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시간으로의 여행
정병호 지음 / 성안당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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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누나> 덕분에 크로아티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을 보기 전 크로아티아 여행기를 읽었지만 그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 배낭여행자의 힘겨운 여정보다 화면으로 연출된 크로아티아의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예인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이 책을 선택했다. 여행과 역사의 결합이란 설명은 뒤로 한 채. 그 선택은 나의 바람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발칸반도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동시에 가보고 싶은 곳도 더 늘어났다.

 

크로아티아란 나라 이름이 책 제목에 들어간 것은 두 가지 노림수 때문이다. 하나는 앞에 나온 <꽃보다 누나>의 후광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나라가 크로아티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추천하는 발칸반도 여행 일정을 보면 크로아티아는 며칠 되지 않는다. 여행 일정과 분량이 균형을 맞추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마 이것도 <꽃보다 누나>의 영향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여행 일수를 보면 겨우 2~3일 정도에 불과한데 분량은 거의 3분의 1 정도다. 발칸반도를 여행하면서 크로아티아에 무게를 더 두는 사람이라면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발칸반도의 모든 나라를 차로 돌아다닌다. 이 여행에 동행자로 엘레나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 여성은 스페인에 사는 한국 여성이다. 그런데 이 둘의 동행이 어떤 로맨스도 만들지 않고 발칸반도에 대한 지식을 서로 뽐내면서 진행된다. 둘이 동행한 후 발칸반도 안의 도시를 찾아가고 그 나라와 도시에 대한 정보를 서로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한다. 숫자와 지명과 역사 등이 같이 나오는데 만약 이 여성이 실존인물이라면, 혹은 저자가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대단한 전문가가 아닐 수 없다.

 

이 둘의 여행은 언제나 아침에 시작해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관광을 하면서 그 도시와 나라의 정보를 알려준다. 그런 후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잔 후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다른 도시로 출발하는 일정이다. 이 일정을 보면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안내서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가 나와서 그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감상이 오히려 묻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예상한 내용을 보여주지 못한 책이지만 발칸반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발칸반도를 역사와 여행의 결합으로 풀어낸 것은 단순한 역사 서적보다 가독성을 높였다. 하지만 여행지에 대한 감상이나 좀더 현실적인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아쉬운 구성이다. 중간에 간단한 여행 팁을 넣어놓았지만 전체를 볼 수 있는 부록이 없어 필요한 부분을 본문에서 찾아야 한다. 부록으로 각 나라의 도시를 여행할 때 소요되는 시간이나 교통 정보를 넣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 도시의 관광 포인트도 같이 넣었다면 이 책이 의도했던 여행과 역사의 결합이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나저나 이 책은 잠시 움츠려 있던 발칸반도 여행에 대한 갈망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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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에 살다
손명찬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손글씨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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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 펼쳐본 후 짧은 글과 많은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착각임을 금방 깨달았다. 짧은 글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와 통찰 등은 단숨에 읽는 것이 무리라고 말했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 그 의미 등을 곱씹어야 했다. 비록 몇몇 부분에서 나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드러난다고 해도 전체 흐름은 변함이 없다. 물론 이것이 <좋은생각>이란 잡지를 통해 비슷한 내용들이 나왔고, 개인적으로 이런 잡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많은 글들이 나온다. 어떤 글은 읽다가 시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저자도 말했지만 이 책은 시집이 아니다. 그의 이력에 시집 출간이 있고, 어느 정도 그 영향력이 묻어나온다고 해도 말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장르 구분을 보면 에세이다. 이것이 맞다. 각 글들이 저자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담아내고 철학을 풀어내기 때문이다. 심리치유란 구분도 있는데 공감한다. 이 책 속 글들을 읽다보면 먼저 경험한 사람의 아픔과 즐거움과 행복과 슬픔과 기쁨 등이 절제된 문장 속에서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모으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광산 같은 책이다.

 

저자는 모두 여섯 꼭지로 나눠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음에서 시작하여 치유, 관계, 사랑, 인생, 오늘 등으로 이어진다.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마음에 있다는 선인들의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들이 결국 오늘로 귀결하는 것은 삶이 바로 오늘도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내일도 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늘과 내일을 엮어서 풀어내기보다 자신의 삶을 매일 만나는 과정에서 고찰한 것을 적어냈을 뿐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을 전공한 덕분인지 책 곳곳에 철학적 사유의 흔적이 묻어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말로 포장된 생각이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이 보였기 때문이다. 좋은생각 류의 문장과 글이 연속으로 이어질 때는 약간 느슨해지는 기분도 들지만 사진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 다른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다양한 색감을 가지고 각 글과 연결되는 사진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혹적이다. 그냥 무심코 쳐다보면 뭐지? 할 때도 있지만 글을 다시 읽으면 이 사진이 새롭게 다가온다. 어느 순간은 사진에 한참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좋은 글이 워낙 많아 한두 편을 뽑아내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책을 읽으면서 이 글이 마음에 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 곧바로 다른 글에 마음을 빼앗긴다. 어떤 글이 더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지만 읽을 때 기분에 따라, 내 삶의 경험에 따라, 생각하는 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좋다. 곱씹어야 하는 문장들이 나오면 몇 번씩 조용히 소리내어 의미를 되새기고, 옆에 실린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많은 문장으로 가득 채워 생각의 여백을 줄인 것보다 시처럼 짧고 함축적인 글이 나오면 더 많이 집중한다. 빨리 읽으면서 놓치는 의미가 있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목차를 다시 보는데 낯선 제목이 많다. 하지만 문장을 다시 읽으면 이전 느낌이 되살아난다. 문득 지금 이 책을 너무 빠르게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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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의 바다 위에서
이창래 지음, 나동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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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작가라 늘 관심을 두었고 몇 권을 책을 사놓았다. 첫 작품인 <네이티브 스피커>를 읽고 왠지 집중을 하지 못해 다음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합본으로 그의 책들이 나왔다. 몇 사람의 서평을 읽으니 좋은 평들이 올라왔다. 솔깃했다. 그 사이에 나의 책읽기 습관도 조금 바뀌어 자신감이 살짝 생겼다. 이 자신감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희미해졌다. 예상했지만 밀도 있고 세밀한 문장이 좀처럼 눈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디게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판을 둘러싼 모험이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주 무대는 미국이다. 이전에는 볼티모어라고 불렸던 도시지만 지금은 B-모어로 불리는 곳에서 시작한다. 이 B-모어는 계급으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중간계급도시다. 이곳은 신선한 야채와 수조에서 키운 물고기를 팔아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판은 바로 이 수조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중국계 잠수부다. 그녀의 애인이자 그녀가 이 도시를 떠나게 된 이유인 레그는 야채 등을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레그가 사라졌다. 아무도 왜 그가 사라졌는지 모른다. 그의 연인이었던 판은 그를 찾기 위해 안전한 도시를 떠난다. 이 소설은 그녀의 모험 이야기이자 그 시대의 사회 풍경을 세부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B-모어를 떠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녀를 차로 친 사람은 예전에 차터의 수의사였던 퀴그다. 그는 현재 안전한 도시를 떠나 자치주에서 생활한다. 그의 직업은 이제 의사다. 물론 제대로 교육을 받은 의사는 아니다. 하지만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사람들이 쉽게 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그는 아주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치주의 사람들은 그의 치료를 받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가져와서 치료를 받는다. 물물교환방식이다. 줄 물건이 없으면 자신이나 가족의 누군가를 주어야 한다. 그를 정점으로 한 마을이 만들어질 정도다.

 

이 소설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사실 퀴그의 사연이다. 차터에서 수의사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그에게 놀라운 일이 생긴다. 그것은 동물들의 전염병이다. 이 전염병에 대해 당국은 모든 애완동물을 살처분한다. 이 때문에 갑자기 수의사란 직업이 사라진다. 차터는 이에 대한 보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살기 위해 전혀 해보지 못한 일을 한다. 이때 그의 아내를 통해 치료용으로 쌓아둔 마약류를 팔라는 유혹이 들어온다. 이 일이 새롭게 부를 쌓게 하지만 어느 순간 경찰에게 밝혀져 차터 밖으로 추방당한다. 겨우 차에 실을 수 있는 몇 가지 물건만 가지고. 그리고 그의 가족은 한 여관에 들어가고 거기서 약에 취한 남자들에게 살해당한다. 그 이후 그가 의사와 같은 생활을 하기까지의 삶은 생략되어 있다.

 

자신의 눈앞에서 가족이 살해당한 후 그의 내면은 파괴되었다. 감정의 파편은 남아 있지만 따스함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가 판을 구해주었을 때, 판이 운전을 하게 했을 때 로린이 놀랐다. 어떤 부분에서는 질투를 했다. 퀴그를 중심으로 한 자치주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떠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이 시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판은 다른 사람들이 퀴그에게 사람을 노예로 바친 것처럼 차터의 부유한 집안에 남겨진다. 후반부는 바로 이 차터에서 벌어진다. 그곳에서 벌어진 것은 상류계층의 은밀하고 왜곡된 삶의 모습들이다.

 

판이 주인공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그녀가 실제 활동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야기의 한 축은 그녀가 떠난 B-모어에서 이루어진다. 전설처럼 변한 그녀의 이야기와 그 후 B-모어 사람들의 삶이다. 그들 이야기 중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이곳의 아이들 중 2%가 성적에 따라 차터로 입양되었는데 그 비율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벌어진 시위는 그들의 삶과 세계가 얼마나 종속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작게는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 입사나 대입을 둘러싼 풍경과 너무 닮아 있다. 공고하게 굳어진 계급사회 속에서 이 틀 자체를 바꾸기보다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라도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바람이 그대로 드러난다.

 

판의 모험은 레그를 찾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 레그는 다국적 제약 회사에 실험대상으로 억류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이 사회를 위협하는 질병인 C-질환에 대해 그가 완전히 내성적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된 C-질환은 불치병인데 제약회사에서는 이 치료제를 개발하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다. 기업과 사람의 탐욕은 한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실험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들고, 이 사실을 은폐한다. 나중에는 임신한 판조차도 이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에 빠진다. 그것도 그녀의 가족에 의해서. 사람들의 욕심은 흔히 하는 말로 사랑이니 가족이니 하는 것 너머에서 조금만 틈을 보여주면 그를 삼켜버리려고 대기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서 따온 것이다. 만조의 바다 위에서 조류를 타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란 대사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판의 활약은 사실 거의 없다. 차터로 오는 도중에 퀴그 등이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준 것을 제외하면 능동적인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를 중심으로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이것이 어쩌면 그녀를 전설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 촘촘하게 짜인 문장과 서사 속에서 새로운 삶의 모습과 현재 우리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가볍게 읽기는 무리지만 차분하게 집중한다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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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끝 바다
닐 게이먼 지음, 송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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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상 경력은 언제나 시선을 끈다. 닐 게이먼의 수상 경력이 바로 그렇다. 그 덕분에 이 작품 이전에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권은 그냥 사놓기만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샌드맨>이었다. 읽은 것은 1권뿐이지만 2권을 사놓고 약간 주저하고 있다. 이유는 물론 금전적인 문제다. 영어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몇 권은 늘 똑같은 이유인 사놓았기 때문이다. 사기 전에는 엄청난 욕망에 시달리지만 사놓은 후는 그냥 책장으로 간다. 사놓은 책이 많아지면서 생긴 부작용 중 하나다.

 

몇 권 읽지 않은 닐 게이먼의 소설들은 간결했다. 복잡한 구성도, 확장된 이야기도 없었다. 그러니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단순히 빠르게 읽히는 책이라면 기억 속에서 작가의 이름이 사라졌겠지만 이성을 살짝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나오면서 나를 매혹시킨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오랫동안 이어질 정도로 나의 기억력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읽는 동안 혹은 읽은 후는 다르다. 이 소설도 해설에서 말한 것 같은 몇 가지가 시선을 끌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이전에 읽거나 본 책과 영화의 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한 중년이 장례식을 마친 후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오솔길 끝까지 걸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자락을 만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잊고 있던 기억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 점점 선명해질수록 현실의 벽은 무너지고 놀라운 판타지 세계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기존의 판타지와 다르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다. 그리고 몇몇 설정은 은유와 파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가 한 아이의 악몽 같은 현실로 바뀌고, 거대한 규모의 이야기로 이어질 때 나도 모르게 점점 몰입하게 되었다.

 

일곱 살 소년과 열한 살 소녀 레티 헴스톡. 이 둘은 예상하지 못한 일에 부딪친다. 그 시작은 한 오팔 광부의 자살이다. 가세가 기울면서 부모님은 남는 방을 세 줄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한 명인 오팔 광부는 등장부터 소년이 사랑한 고양이를 죽인다. 그가 자살한 이유는 도박으로 친구의 돈을 탕진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이 한 소년의 입속에 동전이 들어오게 만든다. 소년이 직접 넣은 것이 아니다.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정의 장난도 아니다. 이 동전 때문에 죽을 뻔한다. 이 괴상한 사건을 가지고 소년이 간 곳은 헴스톡 집안이다. 이 사건을 키운 것은 레티의 조금은 안일한 생각이다.

 

헴스톡 집안의 삼대 세 여인은 특별하다. 이 특별함이 드러날 때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오만하다. 이 오만함이 레티로 하여금 소년을 데리고 짧은 여행을 하게 만든다. 레티가 바란 것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손을 놓지 마라는 것이다. 의식이 있을 때 이것은 쉬운 일이지만 반사적인 경우는 다르다. 잠시 손을 놓았는데 이것이 소년의 몸에 이상한 일을 만든다. 그때 이 일을 알았다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온 후 자신의 발에서 이상한 벌레를 발견한다. 이 웜홀이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고, 소년의 세계는 불안과 공포로 휩싸인다.

 

몸이 다른 차원의 통로가 되는 설정에서, 연못을 대양이라 부르는 레티의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우혁의 소설 중 한 설정이다. 영화 <맨인블랙> 속 우주다. 가장 작은 것에서 우리가 아는 가장 큰 세계가 존재하고.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 속에 들어있다. 그리고 소년이 요정의 원 속에서 굶주림새들의 유혹을 물리치는 장면은 싯다르타의 수행 속 한 장면 같았다. 어린 아이가 과연 이런 유혹과 공포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소년이 레티가 가져온 연못을 통해 대양을 경험할 때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의 한 장면이 겹쳐졌다.

 

어린 시절 기억은 성인이 되면서 점점 희미해진다. 그것은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모두 똑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기억들이 현실을 뒤덮는 순간이 생긴다. 과거가 현재를 잡아먹는 경우다. 물론 이런 일은 자주 생기지 않는다. 자주 생기면 병이 된다. 소년이 어른이 되면서 이 기억을 점점 잊고 산 것은 모든 주술이 풀린 후 가족이 사라진 어슐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헴스톡 부인이 시간을 라 기운 것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등장인물이 없지만 환상적인 설정과 전개는 몰입도를 놓이고 이야기의 가지를 나 자신도 모르게 넓고 다양하게 펼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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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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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63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책이다. 모파상의 단편을 어릴 때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처럼 많은 단편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목걸이> 같은 작품이야 너무 유명해서 다시 읽으면서 읽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단편들은 상당히 낯설었다. 분명 다른 단편집에서 읽었을 텐데. 하지만 그때와 분명히 다른 느낌을 이번 책에서 받았다. 그것은 왜 모파상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문장과 구성과 캐릭터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이 보통의 단편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을 알려주었다. 거의 800쪽에 달하는 분량임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집중해서 읽었다.

 

63편 중에서 가장 먼저 나왔고 첫 작품인 <비곗덩어리>은 모파상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꿔놓았다. 물론 이 인식은 <목걸이> 같은 단편에서 비롯한 것이다. 어떤 편역자는 공포라는 장르로 모파상의 소설을 묶어 내놓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그 시대의 삶을 잘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그 시대 상류계급의 오만과 허식과 위선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창녀의 희생을 강요하는 그들의 위선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이 장면은 이후 수많은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성적인 은유와 표현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직설적이다. 불륜이 일상적인 현실 속에서 사랑이 꽃피는데 작가는 이 결말을 다양하게 마무리한다. 어느 이야기에서는 비극으로, 어딘가에서는 코믹하게. 누군가는 그 사랑으로 삶을 마감하고, 다른 누군가는 들통 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의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이 많고,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이 반응은 그 시대 그 사회 분위기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씁쓸했다. 우리의 현재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다룬 이야기에서 적군들과 잘 지내다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들은 소바주 아주머니가 보여준 행동은 다른 이야기 속 노인과 겹쳐지면서 섬뜩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농부들은 애국심에서 나온 증오 같은 것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지배계급의 전유물이다.”(515)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들의 죽음이 적군을 집에 몰아넣고 불태워 죽이는 행동으로 변해버린다. 이때 복수는 무얼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라는 단순한 복수일까? 이 네 명의 적군들의 주소를 받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복수일까 아니면 제대로 된 소식을 전하기 위한 어머니의 마음일까? 복수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피의 고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단편집의 특징 중 하나는 이야기의 시작과 실제 주인공이 다르다는 것이다. 모임이나 만남 속에서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이때 들려주는 이야기는 공포나 사랑이나 기이한 일 등이다. 이 방식을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길지 않는 이야기다 보니 핵심만 간략하게 나오는데 순간적으로 완결된 이야기라 집중하기 좋았다. 얼마 전에 읽은 미국 단편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과 다른 모습이다. 내가 아직 현대 거장들의 단편을 읽을 내공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인지.

 

사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읽다 보니 지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강한 인상을 준 단편 몇 편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런데 이 단편들이 또 다른 단편을 연상시킨다. 책을 뒤적이면 더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 시대 사람들의 위선과 해학과 공포와 사랑 등이 복잡하게 엮인다. 순간적으로 이 단편들을 각각의 이야기로 구분해서 분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작업이 작위적이고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파상을 잘 모르는 독자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괜히 이전에 읽은 모파상 편역 단편집이 떠올라 덧붙여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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