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2015년 김보영의 소설을 번역 출간한 적 있는 SF 잡지 클락스월드에 2019년은 많은 한국 작가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9개의 단편을 번역하고 그 첫번째 소설을 출간했던 4월호 이슈 155에서 편집자 닐 클락스는 길거리 혹은 세상 반대편  어느 곳에서든 최고의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중국의 SF가 세상에 빛을 보고 그 어느 때보다도 호황기를 맞이했던 건 우리나라에서는 <종이 동물원>과 <제국의 위엄>이 출간된 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가 처음으로 자신이 번역한 중국 단편들을 보내 그것을 2011년에 싣기 시작하면서 미미하게 시작되었지만 켄리우를 몇년 동안 꾸준하게 출간한 중국 SF 소설이 몇 년 이상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출판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작가들이 있는 잉여적 상황에서, 단지 영어권에 전달되지 못해서 묻히는 훌륭한 작품이 많다는 것을 잊기 쉽다고, 그래서 변방의 언어로 적힌 소설들에 관심을 갖고 출간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클락스월드 매가진에서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2019년 총 9개의 작품을 게제하기로 하였고, 이미 배명훈, 김보영, 듀나, 복거일, 정소연 등의 작품이 한회 혹은 두회에 걸쳐 게제되어 있다. 가장 최근 호가 8월호인데 지난 달에 이어 2회째로 듀나의 <The Second Nanny>가 게재되어 있다. 




가끔 가장 최신의 따끈따끈한 과학소설이 땡길 때는 클락스월드에 들어가보곤 하는데 재밌게 읽은 봇 소설이 하나 있어서 소개한다. 웰스의 살인봇 일기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읽게 된 건데 살인봇 일기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2017년도에 나왔고 아마도 휴고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거나 혹은 단편상까지 받았거나 그런 작품이다. 과월호까지 모두 온라인에 출판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작품은 읽어주기까지 한다.  길지 않고 온라인이라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문장은 우리의 구세주 파파고님이나 구글번역가님께 부탁해서 읽으면 된다. 

SF 중에서도 스페이스 오페라 라고 불리는 범주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넓고 깜깜한 우주에서 우주선에 탄 채로 떠다니면서 할 게 쌈질 밖에 할 게 더 있나.  게다가 중세시대의 이야기를 우주로 옮겨운 것일 뿐인 듯한 비슷비슷한 설정의 클리쉐가 많은 분야가 또 이 분야이기도 하다. 로봇이 주인공이 되면 좀 달라진다. 예를 들어 murder bot diaries의 경우 먼 미래, 먼 공간 속 행성이 배경이지만, 장르적 크리쉐는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최소한으로 줄였고, 고집불통 착한 로봇의 복잡 미묘한 캐릭터를 1인칭 시점으로 끌어가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작년인가 재작년 휴고상 목록에서 제목에 이끌려서 찾아 읽었다. 


우주선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기에, 자잘한 액션 묘사에 쓰인 어휘가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궁금증은 풀릴 정도였다. 예전의 로봇 주연 소설들이 대개 반란을 일으켜 인간과 전쟁을 주로 한다면 요즘 소설 속 로봇들의 주제는 의식을 가진 봇의 다양한 캐릭터의 특성이 잔재미를 준다라고나 할까. 어느날 잠에서 깨어난 다용도 로봇은 자기가 비활성화된 동안 엄청난 시간이 흘렀으며, 그 엄청난 시간 속에서 봇들의 세계 역시 완전히 달라진 것을 알게 된다. 봇들은 전문화되었고, 봇넷이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그 봇넷 커뮤니들을 통해 모두들 알고 있던 거였다. 수세대 만에 깨어난 봇9은 보다 근사하고 멋진 일을 수행하고 싶었지만, 우주선으로부터 해충을 퇴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우주선 역시 봇의 일종으로 휘하에 모든 종류의 봇들을 거느리고 조정하고 있다. 


이 전문화된 봇들은 크기가 매우 작고, 종류도 청소봇, 함체봇, 식크봇 등 다양한데, 알고 보면 우주선을 움직이고 관리하는 자동화된 부품의 업그레이드된 버전 정도로 보인다. 봇들의 명칭은 숫자로 된 시리얼로 되어 있다보니, 4030이니 123456이니 하는 봇들이 볼 때 봇9이란 까마득한 전설의 봇이다.


숲속의 잠자는 공주가 막 깨어나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을 때,  자신은 그 개념조차도 알 길이 없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그렇게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숲속의 공주와 봇9의 다른 점은 그는 인간이고 그것은 기계라는 점이다. 이 구형 멀티봇이 처음에 봇넷을 알게 되었을 때 봇넷의 존재 필요성을 의심한다. 태생 자체가 인간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봇들은 애초에 시스템으로부터 받는 탑다운 명령에 복종하는 것만이 존재 목적이 아니었던가. 자기들끼리의 상호 대화가 왜 필요한가. 그것은 존재 목적에 어긋나지 않은가. 하지만 봇들이 쉬는 시간에 봇넷의 액세스를 허용한 것은 그들의 최고 책임자인 우주선(역시 봇임) 자체다. 정보의 공유는 봇들의 효율성과 능률을 엄청나게 증가시킨다는 걸 알아챌 만큼 우주선은 똑똑하다.




봇9은 Incidental이라 불리는 해충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 하면서, 잠들어 있던 수세대간의 문화적 기술적 갭을 업그레이드 하지만, 그동안 인간들은 인류를 파멸하기 위해 지구를 향해 가고 있는 외계인들의 우주선과 사투를 벌인다. 지구와 충돌을 막기 위해 우주선체 자체와 충돌하여 장렬히 희생하자는 인간적 인간들과, 똑똑한 머리와 엄청난 개체수로 인간과, 지구, 그리고 자신들까지 모두를 구출하고자 하는 봇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하고 귀여운 스토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