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김현 한 명이다. 이런 설정이 연도와 함께 나에게 혼란을 주었고,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했다. 도표로 정리하지 않으면 이제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몇 가지 장치와 설정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샤를 페로의 동화와 쌍둥이, 용호농장과 방화 등이다. 작가인 민성이 12년 전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나오는데 그 이전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 기억 일부를 되살리기 위해 친한 병원의사 원을 찾아간다. 그의 강의를 들은 현길이란 남자가 준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잊고 있던 기억 한 자락을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민성이 현길을 통해 잊고 있던 기억을 찾아간다면 약수터에서 발견된 토막 살인사건은 살인범을 쫓는다. 경찰이 단서와 주변 탐문을 통해 한 발 한 발 범인에게 다가간다면 민성은 현길이 준 보고서에서 단서를 찾아낸다. 여기서 다시 <황금가지>와 인신공양이 하나의 단서가 된다.

 

치밀한 조사가 곳곳에 드러난다. 인문학 지식과 과학 지식이 결합하여 사건을 해석한다. 추리가 이어지지만 단서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 단서가 하나씩 나타난다. 읽다 보면 한 명의 범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왜에 대한 답은 없다. 작가는 많은 것을 풀어놓았지만 이것을 친절하게 연결해서 해설해주지 않는다. 괴물을 말하지만 그 괴물의 실체가 정확하지 않다. 왜 이런 괴물이 탄생하게 되었는지도. 복수란 것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어떤 사건이 이런 복수를 하게 만들었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모두 덮어둔다. 불친절하다. 만약 다음 이야기가 없다면 작가가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아니면 나의 엄청난 착각과 오독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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