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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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작품 <런 어웨이>를 읽고 이제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몰입해서 즐겁게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것은 착각이었다. 열네 편의 단편이 그녀의 첫 단편집처럼 나를 미로 속에서 헤매게 만들었다. 높은 집중을 요구하는 섬세한 문장과 구성은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다. 지난번에 잘 읽혔던 것은 이번처럼 짧은 호흡으로 읽는 것도 아니고 연작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낯선 지명과 낯선 이름은 더욱 집중을 방해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면 뭐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열네 편 중 마지막 네 편은 자전적이고 가장 내밀한 이야기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내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기존 소설과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단지 그녀의 삶의 한 단면을 살짝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녀의 기억과 추억 등이 문장으로 변해 흘러나왔을 때 그 낯선 시골 마을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상황을 만들어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풍경은 지독하게 개인적이다. 작가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나의 이미지로 변한 것이다. 가보고 경험하지 못한 곳과 일을 상상한다는 것은 이런 자기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 한곳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간다.

 

언제나 단편을 읽다보면 호불호와 집중력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현재가 아닌 과거 속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은 아주 낯설게 다가온다. 작가는 어느 한 순간을 다룬 작품도 쓴 반면 순간과 순간의 사이를 몇 십 년으로 만든 단편도 썼다. 단편 속에서 시간의 비약이 발생하면 더 몰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만남의 순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작품에서 나는 이 순간을 놓쳤다. 정제된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에 왜? 라는 의문을 달고 고민하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에서 먼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자존심>의 마지막 부분을 꼽았다. 읽으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다. 앞에 나온 이야기들과 이 장면을 어떻게 연결해서 이해해야 하는지 머릿속에서 전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단지 마지막 문장에서 그 한순간의 행복을 잠시 느낀 것이 전부다. 이것은 <아문센>의 마지막 문장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감정이 단순히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숨겨져 있던 사랑의 감정이 변함없었다는 것인지. 물론 이런 문제는 가끔 천천히 다시 읽게 된다면 많은 부분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아직 아니다.

 

삶 속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있지만 마음속으로만 상상하는 것도 있다. 먼로의 소설 속 인물들은 충동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때문에 불륜 혹은 자유에 대한 환상이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순간적인 욕망 때문에 아이를 잃을 뻔하기도 하고, 감정의 미묘한 틈 사이로 들어온 과거가 가출로 이어진다. 오랜 세월 동안의 만남이 빤한 결혼으로 이어지기보다 반전을 펼치고, 순간의 충동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이런 남녀들의 사연을 정밀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내었다. 단지 한 순간의 장면에 집중했다면 더 쉽게 읽을 수 있었고 더 많이 이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조용히 다시 펼쳐 본 곳에서 몇 문장을 읽으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다시 차분하고 느리게 읽어야 할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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