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렌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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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 첫 권이자 이전에 나왔던 <능숙한 솜씨>의 개정판이다. 작가의 처녀작이기도 하다. 피에르 르메트르를 처음 만난 것이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였다. 묵직한 문장과 반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이후 읽은 두 권도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이 작가를 처음으로 인식시켜 준 것은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 2권인 <알렉스>다. 이 소설에 대한 호평을 많이 읽었고 이것이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실제 그의 작품을 신뢰하게 된 것은 다른 소설들이다. 시간이 되면 이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을 예정이다.

 

카미유 베르호벤의 키는 145센티미터다. 형사반장이지만 그에게 어떤 육체적인 힘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그는 키를 상쇄하기 충분한 예리한 지성과 뛰어난 예술적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에게는 예쁜 아내가 있다. 그녀는 임신 중이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데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부하인 루이가 경악할 정도의 끔찍한 살인 현장이다. 실제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경찰들이 나와서 구토를 할 정도다. 너무나도 참혹해서 그조차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현장은 참혹하고 끔찍한 것을 넘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연출되어 있다. 카미유는 그것을 찾고자 한다.

 

이전 번역본 제목이 <능숙한 솜씨>였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았다. 연쇄살인범인 연출한 살인 현장이 보통의 솜씨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범인은 흔적을 지우고 없애기보다 많이 남겨놓으면서 노골적으로 형사를 도발한다. 이 소설에서 그 도발의 대상은 바로 카미유다. 카미유는 현장에서 나온 정보를 통해 다른 살인사건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지역을 다른 나라까지 확장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첫 번째 살인 현장에 대한 조사 중 순간적인 영감으로 <블랙 달리아>의 살인 장면과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런 가설을 순순히 경찰과 검찰이 믿질 않는다. 실제 두 번째 살인 현장이자 카미유의 구역에서 발생한 살인은 그 끔찍한 소설인 <아메리카 사이코>의 한 장면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 추리소설들을 등장시키고, 그 소설 중 한 장면을 살인 장면으로 인용하면서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다. 덕분에 이전에 읽었거나 읽으려고 한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반전과 감탄은 바로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하면서 생긴다. 기존에 생각했던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앞에 읽었던 것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작가의 ‘능숙한 솜씨’가 발휘된 것이다.

 

정체가 숨겨진 연쇄살인범을 쫓기 위한 카미유의 노력은 언제나 내부정보가 유출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추리소설 속 살인 장면을 재현한다는 그의 가설도 신문기자가 기사로 작성하면서 그를 우롱할 정도다. 특급 정보의 유출은 수사 일선에서 그가 활약하는 것을 금지시킬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여기에 카미유의 권한을 넘어선 행동 몇 가지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직장 생활의 위기는 임신한 아내와의 관계도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물론 이혼할 정도는 아니다. 그의 아내 이름이 소설의 제목인 것을 감안하면 분명 어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예상 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사건이 마무리될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언제나처럼 사유적이고 묵직한 문장과 파격적인 구성은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반전은 단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이 시리즈임을 감안할 때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지고, 대단한 호평을 받은 작품이 만들어낸 반전의 연속은 또 어떨지 자연스레 기대하게 된다. 시리즈 마지막 권의 제목이 <카미유>인데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간단하게 요약하기 힘든 내용과 구성을 가진 소설이다. 특히 카미유의 성격은 다른 소설을 읽어야만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도 구성에 대한 설정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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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
미쓰모토 마사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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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이 어려운 제목이다. 자극적인 제목이다. 역 앞에 자살센터가 있다니 희한하다. 그런데 이 자살센터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식 기관이다. 한 유명 유도선수가 투신 자살자와 부딪혀 죽은 후 논쟁이 벌어졌고, 그 후 자살을 관리하기 위해 생겼다. 이 자살센터에 오면 바로 자살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다섯 번의 정기 방문과 의사를 타진한 후 죽게 된다. 이 다섯 번의 방문은 자살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자 그들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바로잡을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자살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자살센터를 만든다고 자살이 관리가 될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소설적 상상력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어느 정도 감안하자. 이 소설 속에서 자살센터를 통하지 않고 자살을 할 경우 자살자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주어진다. 그리고 자살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나이가 열네 살부터로 제한되어 있다. 열세 살은 자살센터를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학생들이 자살하는 경우는 매우 한정적이다. 왕따로 인한 자살일 경우 학교 교직원과 관련 학생들은 실직을 하거나 평생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한다. 작가가 설정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몇 가지 장치들이다.

 

도이 요스케는 전철에서 묻지마 살인에 의해 한 살된 아기가 죽었다. 재판이 벌어졌고, 6년이 지난 후 살인자는 사형되었다. 이 범인의 죽음이 도이로 하여금 현실에서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처음에 왜 그가 자살하려고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이 자살센터의 운영과 그의 평범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뿐이다. 유리는 그의 전처이자 아기의 엄마다. 이혼 후 정기적으로 만나다가 갑자기 그 주기가 깨진다. 그들의 만남은 그 어떤 낌새도 없다. 건조하다. 하지만 이 건조함 뒤에는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강한 외로움과 괴로움과 고통이 존재한다. 아기가 죽게 된 사연이 나올 때, 진실이 하나씩 풀려나올 때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용솟음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살을 생각할 것이다. 실제 자살하는 사람은 이 중에서 극히 일부다. 자살의 가장 많은 이유 중 하나가 금전적 문제다. 이 자살센터는 이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자살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도이같은 경우는 말리는 것이 쉽지 않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거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진심으로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소설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치열한 문제의식이 없다보니 속도감 있게 읽히지만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거리가 부족하다. 자살만 놓고 본다면 <유령 인명 구조대>가 더 현실적이고 더 재미있지 않나 생각한다.

 

모호한 꿈에서 시작하여 사람을 죽인 후 시체 일부분을 가족에게 보내는 절단마에 대한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도이의 삶과 자살센터도 같이 흘러나온다. 중심에 있는 것은 자살센터를 방문하는 도이가 있고, 작은 에피소드처럼 꿈과 절단마가 나온다. 흔한 추리소설이라면 절단마와 도이를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겠지만 이 둘은 다르게 진행된다. 다섯 번의 자살센터 방문이 중심을 잡고 다른 이야기들이 같이 다루어지면서 죽으려는 도이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낸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개인적으로 깊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비약은 약간 뜬금없었다. 풀어놓은 설정을 억지로 연결시키고 현실을 파괴해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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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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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슬로잉’이라고 불렀다. 자전 속도가 느려지면 가장 먼저 중력에 문제가 생겼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도 변했다. 기존의 하루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이 설정을 읽으면서 북극이나 남극에서는 실제 시계 시간과 일출몰 시간이 다르지 않나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중반 이후도 왜 이것이 문제일까 하고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중력이 무거워지면서 새가 떨어지고, 운동 능력이 떨어질 때도 말이다. 하지만 물고기와 고래 등이 죽고, 나무 등이 말라 죽을 때 이 ‘슬로잉’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조금 늦은 깨우침이다.

 

열한 살 줄리엣이 주인공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에게 지구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소녀에게는 이 슬로잉보다 이에 영향을 받은 부모 밑에서 사는 친구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이 알려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다른 주로 옮겼다. 나중에 정부에서 실제 해가 떠있는 시간과 상관없이 기존 시계 시간을 표준으로 삼았을 때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익숙해진 24시간 대신 자연의 시계를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정부에서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작가는 이 엄청난 변화를 아주 담담하게 풀어낸다. 읽다 보면 큰 문제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차분히 생각하면 인류가 처한 위기가 아주 잘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SF이자 환경소설이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인류와 동식물 등의 멸종 위기를 경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종말론적 상황은 줄리엣을 둘러싼 성장을 다루는데 필요한 배경 중 하나다. 물론 단순한 배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읽기에 따라서는 더 중요하게 다룰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쪽에서는 SF적 발상에서 시작한 하나의 종말문학이 될 것이다.

 

줄리엣은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와 연기자 출신 엄마 밑에서 자란 평범한 소녀다. 슬로잉이 생기면서 절친이 다른 도시로 떠났고, 이 슬로잉이 고착되고 가속화되는 시점에 돌아와서는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사이로 변한다. 이 변화는 줄리엣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력이 무거워지면서 생기는 문제가 나오고, 학교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지만 다니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난다. 일상이 유지되지만 그 일상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이런 일상에서 줄리엣의 시선을 끄는 남자애가 등장한다. 세스다. 그의 엄마는 암에 걸렸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 용기가 부족한 그녀에게 세스는 아직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거리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종교적 신념, 생태학적 신념 등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바꾸는 사람들이 생긴다. 종말이 다가오는 듯한 환경의 변화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 불안은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게 만든다. 이 공격이 다시 그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규칙, 법규 등이 작지만 큰 차이를 만든다. 작가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하루를 맞춰 생활하는 사람들의 장점을 보여주지만 점점 길어지는 한낮은 사람의 생물학적 한계를 조금씩 무너트린다. 긴 시간이 흐른다면 사람과 동식물들이 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시간 속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 소녀의 성장 속에는 아버지의 외도도 들어있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어떻게 할 수조차 없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어머니에게 말해야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비밀로 남겨둔 것이다. 아버지의 거짓말도 하나씩 나타난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슬로잉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단지 슬로잉이 이것을 부각시킬 뿐이다. 이런 자연과 생활의 변화는 한 소녀의 성장과 맞물리면서 잔잔하게 흘러간다. 너무 느슨하다. 그런데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힌다. 어떻게 보면 급격한 변화에 의한 종말론을 다룬 것보다 더 잔혹한 이야기다. 단계별로 별로 길지 않은 시간 속에 그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SF로 분류하고 싶다. 더불어 종말문학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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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10년 - 불황이라는 거대한 사막을 건너는 당신을 위한 생활경제 안내서
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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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후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닥쳐왔다. 이때 한국은 MB정권이 들어섰다.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으로 대기업들은 이익을 보았지만 수많은 서민들은 높아진 물가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여기에 막바지인 듯한 부동산 부흥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불안감을 조성했다. 이때 집을 산 수많은 사람들이 속된 말로 부동산 막차를 탄 사람들이다. 물론 그 2~3년 전 최고점에서 집을 산 사람들은 제외하고. 이 당시 세계 불황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더블딥에 대한 경고도 나왔지만 한국의 경제신문 등은 부동산을 살 마지막이라고 무책임한 펌프질을 계속했고, 세계 경제와 다르게 한국은 착실히 경제 성장을 하고 있다는 거짓 지표를 발표했다.

 

세계 불황이 지속될 때 외국의 한 경제학자가 L자형 장기 불황에 대해 경고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다. 10년이나 지속될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 이후 5년이 지났지만 과연 지금이 바닥인지 의문이 생긴다. 최근에 미국 경제지표가 좋아진다는 뉴스와 더불어 원화의 환율이 급속하게 오르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실제 경제지표를 반영하고 있는지, 아니면 전쟁특수를 통한 인위적인 부흥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지금의 상황은 시간이 좀 지난 후 정확한 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몇 년 전에도 고용지수가 좋아졌다는 통계가 나왔지만 실제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그렇게 큰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위에서 세계경제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적었지만 사실 다른 책 내용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의 실물경제에 대해서는 자주 만나는 은행 직원들의 부도율이나 연체율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운다. 잠시 바닥처럼 정체된 순간도 있었지만 다시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회사의 이익이 점점 감소할 때 점점 심각해지는 현실 경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경험은 몇 년 간의 경제리포트를 통해 기초를 배웠고, 점점 변하는 경제전문지의 논조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다가 깨닫게 된 실질 지식 중 하나가 거치기간과 일할 수 있는 기간과 소득에 대한 분석이었다. 이것은 이 책의 1장과 2장의 내용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 물론 여기에는 저자가 진행한 팟캐스트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부동산 구입에 관한 한 2000년 초반부터 사지 말자는 주의였다. 저자처럼 2002년 정도에 아파트를 샀다면 돈을 어느 정도 벌었을 것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 전세로 살고 있던 친구가 아파트를 사겠다고 했을 때 격렬하게 말렸다. 물론 한 채는 샀다. 자신들이 실제 살 집이다. 이 집을 사는 것도 나는 반대했다. 더 문제는 다른 한 채였다. 아마 그 당시 한 채 더 샀다면 그 친구는 이자 비용 때문에 엄청난 고생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친구가 집을 사지 않은 것이 전적으로 나의 조언에 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조언은 2채를 사야 돈이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 그것으로 돈을 번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때, 2006년 정도는 거의 막차였다. 내가 엑셀로 그의 소득과 이자와 원금에 대한 표를 만들어준 것이 어쩌면 나도 모르는 공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다시 경제 현상에 대해 공부한 것이 바로 이 이후다. 앞에서 말한 경제리포트가 경제학을 전공한 나도 모르는 단어와 현상을 쏟아내면서 흐름을 배우게 만들었다. 그때 몰랐던 것이 지금 다른 경제 관련 책에서 나왔을 때 그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고, 직업 상 만나게 되는 은행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은행원들조차도 부동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다. 물론 나의 답은 사지 마라는 것이다. 나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들도 많지만 경험에 의한 것과 지표들이 더 많은 현찰을 가지라는 쪽으로 바뀌었다. 정말 그 동네에 살고 싶은 실 거주자라면 어느 정도 빚을 지면서 사는 것에 대해 반대는 이제 하지 않는다.

 

부동산보다 이 책에서 개인들이 관심을 둬야 하는 부분은 2장이다. 3장과 4장에서 다루는 고용과 교육은 개인의 노력으로 단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개인의 재무구조는 본인의 의지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이 때문이다. 빌리 빈 단장의 머니볼 이론을 인용한 재무구조 방법은 인생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야 할 방식이다. 3장에서 나오는 고용문제 등과 겹쳐 생각할 때 이 이론은 현재와 미래를 조금 더 심도 깊게 설계하게 만든다. 특히 1년치 생활비를 저축하라는 부분은 조금 더 각론으로 들어가서 공부해야 하지만 삶의 불안정성을 생각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전혀 불가능한 분들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허리띠를 졸라매면 가능한 사람이라면 시도해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의 다른 책에서도 나왔지만 세대론은 이번에도 나온다. 부동산을 두고 벌어지는 세대 전쟁에 대한 통찰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50대 이상들의 아이들 역시 20대와 30대임을 생각하면 조금 더 세분화된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의 20, 30대의 저축률이 올라가고 있다는 통계 자료는 우리가 언론 등을 통해 접하는 일본 젊은이의 삶과 너무 달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과거가 일본의 과거와 너무나도 닮았다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생각할 때 이 부분은 전문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대목이다. 또 저축이 경제를 살린다는 그의 주장은 소비를 강조하는 기존의 틀을 흔든다. 이 부분도 더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사실 3장과 4장은 그의 인터뷰가 중심이 되어 고용과 교육 문제를 다룬다. 발상의 전환처럼 다가온 몇 가지 실례는 창업, 취업, 자녀 교육 등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각론은 개인들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저자가 4장에서 비교적 낙관적으로 풀어낸 선행학습에 대한 금지 조항이나 사교육의 불안한 미래는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두고 보는 것에 그치면 변화가 생기지 않을 테니 현재와 미래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변화는 이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직 불황의 출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금 삶의 재무 설계가 필요한 30대와 40대라면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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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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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왔다가 이제는 절판된 <그 여자의 살인법>의 재간이다. 제목을 볼 때는 몰랐는데 작가의 이름과 이력을 보다가 갑자기 떠올라 검색하니 다른 제목으로 이미 출간된 책이었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번역자는 동일하다. 재간되는 책들에서 흔히 보게 되는 방식인데 오타나 비문에 대한 수정이 완전히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일관성 있는 표지로 나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길리언 플린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중반 정도에서 고전한다. 잔혹한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도,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그 마을의 상황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이어지는데 약간은 지루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것이 그렇게 길지 않다. 이 순간을 넘기고 나면 속도가 붙으면서 단숨에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다른 작품에 비하면 주인공 카밀을 둘러싼 환경과 심리 상태가 다른 작품보다 더 특이해서 약간 더 긴장했지만.

 

카밀은 신문기자다. 편집장인 커리가 카밀의 고향 윈드 갭에서 벌어진 살인과 실종사건에 관심을 가진다. 그녀에게 그곳에 가서 사건을 조사하고 멋진 기사를 만들어오라고 요청한다. 이전에 고향으로 간 기자가 퓰리처 상을 수상하는 기사를 쓴 것 예로 들면서. 하지만 카밀은 오랫동안 윈드 갭에 가지 않았다. 가고 싶지도 않았다. 편집장이 출장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고향은 이제 성인이 된 카밀로 하여금 과거의 악몽과 마주하고 평화롭지만 정체된 시간을 느끼게 만든다.

 

윈드 갭은 조그만 도시다. 인구도 몇 천 명 되지 않는다. 한 집 건너면 서로 알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이런 마을에서 일 년도 되지 않아 또 한 명의 소녀가 실종된 것이다. 1년 전 앤이 죽었을 때 그 마을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죽였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다시 한 번 내털리의 실종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한다.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소녀에게 공통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이빨이 모두 뽑혔다는 것이다. 작가는 누가 왜 이렇게 했는지, 범인은 누굴까 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카밀에 더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두 소녀가 죽은 것은 조그만 마을에 큰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카밀과 그녀의 가족에 그 집중한다. 카밀이 겪었던 과거의 상실과 병에 대해서 하나씩 풀어내고, 마을에 숨겨진 각종 이야기를 하나씩 캐내기 시작한다. 죽은 동생 메리언과 열세 살에 아이들을 쥐고 흔드는 동생 앰마가 과거와 현재를 뒤섞고 흔들어놓는다. 여기에 냉혹한 어머니의 등장까지. 카밀에게는 아주 큰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몸을 긋는 소녀다. 자신의 몸에 글자를 새긴다. 이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불안과 공포가 다가오면 그녀는 몸 한 곳에서 새긴 글자가 열기를 품고 다른 글자를 새기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명탐정도, 과학수사를 철저하게 진행하는 경찰도 이 소설에는 없다. 한 여성의 과거가 현재의 사건과 엮이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충격적인 사실들이 그 대신 있다. 피가 튀지 않지만 섬세하게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면서 어둠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사실 그 장면들은 불편하다. 차라리 선혈이 낭자한 것이 더 편하다. 그 어둠이 더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 정도는 누구나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음이 부서진 여자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엇나간 사랑이 만들어내는 비극은 그래서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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