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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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왔다가 이제는 절판된 <그 여자의 살인법>의 재간이다. 제목을 볼 때는 몰랐는데 작가의 이름과 이력을 보다가 갑자기 떠올라 검색하니 다른 제목으로 이미 출간된 책이었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번역자는 동일하다. 재간되는 책들에서 흔히 보게 되는 방식인데 오타나 비문에 대한 수정이 완전히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일관성 있는 표지로 나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길리언 플린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중반 정도에서 고전한다. 잔혹한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지지도,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그 마을의 상황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이어지는데 약간은 지루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것이 그렇게 길지 않다. 이 순간을 넘기고 나면 속도가 붙으면서 단숨에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다른 작품에 비하면 주인공 카밀을 둘러싼 환경과 심리 상태가 다른 작품보다 더 특이해서 약간 더 긴장했지만.

 

카밀은 신문기자다. 편집장인 커리가 카밀의 고향 윈드 갭에서 벌어진 살인과 실종사건에 관심을 가진다. 그녀에게 그곳에 가서 사건을 조사하고 멋진 기사를 만들어오라고 요청한다. 이전에 고향으로 간 기자가 퓰리처 상을 수상하는 기사를 쓴 것 예로 들면서. 하지만 카밀은 오랫동안 윈드 갭에 가지 않았다. 가고 싶지도 않았다. 편집장이 출장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고향은 이제 성인이 된 카밀로 하여금 과거의 악몽과 마주하고 평화롭지만 정체된 시간을 느끼게 만든다.

 

윈드 갭은 조그만 도시다. 인구도 몇 천 명 되지 않는다. 한 집 건너면 서로 알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이런 마을에서 일 년도 되지 않아 또 한 명의 소녀가 실종된 것이다. 1년 전 앤이 죽었을 때 그 마을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죽였을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다시 한 번 내털리의 실종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한다.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소녀에게 공통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이빨이 모두 뽑혔다는 것이다. 작가는 누가 왜 이렇게 했는지, 범인은 누굴까 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이 사건을 조사하는 카밀에 더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두 소녀가 죽은 것은 조그만 마을에 큰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카밀과 그녀의 가족에 그 집중한다. 카밀이 겪었던 과거의 상실과 병에 대해서 하나씩 풀어내고, 마을에 숨겨진 각종 이야기를 하나씩 캐내기 시작한다. 죽은 동생 메리언과 열세 살에 아이들을 쥐고 흔드는 동생 앰마가 과거와 현재를 뒤섞고 흔들어놓는다. 여기에 냉혹한 어머니의 등장까지. 카밀에게는 아주 큰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몸을 긋는 소녀다. 자신의 몸에 글자를 새긴다. 이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불안과 공포가 다가오면 그녀는 몸 한 곳에서 새긴 글자가 열기를 품고 다른 글자를 새기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명탐정도, 과학수사를 철저하게 진행하는 경찰도 이 소설에는 없다. 한 여성의 과거가 현재의 사건과 엮이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충격적인 사실들이 그 대신 있다. 피가 튀지 않지만 섬세하게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면서 어둠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사실 그 장면들은 불편하다. 차라리 선혈이 낭자한 것이 더 편하다. 그 어둠이 더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 정도는 누구나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음이 부서진 여자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예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엇나간 사랑이 만들어내는 비극은 그래서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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