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청소와 정리법 - 인기 미니멀리스트 25인의 집안일 아이디어 for Simple life 시리즈 3
주부의 벗 지음, 김수정 옮김 / 즐거운상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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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로 살려면 청소도 미니멀하게 조금만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사실 여기 소개된 여러 일본 주부들은 미니멀 라이프를 산다기보다는 티끌 하나 먼지 하나 없이 집안을 유지시키기 위해 어떤 클리닝 제품들을 사용하는지 얼마나 자주 어떤 방법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는지 자신들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어떤 주부는 이틀에 한 반 베갯잇을 갈아 빨고 일주일에 한 번 침대 커버를 모두 벗겨 빤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 새로 지은 호텔이나 콘도같이 반짝반짝 윤이난다. 한 저자가 자기 노하우를 책으로 쓴 게 아니라 편집부에서 청소의 신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각기 다른 방법들을 조사해소 실은 거라 다양한 방법들이 소객힌다는 특징이 있다. 청소는 주부들의 몫인가 라는 퀘퀘묵은 질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 주부라는 말도 사실 돈을 벌고 있어도 파트 타임이나 자택 근무면 주부가 되는데 이렇게 부지런을 떨어서야 어디 일할 시간이 나겠나.

거의 모든 주부들이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직구는 널렸음) 청소용 제품들을 사용하는데 이건 뭐 직구 안하는 독자에겐 그림의 떡이다(9천원 짜리 클리닝 제품에 1만 2천원 택배비는 사양함). 그래도 일본이 좀 가까운가. 그리고 부산 가면 얼마든지 일본 제품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하는 분들을 위해 메모해둔 것 중 거의 모든 주부들이 쓰고 있는 건 80프로 정도가 에탄올인 파스토리제 살균 스프레이다. 찾아보니 해외 직구 2만원선이다. 창문청소에서부터 거의 찌든 주방 탑까지 거의 모든 곳에 쓰이는 듯한데 그냥 약국에서 파는 1천원짜리 에탄올을 스프레이 통에 넣어서대용으로 해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타마로 비누는 2400원인데 한국에서도 팔지만 아주 더러운 것도 잘 진다고.  매일 하는 청소에 뭔가 친황경적일 듯.  의외로 산소계표백제(옥시클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던데 반가운 소식이다. 전에 과탄산나트륨 한 포대를 사둬서 평생 쓸만큼 있거덩. 중성 세제를 살짝 섞어서 청소용 물비누로 쓰면 될 듯하다. 어제 생생정보통에도 나왔는데 과탄산나트륨+중성세제+에탄올 이게 파워풀하단다. 

미니멀 라이프를 살려면 몸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데 온갖 취미로 여러 장비들을 사들이시기에 하루도 택배가 거르지 않는 식구를 가진 집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일 뿐. 사들이는 사람이 청소와 정리는 본인이 한다는 건 불행 중 다행.  이런 책을 보면 조금 경각심이 생기고 청소에 대한 의욕이 잠시나마 솟구치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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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 인생의 기회를 열어주는 세련된 영어 대화법 자기계발은 외국어다 2
하마다 이오리 지음, 정은희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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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딴 얘기를 하고 시작.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화성어의 빙빙 돌려말하기와 복잡한 완곡어법은 한국어를 능가할 정도였다" 


맥락을 부연설명하면, 그 전에 화성인이 '긴장을 풀고 로카의 교리 전체가 명백히 구현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라고 말하니 주인공이 '뭐라고요?' 하고 묻고 화성인이 다시 '로카의 춤을 보고 싶습니까?' 라고 직접적으로 바꿔 묻는다. 


나의 센스쟁이 동창들과도 특히 단톡할 때 자주 느끼는 건데, 한국어는 일상적인 언어에서조차 은유와 상징의 풍성한 파도가 넘실댄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냥 보통 때 쓰는 표현을 영어로 그대로 옮겼을 때 무례하게 느껴지는 직접적고 간결한 표현도 많다. 길가다 만나면 '너 뭐 어떻게 지내냐?' '그냥 지내' 이런 쓸데없는거 안묻고 대놓고 '어디가냐' 묻고, 전화벨이 울리면 '잘지내냐'보다는 '어디냐'가 먼저다. 나는 얼쩡거리지 않고 이렇게 그냥 확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이 책은 일단 내용이 많지 않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영어 문법과 단어로 영어를 좀 더 세련되게,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오해없이, 기분 상하지 않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문법을 아무리 오래동안 배워왔다고 한들 기본적인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언어상의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조차도 외국사람과 일상적인 대화에서조차 오해를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오히려 일상적인 대화일 때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문화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게, 이런 표현이 한국말에서는 일상적이지 않지만 한국말도 이렇게 하면 훨씬 더 부드러워지겠구나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무엇이냐 하면. 영어를 꽤 잘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단어 하나 차이로 굉장히 다른 뉘앙스가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몇가지 규칙을 알아두고 표현을 알아두면, 열라 공부하지 않아도 실용적인 대화를 잘 이어나갈 수 있다는 거다. 수준은 중학생 정도 학생들도 다 알고 쉬운 단어로 표현되는 간단한 문장들이다.


책을 안살 사람들을 위해서 혹은 책을 살 사람들에게 힌트를 주기 위해 살짝만 정리해본다. 



질문하자.

잘 이해하지 못한 내용은 다시 질문한다. 질문하는 방법. parden? 처럼 대체 이 인간이 내가 여태 설명했는데 대체 뭘 알아먹었다는 거야 싶게 황당하게 묻지 말고 구체적으로 묻는다.


❶ 대화 중에 상대방에게 직접 묻는다 습관 ❷ 구체적으로 확인하면서 묻는다

요령 ❷ yes/no로 답할 수 있도록 질문한다 요령 ❸ 마지막으로 자신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 ⇒ So, to confirm, you’re saying (that) + <확인하고 싶은 부분을 요약한 문장>. Is that correct?   모르는 것을 정확히 물을 때 유용하다.


상대방의 이름을 알자.

이름보다는 호칭을 자주 사용하는 우리 문화에 오래 노출된 경우, 영어권 상대편 이름에 대해 무관심하기 쉽다. 이름을 알아두고 외우는 습관을 이렇게 실천한다.

1) 이름을 다시 한 번 물어본다

2) 상대방의 이름을 듣자마자 따라 말한다 Kyle: I’m Kyle. 나: Kyle. Hi, I’m Ken.

3) 자신의 발음이 맞는지 확인한다

4) 확신이 안 들 때는 철자를 물어본다

6) 대명사보다 이름을 쓴다


특히 상대방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재촉 혹은 제안할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you로 문장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방법은

1) we를 주어로 한다

2) 자신을 주어로 한다

설정 친구에게 빌려준 3만 원을 돌려받고 싶을 때   Did you give me back my 30,000 won? 은 추궁하는 느낌이 든다. ○ Did I get back the 30,000 won I lent you?

3) 무생물을 주어로 한다.× Why did you come to Korea? 은 직접적이고 무례하다. what을 주어로 ○ What brought you to Korea? 간접적이고 완곡한 표현


정중하고 완곡한 과거형

영어에서는 시제를 과거형으로 쓰면 시간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를 느끼게 하여, 간접적으로 느껴지고, 그 결과 정중하게 들린다. can you / could you, will you / would you. 점원이 물을 때, are you looking for something? 는 직접적이고 무례하고, were you looking for something in particular? 가 정중하다.

I wonder if you can … 은 I was wondering if you could 가 더 정중


좀 닭살 돋지만..

뒤에 for you를 붙여 따뜻함을 표현한다. I can ~ for you, I ~  for you, Shall I ~ for you?, Here/This is~ for you.  I’ve ~ for you. 등등


작은 표현들

05 ‘작은 표현’을 활용하면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a bit   a little just really quite slight   one or two kind of 등 can you come a bit earlier? 면세점에서 물건 사기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방법으로  나 돈없다는 퉁명한 표현보다는 It’s a little over my budget.가 적절하다.


단정적 표현을 부드럽게

단정적인 표현은 신빙성을 떨어뜨리므로 현명하게 바꾼다. 방법 ① <Not+단정적인 표현>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② But으로 말을 이어나간다. ③ <빈도·정도를 나타내는 말>을 고른다. ④ 하고 싶은 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Everyone knows that.=>Not everyone, but many / most / some people know that.  


미안하다는 말은 고맙다는 말보다 동양적

문화의 차이인데, 사과보다는 감사로 마음을 전한다.

I’m sorry my English is poor. ⇒ Thank you for your patience.

Sorry I’m just complaining. ⇒  Thank you for listening.


거절하는 방법

No를 쓰지 않고 No라고 말하는 방법. 한국말도 유효하다.

❶ ‘쿠션 표현’을 쓴다 쿠션표현은 충격을 완화해줄 수 있는 표현이다. Thank you for asking, That sounds + 긍정형용사, I wish I could, Unfortunately, I understand your situation,

❷ 거절하는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something has come up, I have another appointment)

❸ 상대방이 말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대안을 제시한다

거절할 때 하기 쉬운 실수가 바로 어색함을 참지 못해서 계속 말하는데, 그 순간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게 이 책에서 가장 유용한 충고다.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실 거절하고 싶지 않을 경우 Maybe some other time?, I will be able to do that by tomorrow if that’s o.k.


불쾌감을 주는 주장을 불쾌하지 않게 표현.

첫마디에 긍정적인 단어로 시작한다.  Yes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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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보고) 너무 레트로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분위기의 그림을 너무나도 애정하게 되어서, (어렵게) 고해상도 파일을 구해 데스크탑 커버로 씌웠다.













배경은 1990년대지만, 세상은 이미 겪을 대로 겪어 종말로 치닫고 있는 중, 길거리에는 머리에는 뉴로캐스터라는 장비를 쓰고 반쯤 죽은 송장들이 널부러져 있고, 슈퍼마켓의 매대는 텅텅 비어 있으며, 먼지 스톰으로 뒤덮힌 길은 한치 앞도 보기 힘들다.  텍스트는 짧지만, 한두 장 혹은 챕터에 걸쳐 장황하게 설명해야 할 배경과 분위기는 모두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걸 아트북이라고 하나. 그림책을 보는 느낌으로 한장 한장 넘기다 보면, 배경 정도를 파악하게 되고, 주인공 여자 아이가 살아온 삶,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지만, 이 소녀가 향한 포인트 린덴이라는 곳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소녀와 동행하는 것(?)은 한 로봇인데. 그림이 없었다면 훨씬 어린 동생벌 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인격적으로 대하고, 스킵이라는 이름도 있다. 소녀가 향한 곳은 바로 그 스킵이 지도 상에 표시해둔 태평양과 맞닿은 서부의 저 끝 어느 작은 마을의 한 주소다. 왜 그곳을 향하고 있을까.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이거나, 혹은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일까. 그녀는 착한 아이가 아니다. 차를 훔치고, 돈을 훔치고, 양엄마를 폭행했던 사건을 회상하며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종말에 닥친 세계는 작은 로봇 하나와 동행하는 틴에이저에게 그 어떤 온정도 없으며, 적대적이고 악의를 품고 있다. 자연도 무섭고,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인공적인 장치들도 무섭지만, 미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경찰들이다. 스킵과 미쉘은 훔친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피해 모하비 사막을 지나고 폐허가 된 도시를 지나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 포인트 린덴으로 가고 있다.



인간의 의식은 뇌신경과 그 복잡한 연결이다.  그게 전부일까? 소설을 통해 작가가 묻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 지점이다. 만일 뇌신경의 모든 시냅스 연결의 디테일을 과학 기술적으로 모두 풀어 조작할 수 있다면, 정신이 지배하는 인간의 몸은 무엇일까. 소설은 그것을 묻고 있는 듯하다. SF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 비교적 재밌게 본 <얼터드 카본>에서는 사람의 의식을 작은 스택에 담아 뒷덜미에 심는다. 옷을 갈아입듯 죽은 사람의 몸을 사서 그 스택을 심으면 그 사람의 자아가 되돌아온다. 드라마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드라마 너머 풀 텍스트에 담긴 작가의 정신을 읽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읽고 본 사람들 말에 의하면, 둘이 서로 다른듯 하며 비슷하지만 책은 책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재밌다고 한다. 먼저 드라마를 본 경우는 고착된 배경 이미지가 상상력에 굴레를 씌우는 경향이 있지만, 반대의 경우(책을 먼저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경우), 풀 텍스트로 모두 아는 내용에 상상으로는 맛보지 못한 시각적 경험까지 덧붙여서 그야말로 착붙는 조합이다. 아무튼 이것저것 읽는 바람에 진도가 잘 안나가지만, 시즌2가 나온다고 하니, 얼렁 읽고 다음 편까지 읽은 다음에, 드라마를 봐야겠다.


















두 편의 전혀 다른 장르(SF 적으로는 같은 장르지만 톤은 매우 다르다)의 드라마 두 편이 교차하는 지점은 바로 인간의 의식이 몸과 결별하는 지점이다. 하나는 의식이 머리에 쓰는 장치를 통해, 전기줄 같은 물리적 연결선을 통해 서로 흐르며 가상 세계로 연결되고 통합되어 현실(자신의 몸을 포함한)을 유기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고, 하나는 그 의식을 스택에 넣어 영원히 저장하고, (죽은 사람의) 몸을 사서 바꿔가며 영원한 삶을 산다. 그래서 결국 무드셀러라는 계층의 부자들은 수백년간 몸을 바꾸어 가며 살면서 축적된 재산과 권력으로 신적인 존재가 되어, 지상이 아닌 구름 꼭대기 하늘에 지은 높은 건물 꼭대기에 살며 (더러운) 땅을 밟지 않는다.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읽는 과정, 그림이 보여주는 대체 역사의 종말론적 분위기 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하지만, 대체 왜 이들이 이 곳에 가려고 하는것인가 하는 수수께끼에 대한 힌트는 전혀 거의 보여주지 않는데, 마지막 순간, 그러니까 그 오디세우스 같은 여행을 끝내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서야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되고, 더욱 더 충격적인 결말을 그림으로 확인하게 된다. 우와 이 작품이 휴고상을 타지 않았다면 대체 다른 어떤 작품이 휴고상이든 뭔 상이든 탔단 말인가.


얼터드 카본은 넷플릭스 드라마 특유의 밀당을 보여준다. 작은 반전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큰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넷플 드라마에 질리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넷플 드라마를 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한, 충격과 반전을 적절히 적당한 때에 내놓는 것이 상업적으로 통한다는 얘기인데, 내가 궂이 드라마로 본 이야기를 책으로 보려고 하는 이유가 원작에서도 이런 식의 공식화된 밀당으로 승부하지는 않았을 거 같다는 거다. 


두 작품 중 하나는(스포가 될 까봐 조심스러워서 이렇게 쓴다), 아니 다른 하나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의식과 몸이 분리되었을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혹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만 줄구장창 하다가, 어느날 머리와 정신이 인터넷의 어딘가에 틀어박혀져 서, 모니터 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어떤 사람의 정신이 소프트웨어 적으로 존재한다면, 그 소프트웨어적인 존재가 어떤 틀 안에 들어가면 뭐 대략 인간적인 행동을 모방할 수 있다면, 그 소프트웨어를 삭제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단순한 질문이라면, 절대로 삭제할 수 없다 겠지만, 정신이 떠난 몸이 황당그레 남겨져 있다면, 그건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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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앞으로 100년의 시간이 주어져야 해.  90년전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100년의 시간이 필요한 그녀는 세익스피어의 누이다. 세익스피어와 똑같은 재능과 열정을 지니고 태어난 세익스피어의 누이가 같은 세익스피어가 쓴 글과 같은 글을 쓰기 위해 인류에겐 100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익스피어의 시대에는 같은 재능, 같은 열정, 같은 가정 환경을 가진 그의 누이가 작품을 쓰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90년 전, 세익스피어가 죽은 지 300년이 넘는 시점, 직업적인 글쓰기가 사회적으로 가능해진 새 시대에, 그녀는  재능있고 열정으로 가득한 당대의 여성 문학 지망생들에게 아직도 멀었다고,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문화와 사회 제도, 가치와 관습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헤밍웨이가 세계를 여행하며 경험을 쌓는 동안 스타킹을 깁고,  제인 오스틴은 시끄러운 거실 한편에서 차를 대접하며 틈틈히 상상력을 옮겨적는동안 처했을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헤아렸다. 

가상의 세계에서 캠브리지 캠퍼스 잔듸 위를 걷는 것을 저지당하던 그녀, 도서관 출입을 금지당하던 그녀는 자신이 걷고 있는, 걷게 될, 여성 작가의 길이 폭신폭신하고 말끔하게 깎여진 잔듸길이 아닌 이곳 저곳 돌뿌리가 발길을 방해하는 자갈밭임을 알았다.  90년이 지났다. 지난 90년동안 인류 전역사에 걸친 변화만큼 커다란 변화를 겪으면서 세계는 하나가 되고 풍성한 문화적 교류를 이루고 평화와 자유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음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누구나 울프가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누구나 자신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도록 법적,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었다. 

사회는 이제 여성의 특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여성이 결혼하면 가정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직장 남성들은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하릴없는 맘충들은 남편이 뼈빠지게 돈벌며 고생하는 동안 한가하게 비싼 커피 마시고 다닌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은 대개 우리에게 조금은 이질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역동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하는 이야기, 불의에 저항하거나, 복수하는 이야기. 그렇지 않고 우리에게 가까운 이야기들은 적어도 어떤 드라마가 담겨 있다. 그러나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에는 드라마가 없다.  

역사도, 고통도, 분노도, 복수도 없다. 
매일매일 여성으로서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일 뿐이다.  
매일매일 겪다보니 드라마가 되지 못하고 일상이 되어 버린,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일상 중 부딪치는 미세한 차별이 낳은 작디 작은 슬픔들의 합이 만들어낸 갑작스런 환기가 있을 뿐이다.  

양성 평등 조항이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훌륭한 헌법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미국에서도 유래가 없던 여성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국민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일은 과잉 은 일상중 일어나는 그 미세한 작은 차별들에 일일히 대응하고 따지고 분노하면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며 커져버린 반향의 힘에 부딪혀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또한 무감각해진, 그래서 김지영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인격이 되는 길을 택했다. 82년생 김지영이 말이다. 72년생 이미영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92년생 유진과 2002년생 보람의 삶이 72년생 김지영과 얼만큼 더 달라졌을지...

또... 조남주가 새로 쓴 사하 맨션은 어떤 드라마를 가지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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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미국의 아주 작은 도시에서 잠시 살 기회가 있었었는데, 그곳은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고, 그 지하실에는 여러가지 잡동사니와 세탁기/건조기를 두고 사용한다. 그래서 저녁 산책을 하다보면, 한국에서 밥냄새를 맡듯 열어둔 지하실 창문 위로, 혹은 후드를 통과해 퍼지는 여기 저기서 빨래 돌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내가 기억하는 미국의 냄새는 대표적인 세재 냄새, 대표적인 섬유 유연제 냄새다. 한국에서 한 때 유해하다는 소동이 있던 다*니 냄새이기도 하다. 이 냄새가 문제가 되면서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이었던 시절 한 때에는 부자집 애들한테 나는 냄새였다는 얘기를 읽을 수 있었다. 내 기억에도 어릴 때는 훨씬 더 코가 예민했고, 이런 저런 냄새들을 잘 맡았다. 하지만 그 때에 맡은 갖가지 냄새들은 삶의 계급을 분리하는 것들이라기 보다는 그저 다양한 이런 저런 삶의 냄새였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학교에 들어가기도 아주 한참 전의 어릴 때 냄새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를 따라 버스를 타고 아주 한참동안 어떤 시골에 있는 어떤 집에 갔는데, 집에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흔히 시골에서 맡을 수 있는 외양간 냄새로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나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실례라는 사실을 몰랐을테고, 그래서 엄마에게 냄새난다고 말했는데, 그 때 엄마는 무섭게 눈을 호라리며 절대 그런 말 주인 앞에서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때의 기억이 엄마가 무섭게 화를 내서였는지 냄새가 강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냄새라는 게 어떤 사회적 혹은 물질적 위치를 살그머니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기억이 남편에게도 있었다. 어린 시절을 잘 기억 못하는 그는, 초딩 1학년 때 짝꿍 여자애에게서 고등어 냄새가 나서 선생님에게 짝을 바꿔달라고 했다가 호되게 혼나고, 선생에게도 내내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내가 보기엔 그래도 쌌지). 가난의 냄새와 부자의 냄새로 무 자르듯 딱 잘라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냄새들은 삶의 패턴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 코는 아주 예민해서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들을 금방 알아차리지.

300억 개의 공기 분자 속에 냄새 분자가 한 개만 있어도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인도 파키스탄 계열의 인종이 많은 런던에 있을 때 일인데, 누가 왜 그런 말을 했고, 어떤 경위로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레 냄새가 난다고 했다. 어쩌면 TV 드라마에서였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들은 늘 카레 냄새를 달고 다닌다고 했다. 어딜가든 어떻게 입든, 무엇을 하든, 항상 카레 냄새가 따라다닌다는 거였다. 나는 움찔했다. 내게서 김치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사실 김치 담그기 힘들어서 잘 못먹기는 했지만 식생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몸에서 다른 냄새가 날 거고, 그들이 느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단편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는 영어 클래스를 담당하던 교수가 한 학기 동안 육아 휴직을 내는 바람에 캐나다인 여성이 대신 한 학기를 맡았었는데, 이 사람은 영어를 가르치러 온 건지, 아니면 혼자 있기 심심하고 수다 떨 사람도 없어서 그냥 수다 떨러 온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자기 얘기만 하다 가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했던 냄새에 대한 얘기 역시 한참동안 기억을 떠나지 않았다. 자기 옆사람(역시 외국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 로 시작해서. 오 누구나 다 자기 특유의 냄새가 있지 않나? 하더니.. 집집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낯선 곳에 들어가면 늘 특유의 냄새가 나고, 특히 집집마다 들어갈 때 특유한 냄새들이 있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 선생 왈, 자기 집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를 사람들이 다 몸에다 묻혀서 나오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는 그 집안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 날 집에 들어가서 문을 여니 과연 집에서 우리집 냄새가 났다.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지만, 우리집 냄새다. 저 냄새가 나에게서도 나겠다는 거지? 내 남편에게서도, 내 자식에게서도? 그것은 오래된 집 가구들과 옷들과, 빨래 세제의 향들과 요리할 때 날아다니다가 어딘가 구석에 붙어 숨어 있는 각종 분자들과 몸에서 나온 여러가지 분자들의 유니크한 배합일 터다. 내가 그녀에게 불쾌했던 점은, 그가 서양백인으로서 한국에서 한국인과 결혼하여 살면서 느꼈을 그 이질적인 냄새들이다. 그녀가 시작한 옆자리 여성의 냄새는 물론 서양 백인의 냄새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토록 냄새에 예민한 그녀가 한국서 가장 많이 부딪혔을 냄새들은 단연코 한국인과 한국 공간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다. 그때 느꼈을지도 모를 어떤 감정, 혹은 어떤 감각. 이것이 나는 불쾌하다. 


그래서 나는 송강호가 마지막에 한 그 순간적인 행동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만일 어떤 관람객이 자신이 반지하에 살지 않아서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가 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했다면, 그는 반지하에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냄새나지 않는다고 믿는 그 1%의 최상위 계급일 듯하다. 우리 모두는 고유의 냄새를 가진다. 그것을 어렴풋한 다양성으로 이해했던 나는, 엄마에게 된통 혼나고 냄새에 대한 감각을 함부로 표현하면 안된다는 커다란 교훈을 배웠지만, 여전히 나는 그 다양성을 믿고 싶다. 외국에 있던 그 1년동안, 한 때 개도국 시절 미국의 냄새, 부자의 냄새라 알려진 그 다*니 향에 진저리를 치며, 향 없는 세제를 찾아서 코스코까지 다녔던 나는 그 인위적 부의 위장의 냄새 역시 마찬가지로 싫다. 


기침이 끊이지를 않아 알러지 검사를 했더니, 꽃가루와 과일 등 아주 여러가지 항원들에 반응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코 집먼지 진드기가 1위였다. 나는 조금씩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했다. 침구를 홀라당 벗겨 90도 물에 빨고 쨍쨍한 햇볕에 말리고, 솜은 햇볕에 말렸다가, 이불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또 빨아들이고, 말려 빨은 껍데기에 남아 붙어있을지 모를 진드기 사체를 위해 다시 청소기로 빨아들이고..거실의 보이지 않는 구석의 먼지들도 가구와 일상용품들을 드러내며 청소했다. 먼지는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 저 먼지가 품고 있었을 냄새들...아직도 벽이며 천장이며 붙어있을 집안의 냄새들...아무리 빡빡 닦고 빨고 씻었다 한들, 단 한 개의 분자가 머리카락, 옷자락 어딘가에 붙어있다가 후루룩 떨어져 상대방의 코에 닿는 순간, 그의 어두운 일상의 배경은 까발려진다. 


미국의 냄새, 아시아의 냄새. 그런데 ... 그게 어때서? 알러지만 아니면, 불쾌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아?


물론 송강호의 가족에겐 괜찮지 않았다. 그 냄새가 가난의 냄새, 지하실의 냄새, 홍수가 나면 가장 먼저 오수가 가정을 덮치는 종류의 씻을 수 없는 가난의 냄새라는 걸 모두가 알고 맡을 수 있을 때, 그 냄새를 아무리 씻어도 절대로 절대로 지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 냄새는 우리 사회의 냄새는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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